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병동 -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arte(아르테)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호자 없는 환자를 수용하여 치료하는 요양형 병원인 다도코로 병원에 어느날 밤, 갑자기 피에로 가면을 뒤집어 쓴 강도가 침입했다. 피에로는 추격하는 경찰을 피하기 위함이라며, 아침에는 사라질 거라며 1층을 장악했다.
원장 다도코로, 간호사 2명, 그리고 강도가 납치하여 데려온 가와사키 마나미라는 여대생과 함께 윗층에 갇히게 된 임시 당직의 하야미즈 슈고는 경찰 신고를 만류하는 원장과 간호사들에게 위화감을 느끼며, 마나미와 함께 탈출 및 신고를 시도하다가 다도코로 병원이 환자들 장기를 허락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식하는 불법 행위를 저질러왔다는걸 알아내었다.
그러나 간호사 중 한명인 사사키가 살해되고, 전화선 등이 모두 끊긴 상황에서 누군가 신고하여 출동한 경찰이 병원을 포위하게 되는데....
몰랐던 작가의 몰랐던 작품. 흥미로운 제목과 적당한 분량이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무려 50만부나 판매되었다는 실적도 눈길을 끌었고요.
그러나 여러모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내용이 뻔한 탓입니다. 특히 다도코로 병원이 장기 적출을 하여 판매하는 병원이라는건 초반에 이미 알 수 있었습니다. 초반부에 드러난 단서들 - 강도가 습격한걸 경찰에는 절대로 알리지 않고 싶어하는 원장과 간호사들의 행태, 병원과 걸맞지 않은 좋은 시설이 갖추어진 수술실, 보호자 없는 환자 여러명에게 한밤중에 장폐색이 일어나 집도된 전신마취가 필요한 대수술, 수술을 집도한건 원장 다도코로와 간호사 히가시노와 사사키 뿐 - 만으로도 쉽게 떠올릴 수 있지요. 피에로 가면을 쓴 남자가 단순한 강도가 아니라 이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잠입했고, 피해자로 보였던 미나미도 한패일 거라는 것도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독자가 다 알 만한 진상을 주인공 슈고만 모른다는 전개도 문제에요. 중반 이후, 슈고가 신장을 이식받은 환자를 발견하고 나서야 겨우 다도코로 병원의 추악한 행위를 알아챈다는건 답답함의 극치였습니다.
전개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억지스러운 부분도 많아요. 다도코로 원장이 피에로가 돈을 받으면 나간다는 말을 하자 곧바로 개인 돈이라며 3천만엔을 주는 장면이 대표적이지요. 돈만 받으면 얌전히 사라져 주겠다!는 강도의 말을 그렇게 쉽게 믿는다? 납득이 되나요? 그 말을 믿었다면, 애초에 돈을 안줘도 아침에 사라지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몇 시간만 참으면 되었겠지요.
슈고가 마나미와 1층 잠긴 문을 열고 수술실로 가서 전화하려고 시도하는 장면도 황당합니다. 마나미에게 도망가라고 하고 자기는 전화를 건다는데, 같이 도망가서 신고하면 되잖아요? 왜 어줍잖은 영웅 흉내를 내는걸까요? 경찰과 대치하다가 피에로가 진짜 목적을 드러내는 클라이막스에서 피에로가 다도코로 원장의 메스에 쓰러지는 장면도 어이를 상실케 했습니다.
이런 억지들에 비하면 실소를 자아냈던 하야미즈 슈고와 마나미가 순간적으로 불꽃이 튀는 묘사는 차라리 선녀라 할 수 있어요. 마나미가 슈고를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 일부로 유혹했다면, 말은 되니까요...
캐릭터들도 뻔하기는 마찬가지로, 처음 본 여대생을 위해 목숨을 거는 정의의 순정남 슈고를 비롯하여 자기 신변 안위를 지키기에만 급급한 다도코로 원장, 악당 피에로 가면 캐릭터도 예외없이 뻔하기 그지없는 스테레오 타입입니다. 의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마나미가 진짜 흑막으로 피에로를 조종해 범행을 저질렀으며 모든 관계자들을 사살하고 도주했다는게 진상이자 결말만큼은 제법 볼 만 했습니다. 핵심은 피에로가 원장과 간호사를 사살하고 자살했으며, 슈고가 이야기한 마나미라는 환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건 2 번이나 기절했던 슈고의 착각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마나미의 트릭입니다. 그녀가 원래 다도코로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에, 사건 후 경찰이 환자들을 조사했을 때에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그녀가 장기 이식을 위해 신장을 빼앗긴 피해자로 복수를 위해 모든걸 꾸몄다는 동기도 합리적입니다. "사랑 애" 자에 아름다울 미 자를 써서 '마나미'" 라고 한다는 이름도 진료차트 속 신장 이식 피해자 중 한명인 '가와사키 13'에서 따온 - 13 -> I3 -> I 는 '아이 (愛)'로 일본어 발음 '마나', 3은 일본어로 '미'- 일종의 애너그램 비슷한 암호였다는 디테일도 괜찮았고요.
그리고 작가가 실제로 의사라는데, 그래서인지 병원에 대한 설명과 여러가지 수술과 치료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은 깔끔하면서 설득력 높습니다. 이는 분명한 장점이지요.
하지만 이 결말 이전 전개가 뻔하고 한심한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장기 이식에 대해 길게 풀어가지 말고, 비밀을 진작에 눈치챈 슈고가 원장과 피에로 가면 양쪽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꾸미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함께 했던 마나미가 진범이었다면 좋은 반전이 극대화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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