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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조선의 명탐정들 - 정명섭 / 최혁곤 : 별점 2점

조선의 명탐정들 - 4점
정명섭.최혁곤 지음/황금가지

조선시대 사료를 바탕으로 실재했던 사건 해결 사례를 모아놓은 책. 논픽션 역사추리물이라고나 할까요? 추리작가 정명섭, 최혁곤씨 공저로 모두 13편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앉아서 수수께끼를 풀다 - 세종대왕
2. 권력의 중심에 칼을 겨누다 - 이휘
3. 법 위의 권력을 처단하다 - 박처륜
4. 악녀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다 - 이의형
5. 천재적 두뇌를 가진 타락한 탐정 - 연산군
6. 부인과 아들, 살인자는 누구인가? - 황헌
7. 어머니의 누명을 벗기다 - 이순
8. 부당한 수사에 맞선 용감한 선비들 - 이유달, 이민구, 목서흠
9. 방방곡곡을 떠돌며 캐낸 숨은 진실 - 심염조
10. 조선 최고의 명탐정 - 정약용
11. 한 치의 의심도 없게 하라 - 정조
12. 심리수사 기법으로 범인을 찾다 - 이름 모를 서흥 부사
13. 조선 투캅스 - 좌포청 군관 이종원, 우포청 군관 육중창


13편이나 되는 이야기가 실려있기 때문에 분량만 놓고 본다면 꽤나 풍성하죠. 그러나 해결이 어려웠던 이유는 단지 조선시대였기 때문인 사건 등 지금 보기에는 추리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내용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아울러 검시과정은 디테일하기는 하나 매번 유사하게 반복되게 지루하기도 하고 수사과정은 "국문"이라고 불리우는 고문에 의존하고 있어서 이게 정말 진상을 밝힌 것인지, 고문으로 또다른 피해자를 만든 것에 불과한지 판단하기도 어렵더라고요.
그나마 추리적으로 기대에 값했던 내용은 세편 정도에 불과해요.

그 중 첫번째는 <권력의 중심에 칼을 겨누다 - 이휘> 입니다. 사건 현장에 종이가 발라진 벽에서 혈흔을 체취하고, 벽과 기둥에 묻은 혈흔을 보고 바닥에도 흘렀을 것이라 추리하여 증거를 보강하고, 시신에 난 상처 (창대에 눌린 것 처럼 원형)를 통해 철창이 흉기임을 떠올리는 일련의 과정의 디테일이 대단했기 때문이에요. 동기를 밝혀내는 과정도 그럴듯했고요. 무엇보다 결말에서 세조의 최측근이자 공신인 민발이 범인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자 이휘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사육신에 가담하게 된다는 후일담까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두번째는 <악녀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다 - 이의형> 입니다. 피해자가 조선 역사에 길이 남을 악녀 중의 하나이자 어우동의 어머니인 "귀덕"이라는것 부터 흥미로운데 범인이 어머니의 패악을 못견뎌했던 아들이라는 것이 충격적이더군요. 형벌은 능지처참이었다니... 죽을 죄이기는 하나 귀덕의 행실을 보자면 참작의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닐텐데 유교국가인지라 최고형이 선고된 듯 합니다.
마지막은 <천재적 두뇌를 가진 타락한 탐정 - 연산군>의 유인홍의 첩이 남자 종과 간통을 하다가 딸에게 발각되어 딸을 찔러 죽였다는 사건입니다. 유인홍은 딸은 자살이고 첩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새 옷에 피가 묻는 것을 피하려고 헌 옷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목을 찔렀다는 내용에 주목하여 자살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연산군이 알아내게 되죠. 결국 유인홍이 첩 무적과 언문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수사과정에서 밝혀져 편지가 압수된 뒤 유인홍이 모든 증언을 조작, 조종하였다는 것, 그리고 첩이 간통이 드러나 딸을 죽인 것이 사실이라는 진상이 밝혀지게 됩니다.
내용은 평이하지만 첩과 본처 소생 딸과의 갈등이라는 고전적 주제에 더해 피해자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간파하게 되는 장면만큼은 추리소설같은 재미를 전해주기에 마음에 들었어요. 참고로 정조편의 소박맞은 여동생을 살해한 오빠 사건 역시 동일한 발상으로 전개됩니다. 여동생이 자살할 결심을 했다면 돈과 베가 든 보자기를 가져갔을리 없다는 논리로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내용이거든요.

그러나 나머지 이야기들은 딱히 큰 재미가 있거나 자료적 가치가 있어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자료적 가치라면 <원통함을 없게하라>와 같은 <신주무원록> 번역서가 더 낫겠죠. 얼마전 EBS에서 관련 다큐가 방영되기도 했고 말이죠.
아울러 책의 구성이 영 별로더군요. 본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짤막하게 소설 형식으로 시작한 뒤 디테일한 내용을 기사처럼 쓰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이러한 방식은 다큐멘터리의 "재연화면"을 연상케하여 논픽션을 흥미롭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왜 똑같은 이야기를 두번 반복해서 분량을 늘리고 읽는 노력을 낭비하게 만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적인 형식으로 쓰여졌다고 더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중요한 이야기는 본편의 논픽션 부분에서 모두 소개되는데 말이죠.
게다가 최악은 각 이야기 후에 이 사건의 탐정역인 인물과 유사하다는 해외 명탐정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조선의 명탐정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는 독자들이 당연히 해외 명탐정에 대해 관심이 있으리라 예상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이래서야 유명한 파스타집에 갔더니 반찬으로 김치가 나오는 것과 다를바 없죠. 아무리 쉐프의 의도가 있다곤 하더라도 일반 손님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또 명탐정들을 본편 내용과 억지로 연관시키려는 시도 역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예를 들면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범인을 잡아낸 탐정이 벤자민 위버라는 식인데 세상에 그렇지 않은 탐정이 있나요?  소개도 프로필 소개 정도에 불과해서 그닥 자료적인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욕심이 지나쳤어요...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이 책이 무언가의 시작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재미, 자료적 가치 모두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좋은 디자인과 일러스트가 낭비된 느낌인데 차라리 신주무원록을 재미있게 소개해주는 식으로 논픽션 부분만 강화해서 책을 냈다면 더 나았을 것 같네요.

2014/04/28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서 - 고마츠 사쿄 / 이동진 : 별점 1.5점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서 - 4점
고마츠 사쿄 지음, 이동진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노노무라는 은사의 친구 반쇼야 교수가 발굴했다는 기묘한 모래시계 때문에 탐사여행을 떠난다. 모래시계는 어느 방향으로 뒤집든 끊임없이 모래가 떨어지는 4차원적인 구조를 가진 물체. 그러나 발굴현장인 고분을 탐사하던 모든 일행과 관계자가 잇달아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와중에 노누무라 역시 시속 70킬로미터로 달리던 택시 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저자인 고마츠 사쿄는 호시 신이치츠츠이 야쓰타카와 함께 이른바 일본 3대 SF 작가 중 한명입니다. 그러나 다른 두명에 비하면 국내에서의 인지도나 대접이 시원치 않아서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일본침몰> 이외에는 소개된 적이 없었죠. 그래서 소개만으로도 무척 반갑고 기쁠 뿐더러 이 작품은 그야말로 일본 SF 최대 걸작 중 하나로 이런저런 매체에서 항상 소개되고 있는 탓에 기대가 무척 컸었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더군요. 저의 짧은 이해로는, 노노무라는 이른바 신에게 선택받은 자이지만 우매한 인류에게 지혜를 전해주려다가 신에게 쫓기게 되고 최후의 순간에 신에게 가까이 다가서지만 결국 추락하여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린다는 타천사 루시퍼 이야기의 변주로 보이기는 했습니다만... 여기에 진화와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복잡하게 꼬여있거든요.

물론 끝없이 떨어지는 모래시계, 모래시계가 발굴된 고분의 기이한 구조, 모래시계와 고분 탐사에 관련된 인물들에게 벌어진 기묘한 사건이라는 초반부만큼은 이해하기도 쉽고 굉장히 흥미롭기는 했습니다. 노노무라 - 사요코 커플의 장대한 러브스토리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뒤의 이야기는 이해와 몰입을 저해할 뿐이었습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초과학 연구소에서 일어난 폭발사건, 태양의 이상현상으로 멸망이 닥친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들, 외계인들에 의해 분류되는 인류, 이어지는 습격과 추격 등은 모두 토막나 있어서 제대로 연결되는 것 같지도 않고 앞뒤의 인과관계도 불명확하거든요. 게다가 반쇼야 교수는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외계인들이 찾아온 뒤에 지구가 멸망한 것인건지 아닌건지, 엘마와 한스 마리아 후민은 어떻게 되었다는건지, 애초에 대립하는 두 단체의 성격과 대립의 과정은 무엇인지 등과 같이 뿌려놓은 복선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고요. 심지어 모래시계의 정체를 일종의 발신기라고 설명하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이래서야 모래시계는 작품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그냥 흥밋거리 소도구에 불과하죠. 그야말로 전형적인 맥거핀, 흥미거리 떡밥이랄까요. 여튼, 작가의 욕심만 지나칠 뿐 이야기를 제대로 정리하고 마무리짓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쓸데없이 복잡합니다. 시공간을 4차원 축으로 놓고 어쩌구 한다는 이론은 작품 이해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작가가 나 이만큼 똑똑해! 라고 현학적 능력을 과시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어요. 이러한 현학적 과시의 대표적인 예는 네안네르탈인 집단에 던져진 호모 사피엔스 생존자를 묘사하던 부분인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피해자가 한다는 말이 "1930년에 발굴된 이스라엘 카르멜 산 동굴 기억하나?" 어쩌구라니 오버도 정도가 있어야죠.

차라리 초반부 이야기만 더 깔끔하게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시간 이동에 대한 SF 멜로는 <민들레 소녀>가 이미 한 정점을 찍기는 했지만 이 작품은 물리적인 시간 이동과는 조금 다르게 설명되기 때문에 평행 우주 이론을 살린다던가 하는 식으로 다른 방식도 가능했을 것 같거든요. 모래시계가 발신기라는 작중 아이디어를 더하여 다른 시공에 있지만 모래시계의 한쪽 끝이 연결된 사요코에게 모르스부호와 같은 신호를 보낸다던가 하는 식으로 모래시계도 적절하게 이용해가면서 말이죠.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서 좋은 별점을 준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로저 젤라즈니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작가의 생각을 잘 전달하는 작품은 쎄고 쎘죠. 예를 들어 불멸의 삶과 그에 따른 진화, 생명에 대한 고찰은 <불새 우주편>이 훨씬 쉽고 재미있었어요. 그 어렵다는 <쿼런틴> 조차도 이 작품에 비하면 차라리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나이가 든 탓에 쉽게 쉽게 읽히는 간단한 독서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으나 뭔가 있어보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좋은 대접을 받았던 시대의 유산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고마츠 사쿄라는 작가의 작품을 접한 기쁨은 크지만 널리 권할만한 작품은 아니라 생각되네요.

2014/04/22

자백의 대가 - 티에리 크루벨리에 / 전혜영 : 별점 2.5점

자백의 대가 - 6점
티에리 크루벨리에 지음, 전혜영 옮김/글항아리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폴 포트 정권에서 S-21 교도소의 소장으로 일하며 이른바 "킬링 필드"에서의 처형으로 1만 2천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는데 일조했던, 두크라 불리운 남자의 국제 재판을 그린 논픽션.

이 책이 알리고자 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두크가 저지른 범죄가 과연 필연적인 것이었냐는 것이죠. 책에서 두크를 비롯한 전범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혁명을 위해 명령에 절대 복종하여 열심히 일한 것 뿐이며 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케 하리라는 논리인데 일제 강점기 때 친일을 한 것이 불가항력이었을지? 독재정권 시절 독재에 순응하고 살았던 것이 불가항력이었을지? 같이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간 우리에게도 시사해주는 점이 많은 주제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주제를 드러내는데 있어서 두크의 주장 뿐만이 아니라 그와 대척점에 있는 생존자들과 사망한 피해자 가족들의 생생한 증언 및 인터뷰를 500여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 걸맞게 상세하게 제공해주어 독자로 하여금 재판에 동참하고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워낙에 방대한 분량이라 요약하기는 쉽지 않지만 정리해보면 두크가 자신의 범죄에 대해 불가항력임을 주장하고 또한 고문에 있어서는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부분이 전반부, 그가 교도소 책임자로 있으면서 유일하게 마음을 열고 심지어 구해주기까지 한 프랑스인 프랑수아 비조의 등장 및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되었으며 프놈펜이 다시 함락된 이후 두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그리는 부분이 중반부. 그리고 재판에서 거의 유일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던, 정말로 죄가 없는게 확실했지만 죽였야만 했던 풍 떤 교수의 가족들의 등장 후 재판의 결말이 그려지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두크라는 인물의 천재적인 면모, 과거 약 30여년 전 기록했던 자백서, 자신이 심문했던 인물들에 대해 기억해내는 엄청난 기억력은 물론 자백의 대가로서 재판에서 보여준 능수능란한 처세가 드러나는 식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은 두크는 "밀그램의 복종 실험"처럼 권위에 대한 복종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이상을 위해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나중에는 기계적으로 동참하는 특이함을 보여주며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예상했음에도!) 그가 S-21 교도소장으로 있던 기간을 제외하면 학교 선생과 목회자 등으로 주변 사람 모두에게 호감을 주고 성실한 인물로 살아왔다는 점입니다. 재판을 다룬 서적이 아니라 심리학 서적에서 다루어야 하는 인물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기묘하고 특이한 인물이더군요.

그러나 실제 "자백의 대가"에 대해 알기에는 딱히 좋은 구성은 아닙니다. 두크를 자백, 고문 전문가인 개인으로 보는 시각이 아니라 크메르 루즈라는 거대 조직의 일원으로 보는 시각인 탓에 두크의 고문과 같은 과거 행위는 그다지 설명되지 않고 이러한 범죄를 왜 저질렀는지에 대한 인과관계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크메르 루즈가 무엇이며 그들이 무엇을 원했는지, 그리고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알게 되었지만 제가 기대했던 부분과는 많이 달랐어요.
또한 재판에 대한 논픽션으로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법정극적인 재미는 많이 부족한 탓입니다. 이유는 두크가 지은 죄가 명확한 탓에 빠져나갈 부분이 거의 없어보였기 때문이죠. 일관되게 고문을 실제로 하지는 않았다는 등 주요 범행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지만 직접 작성한 방대한 서류가 남아 있으니 뭐.. 마지막에 벌어지는 프랑수아 루 변호사의 변론도 공허한 시간낭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앞부분에 묘사했던 자백의 대가로 사람들에 대해 판단하고 조종하는 모습도 거의 묘사되지 않아서 실망스러웠고요. 한마디로 "재미" 측면에서는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단지 재미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책임에도 분명합니다.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허투루 보아 넘기기 어렵기도 하고요. 우리의 격동의 근현대사와 닮아있는 묵직한 주제에 더해 두크 개인의 삶이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의 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이에요. 말년에 기독교에 투신한 것까지 똑같더군요. 이 부분에서 항상 저도 궁금했던, "개종은 단지 신에게 죄를 용서받는 은총을 얻기 위해서이다. 과연 그렇게 빨리 사람이 회심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도 던져지는데 등장하는 목사는 두루뭉실 어물쩡 넘어가더군요. 그러나 결국 이 책을 통해서 전해주는 답은 두크는 믿음없이는 살 수 없는 인물로 처음에는 공산당이 그 대상이었지만 그 대상을 종교로 바꾼 것 뿐이라고 결론내립니다. 단지 소속 그룹만 바꾸었다는 것? 이건 이기적일 뿐 아니라 가증스럽기 그지없는 행동이죠. 결국 종교를 믿는 것까지 순수하게 자신을 위한 행동이니 말입니다. 덧붙이자면 구 공산당의 간부들이 현재 캄보디아 정권의 핵심 요직에 앉아서 떵떵거리며 산다는 후일담 역시 씁쓸할 뿐이고요.
그 외에도 중간에 그려지는 크메르 루즈의 집단 학살이 관광산업이 되는 슬프고도 황당한 현실도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있고 "자백의 대가"에 대한 내용 보다는 그 외의 내용이 더욱 많기에 모든 분들께 권해드리기는 어렵지만 캄보디아와 크메르 루즈에 대해 관심이 많거나 이 당시 벌어진 학살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명대사. "어차피 죽일거면 대체 왜 고문을 한겁니까?"

2014/04/21

파계 재판 - 다카기 아키미쓰 / 김선영 : 별점 3점

파계 재판 - 6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하기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과거 신극배우였던 무라타는 내연녀와 그의 남편을 살해한 뒤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법정에 선다. 그는 남편을 살해한 내연녀 야스코를 위해 시체 유기를 도왔다는 혐의는 인정하나 나머지 혐의는 모두 부인한다.
그의 유죄를 확신한 검사는 그의 과거사부터 들춰내나 변호사 햐쿠타니 센이치로의 활약으로 서서히 흐름이 바뀌고 무라타의 비밀까지 밝혀지는데...

일본 추리작가 다카기 아키미쓰의 대표작 중 하나. 무고한 누명을 뒤집어 쓴 피고인 무라타 가즈히코의 누명을 벗기고 진범을 밝혀내는 햐쿠타니 센이치로 변호사의 활약이 그려지는 법정 미스터리로 이전 가미즈 교스케 단편을 확장한 것이라고 작가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 작품입니다. 도서출판 검은숲에서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두번째로 출간하였는데 (첫번째는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국내 정식 출간된 것 만으로도 감개무량하네요. 작가의 팬을 자부하며 정식 출간작들은 물론 과거 절판본까지 수집하고 있는 저로서는 당연히 구입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하고요.

읽고 난 감상 중, 좋았던 것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두건의 살인사건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울뿐 아니라 도저히 무라타가 빠져나갈 수 없는 지경까지 몰고가다가 한번에 터트리는 진범의 정체 및 그 진상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또한 다카기 아키미쓰 스스로 이 작품 저술을 위해 사법고시 응시 수준으로 연구했다는 것이 허언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법정과 재판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고 증인이 한명씩 등장하여 그의 증언을 놓고 벌이는 검사와 변호사의 대결도 긴박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단순한 법정극 이상의 가치 역시 큽니다. 피고인이 부락민 출신이라 평생 차별때문에 괴로워했다는 것을 밝혀내어 차별이라는 것에 준엄하게 고발하는 사회파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목부터가 부락민 차별이 묘사된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라는 작품에서 따왔다고 하네요. 부제도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니... 여튼, 이 차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전개와 묘사도 무척이나 돋보였습니다. 검사가 무라타의 범죄성향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하는 과거의 사건들이 모두 차별에서 비롯되었음이 밝혀지는 식이거든요. 과거 극단에서의 횡령사건은 그의 출생에 대해 동료뱨우가 협박했기 때문, 사실혼 관계이던 동거녀가 그를 떠나 아이까지 지운 것 역시 출신성분에 대해 알아버린 것 때문인 등이죠. 특히나 동거녀에 대한 내용은 법정에서 그와 결혼하겠다고 증언하던 동거녀에게 "내 돈때문이지!"라고 일갈하는 무라타의 모습이 겹쳐져 더 충격적이었어요.

전개방식도 무척 특이한데 그야말로 법정에서만 모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화자인 요네다가 도요신문의 법정출입기자로 재판 과정을 가감없이 거의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쓰여졌는데 보통 이런 류의 작품에서 있음직한 별도의 취재활동도 일체없다는 것이 특이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엽기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전작에서 보아왔던 약간은 변격물스럽던 묘사도 전혀 없는 굉장히 깔끔하고 날이 선듯한 느낌을 전해주고요.

그러나 단점도 존재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법정에서의 깜짝쇼말고는 추리적으로 특출난 점은 없다는 점이죠. 독자에게 모든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은 탓이 큰데 이는 앞서 이야기했듯 화자 요네다가 법정에서 보고 들은 정보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법정 미스터리의 특성상 상대방이 쥐고있는 패를 미리 알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리고 이렇게 불공정하게 제공되는 정보도 작위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쉽더군요. 혈액형에 대한 증언이 위증으로 걸린 것이 대표적입니다. 쓰가와가 혈액형에 대해 정직하게 이야기했더라면 굉장히 애매했을텐데 말이죠.
또 사라진 천만엔의 행방 같은 점은 검사나 경찰도 신경썼어야 하는 부분인데 너무 간과한 점이 아닌가 싶어요. 60년대 초반 작품이니 현재 화폐대비 1/50 정도만 쳐도 현재 가치로 5억엔이나 되는 막대한 돈이고 출처만 잘 밝혀내면 진범이 누구인지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을텐데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쓰가와 히로모토와 야스코의 관계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에다가 쓰가와가 어떻게 야스코의 시체를 유기했는지가 나오지 않은 것도 조금은 실망스러워요. 첫 유기 시 무라타가 개입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자가용의 존재 때문이었는데 두번째 범행에서는 바로 자가용을 준비했던 것일까요? 또 진범이 따로 있다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이 작품은 "파계 재판", 즉 무라타 재판으로만 완결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요네다라는 화자가 있는 만큼 쓰가와 재판의 결과 등 에필로그도 확실하게 짚어주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아울러 과거의 협박범인 배우 이토 교지, 피고인의 애인이라는 추문이 있다는 여배우 호시 아키코는 단순한 미스디렉션으로 사용되기에는 비중이 좀 과한거 아닌가 싶었고요.

그리고 햐쿠타니 변호사가 무라타의 무죄를 확신하고 자비까지 들여가며 사건을 파헤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도 의아했어요. 누가 봐도 드러난 증거와 정황 모두 무라타가 범인임을 알려주는데 말이죠. 이 부분은 책에 실린 햐쿠타니 변호사의 단편을 보건데 이후 시리즈화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나 결국 작가의 법정 미스터리는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 시리즈로 이어진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듯 하기도 합니다. 의뢰인의 말을 믿어야 하는 변호사보다는 사건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검사가 탐정역으로는 더 낫겠다 판단했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이만한 극적 긴장감에 더해 사회파적 속성까지 잘 녹여내었다는 점에서는 역시나 거장의 작품이구나 싶더군요. 이 작품을 쓰기위해 사법고시 수준의 공부를 했다는 열의에는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요. 몇몇 단점은 있지만 전체의 완성도를 해칠만한 수준은 아니며 재미와 의미를 함께 갖춘 좋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 : 책의 디자인은 나쁘지 않으나 표지 일러스트 탓에 책 하단에 오물이 묻은 것처럼 보입니다. 구입 당시에는 띠지로 가려져 있기는 한데... 이런 디테일을 좀 꼼꼼히 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2014/04/19

알라딘 중고서적을 잘 찾아보면... 온라인 비블리아 고서당

여러모로 뒤숭숭하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네요. 책도 손에 잘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세월호 생존자 구조가 모쪼록 잘 이루어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여튼, 읽은 책도 없고 하니 오무라이스 잼잼 리뷰에서 언급했던 알라딘 중고서적에 대해 조금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알라딘 중고도서 헌터인데 왠만한 책은 알라딘 직배송으로만 구입합니다. 회원 판매가격은 이해불가 가격도 많고 배송비가 얄짤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절판되었고 희귀본이라면? 당연히 회원 판매를 알아봐야죠. 알라딘 판매 회원 중에도 몇몇 절판 희귀본 전문 셀러가 있습니다. "비블리아 고서당"의 온라인 버젼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중 한 셀러의 판매 목록에 들어가서 훝어보니 참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절판되었더군요. 이런책까지 나왔었나? 싶은 책도 있고요. 가장 놀라운 가격의 책은 요거입니다. 출간된지 10년도 안된책인데 가격이 상당해요. 보통 절판 희귀본의 시세는 정가의 1.5~2배인데 이 책은 3배에 달할 뿐더러 원래 정가도 고가의 책이라 높은 가격이 형성된 듯 싶습니다.

이런저런 정보를 접하니 제가 가진 고서들의 가격이 궁금해져서 저만의 다카키 아키미쓰 컬렉션을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다른 책은 아예 검색도 안되고 그나마 검색된 <제로의 밀월>은 2,000원.... 그 외의 추리소설들 모두 가격이 형편 없더군요. 재간되기 전의 <점성술 살인사건>과 <관 시리즈>, <불야성> 등을 소장했을 때에는 중고가격이 상당했었는데... 다 오래전 일이 되어 버렸네요. 아쉽...

제가 가진 책이야 망했지만 그래도 잘 관심을 가지면 갖고 싶은 책을 건질 수 있는 만큼 앞으로도 중고도서 헌터짓은 계속할 예정입니다. 바로 오늘도 이 책을 5,000원 대에 건졌거든요! 이러니 헌터짓을 그만둘 수 없다니까요~

2014/04/18

오무라이스 잼잼 2 - 조경규 : 별점 2.5점

오무라이스 잼잼 2 - 6점
조경규 글.그림/씨네21북스

국내 최고의 일상계 요리만화로 이전에 읽었던 1권에 이어지는 이야기. 1권 리뷰에서 가성비를 언급하고 다음권을 살 계획은 없으리라 단언했었죠. 그러나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반값에 팔기에 구입하게 되었네요.

가격 때문의 착시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1권보다는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웹툰 연재 시 읽었던 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XO 소스 발명에 대한 일화, 작가의 미국 유학 생활 중 단골 중국집에서 Happy familty~ 전가복!을 먹은 이야기, 작가의 산타페 여행기, 너무너무 맛있는 베이컨 이야기 등이 실려있기도 하고 각종 부록도 1권보다는 더 마음에 들었거든요. 작가의 아들 준영이를 주인공으로 한 짤막한 만화나 맛집 소개, 오래된 광고소개 같은 잡스러운 정보들은 여전히 재미없고 쓸데없긴 합니다만.... XO소스를 이용한 볶음밥이라던가 완벽한 계란후라이와 스크램블 에그와 같은 조리법 소개는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산타페 여행기 편에서 잠깐 그림으로 소개되기만 했던, 작가가 산타페에서 1회용 카메라로 찍었다는 당시 사진이 실려있는 것도 아주 좋았습니다. 사진도 나름 감각적이더군요. 이왕 이 사진을 실을 생각이었다면 전가복편에 등장한 메뉴판 등도 실어주었으면 했는데 조금 아쉽네요.

여튼 별점은 2.5점. 정가로 구입했다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것 같은데 반값에 구입했기에 만족합니다. 웹툰으로 이미 다 보신분들이라면 구태여 구입하실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덧붙이자면 저는 현재 판매가의 50% 금액의 중고서적을 구입했는데 알라딘에 올라와있는 회원 판매 중고가는 배송비 포함하면 새책 가격보다도 비싸지네요. 절판된 책도 아닌데 이 미친 중고가격 책정은 뭔가 싶습니다.

2014/04/16

라이징 임팩트 1~17 - 스즈키 나카바 : 별점 1.5점

라이징 임팩트 17 - 4점
스즈키 나카바 지음, 정선희 옮김/서울문화사(만화)

골프에 관심을 둔 친구가 많아져서 이런 저런 작품을 읽다가 만나게 된 작품. 완결된지 10년도 더 넘게 지났네요.
그런데 골프만화는 아니고 전형적인 왕도형 배틀 판타지 만화더군요. 초등학생이 400야드가 넘는 드라이버샷을 날린다던가 수십미터짜리 버디 퍼팅과 칩인 어프로치를 당연하게 성공시키는 판타지 설정에 더하여 “기프트”라고도 불리우는 각자의 필살기 (“라이징 임팩트”, “샤이닝 로드”…) 가 존재하며 주인공이 아무리봐도 초등학생같지 않은 라이벌들과 싸워 나가고, 그 라이벌들과 한팀이 된 이후 다른 라이벌 팀과 싸워 나가고, 그 라이벌 팀과의 싸움이 끝난 뒤 진정한 라이벌 팀이 나타나고… 하는 식의 전형적인 소년만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만화에서 골프는 단지 소재일 뿐입니다. 골프시합은 성투사들과의 전투, 라이징 임팩트는 페가사스 유성권으로 바꿔도 이야기는 성립할겁니다.
허나 아쉽게도 가면 갈수록 인기가 떨어진 탓일까요? 카멜롯과 그렐 킹덤과의 최종 결전에서 “자 이제 승부를 시작해볼까!”라는 말과 함께 바로 10년 후로 넘어가 후일담이 이어지는 어처구니없는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그야말로 편집부의 압력 ("당장 집어쳐!")이 느껴지더군요. 그나마 후일담에서 거의 모든 등장인물에 대해 정리해주는게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물론 “점프”에서 단행본 17권 분량까지 연재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왕도형 배틀 판타지로서의 재미는 갖추고 있긴 합니다. 다양한 홀의 구성과 환경에 맞춰 서로의 필살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꽤 그럴듯하거든요. 몇몇 장면에서는 두뇌싸움을 보는 맛도 약간 느껴지고요. 또 천연계 주인공 가웨인 캐릭터는 이런 류의 만화에서는 보기 드문 캐릭터라는 점에서 차별화되기는 합니다. 갈수록 너무 뻔해진다는 것과 다른 캐릭터들이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은 아쉽지만 말이죠.

여튼 기대와는 전혀 달랐던 전형적인 소년 만화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중년에 접어든 제가 읽기에는 너무 유치했어요. 킬링타임용으로 오래 기억될 작품은 아니네요.

덧붙이자면 주인공은 가웨인에 라이벌은 란슬롯, 끝판왕은 트리스탄, 다니는 학교는 카멜롯인 등 아더왕 전설에서 모티브를 따 오기는 했으나 그냥 그뿐입니다.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끝판왕은 모드레드에 모르가나 정도는 나와줬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요. 일본이 무대인 만화에 왜 억지로 이런 이름을 가져다 붙였는지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2014/04/15

차이니즈 봉봉 클럽 1 - 조경규 : 별점 2점

차이니즈 봉봉 클럽 01 - 4점
조경규 지음/씨네21북스

국내 요리만화 중에서는 첫 손가락 꼽는 <오무라이스 잼잼>의 작가 조경구의 스토리 요리 만화. <오무라이스 잼잼>에도 등장한 작가의 딸 은영이를 모티브로 만든, 돈많고 예쁘고 공부까지 잘하는 여고생 조은영이 차이니즈 봉봉 클럽이라는 중화요리 식도락 클럽에 가입하여 여러가지 요리를 클럽 친구들과 맛보고 다닌다는 내용이죠. 2008년도 만화이니 5년도 더 지났지만 이제서야 찾아보게 되었네요.

청송고의 차이니즈 봉봉 클럽 멤버들이 실존하는 중화요리집을 찾아다니며 먹은 맛있는 음식에 대해 소개해준다는 내용으로 일종의 서울 중화요리집 가이드북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가이드북으로서의 기능은 충실한 편이며 무엇보다도 고급요리보다는 만두나 면류 등 간단하고 크게 부담없는 가격의 식사 위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실제 저도 방문했었던 구로동 (구 가리봉동)의 "삼팔교자관"의 꿔바로우가 등장하는 것도 무척 반가웠고요.

그런데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만화로서의 재미가 기대 이하라 가이드 북 이상의 가치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작가 역시 단순 가이드 이상의 재미를 주기 위해 "차이니즈 봉봉 클럽"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과 다양한 개그 요소를 선보이고는 있지만 무리수로밖에는 보이지 않더군요. 배고프면 얼굴이 변하는 쇼타, 맛있는 것을 먹으면 이마의 상처가 아프다는 해리, 대표 비슷한 아롱군이라는 캐릭터 3인방 모두 별다른 매력없는, 개그만화의 병풍 수준일 뿐이었으니까요.
또 작화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딱딱 떨어지는 일러스트같은 펜선이 독특한 전통적인 만화 작풍인데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다는 시도는 좋았지만 정도가 너무 심하고 연출이 안정되지 않은 느낌이며 컬러로 정성껏 그렸던 <오무라이스 잼잼>에 비해 요리들이 그닥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라 생각되었습니다.

자금 사정에 안절부절 못하는 해리가 은영의 친구에게 일갈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끝나서 다음권이 조금 궁금해지기는 하지만 형식 자체가 동일하다면 구태여 찾아 읽어볼 것 같지는 않네요. 차라리 담백하게 중화요리를 좋아하는 소녀가 유명 가게를 여러가지 채널을 통해 정보를 얻어 구루메 투어를 다닌다는 식, 아니면 그냥 작가와 기자들이 실재 취재를 한 취재기를 재미나게 풀어내는 식으로 일상계스럽게 전개하는게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4/04/14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 도현신 : 별점 2점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 4점
도현신 지음/시대의창


전쟁과 관련된 음식들에 대해 소개해준다는 내용으로 해당 음식, 요리의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함께 전달해 주고 있는 일종의 미시시 서적입니다.
그러나 전쟁때문에 비롯된 음식들에 대해 심도있게 실려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전쟁으로 전파되거나 전쟁에서 요긴하게 사용되었던, 아니면 전쟁과 억지로 끼워맞춘 음식들이 대부분이라 실망스러웠습니다. 예를 들면 바이킹이 뷔페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는 내용 같은건데 음식을 조리해놓고 알아서 덜어먹은게 과연 바이킹만의 문화였을지 솔직히 의심스러워요. 예전에는 다 이렇게 먹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심지어는 아예 전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요리도 많아요. 조선시대의 청어잡이에 대해 다룬 것은 그만큼 청어가 돈이 되기 때문이지 전쟁과는 상관이 없죠. 실제로 전쟁에 관련되어 만들어진 것은 빈을 포위공격하던 오스만 제국을 패퇴시킨 기념으로 제빵사 피터 벤더가 오스만 제국 국기의 초승달 모양을 본따 만들었다고 하는 크루아상 정도가 전부입니다.
또 다른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는 내용이 제법 많이 실려있다는 것도 단점이에요. 이를테면 스팸이야기는 지겨울 정도로 많이 접했거든요. <오무라이스 잼잼>에서 정점을 찍기도 했고요.

그래도 워낙 많은 음식들이 소개되기 때문에 건질게 없는건 아닙니다. 소설과 애니메이션 <보물섬>에서 묘사되는, 당시 선원들이 럼주를 마실 수 밖에 없었던 이유 - 물의 보관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 - 라던가 나치 독일에서 콜라를 구할 수 없게 되자 "환타"를 만들었다는 것 같은 것 말이죠.
처음 알게된 사실도 많은데 알라모 전투를 일으킨 후 마지막에 몰락해서 미국에 망명한 산타 안나가 사진작가 토마스 애덤스에게 치클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 껌의 기원이라는 것과 프렌치 프라이가 프랑스가 아니라 벨기에가 원조라는 것이 그러합니다. 벨기에 뫼스 계곡에 사는 사람들은 작은 물고기를 튀겨먹었었는데 강물이 얼어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되자 감자를 길게 세로로 썰어 튀겨먹었다고 합니다. 세계최초의 감자튀김이기도 하다네요.
그 외에도 탕수육이 청나라 말기 외국인들을 접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진위여부를 떠나 그럴듯하기는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채만식의 <태평천하>에도 언급될 정도로 탕수육이 이미 일제 강점기때 널리 알려진 음식이었다는 것이지만요.

허나 몇몇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해도 전체의 가치를 끌어올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2점. 정말로 "전쟁"에 얽힌 것들만 심도있게 파고드는게 더 나았을 것 같군요.

2014/04/09

백일홍 나무아래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2점

백일홍 나무 아래 - 4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단편집. 표제작을 포함한 총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가의 후기작들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초기작들이라 그런지 생각보다는 트릭 위주의 정통파 추리소설에 가까운 작품들이라 괜찮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 직후 일본의 모습이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 긴다이치의 첫 탐정 사무소의 위치와 같은 디테일한 설정이 선보이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아울러 <살인귀>와 <백일홍 나무 아래>는 에도가와 란포의 향취가 짙은 변격물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서 시대적 분위기, 유행과 함께 란포의 영향력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분명 낡은 점이 있고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헛점 역시 많기는 합니다. 전체 별점은 2점 정도? 또다른 단편집 <혼진 살인사건>처럼 작가의 최고작과 비교하면 조금 뒤쳐지는 작품들이에요. 긴다이치 코스케의 팬이라면 읽어보셔도 괜찮겠지만 널리 추천하기는 어렵네요.


<살인귀>
우리 이웃 중 한명은 살인귀일지도 모른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작품. 추리소설가 야시로 류스케가 우연히 만난 미녀와 의족, 의안의 사나이와 얽혀 살인사건에 휩쓸려 들어간다는 내용입니다.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꽤 그럴듯한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피해자인 가가와가 사실은 가해자였다는 것이라는 반전도 괜찮은 편이고요. 아울러 이러한 트릭을 위해 가가와의 아내 우메코가 야시로 류스케의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놀란 이유 등의 복선과 우메코의 자살이라는 의외의 상황이 적절하게,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는 것도 본격물다운 느낌을 전해줍니다. 시대적 배경 (전쟁 직후)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동기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나 트릭의 핵심인 살인사건 자체가 운, 우연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라는 것은 조금 아쉬웠고 긴다이치 코스케가 모든 것을 알아낸 뒤에 가나코를 방치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야시로와 가나코의 동반자살은 솔직히 옥의 티, 불필요한 사족일 뿐이었습니다. 동반자살은 야시로라는 인물의 복잡한 성격, 우월감과 자기과시를 묘사하기 위한 장치일수는 있지만 이러한 갑작스러운 변화는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그렇게 중요한 인물도 아니고 말이죠. 가나코를 숨겨두고 정부처럼 데리고 살면서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는 쫄깃한 상황설정이 더 좋지 않았을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평작 이상이 되기 위한 결정적 단계를 뛰어넘지 못한 작품입니다. 

덧붙이자면 야시로 류스케라는 이름에서 사카구치 안고의 <불연속 살인사건>이 순간 떠올랐습니다.

<흑난초 아가씨>
도벽이 있는 부유한 집 아가씨가 훔친 물건은 본가에서 대금 지급.
전쟁 당시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자살용 청산가리 지급.
이라는 "지급" 관련 시사적인 소재 두개를 가지고 풀어낸 작품.

두가지 소재를 결합한 아이디어 자체는 아주 좋고 일상계스럽게 풀어냈더라면 걸작이 되었을 것 같은데 과격한 연쇄살인으로 진행되는 것이 썩 매끄럽지는 않았던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핵심 설정에서 헛점이 너무 많이 보이는 것이 단점입니다. 예를 들면 이소노가 매장 주임이 바뀌었다는 것을 간과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 설명되지 않는 것 같은거죠. 협박범이 이전 주임 미야타케 긴지였는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죠? 또 미야타케를 급작스럽게 살해한 것도 너무 작위적이었어요

긴자의 "삼각빌딩"이라는 곳에 문을 연 긴다이치 탐정 사무소가 처음 등장하는 묘사 같은 것은 마음에 들었는데 보다 간결하게 풀어내는 전개가 아쉬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향수 동반 자살>
화장품 회사 총수의 의뢰로 카루이자와에서 총수 손자의 동반 자살 사건을 수사하는 긴다이치 코스케와 도도로키 경부의 이야기.
카루이자와의 풍광을 살짝 보여주는 여정 미스터리같은 느낌과 전통의 파트너 도도로키 경부의 등장은 팬으로서 마음에 든 점이며 성실한 줄 알았던 장손이 사실 나쁜 놈이고 난봉꾼인줄 알았던 둘째가 사실은 죄를 뒤집어쓰고 다니던 피해자라는 설정만큼은 괜찮습니다만... 사건이 순전히 운과 우연에 의지하고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쇼죠가 마쓰키를 죽인 것부터 우연일 뿐더러 죽은 줄 알았던 유리코가 다시 살아났다는 코미디같은 설정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평균 이하의 작품이에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백일홍 나무 아래>
옛 전우의 부탁으로 과거의 수수께끼와 같은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
순전히 전우의 증언만을 토대로 진상에 도달한다는 점에서는 안락의자 탐정물로 볼 수 있는데 범인이 죽음을 각오했다는 핵심 트릭은 지금 읽기에는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것이라 아쉬웠어요.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따온 듯한, 지금은 용서받을 수 없는 변격물적 설정 (<토끼 드롭스>?) 과 전쟁직후 도쿄의 묘사 정도는 볼거리지만 작품 자체는 그냥저냥한 평작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4/04/08

J. 하버쿡 젭슨의 진술 - 아서 코난 도일 / 송기철 : 별점 2점

J. 하버쿡 젭슨의 진술 - 4점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송기철 옮김/북스피어


코난 도일의 출세작인 표제작을 포함한 네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단편집. 사실 홈즈 시리즈를 제외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경험에 따르면 지금 읽기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만.... 표제작도 그동안 궁금했던 작품일 뿐더러 마이클 더다의 <코난 도일을 읽는 밤>에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소개된 <북극성 호의 선장>, <249호 경매 품목>이 함께 실려있어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예상대로였어요. 지금 읽기에는 모두 낡아버린 소재와 전개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재미와 현재의 가치만 따지면 별점은 2점입니다.

물론 코난 도일 경을 경애하고 있으며 고전 추리문학 애호가이기도 한 저같은 사람에게는 소장할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며 출간된 것 만으로도 반가운 일이죠. 앞으로도 북 스피어와 임프린트 에스프레소 노벨라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J. 하버쿡 젭슨의 진술>
선박 관련 사건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메리 셀레스트호 사건"을 픽션으로 재구성한 작품. 작품에서는 "마리설레스트호"라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J 하버쿡 젭슨이라는 꽤나 그럴듯한 이력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가 마리설레스트호의 유일한 생존자이며 죽기전 진상을 고백한다는 설정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긴 하나 내용만 놓고보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배에 남겨진 모든 것들이 너무나 평온했다는 사건에 비해 작품 속 진상은 거의 선상 반란에 가까운 것이라 굉장히 억지스럽거든요.

그러나 디테일한 설정에서 볼만한 것이 많아요. 코난 도일이라는 작가의 시작점인 작품답게 말이죠. 처음 하퍼쿡 젠슨이 흑인 노예에게서 받은 운석이 재료인 사람 귀 모양의 조각이 있는 기묘한 돌에 대한 묘사와 이 돌이 그의 목숨을 구해주게 된다는 설정도 괜찮았지만 무엇보다도 사건의 흑막인 혼혈아 고링 캐릭터가 아주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첫 등장부터 손가락이 없는 손이라는 묘사를 통해 오싹함을 전해주고 이후 사건을 저지르게 된 계기인 복수와 흑인들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이상도 아주 와 닿더군요. 전형적인 백인의 사고방식으로 악의 화신으로 매도하고는 있지만 충분히 일국을 이끌만한 영웅임에는 분명하겠죠.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실제로 관계된 사람이 많은 작품을 이렇게 가상의 픽션으로 다루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역시나 빅토리아 시대인 덕일까요? 지금 시점에 "천안함 제대병이 이야기하는 천안함의 진상!" 뭐 이런 제목으로 UFO가 나타나 배를 파괴했다는 소설을 쓰면 잡혀가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가죽 깔대기>
거대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깔대기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작품. "기묘한 맛" 류의 작품입니다. 브랑빌리에 후작부인을 등장시킨 역사 추리물스러운 분위기가 괜찮았어요.

그러나 역시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았습니다... 예를 들면 깔대기 주둥이에 있는 이상한 자국의 정체는 쉽게 눈치챌 수 있었거든요. 또 강력한 염원이 있다면 그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다는 잔류사념 아이디어는 시대를 고려하자면 대단한 발상이기는 하나 허황되고 장황한 설정으로 너무 길게 끈 감이 있어요. 특히나 깔대기의 정체가 드러난 이후에도 너무 길게 끌고간거 아닌가 싶네요.

결론적으로는 평작. 거장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한데 시대를 초월하지는 못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경매품 249호>
동양 사상에 정통한 음침한 친구가 구입한 경매품 249호 미이라. 그 친구의 원수에게 기묘한 습격이 일어나고 같은 건물에 살던 스미스 등은 그 친구의 방에 또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분량은 가장 길긴한데 그러한 분량을 갖출 필요가 있었을지 의심스러웠던 작품. 누가 봐도 미이라를 조종해서 음모를 꾸민 것이라는 것이 명확한데 이것을 대단한 서스펜스마냥 길게 끌고나가는 순진함이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뭐 이건 작품의 문제라기 보다는 시대의 문제겠지만요.

그래도 긴 분량에 걸맞게 도드라지는 영국스러운 디테일은 그런대로 볼만하기는 했습니다. 보트대회라던가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 말이죠. 특히나 흑막 벨링엄을 찾아가 정중하게 협박하여 미이라를 비롯한 모든 관련 물품을 불태운다는 결말이야말로 굉장히 영국적인 결말이었다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시대착오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북극성호의 선장>
포경선 북극성호가 빙원에 고립된 후 유령과 조우하여 벌어진 기묘한 사건을 그린 작품.
다른 선원들의 목격담이나 동요도 있지만 주로 선장에게 일어난 변화 중심으로 서술된 작품. 지금 읽기에는 일종의 순애보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고유성 화백의 대표작인 <복제인간>도 연상되고 말이죠.

허나 선장의 심리묘사 외에는 내용이 별다른게 없고 딱히 재미나 가치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솔직히 마이클 더다가 왜 그리 극찬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4/04/04

마법사의 딸 1~8 - 나스 유키에 : 별점 2.5점

마법사의 딸 8 - 6점 나스 유키에 지음/대원씨아이(만화)

스노츠키 하츠네는 평범한 여고생이지만 그녀의 아버지 스노즈키 무잔은 일본 최고의 음양사로 하츠네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가지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기숙사 무대 러브코미디의 금자탑 <여기는 그린우드>의 작가 나스 유키에의 근작. 
분위기 자체는 <백귀야행>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실력있는 음양사라는 점에서 이이지마 료 - 스노즈키 무잔은 겹치고, 영감은 있지만 딱히 대단한 능력은 없으며 음양사가 되는 것도 싫어하는 주인공 리쓰와 하츠네의 설정도 유사합니다. 강력한 식신 아오아라시와 고야타는 완전 판박이고요.

그러나 단순한 아류작으로 평가절하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작가 특유의 코미디 터치에 더해 중반까지는 무잔과 고야타, 그 이후는 무잔과 하츠네의 친아버지 무죠가 얽힌 과거사를 중심 축으로 긴 호흡의 시리어스한 이야기를 잘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잔과 사제 무이라던가 제자 효우고와 같은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화려한 영력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차별화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또 완전 천연이지만 음양사 일에 있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잔, 그리고 무잔 사부의 제자인 자동 영 청소기(?) Jr 캐릭터는 이렇게 소비되는게 아깝다 싶을 정도로 괜찮은 캐릭터였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개인적으로는 긴 호흡의 이야기보다는 별다른 영력은 등장하지 않는 일상계스러운 단편 에피소드가 훨씬 마음에 들더군요. 예를 들어 제가 가장 마음에 든 에피소드는 4권의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삼신할매 에피소드와 5권의 사라진 며느리와 화분에 얽힌 에피소드였어요.
삼신할매 에피소드에서는 삼신할매에게 쫓기던 애엄마가 공포에 사로잡히지만, 삼신할매가 사실은 자기가 아니라 앞에 있던 딸을 노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순간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고 자각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 후에도 별로 바뀐건 없더라...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고요.
화분 에피소드는 도난당한 화분에서 서스펜스 호러물로 이어지는 전개와 결말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수년전 사라져버렸다는 며느리가 사실은 집 앞에 내어놓은 화분들에 나누어져 담겨있었다는 진상은 정말이지 최고였어요. 이 정도면 가장 좋은 <백귀야행> 에피소드에 근접하는 수준이죠. 문제는 상류와 끊어진 하천의 지박령(맞나?)과 얽힌 에피소드가 왜 끼어들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인데 뭐 소소하니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단편 옴니버스물로 가져갔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장편을 염두에 둔 무리수를 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하츠네와 효우코의 커플링이라는 결말도 너무 급작스럽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후속작도 있는 듯 한데 부디 일상계스러운 단편 옴니버스물로 전개되기를 바랍니다. 뭐 효우고와 엮인 시점에서 그렇게 되는건 불가능하겠습니다만...

2014/04/02

교보문고, 궁극의 리스트전

교보문고에서 진행하는 50% 할인 이벤트입니다. 지난주에 마감했는줄 알았는데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한주 더 한다고 하네요.

알라딘 애용자이기는 하지만 이런 기회는 놓치기 힘들기에 저도 몇권 구입했습니다. 제가 구입한 책은 존 키건의 <1차세계대전사>, <2차세계대전사>와 이에인 딕키의 <해전의 모든 것>... 그런데 <세계대전사>는 지금은 판매 완료되었네요.

충동구매이기도 하고 도착한 책을 보니 기대와 약간 다르기는 했지만 워낙에 저렴하게 구입했기에 후회가 되지는 않는군요. 독서를 좋아하신다면 한번쯤 들려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책 관련 이야기니 도서 밸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