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과학수사 - 콜린 에번스 지음, 김옥진 옮김/가람기획 |
과학 수사, 법의학 관련 서적입니다. 건당 길어야 열페이지를 넘지 않도록 요약되어 있어서 전체 분량은 450페이지를 조금 넘는 정도네요. 크게 아래의 15개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 프로파일링
- 시신의 신원확인
- 혈청학
- 사망시각
- 독극물학
- 탄도학
- 사망원인
- 문서감정
- DNA분석
- 폭발물과 화재
- 지문감식
- 법인류학
- 치의학
- 흔적증거
- 성문
"과학" 수사가 주제인 덕분에 가장 오래된 사건도 19세기 후반 사건입니다. 특정 사건으로 인하여 해당 기술이 유명해진 것들이 많기 때문에, 주로 20세기 초반까지의 사건들이 주요하게 다루어지고요. 20세기 후반 유명 범죄도 몇건 있기는 하지만, DNA 분석과 같은 신기술이거나 너무나도 유명해서 빼기 어려웠던 사건들에 한합니다. 주제로 삼은 15개 항목의 대부분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실제 사건을 통해 그 실효성이 검증된 것들이니 당연하겠지요.
익히 알고 있던 사건도 많지만, 관련하여 처음 알게 된 사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사코와 반체티 사건은 일종의 인종차별, 정치적 탄압으로 이루어진 사건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탄도학으로 범행에 사용된 총알이 사코의 총에서 발사된게 증명되었다는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놀랍게도 사코가 범인이라는 뜻입니다.
린드버그 아들 유괴사건도 범인이 누명을 썼다고 생각해 왔었지만,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사다리와 용의자 하우푸트먼의 집에서 발견한 재료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명백한 흔적 증거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입니다. 모호한 부분도 없지는 않으나, 이 정도면 범행에 깊이 관여한 것은 분명하기에 유죄판결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20세기 초중반 범죄자들이 완전범죄를 노리고 벌였던 사건들도 인상적입니다. 독극물 검사를 빠져나가기 위해 동공을 일부러 확장시키기 위한 아트로핀을 투입했던 로버트 뷰캐넌 사건, 남편을 독살했는데 남편에게 가져다 주던 커피를 실수로 흘린 것 때문에 발목이 잡힌 에바 레이블런 사건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니벌 알모도바르 사건과 같은 조금 어설픈 알리바이 공작들도 몇 개 눈에 띄이고요. 시대를 막론하고 범죄자들의 생각은 다 비슷한 것 같네요.
또 팬암의 여승무원 헬레 크래프츠 살인사건은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범행을 재구성할 때 유력한 용의자인 남편 리처드가 냉동고와 나무분쇄기를 구해 놓았었다는 점에서 영화 "파고"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나비성"이었나 "적색등"이었나.. 여튼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 중 하나에서도 분쇄기로 시체를 갈아버리는 트릭이 등장했던 기억도 났고요. 여튼 수사관들이 나무분쇄기로 시체를 뿌린 서토닉 강을 샅샅이 뒤져 소량이지만(책에 따르면 인체의 1/1000 정도) 사체를 찾아내어 범인을 유죄로 만들 수 있었다니 다행일 뿐입니다.
그 외에도 작업복 한 벌 분석을 통해 범인의 모습을 거의 실제처럼 묘사해 낸 도트레몽 형제 사건, 침대에서 발견한 1cm 정도의 털 한가닥으로 범인이 밝혀진 낸시 티터턴 살인사건, 방문자를 대접한 형태로 봤을 때 아주 친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피해자의 옷과 범인의 옷에서 발견된 흔적 증거로 범인을 잡아낸 로저 페인 사건 이야기 등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러한 수록 사건들 중 최고를 꼽자면 프레더릭 스몰 사건입니다. 집에 큰 불을 질러 범죄 흔적을 지워버리려 했지만 방바닥이 먼저 타올라 아내의 시신이 침실에서 지하실로 떨어져 발목을 잡힌 사건인데, 이유는 범인 스몰의 인색함 때문입니다. 본인 스스로 싸구려 판자로 지하실 천정의 일부를 다시 만들었는데, 바로 그곳으로 굴러 떨어져 버린 것이거든요! 큰 범행을 앞둔 인간이 쪼잔하게, 인색하게 굴면 안되는 법입니다. 특히 살인에는 돈을 들여야죠. CMB 20권의 에피소드에서 처럼요.
남편 살해를 완벽하게 저질렀지만 의사가 사고가 아닌 폐기종으로 진단한 사망확인서 때문에 스스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사건 수사를 진행하게 만든 스텔라 니켈 사건도 비슷한데, 스텔라는 조금이나마 돈을 받은 시점에서 포기했었어야 합니다. 하긴 도박판에서 돈을 조금 딴 시점에서 일어난게 가장 힘들다고는 하니까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허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너무 요약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개략적으로 훝어본 뒤, 정말 깊은 관심이 생기는 사건은 별도의 다른 책을 찾아보게 만드는 일종의 안내서와 같은 역할 정도에 그칩니다. "손과 낵" 사건이 궁금하다면 타블로이드 전쟁을 찾아보는 식으로요. 덧붙이자면 이전에도 언급했던 가람기획의 책 답게 번역이나 책의 만듬새는 약간 부족해 보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풍성하고 재미도 있으면서도 자료적 가치도 높은 책이 도서정가제 실행을 앞둔 할인 열풍으로 50%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되고 있으니 고맙기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격을 생각하면 좋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네요. 이런 류의 책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 1 : 그나마 잡힌 사건만 수록되어 있는데 용케 빠져나간 범죄자는 얼마나 많을까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