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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1

지도 위의 인문학 - 사이먼 가필드 / 김명남 : 별점 3점

 

지도 위의 인문학 - 6점
사이먼 가필드 지음, 김명남 옮김/다산초당(다산북스)

시대 별 중요했던 지도 22개를 선정하여, 그 지도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를 소개해 주는 인문학미시사잡학 (?) 서적. 각 지도별로 20~30 페이지 정도가 할당되어 자세하게 소개되기 때문에 5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합니다.
읽기 전에는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지도들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과 역사적 흐름을 알아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시대 지식인들의 세계관을 가장 잘 드러낸건 지도였을테니까요. 그런데 제 생각과는 좀 다르게 역사적 흐름 보다는 '지도' 그 자체에 집중해서 소개해주고 있더군요. 미술 사조에 빗대어 이야기한다면 사실주의 화풍에서 인상파, 입체파 등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훝어주며 대표작과 대표 작가와 함께 화풍이 변한 이유를 설명해 주기를 원했는데, 그냥 대표작만 소개되는 셈입니다.

물론 미대륙이 왜 '아메리카'가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설명처럼,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과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없지는 않습니다. 1507년 만들어진 '발트제뮐러 지도'에 '아메리카'라고 명기한 뒤 다른 지도 제작자들이 그 이름으로 대량 생산해서 지도를 유통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는 아메리고가 했던 거짓 주장을 발트제뮐러가 믿었기 때문으로, 발트제뮐러는 고작 3년 뒤 그 선택을 후회하고 아메리고의 이름을 본인 저작물에서는 삭제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고 합니다. 콜럼버스 입장에서는 통탄할 일인거지요.
덧붙이자면,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소개되고 있습니다. 1519년 정복자 코르테스는 멕시코 상륙을 앞두고 선주민 몇 명을 자기 배로 초청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곧 약탈하려는 장소 이름을 그들에게 물었죠. 한 남자가 "마 쿠바 단"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를 코르테스와 부하들은 "유카탄"이라고 알아듣고 지도에 그렇게 적었고요. 그로부터 정확히 450년이 흐른 뒤 마야어 전문가들 조사 결과 "마 쿠바 단 (Ma c'ubah than)'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라는 뜻이라는걸 밝혀냈다고 합니다. '캥거루' 이야기가 떠오르지요?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지만요.
그 외에도 빈 아프리카 지도를 통해 제국주의의 탐욕을 설명한 내용, 찰스 부스가 런던 시내를 사는 계층으로 구분했던 '런던 가난 지도'도 제 기대에 값하며, 그 양은 많지 않지만, 서구 유럽 뿐 아니라 중세 일본과 중국의 지도가 소개된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12세기 제작된 중국의 '우적도'는 지금 시점으로 보아도 으스스할 정도로 정확하다니, 중국이 얼마나 앞서가는 국가였는지를 또 다시 느끼게 해 주네요.

하지만 이렇게 역사적 흐름을 함께 알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지도 그 자체에 대한 설명에 치중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빈랜드 지도' 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 보면, 제 생각대로의 글이라면 빈랜드 지도를 작성했음직한 1,000년 경, 당시 바이킹들의 항해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분석하여 그들이 정말 미대륙을 방문했을지를 검증하는 내용이었어야겠지요. 그러나 이 책에서는 빈랜드 지도를 발견한 사람이 누구이며, 이 지도의 진위여부를 어떻게 검증했는지에 대한 내용 뿐입니다. 재미있는 내용임에는 분명하지만, 제 기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래도 다행인건, 이렇게 지도 자체에 집중한 덕분에 새롭게 알게된 내용도 많다는 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자면, 첫 번째는 매리 애시퍼드 살인 사건 때 사건 현장과 용의자 이동 경로를 자세하게 설명한 '살인 지도' 입니다. 지금은 신문 기사 등에 널리 활용되는 방식이고, 이 매리 애시퍼드 사건 지도가 첫 번째 살인 지도는 아니지만 이를 만든 사람이 영국 우편제도를 혁신한 젊은 시절의 롤런드 힐 경이었다는게 신기했습니다. 콜로라 유행 당시, 식수가 원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지도에 펌프의 위치와 근처 사망자를 함께 나타낸 존 스노의 지도는 말 그대로 '닥터 하우스'를 연상케 했고요.
보물 지도 이야기도 있습니다. '트리니나드 지도'와 같은 사기극, 보물이 묻힌 장소를 암호화하여 책 <<가면 무도회>>에 수록해서 발표했던 진짜 보물 지도 이야기 모두 아주 흥미로왔어요. 책에 삽입된 삽화 속 인물들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 시선의 방향을 연결하여 마지막 글자를 이어 붙여 문장을 만들고, 문장 앞 철자만 조합하여 키워드를 뽑아내는 방식인데 그럴듯 하더라고요. 마지막 암호를 풀었다는 사람도 책 저자의 전 여자친구의 증언을 통해 단서를 잡았다는 일종의 반전까지 완벽해서, 한 편의 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도를 만드는 기법에 대한 설명도 상세판 편입니다. 그래서 메르카토르 도법을 발명한 메르카토르와 그의 지도에 대한 설명, 그리고 메르카토르 지도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내용도 재미있었습니다. "구"를 "평면"으로 바꾸면 왜곡이 생기는건 당연하지만,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지도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는건 큰 문제니까요. 당연히 지구본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글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도를 읽는 방법에 대한 소개도 있습니다. 특히 남자가 여자보다 지도를 더 잘 읽는다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조사 결과가 아주 재미있었어요. 여자는 광범위한 2차원 공간보다 랜드마크에 더 의존하기 때문이며, 이는 과거 수렵을 담당했단 남자와 채집을 담당했던 여자 유전자의 차이가 아닐까라는 가설이 등장하는데 상당히 설득력있다 생각되었습니다. 채집은 지금도 그렇지만 '어디어디 무슨 소나무 밑' 처럼 지형지물에 의존해야 하니까요.
그 외에도 지도책을 뜻하는 '아틀라스'라는 말의 유래, 지도에 그래픽적 요소가 도입된 시기, 진정한 '거리 지도'의 시작, 여행용 가이드 맵의 유래 등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하며, 아우르고 있는 지도도 게임 속 지도와 지도를 사용했던 보드 게임까지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담고있는 정보의 질과 양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지도가 얽혔던 사건 설명은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습니다. 도입부인 제 2장, <<세계를 팔아넘긴 간 큰 남자들>>에 등장하는 '마파문디'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입니다.'마파문디'는 중세에 그려진 세계 지도를 통상적으로 일컫는 말로, 이야기 속 주인공은 1290년대에 영국 헤리퍼드에서 그려진 지도입니다. 하지만 온갖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는 설명 외에는 그 지도를 경매로 팔고자 했던 일련의 과정에 대한 설명이 더욱 자세합니다. 최소한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 정도는 설명해 주었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경매 이야기가 딱히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리고 뒤로 가면 갈 수록 지도보다는 기술에 집중하는 듯 한데 지루했습니다. <<카사블랑카>>와 <<인디애나 존스>> 등에서 사용된, 지도를 가로지르는 화살표로 등장 인물의 여정과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방식 소개는 재미는 있었지만 이게 지도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었고, GPS는 이미 일상이 되어서 구태여 책으로 설명을 봐야 하는 내용도 아니었거든요. 게임 속 지도에 대한 이야기는 책 방향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고요.

무엇보다도 지도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도판이 그닥 미려하지 않다는게 큰 단점입니다. 컬러였어야 하지만, 컬러 수록된 지도는 앞뒤 내지에 인쇄된 영국 지하철 노선도밖에는 없습니다. 접는 방식으로 확대 인쇄했어야 했는데 그렇지도 못하고요. 책 판형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지도 않아서, 세부를 보는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물론 이 책에 수록된 지도들은 대부분 인터넷 검색을 통해 큰 이미지로 확인할 수 있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아쉽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높습니다. 특정 항목은 담고있는 정보가 과하거나 심하게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크게 흠잡을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 류의 '잡학' 서적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1/01/30

가면병동 - 치넨 미키토 / 김은모 : 별점 1.5점

가면병동 - 4점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호자 없는 환자를 수용하여 치료하는 요양형 병원인 다도코로 병원에 어느날 밤, 갑자기 피에로 가면을 뒤집어 쓴 강도가 침입했다. 피에로는 추격하는 경찰을 피하기 위함이라며, 아침에는 사라질 거라며 1층을 장악했다.
원장 다도코로, 간호사 2명, 그리고 강도가 납치하여 데려온 가와사키 마나미라는 여대생과 함께 윗층에 갇히게 된 임시 당직의 하야미즈 슈고는 경찰 신고를 만류하는 원장과 간호사들에게 위화감을 느끼며, 마나미와 함께 탈출 및 신고를 시도하다가 다도코로 병원이 환자들 장기를 허락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식하는 불법 행위를 저질러왔다는걸 알아내었다.
그러나 간호사 중 한명인 사사키가 살해되고, 전화선 등이 모두 끊긴 상황에서 누군가 신고하여 출동한 경찰이 병원을 포위하게 되는데....

몰랐던 작가의 몰랐던 작품. 흥미로운 제목과 적당한 분량이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무려 50만부나 판매되었다는 실적도 눈길을 끌었고요.

그러나 여러모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내용이 뻔한 탓입니다. 특히 다도코로 병원이 장기 적출을 하여 판매하는 병원이라는건 초반에 이미 알 수 있었습니다. 초반부에 드러난 단서들 - 강도가 습격한걸 경찰에는 절대로 알리지 않고 싶어하는 원장과 간호사들의 행태, 병원과 걸맞지 않은 좋은 시설이 갖추어진 수술실, 보호자 없는 환자 여러명에게 한밤중에 장폐색이 일어나 집도된 전신마취가 필요한 대수술, 수술을 집도한건 원장 다도코로와 간호사 히가시노와 사사키 뿐 - 만으로도 쉽게 떠올릴 수 있지요. 피에로 가면을 쓴 남자가 단순한 강도가 아니라 이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잠입했고, 피해자로 보였던 미나미도 한패일 거라는 것도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독자가 다 알 만한 진상을 주인공 슈고만 모른다는 전개도 문제에요. 중반 이후, 슈고가 신장을 이식받은 환자를 발견하고 나서야 겨우 다도코로 병원의 추악한 행위를 알아챈다는건 답답함의 극치였습니다.
전개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억지스러운 부분도 많아요. 다도코로 원장이 피에로가 돈을 받으면 나간다는 말을 하자 곧바로 개인 돈이라며 3천만엔을 주는 장면이 대표적이지요. 돈만 받으면 얌전히 사라져 주겠다!는 강도의 말을 그렇게 쉽게 믿는다? 납득이 되나요? 그 말을 믿었다면, 애초에 돈을 안줘도 아침에 사라지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몇 시간만 참으면 되었겠지요.
슈고가 마나미와 1층 잠긴 문을 열고 수술실로 가서 전화하려고 시도하는 장면도 황당합니다. 마나미에게 도망가라고 하고 자기는 전화를 건다는데, 같이 도망가서 신고하면 되잖아요? 왜 어줍잖은 영웅 흉내를 내는걸까요? 경찰과 대치하다가 피에로가 진짜 목적을 드러내는 클라이막스에서 피에로가 다도코로 원장의 메스에 쓰러지는 장면도 어이를 상실케 했습니다.
이런 억지들에 비하면 실소를 자아냈던 하야미즈 슈고와 마나미가 순간적으로 불꽃이 튀는 묘사는 차라리 선녀라 할 수 있어요. 마나미가 슈고를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 일부로 유혹했다면, 말은 되니까요...
캐릭터들도 뻔하기는 마찬가지로, 처음 본 여대생을 위해 목숨을 거는 정의의 순정남 슈고를 비롯하여 자기 신변 안위를 지키기에만 급급한 다도코로 원장, 악당 피에로 가면 캐릭터도 예외없이 뻔하기 그지없는 스테레오 타입입니다. 의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마나미가 진짜 흑막으로 피에로를 조종해 범행을 저질렀으며 모든 관계자들을 사살하고 도주했다는게 진상이자 결말만큼은 제법 볼 만 했습니다. 핵심은 피에로가 원장과 간호사를 사살하고 자살했으며, 슈고가 이야기한 마나미라는 환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건 2 번이나 기절했던 슈고의 착각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마나미의 트릭입니다. 그녀가 원래 다도코로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에, 사건 후 경찰이 환자들을 조사했을 때에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그녀가 장기 이식을 위해 신장을 빼앗긴 피해자로 복수를 위해 모든걸 꾸몄다는 동기도 합리적입니다. "사랑 애" 자에 아름다울 미 자를 써서 '마나미'" 라고 한다는 이름도 진료차트 속 신장 이식 피해자 중 한명인 '가와사키 13'에서 따온 - 13 -> I3 -> I 는 '아이 (愛)'로 일본어 발음 '마나', 3은 일본어로 '미'- 일종의 애너그램 비슷한 암호였다는 디테일도 괜찮았고요.
그리고 작가가 실제로 의사라는데, 그래서인지 병원에 대한 설명과 여러가지 수술과 치료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은 깔끔하면서 설득력 높습니다. 이는 분명한 장점이지요.

하지만 이 결말 이전 전개가 뻔하고 한심한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장기 이식에 대해 길게 풀어가지 말고, 비밀을 진작에 눈치챈 슈고가 원장과 피에로 가면 양쪽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꾸미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함께 했던 마나미가 진범이었다면 좋은 반전이 극대화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2021/01/29

빵의 지구사 - 윌리엄 루벨 / 이인선 : 별점 2.5점

 

빵의 지구사 - 6점
윌리엄 루벨 지음, 이인선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얼마 전 <<향신료의 지구사>>를 읽고 탄력받아 한권 더 집어든 '지구사' 시리즈. 이 시리즈도 이제 8번째 리뷰입니다. 시리즈 완독까지는 두 권 남았네요.

그 동안 읽었던 '지구사'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커리의 지구사>> 였습니다. '커리'가 무엇인지에서 시작해서, 커리의 역사와 세계화된 과정, 대표적인 커리 요리까지 화려한 도판과 함께 짤막하면서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리즈 다른 책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고요.

물론 아주 건질게 없는건 아니에요. 특히 이 언제, 어디서 생겨났는지?에 대한 설명은 마음에 듭니다. 어떤 빵을 어떻게 만들었을지에 대해 관련 사료를 통해 잘 알려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특히 농경 생활을 택한 뒤 빵을 먹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수렵과 채집 생활에 비해 부정적이었다는 시각이 독특했습니다. 예를 들어, 장 자크 루소는 농경 도입으로 노예 제도가 생겨났다고 주장했고, 창세기를 다룬 구약 성경과 유대 신화에서도 농업은 부정적이었다고 하네요. 최초의 농부였던 카인은 가장 처음 살인을 저지르고, 하느님에게 거짓말을 하며, 비자발적 노역으로 도시를 세운 인물로 그려졌기 때문이랍니다. 유대 신화에서는 불신의 상징인 저울과 자를 끌어들였고요. 그럴듯하죠?
하지만 농경 생활은 필연적이었고, 결국 이 덕분에 문명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이를 '빵'과 연결하여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우르크 발굴 결과를 토대로 한 설명입니다. 기원전 3200년경, 이라크 남부 지방에서 농경지에 효과적으로 물을 대는 중앙관개농법이 발달하면서 '잉여 생산물'이 쌓이게 되었고, 그 덕분에 전 인구가 농사에 매달리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으며, 결국 분업과 전문화가 진행되어 인구가 3만명에 달하는 대도시로 진화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고대 빵 역사에 대한 자세한 서술에도 불구하고,밀의 종류, 배합, 이스트의 종류 등을 모두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어서 현재 어떤 빵인지 재현하는건 어렵다고 하는 주장도 독특했습니다. 고대 이집트, 로마 시대 등 빵에 대해 많은 자료가 남아 있는 시대 모두 마찬가지라고 하니 신기하네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재현이 가능한 빵은 근세시대 (1500년 이후)에 처음 등장한다는군요.

이러한 빵의 탄생 이후는 부자와 빈자가 빵으로도 구분되는 시기에 대한 설명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버스 마컴의 <<영국 주부>> (1615) 속 하류층 농장 노동자를 위한 갈색 빵 레시피가 아주 충격적이기 때문이에요. 특징은 완두콩 가루를 섞은 것인데, 놀랍게도 저자 마컴이 경주마에게 먹이는 빵보다도 못한 빵이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그 뒤 재료, 맛 모두가 별로였던 하위 계층의 빵은 당연히 상위 계층은 거부해 왔는데. 이 현상이 빵의 역사를 이끌었다고 보는 저자의 주장은 잘 와 닿지는 않습니다. 16세기 ~ 18세기 흰 빵은 부의 상징이며 갈색 빵은 가난의 상징으로, 이런 상징은 저도 당시를 다룬 소설 등에서 많이 접해보았었습니다. <<하이디>>에서도 '하얀 롤빵'이 선망의 대상이었죠?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호밀빵을 멀리하는건 현대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이건 모든 식품, 사치품, 기호품에 해당되는 내용이 아닌가 싶어요. 구태여 '빵'에 한정지을 이유는 없습니다.
또 맛있는 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도 별로에요. 밀가루의 종류, 발효 방법, 설탕을 넣는지 소금을 넣는지 등 다양한 빵 제조법을 소개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설명은 깔끔하지만 기대했던 지구사적인 설명은 아니었거든요. 좀 더 빵의 역사에 대해 파고들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 뒤의 세계의 빵 소개는 더욱 실망스럽습니다. 그냥 국가별 빵 몇가지가 등장할 뿐이며, 미래의 빵도 자가 제조 기계가 발전하고 공장제 빵도 진화할거라는 일반적인 이야기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제 특성상 유럽 중심의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약점이에요.

다행히 부록처럼 수록된 주영하의 한국 빵 역사가 실망을 조금은 만회해 줍니다.조선 시대 이기지가 청나라 연행길에 먹었던 카스테라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일제 시대 널리 퍼졌던 빵 문화가 해방과 6.25 후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잘 요약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제과제빵의 거목인 삼립 식품과 크라운 제과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아주 나쁘지는 않고, 얻을게 없지도 않지만 제목처럼 빵의 범지구적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2021/01/24

추리 소설 1,000편 리뷰 분석

추리 소설 1,000번째 리뷰 등록!

염원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 올리기를 달성했습니다.
1,000편의 리뷰를 작성하면서, 책 한 권을 출간하는 소기의 성과도 있었지요.
1,000편 업로드 기념 및 개인적인 자료 정리 차,
여태 읽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에 대한 간략한 데이터를 정리하여 공개합니다.

리뷰 갯수 : 1,000
당연하겠지요?

책 권수 : 1,049권
<<브라운 신부>>나 <<크리시>> 리뷰와 같이 여러 시리즈를 한 편 리뷰에서 정리한 경우도 있고, <<그것>> 처럼 작품 한 편이 여러권으로 이루어져 있어도 리뷰 한 편으로 소개한 경우가 많아서 권수는 더 많습니다.

책 종수 : 1,008종
권수가 많은 이유에 더해, 중복하여 작성한 리뷰도 있어서 이를 빼면 최종적으로 리뷰한 책은 총 1,008종입니다.

국가별
일본 454, 영미 394, 한국 63, 프랑스 29, 독일 13, 그외 55
예상대로 일본 작품 비중이 거의 절반 가까이이며, 영미 작품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85%가까이 되는 압도적인 비중입니다. 국내 출간되는 작품들과 제 취향을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장르별
본격물 성향 작품 리뷰가 357, 스릴러는 229, 경찰/수사 127, 일상계가 80, 호러 73, 하드보일드 69, 역사 추리 55, 모험물 54 순입니다.
본격물을 좋아하는 제 취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장르 불문하고 단편집은 137편의 리뷰를 작성하였고요.
참고로 본격물이면서 수사물인 작품이거나, 본격물이면서 일상계인 작품 등 키워드는 중복하여 체크된 결과입니다.

별점별
경성탐정록 두 편은 제외한 총 1,006 종의 책 별점 분포는 아래와 같습니다.
5점 : 4, 4.5점 : 7, 4점 : 71, 3.5점 : 48, 3점 : 271, 2.5점 : 259, 2.4점 : 1, 2.3점 : 1, 2점 : 227, 1.5점 : 88, 1점 : 26, 0.5점 : 1, 0점 : 1, 없음 : 1

평균 이상 별점인 2.5점 이상 작품이 660종으로 전체의 2/3를 차지합니다. 꽤 괜찮은 작품들을 읽어왔었다는 의미지요. 나름 뿌듯하네요.
별점 5점을 받은 작품, Hall of Fame만 별도로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9마일은 너무 멀다>>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도끼>>
<<특별요리>>
* 특별요리는 2003년도 동서 버젼이었고, 2015년에 다시 읽었던 엘릭시르 버젼은 별점 4점이었습니다.

참고로 책 별점과는 별개로, 단편집 단편별 중 별점 5점을 받았던 단편은 아래와 같습니다.
<<살의>> (in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 <<결산>>, <<위험천만한 게임>> (in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우체국에서 생긴 사건>> (in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사기꾼의 카드>> (in <<클로버의 악당들>>)
<<새>>, <<성모상>> (in <<대프니 듀 모리에>>)
<<국화의 먼지>> (in <<저녁싸리 정사>>)
<<죽음>> (in <<악몽을 파는 가게 1>>)
역시나, 저의 고전 본격물 취향이 잘 드러나네요.

작가별
1. 작가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히가시노 게이고 : 48
2. 애거서 크리스티 : 33
3. 요네자와 호노부 : 21
4. 스티븐 킹 : 18
5. 마쓰모토 세이초 : 16
5. 엘러리 퀸 : 16
7.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
8. 요코미조 세이시 : 12
9. 와카타케 나나미 : 11
10. 아리스가와 아리스 : 10
10. 에드 멕베인 : 10
12. 미쓰다 신조 : 9
12. 아서 코난 도일 : 9
12. 조르주 심농 : 9
12. 시마다 소지 : 9
16. 다카기 아키미쓰 : 8
16. 미야베 미유키 : 8
18. 에도가와 란포 : 7
18. 노리즈키 린타로 : 7
18. 도진기 : 7
수많은 작가가 있지만, 공통 18위 까지만 선정합니다. 일본, 영미 작가가 많은건 국가별 순위와 동일합니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심농이 12위에, 한국작가 도진기가 18위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네요.

2. 작가별 평균 별점 순위 (5권 이상 작품을 읽은 경우)
1. 콜린 덱스터 : 6권 리뷰, 평균 별점 3.6666...
2. 로스 맥도널드 : 5권 리뷰, 평균 별점 3.6
3. 기리노 나쓰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3. 모리스 르블랑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5.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권 리뷰, 평균 별점 3.269...
6. 미쓰다 신조 : 9권 리뷰, 평균 별점 3.055....
7. 딕 프랜시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
8. 다카기 아키미쓰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8. 미야베 미유키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10. 마쓰모토 세이초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84375
11. 와카타케 나나미 : 11권 리뷰, 평균 별점 2.8181...
12. 우타노 쇼고 : 5권 리뷰, 평균 별점 2.8
13. 요코야마 히데오 : 6권 리뷰, 평균 별점 2.75
14. 코넬 울리치 : 5권 리뷰, 평균 별점 2.7
15. 아서 코난 도일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조르주 심농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기시 유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8. 엘러리 퀸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65625
19. 미치오 슈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83333
20 애거서 크리스티 : 33권 리뷰, 평균 별점 2.5757576
21. 에도가와 란포 : 7권 리뷰, 평균 별점 2.5714286
22. 요코미조 세이시 : 12권 리뷰, 평균 별점 2.541...
23. 미카미 엔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
비슷한 주제로 13년 전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순위가 대폭 바뀌었네요. 최소 2권 이상의 작품을 읽은 작가는 114명, 어느정도 평균을 낼 수 있는 수치인 5권 이상 읽고 리뷰를 남긴 작가는 33명입니다. 이 중 평균 2.5 이상 별점을 유지한 작가는 콜린 덱스터 외 24명입니다. 프로야구로 따지면, 1군 소속 선수의 72% 정도가 평균 이상이었던 셈이니 굉장히 훌륭한 성적이지요. 25명에 들지 못한 8명 중에서도 요네자와 호노부, 시마다 소지, 스티븐 킹, 아리스가와 아리스 등은 평균 2.4점대로 아쉽게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명성이 있는 작가는 확실히 이름값을 한다는 증거죠.
가장 많은 작품을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평균 별점은 2.32점인데,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유명한 대표작, 걸작만 추려서 읽은 경우는 별점이 높을테고 많이 읽을 수록 평균 별점은 불리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크리스티 여사님 평균 별점이 비교적 낮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위권을 살펴보면, 5권 이상 읽은 작가 중 꼴찌는 6권 평균 별점이 2.083점인 니시무라 교타로, 전체 꼴찌는 읽은 작품 4권 별점 평균이 1.1점에 불과한 제임스 패터슨이었습니다. 니시무라 교타로는 모르겠지만, 두 번 다시 제임스 패터슨 작품을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

탐정별 (5권 이상 읽은 작품만 뽑아봅니다)
1. 탐정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에르큘 푸아로 : 15권 리뷰
2. 엘러리 퀸 : 13권 리뷰
3. 셜록 홈즈 : 12권 리뷰
4. 긴다이치 코스케 : 11권 리뷰
5. 가가 (학생 ~ 형사) : 10권 리뷰
6. 87분서 : 9권 리뷰
7. 메그레 경감 : 7권 리뷰
8. 고전부 : 6권 리뷰
8. 기디온 펠 박사 : 6권 리뷰
8. 노리즈키 린타로 : 6권 리뷰
8. 모스 경감 : 6권 리뷰
8. 히무라 히데오 : 6권 리뷰
13. 미스 마플 : 5권 리뷰
13. 미타라이 기요시 : 5권 리뷰
13. 시오리코 : 5권 리뷰
13.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5권 리뷰
2. 탐정별 평균 별점 순위
1. 모스 경감 : 3.66666
2. 셜록 홈즈 : 2.958333...
3. 기디온 펠 박사 : 2.9166...
4. 엘러리 퀸 : 2.6923...
5. 긴다이치 코스케 : 2.6363...
6. 시오리코 : 2.6
7. 고전부 : 2.58333
8. 메그레 경감 : 2.5714...
9. 가가 (학생 ~ 형사) : 2.55
10. 에르큘 푸아로 : 2.5
10. 미스 마플 : 2.5
10. 미타라이 기요시 : 2.5
13. 87분서 : 2.4444...
14. 히무라 히데오 : 2.41666...
15. 노리즈키 린타로 : 2.25
16.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2.2
입니다. 원탑 모스 경감 밑으로 셜록 홈즈, 기디온 펠 박사까지는 평균 이상의 빼어난 별점을 자랑합니다. 확실히 탐정은 영미권 탐정이 더 제 취향이라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로서 간략하게 추리소설 1,000편의 리뷰에 대한 요약 정리를 마칩니다.

2021/01/23

추리 소설 1,000번째 리뷰 등록!

2003년 첫 리뷰 <<빙설의 살인>>에서부터 시작한 추리소설 리뷰가 2021년 1월 23일 오늘 <<주석 달린 셜록 홈즈 6>>으로 드디어 1,000번째 리뷰를 채웠습니다! 추리 소설 1,000권을 읽고 리뷰를 쓰는게 이 블로그 개설 당시부터 목표였었는데, 2003년 2월에 개설했으니 약 17년, 6,258일만에 목표를 달성했네요.
900번째 리뷰였던 2019년 8월 4일 <<조용한 무더위>로부터는 1년 5개월, 17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이전보다 무려 9개월이나 단축되었는데, 작년 리뷰 결산에서 말씀드렸듯 코로나 사태 탓입니다. 집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지요.

1,000개의 추리소설 리뷰를 쓰는 동안 누추하고 마이너한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리뷰는 쓰면 쓸 수록 힘들고, 최근 방문자 수도 급감한데다가 이글루스 에디터 동작도 엉망이고, 도서 리뷰는 글을 올려도 제대로 노출도 안되는 등 블로그 운영에 대해 이전과 같은 의욕을 발휘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도 2,000개의 추리 소설 리뷰를 향해 달려 봐야죠.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힘 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블로그에 찾아주시고, 관심과 댓글로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나저나, 이제는 블로그 이름인 "추리소설 1000권 읽기! hansang's world"도 바꿔야겠네요. "추리 소설 천 권 이상 읽은, hansang의 리뷰 세계"가 어떨가 싶은데, 다음 리뷰 올릴 때 까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림은 11년 전 EST님이 보내주셨던 <블로그 6주년 축전>을 이용한 것인데 EST님께 특히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추리소설 900번째 리뷰 등록

주석 달린 셜록 홈즈 6 - 아서 코난 도일, 레슬리 S. 클링거 / 인트랜스 번역원 : 별점 2.5점

주석 달린 셜록 홈즈 6 - 6점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아서 코난 도일 원작/현대문학

드뎌, 주석 달린 셜록 홈즈 마지막 권을 읽었습니다. 1권을 읽고 리뷰를 올렸던게 2009년 3월이니 11년 걸려서 다 읽은 셈이네요. 감개무량합니다.
물론 다른 판본으로 다 읽었던 작품들이기는 합니다. <<바스커빌 씨네 사냥개>>는 11년 전에 이미 리뷰도 올렸었지요. 그래도 이 판본은 '주석'과 화려하고 다양한 도판을 보는 재미가 크니, 그런 관점에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작품 <<바스커빌 씨네 사냥개>>는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작품 탓은 아니에요.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도 걸작이라고 하기 충분한, 뛰어난 작품이니까요. 기대했던 주석과 삽화도 풍성하고요. 특히 모티머 박사가 런던에서 외과대학 박물관을 둘러보았다는 대사에 달린, 외과대학 박물관에 대한 긴 주석이 인상적이었어요. 존 헌터의 개인 수집품을 영국 정부가 구입하여 만들어진 장소라는데, 존 헌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의 대니얼 버턴과 똑같았기 때문이지요. <<열게되어 영광입니다>>에 추가되어도 좋을 주석이라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이니셜이 L.L인 여자 로라 라이언스가 처음 언급되는 장면에 달려있는, 로라 라이언스가 1976년 2월 '플레이보이' 모델이었다는 주석은 이 책 주석의 방대함을 상징하는 주석이기도 하고요.
아래와 같은 홈즈가 머물렀을 움막과 비슷한 움막 구조도 등 삽화 외의 도판도 흥미로운 자료였어요.

그렇다면 뭐가 문제냐, 바로 번역입니다. 제목부터가 조금 미묘해요. '바스커빌 씨' 라니요? '바스커빌 가문' 이라고 해야 옳았습니다. 그 외 사소하고 자잘하지만 미려하지 못한 번역들이 눈에 많이 거슬렸어요. 한가지만 예를 들어볼께요. '우정에서 나온 필요성과 훌륭한 형사의 지배적인 성격 때문에 왓슨이 홈즈의 질문에 단순한 사실 진술로 대답하고 싶은 극도의 유혹에 굴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는 175번 주석의 긴 문장을 한 번 보세요.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대충 넘어간 설명도 너무 많습니다. 모티머와 헨리 바스커빌 경이 했다는 카드게임 에카르테에 대한 주석이 대표적입니다. 게임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었기 때문입니다. "32장으로 된 피케 카드를 사용하며, 각 수트의 7부터 킹까지에 에이스를 더해서 구성되어 있다. 각 카드의 가치는 휘스트와 비슷하나 킹은 휘스트에서의 잭이나 에이스, 10보다 랭킹이 더 높다..." 라고 설명되는데, 수트는 뭐고, 휘스트는 뭔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이래서야 '주석'이 '주석'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지요.

다행히 <<공포의 계곡>> 번역은 훨씬 낫더군요. 최소한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은 별로 없었습니다. 전체 분량의 2/3를 차지하는 19세기 후반, '맥도너'가 '죽음의 계곡'에서 악당 조직을 붕괴시키기 위해 싸웠던 모험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었고요. 19세기 후반 탄광 지대를 장악한 악의 조직,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설정, 묘사가 상세하며, 더글러스이자 버디 에드워즈이자 맥머도인 주인공의 활약도 생생하게 잘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펜실배니아 탄광 지대에서 실재로 광부들을 좌지우지했던 '몰리 머과이어스'와, 그들을 붕괴시키기 위해 몰리 머과이어스에 잠입해 활약한 핑커턴 탐정 사무서 탐정 제임스 맥팔런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각색한 덕이겠지요.
정황상 맥머도가 스코러즈를 붕괴시키기 위해 잠입한 탐정일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끝까지 숨겼다가 한 번에 터트리는 코난 도일 경의 솜씨도 돋보이고요. 핑커턴 탐정이 악당 조직을 괴멸시키기 위해 스스로 악당이 된다!는 이야기는 콘티넨털 옵과 같은 하드보일드 탐정 모험물의 원조로 보아도 무방할거 같아요.

하지만 문제는 '셜록 홈즈'라는 이름에서 기대해 봄직한 추리 측면에서 볼만한 내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모험 이야기는 물론,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앞부분 1/3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셜록 홈즈가 아령이 하나만 있는게 이상하다며 이를 통해 증거를 찾아내는, 추리적으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납득이 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어요. 바벨 플레이트 중 특정 무게가 한 개만 비어 있었다면 모를까, 아령이 한 개만 있어도 양쪽 근육을 단련하는데에는 큰 문제가 없잖아요? 2개를 한꺼번에 사용하는게 발표 당시의 상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해가 되는 추리는 아니었습니다. 주석에서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더글러스가 자기를 죽이려 온 테드 볼드윈을 죽인 뒤, 시체에 옷을 입히고 자기가 죽은걸로 위장했다는 진상도 지금 읽기에는 많이 진부했어요. 그리고 계속되는 악의 조직으로 부터의 암살 기도를 막기 위해 연극을 벌인 거라는데, 이것도 말이 안됩니다. 테드 볼드윈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조직도 이상하다고 생각할게 뻔하니까요.

그리고 실화 바탕으로 설득력이 넘치던 맥도너의 과거 활약에 비해, 배후에 악의 조직이 있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죽음의 계곡을 지배하는 악의 조직 '스코러즈'의 모태인 프리맨 조직의 다른 지부는 모두 정상적인 단체라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코러즈가 와해된 뒤에는, 조직적으로 복수를 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몰리 머과이어스에 잠입하여 붕괴시켰던 핑커턴 탐정 사무소 탐정 제임스 맥팔런은 은퇴한 뒤 편안히 천수를 누렸다고 하지요. 맥도너의 모험 이야기를 드러내기 위해 코난 도일 경이 만들어낸 설정이겠지만, 여러모로 무리수였습니다. 차라리 테드 볼드윈의 개인적인 복수였다는게 더 설득력이 높았을 거에요.

아울러 이 시리즈에서 기대해 봄직했던 화려한 도판도 부족한 편입니다. 주석 외에는 다양한 출판물에 수록되었던 삽화들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영국과 미국 버젼의 문장, 단어 차이에 대한 언급이 주석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아쉬웠고요.

그래서 두 편 모두 종합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공포의 계곡>>은 추리적으로는 조금 아쉽지만 작품 완성도와 재미에 대해서는 따로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별도로 '주석달린' 책을 구입할 만한 가치가 부족하기에 감점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부실한 번역들, 그리고 기대했던 부가적인 정보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황금가지 등 일반 출판사의 제대로 된 번역본을 읽는게 훨씬 나은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2021/01/22

채소의 인문학 - 정혜경 : 별점 2점

 

채소의 인문학 - 4점
정혜경 지음/따비

한민족, 한식과 채소의 관계를 다룬 식문화인문학 서적.
한국인이 채소를 언제부터 먹어왔는지, 누가 먹었는지, 채소가 등장하는 콘텐츠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1부 <<한국인에게 채소는 무엇인가>>는 아주 재미있고 유익했습니다. 채소별로 주요 특징과 역사를 소개해 주는 2부 <<한국인의 상용 채소 이야기>>또 나쁘지 않았고요. 몇가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리자면, 우선 단군 신화 속 쑥과 마늘 중 마늘은 시기적으로 보아 달래나 명이나물일거라는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마늘은 이후 중국으로부터 들어왔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채소가 일찍부터 재배가 일상화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네요. 고려 후기 이규보가 '가포육영 (집 채마밭에서 지은 여섯 수의 시)'이라는 제목으로 오이, 가지, 순무, 파, 아욱, 박에 대한 시를 읆을 정도로요. 거래도 활성화되어 있어서, 조선 후기에는 본격적으로 상품화되어 널리 판매되었다는군요. 우하영이라는 학자는 "미나리 두 마지기를 심으면 벼 열 마지기 심어서 얻는 이익을 올리고 채소 두 마지기를 심으면 보리 열 마지기를 얻어 수확하는 이익을 올릴 수 있다"라고 기록했다는데, 미나리가 엄청 고급 채소였나 봅니다.
이어지는 조선에서의 채소 인기를 알려주기 위해 소개되는 여러 유명인물들의 글과 삶도 상세해서 자료적 가치가 높습니다. 율곡 이이는 동초를 좋아했다던가, 허균의 <<도문대작>>속 많은 채소들을 소개하는 식입니다. <<도문대작>> 속 방풍싹을 쌀가루에 넣어 끓이는 방풍죽은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다산 정약용도 강진 유배 시절 두부, 부추, 아욱국과 미역국, 녹차를 즐겼다고 하고요.

<<토지>>, <<미망>> 등 여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흥미로왔습니다. 이 중 <<미망>>에서 할아버지가 이야기해 주는 '삘기'라는 간식거리가 인상적이었어요. 띠의 새로 난 순으로 뽑아서 씹으면 껌처럼 질겅질겅하게 씹히며 달짝지근한 물이 나온다고 소개되고 있는데, 그 맛이 실로 궁금합니다. 현대가 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게 정말 많다는 생각도 함께 드네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싱아는 줄기와 잎에서 신 맛이 나는 채소라고 하고요. 그 외 <<식객>>과 <<대장금>>까지, 다루고 있는 콘텐츠의 폭도 넓습니다.

그런데 3부부터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나마 다양한 채소 조리에 대해 알려주는 3부는 나름 자료적인 값어치는 있기는 합니다. 디테일만큼은 좋았으니까요. 또 그간 생각하지 못했던 튀김, 튀각, 부각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건 수확이었고요. 옷을 입혀 튀기는건 튀김 옷을 입히지 않고 튀기는게 튀각, 부각은 그 중간 형태라고 정의되는군요. 몰랐습니다. 쌈문화의 역사도 볼 만 했던 정보였고요.
하지만 3부 후반부의 '고조리서를 통해 본 채소 요리법의 세계'는 제목 그대로 고조리서인 '제민요술' 등에서 번역하여 인용한 조리법이 전부였습니다. 시대별, 나라별, 채소별로 어떤 특징이 있는지 등은 전혀 소개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소개된 내용을 보면 <<증보산림경제>> 속 개발가법이라는 요리는 중국 요리법과 유사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부분을 파고드는 깊이가 아쉬웠습니다. 아주 약간 시대별 특징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대단한 내용은 없습니다. 구성도 종류, 주재료, 간단한 조리법으로 구성된 표 형태라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고요.
4부, 5부는 더 별로입니다. '채소를 먹으며 오래 살 수 있고, 채소가 음식의 미래다'는 주제도 뻔하지만, 내용도 모두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거나 단순한 번역에 불과한 탓입니다. 장수인이 채소를 즐긴다는 것도 조사는 했다지만, 데이터는 수록되어 있지 않아서 수긍하기 어려웠고요. 아무리 당연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조사를 해서 그 결론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조사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정리해서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전체 약 390여 페이지 정도 분량 중 절반 정도만 기대에 값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1/01/17

향신료의 지구사 - 프레드 차라, 강경이 : 별점 2.5점

 

향신료의 지구사 - 6점
프레드 차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기대가 컸던 <<스파이스>>에 큰 실망을 한 뒤 집어들게 된, 향신료를 주제로 한 식문화사미시사 서적.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스파이스>> 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주요 향신료 5개 - 시나몬cinnamon(석란육계), 클로브clove(정향), 블랙페퍼 blackpepper(흑후추), 넛메그 nutmeg(육두구), 칠리페퍼chilli pepper(고추)- 에 대한 상세한 설명부터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마음에 들어요. 어떤 물건에 대해 설명하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려주는게 먼저인게 당연하니까요.
또 큰 세계사 흐름과의 연결도 잘 정리되어 있는 편입니다. 동서간의 만남, 신대륙의 발견에는 향신료가 주요한 목적 중 하나였다라는걸 잘 알 수 있었거든요. 이러한 노력에 의해 대항해 시대와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로 진행되는 과정과 향신료 교역의 관계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도록 설명되고 있습니다.

뒤이어 고대와 로마, 중세, 대항해시대, 산업혁명기, 현재에 걸쳐 각 시대별로 향신료가 어떤 향신료가 어떤 경로로, 무엇을 위해 누구에 의해서 유통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역시 핵심만 잘 짚고 있어서 깔끔하고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특히 <<스파이스>>에서는 설명되지 않았던 여러가지 사항에 대한 소개가 인상적이였어요.
우선,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단순한 '선물' 정도만 전해주고 페퍼를 싣고 올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다 가마 일행부터가 캘리컷 힌두 지배자 사마린에게 보잘것없는 선물을 바쳤다고 하니까요. 선물이 통하지 않는다는걸 알고 난 뒤, 대포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고요. 덕분에 포르투갈은 16세기 초반, 유럽에서 소비되는 페퍼 대부분의 공급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홍해로 들어가는 길목의 이슬람 항구를 함락할 수는 없어서, 주도권을 결국 네덜란드에게 내어 주고 맙니다. 이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홍해 길목의 항구는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관할하에 있었을테니, 엄청나게 먼 항로를 거쳐 와야 하는 포르투갈 함대가 공략해서 정복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을겁니다.
아울러 이 책에 따르면, 포르투갈의 성공은 아시아 세력이 해상 무역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군요. 당연히 홍해를 거친 육로를 통한 향신료 거래가 유통의 중심이었고, 포르투갈이 차지한건 전체 향신료 거래의 약 5퍼센트에 불과했기 때문이고요. 그동안 궁금했었는데 속이 다 시원하네요.

포르투갈 이후 네덜란드가 포르투칼의 동방 교역로를 차지할 수 있었던건 향신료 거래 시 현지 세력과 은화로 거래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새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물론 네덜란드도 동인도 제도의 세 가지 주요 향신료는 반다 제도는 정복 후 노예화 과정을 통해 장악했지만요. 2006년 세계적인 사학자 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가 유럽인의 열대지방 진출에 대해 요약한 말 그대로, “그들은 포옹으로 시작해서 학대로 태도를 바꾸더니 유혈 사태로 마무리했다." 인 셈이지요.
또 포르투갈처럼 네덜란드도 향신료 교역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했는데, 이유는 중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이 해상을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향신료 생산지역의 내륙으로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토착 세력이 공백 상태에 있었던 덕분이었던거죠.

그렇다면 중국인은 무슨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약간이지만 설명되어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유럽이 아시아에 진출하기 몇 세기 전부터 중국인은 향신료 교역망에 뛰어들어 페퍼, 클로브, 넛메그, 시나몬을 구해갔고, 아시아 내 교역은 서로간에 쉽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로 이루어져서 중국인은 원하는 향신료를 얻기 위해 그다지 많은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페퍼는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재배되었으니 중국은 굉장히 가까왔고, 시나몬과 넛메그는 중국에서 재배되었기 때문이지요. 만약 중국이 항로를 장악할 생각이었다면, 유럽과의 동서 대전이 훨씬 이른 시기에 일어났을지도 모르겠어요.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사뭇 궁금합니다.

이후 향신료가 쇠퇴하는 과정은 <<스파이스>> 설명과 거의 같지만, 훨씬 깔끔하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향신료 산업의 현재도 알려주면서 마침표를 찍는 구성도 마음에 들고요. 도판도 최고 수준인 등 책 자체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번역이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고, 주요 부록이라 할 수 있는 조선 시대 향신료에 대한 설명은 단순히 문헌 번역 인용에 그칠 뿐이라 조금 아쉽습니다만, 이 정도면 기본은 된다고 생각되네요. '지구사' 시리즈는 항상 기본은 해 주는 것 같아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향신료의 지구사 - 프레드 차라, 강경이 : 별점 2.5점

향신료의 지구사 - 6점
프레드 차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기대가 컸던 <<스파이스>>에 큰 실망을 한 뒤 집어들게 된, 향신료를 주제로 한 식문화사미시사 서적.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스파이스>> 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주요 향신료 5개 - 시나몬cinnamon(석란육계), 클로브clove(정향), 블랙페퍼 blackpepper(흑후추), 넛메그 nutmeg(육두구), 칠리페퍼chilli pepper(고추)- 에 대한 상세한 설명부터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마음에 들어요. 어떤 물건에 대해 설명하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려주는게 먼저인게 당연하니까요.
또 큰 세계사 흐름과의 연결도 잘 정리되어 있는 편입니다. 동서간의 만남, 신대륙의 발견에는 향신료가 주요한 목적 중 하나였다라는걸 잘 알 수 있었거든요. 이러한 노력에 의해 대항해 시대와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로 진행되는 과정과 향신료 교역의 관계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도록 설명되고 있습니다.

뒤이어 고대와 로마, 중세, 대항해시대, 산업혁명기, 현재에 걸쳐 각 시대별로 향신료가 어떤 향신료가 어떤 경로로, 무엇을 위해 누구에 의해서 유통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역시 핵심만 잘 짚고 있어서 깔끔하고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특히 <<스파이스>>에서는 설명되지 않았던 여러가지 사항에 대한 소개가 인상적이였어요.
우선,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단순한 '선물' 정도만 전해주고 페퍼를 싣고 올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다 가마 일행부터가 캘리컷 힌두 지배자 사마린에게 보잘것없는 선물을 바쳤다고 하니까요. 선물이 통하지 않는다는걸 알고 난 뒤, 대포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고요. 덕분에 포르투갈은 16세기 초반, 유럽에서 소비되는 페퍼 대부분의 공급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홍해로 들어가는 길목의 이슬람 항구를 함락할 수는 없어서, 주도권을 결국 네덜란드에게 내어 주고 맙니다. 이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홍해 길목의 항구는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관할하에 있었을테니, 엄청나게 먼 항로를 거쳐 와야 하는 포르투갈 함대가 공략해서 정복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을겁니다.
아울러 이 책에 따르면, 포르투갈의 성공은 아시아 세력이 해상 무역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군요. 당연히 홍해를 거친 육로를 통한 향신료 거래가 유통의 중심이었고, 포르투갈이 차지한건 전체 향신료 거래의 약 5퍼센트에 불과했기 때문이고요. 그동안 궁금했었는데 속이 다 시원하네요.

포르투갈 이후 네덜란드가 포르투칼의 동방 교역로를 차지할 수 있었던건 향신료 거래 시 현지 세력과 은화로 거래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새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물론 네덜란드도 동인도 제도의 세 가지 주요 향신료는 반다 제도는 정복 후 노예화 과정을 통해 장악했지만요. 2006년 세계적인 사학자 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가 유럽인의 열대지방 진출에 대해 요약한 말 그대로, “그들은 포옹으로 시작해서 학대로 태도를 바꾸더니 유혈 사태로 마무리했다." 인 셈이지요.
또 포르투갈처럼 네덜란드도 향신료 교역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했는데, 이유는 중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이 해상을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향신료 생산지역의 내륙으로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토착 세력이 공백 상태에 있었던 덕분이었던거죠.

그렇다면 중국인은 무슨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약간이지만 설명되어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유럽이 아시아에 진출하기 몇 세기 전부터 중국인은 향신료 교역망에 뛰어들어 페퍼, 클로브, 넛메그, 시나몬을 구해갔고, 아시아 내 교역은 서로간에 쉽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로 이루어져서 중국인은 원하는 향신료를 얻기 위해 그다지 많은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페퍼는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재배되었으니 중국은 굉장히 가까왔고, 시나몬과 넛메그는 중국에서 재배되었기 때문이지요. 만약 중국이 항로를 장악할 생각이었다면, 유럽과의 동서 대전이 훨씬 이른 시기에 일어났을지도 모르겠어요.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사뭇 궁금합니다.

이후 향신료가 쇠퇴하는 과정은 <<스파이스>> 설명과 거의 같지만, 훨씬 깔끔하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향신료 산업의 현재도 알려주면서 마침표를 찍는 구성도 마음에 들고요. 도판도 최고 수준인 등 책 자체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번역이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고, 주요 부록이라 할 수 있는 조선 시대 향신료에 대한 설명은 단순히 문헌 번역 인용에 그칠 뿐이라 조금 아쉽습니다만, 이 정도면 기본은 된다고 생각되네요. '지구사' 시리즈는 항상 기본은 해 주는 것 같아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