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달린 셜록 홈즈 6 -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아서 코난 도일 원작/현대문학 |
드뎌, 주석 달린 셜록 홈즈 마지막 권을 읽었습니다. 1권을 읽고 리뷰를 올렸던게 2009년 3월이니 11년 걸려서 다 읽은 셈이네요. 감개무량합니다.
물론 다른 판본으로 다 읽었던 작품들이기는 합니다. <<바스커빌 씨네 사냥개>>는 11년 전에 이미 리뷰도 올렸었지요. 그래도 이 판본은 '주석'과 화려하고 다양한 도판을 보는 재미가 크니, 그런 관점에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작품 <<바스커빌 씨네 사냥개>>는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작품 탓은 아니에요.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도 걸작이라고 하기 충분한, 뛰어난 작품이니까요. 기대했던 주석과 삽화도 풍성하고요. 특히 모티머 박사가 런던에서 외과대학 박물관을 둘러보았다는 대사에 달린, 외과대학 박물관에 대한 긴 주석이 인상적이었어요. 존 헌터의 개인 수집품을 영국 정부가 구입하여 만들어진 장소라는데, 존 헌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의 대니얼 버턴과 똑같았기 때문이지요. <<열게되어 영광입니다>>에 추가되어도 좋을 주석이라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이니셜이 L.L인 여자 로라 라이언스가 처음 언급되는 장면에 달려있는, 로라 라이언스가 1976년 2월 '플레이보이' 모델이었다는 주석은 이 책 주석의 방대함을 상징하는 주석이기도 하고요.
아래와 같은 홈즈가 머물렀을 움막과 비슷한 움막 구조도 등 삽화 외의 도판도 흥미로운 자료였어요.
그렇다면 뭐가 문제냐, 바로 번역입니다. 제목부터가 조금 미묘해요. '바스커빌 씨' 라니요? '바스커빌 가문' 이라고 해야 옳았습니다. 그 외 사소하고 자잘하지만 미려하지 못한 번역들이 눈에 많이 거슬렸어요. 한가지만 예를 들어볼께요. '우정에서 나온 필요성과 훌륭한 형사의 지배적인 성격 때문에 왓슨이 홈즈의 질문에 단순한 사실 진술로 대답하고 싶은 극도의 유혹에 굴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는 175번 주석의 긴 문장을 한 번 보세요.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대충 넘어간 설명도 너무 많습니다. 모티머와 헨리 바스커빌 경이 했다는 카드게임 에카르테에 대한 주석이 대표적입니다. 게임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었기 때문입니다. "32장으로 된 피케 카드를 사용하며, 각 수트의 7부터 킹까지에 에이스를 더해서 구성되어 있다. 각 카드의 가치는 휘스트와 비슷하나 킹은 휘스트에서의 잭이나 에이스, 10보다 랭킹이 더 높다..." 라고 설명되는데, 수트는 뭐고, 휘스트는 뭔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이래서야 '주석'이 '주석'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지요.
다행히 <<공포의 계곡>> 번역은 훨씬 낫더군요. 최소한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은 별로 없었습니다. 전체 분량의 2/3를 차지하는 19세기 후반, '맥도너'가 '죽음의 계곡'에서 악당 조직을 붕괴시키기 위해 싸웠던 모험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었고요. 19세기 후반 탄광 지대를 장악한 악의 조직,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설정, 묘사가 상세하며, 더글러스이자 버디 에드워즈이자 맥머도인 주인공의 활약도 생생하게 잘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펜실배니아 탄광 지대에서 실재로 광부들을 좌지우지했던 '몰리 머과이어스'와, 그들을 붕괴시키기 위해 몰리 머과이어스에 잠입해 활약한 핑커턴 탐정 사무서 탐정 제임스 맥팔런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각색한 덕이겠지요.
정황상 맥머도가 스코러즈를 붕괴시키기 위해 잠입한 탐정일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끝까지 숨겼다가 한 번에 터트리는 코난 도일 경의 솜씨도 돋보이고요. 핑커턴 탐정이 악당 조직을 괴멸시키기 위해 스스로 악당이 된다!는 이야기는 콘티넨털 옵과 같은 하드보일드 탐정 모험물의 원조로 보아도 무방할거 같아요.
하지만 문제는 '셜록 홈즈'라는 이름에서 기대해 봄직한 추리 측면에서 볼만한 내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모험 이야기는 물론,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앞부분 1/3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셜록 홈즈가 아령이 하나만 있는게 이상하다며 이를 통해 증거를 찾아내는, 추리적으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납득이 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어요. 바벨 플레이트 중 특정 무게가 한 개만 비어 있었다면 모를까, 아령이 한 개만 있어도 양쪽 근육을 단련하는데에는 큰 문제가 없잖아요? 2개를 한꺼번에 사용하는게 발표 당시의 상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해가 되는 추리는 아니었습니다. 주석에서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더글러스가 자기를 죽이려 온 테드 볼드윈을 죽인 뒤, 시체에 옷을 입히고 자기가 죽은걸로 위장했다는 진상도 지금 읽기에는 많이 진부했어요. 그리고 계속되는 악의 조직으로 부터의 암살 기도를 막기 위해 연극을 벌인 거라는데, 이것도 말이 안됩니다. 테드 볼드윈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조직도 이상하다고 생각할게 뻔하니까요.
그리고 실화 바탕으로 설득력이 넘치던 맥도너의 과거 활약에 비해, 배후에 악의 조직이 있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죽음의 계곡을 지배하는 악의 조직 '스코러즈'의 모태인 프리맨 조직의 다른 지부는 모두 정상적인 단체라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코러즈가 와해된 뒤에는, 조직적으로 복수를 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몰리 머과이어스에 잠입하여 붕괴시켰던 핑커턴 탐정 사무소 탐정 제임스 맥팔런은 은퇴한 뒤 편안히 천수를 누렸다고 하지요. 맥도너의 모험 이야기를 드러내기 위해 코난 도일 경이 만들어낸 설정이겠지만, 여러모로 무리수였습니다. 차라리 테드 볼드윈의 개인적인 복수였다는게 더 설득력이 높았을 거에요.
아울러 이 시리즈에서 기대해 봄직했던 화려한 도판도 부족한 편입니다. 주석 외에는 다양한 출판물에 수록되었던 삽화들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영국과 미국 버젼의 문장, 단어 차이에 대한 언급이 주석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아쉬웠고요.
그래서 두 편 모두 종합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공포의 계곡>>은 추리적으로는 조금 아쉽지만 작품 완성도와 재미에 대해서는 따로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별도로 '주석달린' 책을 구입할 만한 가치가 부족하기에 감점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부실한 번역들, 그리고 기대했던 부가적인 정보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황금가지 등 일반 출판사의 제대로 된 번역본을 읽는게 훨씬 나은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