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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30

고쿠 1~6 - 테라사와 부이치 : 별점 2점

[고화질세트] 고쿠 (총6권/완결) - 4점
테라사와 부이치 지음/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걸작 <<우주해적 코브라>>로 스페이스 판타지의 신기원을 연 작가 테라사와 부이치의 또다른 대표작 중 한 편. 작품이 발표되었을 1987년에는 비교적 먼 미래로 느껴졌을, 2014년을 무대로 한 근미래 SF 액션 스릴러입니다. 우리나라에는 e-book으로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설 연휴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경찰 출신의 사립탐정 후린지 고쿠입니다. 맨 몸에 쟈켓을 입고 목에 넥타이를 메는 다소 충격적인 패션 센스를 가진 남자지요.



고쿠는 첫 번째 사건에서 악당의 최면에 걸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왼쪽 눈을 찔러 실명하는데, 누군가 그 왼쪽 눈에 소형 컴퓨터 단말기가 장착된 '의안'을 설치해 줍니다. 그 의안은 전 세계의 모든 컴퓨터는 물론, 인공위성까지도 연결하여 제어할 수 있는 물건이었지요. 고쿠는 이른바 '신의 눈'이라고도 하는 이 의안을 최대한 이용하고, 그 누군가가 전해 준 또다른 장비인 여의봉(?)을 무기로 악당들과 싸워나가게 됩니다.
여러 면에서 작가의 출세작 <<코브라>>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미인들의 부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전개의 기본 공식,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로 엄청난 마초인데다가 시니컬하면서도 독특한 유머 넘치는 대사를 내뱉는 고쿠 캐릭터가 너무 똑같거든요. 심지어 갖추고 있는 피지컬만으로도 세계관 최강자인데다가 강력한 무기 '싸이코 건' 까지 소유한 코브라처럼, 고쿠는 비교적 평범한 인간이지만 전능하다고 칭해도 부족하지 않은 왼쪽 눈의 의안을 잘 활용하여 왠만한 적들은 쉽게 무력하게 만드니까요.

하지만 단순한 아류작은 아닙니다. '신의 눈'이라는 아이디어 덕이 큽니다. 모든 단말에 접속하여 조작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최소한 10년 이상 시대를 앞서간 물건이었으니까요요. 인공 위성으로부터 현재의 GPS, 카 네비게이션과 동일한 정보를 전달받아 이를 추격에 활용하는 장면 등은 미래를 보고 온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인공 위성과 각종 단말을 조작하여, 악당 하크류 겐지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영상을 건물 전광판으로 표시하는 장면은 능력의 특징을 제대로 선보여준 명장면이었고요.

정보를 장악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탐정'이 주인공인 이야기에 잘 어울렸습니다. Private Eye가 Midnight Eye를 갖게 되니, 금상첨화인 셈이지요.

탐정물답게 놀라운 진상과 반전을 갖춘 이야기들도 꽤 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류는 의붓 아버지에 의해 사이보그로 개조되어 몸에 강력한 보호막을 두르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중화제를 투약하지 않으면 미치광이 살인마로 돌변하기 때문에, 여동생 요시코는 고쿠에게 류를 죽여달라고 의뢰했고요. 그런데 알고보니 류는 의붓아버지 젠조의 복제인간으로 창조된지 고작 30일에 불과했던 생명체였습니다. 젠조는 자기 몸에 보호막을 설치하기 위해 류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겁니다. 수정체를 만든 건 여동생인줄 알았던 요시코였고요. <<차이나타운>>이 떠오르는, 하드보일드스러운 막장 관계를 인공수정, 급속 성장, 기억 이식 등 미래 기술에 녹여낸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슈퍼 스타 시노즈카 레이라가 자기 노래를 표절했다며 죽이려고 하는 지하 록의 여왕 야마가미 리사와 동일 인물이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꽤나 놀라운 진상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어요.

그러나 단 4권 (일본 기준)의 이야기로 끝나버린 이유도 분명합니다. 뒤로 갈 수록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암흑의 선녀>> 편에서 귀신 '천동녀'의 정체는 쿠키 일족의 정신을 넣은 인공두뇌로 구현된, 일종 에너지 덩어리였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이건 <<우주해적 코브라>>의 사라만다 설정과 똑같지요. 다카르 랠리에 참여한 오토바이 레이서 보니의 문신 속에 마이크로 필름의 정보가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도 <<우주해적 코브라>>와 유사했고요. 유령 유전자 실험에 자원하여 스스로 생명체의 모든 진화를 구현해 낼 수 있게 된 카산드라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실험 덕분에 생물 진화의 최종 단계로 변신할 수 있었고, 그건 바로 악마였다는건 재미있는 발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는 <코브라>>에서 화성의 최종 병기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았어요. 악마가 고작 금괴를 노린다던가, 그 최후가 녹아버린 뜨거운 금을 뒤집어 쓰는 것에 불과했다는 등 세부적인 이야기 완성도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요.
후반부 에피소드들에서는 '신의 눈'의 활용도가 그렇게 잘 선보이지도 못했습니다. 모든 장치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기본 설정을 답습할 뿐이었거든요. 이런 능력을 활용하여 악당에게 자신의 경고를 날린다던가, 공장에서 자기만을 위한 특별한 무기를 만든다던가 하는 초반부 에피소드들에서의 변주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모든걸 통제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악당들과 육탄 액션을 펼친다는 설정도 별로 와 닿지 않았고요.
한국어판 e-book도 에피소드별 제목이 제대로 부여되어 있지 않은 등 편집이 그닥이며, 마지막 권에 '지금 밝혀지는 고쿠의 비밀'이라는 저자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고 소개되는데 정작 수록되어 있지 않은 등 여러모로 문제가 많아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초반부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던게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유튜브를 뒤지면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감독한 애니메이션을 찾아볼 수 있는데, 비교적 수작인 초반부 에피소드를 영상화한 만큼 애니메이션만 찾아서 보시는게 낫습니다.

2022/01/29

혼자를 기르는 법 1~2 - 김정연 : 별점 3점


다음에서 연재될 때 챙겨봤던 작품. 단행본 1, 2권으로 완결되어 출간되었기에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일상툰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주변인의 삶을 최대한 재미있고 유쾌하게 그리는 개그물과 심각하고 어두운 삶의 이야기를 그리는 드라마성 짙은 이야기로요. 전자 쪽은 대체로 한 번 연재될 때 이야기 하나가 완결되고, 후자 쪽은 긴 호흡의 이야기를 그리고요.

이 작품에는 두 가지 종류의 속성이 모두 섞여 있습니다. 주인공 이시다 양과 반려 동물 쥐윤발의 만남과 헤어짐까지를 긴 호흡으로 다루면서, 혼자 사는 삶의 팍팍하고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는건 분명 드라마성 짙은 무거운 이야기지요.
그러나 한 회에 한 편의 이야기를 완결하는 스타일과 일상 속에서 독특한 시각으로 어떻게든 만화적인 재미를 찾는 기묘한 유머 감각은 개그 일상물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야근 중 '1일 8시간 정착'이라고 쓰여진 포크레인을 보고 중장비보다 오래 일하는 현실을 자각하는 장면, 쥐윤발과의 동거 생활을 시작하며 '나를 존경하라, 나를 섬겨라!'고 외치지만 결국 자신은 쥐윤발의 똥치우는 사람이라는걸 깨닫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이에요. 첫 전세집의 꽃무늬 벽지를 보고 "매일 식물의 성기를 보면서 살게 되었다니!!!!"라는 생각을 한다던가, A380의 비즈니스 석 같은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본 뒤 현실적인 견적을 내어 보고, 백합이 가득한 방 안에서 죽기 위해 얼마나 드는지 계산하는 것 처럼 현실을 희화하여 웃어 넘기는 센스도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이외에도 1, 2권 합쳐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덕분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차고 넘치도록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밴드를 꿈꾸던 시다가 지하철 노선도에서 '선바위'라는 역 이름을 보고 롤링스톤즈를 대적할만한 이름이라며 밴드명으로 정한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존나 멋있는 곳이겠지'라며 찾아가보지만,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다는 내용인데 제가 메일 아침 출근하기 위해 지나기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긴 정말 아무 것도 없어요!

또 과거의 데즈카 오사무가 연상되는 레트로틱한 독특한 작화도 인상적이었으며, 이시다 양에게 닥친 공황 장애라는 병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부분도 좋았습니다. 그동안 막연히 대중 앞에 노출되는걸 두려워하는 병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몸이 아프지 않은데 아픈 척 경고를 보내는 거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무거운 분위기와 가벼운 개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비교적 잘 잡은 성공적인 결과물이었다 생각됩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두 가지 속성 중 한 가지를 고르라면 개그 일상물 성격이 더 강하긴 합니다. 삶이 팍팍하고 힘들지만 이시다 양에게는 가족이 있고, 친언니만큼 돌봐주고 아껴주는 친한 이웃 언니 오해수도 있으니까요. 야근이 잦은 직장은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할 수 있으니 특별히 고생이라 할 수는 없겠지요. 사수도 비교적 괜찮은 편이고요. 이시다 양도 뒤로 가면 갈 수록 회사에서 할 말은 다 할 정도로 성장하는 모습도 보여주는 등,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은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2022/01/28

노조키메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3점

노조키메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괴이 현상의 진상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쓰다 신조는 괴담을 수집하다가 '노조키메'라는 괴이의 존재에 대해 알게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민속학자 아이자와 소이치가 오래전 겪었던 경험을 기록했던 노트를 입수했고, 그 내용이 자신이 이미 수집해서 "엿보는 저택의 괴이"라고 이름붙였던 괴담과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장소에 일어났던 일이라는걸 깨달았다. 이를 "종말 저택의 흉사"라고 이름붙인 뒤, 두 편의 이야기를 함께 발표했다. 그리고 미쓰다 신조는 괴이 현상에 나름의 추리를 덧붙이는데....

미쓰다 신조호러 추리물. 작가 미쓰다 신조가 입수한 두 개의 괴담을 엮어 선보이고, 괴담에 대한 진상을 추리하는 결말로 이어지는 구성입니다. <<괴담의 테이프>>와 비교적 유사한 형태이지요.

첫 번째 괴담인 <<엿보는 저택의 괴이>>는 이야기를 전해 준 시게루의 대학생 시절 체험담입니다. 당시 시게루는 사이코, 카즈요, 유타로와 함께 여름 방학 동안 산골 마을 별장 관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 관리인이었던 미노베는 절대 가면 안된다는 산책길이 있고, 순례자가 나타나면 자기에게 꼭 알리라는 당부와 경고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순례자 모녀를 만나서 산길을 걸었다는 카즈요의 제안으로 네 명은 가면 안되는 산길을 걷다가 폐허가 된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무언가에 씌워지게 되었지요.

미쓰다 신조 특유의 집요한 묘사가 돋보이는 폐허가 된 마을 묘사, 그리고 이 곳에서 '괴이'에 씌워진 뒤 모든 틈새에서 시선을 느끼게 되는 등장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대단했습니다. 방 안에 처박혀 모든 틈새를 막고, 눈까지 막아버린 카즈요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게루가 귀가한 뒤, 찬장 안에서 시선을 느끼고 그 문을 열자 비좁은 찬장 안에 몸을 웅크려 시게루를 응시하고 있던 이와노보리 카즈요의 모습을 본다는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억에 남네요. '무언가 쳐다보는 느낌'을 이만큼 글로 잘 표현한 작품은 또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유타로와 사이코는 지나치게 씌워졌던 탓에 죽고, 영험한 기도사의 기도로 시게루와 카즈요는 살아남았다는 결말은 설명이 부족하고 급작스러웠습니다. 물론 괴담은 이렇게 설명이 부족한게 더 현실적이기는 하겠지요. 미쓰다 신조 스스로가 작 중에서 괴담과 기담에 완결을 원하는건 뭘 모르는 행동이며, 오히려 이야기 도중에서 뚝 하고 끊어지는게 더 무섭다고도 하니까요.
카즈요가 시게루를 몰래 엿보는 버릇이 생겨 둘의 관계가 끝장났다는 후일담도 오싹하기는 했던만큼, 이 정도면 괜찮은 호러, 괴담 단편으로는 충분했던 수작이었다 생각됩니다.

두 번째 이야기 <<종말 저택의 흉사>>에서는, 전편 괴담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폐허가 된 마을에 대한 이야기와 '엿보는 괴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민속학에 관심이 많았던 학생 아이자와 소이치가 비명횡사해 버린 친우 사야오토시 소이치의 고향 마을 토노무라에 명복을 빈다는 핑계로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사야오토시 가문은 마을에서 배척받는 존재였고, 그 이유는 조상 중 한 명이 순례자 모녀를 참살했던 뒤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문은 저주를 풀기 위해, 원령에 씌워지는 '시즈메'라는 역할을 하는 소녀를 데려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시즈메들도 역할을 하다가 미쳐버려 여러 사건을 일으켰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그 역할을 할 소녀가 없어서 이미 4년 전에 명맥이 끊겼습니다.
마침 아이자와 소이치가 도착했을 때 사야오토시 가문은 할머니 코노에의 죽음으로 장례 절차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를 엿본 소이치 앞에, 사야오토시 가족을 엿보는 꼬마 여자 아이가 소이치에게만 보이는 등 여러가지 괴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야오토시 가문 당주 기이치, 아내 노리코, 조린 주지, 그리고 그 외 사야오토시 일족 모두가 차례로 죽고 말았습니다. 소이치는 홀로 살아남아 원래 참살당했던 모녀 공양 목적의 순령당 옆에 지어진, 비밀스러운 사당 문을 열어본 뒤 사건의 진상을 깨닫고 도망치는데 성공한다는 걸로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재미, 공포보다는 지루함을 더 많이 느낀 작품입니다. 전편 괴담은 분량도 짧고, 일행의 모험(?)과 공포 체험이 1회성에 그치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이자와 소이치가 토노무라 마을에서 겪는 괴이 체험이 계속 1인칭 시점으로 반복되는 탓에 금새 식상해질 수 밖에 없었거든요. 괴이 체험도 실체가 있는 공포라기 보다는 착각과 기분 탓에 불과한게 많아서 섬찟함을 전해주기는 부족했어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자기를 쏘아보는 시선을 느꼈다"는건, 솔직히 이런 시골 마을에 외지인이 찾아가면 누구나 겪을 당연한 경험이잖아요?
묘사도 너무 장황합니다. 소이치가 직접 '노트'에 적었다는 일종의 수기가 이렇게 길고 상세한 묘사로 쓰여졌을리 없다는 점에서는 현실성도 떨어지고요.
더 큰 문제는, 아이자와 소이치가 지나칠 정도로 민폐를 끼치고 다녀서 영 호감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만 골라서 하고 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고뭉치에요. 이를 호기심, 용기라고 포장하는건 불가능합니다. 그가 겪는 공포 체험은 모두 본인 탓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았고, 그만큼 캐릭터가 비호감이라 몰입하기도 힘들었어요. 쉽게 이야기하면 대학생 호러물에서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철부지 대학생이 주인공인 작품이었달까요? 문제는 대학생 호러물에서는 이 철부지들은 초반에 끔살당해 나름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는 반면, 이 작품에서는 끝까지 혼자 살아남는다는 점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고구마스러운 답답함은 다행히 마지막 종장에서 해결됩니다. 미쓰다 신조는 부조리한 존재인 '노조키메'에 대해 논리적으로 해석한, 나름대로 시원한 동치미스러운 결과를 내어 놓거든요. 이 결과를 내 놓는 과정은 한 편의 추리물과 다를게 없고, 심지어 그가 수기에서 숨겨져 있는, 알아내야 하는 항목 8개를 목록으로 소개하는 부분은 '독자에의 도전'과 유사합니다!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아이자와와 대화 중 사야오토시가 '어떤 사람이 조린 주지라고 이야기하는걸 주저한 이유
  2. 조린 주지에게 환대받으면서도 아이자와는 그가 자기를 쫓아내고 싶어한다고 느꼈던 이유
  3. 사야오토시 가에 시즈메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 노조키메가 나타나서 앙화가 내린다는걸 알면서도 4년간 방치한 이유
  4. 열 살 무렵의 사야오토시 소이치와 자기 아이 쇼이치를 겹쳐보고 토키코가 어두운 얼굴을 한 이유
  5. 순령당에 신찬을 바치는 역할이 노리코가 아니라 토키코에게 인계된 이유
  6. 토키코가 맡은 일을 할 때 무섭고 괴롭다고 한 이유
  7. 노조키메가 된 순례자 모녀 공양 목적으로 세워진게 순령당인데, 그렇다면 순령당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 옆에 사당이 새로 지어진 이유와 사당에 모셔진게 무엇인지?
  8. 사야오토시가의 종말 저택이 지사이 저택이라고도 불린 이유
독자도 똑같은 수기를 읽었으니, 정보 제공도 공정하다는 점에서 완벽한 본격 추리물인 셈이지요. 괴담, 호러와 본격 추리의 조합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추리는, 사야오토시 가에서는 시즈메 대신에 '지사이'를 이용했다는 겁니다. 4년 전 순례자 모녀가 찾아왔을 때 딸은 시즈메 역할에 부적합했지만, 주술에 정통했던 조린 주지가 딸을 '지사이', 즉 액맞이 역할로 삼은 것이지요. 딸은 병약한 모친을 순령당에서 모시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하고, 순령당 옆에 새로 세운 사당에서 살았습니다. 이 주술을 강화하기 위해 조린 주지는 의식주를 챙겨주는 것 외에, 소녀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도록 했었고요. 그러나 소녀의 어머니는 죽자 사야오토시가는 어머니가 살아있는 척 꾸몄습니다. 처음에는 연기에 능했던 코노에가 어머니 역할을 맡았고, 코노에가 증손자의 사고사로 몸져 누운 뒤로는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토키코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지요.
그러나 결국 이 사실을 알아낸 소녀가 사야오토시 가문을 멸족시켰고, 손님이었던 아이자와만 살려준게 진상이었습니다. 이 추리는 모두 합리적이며, 덕분에 여러가지 괴현상들도 모두 설명 가능해집니다. 소녀가 아이자와 눈에만 보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모르는 척 했기 때문이지요. 코노에 화장 시 시체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던건, 아래 쪽에 죽은 순례자 모친을 함께 화장했기 때문이고요. 사고가 일어날 수 없었던 벌목 현장에서 기이치가 사고로 죽었던건, 소녀가 마을 지리와 상황에 정통했던 덕분이었습니다. 그러고보면 표지가 스포일러인 셈이군요....
아울러 코노에 할머니가 과거 극단 출신으로 연기에 능했다는 등의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단서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한 편의 잘 짜인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없다 생각되네요. 아이자와의 부인이 이 소녀였을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 것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앞의 이야기는 괴담으로는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두 번째 이야기는 비록 지루했지만 종장에서의 놀라운 추리가 단점을 상쇄해 줍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2022/01/23

글록 - 폴 배럿 / 오세영 : 별점 3점

글록 - 6점 폴 배럿 지음, 오세영 옮김, 강준환 감수/레드리버

오스트리아의 자영업자 가스통 글록이 국방부 납품을 위한 새로운 권총을 1년 만에 만들어 납품에 성공한 뒤, 전 세계 권총 신업 패자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관련되었던 다양한 인물들과 여러가지 사건들을 설명하고 있는 논픽션.

권총 글록이 아니라, 회사 글록의 성공담인데 성공한 과정은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성공을 꿈꾸는(많이 늦었지만) 직장인인 탓이지요.
책에 따르면 글록의 성공 요인은 독창적인 구조로 새롭게 발명되었던 총으로 사격과 관리가 용이했다는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특히 총에는 문외한이었던 글록이 1년 만에 권총을 만들어 오스트리아 국방부 납품 경쟁에서 승리했던 비법은 "그는 처음 만들어 봤기 때문에 제대로 해냈다. 기존의 제조업체들은 NIH 증후군 때문에 새로운 디자인을 수용하지 못했다. 그들에겐 기존 권총을 변형하면 되는데 굳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고집이 있었다." (Not invented Here : 자체 개발한 것이 아닌 기술이나 제품을 배격하는 배타적인 조직문화)"백지에서 시작했다. 그는 고객인 군 전문가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고객이 요청하는 대로 수정해서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적시에 해냈다."라는 건데, UX 디자이너로서 새겨들을만한 내용이었습니다. 암요, 고객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한 법이지요.

하지만 뛰어난 발명품이라도 반드시 성공하는건 아닙니다. 성능면에서 앞섰던 베타가 VHS에게 졌던 역사처럼요. 심지어 글록은 플라스틱 사출물 구성품이 많고, 디자인이 별로였다는 약점도 있었습니다. 정말 못생기기는 했으니까요.

여기서 마케팅의 귀재 발터가 글록이 합류한게 대박의 시작이었던 걸로 설명됩니다. 경찰이 무장한 범인에게 다수 사망한 1986년 마이애미 총격 사건 이후 미국 경찰 전체를 대상으로 권총 교체 바람이 불었는데, 발터의 활약으로 글록 채택이 급증하게 되었거든요. 외부 안전장치가 없는 리볼버와 동일한 시스템을 채용했다는 구조적인 장점도 있었지만, 발터가 사격 교관들을 채용하여 글록에 대한 좋은 소문을 널리 퍼트렸던 덕분이지요. 글록을 구입하면 회사가 현장으로 교관을 파견하여 훈련을 도와주고, 다양한 보상 판매 정책을 실행한 것 역시 주효했었고요.
헐리우드 진출도 빼 놓을 수 없어요. TV 시리즈 <<이퀄라이저>>에 첫 등장했는데, 이퀄라이저는 발터 PPK를 쓰다가 글록으로 바꿨다는 설정이었다네요. 발터는 <<더티해리>>로 대박을 친 S&W와 같은 역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아니면 제임스 본드의 발터 PPK) 다른 경쟁 총기업체와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경쟁업체는 영화 관계자에게 정가를 청구했고, 악당이 사용하는걸 거부했지만 글록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처음 등장하게 된 영화가 <<다이하드 2>>입니다. 용병 테러리스트의 무기로 글록이 등장하지요. 여기서 브루스 윌리스가 내뱉는 대사 - "저놈들 내게 글록7을 쐈어요! 뭔지 모르죠? 독일에서 만든 세라믹 권총이라고요. 엑스레이 기계에 걸리지도 않고 당신 한 달 월급을 줘도 못 산다고요!" - 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뒤 총기 마니아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슈퍼 권총을 의미하는 저 대사 내용은 모두 엉터리였지만요. 이후 승승장구한 글록은 대중 문화 영역에서 독보적 입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로우 앤 오더>>는 장편 글록 광고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요. 우리나라에서도 원빈이 <<아저씨>>에서 사용했었지요.


이후 글록은 권총을 언급할 때의 고유 명사처럼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글록은 권총계의 구글로 현대의 권총을 처음으로 정의한 브랜드이며, 가스통 글록은 20세기의 콜트인 겁니다!

발터의 신박한(?) 마케팅은 끝이 없었습니다. 1989년, 미국 총기와 탄약 산업 주요 컨퍼런스 SHOT에서 신형 글록 20을 공개하면서, 스트리퍼 샤론 딜런이 직접 홍보하도록 만든 광고가 대표적입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광고입니다. "10점 만점의 인기 절정 (이 번역이 맞나요? 이 도시에서 가장 핫한 10! 이 맞지 않나....) SHOT 쇼에서 글록의 신형 10mm를 만나보세요." 라는 건데, 권총과 섹스를 결합한 전략은 잘 먹혀들었다고 합니다. 단순 홍보 뿐 아니라 실제 구매 대상자를 상대로 한 접대에서도요.


물론 글록에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1992년, 빌 클린턴 당선 이후 정부가 NRA와 대립하며, 여러가지 총기 규제 법안들이 발효되었던게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규제 법안 발효 직전, 앞으로 총을 못 살 수도 있다는 공포 심리에 의했던 총기 수요 폭증 효과도 보았고, 규제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신제품 출시로 오히려 글록의 매출은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의 담당자 쿠오모와 총기 업체와의 협상에서 S&W는 굴복하고 말았지만, 버텼던 글록은 NRA의 S&W 불매 운동의 수혜를 보았고요. 쿠오모는 글록이 합의하지 않으면 정부기관 매출 30%를 잃게될거라 협박했지만 글록은 굴복하지 않았고, 심지어 쿠오모 부처 감찰관실 감찰관도 글록을 구입했다니 애초에 이기는 게임이었던 겁니다. 부시 정권으로 넘어가서는 이런 규제는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러가지 주변 상황을 고려했던, 경영진의 현명했던 판단이 빛납니다. 여러가지 소송을 쏙쏙 빠져나갔던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볼거리였고요.

이렇게 마케팅과 경영진의 협상과 판단에 따른 위기 탈출 등은 전형적인 기업 성공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NRA라는, 주요 소비자가 정치적 이익 단체이기도 한 비교적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요. 제가 어렸을 때 유행했었던, 도요타 등 일본 회사의 성공담을 그렸던 반쯤은 논픽션에 가까왔던 소설들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러나 뒤이어 이런저런 막장 드라마가 불거지며, 글록의 성공담은 <<시마 과장>>으로 돌변해 버립니다. 이를 대표하는게 1999년, 가스통 글록의 암살 미수 사건입니다. 70세라는 나이 치고는 건장했던 글록이 암살범을 제압해서 위기에서 벗어났으며, 이는 글록이 세금 탈루를 위해 고용했던 에베르트의 청부였다는게 밝혀지고, 이런저런 복잡한 돈의 흐름이 얽혀있는 영화같은 사건이었지요. 결국 글록은 구속된 에베르트는 물론이고, 글록의 성공을 위해 함께 했던 모든 직원들을 버리게 됩니다. 마케팅 귀재였던 발터는 진작에 회사를 떠났고, 미 정부의 규제에 맞서 현명한 판단을 했던 야누초 등 핵심 임원들 모두를요. 이 때의 동료들은 모두 말로가 좋지 못했다네요. 허나 가스통 글록은 82세 때 31살의 여성과 재혼했고, 여전히 거액의 재산을 누리며 잘 살았다고 합니다. 가스통 글록은 20세기의 콜트가 아니라, 현실 버젼의 시마 과장인 셈입니다. 시마 코사쿠보다 더 비열하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입니다만.

글록의 성공담도 볼 만 했지만, <<시마 과장>> 스러웠던 막장 이야기들도 모두 흥미로왔던 책입니다. 한 편의 소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문제는 '글록'이 이야기의 핵심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도판이나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글록의 시대별 변천 과정과 히트 모델, 경쟁사 모델 등을 도판으로 소개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해도 쉬웠을테고요. 그래서 약간 감점하여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총기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22/01/22

혼밥 자작 감행 - 쇼지 사다오 / 정영희 : 별점 3점

혼밥 자작 감행 - 6점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시공사

일본의 만화가겸 에세이스트 쇼지 사다오의 먹부림 에세이 모음집.
아주 오래전, 이시카와 쥰의 <<만화의 시간>>에서 넌센스 만화의 제왕으로 소개되었던 작가지요. <<만화의 시간>>도 구입한지 20년을 훌쩍 넘어가는데,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조금 찾아보니 중고가가 어마무시하게 형성되어 있더군요. 살짝 기뻤습니다.

하여튼, 별 기대없이 심심풀이로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었습니다. '일상 속 소소한 혼술과 혼밥에서 맛있게 먹기 위한 자기만의 디테일과 원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제가 사랑하는 먹부림 만화 <<술 한잔 인생 한입>>과 추구하는 바가 일치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와마 소다츠가 에세이를 쓴다면, 딱 이런 글들을 쓸 거라 확신이 들 정도에요. 몇몇 이야기들은 <<술 한잔 인생 한입>>에 그대로 등장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설견주는 우아와 숭고의 세계이므로, '하아~ 쓰읍~' 하면서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없고 부산스럽게 고기를 구울 수도 없다던거나, 요시노야에서 아침을 먹게 되면 단연코 낫토 정식이어야 한다는 등이 그러합니다.

작가 스스로 애정하는 먹거리에 대해서는 고민과 연구를 거쳐 자신만의 레시피를 정립하는 모습도 이와마 소다츠스러웠는데, 200억엔 짜리 레시피라는 '정어리 통조림 덮밥'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정립한, 최고의 레시피라는데 잠깐 소개해드리자면, 먼저 정어리 통조림 뚜껑을 따고, 그 째로 가스 불 위에 올려 데웁니다. 덮밥용 그릇에 뜨거운 밥을 풀고 그 위에 삶은 계란 흰자를 잘게 다져 5mm 두께로 덮고요. 잘게 다진 양파도 같은 식으로 덮은 뒤, 뜨거워진 정어리 캔을 뒤집어 밥 위에 덮습니다. 마지막으로 줄기를 제거한 무순과 잘게 썬 우메보시를 뿌리면 완성이라는데 한 번 따라 해 보고 싶어지네요. 우메보시는 없으니 대신 레몬을 뿌리면 되겠지요? 참치 통조림으로 해도 괜찮을 듯 싶네요.
이외에 버터 간장밥이나 계란프라이 덮밥에 대한 작가만의 레시피라던가 기존에 존재하지만 따라해봄직했던 무채 된장국, 두부 한 모 통째로 덮밥 레시피도 눈여겨 볼 만 했습니다. 이런 요리를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파고든다는 점이 이 에세이의 매력 포인트인 거지요.

라멘집 사장을 관찰하거나, 카레 국물 부족에 대해 논하는 에세이들도 인상적이었어요. 돈가스 카레를 먹는 올바른 방법에 대한 꽤나 긴 분량의 고찰도 그러하고요. 이런 소재를 이렇게까지 재미나게 풀어낼 수 있다는게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고기 망치와 스테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샬라핀 스테이크'라는 나름 전문성 있는 지식을 풀어놓는 의외의 모습도 볼거리였고요. "오니기리는 속 재료 주변을 밥이 감싸고 있어서 첫 입은 맨밥일 경우가 많아서 정말 싫다"는 글처럼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글도 좋았고, 직접 그려낸 일러스트들도 책에 잘 어울렸습니다. 아래의 돈가스 카레의 종류에 대해 그려낸 그림처럼, 내용에도 딱 들어맞고 이해하기도 쉬운 일러스트들이었거든요.
물론 자신만의 주장을 절대 옳다고 우기며 절대로 고치지 않으려는 사고방식은 꼰대스럽기는 합니다. 내 주장이 절대 옳고, 다른 의견은 듣지 않겠다!는 모습이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회적인 관계를 아예 드러내지 않는 것도 억지스러웠고요. 이 정도 경력, 나이가 있는 작가가 혼밥, 혼술과 자작을 추구한다는게 쉬이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런 류의 먹부림 에세이 중에서는 재미, 가치 모두 좋았습니다. 자신만의 고집은 <<맛의 달인>> 원작자 카리야 테츠, 이자카야 술안주 류가 대부분인 소재와 유머스러운 분위기는 <<고독한 미식가>> 등의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를 떠오르게도 하는데, 양 쪽의 장점만 잘 합쳐서 재미나게 구성한 덕분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 수록 왜 <<술 한잔 인생 한입>>처럼 만화로 그리지 않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고전 4컷만화스러운 그림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 내용이었다면 꽤 잘 어울렸을거라 생각되는데 말이지요. 저자도 지금은 만화가보다는 에세이스트로 인지되는 경향이 큰 것 같기는 합니다만...

2022/01/21

싫은 소설 - 교고쿠 나쓰히코 / 김소연 : 별점 2.5점

싫은 소설 - 6점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손안의책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담과 추리의 결합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교고쿠 나츠히코의 괴담 호러 단편집. <<싫은 아이>>, <<싫은 노인>>, <<싫은 문>>, <<싫은 조상>>, <<싫은 여자친구>>, <<싫은 집>>, <<싫은 소설>>의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그야말로 '싫은 느낌'을 극대화하고 있는 작품들이라는 점입니다. 읽고 나면 기분이 나빠진다는 점에서는 '이야미스' 쟝르에 딱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후카타니'라는 인물이 모든 작품에 관여하고 있는 연작 속성이 있다는 것도 특징이고요. 윤회루프물이 많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수록작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는 괴담물입니다. 기승전결로 완결되는 구조가 아니고, 괴현상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이야기들을 의미하지요. <<싫은 아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머리가 크고 시체같은 아이의 정체, <<싫은 노인>>에서 구보타 가에서 돌보는 노인의 정체와 폭주의 이유, 살인 사건이 일어난 이유, <<싫은 조상>>에서 불단 속에 모셔진 시체도 아니고, 유령도 아닌 괴물체의 정체는 모두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점은 아닙니다. 설명이 없는 부분은 일종의 여백처럼 독자의 머릿 속에 여러가지 상상을 떠오르게 만들거든요. 그 덕분에 더 무서우면서도, 이래서야 사람이 미치는게 당연하겠구나 싶은 생각을 자연스럽게 들게 해 줍니다. 괴상한 아이에게 화자인 다카베의 아내는 강간당하고 다카베는 발광해 버리는다는 <<싫은 아이>>의 급작스럽고 뻔한 결말은 별로이긴 했지만요.

두 번째 단편물은 괴담물과는 다르게 나름 기승전결로 각자 완결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는 <<싫은 문>>과 <<싫은 여자친구>>, <<싫은 집>>입니다. <<싫은 집>>은 일종의 윤회물로 '싫어하는 느낌'이 반복되는 집이라는 소재는 괴담물스럽기는 하지만, '저주받았다'고 해석한다면 나름 합리적(?)인, 완성된 이야기로 보입니다.
<<싫은 여자친구>>는 '싫어하는 느낌'을 극대화한, 수록작 중 최고의 '이야미스' 물입니다. 고리야마가 싫어하는 행동만 극대화하여 반복하는 여자친구 행동에 대한 묘사가 정말 압권으로, 사람을 정말 말려죽이는 공포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단순한 스플래터 고어 호러보다, 이런 일상적이면서도 단순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저주같은 공포가 더 무섭네요. 이건 정말 영상화해야만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수록작 중 최고였습니다. 싫은 느낌, 완성도, 공포라는 모든 측면에서요.
<<싫은 문>>은 불행한 남자 기자키는 행운을 가져다 주는 호텔방에 초대받으면서 시작됩니다. 그 방에서 기다리다가 들어오는 사람을 산탄총으로 쏴 죽이고,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챙겨 도망가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지요. 기자키는 들어온 사람을 죽이고, 천만엔을 챙겨 달아난 뒤 이어지는 행운으로 성공합니다. 여기까지는 흥미로왔는데, 기자키가 1년 후 그 호텔방을 찾아가 스스로를 스스로에게 죽게 만든다는 결말은 좀 뻔했습니다. 영미권의 판타지 호러스러운 느낌이었어요. <<바벨의 도서관>> 수록작 <<병 속의 악마>>와 설정과 전개, 결말 모두 비슷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수록작들 중에서 싫은 느낌이 가장 덜하기도 합니다. 기자키는 스스로 선택해서 사람을 죽였고, 그 덕에 행운을 손에 넣게 됩니다. 싫은 느낌을 받을 이유가 없지요. 루프는 일종의 문이 1년 전으로 시간 이동하는 느낌이라 죽는다는 기분을 가져가지도 않고요. 알고보면 영원히 죽는 잔혹한 상황이지만 기자키가 그걸 알 방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부분은 설정 구멍같았어요. 기자키에게 방의 루프를 넘겨준 노인은 누군가 기자키가 다음에 오면 나가야 하는게 원칙이라고 했습니다. 그 역시 그 말을 하고 루프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복귀하고요. 하지만 설정 상 현재의 기자키가 루프되는 걸 알 수가 없으니, 이 루프를 기자키가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행운을 얻기는 후, 루프가 된다는걸 알아내야 다른 사람을 찾을텐데 그건 설정상 불가능하니까요.

이렇게 괴담물과 단편물은 각각 세 작품 씩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대미를 장식하는건 단편집 전체를 완결하는 표제작 <<싫은 소설>>입니다. 앞서 모든 작품에서 상담역 등으로 등장했던 후카타니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상사 가메이와 출장가다가, 그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고 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후카타니가 읽는 소설이 앞서 여섯 편의 이야기이며, 마지막 소설은 계속 반복된다는 일종의 루프물이지요. 후카타니가 폭주하여 루프는 끝나지만, 결국 후카타니도 '싫은' 상황에 처한다는 결말이고요.
그런데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 치고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후카타니는 좋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빚 잔치 끝에 자살한 동창 기자키의 처자식 장례식을 도맡아 진행해주고, 회사 선후배 상담역을 맡을 정도니까요. 고리야마가 입원했을 때는 병문안도 가 주고, 도노무라 본부장의 '싫은 집'은 휴가를 내어 함께 찾아가는 등 노력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주위 친구들을 모두 '싫은 상황'으로 잃고 본인도 싫은 상황에 빠진다는 결말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무능한 꼰대인데다가, 게다가 성희롱도 남발하는 가메이같은 상사가 멀쩡히 살아남는다는건 더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차라리 후카타니가 결국 폭발하고 루프가 끝난다면 시원하게 가메이의 목을 졸라 죽인다는 결말로 풀어내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물론 이런 이야기였다면 '싫은 소설'은 될 수 없었겠지만요.

별점 4점은 충분한 걸작 <<싫은 여자친구>>와 평작 수준 이상인 <<싫은 노인>>, <<싫은 조상>>, <<싫은 집>>, 그리고 기타 평균 이하 작품들의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내려놓기 힘든 흡입력은 있는데, 취향을 많이 탈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뜻 추천드리기는 어렵네요.

2022/01/16

작가 형사 부스지마 - 나카야마 시치리 / 김윤수 : 별점 2점

작가 형사 부스지마 - 4점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북로드

제목처럼 전직 형사이지만 은퇴 후 작가로 데뷰해 인기를 얻으면서, 형사 지도원으로 복귀한 부스지마가 신참 형사 아스카와 함께 작가들이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내용의 단편 시리즈. 이런 저런 작품들로 많이 접해 보았었던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극히 만화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잘 나가는 작가로 문학계에 정통하며 온갖 냉소와 비난을 사정없이 날리는 작가 형사 부스지마의 설정부터가 만화적이니까요. <<부호 형사>>와 별다를 것도 없는 과장된 설정입니다. 등장하는 편집자와 작가들에 대한 설정들도 억지가 느껴질만큼 과장되어 있다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사회파에 가까운, 묵직한 작품들을 선보였던 작가답게 마냥 가벼운건 아니었습니다. 출판계, 특히 작가들에 대해서 부스지마의 입을 빌어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건 나름 메시지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좀 부족했고, 이야기 구성이 대체로 한가지 패턴이라는 단점은 큽니다. 전체 평균한 별점은 (간당간당한)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트릭과 진상, 범인을 모두 까발리는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라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워너비의 심리 테스트>>
소설 스메라기 신인상 1차 심사위원이었던 도메키가 자루없는 날카로운 알루미늄 송곳에 꿰뚫려 살해당했다. 용의자는 도메키가 심사평을 험하게 썼던 신인상 출품 작가들 3명 - 다다노 구스오, 오우미 히데오, 아이카와 시오리 - 이었다. 그러나 작가들의 심문에 넌더리가 났던 아소 반장과 이누카이 형사는 신참 아스카에게 형사 지도원 부스지마의 도움을 받아 수사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사건 설명을 들은 부스지마는 3명을 각각 만나, 그들 면전에서 더욱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데....


주요 설정과 등장인물들이 소개되는 시리즈 제 1작.
이 시리즈가 어떤 작품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스지마가 얼척도 없이 자기 작품에 대해 자신감만 가득차 있는 신인 작가들을 통렬하게 깨부시는 장면이 가장 핵심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추리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특징도 두드러집니다. "자루가 없는 알루미늄 송곳"이 화살인건 너무 명백하니까요. 이를 초반에 알아채서 이야기하지 않는게 더 이상했습니다. 부스지마가 용의자들을 도발해서 재차 범행을 시도하도록 만드는데, 범인이 이에 넘어가 부스지마를 죽이려 한다는 전개도 다소 유치했고요. 오우미 히데오가 기계 공작 회사를 다니다가 정년 퇴직했다는 정보를 이용하여 흉기를 추리해 낸 뒤, 가택 수사로 증거를 잡는게 더 추리물다왔을겁니다. 부스지마가 직접 표적이 되어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한다는 과장된 추리쇼는 불필요했을 뿐더러, 억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방탄복을 입었다고 한 들, 화살을 머리에 맞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신인 작가들에 대한 비난도 나름 새겨들을 부분은 있지만, 대상자인 3인이 안 좋은 신인 작가의 단점만 극대화하여 합쳐놓은 인물들이라는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일관한다는 점에서, 만화적인 느낌을 부각시킬 뿐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편집자(編集者)는 편집자(偏執者)>>
편집자 마다라메 아키라에게 신인 작가들이 연이어 찾아왔다. 하고로모 사야는 데뷰 전 동인 작품의 출간을 막고자, 그리고 그녀 원고 속 트릭 아이디어를 반강제로 중견 작가에게 넘긴걸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덴도 구이치로 역시 항의가 목적이었다. 데뷰작에서 사용하라고 마다라메가 전해 준 트릭과 반전이 인기작가 아야메 작품을 베낀 것이어서, 덴도는 표절 작가로 낙인찍혀 작가 인생을 망쳤기 때문이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출판, 문학계를 통렬히 비판합니다. 신인 작가들 약점을 쥐고,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폭언을 내뱉는 악덕 편집자 마다라메, 그리고 제대로 된 작가도 아니면서 자기 작품과 소설가라는 직업에 헛된 신념을 품은 신인 작가를 통해서요. 문단에서 라이트노벨 작가는 일회용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등의 업계인스러운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나카야마 시치리 시선을 보자면, 편집자보다는 작가 문제가 훨씬 큰 것으로 그려져 이채롭더군요. 편집자가 작가와 이인삼각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가면 좋지만, 수익을 중시하는 편집자도 당연히 필요하다는게 나카야마 시치리의 논리거든요. 출판도 시장이니까요. 마다라메도 문제는 있지만,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는 측면으로는 우수한 직원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면 작가들은 일반인의 상식도 갖추지 못한, 자의식에만 쩌든 괴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덴도 구이치로는 아예 동정도 가지 않을 정도에요. 소설가라는 놈이 편집자가 제공한 트릭과 반전으로 글을 썼다면, 이건 작가가 아니라 그냥 대필 기계일 뿐이니까요. 이런 주제에 자기가 창작자다 뭐다 운운하며 뭔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인 것 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욕을 먹어도 쌉니다. 조금 낫기는 하지만 하고로모 사야도 마찬가지에요.
또 이런 작가들이 단순한 비지니스 파트너에 불과한 편집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도 통렬하게 꼬집습니다.

다행히 이 작품은 비판 외에도 추리물로도 볼 만했습니다. 사용된 알리바이 트릭이 꽤 괜찮았거든요. 우선 하고로모가 흉기를 준비하고, 범행 현장인 호텔 지하 주차장까지 마다라메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범행 시각에는 너무나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던 덴도가 화장실을 가는 척 잠깐 자리를 비운 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트렁크 안에 가두었던 마다라메를 찔러 죽이고 바로 돌아온 겁니다. 나중에 하고로모가 차를 회수하면서, 시체도 유기했고요. 꽤 그럴듯했어요.
그러나 문제는 호텔은 CCTV가 완벽하게 존재하는 곳이라는 거지요. 지하로 향하는 모든 입구, 엘리베이터와 주차장 CCTV만 조사해도 트릭이 드러나는건 순식간이었을 겁니다. 덴도가 호텔 바에 있었다는걸 검증하기 위해 경찰이 철저하게 수사했을테니 빠져나가기는 힘들었을테고요. 그런 점에서 정교한 계획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는 수사의 문제일 뿐, 트릭을 폄하하기는 힘들고 독자가 추리하기 위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는 만큼 별점은 2.5점 주겠습니다.

<<상을 받긴 했지만>>
신인상 수상작가들에게 쓴 소리를 하던 노 작가가 살해된 사건이 등장합니다. 당연히 쓴 소리를 들은 작가들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자의식 과잉으로 주제파악을 하지 못한 애송이들에 불과하고요. 부스지마가 풋내기들 정신 교육을 시킨다는 전개도 앞서 이야기들과 똑같습니다. 한마디로 원 패턴으로 일관하는 자기 복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최악이에요. 트릭이나 단서, 증거같은건 등장하지도 않거든요. 부스지마의 정신 공격(?)에 무너진 범인이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는게 전부니까요. 작가들을 쓴 소리로 비판하면서, 본인은 이런 작품을 버젓이 발표하는건 무슨 정신머리인지 모르겠네요. 최악 중 최악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애독자>>
작가 다카모리 교헤이 토크쇼 간담회에 3명의 독자가 참석했다. 한 명은 인터넷에 혹독한 비판만 올리며 즐거워하는 일종의 악플러인 구와에 도모미. 한 명은 다카모리 교헤이에게 강하게 연심을 품은 정신병자 스토커 마키시마 히나코. 마지막 한 명은 다카모리 교헤이에게 어떻게든 자기 작품을 보여주려고 발악하는 작가 지망생 가노 이쿠였다. 그리고 간담회 직후 다카모리 교헤이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여러모로 앞서의 시리즈 다른 작품들과는 차이점을 보여주는 작품. 첫 번째는 작가가 아니라 작가에게 비틀린 애정을 품은 독자들이 주요 용의자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부스지마가 이 독자들에게는 독설을 날리지 않는다는 점이고요. 마지막 세 번째는, 범인이 따로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카모리 교헤이는 여자 관계가 복잡해서, 아내가 그를 살해했던게 진상이었습니다. 최신간 속지 부분을 뜯어내어 현장에 두었던건, 사인을 받았을 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 것이고요.
이 페이지만 뜯어진 채 시체 밑에 책이 놓여져 있던 것, 사인이 번지는걸 막기 위함인 간지가 현장에 없었던 것, 그리고 현장에 있던 책은 2쇄본이었는데, 2쇄본이 작가 서재에 없었던 걸로 보아 서재에서 꺼내온 책이라는 결정적 증거 등으로 진상을 추리해내는 과정도 합리적이었습니다. 이 중 간지가 현장에 없었던게 증거가 되기는 힘들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 외 내용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원 패턴이었던 전개를 탈피했다는데 점수를 주고 싶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스포일러 가득한 악담을 리뷰랍시고 올리는 구와에 도모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등장하는데, 살짝 찔리더군요. 저도 거의 모든 리뷰에 스포일러를 가득 담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는 리뷰 내용에 스포일러가 있다는걸 더 잘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원작과 드라마 사이에는 깊고 어두운 강이 있다>>
부스지마의 트리콜로 시리즈의 드라마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듀서 소네는 원작의 인지도만 원했기에, 주인공도 여자로 바꾸고 없던 러브라인, 해피엔딩을 추가했으며 핵심인 보험금 살인도 스폰서 눈치를 보느라 치정 살인으로 바꾸고 말았다. 결국 부스지마와 편집자 신보는 방송사 관계자와 담판을 짓는 자리를 갖고, 부스지마는 언제나의 말투로 이 모든걸 소설이나 기사 형태로 폭로하겠다며 관계자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그날 밤, 소네는 살해당했고 부스지마도 용의자로 떠올랐다.

작가 지망생들보다는 TV 드라마 관계자들을 비웃고 비난하는 내용의 작품. 그러나 비판할 악당의 악행을 먼저 묘사해서 독자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킨 뒤, 부스지마가 면전에서 한 방 먹이는 방식은 전작들과 거의 같습니다. 한마디로 원 패턴이라 식상했어요.
게다가 추리적으로도 건질게 별로 없습니다. 부스지마가 시나리오 작가 후세가 소네를 공격한 방법을 과거 드라마에서 찾아내는 등의 활약은 하지만, 후세와 신보의 발자욱을 현장에서 입수했기 때문에 추리로 범인을 밝혀낼 여지는 전무하니까요. 후세는 단순 폭행이었고, 실제로 질식사하게 만든건 편집자 신보였다는 추리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무엇보다도 신보가 자백하지 않았다면, 범행을 증명하기 쉽지 않았을겁니다. 기절한 사람을 돌려 놓으면 질식사 할 수 있다는 책을 함께 작업했다는 것 정도가 증거가 될 수는 없을테니까요.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2인 3각으로 작품을 만든 신보를 직접 고발하는 부스지마가 자기는 작가 이전에 형사였다는 멋진 말을 한 직후, 이를 소재로 작품 하나를 쓸 수 있겠다고 하는 장면은 부스지마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를 잘 드러내기는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져서 별로 자연스럽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2/01/15

기타기타 사건부 - 미야베 미유키 / 이규원 : 별점 2.5점

기타기타 사건부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제 2막'이라는 부제처럼 새로운 시리즈입니다. 가난한 16세의 고아 기타이치가 주인공이지요. 기타이치는 '붉은 술 문고' 행상이면서, 동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해결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자신을 돌봐주었지만 복어를 먹다 비명횡사해버린 오카핏키 센키치 대장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요.
단, 외모가 출중하거나 대단히 머리가 좋은 건 아니에요. 관찰력과 판단력은 나름 괜찮지만 몸도 약한 편이고요. 그래서 탐정 역할이자 두뇌는 주로 대장의 미망인인 장님 마쓰바가 맡고 있습니다. 기타이치는 주로 발로 뛰면서, 단서들을 모아 안락의자 탐정같은 마쓰바 부인에게 전달해주는 역할 담당입니다. 주체적인 행동력을 갖춘 조수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는 '네로 울프'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물론 기타이치는 아치 굿윈과 같은 인생 경험이나 넉살을 갖추지는 못했지만요.
아울러 부족한 액션을 보충하기 위해, 목욕탕 가마 담당이지만 귀한 집안 후예로 굉장한 무술을 지닌 기타조가 은밀히 기타이치를 도와준다는 설정도 덧붙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기타(이치)기타(조) 사건부' 인 걸로 추측됩니다.

이전의 다른 에도물과 다른 새로운 시리즈만의 특징이 몇 가지 눈에 뜨입니다. 첫 번째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라는 점입니다. 수록작 네 편 중 실제 괴담이 등장하는 작품은 한 편 뿐이며, 그 이야기도 결말과 진상은 합리적으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또 수록작들 네 편이 모두 종류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도 특징이에요. 전형적인 괴담물, 괴담물인줄 알았지만 일상계, 일종의 모험물추리물로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비교적 현실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특징도 큰데, 이는 주인공 기타이치의 설정 탓입니다.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낮고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팍팍하니, 규모가 크고 복잡한 사건보다는 아무래도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들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었던건 당연합니다. 작가가 '미시마야'와 같은 기존 시리즈 대신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한 이유도 에도 서민들 삶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이런 현실적인 배경 덕분에, 에도 서민 생활에 대한 묘사도 굉장히 상세합니다. 기타이치가 홀로 '나가야'에 세를 얻어 살면서 문고 행상을 하고, 이런 저런 가게를 탐문하는 등 모든 장면에서의 묘사는 정말 손에 잡힐듯하니까요. 작가가 에도라는 곳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세삼 깨닫게 해 줍니다. 대한민국 독자가 이런 묘사를 모두 이해하기는 좀 힘들다는게 문제이기는 하지만요. 이전에 읽었던 <<만족을 알다>> 등 에도 관련 책과 함께 읽어야 대충 배경이 머릿 속에 그려질 것 같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말이지요.

<<만족을 알다>> 속 나가야 소개

수록작별로 짤막하게 스포일러와 함께 소개해드리자면,
첫 이야기인 <<복어와 후쿠와라이>>는 수록작 중 유일하게 진짜 괴담이 주요 소재입니다. 저주받은 후쿠와라이 때문에 소동이 빚어지게 되거든요. 그러나 결말은 굉장히 현실적이에요. 저주를 풀기 위해 마쓰바 부인이 눈을 가리고 후쿠와라이를 완벽하게 완성하는데, 지극히 논리적인 방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스타크래프트로 따지면 일종의 '귀맵'을 썼다는게 진상이니까요.

두 번째 이야기 <<쌍륙 가미가쿠시>>는 '저주받은 쌍륙'에 의해 '가미가쿠시 (아이 실종)'가 일어나는 내용으로 괴담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아이들의 거짓말이었다는게 진상이었습니다. 이를 밝혀내는 과정과 진상, 일종의 트릭과 추리 과정 모두 일상계같은 느낌을 전해주어서 현실적이면서도 와 닿게끔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타이치 혼자서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모습을 통해, 그가 장차 센키치 대장의 뒤를 이을거라는걸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시리즈에서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말이 없는 지킴이>>는 기타이치가 연고없는 유골을 수습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알고보니 목욕탕 가마 담당 기타조의 아버지 유골이었고, 기타조는 은혜를 갚기 위해 도미칸 납치 사건을 기타이치가 해결한걸로 만들려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수록작 중 유일하게 괴담이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체로 '모험물'에 가깝다는 것도 특징이고요. 반면 추리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도미칸 납치 사건은 추리의 여지가 전혀 없었고, 사건도 반 쯤은 우연에 의해 해결되는 탓입니다. 앞서 도미칸이 과자가게 이나다야의 난봉꾼 차남을 응징하는 장면은 재미있었고, 또 다른 주인공 기타조가 첫 등장하는 등 건질게 없지는 않지만,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처지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마지막 수록작인 <<저승에서 돌아온 신부>>는 밥집 딸 오사키가 자신이 된장가게 아들 만타로의 죽었던 아내 환생이라고 주장한 뒤 일어난 일련의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살인 사건이 2건이나 일어나는 잔인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수록작들과 결을 좀 달리합니다. 사건을 추리해서 풀어가는 내용도 비교적 정통 추리물에 가깝고요. 환생이 아니라 사기극이었다걸 드러내는 추리의 과정도 괜찮았습니다. 사건 해결은 오사키의 자백에 의한 것이라는 단점은 있지만, 이는 에도라는 시대 특성상 어쩔 수 없었던 점이라 생각되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평균 수준의 작품이 세 편 이상은 되기에,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을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추리물 속성이 옅고, 기타이치가 오카핏키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기이자 모험물 속성이 강해서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요. 리뷰를 쓰기도 힘들었고, 후속권도 읽어볼 것 같지는 않네요.

2022/01/14

디 아더 피플 - C.J. 튜더 / 이은선 : 별점 2점

디 아더 피플 - 4점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다산책방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이브는 혼잡한 고속도로를 타고 귀가하다가 앞 차량에 자기 딸 이지가 납치되어 타고 있는 걸 목격했다. 열띤 추격 끝에 차량을 놓친 게이브는 경찰로부터 아내와 딸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년 뒤, 장인 해리가 시신을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딸이 죽지 않았다고 믿던 게이브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전전하며 전단지를 돌리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으로 이지가 납치될 때 탔던 차를 기어코 찾아냈다. 차에서 가져온 노트로 응징받아야 할 사람을 대신 응징해 주는 다크웹 '디 아더 피플'의 실체를 알아냈지만,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단서를 모두 빼앗겼다.
한편, 게이브의 단골 휴게소에서 일하던 케이티는 앨리스라는 소녀 전화를 받았다. 케이티 언니 프랜의 딸이라며 도움을 요청했고, 앨리스를 보살피면서 그녀가 바로 이지였다는걸 깨달았다. 그러나 케이티 역시 습격을 받고, 겨우 탈출하는데....


이전 <<초크맨>>으로 접했던 영국 작가 C.J 튜더의 3번째 장편. 스티븐 킹 작품의 저열한 카피에 불과했던 <<초크맨>>에 큰 실망을 했던 터라 더 이상 읽을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좋은 리뷰들로 자주 찾는 블로그인 '추리문학쪼개기'에서 이 작품에 대해 호평한 리뷰를 읽고 관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네요.

전혀 모르는 차에 내 딸이 타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도입부는 흥미로왔습니다. 극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게이브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 해리가 시체를 확인까지 했는데 이지가 과연 살아있는게 맞는지?라는 수수께끼도 거의 마지막까지 끌고가서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어 주고요.
디 아더 피플에 접속하기 위한 암호가 자동차에서 입수했던 성경책과 관련이 있었다던가, 장인 해리가 시신 확인을 하려는 게이브를 막기 위해 약을 썼다는 추리적인 장치들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건질게 없습니다. 따지고보면 딸의 납치를 목격한다는 것 부터가 작위적이에요. 우연히 살인 사건을 목격한 탓에 사건에 휘말린다는 이야기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지만, 그 중에서도 작위적인걸로 치자면 첫 손가락에 꼽힐 만 합니다. 대체로 '모르는' 사람이 살해당했던 다른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르니까요.
전개도 엉망입니다. 게이브가 복수를 대행하는 디 아더 피플이 사건을 저질렀다는걸 알아낸 이후의 전개는 특히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게이브는 누가 살인을 의뢰했는지 바로 알아챘어야 했거든요. 그의 인생 통들어 이렇게 복수를 당할만한 사건은 어린 시절 음주 운전으로 이사벨라를 식물 인간으로 만들었던 사건뿐인데 이사벨라의 모친 샬럿은 이미 죽었으니, 남는건 오랫동안 이사벨라를 돌봤던 간호사 미리엄밖에는 없으니까요. 샬럿으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게이브와 가족의 유산을 관리하게 되는 것도 미리엄이라니 동기도 확실합니다. 매덕 경위가 이지가 살아있다는걸 납득한 순간, 이 사건을 꾸민게 누구인지 충분히 알려줄 수 있었을겁니다. 아니, 이 정도는 이후 경찰 수사로도 밝혀낼 수 있었을거에요.
이렇게 중요한 이사벨라 사건, 그리고 이 사건 때문에 게이브가 거액을 물려받았다는걸 거의 마지막까지 드러내지 않는 전개는 추리물 애호가로서 아주 불만스러웠습니다. 사건의 핵심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꽁꽁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알기 전까지 게이브의 아내가 살해당한 이유는 장인 해리 때문일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마침 해리는 저명한 의사이니, 의료 사고에 관계된 원한이 있을거라고요. 마찬가지로 프랜은 가족과 사이가 안 좋았으니, 아버지에게 성폭행같은걸 당해서 복수 의뢰를 했던거고 그 탓에 게이브 가족 살해를 거들다가 이지를 데리고 달아나게 된 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추리는 다 헛수고에 불과했어요. 재미 여부를 떠나 반칙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독자는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으니까요.
또 전개 도중 스티브가 게이브를 죽이지 않고 노트만 빼앗아 간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게이브는 습격했던 스티브의 얼굴을 봤는데 말이지요. 게이브가 다크웹 패스워드를 알고 있는 한 접속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구태여 힘을 써서 노트 따위를 훔쳐갈 이유는 없었어요. 차라리 패스워드를 바꾸는게 더 합리적이었을 겁니다. 여기서 게이브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스티브가 케이티를 죽이려 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게이브, 프랜, 케이티, 미리엄, 이지 등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오가는 전개도 좋다기보다는 혼란스러웠고, 중요 정보를 가리기 위한 꼼수로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낯선 승객>> 설정을 비공개 커뮤니티로 만든 것에 불과한 다크웹 '디 아더 피플' 설정도 어설펐습니다. 친족이 아닌 아무나 디 아더 피플에 복수 의뢰를 할 수 있다? 뭐 그건 있을 수 있다 치죠. 그러나 복수 대상이 범행을 저지른 당사자였던 게이브가 아니라 가족이라는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게이브의 가족을 죽인 살인자가 프렌과 이지를 죽이려다가 살해당한다는 것 (같은 차를 몰고 있었던 것으로 증명됨)도 마찬가지입니다. 디 아더 피플은 다른 사람의 복수를 회원 누군가가 해 준다는게 기본 조건입니다. 정해진 킬러가 타겟을 해치우는게 아니라요. 그런데 게이브 가족 살인범도 그렇고, 나중에 게이브가 케이티를 스티브라는 동일 인물이 습격한다? 뭔가 잘못된 거지요. 설정 오류에요.
디 아더 피플이 교도소 안에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할 정도로 전능하다는 설정, 이 정도 조직이 신규 회원(?)을 알음알음 구두로 모집하는 설정 등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보다는 <<원한 해결 사무소>>나 <<선악의 쓰레기>>같은, 주어진 현실 내에서 맡은바 임무를 가하는 복수 대행업자가 나오는 만화가 더 현실적이라 생각됩니다.
디 아더 피플에 대해 알고 있는 핵심 관계자 케이트와 게이브가 만났고, 케이트의 언니 프렌이 이지를 데리고 있었으며, 게이브를 돕던 '선한 사마리아인'이 프랜의 의뢰로 죽은, 프랜 아버지를 과실치사로 죽게 만든 소년의 아버지였다는 인물 설정과 관계도 비현실적입니다. 특히 선한 사마리아인은 억지가 지나쳤어요. 일단 그가 게이브에게 접근하여 프랜을 찾으려 했다는 동기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게이브 가족을 죽이는데 프랜이 협조했다는걸 알아낸 방법이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지를 납치했던 차를 찾아낸 방법 역시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마지막에 이지가 이사벨라와 영적 교감을 하다가, 마지막에 염동력(?)을 발휘해서 미리엄을 죽이는 결말은 이게 뭔가 싶더군요. 이런 설정이 대체 왜 필요했던걸까요? 스티븐 킹의 빌 호지스 시리즈같은 싸이킥 스릴러를 생각한 듯 한데, 그만한 설득력도 없고 이야기에도 불필요했습니다. 이런 설정은 아예 빼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결말도 영 아니었습니다. 게이브가 어린 소녀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죄를 지은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약 2년간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혼 위기였던 아내만 죽었을 뿐 딸은 무사히 돌아오고, 오히려 예쁘고 다정한 케이트와 함께 유산으로 물려받은 대 저택에서 행복한 미래를 살아갈 거라는건 개운하지가 않네요. 이 정도로 제대로 된 죗값을 치뤘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가해자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류의 이야기인데,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읽히는 재미는 있지만 단점도 많았기에 감점합니다. 앞으로 이 작가 책을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2/01/09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9)

지구 멸망 일주일 전, 뭐 먹을까? - 4점 신서경 지음, 송비 그림/푸른숲

한국 작가 컴비의 먹방 만화. 지구 멸망을 1주일 앞 둔 상황에서, 먹방 BJ 봉구가 최후의 그 순간까지 먹는 것으로 주변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내용입니다.

설정은 독특했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등장하는 요리들은 나쁘지 않았고, 밥솥으로 시루떡 만들기같은 한국적인 소재가 등장하는건 반가왔습니다만, 지극히 뻔하고 평범했어요. 설정 상 음식을 구하기 힘들거나 조리가 어려운 상황이었을텐데 그에 걸맞는 요리라고 보기 힘든 것도 문제였고요.

캐릭터도 뻔하고 평범합니다. 소심남 BJ 봉구 캐릭터는 우리나라 만화에 흔하게 등장하는 전형적인 아싸 오덕 캐릭터의 전형에 불과했고, 다른 캐릭터들도 과장된 설정의 스테레오 타입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봉구가 이웃집 아저씨, 보험왕 아줌마, 썸을 타던 동창생, 그리고 악플러와 함께 유사 가족을 이루는 마지막 이야기는 사뭇 억지스러웠고요. 마지막에 다 같이 모여 설겆이를 하는 장면이 특히 그러했습니다.
BJ라는 직업에 걸맞게 현피를 뜨려는 악플러가 등장하는 등의 소소한 디테일은 있지만, 이야기에 잘 녹아났다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전기 공급을 재개시키려는 노력이 단지 애니팡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도 불필요한 디테일이었어요.

독특한 설정을 잘 살려서 서바이벌과 긴장감을 살리는 전개로 갔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술 한잔 인생 한입 47 - 6점 라즈웰 호소키 지음, 문기업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전통의 시리즈도 47권째. 소소한 술자리에서의 가벼운 일상 에피소드들은 여전한 재미를 안겨 줍니다. 에비사와와 스와 부부가 아기를 갖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는 오랜 팬으로 기뻤고, 우리나라에서 먹는 안주는 아니지만, 마즙으로 만드는 '아마가케' 먹는 법에 대한 상세한 고찰은 이 시리즈만의 매력을 다시금 알려주더군요.
그런데 좀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분명 이전 권에서 절친인 타케노마타가 결혼했고, 이와마도 그 탓에 결혼에 대해 동경을 품으며 카스미, 마츠시마라는 두 여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번 권에서는 전부 리셋된 느낌이었습니다. 다케노마타는 여전히 이와마, 사이토와 술자리에서 어울리면서 결혼한 티를 내지 전혀 내지 않더라고요. 이와마가 마츠시마와 우연히 함께 술자리를 하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에피소드가 있기는 한데, 다음 단계의 진도는 전혀 나가지 못하고요. 오히려 언제나처럼 카스미와 함께 술자리를 갖는 에피소드들이 뒤에 이어질 뿐입니다. 한참 진도를 빼다가 갑자기 쉬어가는 느낌인데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이전 권보다 줄기는 했지만, 일본에 살아야만 의미있는 아사쿠사, 도쿄역, 이케부쿠로 술집 탐방같은 에피소드는 한국 독자로서는 그닥 반길만한 에피소드는 아니었고요.

그래도 재미만큼은 여전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8)

2022/01/08

악마의 문장 - 에도가와 란포 / 주자덕 : 별점 1점

악마의 문장 - 2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주자덕 옮김/아프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제당 주식회사 대표 가와테 쇼타로 씨는 일족 모두를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고, 명탐정 법의학자 무나가타 류이치로 박사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두 딸이 차례로 살해당한 뒤 가와테 쇼타로 씨 마저도 은신처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곳곳에 '3중 소용돌이 지문'의 흔적을 남긴 범인에 의해서였다. 특히 첫째딸 다에코는 저택 주변에는 형사가, 잠긴 방 창문과 출입문은 박사와 조수가 직접 보초를 섰는데도 불구하고, 깜쪽같이 방에서 사라진 후 유령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유령의 집에서 박사에게 쫓기던 범인은 박사의 조수 코이케도 살해했고, 출동한 경찰에게 완전 포위되었지만 끝내 거울의 방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스미다강에서 보트 놀이하던 남녀가 우연히 잘린 손가락을 발견한걸 계기로, 박사는 기타조노 류코가 사건에 관계가 있다는걸 추리해 냈다. 도주한 그녀의 은신처를 밝혀낸 박사는 추격 끝에 그녀를 사로잡지만 결국 그녀는 물론, 진범으로 생각되는 안대를 한 남자 역시 자살해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수사과장, 나타무라 경감, 형사부장과 무나카타 박사, 아케치 코고로가 함께 한 사건 마무리 축하 연회에서, 아케치는 자신이 추리한 진짜 사건의 진상을 펼쳐 보이는데...


대담하면서도 스케일 크고, 기묘하면서도 변태스럽기까지한 범행이 연이어 등장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의 장편입니다. '3중 소용돌이 지문'은 이 작품을 읽기 전에도 워낙에 유명해서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불가능 범죄가 많이 등장하는 덕분에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 부분이 제법 됩니다. 다에코 소실 사건을 빈 침대와 연결하여 풀어내는 과정이라던가, 거울의 방 소실 트릭을 통해, 무나카타 박사가 진범이라는걸 드러내는 것 처럼 말이죠. 무나카타 박사가 기타조노 류코를 포박하고 경찰에 연락한 뒤 돌아와보니 그녀가 끈을 끊고 자결했던 상황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던 아케치 코고로의 추리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끈을 먼저 끊었다면 도망치는게 타당했고, 누군가 살해했다면 끈을 끊을 이유는 없었다는건 당연하니까요.
박사가 손가락을 싸고 있는 신문지와 손수건으로 류코의 거처를 알아냈다던가, 류코가 도주 전 대량의 식재료를 배달받았다는걸 근거로 자택 다락에 은신하고 있다는걸 추리해내는 등의 소소한 추리들도 괜찮았고요.
3중 소용돌이 지문을 일종의 아이콘처럼 활용하고 있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문이 찍힐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문이 발견되도록 만들어서 범인이 전능하다는걸 드러내는 연출도 좋았고, 무고했던 류코가 3중 소용돌이 지문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녀가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는 범인의 계획도 그럴듯했거든요.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의 활약도 팬으로서는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연극적인 상황을 지나치게 많이 연출하고 있는건 문제입니다. 이야기에 별 상관도 없고, 설득력을 떨어트리는 요소들일 뿐이었거든요. 가와테의 두 딸 시체를 '인체 전시회'와 '유령의 집'에 각각 전시하듯 유기한 상황부터가 그러합니다. 범인이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은 하나도 없는 불필요하며 불합리한 행동에 불과했어요. 오히려 유령의 집에 시체를 유기하려다가 경찰에 포위되었고, 그래서 정체가 드러날 빌미를 아케치 코고로에게 제공했을 뿐이니 이는 완전한 패착이었지요. 완전 포위당한 거울의 방에 갖혀있던 범인이 사라지고, 박사 튀어나왔다는건 박사가 범인이라는거니까요. 이 소실 트릭이 보다 현실적인 상황에서 등장했더라면 그나마 괜찮았을텐데, 범인의 억지 연출로 자기 무덤을 판 것에 지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애초에 복수 대상이었던 가와테 쇼타로가 사건 수사를 범인인 박사에게 의뢰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완전범죄로 죽이면 되는데, 왜 자기 정체가 드러날 위험을 무릅쓰고 충직한 조수마저 죽게 만들면서까지 억지 상황을 연출하면서 복수를 질질 끌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합니다. 이런 연출로 박사가 얻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표면적으로 아케치 코고로에 버금간다는 명탐정이었던 박사의 명성에 흠집만 났을 뿐이에요.

또 이 상황에서 묘사되는 유령의 집 가짜 시체와 여러 장치들은 당시 기술력으로는 재현이 불가했을 장치들이라 완전 억지에 불과했습니다. 거울의 방 묘사는 작가의 작품에서 반복되던 그대로라 지겨웠고요. 이야기와는 아예 상관없는 쓸데없는 내용이 이렇게까지 길게 묘사될 이유도 없었어요. 쇼타로의 은신처에서 그를 죽이기 전 복수의 이유인 쇼타로의 아버지 가와테 쇼베가 저질렀던 악행을 연극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묘사도 억지스럽고 불필요했다건 마찬가지고요.
이런 묘사들은 아마 당시 잡지 연재를 하면서, 매 편마다 독자들의 흥미와 재미를 불러 일으키기위해 자극적인 묘사로 채우기 위한 의도였다고 생각은 됩니다. 연재 시 분량을 늘여 원고료를 더 받기 위한 얄팍한 술책도 한 몫했을테고요. 문제는 이걸 하나의 책으로 묶어 보니, 과하고 불필요한 묘사만 가득차 버리고 말았다는거지요.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낡기만 했을 뿐, 특별한 가치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 정도면 그냥 잊혀져도 무방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2022/01/07

샘 호손 박사의 두번째 불가능 사건집 - 에드워드 D. 호크 / 김예진 : 별점 2점

샘 호손 박사의 두 번째 불가능 사건집 - 4점
에드워드 D. 호크 지음, 김예진 옮김/GCBooks(GC북스)

안녕하세요. 2022년 첫 리뷰네요. 먼저 새해 인사 드립니다. 2022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은 노스몬트에서 일하는 시골 의사 샘 호손이 명탐정으로 등장해서, 온갖 불가능 사건을 해결하는 고전 스타일의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 시리즈입니다. 1권에 이어 2권도 읽게 되었네요.
수록작은 무려 15편이며, 샘 호손이 범인으로 몰린다던가, 대도시 보스턴에서 사건을 해결한다던가, 렌즈 보안관이 혼자서 사건을 해결한다던가 하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져서 팬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하지만 전편보다는 별로였어요. 모두 일종의 밀실 상황에서 일어난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데, 알고보니 밀실이 아닌 상황이 많았던 탓입니다. 대략 네 작품은 명백하게 밀실이 아니었어요. 트릭도 무려 여섯 작품에서 변장이 사용되고 있고요. 무엇보다도 절반이 넘는 무려 여덟 작품에서 불가능 범죄를 만들 이유가 없는데에도 불구하고 만들어버리는 억지를 보여주고 있어서 굉장히 실망스러웠습니다. 범행 동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로 설득력이 없어서 와 닿지 않더군요.

몇몇 작품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팬이 아니시라면 딱히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트릭과 범인을 모두 알려주는,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라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그나저나, 무려 15편의 리뷰를 상세하게 올리니 시간이 엄청 걸리네요. 다음부터는 인상적이었던 단편들만 추려서 올리는걸 고려해 봐야 겠습니다.

<<치유하는 천막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어린 아들을 치료사로 내세워 시골 환자들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다니는 사기꾼 조지 예스터의 공연을 찾아갔다가 그와 싸움을 벌이고 말았다. 자기 환자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샘이 그에게 주먹을 날린 뒤 나가려고 잠깐 뒤를 돈 순간, 조지 예스터가 가슴을 칼로 깊게 찔려 살해당했다. 천막 안에는 예스터와 샘 호손밖에 없었고, 잠깐 사이에 샘 호손의 눈을 피해 현장에서 빠져나가는건 불가능했다...

짧은 순간에 범인이 사라져 버리는 인간 소실 트릭이 사용된 작품.

범인인 매지가 동상으로 변장하고 있었다는 트릭은 굉장히 허무했습니다. 동상과 사람이 몸에 페인트 칠을 한 건 명백히 달랐을 텐데 이걸 눈치채지 못했다는건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물론 위 사진처럼 정말 동상처럼 보이게끔 하는건 가능하고, 동상이 그녀를 모델로 만든거라는 일종의 복선도 제공되기는 합니다. 짧은 시간, 제한된 조건에서라면 먹혔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매지 혼자 거대한 동상을 천막 밖으로 잠깐 치워 놓았다가 다시 원래 위치로 가져다 놓는다는건 아예 불가능했을거에요. 등신대 금속 조각상이라면 무게가 아무리 적어도 백 킬로그램은 되었을테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동상으로 변장해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샘 호손 (아니면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이 트릭을 사용했다? 말도 안됩니다. 샘 호손,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날 조지밖에 없는 천막으로 찾아와 다툴 거라는걸 미리 알고 있었어야 하는데, 이걸 예상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설령 다툼을 예상했더라도, 천막 안이 아니라 천막 밖에서 다퉜을 수도 있고요. 즉, 살해하려면 그냥 천막에 숨어있다가 죽이는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이 동상의 존재를 은근슬쩍 묻고 지나가는 전개가 별로 공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독자와의 두뇌 싸움을 펼치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속여넘기려는 것에 불과해 보였어요.

또 트릭을 떠올릴 수도 있는 대학 시절 사진을 훔쳐내기 위해 매클로플린 교수를 습격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예스터의 공연에 찾아가기로 한 건 매지가 샘 호손과 함께 있었을 때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때 사진을 회수했으면 됩니다. 추가적인 범행을 저지를 필요 없이요. 매지가 토비 예스터의 엄마였었다는 동기도 억지스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샘 호손이 범인으로 몰린다는 상황 말고는 건질게 없었던 졸작이었습니다.

<<속삭이는 집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유령사냥꾼 태디어스 슬론과 함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고,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오는 비밀의 방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 브라이어 가문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둘은 한 밤중에 당장 나가라는 누군가의 말소리를 들은 뒤, 누군가 저택에 들어와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는걸 목격했다. 그리고 30여 분이 지나도 남자가 나오지 않아서 둘은 비밀문을 열어보는데, 남자는 죽어 있었고 방 안에는 다른 사람, 다른 출구도 없었다.
샘 호손은 피해자가 최소 15시간 전에 살해당했다는걸 알아챘는데, 수사를 이어가던 샘 호손의 차가 누군가가 설치한 조잡한 폭탄에 의해 불타버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비밀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는건, 그 방에 다른 비밀 출구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숨겨진 출구만 찾으면 될 일이라, 이걸 불가능 범죄물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유력한 용의자도 너무 뻔했습니다. 상황을 아는건 초반에 샘의 치료를 받는 빌리밖에는 없으니까요. 빌리는 어린 시절 유령 집에서 자주 놀았으며 치료를 받을 때 샘과 슬론이 그 집으로 간다는 이야기까지 들었고, 시체가 들고 있던 총은 발사된 흔적이 있었는데 빌리가 샘 호손의 치료를 받은 이유는 쇠스랑에 발을 관통당했다는 것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리고 이상한 불가능 상황으로 만드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비밀 방이었다면, 그 안에 시체를 숨겨놓고 가만히 있었으면 될 일이잖아요? 구태여 샘과 슬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서 사건을 키울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사건을 기획한 빌리의 모친이 사후경직을 통한 사망시각 추정이 가능하다는걸 몰라서 벌인 것이었다는 설명이 덧붙여지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작품은 아니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나마 샘 호손의 애차 피어스 랜스 어바웃이 7년만에 불에 타 버리고, 새로운 차를 구입한다는 이야기만 기억에 남네요.

<<보스턴 공원의 수수께끼>>
샘 호손이 의학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보스턴애 도착한 날, 보스턴 공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쿠라레 독화살이 흉기로 사용되었으며, 이전에도 3명이나 같은 수법으로 살해당했었다. 하지만 공원은 숨어서 총을 쏘거나, 대롱을 부는게 불가능했다. 심지어 세 번째 사건 때부터는 공원에 형사가 가득했고, 네 번째 피해자는 죽을 때 까지 경찰이 예의 주시하며 미행행하기까지 했었다. 범인은 어떻게 독이 묻은 화살을 피해자들에게 쏠 수 있었을까?

"사건 현장에 있었지만, 아무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존재"에 의해 사건이 벌어진다는 일종의 '투명 인간 트릭'이 사용된 작품. 범인이 기차 차장이나 레스토랑 웨이터 등이었다는 류의 트릭으로 이 작품에서는 호텔 도어맨이 범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호텔 도어맨이라 눈에 뜨이지 않았다는 억지를 부리지 않아서 마음에 듭니다. 핵심은 샘 호손이 쿠라레에 대해 조사하여 밝혀낸대로, 공원 안이 아니라 공원 입구, 즉 호텔 근처에서 화살에 맞았다는 겁니다. 쿠라레는 즉효성이지만 맞고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어서 피해자들은 공원 안에 들어가서 이동하다가 죽었던 거지요. 도어맨은 호루라기를 부는게 이상하지 않은 직업이라서 호루라기를 부는 척 하고 불특정 다수인 공원 이용자에게 독화살을 쏘았고요.
노스몬트가 이닌 대도시 보스턴을 무대로 하고 있는 것도 처음에는 그냥 재미 요소라 생각했는데, 트릭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오가는 큰 공원, 그리고 공원 바로 앞에 위치한 큰 호텔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시골 소도시 노스몬트보다는 큰, 보스턴같은 대도시를 무대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범인의 동기가 애매했으며, 20세기 초 미국을 무대로 한 작품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독화살이 흉기로 사용된 건 작위적이기는 했습니다. 샘 호손이 스스로 미끼기 되는 장면도 억지스러웠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했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잡화점의 수수께끼>>
노스몬트에 미모의 중년 여성 매기 머피가 이사와서 맥스 하크너 잡화점 옆에 부동산을 열었다. 그녀는 자주 잡화점에서 여성 인권에 대해 열변을 토했기에 마을 남자들이 싫어했지만, 워낙 미인이라 내색은 크게 하지 않았다.
존 클레이 노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날, 맥스의 잡화점에서 일했던 프랭크가 샘 호손을 찾아와 자신이 맥스의 아내 어밀리아와 불륜 관계였다는걸 털어 놓았고, 그 직후 맥스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잡화점 안에는 시체와 함께 기절했다는 매기 머피밖에 없었는데, 잡화점 문과 창문은 안쪽에서 모두 잠겨 있었다...


밀실물처럼 소개되지만 환풍기 날개 사이로 총을 집어넣어 쏘았다는게 진상이라서, 이게 밀실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현장에서 발견된 맥스의 총은 더블 배럴이라 환풍기 날개 사이로 넣을 수 없었지만, 밖에 있었던 존 클레인 노인의 총은 싱글 배럴이라 날개 사이로 넣을 수 있었다는데 이건 트릭도 뭐도 아니고요. 부실한 현장 조사에 더해 흉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생겨난 실수일 뿐입니다.
존 클레이 노인의 범행 동기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고, 범인이 살인 때문에 놀라서 죽었다는 등 내용도 전반적으로 억지스러웠고요. 복잡하고 억지스러운 장치 트릭보다야 현실적인 발상입니다만,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법원 가고일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조스트로 살인 사건의 배심원을 맡게 되었다. 피고 애런 플레이버는 조스트로의 고용인으로, 그는 실수로 총이 발사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조스트로 부인과 불륜 관계라는 소문이 있어서 상당히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재판 도중, 베일리 판사가 마시던 물 잔 속 청산가리에 의해 독살당했다. 판사가 죽기 전 '가고일'이라는 말을 남겨서 범원 가고일 상을 조사해보니, 베일리 판사가 메이틀랜드 판사와 함께 밀주 밀매점에 투자했다는 문서가 들어있었다.
샘 호손은 이런 저런 단서들을 확인한 뒤, 사건 현장을 재현해서 추리쇼를 펼쳐보이는데...


애런 플레이버가 자살하려고 조스트로 부인에게서 건네받은 청산가리를 잔에 부어 놓았는데, 판사가 착각해서 먹고 죽은 거라는 진상부터가 말도 안됩니다. 자살할 생각이었다면 직접 입에 털어 넣었어야죠.
독약을 애런이 손에 넣은 방법에 대한 설명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재판 중에 조스트로 부인이 껌을 계속 씹고 있었다는 증언을 통해, 그녀가 껌으로 독약병을 증인석에 붙여 놓았다고 추리하는건 일견 그럴싸했지만 이 역시 조금만 생각해보면 납득할 수 없는 추리에요. 아무리 20세기 초반이라고 해도, 재판을 받는 피고가 흉기를 손쉽게 손에 넣을 정도로 보안이 허술했을리가 없잖아요. 가능했다해도 총이나 칼을 손에 넣는게 나았을거에요.

억지스러운 설정, 부실한 설명으로 이루어진 최악의 졸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수록장 중 최악이었습니다.

<<청교도 풍차의 수수께끼>>
'청교도 풍차'라 불리우는 네덜란드 풍차가 보존되어 있던 부지에 청교도 기념 병원이 신설되었다. 노스몬트 최초의 흑인 의사 링컨의 근무로 이런저런 구설수가 나오고 있었던 중, 부지를 병원에 기증했던 랜디 콜린스가 풍차에서 몸에 불이 붙어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그는 사건 당시 "루시퍼"라는 말을 겨우 남겼었고, 의식을 회복하여 풍차 안에 악마의 불덩이가 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샘 호손은 주유소를 운영하는 아이작 밴 도런이 풍차 안으로 걸어 들어간 뒤, 풍차와 함께 불에 타 죽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링컨 존스는 검시 결과 밴 도런의 다리가 심하게 골절되어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첫 사건은 백인 우월주의자 랜디 콜린스가 풍선을 이용하여 풍차 날개 4개에 불을 붙일 생각이었는데, 실수로 풍선이 터져 화상을 입었던 것이었습니다. "루시퍼"는 성냥을 부르는 명칭으로, 나중에 의식을 회복하고 악마 어쩌구로 말을 바꾼거지요.
두 번째 사건은 랜디에게 휘발유를 팔았던 주유소 주인 밴 도런이 진상을 눈치채고 협박해서, 랜디는 그에게 풍차 윗쪽에 보물을 숨겨두었다고 알려주었던게 진상이고요. 성냥이나 촛불로 확인해보라면서요. 그리고 이 말을 따른 밴 도런은 풍차 윗 쪽으로 날려보냈던 휘발유에 불이 붙어버린 탓에 처참하게 죽고 만 겁니다. 다리는 위에서 떨어질 때 부러졌던 것이었지요.
랜디의 동기는 인종차별을 하기 위했던 것으로, 인종차별이 뒤의 범죄들과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매끄러웠습니다. 사회파 느낌도 살짝 나서 괜찮았고요. 첫 번째 사건은 일종의 실수라 특별할 건 없지만, 두 번째 사건에 사용된 일종의 원격 조종 트릭은 나름대로 설득력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소소한 부분들은 문제가 많아요. 제일 먼저, 풍차를 십자가 형태로 불태우기 위해 풍선을 이용하려 했다는 발상이 억지스러웠어요. 이게 사건의 핵심인 탓에 이야기 전개도 다소 헐거운 편입니다. 성냥이나 촛불로 풍차 윗쪽을 확인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죠. 손전등도 있는 시대인데다가, 이렇게 한다고 불이 그렇게 쉽게 붙었을지도 의문이며, 설령 불이 붙었다 해도 밴 도런이 죽을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아울러 랜디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걸 보다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은건 공정해 보이지 않았어요. 단서가 없지는 않았지만 의도적으로 숨긴 티가 물씬 나서 별로였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트릭은 나쁘지 않았는데 관련된 상황에 대한 설득력이 낮아서 감점합니다. 체스터튼 소설같은 사건이라며 한껏 분위기를 띄우는데, 그 정도 수준의 작품은 절대로 아닙니다.

<<생강빵 하우스보트의 수수께끼>>
노스몬트 근처 체스터 호수는 마을 주민들의 여름 휴양지였다. 샘 호손은 여름 휴가를 왔던 미란다 그레이와 사랑에 빠졌다. 미란다의 삼촌인 제이슨, 기티 그레이 부부와 그 이웃 별장의 레이, 그레텔 하우저 부부와도 친해졌는데 어느날, 샘과 미란다 눈 앞에서 하우저 부부의 화려한 하우스 보트를 타고 놀던 두 부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메리 셀레스트호 괴담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끌어 올리지만, 특별한 수수께끼는 없습니다. 보트에는 레이 하우저와 키티 그레이만 타고 있었고, 그레텔 하우저와 제이슨 그레이는 이미 살해당해서 별장 안에 숨겨져 있었던 겁니다. 레이와 키티는 보트를 출발시킨 후, 별장에서 안 보이는 쪽으로 헤엄쳐 나왔고, 보트는 폭파시키려고 다이너마이트를 셋팅했는데 그게 불발했던거지요.
보트를 조사해서 다이너마이트를 찾아내면, 배 주인인 레이 하우저가 범인이라는게 뻔하니 후더닛 물로 볼 수도 없고요. 설령 레이 하우저의 계획대로 폭파되었더라도 문제에요. 그는 배가 폭파된 후 그레텔과 제이슨의 시체를 떠내려 보낼 생각이었는데, 그들이 익사하지 않았다는건 부검으로 밝혀졌을테니까요. 함께 배를 타고 있던 네 명 중 두 명이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익사가 아니라면, 다른 두 명이 범인이라는건 당연하잖아요?

아울러 이렇게 무거운 강력 범죄 이야기로 끌고가지 않고, 두 부부가 장난으로 이 일을 벌였다는 일상계 물이었다 한 들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샘 호손과 미란다 눈에 보이지 않게 배 반대쪽으로 뛰어내려 헤엄쳐 나간게 전부인 탓입니다. 즉, 이건 애초부터 불가능 범죄가 아니었어요. 차라리 장난에 가깝죠.

부실 수사와 부실한 계획이 합쳐진 망작입니다. 샘 호손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하는게 독특했을 뿐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분홍색 우체국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간호사 에이프릴과 노스몬트 우체국을 방문했다. 개장 첫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우체국장 베라는 우체국을 분홍색으로 칠해놓았다. 분홍색 페인트가 값이 쌌던 덕분으로, 한 쪽 벽에 마저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 흄 백스터를 불렀다. 흄이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했을 때, 은행장 앤슨 워터스가 주식 대공황을 알리며 1만 달러어치 무기명 채권의 특별 배송을 부탁했다. 그러나 잠시 뒤 그 봉투가 사라지고 마는데....

샘 호손이 미란다와 파국을 맞지만, 렌즈 보안관이 베라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등 주요 등장인물들의 애정 전선이 크게 움직이는 에피소드.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어요. 샘 호손이 봉투 행방에 대해 우체국 현장에서 펼쳐보이는 여러가지 추리들도 그럴싸했지만,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흄 백스터가 주워서, 벽에 붙인채 페인트 칠을 해 버렸다는 진상도 합리적이었거든요. 페인트가 마르면 바로 들통날테니 그날 밤 봉투를 회수하러 올 것이라는 마무리 추리까지 깔끔했고요.

물론 당장 봉투를 찾지 못했더라도, 수사를 통해 충분히 밝혀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렌즈 보안관의 무능이 드러나기는 합니다. 제일 수상한건 흄 백스터인게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런대로 괜찮은 단편이었습니다. 다른 작품들 수준이 워낙에 별로라 이 정도면 충분히 선녀급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팔각형 방의 수수께끼>>
렌즈 보안관은 베라와 에덴 하우스의 팔각형 방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팔각형 방은 거대한 서재로, 네 귀퉁이에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는 거울이 달린 수납장을 설치하여 만든 곳이었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방문이 열리지 않아서 잠긴 문을 부수자 시체가 발견되었다. 눈에 뜨이는 건 문 손잡이에 묶여 있던 끈 한 줄이었다. 끈으로 빗장을 잠글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았지만 끈은 너무 짧았고, 방문은 끈 한 올 통과할 틈이 없었다.


문 손잡이에 끈이 묶여 있었으니 이를 밀실물로 보기도 애매하네요. 이 끈으로 밀실을 만든게 당연하니까요. 진상도 예상 그대로였어요. 범인은 문 바로 맞은편 창문 걸쇠에 끈을 묶고, 이걸 빗장에도 묶은 뒤 창으로 탈출했던 겁니다. 문을 부술 때 끈이 당겨져 창문 걸쇠가 잠긴 것이지요.
이렇게해서 창문이 잘 잠겼을지는 둘째치고서라도, 끈 조각이 남은 탓에 딱히 대단한 트릭이 될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제대로 잠긴걸 확인하지 않아서 밀실로 착각했을 뿐, 실제로는 밀실이 아니었다는 문제도 크고요.
범인이 밀실을 만든 이유도 이해하기 힘들어요. 이렇게 복잡한 장치를 만드느니, 문을 열어두고 한 패에게 살해당했다는 식으로 꾸미는게 상식적입니다.

물론 범인인 조시의 아내 엘렌이 창문을 부수는걸 반대했던 장면같은 복선이라던가, 언제나 이야기를 듣는 화자가 아니라 범인이었던 엘렌이 찾아와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거라는 나름의 반전은 괜찮았습니다. 그녀가 남편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지만, 결국 그 때문에 모든걸 잃었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부실했고, 상황의 설득력이 낮아서 좋은 점수는 주기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집시 야영지의 수수께끼>>
청교도 기념 병원을 찾은 샘 호손이 병원 경영의 전권을 맡은 에이블 프레이터 의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눌 때, 집시 에도 몬타나가 들어와 저주를 받았다고 말한 뒤 곧바로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집시들은 무리의 지도자 루돌프의 저주 탓이라 여겼지만, 부검 결과 몬타나는 심장에 총을 맞았다는게 밝혀졌다. 그러나 몬타나의 가슴과 등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렌즈 보안관은 저주의 원인이 된 몬타나의 부인 테레즈를 구금하려 했지만 집시 스티브의 공격으로 실패했고, 철저한 수사를 위해 집시 무리를 하룻밤 동안 감시했는데 집시들은 스무대의 마자, 말과 함께 깜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두 개의 불가능 범죄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첫 번째 범죄는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슴과 등에 상처가 없었다면 누군가 가슴을 연 뒤 심장에 총을 쏜 것이고, 부검 자리에는 샘 호손과 에이블 프레이터밖에 없었으니 범인은 에이블인게 당연하지요. 집시들이 머물던 해스킨스 농장의 상속 문제라는 동기도 이야기에서 거의 곧바로 드러나고요. 애초에 왜 가슴을 열기 전에 총을 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 구태여 기묘한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집시들이 하룻밤 새 사라져버린 두 번째 트릭은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말과 마차모양 판지를 세워놓아 눈을 속인 뒤, 판지를 태우고 사람들만 몰래 빠져나갔다는건데, 보안관이 멀리서 감시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속아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저 판지들을 모조리 태울 수 있었을지 의문인 등 세세한 점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밀주업자 자동차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밀주업자 래리 스피어스의 동료들에게 납치되었다. 총에 맞았다는 래리의 치료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래리는 중상이 아니었다. 동료 중 배신자를 찾아내기 위해서라며 아픈 척 연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래리는 토니 배럴과의 거래 완료 때까지는 샘 호손을 풀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거래가 끝났을 때, 실수로 총격전이 벌어졌고, 차에 탔던 토니 배럴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진상은 래리 스피어스가 다친 척 위장해서 토니 배럴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뒤 살해했던 겁니다. 집 밖으로 나가 차에 탔던 건 래리가 매수한 토니의 부하 스쿠프였고요. 스쿠프는 래리가 뚱보로 변장할 때 썼던 완충재를 몸에 두르고, 수염을 붙인 뒤 웅얼거리며 토니인 척 나가서 차에 탔습니다. 그리고 변장을 풀고 바로 운전석으로 넘어가 차를 몰고 떠나려고 했던 거지요. 잘 됐더라면 완전 범죄가 됐을텐데, 하필이면 총격전이 벌어진 탓에 스쿠프가 운전석에서 내리자 불가해한 실종 사건이 생겨났던 겁니다. 이렇게 불가능 범죄가 일어난 이유를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합리적으로 설명되는게 좋았습니다.
래리가 술통 값을 낼 수 없는데 술통이 필요했다는 동기도 설득력 있었고, 토니 배럴의 차가 밖에서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던가 (방탄을 위해서), 스쿠프가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다는 등의 복선도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갱들과 목숨을 걸고 담판을 지으며 사건을 해결하는 샘 호손의 모습도 독특했고요.

이렇게 이야기 완성도만큼은 나쁘지 않아요. 문제는 트릭의 설득력이지요. 과연 저 정도의 변장으로 다른 사람들이 다 속아넘어갔을까?는 잘 설명되지 못하거든요. 이번 권은 변장을 전가의 보도로 쓰고 있는 트릭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이 낮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깡통 거위의 수수께끼>>
잠겨져 있던 비행기 조종석에 있던 조종사가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을 그린 작품.

핵심은 조종석 안에 범인이 숨어 있었다는 겁니다! 샘 호손의 눈을 피해 숨어있다가 몰래 문 밖으로 나갔던 거지요. 밀실이라고 볼 수는 없는 셈입니다. 왜 이런 기묘한 상황에서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잘 설명되지 못하고요.
그래도 범인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비행기 곡예단 동료를 자기처럼 변장시켜 공연을 했다는 트릭만큼은 괜찮았습니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평작 수준은 될 듯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냥꾼 오두막의 수수께끼>>
샘의 아버지 해리 호손이 아내와 함께 노스몬트에 방문했다. 그는 편지 왕래로 친해진 대지주 라이더 색스턴으로부터 사냥 초대를 받고, 샘도 함께 사냥에 참가하게 되었다. 다음날, 사슴 사냥을 하던 중 혼자 사냥꾼 오두막에 있었던 라이더 색스턴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오두막으로 들어온 발자욱은 색스턴 것 뿐이었고, 흉기는 저택 안의 무기 컬렉션에 있던 곤봉이었다. 현장에서 발견된건 오래된 깃털 뿐이었다. 범인은 어떻게 발자욱없이 곤봉을 가지고 들어와 색스턴을 죽였을까?

범인은 사냥꾼 오두막 물탱크에 물을 채우기 위한 호스 자국 위로 이동하여 발자욱을 남기지 않았던 겁니다. 호스의 폭은 3cm에 불과했지만, 이 위를 '자전거'로 지나갔던 거지요.
상황을 잘 이용한 괜찮은 트릭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색스턴이 오두막으로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호스를 연결했다가 떼는 장면이 상당히 오래 묘사되고 있어서, 작가가 독자와 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잘 전해주고요. 자전거를 닭장 안에 두었었기 때문에 현장에 닭털을 흘렸고, 이 탓에 트릭이 들통나는 과정도 괜찮았어요.

왜 불가능 상황을 연출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건 아쉽지만, 트릭만큼은 정말 괜찮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건초 더미 속 시체의 수수께끼>>
샘 호손은 수의사 밥 위더스가 농부 펠릭스 베넷의 아내 세라와 불륜을 저지르는걸 목격한 후, 펠릭스의 권유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때 가석방 중 펠릭스의 신세를 지다가 사고를 쳐서 펠릭스가 다시 교도소로 돌려 보냈던 로슨이 만기 출소했다며 나타나 펠릭스를 협박했다.
그날 밤은 곰 사냥을 위해 렌즈 보안관을 비롯한 여러명이 농장에 잠복하고 있었는데, 펠릭스가 샘 호손에게 전화 한 통화를 남기고 사라졌다. 나중에 그는 방수포로 덮은 건초 더미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보안관은 펠릭스가 건초 더미를 쌓고 방수포를 치는걸 자기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면서, 방수포 안에 시체를 넣는건 불가능했다고 말하는데...


렌즈 보안관이 혼자서 해결했다는 사건.
범인은 펠릭스 농장의 소작농 핼 패리였습니다. 그는 펠릭스의 상징과도 같은 큰 밀짚모자를 쓰고 건초 더미 뒤에 있던 펠릭스를 죽인 뒤, 자기가 펠릭스인 척 시체를 건초 더미에 넣고 그 위에 방수포를 쳤던 겁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변장 트릭이 사용되어서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만 독립적으로 놓고 보면 괜찮은 본격 추리물인건 분명합니다. 일단 다른 작품들보다는 변장의 설득력이 높거든요. 밀짚 모자에 대해서, 그리고 펠릭스와 핼 패리의 키가 비슷했고 같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는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이지요. 유력한 용의자 로슨의 콧수염에 대한 언급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몰래 시체를 숲에다 가져다 버릴 생각이었는데, 곰이 나타나는 바람에 기묘한 불가능 범죄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도 합리적이었어요.

곰이 시체를 뒤지는 전개는 작위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노스몬트라는 시골 마을이라는 무대 특성 상 그렇게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산타의 등대 수수께끼>>
여행을 떠난 샘 호손은 '산타의 등대'를 우연히 방문하여 해리와 리사 남매와 친해졌다. 그러나 그날 밤 등대 꼭대기 전망대에 있던 해리가 칼에 찔려 떨어져 죽고 말았다. 마침 리사와 함께 있던 샘 호손 바로 앞에 시체가 떨어졌는데, 둘을 지나치지 않고 범인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샘은 사건 해결을 위해 수감 중인 남매의 아버지 로널드를 찾아갔다. 로널드는 등대에서 밀주 밀수를 했으며, 해산물 레스토랑 주인인 폴 레인과 거래를 해 왔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샘 호손은 처음에는 산타의 등대를 관광차 방문했던 아이들 중 한 명이 범인이었다고 추리했습니다. 난쟁이 킬러가 아이로 변장했다면서요.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너무나 헛점이 많은 추리였어요. 가족 요금이 더 싼데 아이들만 등대에 들여보낸게 이치에 맞지 않다는 이유부터가 근거로는 터무니없이 빈약했으니까요. 아이들끼리 친하고 잘 노는데다가, 아이들을 돌봐줄 해리와 리사가 있는데 부모가 뭐하러 함께 들어간단 말입니까?
게다가 아이들이 떨어질 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시설인데 아이들이 몇 명 들어가서 몇 명 나왔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 안되죠. 수십명도 아니고, 고작 4~5명을 확인하지 못했을리가 없잖아요. 이 정도면 아이들 이름까지 외울 수 있었을 겁니다.

결국 리사가 범인으로, 그녀는 오빠를 죽인 뒤 등대 전망대에 낚싯줄로 묶어 고정했던 거라는 진상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이 역시 난쟁이 킬러보다야 나을 뿐, 말이 안되는건 마찬가지에요. 딱히 좋아보이는 트릭도 아닐 뿐더러, 샘 호손이 있을 때 시체를 떨어트린건 납득하기 어려웠거든요. 자기의 알리바이가 있었다 한 들, 살인범이 등대로 들어갈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은 딱히 유리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오빠를 일어서 떨어트리고 사고로 위장하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아버지를 감옥에 보낸게 오빠라서 죽였다는 동기도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대미를 장식하기는 하지만, 더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드는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