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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1

파계 재판 - 다카기 아키미쓰 / 김선영 : 별점 3점

파계 재판 - 6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하기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과거 신극배우였던 무라타는 내연녀와 그의 남편을 살해한 뒤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법정에 선다. 그는 남편을 살해한 내연녀 야스코를 위해 시체 유기를 도왔다는 혐의는 인정하나 나머지 혐의는 모두 부인한다.
그의 유죄를 확신한 검사는 그의 과거사부터 들춰내나 변호사 햐쿠타니 센이치로의 활약으로 서서히 흐름이 바뀌고 무라타의 비밀까지 밝혀지는데...

일본 추리작가 다카기 아키미쓰의 대표작 중 하나. 무고한 누명을 뒤집어 쓴 피고인 무라타 가즈히코의 누명을 벗기고 진범을 밝혀내는 햐쿠타니 센이치로 변호사의 활약이 그려지는 법정 미스터리로 이전 가미즈 교스케 단편을 확장한 것이라고 작가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 작품입니다. 도서출판 검은숲에서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두번째로 출간하였는데 (첫번째는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국내 정식 출간된 것 만으로도 감개무량하네요. 작가의 팬을 자부하며 정식 출간작들은 물론 과거 절판본까지 수집하고 있는 저로서는 당연히 구입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하고요.

읽고 난 감상 중, 좋았던 것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두건의 살인사건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울뿐 아니라 도저히 무라타가 빠져나갈 수 없는 지경까지 몰고가다가 한번에 터트리는 진범의 정체 및 그 진상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또한 다카기 아키미쓰 스스로 이 작품 저술을 위해 사법고시 응시 수준으로 연구했다는 것이 허언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법정과 재판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고 증인이 한명씩 등장하여 그의 증언을 놓고 벌이는 검사와 변호사의 대결도 긴박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단순한 법정극 이상의 가치 역시 큽니다. 피고인이 부락민 출신이라 평생 차별때문에 괴로워했다는 것을 밝혀내어 차별이라는 것에 준엄하게 고발하는 사회파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목부터가 부락민 차별이 묘사된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라는 작품에서 따왔다고 하네요. 부제도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니... 여튼, 이 차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전개와 묘사도 무척이나 돋보였습니다. 검사가 무라타의 범죄성향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하는 과거의 사건들이 모두 차별에서 비롯되었음이 밝혀지는 식이거든요. 과거 극단에서의 횡령사건은 그의 출생에 대해 동료뱨우가 협박했기 때문, 사실혼 관계이던 동거녀가 그를 떠나 아이까지 지운 것 역시 출신성분에 대해 알아버린 것 때문인 등이죠. 특히나 동거녀에 대한 내용은 법정에서 그와 결혼하겠다고 증언하던 동거녀에게 "내 돈때문이지!"라고 일갈하는 무라타의 모습이 겹쳐져 더 충격적이었어요.

전개방식도 무척 특이한데 그야말로 법정에서만 모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화자인 요네다가 도요신문의 법정출입기자로 재판 과정을 가감없이 거의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쓰여졌는데 보통 이런 류의 작품에서 있음직한 별도의 취재활동도 일체없다는 것이 특이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엽기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전작에서 보아왔던 약간은 변격물스럽던 묘사도 전혀 없는 굉장히 깔끔하고 날이 선듯한 느낌을 전해주고요.

그러나 단점도 존재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법정에서의 깜짝쇼말고는 추리적으로 특출난 점은 없다는 점이죠. 독자에게 모든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은 탓이 큰데 이는 앞서 이야기했듯 화자 요네다가 법정에서 보고 들은 정보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법정 미스터리의 특성상 상대방이 쥐고있는 패를 미리 알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리고 이렇게 불공정하게 제공되는 정보도 작위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쉽더군요. 혈액형에 대한 증언이 위증으로 걸린 것이 대표적입니다. 쓰가와가 혈액형에 대해 정직하게 이야기했더라면 굉장히 애매했을텐데 말이죠.
또 사라진 천만엔의 행방 같은 점은 검사나 경찰도 신경썼어야 하는 부분인데 너무 간과한 점이 아닌가 싶어요. 60년대 초반 작품이니 현재 화폐대비 1/50 정도만 쳐도 현재 가치로 5억엔이나 되는 막대한 돈이고 출처만 잘 밝혀내면 진범이 누구인지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을텐데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쓰가와 히로모토와 야스코의 관계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에다가 쓰가와가 어떻게 야스코의 시체를 유기했는지가 나오지 않은 것도 조금은 실망스러워요. 첫 유기 시 무라타가 개입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자가용의 존재 때문이었는데 두번째 범행에서는 바로 자가용을 준비했던 것일까요? 또 진범이 따로 있다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이 작품은 "파계 재판", 즉 무라타 재판으로만 완결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요네다라는 화자가 있는 만큼 쓰가와 재판의 결과 등 에필로그도 확실하게 짚어주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아울러 과거의 협박범인 배우 이토 교지, 피고인의 애인이라는 추문이 있다는 여배우 호시 아키코는 단순한 미스디렉션으로 사용되기에는 비중이 좀 과한거 아닌가 싶었고요.

그리고 햐쿠타니 변호사가 무라타의 무죄를 확신하고 자비까지 들여가며 사건을 파헤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도 의아했어요. 누가 봐도 드러난 증거와 정황 모두 무라타가 범인임을 알려주는데 말이죠. 이 부분은 책에 실린 햐쿠타니 변호사의 단편을 보건데 이후 시리즈화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나 결국 작가의 법정 미스터리는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 시리즈로 이어진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듯 하기도 합니다. 의뢰인의 말을 믿어야 하는 변호사보다는 사건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검사가 탐정역으로는 더 낫겠다 판단했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이만한 극적 긴장감에 더해 사회파적 속성까지 잘 녹여내었다는 점에서는 역시나 거장의 작품이구나 싶더군요. 이 작품을 쓰기위해 사법고시 수준의 공부를 했다는 열의에는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요. 몇몇 단점은 있지만 전체의 완성도를 해칠만한 수준은 아니며 재미와 의미를 함께 갖춘 좋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 : 책의 디자인은 나쁘지 않으나 표지 일러스트 탓에 책 하단에 오물이 묻은 것처럼 보입니다. 구입 당시에는 띠지로 가려져 있기는 한데... 이런 디테일을 좀 꼼꼼히 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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