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클레이튼 로슨 지음, 장경현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
<하기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컬트 신봉자 세자르 사바트 박사가 완벽한 밀실에서 교살된 시체로 발견된다. 그를 찾아온 사람들 등 유력한 용의자들 모두가 마술사인 상황. 개비건 경감은 사건의 특수성을 알고 마술사 그레이트 멀리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말로만 들었던 클레이튼 로슨의 마술사 멀리니 시리즈 대표작. 출간은 작년에 되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돠었네요.
그런데 솔직히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의 첫번째로는 멀리니의 캐릭터가 별로라는 것을 들고 싶네요. 괴도 키드와 같은 후배들의 원조답게 굉장히 개성적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직업만 특이할 뿐 고전 황금기 시대의 다른 명탐정들과 딱히 구분되는게 없는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였거든요. 게다가 스테레오 타입 형태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말많은 천재형이며 그 중에서도 최악인,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쓸데없는 말만 많고 정작 중요한 것은 잘 알려주지 않는 타입 (초기의 엘러리 퀸이나 파일로 밴스 타입) 이라 더 화가 나더라고요. 범인이 누군지 알면 증거나 단서를 잡기 전에 행동부터 좀 하란 말이지! 하여간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개비건 경감이 왜 참고있는지가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두번째로 트릭도 문제가 많습니다. 분명 괜찮기는 하나 걸작이라는 말을 듣기는 조금 부족한 점이 느껴져요. 가장 큰 문제는 범인이 마술사라는 것에 너무 많이 의지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첫번째 사건에서의 손수건 바꿔치기, 두번째 사건에서의 최면술 같은 것인데 이 정도 능력이면 거의 초능력 수준의, 일반적인 상황과 상식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트릭이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어요. 마술에 의지한다는 점 때문에 독자와의 두뇌게임 역시 공정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문제고요. 최면술 같은 것을 사전에 단서라고 공유해 주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어요?
세번째로 멀리니가 이야기하듯 증거가 너무 없다는 것도 문제인데다가 이렇게 완벽하게 살인계획을 짤 거라면 단순한 밀실 살인이 아니라 범인으로 옭아맬 희생양도 당연히 필요했을텐데 그냥 불가능 범죄를 연출했을 뿐이라는 설정도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들인 공에 비하면 별로 얻은게 없는 상황이니까 말이죠. 애초에 왜 밀실을 만들었나 싶기도 하고요. <너버스 브레이크다운>의 안도가 이야기하듯, 가장 완벽한 밀실 살인은 자살이어야 한다는, 그게 살인으로 밝혀지면 범인에게 무슨 이득이 있냐는 말이 떠오르더군요.
마지막으로 경찰력의 무능함을 극대화시킨 것도 옥의 티라 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5만달러나 되는 큰 돈이라는 유력한 동기를 간과하고 멀리니에게만 기댄다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죠. 이 부분에 주목해서 경찰의 수사가 이루어졌더라면 범인을 잡아낼 수도 있었을겁니다.
물론 고전 황금기 시대 이름을 날린 작품다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마술의 미스디렉션을 살인의 기법과 연결시키는 발상 하나만큼은 높이 쳐주고 싶고 초반의 타로가 사라지는 간단한 마술 트릭이라던가 첫번째 사건에서의 바꿔치기 트릭 하나만큼은 치밀하게 짜여져 있어서 과연 추리소설사에 이름을 남길만 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딕슨 카의 밀실 추리 이론 등 다양한 작품과 이론에 대한 소개 역시 볼거리고요.
그러나 저의 컸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더 컸다 생각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번역 출간 자체는 반갑지만 저같은 고전 본격물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권하기 어려울 정도로 애매한 작품이었어요. 멀리니의 장광설만 좀 줄이고 두번째 사건에서의 최면술 트릭 하나만 보완했더라면 훨씬 쫗았을텐데 안타깝네요. 멀리니가 등장하는 단편집이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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