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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4

타블로이드 전쟁 - 폴 콜린스 / 홍한별 : 별점 4점

타블로이드 전쟁 - 8점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양철북

19세기말, 토막난채 발견된 시체가 신원이 마사지사 굴든수프로 밝혀진 후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마틴 손에 대한 재판, 그리고 사건에 대해 보도하며 선정적 보도의 끝을 보여준 퓰리처의 월드와 허스트의 저널지의 경쟁을 그린 논픽션.

일단 추리애호가로서 빅토리아시대 말, 그야말로 셜록 홈즈 전성기에 디테일하게 그려자는 사건 수사와 재판과정은 굉장한 볼거리였습니다. 과학 수사의 초창기로 아직 지문 대신 베르티용 측정법이 사용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혈흔 등에 대해서는 과학수사가 펼쳐지는 부분, 시체가 포장되어 있던 종이의 출처를 밝히는 부분, 여러 목격 증언을 통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과정 등은 현대 수사물이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고문에 의존하지 않는 냉정한 수사라는 점도 의외였습니다. <살인의 추억> 보다도 더 현대적인 수사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드네요.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시체 없는 (또는 시체의 정체가 불명확한) 사건에 대해 혐의를 물을 수 있느냐라는 쟁점이 부각되는 것도 좋았고 마틴 손의 변호를 맡았던 당대 최고의 변호사 하우의 뛰어난 솜씨도 인상적으로 피고인을 무죄로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하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행동도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 예를 들어 이전 사건에서는 사건의 핵심 증인을 돈을 주고 홍콩으로 이민을 보내기까지 했다고 묘사됩니다 - 페리 메이슨이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특히 잔재주가 아니라 실제 변론 솜씨도 일품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한 생각을 뒷받침해 줍니다. 오거스터 낵이 마틴 손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후 법정에서 그녀를 박살내버리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죠. 검찰측 증거를 반박하는 증거를 확보하는 솜씨 (사건 현장의 욕조는 굴든수프의 몸을 담아 썰기에는 너무 작았다!) 역시 마찬가지고요. 마틴 손이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도 배심원단의 음주행위를 적발하는 등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도 무척 멋져 보였습니다. 뭐 개인의 명예가 달렸던 문제이긴 했겠지만....

아울러 정말로 진상이 무엇인지 결국 재판이나 수사로는 밝혀지지는 않지만 책에서 나름대로 결론내린 것도 마음에 든 부분입니다. 굴든수프의 사체를 조사했을때 반항한 흔적은 있어도 섬유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오거스터 낵 체포 시 사건 당시에 발생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멍자국이 있었던 점, 그리고 간과되었지만 범행현장에서 빈 와인병이 발견되었다는 점... 즉 굴든수프와 와인을 마시고 알몸으로 있다가 갑자기 칼로 찌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였을까? 라는 단순한 질문의 답인 것이죠. 굴든수프가 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상대방이 마틴 손일리는 없었을테니 답은 오거스터 낵! 
사건과 재판의 흐름, 이후의 행동을 보아도 오거스터 낵은 정말로 대단한 팜므파탈로 그녀의 자기 합리화와 자기 확신을 지금 시각으로 보면 소시오패스라 해도 무방한 인물이라 생각되는데 예전에 읽었었던, 비슷한 시대를 무대로한 <밀랍 인형>의 미리엄과 좋은 비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의 또다른 축인 황색지의 보도경쟁은 현재 시점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것이기에 씁쓸함이 느껴지기는 했습니다만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네요. 저 역시도 선정적인 보도에 휩쓸려다니는 일반인 속성에 더 가깝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허스트의 말대로 사건을 실제로 만들어서까지 특종을 만들고 판매부수를 올린다는 전략은 지금 보아도 대단하다 싶습니다. 추리 앤솔로지에서 보았던, 정말로 사건이 없는 시골 촌마을 신문사에서 기사를 마련하기 위해 강력 사건을 저지른다는 단편소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사건에 관련된 여러가지 촌극들, 예컨데 굴든수프 사체의 음경 특징에 대해 재판정에서 논하는 부분, 마틴 손의 잘생겼던 얼굴을 평한 여러명의 증언이라던가 일종의 "아이돌"이 되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마틴 손의 최후와 오거스터 낵이 어떻게 되었는지, 신문들의 경쟁이 어떻게 마무리되었으며 사건을 맡았던 기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등 후일담이 꼼꼼한 것도 좋았고요.

결론내리자면 범죄 논픽션으로 보아도 손색없으며 황색언론의 치열했던 보도행태를 다룬 기록물로 보아도 손색없는 책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추리, 범죄물 애호가나 논픽션 애호가분들께 적극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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