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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9

쌍두의 악마 1,2 - 아리스가와아리스 / 김선영 : 별점 2.5점

 

쌍두의 악마 2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딴섬 퍼즐'사건 이후 정신적 충격이 심해 한 예술가들의 촌락 기사라 마을에 은둔중인 마리아를 데려오기 위해 에이토 대학 추리연구회 일동이 출동한다. 하지만 기사라 마을은 여러가지 이유로 외부인을 들이지 않기 때문에 추리연구회는 심야에 침투작전을 벌여 에가미 선배 홀로 겨우 침투에 성공하고, 아리스를 비롯한 나머지 연구회원들은 예술가 마을 바로 옆의 나쓰모리 촌락으로 후퇴한뒤 선배와 마리아를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기사라 마을의 화가 오노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잠시 남기로 한 에가미 선배의 전화를 마지막으로 심각한 폭우로 기사라 - 나쓰모리를 잇는 유일한 다리가 유실되고 전기와 전화마저 끊기며, 나쓰모리 마을에서도 카메라맨 아이하라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표 작가 중 하나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 작가의 두개의 시리즈 중 - 하나는 에이토 대학 추리 연구회 회원인 대학생 아리스가 화자로 등장하고 에이토 대학 추리 연구회의 대선배인 에가미 지로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학생 아리스"시리즈. 그리고 또 하나는 추리소설가 아리스가 화자이며 그의 친구이자 임상병리학자로 유명한 조교수 히무라 히데오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시리즈 - 학생 아리스 시리즈로 그간 읽어왔던 작가의 작품들 중 가장 긴, 800여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시리즈 작품답게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전작 설정과 유사하면서도 신본격 작가다운 고전적인 설정과 전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시골 마을의 폐쇄적 공동체와 이 공동체가 천재지변으로 고립된다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라는 것이죠. 그리고 연쇄살인극이라는 것도 전작들과 유사하고요.

그동안 예닐곱편의 작품을 읽어온 것에 따르면,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공정한 단서 제공과 합리적인 추리라는 장점과 작위적인 설정이라는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작가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장점이라 생각했던 추리적인 부분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대표작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요.
첫번째 사건부터 문제에요. 향수를 뿌릴 수 있는 사람이 야기사와 뿐이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어차피 우산 안이라면 접혀져 있을때 향기가 나지 않아서 은폐가 가능했을텐데 말이죠. 또 향수를 뿌리는 것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동굴 안에서 살해할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작중에서 설명되듯 그냥 동굴 입구에서 살해해도 되잖아요. 입구가 2개라서 어디서 나올지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죠. 향기에 의지해서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누군가를 미행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가능하더라도 피해자에게 발각될 위험성이 너무 높아요. 그러느니 차라리 50% 확률로 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계약에 따라 혐의를 벗겨주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 설정도 무리수였습니다. 여자 힘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라는 것은 가정일 뿐 현실적인 단서가 되기는 어렵죠. 이럴 바에야 확고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 것이 훨씬 나았습니다. 증거로 귀를 잘라낸다는 발상도 썩 와닿지 않았고요. 차라리 시체를 강물에 던져버렸으면 모든 것이 깔끔했을텐데 이래서야 범행을 위한 범행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계약서"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면 "귀"는 무가치하며 외려 범인에게는 불리한 증거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두번째 사건인 사진작가 아이하라 살인사건은 그래도 깔끔한 편이지만 저도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을 만큼 너무 간단하고 명쾌하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솔직히 추리적으로는 재미가 떨어졌습니다. 핵심 단서에 대한 정보제공이 너무나 공정한 탓에 용의자의 직업만 가지고도 범인을 특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로키의 팔레 이데알 이야기도 너무 많이 나와서 뭔가 사건에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하게 만들거든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트릭이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과 동일한 트릭이라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것도 아쉬웠던 점입니다. 그나마도 중간과정을 너무 대충대충 넘기고 있기도 하고요.

동기면에서도 오노야 당연히 누구나 죽이고 싶어하는 인물이라 열외이지만 (종유동에 벽화따위나 그리는 놈은 죽어도 싸지) 야기사와의 살의는 살인 말고라도 여러가지 방법 - 돈이나 필름을 회수하거나 하는 방법 - 이 있었을테고 세번째 살인 역시 무로키가 체포된다면 불필요한 살인이기에 무의미해 보여 별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고립된 기사라 마을에서 한정된 인물들 대상으로 범인이 결국 밝혀졌을테고 말이죠.

아울러 작가의 전통적인 단점 역시나 그대로입니다. 고립된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작중 설정부터가 억지스러워요. 특히나 몇몇 한정된 선택받은 사람들로만 구성된 외딴 마을의 예술가 공동체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죠. 예술가들이 이런 촌구석에 처박혀서 버틴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지나칠 정도로 "고립"에 집착하는 모습은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네요.

물론 기사라 마을 - 나쓰모리 마을 두개로 나뉘어져 전개되는 방식은 상당히 재미있고, 이렇게 두개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사건이 결국 하나로 엮인다는 결말도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기는 합니다. 사건도 모두 3건이나 등장해서 대장편다운 풍성함을 전해주고요.
또한 세번째 사건인 음악가 야기사와 살인사건은 주요 단서가 명쾌하고 설득력 넘치게 짜여진 잘 만들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트릭이라기 보다는 왜 X가 범인인가? 에 대한 설명이 핵심이지만 굉장히 합리적이고 깔끔하게 전개되고 있을 뿐더러 고전적이며 본격 추리소설같은 느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어요 . 구태여 변명하려면 변명할 수 있는 단서이기는 하지만...

결론내리자면 공정한 단서제공과 본격 추리소설다운 지적인 재미는 존재하나 하나의 장편으로서의 완성도는 그에 미치지는 못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벌려놓은 것에 비하면 알맹이는 빈약한 편이니까요. 엄청나게 긴 분량 역시 감점 요소였어요. 분량에 걸맞게 디테일하지도 못한데 차라리 조금 더 짧았더라면 훨씬 좋았을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물을 만들고자 노력한 작가의 노고에는 경의를 표합니다만 왜 이 작품이 대표작으로 인정받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제 생각에는 작가가 트릭과 추리적인 발상에 비하면 소설가로서의 글 쓰는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가 조금은 더 나아 보이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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