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
미야베 미유키가 출판사 신초샤와 함께 한 기획 기행문.
쥬신쿠라의 아코 낭사들이 기라 저택을 습격한 후 센가쿠지 절로 철수했던 길을 따라 걷기, 시중에 조리돌리기한 뒤 효수했다는 당시 루트를 따라 걷기, 하코네 관문을 돌파하여 나가기 등 실제 에도시대의 역사적인 일이나 풍습, 관습을 체험하며 따라 해 보는 재미난 기획물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뿐더러, 당시 있었던 실제 디테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조리돌리기 편에서 어떤 죄가 이에 해당되는지를 알려주는 식으로요. 에도시대에 관심이 많다면 분명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번역도 꼼꼼히 잘 되어 있으며 주석도 충실해 공부하면서 읽는 맛도 괜찮았어요. 글 자체도 맛깔나고 재미있게 쓰여 있고요.
아울러 미야베 미유키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점들도 반가왔습니다. 의외로 유쾌한 분이더군요. 진중한 여사님 이미지와 달리 에도 토박이임을 강조하면서 자학개그를 펼친다든가, 함께 하는 멤버들에게 제멋대로 별명을 붙이는 등 유쾌발랄한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글을 통해 자신의 작품 "혼조 후카가와의 기묘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솜씨도 일품입니다. 물가에 가면 "스케키요의 다리"가 꽂혀 있을 것 같다는 추리소설가다운 코멘트도 좋았고, 편집자가 이야기한 가도카와에서 투자하는 관람형 설치물(스케키요의 다리가 위아래로 움직인다는 장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실제 설치되었다면 정말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그러나 세 번째까지는 기획 의도에 충실한 산책 기행문인데, 이후에는 황거를 둘러보거나 유배지였다는 하치조지마로 바캉스 여행을 떠나는 등 내용이 다소 변질되어 아쉽습니다. 끝까지 제대로 달려주었다면 아주 좋았을 텐데 흐지부지 끝난 느낌이에요. 이렇게 마무리할 거였다면 중반에 나온 "독부 미유키" 설정을 끝까지 유지해서 다른 기획으로 이어갔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죠.
또한 지루한 부분은 정말 지루합니다. 본인들도 별 의미 없이 편해서 선택했다는 혼죠 7대 불가사의 탐방이 대표적입니다. 애초에 별거 없는 불가사의일 뿐더러, 현대에 전해지는 것도 아니고 심령 포스트라도 찾으면 모를까, 본인들도 어딘지 잘 모르고 두서없이 돌아다니는 것뿐이니 딱히 이야기할 것도 없습니다. 이래서야 흔해빠진 "고독한 미식가"류의 구루메 탐방이 차라리 더 낫지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초기 기획은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실망만 안겨준 후반부는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글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기행문이기는 하나 개인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고 유머러스하다는 점에서는 "동경산책"이 연상되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팬이라면 읽을 가치는 충분하고 에도 시대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꽤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후보군이 너무 좁다!). 특히 일본 여행, 특히 도쿄를 앞두고 계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황거는 다시 한 번 가보고 싶군요.
덧붙이자면 우리도 둘레길 등 산책로가 급부상하고 있는데, 단지 경관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역사와 결합해 의미 있는 코스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식이 짧아 당장 추천하고 싶은 게 떠오르진 않지만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