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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조선의 명탐정들 - 정명섭 / 최혁곤 : 별점 2점

조선의 명탐정들 - 4점
정명섭.최혁곤 지음/황금가지

조선시대 사료를 바탕으로 실재했던 사건 해결 사례를 모아놓은 책. 논픽션 역사추리물이라고나 할까요? 추리작가 정명섭, 최혁곤씨 공저로 모두 13편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앉아서 수수께끼를 풀다 - 세종대왕
2. 권력의 중심에 칼을 겨누다 - 이휘
3. 법 위의 권력을 처단하다 - 박처륜
4. 악녀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다 - 이의형
5. 천재적 두뇌를 가진 타락한 탐정 - 연산군
6. 부인과 아들, 살인자는 누구인가? - 황헌
7. 어머니의 누명을 벗기다 - 이순
8. 부당한 수사에 맞선 용감한 선비들 - 이유달, 이민구, 목서흠
9. 방방곡곡을 떠돌며 캐낸 숨은 진실 - 심염조
10. 조선 최고의 명탐정 - 정약용
11. 한 치의 의심도 없게 하라 - 정조
12. 심리수사 기법으로 범인을 찾다 - 이름 모를 서흥 부사
13. 조선 투캅스 - 좌포청 군관 이종원, 우포청 군관 육중창


13편이나 되는 이야기가 실려있기 때문에 분량만 놓고 본다면 꽤나 풍성하죠. 그러나 해결이 어려웠던 이유는 단지 조선시대였기 때문인 사건 등 지금 보기에는 추리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내용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아울러 검시과정은 디테일하기는 하나 매번 유사하게 반복되게 지루하기도 하고 수사과정은 "국문"이라고 불리우는 고문에 의존하고 있어서 이게 정말 진상을 밝힌 것인지, 고문으로 또다른 피해자를 만든 것에 불과한지 판단하기도 어렵더라고요.
그나마 추리적으로 기대에 값했던 내용은 세편 정도에 불과해요.

그 중 첫번째는 <권력의 중심에 칼을 겨누다 - 이휘> 입니다. 사건 현장에 종이가 발라진 벽에서 혈흔을 체취하고, 벽과 기둥에 묻은 혈흔을 보고 바닥에도 흘렀을 것이라 추리하여 증거를 보강하고, 시신에 난 상처 (창대에 눌린 것 처럼 원형)를 통해 철창이 흉기임을 떠올리는 일련의 과정의 디테일이 대단했기 때문이에요. 동기를 밝혀내는 과정도 그럴듯했고요. 무엇보다 결말에서 세조의 최측근이자 공신인 민발이 범인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자 이휘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사육신에 가담하게 된다는 후일담까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두번째는 <악녀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다 - 이의형> 입니다. 피해자가 조선 역사에 길이 남을 악녀 중의 하나이자 어우동의 어머니인 "귀덕"이라는것 부터 흥미로운데 범인이 어머니의 패악을 못견뎌했던 아들이라는 것이 충격적이더군요. 형벌은 능지처참이었다니... 죽을 죄이기는 하나 귀덕의 행실을 보자면 참작의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닐텐데 유교국가인지라 최고형이 선고된 듯 합니다.
마지막은 <천재적 두뇌를 가진 타락한 탐정 - 연산군>의 유인홍의 첩이 남자 종과 간통을 하다가 딸에게 발각되어 딸을 찔러 죽였다는 사건입니다. 유인홍은 딸은 자살이고 첩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새 옷에 피가 묻는 것을 피하려고 헌 옷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목을 찔렀다는 내용에 주목하여 자살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연산군이 알아내게 되죠. 결국 유인홍이 첩 무적과 언문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수사과정에서 밝혀져 편지가 압수된 뒤 유인홍이 모든 증언을 조작, 조종하였다는 것, 그리고 첩이 간통이 드러나 딸을 죽인 것이 사실이라는 진상이 밝혀지게 됩니다.
내용은 평이하지만 첩과 본처 소생 딸과의 갈등이라는 고전적 주제에 더해 피해자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간파하게 되는 장면만큼은 추리소설같은 재미를 전해주기에 마음에 들었어요. 참고로 정조편의 소박맞은 여동생을 살해한 오빠 사건 역시 동일한 발상으로 전개됩니다. 여동생이 자살할 결심을 했다면 돈과 베가 든 보자기를 가져갔을리 없다는 논리로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내용이거든요.

그러나 나머지 이야기들은 딱히 큰 재미가 있거나 자료적 가치가 있어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자료적 가치라면 <원통함을 없게하라>와 같은 <신주무원록> 번역서가 더 낫겠죠. 얼마전 EBS에서 관련 다큐가 방영되기도 했고 말이죠.
아울러 책의 구성이 영 별로더군요. 본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짤막하게 소설 형식으로 시작한 뒤 디테일한 내용을 기사처럼 쓰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이러한 방식은 다큐멘터리의 "재연화면"을 연상케하여 논픽션을 흥미롭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왜 똑같은 이야기를 두번 반복해서 분량을 늘리고 읽는 노력을 낭비하게 만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적인 형식으로 쓰여졌다고 더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중요한 이야기는 본편의 논픽션 부분에서 모두 소개되는데 말이죠.
게다가 최악은 각 이야기 후에 이 사건의 탐정역인 인물과 유사하다는 해외 명탐정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조선의 명탐정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는 독자들이 당연히 해외 명탐정에 대해 관심이 있으리라 예상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이래서야 유명한 파스타집에 갔더니 반찬으로 김치가 나오는 것과 다를바 없죠. 아무리 쉐프의 의도가 있다곤 하더라도 일반 손님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또 명탐정들을 본편 내용과 억지로 연관시키려는 시도 역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예를 들면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범인을 잡아낸 탐정이 벤자민 위버라는 식인데 세상에 그렇지 않은 탐정이 있나요?  소개도 프로필 소개 정도에 불과해서 그닥 자료적인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욕심이 지나쳤어요...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이 책이 무언가의 시작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재미, 자료적 가치 모두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좋은 디자인과 일러스트가 낭비된 느낌인데 차라리 신주무원록을 재미있게 소개해주는 식으로 논픽션 부분만 강화해서 책을 냈다면 더 나았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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