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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31

이 트릭이 굉장하다! 읽고 싶어지는 추리 소설 15 선 소개 from 서스펜스 라이프

요새 재미를 붙인 이런저런 랭킹 소개입니다.
이번에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트릭이 있는 추리소설 15선" 입니다.
서스펜스 라이프라는 웹 사이트에서 선정한 순위입니다. 원문은 이 곳을 참고하세요.

1. <<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서술 트릭의 묘미를 맛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2. <<가면 산장 살인 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범인이라고 생각된 사람이 범인이 아니다!
충격적인 결말을 기대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야할 작품.

3. <<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읽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충격의 한 줄'이 궁금하시다면, 읽어보시길.

4. <<どんどん橋、落ちた>> 아야츠지 유키토
국내 미출간

5. <<가위남>> 슈노 마사유키
추리 소설 본래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주옥같은 작품.

6.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나카야마 시치리
의외의 전개를 느끼고 싶은 분들께 추천

7. <<속죄>> 미나토 가나에
잘 짜여진 구성을 통해 도달하게되는 공포스러운 클라이막스에는 놀랄 수 밖에 없다.

8. <<점성술 살인사건>> 시마다 소지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 소설 중 최고라는 독자들이 많다.

9.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우타노 쇼고
발표당시, 수많은 미스터리 상을 싹쓸이했던 작품. 두 번 읽은 사람도 많다.

10. <<킹을 찾아라>> 노리즈키 린타로
트럼프 카드로 살인이 결정된다는, 게임같은 전개의 작품.

11. <<시체를 사는 남자>> 우타노 쇼고
추리 소설 안에, 또다른 추리 소설이 있다는 설정의 작품.

* '액자 소설' 구조를 말합니다.


12. <<그리고 두사람이 되었다>> 모리 히로시
국내 미출간

13. <<외눈박이 원숭이>> 미치오 슈스케
독자 대부분이 속았다고 말 할 정도로 난해한 수수께끼 풀이.

14. <<천사의 나이프>> 야쿠마루 가쿠
충격적인 결말에 놀랄 수 밖에 없다.

15. <<탈취>> 신포 유이치
부담없으면서도 제법 심오한 추천작.

저는 국내 출간작 13편 중 9편을 읽어보았는데(1편은 영화로 감상), 좋은 작품들이기는 하나  '트릭' 측면에서 손에 꼽을만한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군요. <<천사의 나이프>>에서 무슨 대단한 트릭이 등장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거든요. 선정 기준이 궁금합니다.

2022/07/30

알렉스 - 피에르 르메트르 / 서준환 : 별점 2.5점

알렉스 - 6점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다산책방

<<아래 리뷰에는 범행 동기, 범인 및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렉스는 트라리외에게 납치되어 '새장'이라 불리우는 작은 상자에 갇혀 죽을 운명에 처했다. 알렉스에게 살해당한 아들의 복수를 위해서 일을 벌였던 트라리외는 경찰에게 체포되기 직전 자살했지만, 알렉스는 경찰이 구조하기 전에 자력으로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카미유 반장의 수사 결과 알렉스는 산성 용액으로 남자들을 죽이고 다녔던 연쇄 살인범으로 밝혀졌고, 그녀는 경찰의 추적 아래에서도 살인을 거듭해 나가는데....


프랑스 작가 피에르 르메테르의 500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대장편 범죄 스릴러.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입니다. 얼마전 접했던 모 리스트에서 '신감각 납치 미스터리' 라던가 '서점 대상, 고노미스 대상 등 모든 상을 휩쓴 사상 최초 7관왕 작품!'이라는 등 엄청난 수식어로 소개하고 있길래 궁금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3부 구성입니다. 1부에서는 알렉스가 괴한에게 납치된 뒤, 외딴 건물 속 '새장'이라 불리는 상자에 갇힌 채 죽어가는 과정과 납치 사건을 쫓는 카미유 반장 팀의 수사가 교차됩니다. 2부에서는 알렉스가 진한 산성 용액으로 여러 명을 살해하는 범죄 행각이 그려지고요. 알렉스가 자살한 뒤의 이야기인 3부에서 알렉스가 저지른 범행이 알고보니 그녀의 오빠 바쇠르가 알렉스에게 오래 전부터 저질러왔던 성범죄 탓이었고, 알렉스는 자살한게 아니라 오빠에게 살해당했다는게 밝혀지며 끝납니다.

1부에서 볼거리는 상자에 갇힌 알렉스가 좁아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몰려든 쥐떼와 극한의 승부를 펼쳐가며 탈출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입니다. '신감각 납치 미스터리'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정말 실감나서, 읽는 독자마저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듭니다.
2부에서의 알렉스가 저지르는 연쇄 살인 사건 묘사도 꽤 그럴싸했습니다. 특히 알렉스가 자신의 정체를 숨겨가며 대담한 범행을 저지르는 과정의 설득력이 높습니다. 남자들 (그리고 여자 한 명)을 유혹해서 함정에 빠트리는건 그녀의 미모 묘사로 보면 손쉬웠겠지요.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면서 범행을 반복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이 그녀를 쉽게 체포하지 못하는 이유도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지문이 등록되어 있지 않으니 '범인이 알렉스다!'라는 것만 드러나지 않으면 되는데, 이건 현장에서 체포되거나 명확한 단서가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니까요. 여기에 더해 작품에서처럼 현금 결재를 기본으로 소지품을 최소화하여 잦은 이동과 은신을 반복한다면 더더욱 어려웠을테고요.
3부는 일종의 대단원으로, 알렉스 과거 일기를 토대로 그녀가 11살 때 부터 오빠 바쇠르에게 성폭행을 당해왔으며, 심지어 오빠 때문에 성매매까지 하다가 산성 용액으로 하복부에 엄청난 상해를 입었다는 과거와 그 탓에 살인을 저질러 왔다는게 밝혀지고, 마지막에는 그녀를 오빠가 죽였다는게 드러납니다. 서로 별 관계가 없어 보였던 2부에서의 피해자들이 사실은 오빠 피에르의 지인들이었고, 그녀를 아프게했던 가해자라는게 함께 밝혀지고요. 1, 2부를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베르호벤 반장의 수사추리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납치당했던 알렉스가 어디로 어떻게 귀가했는지?에 대한 추리였어요. 몰골과 상태가 말이 아니었을테니 걷거나 택시나 버스는 눈에 뜨였을텐데 어디로 어떻게 이동했나? 라는 수수께끼인데 베르호벤 반장은 불법 체류자들이 모는 불법 택시를 이용했을 거라고 추리한 뒤, 이를 토대로 알렉스의 거처를 알아냅니다.
극도로 단서가 제한된 상태에서 납치된 여성을 찾기 위해 현장 근처에 차량이 대기할 만한 장소를 우선 파악한 뒤, CCTV로 수상한 트럭에 대한 정보를 얻는 등 다른 수사들 모두 합리적이고요.

그러나 잘 짜여진 구성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편입니다. 베르호벤 반장에 대한 불필요한 심리 묘사와 서술이 많은 탓이 가장 큽니다. 전작에서 사망했던 아내 이렌을 잊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묘사 등이 그러합니다. 이런 부분들은 역시나 프랑스 소설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추리적으로도 베르호벤 반장이 펼치는 약간의 활약을 제외하고는 건질게 전무합니다. 진상이 드러나는 3부는 발견된 알렉스의 일기를 토대로 진행되고, 독자는 전혀 모르는 오빠 바쇠르와의 과거가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상당한 지능범으로 카미유 반장 팀과 심문 중 배틀을 벌일 정도로 뻔뻔했던 바쇠르가 현장에 자기 지문과 모발을 남겼다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도 추리물로서의 완성도를 저해합니다. 굉장히 기발하게 범행이 드러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단순한 현장 감식만으로 드러난다는건 실망스럽더군요. 지능범답지도 않았고요. 바쇠르 캐릭터를 3부 내내 잘 쌓아올려 갔는데, 마지막 한, 두 페이지로 그 모든게 무너져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애초에 현장 감식에서 그의 지문과 모발이 발견되었다면, 3부에서 장황하게 펼쳐졌던 바쇠르와의 대결(?)은 존재 의미를 상실한다는 문제도 큽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2부에서 알렉스가 죽음에 이르는 장면 묘사였습니다. 3부에서 알렉스는 자살한게 아니라 오빠 바쇠르에게 살해당했다고 설명됩니다. 그러나 알렉스가 머리를 세면대에 짓찧고, 술과 함께 약을 섭취하는 마지막 장면은 분명 그녀의 의지였던걸로 묘사됩니다. 지문이 지워진 뒤에 덧 씌워진 술병 지문 등을 보면, 오빠의 범행이 맞는 듯 한데, 그렇다면 이렇게 알렉스가 자살하는 듯한 심리 묘사는 거짓이에요. 이런 불공정한 정보를 중요 순간에 드러내고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는건 좋은 추리물이라고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아니면 바쇠르의 주장대로 그녀가 자살하면서 오빠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는게 맞다면, 오빠의 모발같은걸 어디서 어떻게 가져와서 흘려두었는지 등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나 많고요.

범행 동기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알렉스를 힘들게 했던 원흉은 오빠 바쇠르,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도 외면했던 어머니입니다. 성매매를 했던 다른 남자들은 모두 가해자이기는 해도 오빠보다 죄가 많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작 오빠는 죽이지 않고, 오히려 오빠에게 살해당한다는건 이상했어요. 제대로 된 이야기였다면 오빠에게서 과거의 가해자들 주소를 입수한 뒤에는, 오빠를 죽였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알렉스의 범행은 앞서 설명했듯 설득력이 높지만, 그녀가 항상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녔다는건 분명 문제입니다. 경찰은 그녀의 사진도 이미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작에 공개 수사로 전환했더라면 체포는 몰라도 마지막 한, 두 건의 범행은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요. 이렇듯 경찰의 수사도 여러모로 딱히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키가 145cm밖에 안되는, 유명 화가의 아들인 카미유 베르호벤 반장과 거구에 고도 비만인 상관 르 구엔 상관, 카미유의 부하로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부자 루이와 구두쇠 아르망처럼 서로 대비되는 여러 캐릭터들도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이라서 별로였어요. 특히 베르호벤 반장에게 이런 핸디캡과 캐릭터 적인 특성을 부여한 이유를 모르겠네요. 키가 작은게 수사에 불리한건 하나도 없으니, 이는 단지 '독특함'만을 위해 부여한 특징 같은데 오히려 능력보다는 카미유 베르호벤 반장의 불안한 심리만 부각시켰을 뿐입니다.
피해자를 둔기로 타격한 뒤, 아황산을 입에 주입해 끝장내는 알렉스의 잔혹한 범죄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3부를 통해 이 범죄가 그녀가 당했던 고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게 드러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지나치게 자극적인 묘사로 분량을 채울 필요는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알렉스가 어린 시절 아황산으로 입은 상처 역시 과했던 설정이라 생각됩니다. 성폭행만으로도 범행 동기로는 차고 넘쳤다고 보이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작가의 전작도 그닥이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몇 개의 반전이 이어지고, 감금과 범행 과정에 대한 설득력이 높은 등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부분은 제법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만만치 않은건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알렉스만 주인공으로 해서, 그리고 그녀가 정확하게 오빠를 덫에 걸리게 만들었다는 결말로 마무리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억지로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로 만든게 여러가지 단점들의 가장 큰 원인이니까요. 한 번 읽어볼 만은 하지만 해외 미스터리 랭킹 베스트 10에 당당히 꼽힐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2/07/24

네 명의 의인 - 에드거 월리스 / 전행선 : 별점 2.5점

네 명의 의인 - 6점
에드거 월리스 지음, 전행선 옮김/양파(도서출판)

<<아래 리뷰에는 내용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권력을 남용하는 사악한 자들을 처단하는 자경단 네 명의 의인이 이번에는 영국 외무부 장관 필립 레이먼 경의 목숨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가 추진 중인 새로운 법안이 통과되면, 부패한 정부를 쓰러트릴 영웅 가르시아가 죽게 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었다. 네 명의 의인은 공개적으로 경고장을 보내며 압박하지만, 레이먼 경은 절대로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건 총 책임자 팰머스 형사는 레이먼 경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지만, 경은 결국 네 명의 의인이 경고한 시간에 자택 밀실 안에서 살해되고 마는데....

사회 정의를 위해 힘쓰는 4인조가 영국 총리를 암살한다는 내용의 모험물이자 범죄 추리물. <<킹콩>>의 원작자로 당대의 유명한 스토리텔러였던 에드거 윌리스의 작품입니다. 20세기 극초반인 1905년 발표된 작품인데 상당히 신선한 아이디어가 많았고, 지금 시점에서 읽어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라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스스로 악을 처단한다는 '자경단' 설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당한 수준의 재력과 변장 기술로 대표되는 특수 능력, 멤버 중 한 명인 테리가 조직의 기밀을 누설하려 하자 신문사로 복면을 하고 직접 찾아가 빼내온다던가, 팰머스 형사로 변장하여 총리에게 직접 협박장을 전달하는 등의 대범함, 그리고 빼어난 추리력 모두 후대, 아니 현재의 DC나 마블 히어로들과 비교해도 딱히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 악당이지만 경찰과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며 매너까지 갖춘 안티 히어로적인 모습도 독특함을 더해주고요.'괴도 신사'의 영국 버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모험물적인 속성 외에도 추리적으로도 볼만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뭐니뭐니해도 레이먼 경이 수많은 경찰로 둘러쌓여 있는 밀실 안에서 살해된 트릭을 꼽고 싶습니다. 레이먼 경이 자주 누르던 부저에 전기가 통하게 하여 감전시켜 죽였다는 건데, 지금 보면 왜 경찰이 진작에 알아내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만, 20세기 초반이라는 시대 배경을 감안하면 꽤나 그럴싸하면서 효과적인 트릭이었다 생각됩니다. 손에 있는 얼룩 흔적라던가, 머나먼 이국 독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네 명의 의인이 도둑맞은 수첩 속에 표기되었던 지명이 전기가 통하는 길을 설명하고 있다는 등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이었고요.
모험과 범죄를 잘 결합한 전개도 좋았습니다. 좀도둑 빌리 마크스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빌리에게 호주머니를 털려 '4명의 의인'이라는게 드러난 네 명의 의인 중 한 명인 포이카르트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빌리를 찾아낸 뒤, 그가 자기들의 정체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처단하는 부분이지요. 포이카르트는 대놓고 빌리에게 얼굴을 드러내어 그가 자신의 얼굴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가 보상금 때문에 일부러 경찰에 신고를 미루고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 뒤 다른 의인 맨프래드가 경찰을 사칭하여 빌리를 살해하게 되고요. 이 일련의 과정은 모두 합리적일 뿐더러, 추리는 물론 여러가지 디테일일들이 곁들여져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물론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은 부분, 작위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네 명의 의인의 활약 대부분은 변장 중심이며, 운에 많이 의지하고 있어서 딱히 스릴을 느끼기 힘들고 꽉 짜여진 정교한 이야기라고 하기는 무리였어요. 마지막에 테리가 왜 죽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리고 네 명의 의인 캐릭터가 약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한 명은 화학 전문가라는 설정 정도에 그치는데, 리더이자 돈줄, 브레인, 행동대장과 같은 식으로 각각의 캐릭터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A 특공대>>처럼요.
트릭도 앞서 괜찮았다고 말씀드렸지만, 레이먼 경이 범행 예고 시각에 부저를 누른다는건 장담할 수 없었던 등 몇가지 디테일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고요.

그래도 100년이 넘은 고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재미를 가져다주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확실히 당대의 인기가 이해가 되는 수준이었어요.
설정은 정 반대지만, 비슷한 시기의 대흥행작이었던 <<팡토마스>>와 비교해보자면, <<팡토마스>>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한 번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2022/07/23

한낮의 방문객 - 마에카와 유타카 / 이선희 : 별점 2점

 

한낮의 방문객 - 4점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창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고독사한 모녀에 대한 기사를 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나'는 우연찮게 옆집 자매의 정수기 강매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 뒤 강매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어서 안면을 트게 된 경시청 수사 1과 형사 미도리카와로부터 사건 수사에 대한 협조를 요청받았다. 정수기 강매를 하고 다니는 6인조가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주범이 과거 악독한 사건을 저질렀던 아사노로 보이니, 그의 옛 연인을 찾아 아사노가 지금 어디있는지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아사노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던 중, 그들과 엮였던 종범 다쿠마로부터 일당이 저지른 잔혹한 범행을 전해듣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오히려 아사노 일당의 표적이 되고 마는데...


혐오스러운 범죄를 전면에 내세워 독자를 자극시키면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을 써 왔던 마에카와 유타카의 장편. 이 작품 역시 작가의 특기가 잘 살아있습니다. 정수기 강매에 대한 디테일도 괜찮지만, 아사노 일당이 저지르는 비현실적인 연쇄 살인이 정말 끔찍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읽다가 진저리가 날 정도로 말이지요.
아사노 일당의 끔찍한 범행과 별개로, 요시코, 노조미 모녀의 아사 사건이 사실은 스구로 교수가 저지른 살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전개도 흥미로왔고요. 몰입해서 읽을만한 재미는 충분히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첫 번째는 아사노 일당이 어떻게 이런 끔찍한 범행을 아무렇지도 저지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여섯 명이나 되는 인원이 움직이는 것 치고, 범행을 통해 얻는게 보잘것 없어서 범행에 대한 설득력이 없어요. 무려 4 건의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뒤에야 겨우 거금을 손에 쥐기는 하지만, 이건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범죄에 대해 설득력이 부족하고 엉성하다는 점은 작가의 전작들과 비슷합니다.
두 번째는 심복인 시미즈를 제외하고는, 아사노가 이끄는 정수기 강매를 위장한 살인 강도단 구성이 그때 그때 바뀐다는 설정입니다. 이런 범행은 소수 정예로 저지르는게 당연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동료는 언제든 경찰에 신고할지 모르니까요. 실제로 동료 중 한 명이었던 다쿠마가 배신해 버리고 말았고요. 아사노는 이미 십수년 전에 애인 스야마 게이에게 배신당해서 체포되기까지 했었으니 더더욱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양반입니다. 무엇보다도 이해하기 힘들었던건, 백주대낮에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집에 쳐들어와서 살인을 저지르는걸 반복하는데 쉽게 체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범죄의 규모와 행동이 거의 과거 마적단(?)을 연상케하는데, 이건 CCTV가 많은 21세기에는 거의 불가능할 범죄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일본의 치안에 큰 문제가 있는거에요. 하긴, 전 수상이자 여당의 최고 권력자가 백주 대낮에 손쉽게 암살당하는 판이니 이게 오히려 현실적인 일본의 치안 수준일지도 모르겠군요.

아울러 '나'가 사건에 휩쓸리게 되는 과정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참혹한 노부부 살해 현장에서 아사노의 지문이 발견되었다면, 경찰에서 전력을 다해 그를 체포하면 됩니다. 구태여 외부인인 '나'의 도움을 얻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읽어보면 '나'를 미끼로 써서 아사노 일당을 체포하려는 경찰의 작전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작품 전개에서 또 다른 한 축이자, 추리적인 부분과 반전을 담당하고 있는 요시코, 노조미 살인 사건 역시 문제가 많은건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취재는 스구로 교수가 일부러 부탁한 것이라는게 나중에 드러납니다. 이 사건을 단순 아사 사건으로 보이게 만드려는게 목적이었고요. 그런데 이미 사건은 단순 변사 사건으로 종료된지 오래입니다. 스구로 교수가 다시 사건을 들쑤실 이유는 없었습니다. 스구로 교수가 요시코와의 불륜이라는 비밀을 잡지 편집자 다지마에게 털어놓는 이유도 모르겠더군요. 무슨 목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기사가 필요했다면 차라리 절친인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왜곡된 원고를 써 달라고 부탁하는게 빨랐을거에요.

게다가 요시코의 여동생 미사키 살인 사건은 억지스러웠습니다. 스구로 교수는 미사키를 살해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둘의 관계는 비밀이었고, 이미 경찰이 아사로 판단한 상황이니 모르는 척 입만 다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랬다면 미사키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아니 전혀 없었을거에요. 스구로 교수는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딱히 자리에 대한 위기 의식을 느꼈을리도 없고요.
이런 점에서는 요시코 사건은 아예 나오지 않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복잡도를 높이고, 반전의 맛을 전해주려는 노력은 가상하나 억지가 너무 심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한 여름에 읽기 적당한 서늘하면서도 흡입력있는 작품이지만 구성은 다소 헐겁습니다. 딱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2년 버젼] 미스터리 소설 추천 35선. 신간부터 인기 고전 명작까지 랭킹으로 소개! from SAKIDORI

화제가 되는 여러가지들을 알기 쉽게 소개해준다는 일본의 웹 매거진 SAKIDORI에서 선정한 순위입니다.
개인적 평가로는, 초보자용과 반전계 랭킹은 나름 괜찮습니다. 초보자용은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으로도 제작되어 '친숙하고 읽기 쉬운' 측면을 많이 고려한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딱히 대단한 걸작이라고 보기 힘든 히가시가와 도쿠야 작품 순위가 높은 점에서 추측해보자면 말이지요. 이 중 <<푸른 불꽃>>과 <<거울 속 외딴성>>은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2022.10.08에 읽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습니다.
반전계는 <<까마귀의 엄지>> 빼고는 다 읽어본 셈인데 (<<가위남>>은 영화로), 순위는 모르겠지만 선정 자체는 적절해 보입니다(*"까마귀의 엄지"도 2023.06.23에 읽었습니다). 일본판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표지의 치명적인 귀여움이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해외 미스터리 추천 랭킹은 좀 불만스럽습니다. 우선 비극 시리즈의 최고 걸작은 <<Y의 비극>>이라는건 정론입니다. <<X의 비극이 아니라요. <<오페라의 괴인>>이 미스터리에 속하는지도 의문이며, 잘 모르는 작품이 무려 세 편이나 있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수많은 걸작들을 제치고 애거서 크리스티, 코난 도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걸까요? 이는 찬찬히 읽어보고 평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보자용 미스터리 추천 랭킹
1위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2위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 히가시가와 도쿠야
3위 <<빙과>> 요네자와 호노부
4위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5위 <<푸른 불꽃>> 기시 유스케
6위 <<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7위 <<점성술 살인 사건>> 시마다 소지
8위 <<화차>> 미야베 미유키
9위 <<백야행>> 히가시노 게이고
10위 <<거울 속 외딴성>> 츠지무라 미즈키

반전계 미스터리 소설 추천 랭킹
1위 <<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2위 <<벛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3위 <<살육에 이르는 병>> 아비코 다케마루
4위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5위 <<가위남>> 슈노 마사유키
6위 <<까마귀의 엄지>> 미치오 슈스케
7위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나카야마 시치리
8위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9위 <<만원>> 요네자와 호노부
* 단편집 중 수록작 <<만원>>
10위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해외 미스터리 소설 추천 랭킹
1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2위 <<셜록 홈즈의 모험>> 아서 코난 도일
3위 <<오리엔트 급행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4위 <<ABC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5위 <<다빈치 코드>> 댄 브라운
6위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7위 <<오페라의 괴인>> 가스통 르루
8위 <<알렉스>> 피에르 르메테르
9위 <<X의 비극>> 엘러리 퀸
10위 <<호반장>> 케이트 모튼

2022/07/17

공주의 죽음 - 리전더 / 최해별 : 별점 2.5점

 

공주의 죽음 - 6점
리전더 지음, 최해별 옮김/프라하

오랫만에 읽어보는 미시사문화사 서적. 이야기는 서기 6세기, 유목민족인 선비족 탁발씨가 건립했던 북위 왕조에서 일어났던 한 건의 형사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북위 난릉장공주와 그의 부마 유휘와 관련된 사건입니다.

유휘는 남방에서 도망 온 장군 유창의 손자에요. 유창은 남조의 황족이었는데 궁정 내부의 권력 다툼에 연루되어 어쩔 수 없이 북쪽으로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휘하의 군대, 많은 인력과 재물을 가져왔던 덕에 북위 조정의 봉작을 받았고요. 손자 유휘가 공주와 혼인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지요. 난릉장공주와 유휘는 대략 서기 500년 전후, 즉 선무제 즉위 초기에 혼인을 하였는데 유씨의 투기로 둘의 관계가 멀어지자 당시 섭정을 하고 있었던 영태후 유휘의 작위를 빼앗기로 결정하고 이혼을 명령했습니다. 두 사람이 더 이상 부부로 살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이때는 그들이 결혼한 지 대략 10여 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러나 일 년 후 아마도 공주의 청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데,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한 환관과 당시 두 사람의 상황을 조사하고 보고했던 황족의 대신이 함께 영태후에게 공주와 유휘의 재결합을 건의하였습니다. 영태후는 공주의 본성이 바뀌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의 관계가 개선의 여지가 없음을 걱정하여 동의하지 않았지만, 환관과 대신이 여러 차례 건의하자 이를 거절할 수 없어 태후는 결국 그들의 재결합을 허락하였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친히 공주가 출궁하는 것을 배웅하며 앞으로 조심해서 행동하라고 그녀를 타일렀지요.
그리고 대략 519년을 전후하여 공주는 임신을 했습니다. 문제는 유휘는 평민인 장지수의 여동생 장비와 진경화의 여동생 진혜맹 등과 간통을 했다는 거지요. 공주는 끝내 참지 못하고 유휘와 다시 충돌했습니다. <<위서>> 기록에 따르면 이 때 분노에 찬 유휘가 공주를 밀어 침대 밑으로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주는 다시 유휘에게 배를 차인 탓에 유산했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요. 곧바로 장씨, 진씨 남매 네 명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지만, 유휘는 도망쳤습니다. 조정은 모반대역죄에 상당하는 현상 액수를 내걸고 유휘를 잡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조정은 유휘와 용비, 혜맹 및 그들의 오빠들을 심판하고 처리해야 하는 문제로 한 차례 심각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황권을 옹호하고 공주를 보호하는 황족 세력 (영태후)에 대항하여 한인 및 한화된 관료 집단이 가부장적 가족 윤리를 내세워 맞섰던 것이죠. 이 책은 이 사건을 통해 중국의 가부장적 가족 윤리의 역사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황족 세력의 주장은 공주 뱃 속 아이도 황족이니, 황족을 죽인 유휘는 모반대역죄로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관료 집단의 리더인 상서삼공랑중 최찬은 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는 자기 자식을 죽인 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어요. 당시 북위의 법률도 "조부모, 부모가 분노하여 병기나 칼로 자손을 죽이면 5년 형, 구타하여 죽이면 4년 형에 처한다" 고 되어있었거든요. 설령 공주의 신분이 아무리 존귀하여 일반 여성과 비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녀가 유휘에게 시집 온 이상, 그녀가 임신한 태아는 유휘의 혈육이라는 점도 강조했고요. 왜냐하면 당시 중국 예법에 따르면 여성은 일단 결혼을 하면 '가족정체성'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법률 역시 기혼 여성은 친정보다는 시댁을 '가족'으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하고요. 유휘가 공주를 구타하여 유산에 이르게 한 이 사건에서도 공주는 이미 친정에서 시댁으로 가족정체성이 전환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친정사람의 죄로 연좌될 필요도 없고 친정 사람들도 그녀의 죄로 처벌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됩니다. 즉, 공주 뱃속의 태아는 황실의 구성원이 아니며 유휘의 혈육이며 유휘가 범한 죄 역시 대역죄가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하늘이요, 남편은 처의 하늘"로 한 사람의 머리 위에 두 개의 하늘을 둘 수 없다면, 여성이 결혼하는 것은 곧 "하늘을 바꾸는 것", 즉 그녀가 지존으로 여겨야 하는 대상이 아버지에게서 남편으로 바뀌는 건 고대 예서의 뜻이라고 하네요.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전에 있었던, '출가외인' 사상하고도 일치하지요.

이 책은 이렇게 난릉 공주 사건에서 시작하여, 한과 당 사이 법률의 유가화(또는 유가 윤리의 법제화라 부를 수도 있겠다)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를 상세하게 안내해 줍니다. 단지 난릉 공주의 죽음과 같이 부부간 폭행 치사 뿐 아니라 간통죄에 대한 처벌, 사건 범인을 숨겨주는 문제, 죄인의 가족을 모두 처벌하는 '연좌'에 있어 법률 적용이 남, 녀 어떻게 달랐는지와 그 달라짐의 역사를 이러저런 사료를 바탕으로 하나씩 소개해 주고 있거든요. 심지어 구타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확인에 대해서 당시 어떤 식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는지까지 알려줄 정도입니다.
어떻게 소개되는지 예를 하나 들자면, 난릉 공주 사건 외에도 이 당시가 얼마나 심한 부계화 사회였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동위의 대신 두원의 글이 있습니다. 두원은 "남편은 처의 하늘이고 아버지는 자녀의 하늘이다. 일단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이면 모자 두 사람의 하늘이 동시에 무너지는 것이다. 어머니가 이미 나의 하늘을 무너뜨렸다면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어머니로 여길 수 없으며, 반드시 그녀를 고발해야 한다. 반대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했을 경우 '부존처비'와 '부존모비'에 근거해 자식된 이는 자기의 하늘을 고발할 수 없고, 이로써 자식이 아버지의 죄를 숨기는 것은 정상을 참작할 만하다." 고 했다네요요. 근거로는 의례, 상복의 원칙을 들고 있고요.
하지만 아무리 '부계화'되었다 하더라도 단지 시집만 간다고 해서 시댁 사람이 되는건 아니라는 점도 특이했습니다. 예를 들어 동한 말기, 한 여성이 혼인 후 남편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남편이 병역을 회피하여 도주했다고 연좌되어 잡혀왔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법상 동뢰와 묘견 등의 예를 아직 행하지 않았기에, 아직 남편 집안 사람이 아니라 하여 죄를 묻지 아니했다고 하네요. 부계 사회였음에도 가통한 혀성에 대해서는 딱히 심하게 처벌하지 않았다는 것도 조금 의외였고요.

이러한 한인과 한화된 관료 집단의 유교적인 논리에 영태후가 맞설 수 있었던 이유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선비족은 "계책을 세울 때는 부인을 따르며 오직 전장에서만 스스로 결정한다”는 유품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여성의 정치적 영향력이 컸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남쪽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그 활동력은 엄청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무측천같은 다른 여성 통치자의 독특한 개혁과 영향력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상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난릉 공주 사건 외 다른 이야기들이 조금 두서없이 소개되는 감은 없잖아 있고,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설명되지 않는 글들의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발단이 된 사건도 재미있었을 뿐더러, 역사적으로 잘 알지 못했던 남북조 시기의 사회와 문화, 법률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좋은 독서였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유휘는 붙잡혀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집행 전에 사면령이 내려져 목숨을 건졌습니다. 심지어 영태후가 권력을 잃고 효명제가 정권을 잡자, 다시 봉작을 받기까지 했다네요.

2022/07/16

니콜라스 퀸의 조용한 세계 - 콜린 덱스터 / 해문출판사 : 별점 2점

 

니콜라스 퀸의 조용한 세계 - 4점
콜린 덱스터/해문출판사

<<아래 리뷰에는 범행 동기와 범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외 시험 협회에 채용된 청각 장애인 니콜라스 퀸이 독살된 채 발견되었다. 모스 경감은 협회 관계자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는데....

콜린 덱스터의 모스 경감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 종이책으로 출간되지 않아서 몰랐었는데, 진작에 전자책으로 출판되었었더군요. 전작들은 모두 좋은 작품들이었는데, 어지간히 팔리지 않았나 봅니다.

이 작품은 모스 경감 시리즈답게 굉장히 고전적입니다. 1건 (뒤에 1건 추가됩니다만)의 살인 사건에, 용의자는 극도로 적은 상황에서 주어진 정보들을 조합하여 추리한 뒤, 범인을 밝혀내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잘 정리해서 풀어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억지로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드는 느낌이에요. 모스 경감의 조사는 두서없이 전개되고, 제대로 정리되지도 못하거든요. 그래서 불필요하게 길어지기도 했고요.
게다가 사건도 이렇게 전개해서 어려워 보일 뿐, 사실은 별로 어려운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도 문제에요. 왜냐하면 유력한 용의자인 협회원 5인은 모두 오후 4시 이후 알리바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4시 이후에 니콜라스와 함께 그의 집에 가서 독을 먹여 살해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단서들로 명확한 살해 동기 - 협회 내에서 누군가 시험 문제를 빼돌리고 있다는걸 니콜라스가 알아챔 - 를 알아냈으니, 유력한 용의자 (루프)를 체포하면 사건은 끝입니다. 니콜라스가 6시 직전까지는 살아있었다는게 드러난 사실이니 루프가 오전에 확고부동한 알리바이가 있는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루프가 저녁에 니콜라스의 집에 갔던건 사실이었던만큼, 크게 잘못된 체포로 보이지도 않고요.
이렇게 5시 이후에는 알리바이가 아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니콜라스가 그 전에 살해당했다면서 멀쩡한 알리바이를 건드리는 모스 경감의 수사는 영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모스 경감의 추리대로 소방 훈련을 이용하여 12시에 니콜라스 퀸을 살해한다? 왜죠? 범인 마틴과 루프가 얻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죠. 확고한 알리바이가 생긴게 아니니까요. 시체를 옮기는 어려움과 위험을 무릅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구태여 비가 오는데 코트를 벗어 두었다던가, 바틀렛의 방침을 거스르는 열린 캐비넷같은 실수만 눈에 뜨였을 뿐입니다.
그 외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세세한 디테일들도 도가 지나쳤습니다. 예를 들자면 포르노 영화관에 모든 사건 관계자들이 모였었다는 상황이 굉장히 비중있게 설명되는데, 정작 사건과는 별로 관계가 없던 것 처럼요.

또 '누가 니콜라스를 죽였는지?'에 대해 흥미를 갖게 만드는 묘사도 부족합니다. 캐릭터들을 수상쩍게 그려내는데 실패한 탓입니다. 혼자 무언가 조사를 하고, 혼자 거짓말을 한 듯한 오글비 정도가 그나마 가장 수상해 보였을 뿐입니다. 그 역시 살해당하고 심지어 시한부 인생이었다는게 밝혀지면서 용의 선상에서 비교적 일찍 빠져나가기도 하고요. 1년여 밖에 못 사는 사람이 구태여 다른 사람을 죽일 이유는 없잖아요? 그 외의 다른 인물들은 대체로 수상쩍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아들 때문에 돈이 필요한 바틀렛 정도만 아슬아슬하계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여기에 더해, 모스의 매력에 푹 빠지는 중년 여성 모니카 캐릭터는 진부하고 평면적이었어요. 모스가 무슨 매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스에게 호감을 보이는 듯한 묘사는 억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니콜라스가 청각 장애인으로 독순술에 뛰어나서 시험 문제를 빼돌리는 비밀 대화를 알아챘다는 동기는 괜찮았습니다. 독순술로 사람 이름을 잘못 알아들었다는 착상도 아주 멋졌고요.
그런데 문제는 독순술과 시험 문제 유출 모두 전개 과정에서 비교적 쉽게 드러난다는 겁니다. 니콜라스의 전임자가 저질렀다는 것까지도요. 작가가 동기를 구태여 숨길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포르노 영화보다는 이쪽을 보다 정교하게 숨겨서 전개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니콜라스가 청각 장애인이라는걸 숨기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이 시리즈는 오랫만에 읽어보았는데, 초기작보다는 여러모로 부족했던 작품이었다 생각됩니다. 현대 수사물을 본격 추리물로 만드려니 생긴 억지들 탓입니다. 구태여 불필요한 수수께끼를 자기 멋대로 만들고, 멋대로 해결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2022/07/15

2022년 7월, 일본을 달군 '최강의 미스터리 소설 10선' 트윗

일본의 독서중독 블로거 히로타츠가 트위터에 올려서 화제가 되고 있는 글입니다. 2022년 7월 1일 기준으로 리트윗 4,9만회, 좋아요 19.6만회를 달성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군요. 히로타츠가 추리 소설 애호가 26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앙케이트를 바탕으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이 글 때문에 소개된 작품이 품절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고 해서 여러분께도 소개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대충 번역해서 가지고 와 봤습니다. 원글은 '이곳'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NS의 최강의 미스터리 소설 10선

1위 <<십각관의 살인>>
부동의 걸작

2위 <<모든 것은 F가 된다>>
지적쾌감의 난타에 뇌세포가 기뻐한다.

3위 <<점성술 살인 사건>>
미스터리의 여신조차 미소지을만한 트릭.
사람의 뇌수에서 떠올릴 수 있는 트릭의 한계점.

4위 <<살육에 이르는 병>>
아름다운 내장을 좋아하십니까? 최강의 그로테스크 순도 100% 미스테리.

5위 <<용의자 X의 헌신>>
최고의 작가가 쓴 최고의 이야기. 몇 번이나 이야기하지만 '최고'.

6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지구상의 미스터리 소설 중 올타임 베스트. 이 작품을 뛰어넘을 작품은 아마도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등장하지 못할 것이다.

7위 <<가위남>>
전대미문의 범인이 범인 맞추기 미스테리.

8위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희대의 트릭 메이커가 쓴 최고 걸작.

9위 <<영매탐정 조즈카>>
강렬한 일격.

10위 <<쌍두의 악마>>
독자를 아득히 뛰어넘는, 학생 아리스 시리즈 최고 걸작.


개인적으로는 7위 <<가위남>>을 빼고는 모두 읽었는데 (<<가위남>>은 영화로 감상했습니다), 솔직히 순위에 동의하기는 좀 어렵네요. 이런 랭킹은 언제나 그렇듯 그냥 재미로만 보시는게 좋겠습니다. 개인의 기준은 모두 다른 법이니까요.

2022/07/14

나의 히가시노 게이고 베스트 (2022년 7월)

지난 주말에 리뷰를 올렸던 <<사명과 영혼의 경계>>는 제가 올렸던 53번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리뷰였습니다. 53편이나 읽었으면 베스트 10편도 충분히 뽑을 수 있을 것 같아 한 번 정리해보았습니다.

의외로 별점 4점 이상의 작품은 없고 별점 3점을 준 작품만 15편이 있습니다. 평균 수준이라 할 수 있는 별점 2.5점으로 범위를 넓히면 모두 30편이고요. 타율은 준수하지만 장타력은 별로 없는 타자같은 느낌이네요. <<머니볼>> 이론으로는 그닥 영양가없는 타자인 셈입니다. 좋아하는 작가고, 많은 작품을 읽었지만 이제 다른 작가를 타선에 좀 끼워 넣어야 할 때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여튼, 별점 3점을 주었던 15편의 작품을 개인적인 순서대로 배열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악의>>
  2. <<용의자 X의 헌신>>
  3. <<수상한 사람들>>
  4. <<기도의 막이 내릴 때>>
  5. <<예지몽>>
  6. <<백야행>>
  7. <<신참자>>
  8. <<방과 후>>
  9. <<오사카 소년 탐정단>>
  10.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11. <<공허한 십자가>>
  12. <<녹나무의 파수꾼>>
  13. <<사명과 영혼의 경계>>
  14. <<명탐정의 규칙>>
  15. <<명탐정의 저주>>

앞으로 어떻게 순위가 바뀔 지는 모르겠지만, 2022년 7월 기준입니다~

2022/07/10

킹은 죽었다 - 엘러리 퀸 / 이희재 : 별점 1.5점

 

킹은 죽었다 - 4점
엘러리 퀸 지음, 이희재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택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퀸 부자는 여러 명의 남자들에게 습격당했다. 알고보니 군수 산업계의 거물 킹 케인 벤디고의 부하들로, 케인의 동생 아벨이 형의 살해 협박에 대한 도움 요청을 하기 위함이었다. 방법은 마땅치 않았지만 '워싱턴'의 지시도 있어서, 퀸 부자는 아벨과 함께 킹이 지배하는 섬으로 향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작은 도시였고, 킹은 그 섬의 독재자였다.
엘러리의 조사로 킹에게 보내진 협박장은 킹의 둘째 동생 유다의 짓이라는게 드러났다. 유다는 발각된 뒤에도 반드시 형을 예정된 시각에 죽이겠다고 말했기에, 퀸 부자는 완벽한 밀실 안에서 일하는 킹과 자기 방에 갖혀 있는 유다를 각각 범행 시각까지 직접 감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정된 자정 12:00, 자기 방에서 유다는 빈 총을 밀실을 겨냥해 쏘았고, 곧이어 킹이 밀실 안에서 총에 맞은채 발견되고 마는데...


엘러리 퀸의 장편 추리 소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 소개되었던 작품. 여름 더위를 잊어볼까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대를 놓아버린 '국명 시리즈'와는 다르게, 그래도 읽을만했던 '라이츠빌 시리즈' 와 이어지는 작품이기도 했고, <<밀실 대도감>>에서 소개된 불가능 범죄 상황이 정말로 호기심을 자아냈던 탓입니다. 밖에서 빈 총을 쐈는데, 밀실 안의 사람이 총에 맞는다니!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만화라 해도 설득력이 없어보일 설정들입니다. 군수 산업계의 거물로 전 세계적인 위세를 떨치는 킹 케인 벤디고와 그가 머무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섬에 있다는 어마어마한 제국에 대한 묘사는 황당함이 지나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어요. 일개 군수업자가 순양함과 잠수함 여러 척을 포함하여 육,해, 공군을 갖추고 있고, 비밀 섬은 아무도 그 위치를 모르지만 최소 몇 천~ 몇 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는 대도시 같다니까요. 후대 007 시리즈의 악당들 비밀 기지 정도는 애저녁에 능가해버리지요. 킹이 알고보니 남미 혁명과 2차 대전을 일으키게끔 획책했다는 뒷부분 설명도 어이가 없는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 작품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긴 것도 문제고요.
왜 이런 설정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어쨌건 킹이 밀실에서 살해당할 뻔한 트릭이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데, 과장이 지나치다보니 정통 본격 추리물과는 어울리지도 못하니까요. 007의 닥터 노 같은 빌런을 상상해서 이야기를 썼나 싶어 조사해보니 오히려 <<닥터 노>> 보다도 빨리 발표되었던데, 영문을 알 수가 없군요.

기대했던 밀실 트릭 역시 별볼일 없었습니다. "완벽한 밀실에서 한 남자가 총에 맞았는데 총은 밀실 안을 아무리 뒤져도 발견되지 않았다." 라는 상황인데, 정작 트릭은 "총을 잘 숨겨 두었었다!" 가 전부거든요. 즉, 엘러리 퀸과 퀸 경감의 수색이 실패했을 뿐입니다.
물론 유다 말고도 충신으로 보였던 아벨, 그리고 킹의 아내 칼라 모두가 공범이었다는 진상은 나쁘지는 않았어요. 총을 숨겼던 장치가 술병이라는 것도 유다가 섬 곳곳에 술병을 숨겨두었다는걸 사전에 잔뜩 설명함으로써 독자에게 잘 숨기고 있고요. 이 술병이 유일하게 밀실 밖으로 나간 물건이었다는 것 역시 독자에게 공정하게 설명합니다. 즉, '공정함'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탐정의 실수에 기반하고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워낙 커서 좋은 트릭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킹과 유다, 아벨 형제의 고향이었던 라이츠빌에서의 여러 증언을 수집하여 알아내는 동기도 괜찮은 편이지만, 지나치게 장황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단지 '수영을 잘해서 동생 아벨을 구해주었다는건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곁다리 이야기가 너무 많았어요. 또 앞 부분에서 킹이 수영을 못한다는걸 크게 강조한 탓에 독자들도 뭔가 이상하다는건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술병'처럼 정교하게 존재를 숨기는데 실패한 셈이지요.
그리고 킹이 과거 거짓말을 했다 한들, 그게 아벨의 살의에 불을 붙인 이유가 되는지는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차라리 유다처럼 킹이 악당이라서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는게 더 말이 될 것 같아요. 두 형제와 칼라가 손을 잡은 이유 역시 설명되지 않고요. 그녀가 킹을 두려워했다는 묘사는 있지만, 살인은 다른 이야기잖아요?

게다가 아벨과 유다, 칼라가 다시 킹을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하고 (이는 퀸 경감에 의해 바로 들통납니다), 섬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떠난 뒤 섬을 날려버리는게 결말은 제가 읽어왔던 작품 중 수위를 다툴 정도로 엉망이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자살로 위장해 죽일 수 있었는데, 왜 퀸 부자를 강제로 데려와서 기묘한 밀실극을 펼쳤을까요? 일부러 자기들 범행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아니었을텐데 말이지요. 이 결말 탓에 밀실 트릭의 존재 이유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나마 딱 한 가지, 유다가 범행 예고 시각에 자기 방에서 빈 총을 쏘고, 그 시간에 킹이 아내 칼라에게 총을 맞는 장면의 묘사만큼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유다를 감시하는 엘러리의 시점에서, 유다의 행동이 굉장히 광기어리게 묘사되어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이외수 작가의 <<꿈꾸는 식물>>에서 정신분열자인 둘째 형이 벽을 통과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단점이 워낙 많았기에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책을 읽고 굉장히 흥미가 생겨서 읽어보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아쉬움과 부족함이 더 많이 느껴지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유일하게 기대해 봄직했던 트릭마저도 시원치 않았으니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2022/07/09

사명과 영혼의 경계 - 히가시노 게이고 / 송태욱 : 별점 3점

사명과 영혼의 경계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송태욱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키는 아빠 겐스케가 대동맥류 수술을 받다가 죽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의사가 될 결심을 했다. 데이도 대학 의대를 졸업한 그녀는 아빠를 수술했던 니시조노 교수 팀에 소속되었고, 이후 엄마 유리에와 니시조노 교수가 재혼한다는 사실과 아빠가 경찰이었을 당시 추격하다가 교통 사고로 사망한 소년이 니시조노 교수의 아들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빠 죽음에 더 큰 의심을 품게 되었다.
한편 데이도 대학 병원의 간호사 노조미와 교제하고 있는 전자 기술자 나오이 조지는 노조미로부터 병원에서 아리마 자동차의 사장 시마바라 소이치로가 곧 수술을 받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모종의 계획을 시작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의학 드라마이자 범죄 스릴러물. 의학 드라마는 유키와 니시조노 교수 사이의 이야기에서 주로 등장합니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답게, '종합병원'같은 의학 빙자 연애물같은건 아니에요. 유키가 겐스케가 죽은게 정말 의료 사고였는지, 아니면 니시조노 교수가 유키의 엄마 유리에와 불륜 관계라서 아빠를 실수로 위장해 죽인건지, 아니면 아들의 복수였는지에 대해 추적하면서 독자를 고민에 빠트리기 때문이지요. 동기가 많은 탓에 진상도 굉장히 궁금하더라고요. 이렇게 여러가지 동기를 쌓아나가는 솜씨는 확실히 잘 나가는 작가다왔습니다.

의학 드라마로서의 가치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야기 핵심이 의사로서의 '사명'인 탓입니다. '사명'은 유키의 아빠 겐스케의 입을 빌어 "인간은 그 사람이 아니고는 해낼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데, 전개를 통해 니시조노 교수는 그의 사명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게 밝혀지게 됩니다. 어차피 겐스케 죽음의 진상은 유키가 절대로 알아낼 수 없었을 터라, 이런 식으로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전개와 결말 모두 독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끔 잘 그려지고 있어요.
이를 의학 드라마라면 반드시 클라이막스에서 보여줄 '위험한 수술의 성공' 이라는 전형적인 공식을 이용하고 있는데 아주 흥미진진했습니다. 조지의 테러로 수술의 성공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온갖 노력을 짜내어 시마바라의 수술을 이어가는 과정은 왠만한 모험 소설 못지 않은 긴장감과 스릴을 가져다 주는 덕분입니다. 이만큼의 노력을 기울이는 의사가 사람을 일부러 죽일리 없다는 설득력도 갖추면서요.

그리고 시마바라가 수술받을 때를 노려 병원을 정전시키는 조지의 계획이 펼쳐지는 부분이 범죄 스릴러물 부분인데, 여기서는 탁월한 장르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실력이 눈부시게 빛납니다. 조지의 계획이 아주 그럴듯 했던 덕이지요. 처음에는 단순히 심폐 소생기 전원만 건드리는 수준으로 보였지만, 나중에 조지가 일으켰던, 혹은 행했던 소소한 사건들 모두 - 대표적인 예는 처음에 기묘한 협박장을 보냈던 이유입니다. 자신의 계획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가 목적이었지요. - 타당한 이유가 있었으며, 계획 역시 굉장히 스케일 크고 잘 짜여진 것이었다는게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나나오 형사가 협박범의 진짜 목적은 시마바라 소이치로라고 생각하고, 수사를 벌여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전개되는 추리적인 부분들도 볼만했습니다. 나나오 형사는 범인의 동기를 밝혀내기 위해 아리마 자동차의 과거 과실을 조사했고, 단순히 과실 피해자가 아니라 과실로 인해 수술 골든타임을 놓쳤던 다른 피해자의 애인이었던 조지가 드러나게 되거든요. 과실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라서 처음에는 용의 선상에 오르지도 않았었는데, 간접적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아이디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유키가 조지의 얼굴을 살짝 보고 기억하고 있었다가 이를 나나오 형사가 가지고 있던 사진을 우연찮게 보고 떠올린다는 작위적인 요소는 조금 거슬리기는 했습니다만, 이 정도는 봐 줄만 하지요.

정체가 드러난 이후에도 조지가 본인 이름으로 숙박했던 호텔을 경찰이 덮쳤음에도 현장에 없었다는 식의 두뇌 게임도 볼만 했습니다. 경찰에게 정체가 발각날 것을 대비해서 미리 본명으로 추가 예약을 해 놓았을 뿐, 조지의 은신처는 따로 있었다는 공격을, 범인이 호텔 예약 시 특별한 '층'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증언을 통해 그 호텔은 저층에서는 데이도 대학 병원이 보이지 않으니 이건 위장이다! 라고 나나오 형사가 받아치는 식인데 재미있었어요.
조지가 전자 기술 전문가로서 만들어내는 여러가지 장치들도 설득력있게 묘사되고 있고요.

그러나 조지의 계획도 생각해보면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조지가 노조미를 유혹해서 사귀게 된 것은 언젠가 데이도 대학 병원에서 시마바라 소이치로가 수술을 받을거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시작된 것에 불과했다는 것 처럼요. 그리고 노조미가 수술실에 들여보내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할 속셈이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간호사를 유혹하려면 시간이 없잖아요. 또 수술 중 정전을 일으키는 테러를 일으킬 수 있었다면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쓰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폭탄 등을 설치할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했을텐데 말이죠. 시간이 필요한 계획을 세우다 보니, 결국 노조미가 감정에 호소하자 복수를 포기하고 말았으니까요. 여러모로 구멍이 많은 계획이었어요.
의학 드라마 부분에서 니시조노 교수가 유키의 엄마 유리에와 재혼을 앞두고 있다던가, 니시조노 교수 아들 사건과 같은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유키와 니시조노 교수간 갈등이 약해질테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이런 설정에 대한 분량도 필요 이상으로 길다고 느껴졌고요. 마지막에 조지와 노조미의 감동적인 엔딩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범죄 스릴러 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명성에 값하며, 의학 드라마로서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가져다 준다 생각됩니다.
 

이시하라 사토미 주연의 드라마도 한 번 보고 싶네요. 생각보다 스케일이 큰데 어떻게 구현했으려나....

2022/07/07

여태까지 나만의 존 딕슨 카 작품 순위

Dr. Gideon Fell

존 딕슨 카 작품은 훝어보니 국내 출간된 작품은 거의 다 읽은 듯 합니다. 그래서 리뷰를 올렸던 딕슨 카 작품들 순위를 꼽아보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총 12편 중 10편이 별점 3점 이상이었고, 별점 2.5점의 평작인 단편집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에도 별점 3점 이상의 작품이 무려 5편이나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추리 소설가 중 타율왕에 대해 알아보자"에 대한 글을 올렸던 적이 있는데, 존 딕슨 카는 이후에 7차례 더 타석에 들어섰는데도 빼어난 성적을 올린 진정한 타율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체 작품 평균 별점이 무려 3점이 넘으니까요.

제가 뽑은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공동 1위 : 별점 4점
<<해골성>>
<<유다의 창>>
<<흑사장 살인 사건>>
<<화형 법정>>

공동 5위 : 별점 3점
<<연속 살인 사건>>
<<세 개의 관>>
<<구부러진 경첩>>
<<벨벳의 악마>>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초록 캡슐의 수수께끼>>

공동 11위 : 별점 2.5점
<<모자 수집광 사건>>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
수록작 중
<<은빛 장막 속에서>>, <<합법적인 사형집행인>> 별점 4점
<<사라진 방>>, <<분장실의 시체>> :별점 3.5점
<<투명 인간 살인>> : 별점 3점

리뷰를 올리지는 않았지만, 과거에 읽었었던 <<황제의 코담뱃갑>>과 <<밤에 걷다>>도 다시 읽고 리뷰를 올려야 겠습니다. 제 기억에는 두 작품 모두 걸작이었으니, 평균 별점은 더 올라갈 것이라 생각됩니다.

2022/07/02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윌리엄 브리튼 / 배지은 : 별점 3점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6점
윌리엄 브리튼 지음, 배지은 옮김/현대문학
인기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답습하는 작품은 많습니다. 탐정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셜록 홈즈의 경우는 작가 사후에도 다른 작가들에 의한 시리즈가 계속되었고, 에놀라 홈즈와 같은 가족이 등장하는 스핀 오프에 각종 패러디와 파스티슈 물까지 합치면 그 수는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저 역시 <<경성 탐정록>>이라는 파스티슈 물로 숟가락을 얹었었지요.
문제는 누구나 다 아는 탐정이 등장하기에 별다른 변주를 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셜록 홈즈가 21세기에 환생을 하든, 이세계로 전생을 하든간에 그는 셜록 홈즈이니까요.

하지만 이 단편 시리즈는 이런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해결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그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 작품을 읽은 누군가가, 자기가 흠모하는 탐정을 따라해서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에 시대와 탐정역에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하거든요. 등장하는 탐정들 모두가 고전 정통 본격물 탐정들이라서, 모든 이야기들이 고전 정통 본격물에 어울리는 추리물이라는 것 역시 마음에 든 점이었고요. 작가 취향이 저와 비슷한게 확실해 보입니다.

물론 몇몇 작품들은 원래 탐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고전 정통 본격물 애호가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좋은 시리즈라는건 분명합니다. 뒤이은 수록된, 저자의 다른 시리즈인 스트랭 씨 시리즈 역시 고전 정통 본격물로서 나쁘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덕분에 오랫동안 겪고 있었던 고전 정통 본격물 금단 현상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11편이나 되는 "~를 읽은 남자" 리뷰를 쓰다보니 힘이 빠져서, 스트렝 씨 시리즈는 제일 괜찮았던 한 편만 소개드립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에드거는 존 딕슨 카 소설에 나오는 것같은 밀실을 만들어 삼촌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계획의 핵심은 벽난로였다. 삼촌을 살해하고, 깨끗하게 청소한 벽난로 굴뚝으로 빠져나온 뒤 난로에 불을 붙여 밀실로 만들 셈이었다...

아주 오래 전 읽었었던 작품. 존 딕슨 카하면 떠오를 '밀실'을 소재로 만든 작가의 처녀작입니다.
범인이 범행 계획을 앞 부분에 상세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도서 추리물' 형식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본격 추리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블랙 코미디에 가깝지요. 그래도 재미만큼은 나무랄데 없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
엘러리 퀸의 광팬 아서 민디가 머무는 양로원에서 위책 노인이 애지중지하던 10달러 금화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일한 용의자 데니슨이 그들 앞에서 옷을 벗기까지 했지만, 금화는 찾을 수 없었다...

엘러리 퀸 광팬이 <<퀸 수사국>> 속 <<마약 부서 검은 장부>>라는 작품을 인용해가며 추리를 펼친다는건 시리즈 설정에 딱 맞아 떨어지는데, 사실 아서 민디는 별로 엘러리 퀸같지는 않았습니다. <<검은 장부>>에서의 트릭과도 아무 관련이 없고요.
오히려 원전보다 추리적인 부분은 훨씬 낫습니다. 아서 민디는 데니슨의 뺨 상처가 벌어진 이유, 계단을 끔찍히 싫어하면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를 추리하여 진상을 밝혀내는데, 설득력 높은 완벽한 추리였기 때문입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의 교과서같은 작품으로, 제 별점은 5점입니다. Hall of Fame!

<<읽지 않은 남자>>
몬티는 친구 포드에게 벽돌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암실용 방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포드는 몬티의 아내 헬렌이 죽은 교통사고를 일으켰지만, 몬티는 그건 사고였다며 포드를 달랬다. 두 남자는 곧바로 벽을 쌓기 시작했고, 몬티는 포드에게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 코노서스 초이스 반 병을 건넸다...

포드는 헬렌이 갑자기 도로 한 복판으로 뛰어나와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몬티는 집 앞 우편함에 포드 차 페인트가 묻었다는 것, 그리고 현장 근처에서 버려진 위스키 병을 찾아낸 뒤, 포드가 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헬렌을 덮쳤다고 추리합니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 포드를 불러 벽을 쌓는 척 하고 암실 안에 가둬 버리고 말지요.

그런데 차 안에서 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고 당시 포드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판단한 수사 결과는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고를 일으킨게 분명한 포드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몬티를 당당하게 찾아온 경위, 그리고 제 발로 갇힌 방을 만드는데 참여한 것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요. 몬티는 포드가 에드거 앨런 포의 <<아몬티야도 술통>>을 읽지 않아서 이 함정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이건 책을 읽고 안 읽고의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애초에 위험한 상황에 제 발로 들어간게 문제거든요.

읽지 않은 남자라는 변주는 좋은 발상이었는데,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렉스 스타우트를 읽은 여자>>
카니발에서 "뚱뚱녀" 역할을 맡은 거트루드는 연기를 위해 렉스 스타우트 작품을 탐독하다가 빠져들게 되었다. 쇼 단원 중 거트루드가 딸같이 아끼던 뱀 조련사 릴리가 살해된채 발견되자, 거트루드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려 나서는데...

렉스 스타우트의 네로 울프와 뚱뚱하다는 점, 그리고 아치와 같은 조수(?)가 있다는 연결 고리는 가지고 있지만, 내용 자체는 렉스 스타우트, 그리고 네로 울프와 별 관계는 없습니다. 평범한 추리물이에요.
그러나 정통파 본격물로 보기에는 애매했습니다. 핵심 단서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반쪽짜리 메달에 적힌 BY-BY라는 글귀에 대한 단서 제공이 전무한 탓입니다. '비실이'라는 별명을 들으면 불같이 화낸다는 설정도 너무 후반부에서나 드러나서, 전개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제 별점은 2점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를 읽은 소년>>
시골 마을 라킨스코너에 벨기에 교환학생인 열 살짜리 천재 자크 뒤몽드가 찾아왔다. 자크는 마을 경찰 맥스 코리와 친구가 되는데, 어느날 라킨스코너에 수 명의 대학생들이 찾아와 기묘한 장난을 벌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생들이 노린건 희귀 우표였는데, 이걸 사다가 혹시 발각될까봐 다른 기묘한 사건을 벌였다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진상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도무지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마을을 들 쑤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러 명이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차례대로 원하는 우표가 나올 때 까지 우표를 그냥 사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났을테니까요. 독자가 뭔가 희귀 우표 관련된 사건이라고 쉽게 짐작 할 수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아울러 탐정역인 자크가 벨기에인으로 대화하다가 프랑스어를 섞으며, 심지어 10살 짜리가 있지도 않은 콧수염을 만지는 시늉을 한다는 식으로 포와로를 따라한다는 묘사는 심하게 억지스러웠습니다. 학생들이 노리던 우표는 인쇄 오류로 '콧수염'이 생긴 것 처럼 인쇄되었다는 것도 이러한 억지 포와로 따라하기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추리도 별 볼일 없었습니다. 시리즈 최악의 작품으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을 읽은 남자>>
테리 왓슨에게 대학 후배 대니얼 블래싱검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인데다가, 뚱딴지같은 내용이어서 이유를 알기 위해 왓슨은 편지 속에서 언급된 다른 인물에게 전화를 건 뒤, 워싱턴으로 호출되었다. 알고보니 블래싱검은 타국 대사관에서 암약하는 스파이로, 중요한 목록이 담긴 상자의 비밀 번호를 편지 속에 숨겨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왜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는지는 모른채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왓슨에게 보내진 엉뚱한 편지에 암호가 감추어져 있다는 설정은 흥미로왔습니다. 세개의 이어진 영어 알파벳이라는 암호도 단순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암호 때문에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결말이 아주 유쾌했어요. 암호는 "LMN"으로 이는 셜록 홈즈의 유명한 대사 - '엘레멘터리 왓슨 - 그건 기본이야 왓슨' - 를 떠올리면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LMN 테리 왓슨" 이 되니까요.
말장난이기는 해도,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었어야만 풀 수 있는 암호라는 점에서 시리즈 취지에도 잘 부합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체스터턴을 읽은 남자>>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애독자 케니 신부는 추찹한 사진을 밀매하다가 자살했다는 교구민 팀 해링턴의 장례 미사 문제로 주임 시부 고거티 신부와 언쟁을 벌였다. 그 뒤 고거티 신부는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내 보라며 케니 신부에게 하룻 동안의 유예를 주었다. 그리고 케니 신부는 사건 담당인 깐깐한 언셀 형사와 함께 방문한 사건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데....

브라운 신부 스타일의 탐정물이라기 보다는, 브라운 신부가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걸 증명하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특히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드러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차에 반사되는 햇살을 보고, 추잡한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려면 '커튼'을 쳤어야 했는데 현장이 그렇지 않은걸 눈치채는게 아주 자연스러웠거든요. 깐깐한 언셀 형사가 설득당한게 일리가 있다고 생각될 만큼 좋은 추리였습니다. 사진 배달부의 실수가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동기도 짧은 분량에 잘 드러나있고요.
여러가지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대사를 장황하게 펼치며 쉬운 말도 한번 더 꼬아서 말하는 브라운 신부와는 전혀 다른 신세대(?) 신부지만, 애정하는 브라운 신부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케니 신부 캐릭터도 마음에 드네요.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그 작품에 푹 빠졌다는 건 "~를 읽은 남자" 시리즈에 속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좋은 단편 추리물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대실 해밋을 읽은 남자>>
정년 퇴직 후 도서관에서 책 정리하는 잡무를 하게 된 프리처드는 어느날 도서관장 디컨 씨의 부름을 받았다. 추리소설 애호가 패러것이 도서관 이사회 회장 앤드루 킹과 건 내기 때문이었다. 패러것이 도서관 어딘가에 감추어 둔 책을 찾으면 그가 추리소설 초판본 컬렉션을 도서관에 기증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추리소설 매니아 프리처드가 앤드루 킹을 도와 패러것이 준 간단한 단서로 한 시간 안에 책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되는데....

아르바이트하는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취미를 이용해서 도서관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다는,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 추리 소설 매니아 프리처드 씨에게도 행운이 닥치는 결말까지도 아주 환상적이네요.

이야기의 핵심인 보물찾기 게임도 꽤 그럴듯하고,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인 독자는 풀이 과정에 동참하기 어렵다는겁니다. "3.14"가 적힌 봉투 안에 "더블 더즌", 그리고 "몰타의 매"라고 적힌 카드가 한 장씩 들어있는게 힌트였는데, "3.14" -> 파이는 "Pie"로 바꿀 수 있고, "더블 더즌"은 24, "몰타의 매"는 "매"가 소문자라서 말 그대로의 새를 의미하므로 "검은 새"가 되고, 이게 "파이 안에서 구워지는 스물 네 마리 검은 새"라는 동요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한국 독자에게는 쉽지 않은, 거의 불가능한 추리인 탓입니다.

그래도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조르주 심농을 읽은 남자>>
친구 해럴드와 함께 고가의 화물을 나르는 바니는 조르주 심몽의 메그레 시리즈를 탐독해왔다. 그들은 대저택에서 '라이트풋' 래리 쇼필드라는 고용인 앞에서 싣고 온 화물을 내려놓았다. 그는 별명 그대로 알록달록 화려한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러나 바니는 메그레 경감의 활약을 떠올리며,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고 확신하는데...

메그레 경감은 사실 대단한 추리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좀 우직하고,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부분이 많은 편이죠. 그러나 성실하고 꼼꼼한데다가 관찰력이 뛰어난데, 이 작품 속 바니 역시 관찰을 통해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는걸 알아내게 됩니다. 그는 래리 쇼필드가 절대로 다리를 꼬지 않고, 발바닥을 계속 땅에 대고 있는걸 눈치채거든요. 부츠를 갈아신었는데, 새것이라는게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단지 부츠가 새 것이라는게 그가 가짜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래리 쇼필드가 자기 입으로 흙길을 걸어 왔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부츠는 얼마든지 갈아 신을 수 있잖아요?
바니가 오지랖을 떨어서 쇼필드의 정체를 폭로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설령 눈치를 챘더라도, 현장을 벗어나 경찰에 신고하는게 당연했습니다. 현장에서 총을 든 상대방을 위협해가며 추리쇼를 펼칠게 아니라요.

이렇게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뜨이며, 메그레 경감의 특징을 잘 살린 것도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존 크리시를 읽은 소녀>>
에밀 프랫은 오랫만에 겨우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담당하고 있는 도킨스 사건 때문이었다. 영국인 도킨스는 미국으로 여행을 왔었는데,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도박으로 땄던 3천 달러 정도를 노린 범행이었다. 그는 죽기 전 경찰에게 "올드 피싱.."과 비슷한 말을 남겼다. 에밀 프랫의 딸 메릴리는 최근에 읽고 있는 존 크리시의 기디온 경정 시리즈에 나온 영국 코크니 말투가 해결의 실마리라는걸 아빠에게 알려준다....

기디온 경정의 활약보다는, 작품에 등장했던 영국 런던 토박이 코크니들의 은어가 단서가 된다는건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잉 메시지라는 억지스러운 설정에 더해 죽어가면서 은어를 써서 단서를 남길 이유가 설명되고 있지 않은 등,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다는건 아쉬웠어요. 당연히 한국인 독자로서는 추리하기도 힘든 내용이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를 읽은 남자들>>
역사 교사 폴 해스킬, 전화선 보수 기술자 재스퍼 지머먼, 대장장이 가브리엘 둔, 은행장 시드니 워윅과 메리 팅커 술집 주인 핀들레이의 다섯 명은 모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의 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메리 팅커 술집에 모여 "흑거미 클럽" 처럼 수수께끼 풀이 놀이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진짜 작은 마을 홀컴밀스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 놀이 속 수수께끼는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기자 에드거 바시가 진짜 수수께끼를 가져왔다. 마을 최대의 백화점 '밸류 투데이'의 사장인 마케팅 귀재 데이비 로터스가 천 달러가 들어있는 금고를 전시장에 공개하고, 금고를 열면 누구나 돈을 가져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비밀번호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수께끼였다. 아시모프 팬들은 각자 자신만의 추리를 들려주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에 대한 일종의 파스티슈 작품. 참석자들이 각자 내 놓는 추리들이 눈길을 끕니다. 감히 '흑거미 클럽'을 운운할 수 없는, 여러모로 부족한 추리들이었지만 각자의 직업과 전문 분야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잘 와 닿기는 했습니다. 마지막에 집사 헨리의 포지션인 술집 주인 핀들레이가 정답을 맞추고 천 달러를 얻는 결말도 좋았어요.
무엇보다도 밸류 투데이는 데이비 로터스의 철자를 가지고 만든 애너그램으로, 이를 이용하면 금고 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는 진상에 대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한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게 바로 정통 본격 고전 추리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인 독자에게는 쉽게 추리할 수 없는 내용이기는 했지만요.

여러모로 아시모프의 원전인 걸작을 잘 이해하고 쓴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 2부 스트랭 씨 이야기 -
<<스트랭 씨 여행가다>>

스트랭 씨는 단체 버스 투어로 캐나다 여행을 떠났다. 그의 옆 자리에 앉게 된 건 제리 수녀였다. 그리고 여행 도중 제리는 가판대에서 나무로 된 십자가를 구입했는데, 그 십자가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스트랭 씨는 귀국 직전 십자가 사건과 퀘벡에서 일어났던 은행강도 사건의 연관성을 추리해 내고, 버스에서 추리쇼를 벌이게 되는데...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인 고교 과학 교사 스트랭 씨 시리즈의 수록작 중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십자가를 '길포일' 이라는 여행객으로 변장한 은행강도 르클레어가 훔쳤던 이유는, 십자가를 포장했던 신문지 때문이었다는 추리가 특히 좋았습니다. 신문에 르클레어 사진이 실려 있었다는 이유는 십자가를 훔칠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요. 비록 프랑스어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고요. '알맹이보다 포장지가 중요하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왠지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해서, "~를 읽은 남자" 시리즈로 썼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은행강도가 도주를 위해 미국인 단체 여행객으로 변장한다는 아이디어도 국경에서 어떻게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렸습니다.

이렇듯 추리물로서 상당한 수작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못했고, 국내 소개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4편만으로 끝난게 못내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