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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9

고양이 눈으로 산책 - 아사오 하루밍 / 이수미 : 별점 2점

고양이 눈으로 산책 - 4점
아사오 하루밍 지음, 이수미 옮김/북노마드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아사오 하루밍에세이집. 이전작 <3시의 나>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기에 주저않고 집어들었습니다.
아사오 하루밍이 동갑내기 친구 치카코 씨와 함께, 혹은 혼자서 도쿄 이곳저곳을 산책한 내용을 특유의 편안한 문체로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아사오 하루밍 마음 속에 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설정이 있어서 붙여진 듯 싶네요.

당연히 핵심 재미 요소는 산책 중 에피소드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야마테 거리 골목에서 만난 노부부와 그들이 키우는 고양이에 대해 잡담을 나누는데, 할아버지는 고양이 이름이 다리가 마비된채 태어나 이름이 '마히(痲痺)'다 라고 하고, 할머니는 주운날 날씨가 좋아서 '마히 (眞日)' 이라고 한다는 식이에요. 별거 아니고 소소하지만 따뜻하고 진솔함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접한 책 중 디자인, 장정이 가장 마음에 든 책이기도 합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의 책인 덕분이겠죠? 수록 일러스트들도 여전히 따뜻하고 매력적이고요.

허나 전작과 비교하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최소한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산책> 정도는 기대했는데 말이죠.
독특한 발상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에요. 방문한 곳에 대한 설명과 소개, 그곳에서 일어난 에피소드가 중심이라 작가 특유의 기묘하고 기발한 발상이 등장할 여지가 별로 없거든요. 한마디로 일러스트를 뺀다면 그냥 평범한 도쿄 산책글들일 뿐이에요. 아사오 하루밍 마음 속 고양이 시점의 글들도 별다를게 없으며 글에 잘 녹아든 것 같지도 않았고요. 솔직히 이 부분은 애묘인들에게 팔아먹기 위한 억지설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울러 친숙하지 않은 장소에 소재들 역시 지극히 일본적이라 - 예를 들자면 요코하마 산책을 이야기하며 후지 다쓰야 주연의 드라마 <프로헌터>를 언급한다던가, 애니메이션 <자린코 치에>를 언급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별로 와 닿지도 않았다는 것도 단점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분량에 비하면 가격도 비싼 편이라 감점합니다. 애묘인이라면 솔깃할만한 부분이 약간 있겠지만 제게는 별로였어요. 독특한 발상의 조금은 엉뚱한 산보 에세이 중에서는 아직도 <동경산책>이 최고인 듯 싶습니다.

덧붙이자면, 고양이를 사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점에서 스노우캣과 판박이인데 고양이 관련 이야기는 스노우캣 쪽이 훨씬 좋은 듯 싶네요. 정서적으로 더 가깝기 때문이겠죠?

2016/03/26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 유키 쇼지 / 김선영 : 별점 2.5점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 6점
유키 쇼지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나"는 사이공으로 파견된 니치난 무역 사원이다. 나는 직무와 함께 도쿄 복귀 예정이었던 전임자 가토리의 실종 사건에 대한 진상을 알아낼 의무까지 지니게 된다.
나는 가토리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다는 훈과 임시로 머무는 거처 양양관의 수상쩍은 이웃들인 득, 토 등과 얽히며 복잡한 베트남의 정치적 세력들의 암투가 벌어지는 싸움의 한 복판으로 휘말려 들어가는데....


일본 추리 문학사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스파이 소설의 고전.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에서 무려 19위로 선정되어 있을 정도죠.
작품의 특징이자 매력포인트는 분명합니다. 베트남 전쟁 직전의 남베트남을 무대로 하여 평범한 일본의  파견 주재원인 주인공이 목숨이 위태로운 첩보전의 세계에 휘말려 들어가는 과정을 꽤나 설득력있게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스파이 소설에서 기대해 봄직한 정교한 작전 역시 등장하지 않아요. 주인공은 모리가키의 덫에 걸린 것에 불과하거든요. 우연이기는 하지만 사택을 빠져나와 양양관에 머물게 된 시점부터 말이죠. 주인공이 한 일이라곤 모리가키의 부탁으로 옆방 토에게 서류를 전해준게 전부고요.
물론 주인공이 우편배달부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토리를 찾기 위한 나름의 노력, 행동을 보이는 과정에서 두 세력, 응오딘지엠 응오딘지엠 정부 전복을 노리는 세력과 베트콩 세력 양쪽 모두에게 쫓기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등의 사건이 일어나죠. 제목이기도 한 "고메스의 이름은..." 이라는 말을 살해당한 "초"로부터 들은 이후 숨쉴틈 없이 여러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아울러 베트남 전쟁 직전의 베트남에 대한 묘사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작가 후기에서 밝히듯 당시 베트남을 방문하지 못하고 한정된 자료로 썼다는데 그런 것 치고는 사이공과 여러 유명 장소에 대한 묘사 모두 괜찮았어요. 뭐 저도 가보지도 못하고 당시를 살아보지 못했으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럴듯 하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유명 식당과 클럽, 주인공이 휘말린 양대 조직과 조직원들의 묘사 모두 말이죠.
특히나 잔류 일본군을 소재의 하나로 사용한 것이 아주 괜찮았어요. 고메스를 자칭한 전화를 일본어로 한 이유는 베트남어와 프랑스어로 주인공과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약간의 트릭같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작품과 참 잘 어울렸습니다. 외려 이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에요.

하지만 과연 이게 스파이 소설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주인공은 스파이가 아니고 별다른 작전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스파이의 사전적 의미는 "수단을 써서 적이나 또는 경쟁 상대의 정보를 탐지하여 자기편에 통보하는 사람" 인데 주인공은 그냥 봉투 전해주는 운반책일 뿐입니다. 그것도 끝까지요. 이런 류의 소설에서는 아무리 일반인이라도 결국 특정 조직을 위해 싸워나가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요소는 전혀 등장하지 않아요.
주인공과 가토리를 진짜 스파이 모리가키가 끌어들인 이유 역시 불분명합니다. 몰래 봉투를 전해주기 위한 의도였다면 양양관에 거주하게만 해도 충분했을 거에요. 같은 일본인이라 반가운 마음에 자주 방문한다, 정도의 핑계를 대고 방문한 후 돌아갈때 직접 옆집 문 앞에 봉투를 던져 놓는 정도로도 가능했을 일이니깐요.
한마디로 주인공 입장에서는 모험물이나 재난물(?)일 수는 있지만 스파이 소설로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어요.

게다가 결말이 시시하다는 것도 감점요소입니다. 무엇보다도 고메스가 누구였는지 중요치 않다는건 정말 문제에요. 고메스는 그냥 고메스로 어차피 주인공과는 별 관계없는 베트콩 조직내 암호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이게 뭔가 싶더군요. 최소한 <부머랭 살인사건>에서의 "왜 그들은 에반스를 부르지 않았을까?" 라던가 <39계단>의 "39계단" 정도의 의미와 용도는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 말을 들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사건에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는 식으로요. 허나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수사와 미행을 통해 사건에 개입하고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 말은 하등의 상관이 없어요. 이렇게 소재를 낭비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그나마 조직에서 탈출하는 마지막 장면만큼은 긴박감이 넘치지만 이 역시 모리가키의 변덕에 불과할 뿐더러 운이 많이 좌우하기에 잘 짜여졌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묘사도 매력적이고 내용도 상당히 흥미롭지만 위의 단점도 있기에 감점합니다. 고전으로 일상계 스파이물이라는 독특함은 있지만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슈퍼 스파이들이 난무하는 지금 시점에 먹힐만한 이야기도 아니에요. 딱히 고전을 사랑하는 분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술 한잔 인생 한입 26 e-book 출간

 


[고화질] 술 한잔 인생 한입 26 - 6점
라즈웰 호소키 지음, 문기업 옮김/에이케이(AK)

<술 한잔 인생 한입> e-book 1~25

얼마전 위의 글을 올렸는데, 올리자마자 e-book으로 26권이 출간되었네요. 종이책이 출간되고 3개월만에!
반가운 마음에 바로 구입하였습니다. 당연히 재미있게 읽었고요.

그럴리는 없겠지만, AK 관계자님께서 혹시 제 블로그 글을 읽으신다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27권도 늦기 전에 꼭 출간해 주시길. 현기증난단 말이에요~

2016/03/24

안녕 요정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점

안녕 요정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인 모리야 미치유키, 다치아라이 마치 (센도), 시라카와 이즈루, 후미하라 다케히코 4명이 유고슬라비아에서 유학온 여학생 마야와 만나 그녀가 떠날때까지 2개월간 함께 자잘한 일들을 경험한다.
2개월 후 유고슬라비아에 전쟁이 일어나고, 모두 걱정하지만 마야는 기어이 귀국한다. 편지하겠다는 약속을 남긴채. 허나 편지는 오지 않고, 남은 친구들은 그녀가 유고슬라비아 연방국 중 어디에 머무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힘을 모으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의 신작. 긴 호흡의 하나의 이야기 속에 몇가지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는 구성의 장편입니다.
이상하게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은 놓치지 않고 찾아 읽게 되네요. 작품들이 대체로 평균 이상의 재미를 선사할 뿐더러 추리적인 면에서 합격점을 줄만하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상계 쪽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내 놓기도 했고 말이죠.

이 작품 역시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그것도 전형적 일상계로 본다면 왕도라고 할 수 있는 구성이에요. 정말로 있을법한 소소한 에피소드를 추리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라면 이즈루의 이름 유래를 알아내는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진위 여부를 알 수 없고, 너무 소소해서 추리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의 이야기도 있다는 것입니다. 허나 지방 소도시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뭐 그리 대단한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이 정도가 딱이겠죠. 외려 이러한 소소한 이야기를 추리 소설로 만드는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해드리자면,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것은 첫 만남에서 마야가 이야기한 "일본인은 비에 익숙해서인지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펴지않고 잡고 뛰어간 남자" 사건입니다. 모리야는 '우산은 고장난 것으로 남자는 불에 타지 않는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달려나간 것'이라고 추리하죠.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경성탐정록>의 <소나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뭐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의 이야기였다 생각되네요.

두번째는 마야가 신사 근처 구 시가지에서 들은 젊은 2인조가 남긴 수수께끼의 대사 "죽을 것 같으니 신사에 가자. 곤란하다. 떡을 만들어 간다 어쩌구"의 의미를 풀어내는 이야기. 모리야의 추리는 2인조의 정체가 끈끈이로 새전함을 털려는 도둑들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식 대화를 가지고 풀어낸 것이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운데 번역이 아쉽더군요. 일본어의 뉘앙스를 살리기는 힘들었겠지만 우리 식으로 "먹고 죽을래야 먹을 것도 없고, 끈끈한 떡이나 준비해야지" 정도로 풀어낼 수는 있었을텐데 말이죠.

세번째는 묘지 앞 공물이 홍백 만주와 붉은 샐비어라는 기이한 물건인 이유를 밝혀내는 이야기로 진상은 그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경사였다는 것입니다. 일상계의 왕도와 같은 적절한 이야기였어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떡은 홍백인데 꽃은 붉은 것 밖에 없다는 상황을 통해 추가적인 이야깃거리를 뽑아내는 것이 괜찮았고요. 개인적으로 추리로만 따지면 이 작품 속 베스트 에피소드라 생각됩니다.

네번째는 마야 이별 파티에서 시라카와의 이름인 "이즈루"의 이름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 그런데 재미 여부를 떠나 일본인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 별로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야와의 짧았던 추억담 이후 현 시점에서 모리야가 그동안 제공된 정보를 종합하여 결국 마야가 유고슬라비아 연방국 중 어디로 돌아갔는지를 알아내는 것으로 작품 속 추리는 마무리됩니다. 정교하기는 하지만 작품 내에서 전체적으로 흩뿌려진 단서를 모아 결론을 내는 것으로 추리라고 하기는 조금 어렵지 않나 싶었어요.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에 가까웠달까요?

이렇듯 소소한 이야기에 소소한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으로 심심하다 여겨질 수 있긴 하나 제가 워낙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기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작가의 다른 유사 시리즈와 비교해 본다면 뚜렷한 차별화 요소나 매력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네요.
물론 "고전부 시리즈"나 "소시민 시리즈"와 명확한 차이가 있긴 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들이 다른 두 시리즈와 정 반대라는 것이죠. 모리야는 다른 두 시리즈와는 다르게 본인의 에너지를 투자하여 결과를 이끌어내는 캐릭터입니다. 처음 본 마야를 도와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학교에서의 궁도부 활동, 마야와 함께 하는 시간들, 거기에 본인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도서관에 없는 책을 구입하여 공부하는 열의까지 모든 면에서 그러해요. 또 다른 주역 센도는 굉장히 차갑고 냉정한, 일종의 "쿨-뷰티"로 성숙한 학급 위원장 느낌이고요.
하지만 "고전부 시리즈"와 :소시민 시리즈"는 의욕없는 무채색 주인공들이 매력 포인트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차이점에 점수를 주기는 어려워요. 모리야는 너무 뻔한 캐릭터라 매력 포인트를 찾기 힘들거든요. 센도 역시 다른 캐릭터들이 수도 없이 연상될만큼 스테레오 타입이었다 생각되고요.
마야 역시 외국에서 왔다는 것을 제외하면  고전부 시리즈의 지탄다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고 수시로 메모장을 꺼내어 메모한다는 모습은 "신경쓰여요~" 와 별다를게 없어요.

또 비교적 무거운 내용 역시 이전 두 시리즈와는 다르기는 하나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냥 일상 속 청춘물과 달리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위해 아낌없이 배우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려는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힘들거든요. 다치아라이를 통해 밝혀지는 진상, 즉 마야는 이미 죽었다는 것은 충격적이지만 허무할 뿐이고요. 청춘의 노력은 무익할 뿐이라는 허망함을 전해주려는 의도였을까요? 도무지 모르겠네요. 아울러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를 작품 속에 녹이기 위해 1992년을 그리는데, 1992년에 대학교 1학년이라면 저와 동갑이라 동질감은 느껴지긴 합니다만, 나이와 시점 모두 작품과는 별 관계가 없으며, 딱히 1992년일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역시나 불필요한 설정이었다 생각됩니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된 주인공들을 통해 성장기 느낌을 주려는 의도였다면 이 역시 뭔가 어설퍼요. 모리야가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유고슬라비아로 가고자 했던 것은  젊은 치기에 가깝고, 대학생이 된 후 다시 가려고 하는 것은 오기에 불과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제가 좋아하는 일상계 추리물이기는 합니다만 추리의 밀도가 낮고 캐릭터의 매력도 떨어지며 드라마도 재미없기에 감점합니다.
유고슬라비아 이야기에 신경을 쏟지 말고 그냥 고전부 시리즈의 에피소드로 써 먹는게 나았을 것 같은데 왜 별도의 이야기를 파생시켰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네요.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가 유고슬라비아 홍보대사 쯤으로 임명된 뒤 쓴 작품이 아닐까 추측할 뿐입니다...

2016/03/22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 다니 미즈에 / 김해용 : 별점 1점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 2점
다니 미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예담

니시나 아카리는 헤어 디자이너로 연인과 헤어진 뒤, 어렸을 때 잠시 머물던 "헤어살롱 유이" 건물을 임대하여 살게 된다.
쇠락해가는 상점가지만 상점가 회장이자 시계방 주인인 슈, 근처 쓰쿠모 신사 식구인 다이치와 친해지며 아카리는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되는데....


"추억이 필요한 건 살아 있는 인간 뿐이잖아?" - 다이치. 젊은 아가씨가 유령이 아닐까 의심한 아카리의 말을 반박하며 하는 말.

좋은 리뷰로 존경해 마지 않는 LionHeart님의 리뷰를 통해 알게 된 작품입니다. LionHeart님의 평도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서 읽게 되었네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책의 완성도를 떠나 "미스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책 뒷 표지에 "청춘 연애 미스터리"라고 소개되고 있으며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도서 분류도 추리 / 미스터리 장르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절대, 절대로! 아닙니다. 이건 그냥 청춘 연애물이에요! 수록된 5편의 단편 중 추리물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첫번째 <사건 1 낡은 오르골의 주인>에 불과해요. 그나마도 완전치 않고요.
게다가 수록작 대부분이 약간의 판타지스러운 설정과 묘사를 통해 일상 속의 소박한 기적을 그리는 것 역시 너무나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사건 1 낡은 오르골의 주인>은 다이치가 신사에서 주워온 오르골 속 사진에 대한 수수께끼 (?)를 풀어내는 내용입니다. 사진을 찍어 준 사진사와 사진을 찍은 장소 (옆 동네 사진관)을 연결시켜 숨겨진 진상을 추리하는 것 자체는 괜찮아요.
하지만 진상의 진위유무는 결국 밝혀지지 않는 슈의 추리일 뿐이에요. 이건 물론 일상계 작품 대부분이 지닌 문제이긴 합니다만... 오래된 "고양이"에 대한 설정은 불필요했다 생각됩니다. 현실적이지도 않았고요.
이러한 이유로 그나마 수록작 중 가장 추리물에 가깝긴 하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건 2 못 다한 고백, 오렌지색 원피스의 비밀>은 상점가를 떠나게 된 양잠점 주인 하루에씨의 부탁으로 아카리는 오렌지색 드레스를 입고 엔니치날 (신사 제사) 슈와 데이트를 한다는 내용입니다. 수십년전 하루에씨가 마음에 두고 있던 남자와 엔니치날 시간을 함께 하다가 사소한 이유로 틀어진 뒤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 과거에 대한 미련 때문이죠.
아카리와 슈 커플이 어쨌건 당시 남자의 마음을 알아내어 하루에씨에게 전해주게 된다는 훈훈한 결말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수십년의 시간을 초월하여 받지 못한 남자의 마음을 받는다는 애틋함이 잘 전해졌거든요.
하지만 언제든 드레스 주머니만 뒤져보았어도 쉽게 끝났을 내용이라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카리와 슈와의 인연을 만들기 위한 이벤트용 이야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사건 3. 행방불명 모녀와 아기 돼지 인형>은 15년 전 딸이 행방불명 되었다는 중년 부인, 그리고 기묘한 복장의 20대 여성이 오래 전 유행했던 아기 돼지 인형을 찾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중년 부인과 20대 여성이 모녀 지간일 것이라는 것 정도만이 수수께끼랄까요? 하지만 중년 부인이 유령인지 아닌지를 애매하게 처리한 이유는 이해 불가네요.
아울러 아카리는 인형만 찾아서 주면 끝나는 일이고, 나머지 사정은 둘이 만나서 이야기하도록 하면 되는 것으로 이야기 자체가 쓸데없는 오지랖의 발로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사건 4. 슈지 이야기 : 빛을 잃은 시계사>에서는 슈의 옛 연인이라는 마유코가 찾아오고, 그녀를 통해 아카리는 슈와 형, 그리고 마유코에 얽힌 오래전 사건에 대해 알게된다는 내용으로 마침내 슈가 고백을 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슈가 헤어살롱 유이의 손녀 시계를 고쳐준 것을 계기로 시계사를 꿈꾸게 되었다는 과거사와 함께요.
약간 드라마틱한 과거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추리물이 아니기에 점수를 줄만한 부분이 없었습니다. 별점은 1점.


<사건 5 아카리 이야기 : 그해 봄의 비밀>은 전편과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아카리가 자신이 헤어살롱 유이의 친손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슈를 밀쳐내지만, 마지막에 유이 할머니의 등장으로 진상을 알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두 연인이 사귀게 되는 것으로 끝나게 되죠.
아무리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이렇게까지 과거를 잊어버린다는게 말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드라마를 부여하려 무리수를 둔 느낌이에요. 죽은 줄 알았던 유이 할머니의 깜짝 등장 역시 공정하지 못한 깜짝쇼로 보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전체 별점은 평균 1.3점으로 1점 되겠습니다. 참고로, 작품이 그 정도까지 막장은 아니지만 별점이 쓰레기급인 이유는 추리물이라고 홍보한 괘씸한 마케팅 탓이 더  큽니다. 그냥 연애물로 포장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구태여 추리물이라고 해서 저에게 시간낭비를 하게 만든 탓이에요. 추리물 애호가라면 쳐다 보시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Lionheart님 말대로 1권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데 후속권이 계속 나온 이유는 잘 모르겠군요. 당연히 저는 읽어볼 생각이 없긴 합니다만.

2016/03/19

실종 일기 2 - 아즈마 히데오 / 오주원 : 별점 3점

실종 일기 2 - 6점
아즈마 히데오 지음, 오주원 옮김/세미콜론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가 극도의 알코올 중독에 빠져 아내와 자식들에 의해 1998년 12월26일, 모 병원 정신과 모 병동에 입원한 뒤 1기, 2기, 3기로 구분된 약 3개월간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내용입니다. 

1기는 거의 독방 생활이기에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는 2기부터 퇴원까지의 2개월 간 이야기가 이야기의 핵심으로 당연히 병원 생활과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한 프로그램이 상하게 묘사되는데 재미가 상당합니다. 전작 <실종일기>처럼 나름의 개그 센스로 승화시켜 표현해 주기 때문이죠. 여러번의 자살 시도와 음주 및 이후 금단 증상과 후유증 모두 본인에게는 굉장히 힘든 경험일텐데도 말이죠.
더운 여름날 술을 먹고 토하고, 시원한 카페에 들어가서 아이스커피를 먹다가 토하고, 추워서 나온 다음에 또 토하고.... 했다는 알콜 중독 후유증 관련 경험담은 제가 겪었던 지독한 숙취와 다르지 않아 굉장히 와 닿기도 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주는 에피소드들도 인상적이었고요.
또한 매튜 스커더가 떠오르는 금주회 모임 에피소드들도 재미나며,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병동 동료들 역시 독특한 등 세세한 볼거리들이 아주 많았어요.

그리고 컷 하나하나를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모든 컷에 배경을 배치하는 식으로 굉장히 꼼꼼하게, 자세하게 묘사하는 화풍도 독특합니다. 스크린톤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선으로만 승부하는, 오래전 데즈카, 이시노모리 선생님이 생각나는 그림인데 저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뒷부분에 수록된 도리 미키와의 대담에서 이야기된 것 처럼 단순화된 선으로 다양한 등장인물을 구분할 수 있게 만든 캐릭터 조형 능력도 발군이고요. 이 작품에서는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가장 귀여운 여자아이를 그리는 만화가"라는 칭호에 걸맞는 모습도 엿보입니다. 이런걸 보면 확실히 옛날 만화가들이 제 취향에 맞는 것 같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빵빵 터지는 이야기는 아니고 화풍도 고전적이라 굉장히 취향을 탈 것 같기는 한데 제게는 취향이었습니다.
취향이 아니라면 여러모로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인 점 참고바랍니다. 

2016/03/17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 도로시 길먼 / 송섬별 : 별점 2.5점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 6점
도로시 길먼 지음, 송섬별 옮김/북로드

평범한 노부인 폴리팩스 부인은 뻔하고 지루한 삶으로 자살 충동까지 느끼자 어린 시절 꿈이었던 스파이가 되기 위해 워싱턴의 CIA를 방문한다. 한편 중요한 작전 때문에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은 요원을 찾던 카스테어스가 마침 부인을 만나고, 그녀를 작전에 투입하게 되는데....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건 없지. - 폴리팩스 부인. 18페이지.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스파이가 되기를 결심하며

400여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하지만 내용이 그렇게 중요한 작품은 아닙니다. 작품을 지배하는 핵심 재미 요소가 바로 주인공 폴리팩스 부인이기 때문이죠. 한마디로 말해 캐릭터 중심의 전형적인 슈퍼 히어로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사실 이 작품처럼 '의외의 인물이 오해나 착각으로 스파이로 활약하는 이야기' 류의 작품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F학점 첩보원> 이라던가, 톰 행크스의 <사랑의 스파이> 등등등.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의외성 면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힐 만 합니다. 60대 할머니라는 이유가 굉장히 커요. 스파이로 발탁된 이유부터가 누가 봐도 관광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친숙하고 친근한 외모 덕분이기도 하고요. 
아울러 할머니의 '특수 능력'은 바로 이 외모와 친화력, 그리고 나름 쌓아올린 '경험치'로 슈퍼 히어로물답게 특수 능력이 작품 내에서 적절히 사용됩니다. 물론 이 특수 능력이 잘 먹힌 이유는 부인의 명연기(?) 로 페르디도 대장이 잘못 잡아온 무고하고 불쌍한 노부인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긴 합니다만, 여튼 영어를 잘하는 착한 룰라쉬와 친해져 알바니아의 지도가 실린 책을 빌린다던가, 바소빅 소령을 안마해 줌으로써 두터운 인간 관계를 갖추게 된다던가 라는 식으로 탈출에 필요한 준비물을 하나 둘 씩 갖추게 되죠.
캐릭터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묘사 역시 발군이라 정말 친근하고 주위에 있을 것 같은, 우리들 할머니같은 캐릭터를 아주 잘 구현해 놓았습니다. 폴리팩스 부인과 패럴 사이에 오가는 대화들과 둘 사이에 묘한 캐미가 싹트는 과정 역시 큰 재미 요소였고요. 궁지에 몰린 슈퍼히어로가 구해야 할 대상과 우정이 싹튼다는 전형적인 전개로 볼 수도 있는데 대사가 유쾌하고 찰져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외의 자잘한 볼거리도 제법입니다. 특히나 중국 공산당이 알바니아에 진출하여 미사일 기지를 건설한다는 당대 분위기를 한껏 반영한 설정이 좋더군요. 알바니아라는 독특한 나라에 잡혀간 이유, 그리고 러시아 쪽 요원이 부인과 패럴이 탈출하는 것을 도와주는 이유로는 충분했으니까요.
드가메즈가 부인에게 선물한 트럼프 카드에 모종의 장치가 있었다는 결말 역시 괜찮았습니다. 쉽게 예상되기에 대단한 반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요.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야기에요.앞서 캐릭터가 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무려 400페이지나 되는 분량치고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생각되거든요.
조금 상세하게 설명드리자면, 이야기는 크게 3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해 권태로워 하던 폴리팩스 부인이 스파이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CIA를 찾아가고, 그녀의 완벽한 외모에 주목한 카스테어스에 의해 임무를 부여받지만 작전을 알아차린 적에 의해 정보원 드가메즈는 살해당하고 부인은 패럴이라는 다른 정보원과 함께 사로잡히는 100여페이지 분량의 1부, 알바니아로 끌려간 부인과 패럴이 탈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170여페이지 분량의 2부, 그리고 탈출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는 140여 페이지 분량의 3부로요.
이중 1부는 동화나 다름없는 이야기로 솔직히 굉장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아동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허술한 내용이기 때문이죠.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폴리팩스 부인이 패럴과 함께 페르디도 대장에게 사로잡혀 알바니아로 끌려간 뒤 부터인 2부도 마찬가지. 어설픈 탈출 계획이 서서히 준비를 갖추는 과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썩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다행히 2부 막판 밝혀지는 반전 - 알바니아 비밀경찰 넥스뎃 대령은 사실 러시아 정보원으로 부인과 패럴의 탈출을 몰래 돕는다 - 을 통해 부족하지만 설득력을 갖추게 되며, 이후 3부는 전형적인 모험물 구성인데 노부인, 부상자 (패럴)에 자그마한 중국인 (지니으로 이루어진 파티의 구성이 처참하고 탈출 과정이 엄청나게 하드하기 때문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긴 했습니다. 허나 제대로 된 작전이라고는 존재하지 않고 거의 대부분 운과 우연에 의지하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내용면에서의 억지도 많습니다. 지니의 정체가 죽은 줄 알았던 천재 중국인 과학자 하웰 박사라는 것이 대표적이죠. 지니 없이 부인과 패럴이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고, 트럼프 카드 속 필름을 발견한다는 정도로도 충분했을텐데 너무 오바스러웠어요.
또 드가메즈의 죽음에서 시작하여 탈출 과정에서 사람이 너무 많이 죽는다는 것도 영 별로였습니다. 심지어 그 중 한명은 폴리팩스 부인이 사살하는데 아무리 극적 효과를 위해서라지만 사람을 죽인 부인이 전과 같이 일상으로 쉽게 돌아간다는 결말은 영 와닿지 않더군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전통적인 슈퍼 히어로물이 연상되는 떠들썩하고 유쾌한 작품으로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만 기본적인 이야기에 헛점과 단점이 많아 감점합니다. 글보다는 영화로 보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네요.

덧 :찾아보니 영상화도 두번이나 되었더군요.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나 봅니다.

2016/03/16

<술 한잔 인생 한입> e-book 1~25

<술 한잔 인생 한입> e-book 전권 구입.

일상계 술꾼 이와마 소다츠의 음주 인생을 다룬 생활 식도락 음주 만화로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심심할때마다 들춰보는 편이라 과감하게 구입해 보았습니다.
태블릿으로 보는데 구입이 후회되지는 않네요. 그만큼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책은 27권까지 출간되었는데 e-book으로는 25권 이후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
AK 출판사의 조속한 대응을 약소하나마 촉구드리는 바입니다!

2016/03/15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영화 이야기 딴지영진공 - 차양현 외 : 별점 2.5점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영화 이야기 딴지영진공 - 6점
차양현 외 지음, 서용남 그림/성안북스

딴지영진공 팟캐스트를 글로 옮긴 책. 오랫만에 본가에 방문했는데 있기에 집어온 책입니다. 왜 있나 했더니 형님께서 저자 중 한명이시더라는...
여튼, 총 8개의 테마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 테마에 해당하는 영화들에 대해 다양한 저자들의 전문가 수준의 에세이가 실려있는 일종의 영화 평론 에세이집입니다.

수록된 글들은 딴지일보 명성에 걸맞게 모두 기본 이상은 됩니다. 저자들이 모두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의 전문가들인 덕인데, 개인적으로는 헤비조의 O.S.T에 대한 글들과 짱가의 영화와 심리학을 엮은 글들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나 헤비조의 글은 글로만 읽어도 음악이 듣고 싶게 만드는 대단한 내공의 글솜씨에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잘 결합되어 있어서 읽으면서 계속 감탄했을 정도입니다.
허나 재미라면 무언가에 대해 엄청나게 씹어대는 글들도 빼놓을 수 없겠죠. 수다도 뒷담화가 재미있듯 이런 류의 글들은 기본 재미는 보장하니까요. 대표적인 것은 이 시대의 거장 서세원과 심형래를 다룬 "theme 2.거장"입니다. 거의 막장에 가까운 두 명의 영화 인생과 작금의 몰락을 전형적인 구 딴지일보 스타일에 가깝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죠. 등장하는 작품들도 전부 낯이 익고요. 서세원의 <납자루떼>를 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겁니다. 그런데 그 중 한명이 저랍니다! 기억나는 대사는 "보이스 비 엠비셔스! 젊은이여 엠비씨를 보라~!" 였다는... (시시하죠? 허나 이 대사가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었습니다)
"theme 5.방화"에서 "대한민국 방화 걸乞작선"이라는 주제로 <천사몽>과 <맨데이트>를 처절하게 뭉개는 글도 아주 즐거웠어요. 두 작품 모두 실제로 감상은 안하고 익히 명성만 들어 왔는데 참 글만 보아도 정말 가관이더군요! 이 바닥 전설급인 <주글래 살래>나 <클레멘타인>이 언급되지 않는게 의외이긴 했습니다만.

이러한 재미에도 불구하고 몇몇 글은 현 정권과 엮어 까려는 의도가 지나쳐 조금 짜증이 나긴 합니다. 슈퍼 히어로 이야기 속 정치적 함의를 찾아내는 글들 정도까지가 괜찮았고 이후 글들은 솔직히 억지스러웠거든요. 예를 들면 <혹성탈출 : 반란의 서막>에서 주전론자 코바를 극우에 빗대며 현 정권의 실책을 이야기한다던가, <겨울왕국> 엘사의 인기를 은둔형 외톨이로 설명하며 일베와 엮어가는 과정, <괴물>을 전체적으로 세월호와 엮는 내용이 대표적이죠.
저도 현 정권을 딱히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풍자와 억지는 좀 구분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요? 세월호 이야기는 방송 당시 사고가 일어났던 것으로 보이는데 글로 옮기려면 보다 상세한 설명이 덧붙여져야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전문가들의 영화 관련 에세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헤비조의 O.S.T 관련 글 만큼은 추천할 만 하지만 단점도 명확하기에 감점합니다. 아울러 이 책을 구해 읽으실 정도의 독자라면 방송도 들으셨을 확률이 높은데 방송 외의 가치가 있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덧 : 딱 한가지 오류를 찾았습니다. 살인마를 다룬 영화를 분석하는 글에서 <조디악>을 소설 원작이라고 설명하는데 사실은 실존했던 조디악 킬러에 대한 영화죠.

2016/03/14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 이연식 : 별점 3점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 6점
이연식 지음/아트북스

우키요에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일본 풍속화의 시작과 끝을 다루고 있는 미시사 서적.
<갤러리 페이크>에도 몇번 등장했던 소재죠. 한번은 후지타가 속아넘어갔던 "우키요에 육필화" 에피소드였었고요. 참고로 이 책을 읽으니 왜 후지타가 속을 수 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키요에 육필화가 귀했기 때문이라는...

여튼, 책의 삽화 용도인 목판화에서 독자적인 상품으로 발전하여 다색 판화 상품으로 거듭나는 과정, 그리고 이러한 우키요에가 상품화 하면서 다루었던 다양한 소재들, 우키요에 역사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거장들과 거장들의 특징, 우키요에 제작에 도입된 여러가지 기술들을 차례대로 짚어주고 있습니다. 
우선은 우키요에의 주요 소재였던 미인도부터 설명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스즈키 하루노부 - 도리이 기요나가 - 기타가와 우타마로와 도슈사이 샤라쿠라는 거장의 작풍과 대표작이 소개되죠. 다음에는 풍경화가 대세가 되면서 등장한 호쿠사이와 히로시게라는 양대 거장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요. 그리고 마지막 우키요에 거장이라는 고바야시 기요치카의 소개로 마무리되죠.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도록 잘 설명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설명을 도와주는 도판도 충실한 편이고요. 또 춘화, 요괴 우키요에에 대한 이야기들도 재미에 한 몫 단단히 해 줍니다. 춘화에 관심 없을 남자는 없으니까요. 물론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고보니 우키요에 춘화 관련 에피소드도 <갤러리 페이크>에 등장했었더랬죠.

여기에 더해 유럽에 우키요에가 알려지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우키요에는 유럽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까지도 설명되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키요에가 매혹적인 이유는 서구 미술로부터 영향받은 요소들인 원근법과 서구 수입 안료 때문이며, 이러한 점에서 서구인을 사로잡은 우키요에의 실체를 파헤치면 실제로는 실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 이었습니다. 뭔가 지극히 일본적인 것 같아 굉장히 와 닿더군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미시사 서적 대부분이 재미있긴 하지만 이 책은 제 기호, 취향과 잘 맞아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시절>은 화집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현학적인 가치로만 따지면 이 책이 더 높습니다. 우키요에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6/03/11

마루타마치 르부아 - 마도이 반 / 김예진 : 별점 2점

마루타마치 르부아 - 4점 마도이 반 지음, 김예진 옮김, 쿠마오리 준 그림/파우스트박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서에서 저명한 의사 가문인 시로사키가의 손자 론고는 3년전, 자택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여인 루주와 의도치 않게 시간을 보낸 뒤 그녀에게 매료된다. 그러나 론고가 수면제에 취한 틈에 그녀는 사라지고, 할아버지 지온의 심장 페이스메이커가 정지하여 사망한다.
루주와의 약속으로 사실을 함구한 탓에 론고는 할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처벌받지만 3년 후, 론고는 가문의 지시를 거부하고 의대에 진학한 탓에 명문가의 사설 법정이라 할 수 있는 "쌍룡회"에 피고인 "어속"으로 호출된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론고를 위해 저명한 용사인 타츠키 가문의 황룡사 야마토와 대결할 청룡사로 선택된 것은 교토대생 미카가 미츠루와 조수 타츠야. 그리고 이윽고 벌어진 쌍룡회에서 3년전 사건의 진실과 루쥬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지는데...

안녕하세요. 그간 격조했습니다. 3월 들어서는 통 책을 읽지 못했어요. 핑계이긴 하지만 이런 저런 일이 많았습니다.
오랫만에 읽게 된 이 작품은 마도이 반의 데뷰작으로 추리 애호가들의 커뮤니티인 하우미에서의 반응이 좋았기에 구입한 것입니다. 사실 구입한건 상당히 오래 전인데 다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론고는 무죄이며 진범은 루주라는 정체불명의 여자이다' 라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여기서 이 과정이 "쌍룡회"라는 일종의 법정에서 검사인 황룡사와 변호사인 청룡사의 논리 배틀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특이점이죠.
이러한 전개는 법정물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압도적으로 불리한 론고와 청룡사 측이 처음 생각했던 작전 - 재판관의 손녀인 카나리가 루주일 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흘려 주도권을 잡으려는 - 이라던가, 청룡사와 황룡사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공격과 그 와중에  놀라운 진상이 연이어 드러나는 내용은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추리 애호가분들이 입을 모아 칭찬할만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선 "쌍룡회"부터가 만화적인 설정이라 마음에 들지 않거든요. 교토의 오래된 명문가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귀족들의 여흥이라는 쌍룡회와 젊은 미남미녀들로 구성된 등장인물들의 설정은 <오란고교 호스트부> 수준이죠. 하는 행동들도 비슷하고요. 문제는 이 작품이 코미디가 아니라 완전 진지한 법정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법정에서 암검살이니 낙화 되돌리기니 뭐니 하는 필살기를 펼쳐보이는 묘사와 과장되고 현란한 묘사가 결합되어 도무지 와 닿지 않았어요.
물론 이건  작품이 라이트 노벨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단점으로 지적하기는 어렵긴 합니다. 그냥 만화라고 생각하면 뭐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요.

허나 쌍룡회가 억지의 연속으로 이루어 진 것은 확실히 문제에요. 3년전 벌어진 사건의 범인으로 강력하게 의심되는 용의자가 "사실은 그 때 다른 여자랑 같이 있었는데 그녀가 범인이다." 라고 주장하며 그녀가 있었다는 증거로 그녀에게 선물받았다는 키스마크가 찍힌 손수건을 조작하여 들이민다는 것 부터가 설득력이 떨어지죠. 제가 검사, 즉 황룡사라면 다른건 둘째치고라도 그 때 받은 손수건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를 물었을겁니다. 쌍룡회가 어느 순간부터 루주는 확실히 존재했다, 그런데 그녀의 정체는 OO이다는 식으로 흘러갈 하등의 이유가 없잖아요?
게다가 첫번째 증거로 내민 찻잔은 검사인 황룡사가 바꿔치기를 하는 등 정상적인 법정으로 보기 불가능한 비합리적인 요소가 난무하는 것도 감점 요인이고요.
즉, 논하는 사건 자체가 피고의 증언으로만 기반하고 있고 변호사와 검사는 서로 사기만 치는 법정물이 좋은 법정물일 수는 없겠죠.

추리적으로도 점수를 줄만한 부분은 별로 없습니다. 커피가 홍차로 바뀐 것으로 루주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그럴싸하지만 결정적 증거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애초에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피고라 증언의 신빙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찻잔을 바꿔치기한 것으로 도청 사실을 눈치채는 장면 역시 그럴듯해 보이지만 마찬가지로 똑같은 디자인, 똑같은 색깔의 찻잔을 준비했다는 것은 억지죠. 찻잔의 생김새가 목소리로 전달될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놀라운 사실이 속속 밝혀지는 부분도 좀 과하다 싶더군요. 루주의 정체야 그렇다쳐도, 미츠루는 여자였고 야마토는 나데시코였다는 서술트릭은 과했을 뿐더러 작품에 딱히 필요했다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논리 배틀의 탈을 쓰고 있지만 불합리한 요소와 억지가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와 닿지 않는 만화적인 설정과 읽기 힘들게 만드는 장황하고 지루한 대화 역시 감점 요소고요. 후속작이 있나본데 도저히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차라리 만화였다면 조금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2016/03/08

피너츠 완전판 1 : 1950~1952 - 찰스 M. 슐츠 / 신소희 : 별점 2.5점

피너츠 완전판 1 : 1950~1952 - 6점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북스토리

피너츠 완전판 1권. 1950년부터 52년까지의 300페이지에 가까운 만화 연재분, 그리고 작가 찰스 M 슐츠의 생애에 대한 15페이지 분량의 짤막한 전기와 1987년 말 진행된 - 잡지 <네모 : 고전 만화 총서> 1992년 1월호에 수록된 - 찰스 M. 슐츠와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의 오랜 팬으로 별 생각없이 구입하게 되었죠.

그런데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제가 1980년대 이후의 피너츠만을 접한 탓인데 대표적인 것이 찰리 브라운의 캐릭터성이에요. 익히 알고 있던, 염세적이면서도 현실에 순응하는 약간 루저의 표상같은 모습은 거의 드러나지 않거든요. 반대로 주도적으로 장난도 치고 거친 면모를 보인다는 점이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또 찰리 브라운의 친구 셔미라던가 패티, 바이올렛 같은 익숙치 않은 등장인물들 - 저에게는 라이너스, 슈뢰더, 루시, 페퍼민트 패티가 기억에 콕 박혀 있답니다 - 비중이 높다는 점, 스누피는 아직 그냥 "개"라는 점 등도 마찬가지죠.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기억되는 아이들이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미취학 연령대라는 것도 다른 점이었고요.
깔끔하게 정돈된 펜선으로 동글동글하게 그려진 작화도 그다지 익숙치 않더군요. 어떻게 보면 다른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하긴, 제가 아는 80년대 작품과 30년의 갭이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죠.

그래도 팬으로서 즐길거리가 없는건 아닙니다. 슈뢰더가 음악 재능을 발견하고, 장난감 피아노에 탐닉하면서 베토벤 매니아가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그리고 유머스럽게 그리고 있는 점, 까칠하고 밉상으로는 1인자인 루시가 어렸을 때부터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 고정 캐릭터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라이너스도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그리고 담요없는! 아기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반가왔어요.
빵 터지지는 않지만 잔잔한 개그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초기작이라고 해도 거장의 저력이 어디 가는건 아니겠죠.
그리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인터뷰가 재미있던 것도 수확입니다. 찰스 M. 슐츠의 만화관을 일부나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피너츠>라는 제목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하지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생각과 다른게 큰 단점은 아니고 기본적인 재미도 충분하며 책 자체의 완성도도 높아요. 허나 22,000원이라는 가격은 많이 부담되긴 합니다. 가격만큼의 가치와 재미를 주냐 하면 그건 아닌 듯 싶네요. 팬이 아니시라면 선뜻 권해드리기는 어려운 책입니다. 구입 전 참고하시길...

그나저나, 과연 얼마나 팔릴지... <완전판>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지만 과연 끝까지 출간될 수 있을지... 나오다 만 <메그레 전집>의 악몽이 떠오르는군요.

2016/03/04

요리 본능 - 리처드 랭엄 / 조현욱 : 별점 3점

요리 본능 - 6점
리처드 랭엄 지음, 조현욱 옮김/사이언스북스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진화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요리" 였다는 것을 다양한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책. 진화, 인류학, 생물학 모두를 아우르는 과학 도서죠.

책은 최근 유행한다는 "생식"을 주로 하는 생식주의자를 찾아가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생식주의자의 체중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여성의 생리불순에 성욕마저 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죠. 그리고 인간은 화식, 즉 불로 조리를 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소화는 에너지 소비가 큰 고비용의 처리 과정인데 익힌 음식을 먹게 된 덕에 더 적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소화를 잘 시킬 수 있었고, 덕분에 더욱 건강해지고 번식도 잘 하게 되었으며 궁극적으로 생태계의 정점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용 중에 찰스 다윈은 불로 하는 요리를 "언어를 제외하면 아마도 인간이 이륙한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했다는데 정말 그 말 그대로랄까요.

이러한 내용이 상세하고 다양한 근거들을 통해 뒷받침 되고 있는데 우선 익힌 음식을 섭취할 때의 효율이 더 좋다는 여러가지 조사 결과, 그리고 다양한 원주민들의 식문화를 조사하여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익히 알려진 것과 다르게 생식 대신 열을 가하여 조리해 먹는다는 문화사적 연구 결과 등이 그러합니다.
요리가 언제 처음 시작되었을까?에 대해서도 80여만년전의 유적지 발굴을 통한 근거 제시는 물론이고 인류가 하빌리스에서 직립원인으로 진화한 변화를 가지고 시점을 추측하여 설명하는데 상당히 논리적이라 아주 인상적이었고요.
아울러 요리가 도입되었기에 인간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으며, 일종의 '사회'가 구성되고 이후 남녀의 역할이 명확하게 정해진 것에 대한 설명도 상당히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자신 몫의 음식, 요리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암묵적으로 발생되고 여성이 남성이 수렵해 온 고기를 요리하는 것이 당연해 지는 과정에 대한 것인데 아주 그럴싸했거든요.
그 외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고 있지는 않지만 평상시 식사 칼로리는 신경을 쓰는 편인데 단순히 칼로리가 아니라 "얼마나 소화에 에너지를 소비하는지"도 중요하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주제에 더해 내용도 쑥쑥 읽힐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어 만족도가 높았던 독서였습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도판이 굉장히 부실하다는 것, 그리고 주석이 방대한데 비해 보기가 힘들다는 것 정도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인류학, 진화, 그리고 요리에 대해 관심있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6/03/02

청춘 FC



<그것이 알고 싶다>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TV를 잘 보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본방 사수했던 몇 안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이 <청춘 FC> 입니다. 본방이 종료된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설 연휴를 맞아 특집 형태로 그들의 현재를 다룬 에필로그를 시청한 기념으로 포스팅합니다. 많이 늦긴 했지만요...


축구보다는 야구를 좋아하는 탓에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재미있어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축구 미생들의 완생을 돕는다"는 취지에 걸맞는 나름의 인간 승리 드라마가 적절한 유머, 감동과 함께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또 뭔가 부족했던 선수들이 선수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확실하게 그려지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하면 된다'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해 주니까요. 제가 얼마나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반성도 되었고요.
아울러 캐릭터들도 걸출해서 선수들 한명, 한명이 충분히 드라마있는 존재들일 뿐더러 무엇보다도 안정환의 재발견이 아주 놀라왔어요. 독설, 조크를 적절히 조합하여 구사하는 예능감은 물론 실력과 리더쉽 모두를 갖추고 있더라고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과제를 주고, 팀원들을 독려한다'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닌데 방송에서 확실한 나름의 성과를 보여준다는 것이 아주 대단했습니다. 그가 축구계에서 가지고 있는 위상 덕도 있겠지만 그래도 실력을 보여준건 확실하죠.

물론 예능에 가까운 프로그램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하기는 합니다. 사연있는 선수들에 대한 드라마를 강조한다던가, 제석이나 용섭이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선수들의 비증이 크다던가, 억지로 유명인과 유명 선수를 끼워 맞춘다던가 하는 부분이 그러하죠. 지나칠 정도로 프로구단과의 시합을 이어나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 부분은 축구 팬 분들이 많이 지적하신 부분이기도 하죠.
에필로그를 보니 결국 잘 안된 선수들이 많다는 것도 아쉬웠던 점입니다. 그만큼 미생이 완생이 되기 어렵다는 것인데, 참 씁쓸한 현실이에요. 그래도 대부분 각자의 길을 명확히 찾았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시간은 아닌 듯 해 다행이긴 합니다만...

여튼 별점은 3점. 재미와 감동, 드라마, 거기에 "현실"까지 모두 있는 괜찮은 예능이었습니다. 앞으로 뭘 하든 청춘 FC 팀원들이 더 높이 비상하기를 팬으로서 응원합니다. 퐈이팅!

아울러 방송만 보면 정말 사력을 다해 노력하던데 2부 리그 입단도 힘들다니 정말 프로의 벽이 얼마나 높고 두터운지 새삼 느껴지더군요. 정말이지 공부가 제일 쉬운게 확실한거 같아요. 이런 점에서 제 딸아이가 좀 크면 같이 감상하고 싶어지네요.

2016/03/01

주토피아 (2016) - 바이론 하워드, 리치 무어 : 별점 3점



주말에 딸아이와 함께 감상한 작품. <굿 다이노>가 망하기는 했지만 최근 분위기 좋은 디즈니의 최신작 애니메이션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어른들이 보아도 충분히 즐길거리가 많은 괜찮은 작품이더군요.
일단 전형적인 버디 액션 수사물의 형태로 "시간 제한 있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벌어지는 긴장감이 제법입니다. 음모도 적절하게 구성되어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요. '공포'를 통해 특정 집단을 자신의 추종 세력으로 만든다는 정치적인 행동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그만큼 설득력이 높죠.
동물들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그리고 이쪽 바닥의 전설적인 명가 디즈니의 작품다운 깨알같은 개그가 가득한 것도 마음에 듭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씬 스틸러는 엄청 빠른 나무늘보 반짝반짝 플래시겠지만 그 외 다른 동물들 모두 원래 동물 특성이 잘 보이도록 구현되어 아주 마음에 들었답니다. 토끼와 여우의 빠른 몸놀림을 적극 활용한 속도감 넘치는 액션씬도 아주 볼만하고요. 주토피아의 디테일과 아트웍 역시 최고 수준이에요.

무엇보다도 동물을 소재로 민감한 부분인 "인종 차별"과 "선입견"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좋았어요. 작 중 편견의 희생양이 되는 동물은 토끼와 여우인데 토끼 쥬디는 작고 약하다는 편견으로 평생 소원인 경찰이 되지만 경찰 내부에서 철저하게 무시당합니다. 여우 닉은 포식자에다가 약삭빠르고 교활하다는 편견으로 모든 집단에게서 신뢰할 수 없는 동물로 낙인이 찍혀 있고요.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흑인은 무조건 잠재적인 범죄자로 생각하고, 중동 이슬람 교도는 모두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생각하는 작금의 행태와 엮어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었다 생각되네요. 편견과 선입견으로 누군가를 판단해서는 안되죠. 이 부분은 중반부에 사라진 동물들이 야수화 된 것에 대해 쥬디가 설명하는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폭발합니다. 사실 작중의 포식자보다는 현실을 빗대어 생각하면 훨씬 와 닿는 장면이기도 하죠. 예를 들어 소녀 백인 경찰이 거리의 사기꾼인 흑인과 친해졌는데, 사건을 해결하고 인터뷰에서 흑인을 싸잡아 잠재적인 범죄자라고 말하는 꼴이니까요.

그러나 허술하게, 조금 쉽게 넘어간 부분이 눈에 띄긴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시장 보좌관의 음모로, 포식자를 야수로 만드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이를 어떻게 드러낼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어 보였어요. 무려 12마리나 야수가 되었는데 그 시점까지는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며, 드러나게 된 것은 쥬디가 운 좋게 활약했을 뿐이잖아요? 공공장소에서 시장을 중독시키면 한방에 끝났을텐데 왜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진행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더군요.
또 마지막에 닉이 경찰이 되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사기꾼이 경찰이 될 정도로 경찰이 만만한 조직은 아니죠. 이게 무슨 <폴리스 아카데미>도 아니고... 차라리 닉이 어렸을 적 레인저가 되려다 왕따당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대신 경찰학교에 입학했었는데 주위의 편견으로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더 설득력 높지 않았을까 싶네요.

허나 이런 부분들은 아이 시각으로 보면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지나치게 편견에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봐서 느낀 문제점들이죠. 작품에 큰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그냥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재미와 더불어 생각할 거리를 전해 준다는 점에서 추천합니다. 후속편이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