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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9

스와이프 엄금 - 치넨 미키토 / 김은모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밝은 미래를 위해 선배 야에가시가 부탁한 '도메키의 동네'라는 괴담 조사를 나섰다.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도메키의 피해자였던 아메치의 정보를 입수하여 도메키의 동네가 어디인지 알아냈지만, 현장 조사 후 나에게 '도메키'가 들러붙은걸 알게 되었다... 

한쪽에는 본문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휴대폰 앱 화면이나 관련 그림이 실려 있는 그림책에 가까운 단편입니다. "유리탑의 살인" 등으로 유명한 치넨 미키토의 신작으로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었습니다.

형식만큼은 휴대폰 중심의 이야기와 잘 어울립니다. 메시지, 위치 정보, 앱 인터페이스처럼 보이는 화면이 동일한 내용의 본문과 함께 펼쳐져서 독자가 화자와 똑같은 화면을 보는 느낌을 주는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외의 장점은 없습니다. 우선 괴담치고 무섭지 않은 탓이 가장 큽니다. "도메키의 동네"는 눈이 그려진 이미지 외에는 긴장감이 거의 없고, 도메키의 습격도 뻔합니다. 피해자들을 추적하는 매개체가 휴대폰이었다는 진상 역시 책의 형태와 도메키의 행태를 보면 쉽게 짐작되고요.

내용도 별게 없어요. 화자가 하는거라고는 앱에 표시된 내용을 확인하거나 검색하는게 전부입니다. 피해자인 아메치의 집을 찾아가 계정 정보를 얻는 정도를 빼면요.

처음에는 야에가시의 후배 가즈마가 화자였던걸로 보였지만, 사실 화자는 가즈마의 연인 루리카였다는 반전도 애매합니다. 교묘하게 서술 트릭을 쓴건 맞지만, 이 반전은 이야기와 별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화자가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가즈마와 루리카는 모두 죽거든요. 이래서야 그냥 서술 트릭을 활용한 깜짝쇼에 불과합니다.

그림도 아쉽습니다. 휴대폰 앱 화면처럼 꾸민 페이지는 형식과 잘 어울리는데 그 외의 일러스트는 영 별로에요. 분위기를 살리기는커녕 유치하게 보여 그렇잖아도 무섭지 않는 괴담으로의 가치를 더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독특한 편집 형식 하나를 제외하면 추천할 만한 부분을 찾기 어려운,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일러스트로 포장했을 뿐인 망작입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2026/05/15

친구가 사라졌다 - 가네시로 가즈키 / 양억관 : 별점 1점

화려한(?) 고교 생활을 보냈지만 지금은 평범한 생활을 보내던 대학생 미나가타에게 동급생 유토가 찾아왔다. 사라진 친구 기타자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기타자와가 푹 빠졌었다는 연합서클 ESSC와 관련된 문제로 생각한 미나가타는 ESSC의 리더 시다와 대면했지만, 오히려 기타자와가 강간과 대마 밀매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가 사라졌다는걸 알게되는데...

"GO"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네시로 가즈키의 장편입니다. 몰랐는데 미나가타가 고등학교 때 활약했던 전작이 있습니다. 작 중에서도 전작의 활약이 자주 언급되고요. 하지만 이 작품만 읽어도 별 문제는 없습니다.

내용은 그대로 사라진 친구 기타자와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미나가타가 해결사처럼 움직이며 사건의 배후를 파고드는 전개로, 정통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청춘 범죄 활극에 가깝습니다.

장점은 분명합니다. 쉽게 읽힙니다. 한마디로 가독성이 좋은 책입니다. 문장은 빠르고, 장면 전환도 가벼우며, 크게 막히는 부분 없이 술술 넘어갑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읽는다면 금방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독성 외에는 전부 단점에 가깝습니다. 우선 설정부터 빈약합니다. 주인공 미나가타부터 그러합니다. 무언가 그럴듯한 과거가 있고 지금은 혼자 살면서 휴대폰과 TV도 없이 LP로 음악을 듣는 취미가 있으며, 유명 탤런트와 친구라는 등의 설정은 지나치게 멋을 부린 느낌입니다. 현 시점에 맞지도 않고요. 80~90년대 하루키 작품 주인공이 액션 영화 주인공이 된 느낌인데 영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맛 쓴맛 다 본 인물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나이를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기껏해야 대학생인 주제에 무슨 대단한 경험을 했나 싶거든요. 이보다는 군대 갔다 와서 취업전선에 뛰어든 우리나라 20대 청년 경험이 더 화려할 겁니다.

미나가타 주변 인물들의 설정은 더 황당합니다. 미나가타에게 취미삼아 살인 격투술을 가르치는 노숙자 람보와 윌, 대학생으로 연합 서클 ESSC를 이끌며 군림하지만 이면에서는 개인정보를 이용해 협박과 조종을 일삼는 시다, 친구들을 돕다가 사적 복수 활동까지 시작한 여고생 리츠 등 만화로 보기에도 황당한 설정이 넘쳐납니다. 이들 모두 미나가타와 함께 이야기의 현실감을 떨어뜨리기만 합니다.

이야기도 허술합니다. 핵심인 '사라진 친구' 기타자와 실종 사건의 원인이 된, 유명 대학 서클 멤버의 음주 강간 사건은 와세다 대학 슈퍼 프리 사건을 그대로 따왔으며,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도 치밀한 추리나 강한 긴장감이 만들어지지는 않는 탓입니다. 기타자와를 되찾는 작전도 별볼일없습니다. 결국은 미나가타의 개인기와 인맥에 의존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리츠의 도움으로 야쿠자를 제압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재미가 있을 수 없지요. 별로 통쾌하지도 않고요.

그리고 가장 불쾌했던 건 납치된 기타자와를 불쌍한 피해자처럼 그려내는 묘사입니다. 고바야시에게 성폭행당했던 과거가 현재의 그가 저지른 여대생 강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작품은 성폭행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탓에 그랬다면서 기타자와를 불쌍하게 보이도록 묘사합니다. 본인이 피해자였다고 해서 가해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런 놈은 "사채꾼 우시지마"의 이벤트 서클 에피소드에서처럼 철저하게 부숴버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완성도도 별로이지만,  "콜드 게임"처럼 기본적인 윤리 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더 이상의 점수는 못 주겠네요. 가네시로 가즈키의 광팬이라면, 그리고 전작을 읽었다면 참고 삼아 읽어볼 만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2026/04/11

더 하드웨이 (2019) - 키오니 왁스먼 : 별점 1점

넷플릭스를 통해 찾아 감상한 B급 액션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딱 한 가지였습니다. 런닝머신을 뛰면서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아드레날린을 분출하게 만드는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고 골랐습니다. 그런데 제 예상보다도 훨씬 엉망인 한심한 망작이더군요. 아드레날린이 아니라 분노가 분출될 지경이었습니다.

B급 영화에서 각본까지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테니, 각본에 대해서는 굳이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액션은 처참함을 넘어서 황당할 지경입니다. 가장 볼 만한 액션이 초반에 존이 자신의 가게에 쳐들어온 양아치들을 참교육하는 장면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악당 토로의 조직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절정부 역시 문제입니다. 맨몸 액션을 기대했는데 총질만 해 댈 뿐이고, 중화기로 무장한 조직원들이 권총 하나만 든 존에게 쓸려 나가는 모습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토로의 정체가 옛 전우 브리그스였다는 반전도 대단치 않습니다. 브리그스 역을 맡은 배우가 옛 UFC 챔피언 랜디 커투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우를 캐스팅해 비중 있게 출연시키면서 제대로 된 액션 신을 하나도 보여주지 않을 리가 없으니,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토로의 정체는 너무나 뻔했습니다.
존과 브리그스의 마지막 일기토에서는 맨몸 격투가 나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에 등장한 맨몸 격투 중에서는 가장 별로였습니다. 랜디 커투어가 나이가 든 탓인지 움직임이 상당히 느리고, 그렇다고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런 영화가 수백만 달러를 들여 제작되었다는게 신기하네요. 최근 본 그 어떤 컨텐츠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망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6/03/29

캐시 아웃 (2024) - 렌들 에멧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페이드 에이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전설적 도둑 메이슨은 FBI 잠입 수사관 아멜리아에게 푹 빠졌다가 체포될 뻔한 다음 은퇴를 택했다. 그러나 자신을 뺀 일당이 동생 숀의 주도로 벌이던 암호화폐 강탈 작전에 문제가 있다는걸 알고 현장으로 향했지만, 곧바로 경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메이슨은 협상 전문가로 나타난 아멜리아와 밀땅을 벌이면서도, 안전하게 탈출하기 위한 플랜B를 고민하여 결국 회심의 카드를 손에 쥐게 되는데...

넷플릭스에 떴길래 별 생각없이 감상한 영화입니다. 오랜만에 본 존 트라볼타는 반갑더군요. 잔혹하거나 무겁게 끌고 가지 않아서 가볍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존 트라볼타와 크리스틴 데이비스의 중년 로맨스도 귀여워요.

그러나 그 외에는 뭐 하나 건질게 없습니다. 은행을 노리는 케이퍼 무비 장르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범죄 계획이 케이퍼 무비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형편없는 탓이 큽니다. 숀의 계획이라고는 은행장을 데리고 개인 금고를 여는 것 뿐이었으니까요.

그 이후의 전개 역시 치밀한 준비나 단계별 장애물 돌파가 아니라, 우연과 억지로 상황을 이어 붙이는 식으로 흘러갑니다. 메이슨 일당은 개인 금고 안에서 특정 숫자가 찍힌 사진을 확보하고, 그것이 살리자르라는 거물 독재자의 비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개인 금고 속 사진에 표시된 숫자로 거대한 국제적 비밀에 접근한다는 설정부터 설득력이 크게 떨어지고, 애초에 그런 민감한 자료가 왜 그런 방식으로 보관되어 있었는지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마침 은행장이 개인 서버가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는 설정도 뜬금없고, 그가 메이슨 일당을 그 장소까지 안내하는 상황도 이해가 안되고요. 그냥 모른다고 우겼으면 됐을텐데 말이지요.

결말은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음의 결정체입니다. 메이슨 일당은 결국 경찰 특공대에 포위되고, 정상적인 범죄 영화라면 이 지점에서 가장 치밀한 탈출 설계나 마지막 반전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플라워스라는 살리자르의 부하를 불러낸 뒤, 그와 협상하는 방식으로 이 상황을 정리해 버립니다. 그것도 메이슨의 요구가 꽤 무리한데도 불구하고 플라워스가 이를 선뜻 들어주는 식이라서, 관객 입장에서는 긴장감보다 허탈함이 먼저 듭니다. 수많은 경찰과 특공대가 현장에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입을 막았는지, 어떤 식으로 사태가 수습되었는지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요. 

또한 경찰에게 포위된 상황임에도 느릿느릿한 전개는 분통터질 정도이며, 액션도 뭐 하나 눈에 띄는게 없습니다. 공간도 작은 은행 내부가 거의 전부라 돈을 들인 티도 나지 않아요. 한마디로 별점 1점도 아까운 완벽한 망작입니다. 케이퍼 무비의 외형은 빌려 왔지만, 장르를 이루는 핵심인 계획의 정교함, 실행 과정의 묘미, 반전의 설득력을 거의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시하고, 진행 과정도 엉망진창이며, 중요한 설정과 결말까지 납득하기 어려워 장르 영화로서의 재미는 전무합니다.

2026/01/25

명탐정 코난 : 17년 전의 진상 (2025) - 야마모토 야스이치로, 카마나카 노부하루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티빙에 업로드되었길래, 작년 말에 기말고사가 끝난 딸과 오랜만에 감상한 코난 극장판입니다. 리뷰가 많이 늦었네요. 정확히 말하면 해당 내용의 TV 시리즈 총집편입니다.
이야기는 두 가지입니다. 현재 벌어진 체스 대회 살인 사건과 17년 전에 있었던 아만다 휴즈와 하네다 코지 살인 사건이 이어지며 전개됩니다. 현재 체스 대회에 참가했던 쿠로다 관리관이 17년 전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설정이지요.

하지만 두 이야기 모두 추리적으로 완성도가 치명적으로 낮습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에요. 우선 체스 대회 살인 사건은 ‘다이잉 메시지’가 핵심 단서로 등장하는데, 피해자가 죽기 전에 굳이 이런 암호 같은 메시지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범인의 이름을 쓰면 되니까요. 트릭을 위한 억지 설정입니다.
범인이 잔을 깨는 척 자작극을 벌인 트릭 역시 억지스럽습니다. ‘네덜란드의 눈물’이라는 일종의 유리 덩어리를 활용해 잔을 깨뜨렸다는 트릭인데, 번거롭고 지나치게 복잡합니다. 한 손으로 컵을 잡고 다른 손으로 네덜란드의 눈물 끝부분을 부러뜨릴 만년필을 사용하는 모습도 어색할 테고요. 이럴 바엔 잔 깨지는 소리를 녹음해 틀어놓은 뒤 컵을 떨어뜨려 깨는 편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17년 전 사건도 마찬가지에요. 원작 이야기를 읽지 않아서 왜 검은 조직과 럼이 아만다를 살해하려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독약이 완벽하다 해도 이렇게 많은 조직원이 호텔에 침투해 보디가드들을 제압했다면 굳이 독을 사용할 이유가 있나 싶습니다. 괜히 다이잉 메시지를 남길 시간만 준 셈이니까요. 언제나처럼 등장하는 독약 설정도 유치했고, 다이잉 메시지의 구체적인 내용도 유치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리고 17년 전 당시 현장에서 도주했던 생존자, 아만다의 보디가드 아사카가 현재 소년 탐정단의 부(副)담임인 루미 선생님이라는 설정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초반부터 ‘수상하다’는 분위기를 깔고 가서 대단한 반전도 없었고, 코바야시 선생님을 죽을 지경으로 만들면서까지 검은 조직을 노렸지만 결국 헛수고로 끝난 결말도 황당했습니다. 이게 대체 뭔가 싶더군요. 키안티 등의 저격을 코바야시 선생 일행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 점도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긴 시리즈를 끌고 가는 중간 징검다리 역할에 불과한,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졸작입니다. 등장인물의 매력도 별 볼 일 없고, 추리와 트릭은 엉망이며, 액션은 부족하고 작화 역시 수준 이하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이전에 보았던 총집편 "흑철의 미스터리 트레인"은 이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았는데 아쉽네요. 앞으로 총집편은 웬만하면 보지 말아야겠습니다. 

2026/01/09

러브데이 브룩, 탐정 - 캐서린 루이자 퍼키스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 명인 러브데이 브룩 단편집입니다. 이전에 단편은 다른 앤솔로지(이거, 이거)를 통해 읽어본 적이 있지요. 그녀가 등장하는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곱 편이 그녀 시리즈의 전부인데, 저자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만료된 덕분에 국내 소개된 것으로 보입니다.

주인공인 러브데이 브룩은 2025년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아도 독특한 매력을 뽐냅니다. 뛰어난 관찰력과 ‘여성’이라는 점을 활용한 활약이 지금보다 여성 인권이 확연히 낮았을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추리라기보다는 관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도 당시 시대에 잘 어울립니다. 실종된 아가씨 방을 둘러본 뒤, 이건 하녀가 정리한 솜씨라는 걸 눈치채는 장면처럼요.

그러나 좋은 작품들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전 본격물이라고 보기에는 추리적으로 보잘것없는 탓이 큽니다. 러브데이 브룩이 관찰을 통해 수집한 정보와 단서는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아요. 그래서 독자가 추리할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자기만 아는 정보로 자기의 추리 결과를 진상이라고 마지막에 털어놓는 게 전부일 뿐입니다.

그나마 추리의 핵심인 러브데이 브룩의 관찰도 비약이 심합니다. “공주의 복수”가 대표적입니다. 러브데이 브룩이 집사가 수상하다는 걸 눈치챈 건 ‘눈빛’ 때문이었고, 결정적 단서인 모자 가게의 이름을 알아낸 것도 러브데이 브룩이 탐정이라는 걸 밝히자 그윈 부인이 모자를 쳐다보았기 때문입니다. 눈빛으로 수상한 사람을 알아챌 수 있다면, 추리가 왜 필요할까요?

트릭도 실망스럽습니다. 수록작 중 무려 네 편, “현관 앞 검은 가방”, “레드힐 수녀회”, “그려진 단검 사건”, “실종”에서 변장과 착각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실종”에서는 죽은 어머니의 사체를 본 아버지가 딸로 착각하는 상황이 펼쳐지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둘이 닮았다는 설정이라도 쳐도, 이건 너무 말도 안되지요.

범행들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레드힐 수녀회”에서 존 머레이는 자기 집에 세 들어 사는 수녀들이 강도단일지 모른다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이 그녀들에게 집중하는 사이 스스로 강도짓을 벌일 생각으로요. 하지만 그냥 강도짓을 벌였으면 사전에 주목도 받지 않았을 겁니다. 이게 무슨 헛짓거리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 외에도 빅토리아 시대의 짜증 나고 이상한 사고방식도 가득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읽기에는 시대착오적인 망작입니다. 역시 잊혀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네요.

2025/08/24

스펜서 컨피덴셜 (2020) - 피터 버그 : 별점 1점

경찰 스펜서는 부패한 상관 보일런을 폭행했다가 5년 동안 수감되고 말았다. 스펜서의 출소 직후 보일런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선량한 경찰 테렌스가 누명을 썼다는걸 알게 된 스펜서는 룸메이트 호크와 함께 잔상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부패한 경찰들이 범죄 조직과 함께 대량의 마약을 유통한 자금으로 카지노 '원더랜드'를 개장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걸 알아내는데...

로버트 B. 파커가 창조한 보스턴 사립탐정 ‘스펜서’ 시리즈 중 하나인 에이스 앳킨스(로버트 B.파커 사후 원작을 이어서 쓰고 있는 작가)의 "원더랜드"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장편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액션물로 범죄 스릴러, 액션, 버디 코미디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나, 어느 쪽에서도 두드러지 못합니다.

특히 기대했던 범죄 스릴러, 수사물로는 최악에 가깝습니다. 일단,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수사는 전개상 거의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결정적인 단서들은 스펜서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우연히 제공해 주니까요. 예를 들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도청 파일을 피해자 테렌스의 아내가 스펜서에게 직접 전해주는 식으로요.
스펜서의 옛 파트너 드리스콜이 악당이라는 사실도 너무 쉽게 밝혀집니다. 초반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이쑤시개 조각이라는 단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추측이 가능한 수준이라 긴장감 있는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부패한 옛 파트너, 마약 조직, 조직 내부의 은폐 구조 등 설정들도 지나치게 전형적이고요.

전개 또한 뻔하고 치밀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중간 보스급인 벤트우드에게 쳐들어가서 물고문을 통해 마약 운송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게 대표적입니다. 이럴 거라면 은밀한 수사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지요. 게다가 정보를 털어놓았다면 악당들도 운송 시간을 바꾸는건 당연한데, 예정대로 운송하다가 마약 트럭을 스펜서에게 탈취당하는건 대체 이게 뭔가 싶더군요.

스펜서 캐릭터도 원작 붕괴 수준입니다. 원작에서는 문학에 조예가 깊어서 시니컬한 말투, 심리 묘사 측면에서 복잡한 면을 보여주는데, 영화에서는 그냥 말빨(?)좋은 전형적인 마초 헐리우드 경찰, 형사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액션에서라도 화끈했어야 했는데, 작중 대부분 장면에서는 적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장면만 반복될 뿐입니다. 이럴거라면 권투에 일가견이 있다는 설정은 왜 덧붙였는지 모르겠어요. 마크 월버그도 그리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 아니고요.

액션은 다른 부분에서도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격투 장면들 모두 속도감이나 위력이 느껴지지 않는 탓에 맨손 액션의 쾌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호크가 덩치를 활용해 마지막에 잠깐 활약하긴 하지만, 이 역시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워 액션적 재미는 떨어집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야기의 절정부입니다. 부패 경찰과 범죄 조직이 결탁한 악의 무리와 대단한 결전을 벌여야 할텐데, 스펜서가 트럭을 몰고 악당 본거지에 돌진한 뒤 호크가 몇 명을 때려눕히는 걸로 결전은 대체로 마무리됩니다. 스펜서와 드리스콜의 1:1 맞짱은 너무 작위적이라 어이가 없더군요. 부패 경찰들 때문에 보도도 못하고 사건이 은폐되었었는데, 스펜서와 호크의 활약 이후 사건이 대대적으로 폭로된다는 결말도 이해가 안되고요.

그래도 너무 바보같아서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다는건 오히려 장점이기는 하네요. 몇몇 유머 코드는 피식 웃게 해 주기는 하고요. 거인 호크, 조력자 헨리 캐릭터는 캐스팅이 좋습니다. 완전한 권선징악 마무리도 후련했고요.

다만 이 정도 장점은 이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보완해주기엔 턱도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범죄물로서도, 수사극으로서도, 액션 영화로서도 건질게 없는 졸작입니다. 원작인 탐정 스펜서에 대한 모독이라 할 수 있는 쓰레기로 에필로그에서 후속작, 시리즈의 여운을 남기는데 어림도 없지요. 소리없이 망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2025/02/23

세인트 세이야: 더 비기닝 (Knights of the Zodiac) (2023) - 토마스 바진스키 : 별점 1점

"세인트 세이야"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 원작의 오랜 팬으로, 옛 추억을 되살리고자 넷플릭스로 감상했습니다. 

장점이라면 주인공 세이야 역을 맡은 아라타 맛켄유의 비쥬얼, 그리고 일부 액션 장면입니다. '성투사'의 싸움답게 맨몸 액션이 펼쳐지는데, 세이야가 각성한 뒤 카시오스를 포함한 구라드의 부하들을 인형처럼 내동댕이치는 장면이라던가, 성투사 피닉스의 성의 액션, 마이록을 연기한 마크 다카스코스가 선보인 권총과 곤봉을 활용한 액션 등이 그러합니다. 원작 팬이라면 비교적 원작에 가깝게, 하지만 촌스럽지 않게 구현된 마린의 등장은 만족할 만 하고요.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장점을 제외하면 영화의 완성도는 전반적으로 처참합니다. 우선, 무슨 이야기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세이야는 마린에게 훈련을 받던 중, 알먼이 누나 패트리샤를 납치한 일당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훈련을 중단하고 떠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갑자기 아테나를 데리러 온 구라드를 막기 위해 카시오스 일당과 싸웁니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져서 전개가 엉성하고 난잡합니다. 아테나가 각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구라드는 아테나를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고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처럼 보였던 도스카라스가 구라드의 부하에게 한 방에 쓰러져 포로가 되는 장면도 황당했어요. 배우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입니다.

각본이 별로라면 적어도 볼거리라도 화려해야 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CG 티가 강하게 나는 화면도 조악하고, 앞서 언급한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액션 연출도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맛켄유의 액션 연기가 어색해서 많이 거슬렸습니다. 그나마 볼만했던 액션 장면들은 성의를 입은 후에야 등장하는데, 이 점을 고려하면 주요 액션 장면에서는 대역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어야 할 성투사들의 싸움이 맛보기 수준이며 심지어 페가수스 유성권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원작 팬들이 가장 기대했을 대표적인 기술이 빠진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덕분에 페가수스와 피닉스 성투사의 클라이맥스 대결 장면은 80년대풍 특촬 영화보다 못한 빔 공격 연출이 반복되면서, 원작의 느낌을 살리지 못하고 어설프게 마무리되고 맙니다.

결론적으로, 영화의 완성도는 매우 낮습니다. 스케일을 줄이고 원작 초반부의 줄거리를 충실하게 따르면서, 성투사 변신 장면과 성투사들 간의 격투를 좀 더 멋지게 연출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별점은 1점인데, 솔직히 1점을 주기도 아깝습니다. 여러분들은 시간 낭비 하지 마시고, 이 작품은 쳐다도 보시지 말기 바랍니다.

2022/11/26

명탐정에게 장미를 - 시로다이라 교 / 김은모 : 별점 1점

명탐정에게 장미를 - 2점
시로다이라 교 지음, 김은모 옮김/문학동네

"허구추리"로 유명한 시로다이라 교의 데뷰작입니다. 두 편의 중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망작 of the 망작입니다. 올해는 아직 다 가지 않았지만, 올해의 최악으로 꼽겠습니다. 읽어보실 필요는 당연히 없습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수록작별 상세 리뷰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메르헨 난쟁이 사건" '

난쟁이 지옥'이라는 독약에 관련된 참혹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첫 번째 피해자 후지타 게이코는 난쟁이 지옥을 만들었던 다케바야시의 딸이었고, 두 번째 피해자 구니오는 다케바야시의 조수였다. 두 사람은 각종 언론사 등으로 보내진 "메르헨 난쟁이 지옥"이라는 동화 속 모습 그대로 살해당했다. 유력한 용의자인 다케바야시의 또 다른 조수였던 쓰루타는 첫 번째 사건에서의 알리바이가 완벽했다. 오히려 쓰루타는 후지타 가에 나타나 게이코의 딸 스즈카를 동화의 마지막 피해자 한나처럼 죽일 수 있다며 협박하는데...

어떤 이야기와 살인 사건이 맞물려 전개되는 작품은 많습니다. '마더 구스' 동요를 이야기 전개에 써먹었던 크리스티 여사님의 "주머니 속의 호밀"이나 밴 다인의 "비숍 살인 사건" 처럼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빼 놓을 수 없겠지요. 

보통 이렇게 범인이 무언가를 따라서 범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1.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2. 범행에 관련된 중요한 무언가를 숨기려고 했다

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범인이 정신병자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이유는 특이합니다. 범인은 독약을 다시 세간에 알리기 위해 기묘한 잔혹 동화를 창작하여 뿌리고, 동화대로 잔혹한 사건을 저지른 겁니다. 난쟁이 지옥을 팔고 싶은데 독약의 효능이 잊혀진 탓에요. 

쓰루타는 구니오의 장기말에 지나지 않았는데, 오히려 구니오의 뒷통수를 쳐 그를 살해하고, 신출귀몰한 능력자 범인인양 후지타 가에 나타나 자기는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며 협박했다는 진상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세가와 미유키가 사건의 모순을 눈치챈 계기가 된 동화 속 등장 인물 이름인 한나, 니콜라스, 플로라는 모두 후지타 가족 이름과 연결된다는 등, 단서 제공도 공정합니다. 히브리어 뜻까지 알아야 하는 등 좋은 단서로 보기에는 어렵지만요.

명탐정 세가와 미유키도 일본 만화 등에서 흔히 보았던 전형적인 쿨 뷰티, 차도녀 안경 선배 설정이기는 한데 명탐정으로서의 고충 - 진상을 드러내어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입는 - 을 묘사한건 신선하더군요. 물론 명탐정이 마음에 상처 따위는 입어서는 안되지요. 유불란의 말대로 명탐정의 혈관에는 강침이 돌아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 유불란도 감정에 휩쓸려 버리기는 했지만....

그러나 앞서의 장점은 극히 일부일 뿐, 단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우선 억지가 심해요. 아이 사체로 만든다는, 주술에 가까운 독약 '난쟁이 지옥'의 설정부터가 억지니까요. 기묘한 동화를 창작하고, 성인 여성을 납치하여 온 몸을 난도질하는 엽기 범죄 역시 마찬가지에요.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독약 광고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어떤 장소에 '난쟁이 지옥'을 풀어서 사람들을 심부전으로 죽게 만들고, 매스컴에 '난쟁이 지옥'으로 일으킨 범죄라는 성명서를 내는게 훨씬 손쉽고 깔끔했을겁니다. 게이코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후지타 가에 독을 푸는게 더 현실적이었을테고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게이코에게 '난쟁이 지옥'에 대해 알린 뒤, 범행 현장으로 찾아오도록 시켰던 트릭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게이코가 '난쟁이 지옥'에 대해 업보가 있다고 생각한건 독을 이용하여 친모를 살해한 탓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죄의식을 느끼고 구니오의 덫에 스스로 빠질리 없지요. 그런데 그 사실을 구니오 등이 알 턱이 없으니 이는 모순입니다. 게이코가 친모를 살해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했을거에요.

딱히 명탐정이 필요했던 사건도 아니라는 문제도 큽니다. 쓰루타가 게이코 사건에서의 알리바이가 어쨌건 간에, 구니오 사건에 대한 수사만 철저히 진행했어도 사건은 해결되었을테니까요. 게이코는 퇴근길에 납치당한게 아니라, 그녀 스스로 현장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구니오의 알리바이가 생겼는데 아를 밝히지 못한건 경찰의 부실 수사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납치는 못했더라도 공범이 있었다면 범행은 저지를 수 있잖아요. 세간의 화제가 된 강력 사건을 이렇게 허술하게 수사한다는건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게이코의 편지를 후지타 가에서 내놓지 않는걸 경찰이 방관하는 것도 납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기발한 부분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독배 퍼즐" 

미하시의 후배로 스즈카의 가정 교사를 맡았던 야마나카 후유미가 죽었다. 가족이 모두 모인 티 타임에서 차를 마신 직후였다. 조사 결과 티 포트에 '난쟁이 지옥'이 가득 들어있었다. 누가, 왜 포트에 독을 넣었을까? 미하시는 이번에도 명탐정 세가와 미유키에게 사건을 맡기는데....

한마디로 최악 오브 더 최악입니다. 

진상은 명탐정 세가와 미유키를 흠모하게 된 스즈카가 명탐정을 다시 만나기 위해 사건을 일으켰다는 겁니다. 그녀가 어머니의 유품인 '난쟁이 지옥'을 티 포트에 넣었던 거지요. 그런데 스즈카는 중학생입니다. 아무리 명탐정이 보고 싶어도 가족 모두가 먹는 차에 먹으면 바로 죽는 독을 다량으로 푼다는게 과연 말이나 될까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장난삼아 풀었다면 모를까요. 너무 써서 바로 뱉을 수 밖에 없다는건 증명되지도 않았고, 증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가족이 모여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차가 쓰다고 바로 뱉어낸다는 것도 잘 상상이 안되고요. 야마나카 후유미가 미각 장애가 있어서 차를 삼켰다는 만화같은 설정도 거슬렸습니다.

어쨌건 명탐정은 불렀지만 이유를 알려줄 수 업어서 미하시 등이 내세운 가짜 진상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즈카가 계모 교코의 살의를 눈치채고, 독이 묻은 찻잔 흔적을 감추기 위해 독을 포트에 쏟아 부은거라는데, 비상식적입니다. 계모가 자기 목숨을 노리지만 계모와 아버지가 너무 사랑해서 그걸 숨기고 독을 가지고 도박을 한다? 아버지, 아니면 미하시에게 말하고 도움을 구하는게 당연하잖아요? 그리고 교코가 스즈카를 죽이려 했다면 '난쟁이 지옥'을 썼을리도 없어요. 그 독이 어디에 있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온 가족이 다 아니까요. 의학적으로는 병사로 판단되더라도, 아버지 가쓰히토와 미하시는 의심의 눈초리를 절대 거두지 않았을 겁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하시가 스즈카를 은밀하게 조종해서 후유미를 살해한 진짜 흑막이었다는 연극도 어처구니 없었어요. 건실한 청년 미하시 캐릭터와 어울리지도 않으며, 그래봤자 스즈카가 실행범이라는건 바뀌지 않으니까요. 이런 억지 연극을 꾸미는 것 보다는 차라리 스즈카의 뇌종양을 미유키에게 알리고, 경찰 고발을 취소해달라고 부탁하는게 나았을 겁니다.

제일 큰 문제는 명탐정 미유키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스즈카만 걱정하고 피해자 야마나카 후유미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미하시와 미유키에게는 후배이기도 한데 왜 그녀의 죽음은 비통해하지도 않고, 진상을 덮으려고만 할까요? 살인범 스즈카를 무슨 순정만화 속 비련의 피해자처럼 묘사하는 마지막 장면은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명탐정이 진실을 밝히는 바람에 비극을 불러왔다 운운하는데, 스즈카가 사람을 죽인건 사실이라서 뭐가 비극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명탐정을 부르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만화같은 동기를 비롯하여, 뭐 하나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2022/08/27

수정마개 - 모리스 르블랑 / 심지원 : 별점 1점

아르센 뤼팽 전집 6 - 2점
모리스 르블랑 지음, 심지원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뤼뺑이 부하 보슈레의 권유로 하원의원 도브렉의 별장을 털던 중 도브렉의 하인 레오나르가 살해당했다. 부하 보슈레와 질베르가 체포되어 단두대에 오를 운명에 놓이자 둘을 구하기 위해 뤼뺑은 도브렉에 대해 조사하던 중, 자기도 감시당하고 있다는걸 눈치챘다. 감시자는 질베르의 친모인 회색 머리의 미녀 클라리스였다. 클라리스가 도브렉 대신 남편을 택한 뒤 도브렉의 복수로 그녀의 남편은 자살했고 질베르도 범죄와 방탕에 빠지고 말았다. 27명의 고위 관료를 협박할 수 있는 서류가 도브렉 힘의 원천이었다. 뤼뺑은 클라리스와 힘을 합쳐 질베르를 사면시키고, 도브렉을 몰락시키기 위해 이 서류가 감춰져 있다는 '수정 마개'를 맹렬하게 찾아 나서는데....

뤼뺑 시리즈 장편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813의 비밀"과 함께 아동용으로 접해본 뒤 기억에서 지웠던 작품입니다. 최근 읽을게 없나 찾아보다가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읽다보니 왜 어린 마음에도 기억에서 지워버렸는지 알겠더라고요. 아무런 개연성도, 설득력도 찾을 수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나간 듯한 엉망인 전개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뤼뺑 캐릭터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 작품에서 뤼뺑은 실패만 반복합니다. 도브렉 별장 털이 실패에서 시작해서, 은신처에서 수정 마개를 곧바로 도난 당하고, 도브렉 저택에 침입했을 때에는 도브렉에게 숨어있던걸 들켜 망신을 당하고, 겨우 다시 훔쳐낸 수정 마개는 또다시 도난당하고, 도브렉과 담판을 짓기 위해 나섰을 때에는 정체를 바로 간파 당하며, 납치된 도브렉을 구해주다가 칼에 맞고, 심지어 도브렉을 추적할 때는 허둥지둥 갈팡질팡하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기존의 전지전능한 뤼뺑의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어요. 한마디로 그냥 어설픈 실패자로만 등장합니다. 실패만 거듭하면서 클라리스에게 아들을 구해줄테니 나서지 말라며 큰손리를 치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절망에 빠져 다 잊고 잠이나 자겠다며 수면제를 들이켜는 장면에서는 제가 뭘 읽고 있는지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이런 실패의 연속은 극적인 긴장감을 찾아보기도 어렵게 만듭니다. 뤼뺑 시리즈에서 '이번에는 어떻게 뤼뺑이 실패할까?' 라는걸 기대한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전개도 엉망입니다. 모든 사건이 우연히, 급작스럽게 일어나거든요. 뤼뺑과 클라리스가 도브렉을 감시하는게 교차되는 과정이라던가, 전개의 특정 시점에 맞춰 딱 맞게 벌어진 도브렉 납치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마지막에 도브렉이 진짜로 숨어있는 장소를 뤼뺑이 알아냈던 것도 마찬가지에요. 도브렉의 부하를 산레모 역에서 마주친 덕분이었는데, 이는 작위적인 전개의 극치라 할 수 있겠지요.

설정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도브렉이 중요한 서류 - 27명의 명단이 담긴 - 를 감추기 위해 만들었다는 수정 마개의 존재가 대표적입니다. 서류를 수정 마개 안에 숨긴 뒤, 그 수정 마개를 어딘가에 숨긴다는 설정인데, 이럴거면 그냥 어딘가에 서류를 숨기면 되잖아요? 구태여 수정 마개를 사용하는 까닭을 모르겠어요. "로마 모자 미스터리"에서 서류를 숨기기 위한 용도로 모자를 사용했다는 억지 설정과 별로 다를게 없습니다. 오히려 눈에 띈다는 점에서는 모자보다도 못한 셈이고요.

27명의 명단도 가지고 있는 힘에 비하면 설명이 부족하고 비합리적입니다. 도브렉이 그들을 협박하려면, 명단의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자기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려고 협박범에게 굴복하는게 보통이니까요. 하지만 명단 속 인물들은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진 걸로 묘사됩니다. 도브렉이 납치되었을 때, 뤼뺑이 약간의 단서를 토대로 "나폴레옹 덕에 귀족이 되었다가 왕정복고로 망해버린 코르시카 혈통의 후예인 명단 속 인물"이 납치범일 것이라고 추리하자, 경찰은 곧바로 그건 알뷔패스 후작이라고 말할 정도로요. 그렇다면 당연히 도브렉의 협박은 먹힐 이유가 없습니다! 이 서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했다면, 더 설득력있는 근거를 댔어야 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습니다. 뤼뺑이 하는 것이라고는 변장과 잠입, 그리고 납치가 전부인 탓입니다. 가장 중요한 수수께끼인 '수정 마개'의 위치는 도브렉이 납치당해 고문당했을 때 했던 "메리"라는 단어와 책상 위에 놓여 있다는 말, 도브렉이 짧은 시간 동안 물건을 가져갔다는걸 종합하여 위치를 알아내는데, 도브렉이 가져간 다음에 알아냈으니 제대로 된 추리라고 보기 힘듭니다. 없어진게 담배갑 뿐이었으니 더더욱 그러하지요. 수정 마개는 담뱃갑 안에 들어있던게 당연합니다. '메리'는 도브렉이 메릴랜드 산 담배만 피워서 한 말이라는데 이 상황에서는 그 담뱃갑이 메릴랜드 산이건, 한국 담배 인삼 공사 제품이건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게다가 이 담뱃갑은 종이 띠로 포장되어 있어 최초 뤼뺑의 조사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킹은 죽었다"처럼 부실한 조사 탓으로 생겨난 수수께끼에 불과한 셈이라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수정 마개는 일종의 미끼였고, 안에 들어있던 서류는 가짜였다는 반전은 괜찮았어요. 도브렉의 의안이 진짜 서류가 담긴 수정 마개였다는 진상, 그리고 이를 숨기기 위해 도브렉은 항상 두꺼운 색안경을 끼곤 했다는 설정도 괜찮았고요.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구멍을 통해 침입했던건 클라리스의 아직 어린 아들이었다는 트릭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장점은 미약합니다. 단점 투성이의 졸작이자 망작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2022/06/25

심야의 손님 - 오쿠라 데루코 / 이현욱 외 : 별점 1점

심야의 손님 - 2점
오쿠라 데루코 지음, 이현욱 외 옮김/위북

잘 모르는, 전전(戰前)세대 일본 추리 작가의 2차 대전 전~후를 아우르는 대표 단편 일곱 편을 모아 놓은 단편집입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나쓰메 소세키,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문하에 있던 작가로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득력 있게 파헤치는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 어쩌구 하는 홍보 문구에 낚여서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너무나 형편없고 졸렬했습니다. 최근 읽은 책, 아니 제가 읽어왔던 천 권이 넘는 책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졸작이었어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우선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전무합니다. 심령 호러와 같은 작품도 있는데, 스릴이나 긴박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어서 섬찟한 느낌도 전혀 받을 수 없고요. 홍보 문구에서 이야기하는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설득력있는 인과 관계 역시 단 한 작품에서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지금 읽기에는 의외성없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전개로 진행된다는 단점도 큽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읽어볼 가치는 전무합니다. 활동기에도 유명하지 않았으며 지금 시점에서 그 이름이 완전히 잊혀진 작가는 역시나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혹시나 궁금하시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천식"

명문가 후지와라 가문의 후계자 기미타카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등장합니다. 알고보니 후계자 기미타카는 살해되었었고, 범인은 친모였어요. 친모는 후지와라 가문과 어울리지 않는 평민 출신인 탓에 친척들에게 멸시를 당해왔었는데, 기미타카가 성장하면서 범죄자가 되어가자 자신이 질타를 받을 걸 우려하여 살해했다고 하네요.

아니, 아들이 범죄자가 되건 말건 친모가 아들을 살해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살해한 뒤, 아들을 미이라로 만드려고 불상 속에 사체를 집어넣었다는 설정은 또 왜 들어간걸까요? 에도가와 란포를 따라한 유치한 발상에 불과합니다. 설득력이 없다는것도 마찬가지고요. 아울러 이러한 진상은 기미타카의 친모가 남긴 편지로 드러날 뿐이라 추리의 여지도 전무합니다. 별점을 주자면 0.5점입니다.

"공포의 스파이"

구 백작 마쓰오카 본가에서 장남 가즈오가 사라집니다. 진상은 동생 가오루가 형수에게 반해서, 형수와 가문을 손에 넣기 위해 형을 납치했다는 겁니다. 가즈오는 시베리아 파병 당시 소련 스파이로 일할 걸 서약했었다는 약점이 있었다는군요. 

소련 스파이 설정도 어처구니가 없지만(전후에 그런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립탐정 사쿠라이 요코가 진범을 밝히는 과정도 제대로 설명되고 있지 못합니다. 조사나 추리 없이 그냥 마지막에 "얘가 범인이에요"라는 식이거든요. 이 작가가 추리 소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글을 썼다는 확신이 듭니다. 역시나 별점은 0.5점입니다.

"요물의 그림자"

비밀 암호를 몸에 지니고 여객선을 타고 이동하던 화자가, 여객선에서 만난 중국인 부녀로부터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내용입니다. 아파보이던 딸은 원래 죽어서 장례까지 치뤘었는데, 하인이 손에 낀 반지를 훔치려 시체 손가락을 자를 때 깨어났다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이 중국인 부녀가 약을 써서 화자로부터 암호를 빼앗는 전개로 이어지고요. 

왜 딸이 죽었다가 살아났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고, 어떻게 암호가 화자에게 있는줄 알고 접근해서 빼앗는지, 그리고 무엇에 대한 암호인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 등 이야기의 완성도 자체가 한없이 낮습니다. 그냥 중국인 부녀 이야기만 "공포 특급" 정도에 수록될 짤막한 1~2페이지짜리 괴담으로 풀어내는게 차라리 나았을 겁니다. 요 괴담만 그나마 읽을만해서 별점은 1점입니다.

"마성의 여자"

특별한 능력으로 남편 혼조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알아내는 야스코의 이야기입니다. 혼조는 야스코의 감시와 집착에 질려 그녀를 살해하지만, 야스코의 영혼이 혼조와 하나가 되어 발광한다는 결말입니다. 

자기가 증오해서 죽인 피해자가 '초능력자'여서, 그녀의 영혼이 나의 영혼과 합쳐진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어요. 그나마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랄까... 하지만 이를 제대로 풀어내지도, 마무리짓지도 못해서 완성도는 낮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심야의 손님"

사립탐정 사쿠라이 요코가 부호 아리마쓰 다케오 살해 사건에 엮이는 걸로 시작됩니다. 알고보니 아리마쓰 다케오를 죽였던 건 탈옥수인 의적 오고시였고, 그는 다케오의 양녀 미와코를 돕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던 거지요. 다케오가 과거 미와코의 친부 조지를 함정에 빠트렸었는데, 그 당시 상황이 담겼던 레코드가 남아있어서 오고시는 미와코를 도울 결심을 했다고 설명됩니다.

그런데 요코가 하는건 전혀 없습니다. 요코에게 '심야의 손님'인 의적 오고시가 찾아와 진상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왜 사립탐정이 등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아리마쓰가 이 레코드를 진작에 없애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누군가를 함정에 빠트린 범인이 그 핵심 증거를 집에 잘 숨겨두고 보관해 둔다? 설득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네요. 이 쯤 되면 작가가 도대체 생각이라는걸 하고 글을 쓰는지 의심이 될 정도에요. 별점은 0.5점입니다.

"일본 동백꽃 아가씨"

사쿠라이 요코 시리즈입니다. 과거 미모로 '일본 동백꽃 아가씨'라고 불리웠던 히가시야마 씨 부인이 실종됩니다. 부인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는 유명 가수가 제대로 간호받지 못하던 부인을 직접 돌보기 위해 납치했던게 진상이고요. 

다른 사쿠라이 요코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추리의 여지는 전무합니다. 히가시야마 씨에게 그렇게 부인을 돌볼거라면 자기에게 맡기라고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범인이었거든요. 이래서야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부인에게서 과거 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절절했기에, 고풍스러운 로맨스물로서의 가치가 약간 있을 뿐입니다. 별점은 1점 정도?

"사라진 영매"

가쓰다는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내가 죽은 뒤 아내의 영혼을 불러오는 영매 레이코에게 푹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과거에 썼던 별거 아닌 편지를 발견한 탓에 폭주하여 레이코를 살해한다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이 막장 단편집의 화룡정점입니다. 영매 레이코의 능력, 가쓰다가 폭주한 이유, 사체를 은행 대여금고에 맡겼다는 설정 등 뭐 하나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니까요. 당연히 무섭지도 않아서 심령 호러물로의 가치도 전무합니다. 가쓰다가 아내, 레이코와 화자인 S 부인 모두가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는 반전이라도 잘 살렸더라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당연히 잘 살리지도 못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2/06/02

샴 쌍둥이 미스터리 - 엘러리 퀸 / 배지은 : 별점 1점

샴 쌍둥이 미스터리 - 2점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휴가 중 퀸 부자는 산불에 습격했다. 탈주 끝에 산 정상에 있는, 저명한 외과의사 사비에르 박사의 저택에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박사의 저택에 머무르던 가족과 손님들은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다음 날, 사비에르 박사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유일한 단서는 피해자 손에 남겨져 있던 찢겨진 카드 조각 뿐이었다. 퀸 경감은 사비에르 박사의 부인 새러가 범인이라고 추리했지만, 엘러리는 고심 끝에 카드는 조작된 증거이며, 조작한 건 사비에르 박사의 동생 마크였다는 걸 밝혀냈다. 그러나 도주하다가 퀸 경감의 총에 맞아 중상을 입은 마크마저도 결국 살해당했고, 현장에는 또 다른 카드 조각이 남겨져 있었다....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 2012년 시공사의 엘러리 퀸 컬렉션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던 작품입니다. 국명 시리즈는 더 이상 읽지 않기로 결심했었지만, 주말에 도무지 읽을 책이 없어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나마도 없던 기대 수준에도 전혀 미치지 못한 졸작이었습니다. 억지스러운 설정들, 도무지 설득력 없는 범행, 어처구니없는 진상이 결합된 환장의 작품이었으니까요.

이 중 억지스러운 설정이 가장 거슬렸습니다. 휴가 중 산불을 만나 산 정상 저택으로 도피했던 퀸 부자가 그곳에서 유명한 외과의사 사비에르 박사 가족과 손님을 만나게 되는 도입부부터 억지스러웠어요. 급작스러운 산불도 그렇지만, 유명한 외과의사가 은퇴 후에 첩첩산중 꼭대기에 기묘한 저택을 지어서 은신한다는 건 대관절 무슨 설정일까요... 물론 사비에르 박사가 샴 쌍둥이 동물들의 분리 실험을 했다는 설명과 작중 묘사를 통해 "닥터 모로의 섬"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느낌을 전해주려고는 합니다. 정통 본격물은 어느 정도, 아니 꽤 많이 허구와 상상이 결합되어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 해야죠.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근거지를 찾은 퀸 부자가 악을 물리친다는 아동용 모험물이었다면 모를까, 정통 본격물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유치한 설정이었습니다. 이 정도 설정을 부여할거라면 사비에르 박사가 괴물이라도 하나 만들어 놓았어야 하는데, 나오자마자 죽어버린다는 것도 황당했습니다.

산을 덮친 산불로 등장인물들이 모두 저택에 갇혀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과정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완벽한 클로즈드 서클 상황이기는 한데, 이 정도 첩첩산중 저택이라면 구태여 이런 억지를 덧붙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지금의 결과물은 화재로 갇힌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재난물로서의 가치가 더 높습니다. 엘러리 퀸의 절대적인 팬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똑같이 샴 쌍둥이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는 에도가와 란포의 "외딴섬 악마"가 있는데, 이 작품과 비교하면 노벨 문학상 수상작 급입니다. 차라리 란포의 작품을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살짝 등장하는 샴 쌍둥이 중 한 명이 범인일 때 어떻게 형벌을 내릴 수 있을까?에 대한 딜레마가 더 재미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로 끌고 나가는 게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하네요.

2022/04/24

퍼펙트 맨 - A.J. 킨넬 : 별점 1점

 

퍼펙트 맨 - 2점
A.J.킨넬/다모아

스코틀랜드의 도시 로커빌 상공을 날던 팬암 103 여객기가 폭발하여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테러범이 장치한 폭탄 때문이었다. 이 사고로 아내 나디아와 네 살 딸을 잃은 크리시는 같은 사고로 아내를 잃은 미국의 억만장자 상원의원 그레인저의 도움으로 복수에 나섰다. 그러나 테러를 저질렀던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의 아흐메드 지브릴도 크리시와 그레인저의 존재를 알아챘다. 지브릴은 그들을 없애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고, 이 과정에서 크리시는 새롭게 사랑하게 된 여인마저 잃고 마는데...

크리시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예전에 읽었었는데 우연찮게 중고 도서로 다시 구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읽다보니, 최근의 이세계 전생물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크리시가 현재 사회와는 이질적인, 다른 세계에서 돌아온 절대무적 전투 기계로 악을 응징하는 세계관 속 정의(?)를 집행한다는 점에서요. 혼자가 아니라 다양한 동료들의 도움을 얻어서 목적을 달성한다는건 일종의 파티를 이루어 퀘스트를 달성하는 전형적인 RPG 전개이기도 하지요. 온갖 미녀들과 엮여서 하렘을 이룬다는 설정도 이세계 전생물에서 흔히 보아오던 것이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런 전형적인 전개조차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합니다. 시리즈 인기가 이해가 안될 정도로 말이지요. 도가 지나친 크리시의 전지전능함은 이 시리즈의 핵심 요소이니 그렇다 쳐도, 전개와는 관련없는 흥미 본위의 설정과 억지가 가득한 탓입니다. 대표적인게 크리시가 급작스럽게 파트너가 필요하다면서 후계자 마이켈을 키워내고, 마이켈을 양자로 삼기 위해 배우 레오니와 위장 결혼한다는 설정입니다. 이 둘은 크리시의 복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이야기 전개에서 필요한 부분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분량을 늘리기 위한 설정 추가에 불과해요. 마이켈을 인간 흉기로 만드는 과정이라도 상세하게 묘사되었더라면 조금 나았겠지만, 이 역시 '훈련으로 성장했다' 정도의 설명에 그치고요. 구르카병 람바하두르 라이의 저격병 실습은 비교적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있지만, 그냥 '참을성 기르기'에 불과해서 그리 와 닿지 않았어요. 또 그게 어떤 수업이던간에, 17살 고아가 고작 1년여 배웠다고 인간 흉기 크리시와 동급의 능력자가 된다는건 말이 안되지요. 하기사 애초에 크리시가 마이켈을 후계자로 점찍은 이유조차 불분명하니, 뭐 이런 설명이 부족한건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레오니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 역시 부실하기 짝이 없었으며, 여자는 모두 남자를 위한 들러리처럼 보이는 마초적인 설정도 보기 껄끄러웠고요.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모두 들어내고, 크리시가 그레인저와 힘을 합쳐 지브릴을 없애려는 과정과 지브릴의 저항만 그려내는게 훨씬 깔끔하고 읽기 좋았을겁니다. 기 - 승 - 전 -결 구조로만 보아도 기 (여객기 폭파) - 승 (복수를 다짐한 크리시와 그레인저의 의기투합) - 전 (지브릴의 저항) - 결 (크리시의 복수 성공) 으로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니까요. 게다가 잡다한 크리시의 주변 설정 묘사가 많은 탓에, 지브릴을 저격하는 마지막 작전은 허무할 정도로 짧게 마무리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냥 돈을 들여서 지브릴의 근거지에 잠입한 뒤, 저격 후 도주한다는게 전부거든요. 크리시가 한 일이라곤 잠입 및 은신처, 무기를 수급하는 사람에게 의뢰했을 뿐입니다. "자칼의 날" 처럼 철두철미한 작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레인저 상원의원 납치 계획을 저지하는 크리시 동료들의 활약이 훨씬 볼만했었습니다. 그나마도 쉽게 끝날 작전이 마이켈의 부상으로 어려움에 빠진다는건 도대체 앞서 마이켈을 키운 이유가 무엇인지?를 되묻게 만드는 어처구니 없는 장면이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실망스러웠던 전형적인 펄프 픽션입니다. 국내에 다시 출간될 일도 없겠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전에 왜 좋은 평가를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2022/01/08

악마의 문장 - 에도가와 란포 / 주자덕 : 별점 1점

악마의 문장 - 2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주자덕 옮김/아프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제당 주식회사 대표 가와테 쇼타로 씨는 일족 모두를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고, 명탐정 법의학자 무나가타 류이치로 박사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두 딸이 차례로 살해당한 뒤 가와테 쇼타로 씨 마저도 은신처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곳곳에 '3중 소용돌이 지문'의 흔적을 남긴 범인에 의해서였다. 특히 첫째 딸 다에코는 저택 주변에는 형사가, 잠긴 방 창문과 출입문은 박사와 조수가 직접 보초를 섰는데도 불구하고, 깜쪽같이 방에서 사라진 후 유령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유령의 집에서 박사에게 쫓기던 범인은 박사의 조수 코이케도 살해했고, 출동한 경찰에게 완전 포위되었지만 끝내 거울의 방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스미다강에서 보트 놀이하던 남녀가 우연히 잘린 손가락을 발견한걸 계기로, 박사는 기타조노 류코가 사건에 관계가 있다는걸 추리해 냈다. 도주한 그녀의 은신처를 밝혀낸 박사는 추격 끝에 그녀를 사로잡지만 결국 그녀는 물론, 진범으로 생각되는 안대를 한 남자 역시 자살해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수사과장, 나타무라 경감, 형사부장과 무나카타 박사, 아케치 코고로가 함께 한 사건 마무리 축하 연회에서, 아케치는 자신이 추리한 진짜 사건의 진상을 펼쳐 보이는데...

대담하면서도 스케일 크고, 기묘하면서도 변태스럽기까지한 범행이 연이어 등장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의 장편입니다. '3중 소용돌이 지문'은 이 작품을 읽기 전에도 워낙에 유명해서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불가능 범죄가 많이 등장하는 덕분에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 부분이 제법 됩니다. 다에코 소실 사건을 빈 침대와 연결하여 풀어내는 과정이라던가, 거울의 방 소실 트릭을 통해, 무나카타 박사가 진범이라는걸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죠. 

무나카타 박사가 기타조노 류코를 포박하고 경찰에 연락한 뒤 돌아와보니 그녀가 끈을 끊고 자결했던 상황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던 아케치 코고로의 추리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끈을 먼저 끊었다면 도망치는게 타당했고, 누군가 살해했다면 끈을 끊을 이유는 없었다는건 당연하니까요. 박사가 손가락을 싸고 있는 신문지와 손수건으로 류코의 거처를 알아냈다던가, 류코가 도주 전 대량의 식재료를 배달받았다는걸 근거로 자택 다락에 은신하고 있다는걸 추리해내는 등의 소소한 추리들도 괜찮습니다. 

3중 소용돌이 지문을 일종의 아이콘처럼 활용하고 있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문이 찍힐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문이 발견되도록 만들어서 범인이 전능하다는걸 드러내는 연출도 좋았고, 무고했던 류코가 3중 소용돌이 지문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녀가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는 범인의 계획도 그럴듯했거든요.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의 활약도 팬으로서는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연극적인 상황을 지나치게 많이 연출하고 있는건 문제입니다. 이야기에 별 상관도 없고, 설득력을 떨어트리는 요소들일 뿐인 탓입니다. 가와테의 두 딸 시체를 '인체 전시회'와 '유령의 집'에 각각 전시하듯 유기한 상황부터가 그러합니다. 범인이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은 하나도 없는 불필요하며 불합리한 행동에 불과하니까요. 오히려 유령의 집에 시체를 유기하려다가 경찰에 포위되었고, 그래서 정체가 드러날 빌미를 아케치 코고로에게 제공했을 뿐이니 이는 완전한 패착이었습니다. 완전 포위당한 거울의 방에 갖혀있던 범인이 사라지고, 박사 튀어나왔다는건 박사가 범인이라는거니까요. 이 소실 트릭이 보다 현실적인 상황에서 등장했더라면 그나마 괜찮았을텐데, 범인의 억지 연출로 자기 무덤을 판 것에 지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애초에 복수 대상이었던 가와테 쇼타로가 사건 수사를 범인인 박사에게 의뢰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완전범죄로 죽이면 되는데, 왜 자기 정체가 드러날 위험을 무릅쓰고 충직한 조수마저 죽게 만들면서까지 억지 상황을 연출하면서 복수를 질질 끌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합니다. 이런 연출로 박사가 얻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표면적으로 아케치 코고로에 버금간다는 명탐정이었던 박사의 명성에 흠집만 났을 뿐이에요.

또 이 상황에서 묘사되는 유령의 집 가짜 시체와 여러 장치들은 당시 기술력으로는 재현이 불가했을 장치들이라 완전 억지에 불과했습니다. 거울의 방 묘사는 작가의 작품에서 반복되던 그대로라 지겨웠고요. 이야기와는 아예 상관없는 쓸데없는 내용이 이렇게까지 길게 묘사될 이유도 없었어요. 쇼타로의 은신처에서 그를 죽이기 전 복수의 이유인 쇼타로의 아버지 가와테 쇼베가 저질렀던 악행을 연극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묘사도 억지스럽고 불필요한건 마찬가지고요. 이런 묘사들은 아마 당시 잡지 연재를 하면서, 매 편마다 독자들의 흥미와 재미를 불러 일으키기위해 자극적인 묘사로 채우기 위한 의도였다고 생각은 됩니다. 연재 시 분량을 늘여 원고료를 더 받기 위한 얄팍한 술책도 한 몫했을테고요. 문제는 이걸 하나의 책으로 묶어 보니, 과하고 불필요한 묘사만 가득차 버리고 말았다는거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낡기만 했을 뿐, 특별한 가치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 정도면 그냥 잊혀져도 무방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2021/08/15

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 유성운 : 별점 1점

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 4점
유성운 지음/이다미디어

총 6장 구성으로, 이런저런 한국의 역사적 상황이 현재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걸 알려주는 역사서입니다. 신라 4대왕 석탈해의 다파나국은 캄차카반도인가?, 고대 남부 한반도 왜의 위치는 한반도 남부를 포함할 수 있다, 처용은 페르시아 왕자일 수 있다, 金을 왜 금이 아니라 김이라고 읽게 되었나?, 왕건의 호남 차별론은 사실인가? 등 목차만 보아도 흥미로우며, 재미있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다양한 사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주는 구성도 좋았고요. 도판들도 빼어나며 특히 제목처럼 지도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소개하자면, 金을 김이라고 읽게 된 이유입니다. 원래는 조선 왕가와 관련된 음양오행설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는데, 최근 설은 수, 당 시대만 해도 '금'에 가깝던 발음이 5대 10국을 거치며 '김'에 가까운 발음으로 변했기 때문이라는군요.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고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몽골 상류층 이름에 金이 많아서 발음 변화가 퍼졌다는 설인데 꽤 그럴싸했어요. 

왜 중국의 왕조들이 한반도를 완전히 정복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도 나름 괜찮았습니다. 이른바 '실용적인 외교'를 잘 했기 때문이라며, 대표적인 예로 서희가 거란과 강동 6주를 얻어낸 담판을 들고 있습니다. 고려와 거란의 국교를 위해서는 여진이 머무는 압록강 일대 확보가 필요하니, 그걸 달라는 요청이었다면서요.

하지만 당시 고려군은 이미 두 번의 승리를 거두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냥 말 만으로, 외교만으로 평화와 땅을 얻어낸건 아니지요. 이게 적합한 예인지는 아리송합니다. 이 보다는 항복하러 몽골로 향하던 고려 태자 왕전이, 몽케 칸이 급작스럽게 죽자 후계자 후보 중 쿠빌라이에게 미래를 걸었던 행동이 더 좋은 예라 생각됩니다. 아무리 자료와 소문을 수집했다 하더라도 이건 순전히 '감' 이었다고 생각은 됩니다만... 

고려 말, 토지 개혁을 외치며 건국했던 건국 공신들이 결국은 자기들 잇속을 챙겼다는 이야기는 씁쓸했습니다. 공신 조준이 받은 표지는 현재 기준으로 약 124만 7,300평이나 된다니까요. 고려에서도 최고의 권문세족 가문이었던 조준이 혁명에 동참했던건 다 이런 이유가 있던 거지요. 왠지 청렴한 학자일 것 같은 퇴계 이황도 무려 36만평이 넘는 땅부자였다고 하니, 돈이 없으면 성공 못하는 세상인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것 같네요.

이외에도 17세기, 전 세계를 강타했던 소빙기 한파로 조선이 입었던 피해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부분이라던가, 조선에서도 서울 주택 가격은 100년 동안 10배 가량 뛰었다는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큽니다. 가장 큰 단점은 지나치게 본인 생각이 많이 담겨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게 임진왜란 당시 끌려간 도공 이야기를 하면서, 이들이 일본에 남은건 비극이 아닐 수도 있다, 이들이 조선에 남았더라면 이런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시각이에요. 당시 끌려간 포로 일부는 조선 귀환을 거부했다는 사료를 토대로, 조선이 문제였다고 마무리하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기 때문에 조선이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는 논리하고 똑같죠. 애초에 왜 끌려갔는지를 망각한 망발입니다.

이러한 친일적 시각은 왜의 위치에 대해 분석하며, 그들이 실제로 가야와 신라 이남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보는 내용 등에도 진하게 묻어 나옵니다. 아울러 역사적 상황이 현재와 별로 다르지 않다며 추가한 저자의 개인 의견들도 마찬가지에요. 한국사 도감에 이런 내용이 들어갈 이유도 없고, 그나마도 한 쪽에 치우쳐진 개인적인 시각이라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신진 사대부를 강남 좌파에 비유하는 정도에서 그쳤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이런 내용이 포함된줄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알았다면 절대로 읽어보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제대로 된 역사서로 볼 수 없습니다. 개인의 잡문에 가깝습니다.

2020/10/10

루팡의 딸 - 요코제키 다이 / 최재호 : 별점 1점

루팡의 딸 - 2점 요코제키 다이 지음, 최재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탐정'으로 불리우는 수사 1과 형사인 카즈마의 가족은 모두 경찰이며, 심지어 키우는 개 까지 은퇴한 경찰견인 경찰 집안. 그와 교제하는 하나코는 도서관 사서로 위장했지만 가족 모두가 도둑인 도둑 가문의 딸이었다.

카즈마가 결혼을 전제로 하나코를 가족들에게 소개시킨 얼마 뒤, 카즈마와 수사 1과는 한 살인 사건을 맡게 되었다. 피해자는 처참하게 구타당해 죽은 고령의 노인으로 얼굴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 여러가지 단서로 경찰은 피해자의 신원이 '다테시마 마사오'라는걸 알아냈다. 이 사실을 뉴스로 접한 하나코 가족은 피해자가 신분을 감춘 할아버지 미쿠모 이와오라는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경찰은 피해자가 '다테시마 마사오'로 위장한 이와오라는걸 알아내지 못해 사건은 미궁에 빠졌지만, 카즈마는 시체에 남겨져 있었다는 손수건을 단서로 진상을 알아냈다. 이 사건은 50년 전 성폭행 미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 성폭행 미수범은 카즈마의 동료 마키 형사의 할아버지 에이스케였다. 이와오에게 쫓기던 에이스케는 손자 마키를 시켜 그를 죽이려 했는데, 마키의 착오로 진짜 다테시마 마사오가 살해되었다. 그래서 이와오와 와이치는 마사오의 죽음을 이용하여 범인을 잡을 계획을 세웠다...

일본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만화적인 설정이 극대화된 작품입니다. 그냥 봐도 "세인트테일"이 바로 떠오르지요. 그래도 카즈마가 하나코를 소개한 날, 그녀가 며느리로 적합한지 아닌지에 대해 가족회의 하는 등 나름 설정을 살린 요소들은 재미있었습니다. 형사인 아버지는 감으로 그녀가 착해서 마음에 든다고 하지만, 과학 수사대 요원인 어머니는 '착하다는 증거'를 요구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설정에 따른 재미는 소소할 뿐, 전개와 내용 모두 지나치게 만화적이고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추리적으로도 건질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와오를 죽인건 누구인가?' 라는 수수께끼를 풀어가기는 하는데, 동기가 말도 안되고 제공되는 단서도 공정하지 못하며, 범인도 급작스럽게 드러나는 탓입니다. 동기는 이와오가 50년 전 성폭행 미수범이 누구인지 알게 되자, 성폭행 미수범이 자신의 손자를 시켜 이와오를 살해한 거랍니다. 증거는 이와오가 '범인의 눈을 보면 안다'라는 말 밖에 없는데 무려 50년 전 성폭행 미수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것도 손자를 시켜서? 심지어 손자 마키도 능력있는 형사로 전통있는 경찰 집안 출신이라 나름대로 출세가 보장되어 있는데 할아버지가 시킨다고 살인을 저지른다? 뭐 하나라도 말이 되는게 있어야지, 이래서야 어디서부터 딴지를 걸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키가 범인임을 알아채는 과정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마사오를 살해한 마키 형사를 이와오가 쫓다가, 그의 손수건을 훔쳐 마사오의 시체에 남겨 놓은게 가장 큰 증거가 되는데, 손수건을 훔쳐낼 정도로 쫓았다면 지갑을 훔쳐내는 등으로 신원을 밝혀낼 수도 있던거 아닐까요? 왜 손수건을 훔쳐내는 정도로 만족했을까요?
그리고 성폭행 미수범이 마키 에이스케라는걸 안 이상, 이렇게 복잡하게 범인을 밝혀낼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마키 에이스케를 협박(?)하면 될 일이었어요. 

또 손수건에 'M'이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게 단서라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카즈마는 신원을 감춘 미쿠모 이와오가 자신의 이니셜을 새길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테시마 마사오의 이름도 M으로 시작되니 별로 이상한건 아닙니다. 아울러 손수건에 지문이 남아있다면 모를까 손수건이 마키 형사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될 수도 없고요.

범행을 밝혀내는 카즈마 결혼식에서의 몰래 카메라 생중계 역시 지극히 만화적입니다. 촬영이 가능했다면, 구태여 생중계를 할 이유는 없지요. 이건 하나코와 헤어진 뒤, 충동적으로 선택한 에미리와의 결혼을 어떻게든 파토내려는 카즈마의 수작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카즈마는 솔직히 죽어 마땅한 나쁜 놈으로 이래서야 주인공으로는 실격이지요. 속편에서 에미리에게 처절하게 보복당해도 할 말이 없어요. 

그 외에도 카즈마가 하나코가 도둑 집안의 딸이라는걸 알게 되는 과정, 카즈마가 단 며칠 사이에 수십년 전 부터 활약해 왔던 천재 강도단 L을 사로잡을 증거를 모은다는 전개 등 모두가 작위적이며 어설프고, 만화적입니다.
 또 아무리 나쁜 사람들 물건만 훔치고 라며 포장하고 있지만, 도둑은 분명한 악당인데도 우리 편인양 포장이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중반에 중국 강도단이 보석상을 턴 뒤, 그 강도단을 미쿠모 가족이 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중간 과정이 하나 끼어 있을 뿐 보석상을 턴건 마찬가지잖아요? 할아버지 이와오가 죽은 걸로 알고 있는 가족이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와 희희낙락하는 묘사도 이해가 잘 안되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입니다. 세세한 묘사는 전부 들어내고 캐릭터에 집중한 빠른 호흡과 전개 덕분에 읽기는 편했지만, 그 외에 건질건 하나도 없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읽어 볼 가치는 전무합니다. 작가가 쓴 다른 작품들도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군요.

2020/07/05

콜드게임 - 오기와라 히로시 / 신유희 : 별점 1점

콜드게임 - 2점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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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여름, 복수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중2 때 동급생들이 한 명 한 명 습격당하기 시작하고 결국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다. 범행 예고에서부터 토로요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4년 전, 학급 내 집단 따돌림의 표적이었던 토로요시. 하지만, 전학 간 토로요시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츠야를 비롯해 뜻을 같이 하는 아이들은 ‘기타중학 방위대’를 결성, 토로요시를 찾아 나서는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 경악할 만한 반전,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상처로 남을 슬픈 이야기. 고3의 끝나지 않는 여름방학을 그린 오기와라 히로시 스타일의 청춘미스터리.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오기와라 히로시는 개인적으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다른 그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작가입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기묘할 정도로 유쾌한 분위기와 함께 달릴 때 달려주는 화끈함이 아주 일품이지요. 이 작품은 존재를 전혀 몰랐었는데,, 우연찮게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순전히 작가 이름만 보고 대여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장점만큼은 기대에 값합니다. 입시를 앞둔 중학교 2학년 동창들이 모여, 시덥잖은 농담과 옛 추억담 등을 털어놓고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들은 상황과는 걸맞지 않게 유쾌하며, 토로요시를 쫓는 과정과 마지막 습격과 위기는 손에 땀을 쥘 정도로 화끈하고 박진감 넘치거든요. 토로요시의 타겟이 료타 한 명으로 좁혀지고, 료타와 미츠야가 위기에 처하는 클라이막스로 이어지는 전개도 직구 승부로 일관하고 있어서 화끈함을 더해줍니다. 누군가 습격당하고, 그걸 막기 위해 노력하고, 현장을 목격하고 추격을 벌이지만 실패하고.... 의 반복인데 회를 거듭할 수록 폭력의 수위도 업그레이드 되고요. 오로지 직구로만 승부하는 오기와라 히로시 작품답더군요. 

마지막 결정구로 토로요시는 이미 죽었고, 그의 부모가 진짜 복수귀였다! 는 반전도 묵직하게 스트라이크로 꽂힙니다.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출만한, 그런 이야기였어요. 이런 장점들 덕분에 읽는 맛 하나만큼은 기대에 값합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삽시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흡입력은 빼어납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소재와 설정이 굉장히 불쾌한 탓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토로요시에게 가해진 왕따 행위는 처참하기 이를데 없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전개에서 그에 대한 반성, 속죄는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왕따 가해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고, 친구의 복수를 하기 위해 '기타중학 방위대' 라는 이름의 친목 자경단(?)을 조직해서 자기들끼리 자경단 놀이를 하는게 내용의 대부분으로 이들에게 닥치는 토로요시의 위협은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하는 난관, 토로요시는 최종 보스인거죠. 이래서야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왕따 피해자가 과거의 가해자였던 인간 쓰레기들을 하나씩 쓰러트리면서 최종 보스인 료타를 해치우는 토로요시 시점의 이야기였어야 했는데 말이죠. 최소한 절대악 료타 시점에서 닥쳐오는 복수를 느끼며 두려워하다가 왕따 가해자들이 모두 파멸하는 이야기였어야 했습니다. 

토로요시 부모가 그 집요한 복수의 행각으로 욕을 먹고, 죽다 살아난 료타가 불구가 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일어설 것이다!를 다짐하는 마지막 장면은 불쾌함의 정점을 찍어 줍니다. 피해자는 자살하고, 가족은 몰락했지만 가해자 우두머리는 뉘우침도없이 불사조처럼 살아남아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건데 이건 피해자 입장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악몽일거에요.

아울러 이야기가 미츠야 시점으로 전개되는 것도 이상합니다. 왕따 가해자는 아니라는 식으로 대충 빠져나가고 있는데,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라 치더라도 피해자 토로요시 시점에서는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악질 가해자와 별다를게 없잖아요? 진솔한 반성의 모습도 드러나지 않고요. 이런 놈이 위험을 딛고 성장하여 어른이 된다는 성장기처럼 이야기를 포장하고 있으니 참 염치도 없다 싶었습니다. 야구 소년다운 관련 묘사들은 재기발랄하지만 그 뿐이고요.

마지막으로 토로요시의 부모가 아들을 대신해 복수극을 벌였다는 반전도 설득력 측면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무기, 그 중에서 스턴건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평범한 중년 아저씨가 고3 싸움꾼들을 차례대로 손쉽게 제압한다는건 잘 와 닿지 않았거든요. 높은 굽의 구두로 변장한 것 역시 활동성이 떨어지는건 당연할터라 이유를 알기 어려워서 좀 이상했고요. 차라리 원래 미츠야들이 생각했던 것 처럼, "홀리랜드"처럼 토로요시가 급작스럽게 거구가 되었고, 꾸준한 노력으로 힘과 여러가지 기술을 손에 넣었다는 설정이 더 현실적이었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하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입니다. 읽는 재미만큼은 높이 평가하지만, 왕따 가해자 옹호를 위한 작품이 아닌가 싶을 생각이 들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제 기준으로는 콜드 게임이 아니라 몰수 게임입니다. 왕따라는 소재가 이렇게 소비되는 작품은 두번 다시는 읽고 싶지 않습니다.

2020/04/19

중세 유럽의 레시피 - 코스트마리 사무국 / 김효진 : 별점 1점

중세 유럽의 레시피 - 2점
코스트마리 사무국 지음, 김효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주제에 대해 깊숙히 파고들어, 일반 상식 이상의 정보를 전해준다는 취지의 AK Trivia books 시리즈의 한 권입니다. 제목 그대로 중세 유럽 요리의 레시피 43개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레시피 외에 중세 요리 및 저자의 중세 축제 체험기를 다룬 컬럼 몇 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고요.

특징이라면 중세 유럽의 레시피를 현대의 재료로 재현하는걸 중요한 포인트로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제인 "손쉽게 만들어 즐겁게 맛보는 중세 요리'에 충실한 셈이죠. 그래서 수록된 대부분의 레시피들이 실제로 현재, 그리고 가정 내에서 구현 가능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맛이 짐작 가능해서 딱히 신선한 레시피는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쿠민 수프'는 향신료 쿠민이 들어갈 뿐, 현재도 우리가 즐겨먹는 '달걀국'과 같아요. 버섯 수프 '펑거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닭 육수에 다듬은 버섯들과 파, 시나몬, 클로브, 후추를 넣고 끓이는 레시피와 결과물 사진을 보면, 닭 육수를 쓰기는 하지만 멸치 다시마 육수를 써서 만드는 버섯국과 별로 맛이 다를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새의 무덤' 이라는, 중세풍 이름의 요리도 그 정체는 다진 마늘, 소금, 후추와 버무린 닭다리살을 볶은 뒤 타임, 로즈마리를 넣고 레드 와인과 물에 조리는 와인 닭찜입니다. 이 정도라면, 우리가 흔히 먹는 닭가슴살 간장 조림에서 간장만 와인으로 대체하면 되는 수준이라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어 먹을 수 있겠죠.
또 현대에 재현하기 위해 재료를 나름 응용한다는 것도 눈에 뜨입니다. 중세의 허니 토스트를 재현하기 위해 '식빵'을 쓰는 식으로요.

물론 현대에 중세 요리를 재현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나쁠건 없습니다. 문제는 내용의 깊이와 전문성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지요. 레시피 하나하나의 분량은 많아야 2페이지 정도에 머물 뿐으로, 정말 '레시피' 이외의 다른 정보가 거의 소개되지 않을 뿐더러, 레시피들의 출처들도 소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저자의 마음 속에서 그럴듯하게 꾸며낸 중세 유럽의 요리인지, 아니면 실존했지만 이를 현대에도 맛볼 수 있게 어레인지한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전문성 측면에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네요.
수록되어 있는 컬럼들도 중세 유럽의 장미, 백합, 제비꽃에 대해 알려주는 정도만이 괜찮았을 뿐 그 외에는 별볼일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쓸데 없는 저자의 중세 축제 체험기나 일본 내 중세 유럽 관련 행사에 대한 정보에 대한 사진과 비중이 높다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풀 컬러지만 재현한 음식들 한 컷씩만 실려있는 수준의 도판도 딱히 대단하지 않으며 책의 완성도도 그냥저냥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중세 유럽의 레시피를 현대에 재현한다는 취지 외에 건질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17,000원이라는 가격도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고요. 이쪽 분야에 관심이 지극히 많으시더라도,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0/03/11

너무 예쁜 소녀 1~3 - 얀 제거스 / 송경은 : 별점 1점

[세트] 너무 예쁜 소녀 (전3권) - 2점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한경비피

인적이 드문 프랑스의 한 마을에 어느 날 숨이 막힐 정도로 예쁜 소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마농인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녀를 돌봐주던 미망인이 심장마비로 죽자 마농은 마을에 올 때 그랬던 것처럼 홀연히 마을을 떠났다. 때마침, 총각 파티를 떠나던 세 명의 남자들이 길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해 차에 태워 주었다.

장면이 바뀌어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프랑크푸르트. 미국대통령의 방문으로 도시 전체가 삼엄한 어느 날, 프랑크푸르트 도시 숲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강력계 팀장 로버트 마탈러가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사건 발생 이틀 뒤, 사건 현장 근처 호수에서 물에 빠진 자동차가 발견된다. 트렁크에서 또 다른 남자의 시체가 나오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진다. 트렁크 안에서 발견한 피해자의 옷에서 주유소 영수증을 찾아내고, 그 일행이 주유소 주인의 조카는 자동차에 남자 세 명과 유난히 눈에 띄게 예쁜 여자가 타고 있었다고 증언하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작가의 추리 소설 데뷰작이자 로버트 마탈러 형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네요. 코로나 사태로 방콕하는 와중에 도서관 e-book 대여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유럽 추리 소설은 딱히 취향이 아니지만, 이전에 분명 어디선가 소갯글을 읽고 장바구니에 담아놓았었기 때문이죠. 제목에서 왠지모를 호기심도 느꼈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선택은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끔찍한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범인을 뒤쫓는 형사들의 활약이 펼쳐지는 전형적인 범죄 스릴러의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모든 면에서 함량 미달인 탓입니다. 주인공인 로버트 마탈러 형사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오랫동안 형사로 일하고, 지금은 팀장이라는데 전혀 전문가스럽지 않기 때문이에요. 피해자 가족에게 피해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리기를 지극히 꺼려할 정도로요. 독일 형사라면 기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것 같지만, 연락하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도 잊어버린다거나,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 잔 실수도 많습니다. 추격전과 같이 대단한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고, 사람 몇 명 만났다고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모습을 보면 영 신뢰하기 어렵고요. 여기에 먹는걸 좋아하고, 15년 전 사망한 아내를 잊지 못하면서도 단골 카페의 새로운 아르바이트생 테레사를 유혹하는 모습을 더하면, 이게 무슨 독일인이가 싶습니다. 이탈리아 인에 더 가까운거 아닐까요? 수사 외에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미술 쪽에 대한 취미도 피력하는데 이는 완전한 사족이었습니다. 운전을 싫어하고, 담배와 커피를 즐기는 모습 정도의 독특함만 가져가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다른 경찰들도 무능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탈러의 부하들은 도주 중인 플뢰거에게 습격당해 총을 빼앗기고, 플뢰거에게 사로잡혀 끌려다니는데다가, 마리 루이제가 있는 쇼핑몰 봉쇄에 실패하고, 심지어 유력 용의자인 마리 루이제를 호송 중에 놓치기까지 합니다. 다른건 몰라도 유력한 용의자를 놓친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너무 예쁜 소녀' 마농, 마리 루이즈의 존재도 별거 아닙니다. 누구나 반할만큼 대단한 외모를 소유했다고 묘사는 되지만, 그 미모 탓에 사건이 벌어진다고는 보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미모 때문에 가족이 파멸하고, 그녀가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또 소악당 3명의 차에 얻어탄 뒤 성폭행 당한건 미모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외모가 평균 수준만 되었어도 충분히 닥칠 수 있는 범죄였으니까요. 로만을 유혹한 뒤 살해하는 범행에는 명백히 미모가 도움이 되었겠지만,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마농의 모든 행동은 뒤떨어져 보이는 지능 등으로 모두 즉흥적, 수동적으로 묘사됩니다. 미모를 사용하려는 의지가 아예 없어요. 미모를 활용한 어린 팜므파탈을 기대했었지만, 실망스럽기만 하네요.

내용에서도 스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추리의 여지도 당연히 없고요. 시체가 발견된 뒤, 목격자들의 증언과 이런저런 증거를 모아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요. 마농이 베른트 풍케와 요헨 힐셔, 플뢰거가 탄 차에 동승한 뒤 숲 속에서 플뢰거를 제외한 사람들끼리 성관계가 있었고, 일행 중 베른트 풍케와 요헨 힐셔가 난도질당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범인이 제 3의 인물이 아니라면 플뢰거나 마농, 둘 중의 한 명이 범인인건 뻔합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여자인 마농보다는 플뢰거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봐야겠죠. 마농 혼자 남자 2명을 살해하고, 그 중 한 명을 차 트렁크에 실어 호수에 버릴 정도의 능력이 있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우니까요. 마농이 범행을 저지르는 와중에 플뢰거 혼자 도주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하지만 이 가설은 사건 뒤 마농이 우연히 만나 유혹한 로만을 난도질해서 살해한 것 때문에 부정됩니다. 그녀는 정말 살인마였던거죠, 그렇다면 플뢰거는 왜 마농과 따로 도주한 뒤 경찰에 쫓기다가 투신자살했을까요? 범행의 공범이었다 하더라도 직접 실행범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릴 이유가 없었을텐데 말이죠. 그리고 공범이었다면, 애초에 자기 친구 두 명 살해와 시체 유기에 가담한 이유와 요헨 힐셔의 시체를 은닉한 뒤 마농이 플뢰거를 살해하지 않은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요? 단지 자신과 성관계를 맺은 남자만 죽인다는게 이유였을까요? 그렇다면 왜? 정말로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했던 트라우마가 있었던걸까요? 그리고 로만과는 몇일간 함께 지내며 관계를 맺었는데 왜 바로 살해하지 않은걸까요?
이렇게 떡밥을 던진건 많은데 제대로 회수되는건 별로 없어요. 범행 동기도 도무지 알 수 없고요. 게다가 모든 수수께끼는 결말에서 마농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서 그랬다, 즉 심신 미약 상태에서 일으킨 불가항력적인 범행이었다는 식으로 대충 마무리됩니다. 이 정도면 막장 드라마의 기억 상실급에 비교할 만한 최악의 결말이라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설명되지 못한 부분은 많습니다. 애초에 왜 마농의 아버지 페터가 가족 동반 자살을 기도했는지, 가족 동반 자살 사건에서 마농 혼자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인지, 살아남은 뒤 왜 정상적인 사고를 갖추지 못하게 되었는지, 마농이 체포되고 난 후 장 루크 지로가 죄를 뒤집어 쓰기 위해 나선 이유는 무엇인지 등 많은 부분이 모호합니다. 장 루크 지로는 마농에게 홀딱 반한 멍청이라서 그렇다지만, 딱히 납득이 되는 설명은 아니었어요.
그나마 추리가 등장하는건, 페터 가이슬러가 좌절하여 일가족 동반 자살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 익명의 투서를 누가 썼느냐를 밝혀내는 정도에 그치며, 이 역시 사건 후 페터의 주변 동료 중 한 명이 자주 쓰지 않는 단어를 진술서에 썼는데 이 단어가 투서에도 쓰였다는게 이유라서 대단한 추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캐릭터, 내용 모두 뭐 하나 건질게 없었던 완벽한 시간 낭비였습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읽을 필요가 없다는걸 알게된게 유일한 수확이에요. 로버트 마탈러가 팀장으로 근무하는 독일의 치안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2019/08/03

살인 카드 게임 - 제임스 패터슨 / 조은아 : 별점 1점

살인 카드 게임 - 2점
제임스 패터슨 지음, 조은아 옮김/북플라자

내 소개를 하지. 이름은 딜런. 저명한 심리학 교수지. 어느 날, 아름답고 당찬 여형사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지. 그녀는 대뜸 내게 피 웅덩이 위에 쓰러진 피해자의 사진을 보여주었어. 맙소사, 사진 속 모습이 얼마나 참혹한지 역겨움이 들 지경이었어. 그녀는 범인이 시신 옆에 트럼프 카드 ‘킹’을 두고 갔다고 설명했어. 남기고 간 카드로써 다음 희생자를 예고하는 연쇄 살인 게임이 시작된 거야. 나는 그녀를 도와 범인을 잡는 수사에 참여하기로 했지. 그런데 빌어먹을! 놈은 그런 우리를 비웃듯이 교묘한 방법으로 살인을 계속 저질렀어. 과연 이 살인 카드 게임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미국의 인기 작가 제임스 페터슨의 신작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아주 오래 전 몇 권 읽어보았는데, 사실 좋았던 기억은 없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흐른 만큼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살짝 기대를 했지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역시나 실망이었습니다. 그냥 실망도 아니고 왕실망이었어요.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와 주인공이 대결하는 작품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살인마가 특정 소재 - 동요라던가, 타로 카드라던가... - 로 살인 예고를 한다는 작품도 많고요. 무작위로 보였던 피해자들에게 무언가 공통점, 패턴이 있다는 이야기도 굉장히 흔합니다. 그렇다면 이야기에 무언가 특별한걸로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차별화된 재미 요소는 전무합니다.
그나마 주인공만 조금 독특한 정도입니다. 딜런 라인하르트 교수는 예일대의 이상 행동 분석 교수로 정신 감정 전문가이자 전직 CIA요원, 거기에 아이를 입양하려고 하는 게이 부부의 남편! 이라는 설정이니까요. 파트너격인 엘리자베스 니덤은 게이마저도 반할만한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에 뒤지지 않고요. 그런데 이게 재미요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헐리우드 영화같기는 한데 이야기와는 별 상관이 없는 탓입니다.

또 이렇게 캐릭터를 구성하기 위한 여러가지 이야기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해서, 정작 본 사건 이야기는 구멍 투성이입니다. '트럼프 카드'로 다음 피해자를 예고한다는 핵심 설정부터 억지스러워요. '클로버 킹'이 뉴욕 클럽의 왕으로 군림했던 두번째 피해자를 나타낸다는 것, 그리고 '하트 퀸'이 여성 흉부외과 전문의를 가리킨다는 정도만 아슬아슬하게 설정과 어울리며 그 외에는 전부 무리수입니다. 예를 들어 하트 2가 두명의 불륜 남녀를 가리킨다? 그 대상자는 뉴욕에 수만명은 될 겁니다. 킹스맨 재판 관련자라는 조건이 걸리더라도 둘의 불륜을 어떻게 알아낼까요? 최소한 경찰은 알아내기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래도 억지스럽지만 피해자들을 어떻게든 알아내기는 합니다. 허나 범인보다 앞서가고자 할 때마다 간발의 차이로 항상 범인이 앞선다는 식상한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너무 뻔해서 놀랄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렇게 범인에게 계속 뒤진다면 경찰이 딜런 교수에게 협조를 요청할 이유도 없습니다. 실제로 딜런 교수가 사건 해결을 위해 한 일은? 거의 없어요! 피해자들 모두 악인들로 킹스맨에게 재판받았다는 공통점을 찾아내고, 진범이 엘리야 티미츠라는걸 눈치챈 뒤 그라임스 기자에게 달려간 정도만 경찰보다 빠른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건 무의미한 행동이었습니다. 엘리야 티미츠는 그라임스 기자를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킹스맨 판사가 범인이 아니라는게 밝혀진다면 그의 자동차, 옷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인 엘리야 티미츠가 범인이라는게 드러나는건 시간 문제였고요.
마지막에 시장을 구하는 활약? 범인이 죽기전 '나를 야구장으로 데려다 주오'를 부르고 손목에 문신이 새겨졌다는 정도로 무언가 행동을 벌인다는건 억지 아닐까요? 그야말로 작위적인 전개의 끝판왕입니다. 딜런 교수의 유일한 활약은 총상을 입은 엘리자베스를 구한게 전부에요.

범인 엘리야 티미츠의 설정과 그의 범행들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에 특별한 연줄도 없고, 대단한 기술을 배우지도 않은 흑인 청년이 어떻게 이런 복잡하고 거대한 살인 계획을 경찰보다 앞서 실행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무합니다. 그냥 어릴 때 부터 다이너마이트와 피를 가까이하면서 살았는게 고작입니다. 전직 경찰이었다, 전직 무슨 요원이었다는 등으로 어떻게든 설득력을 갖추고자 하는 시도도 없습니다. 등장도 급작스러워서 반전의 묘미도 없고요.

한마디로 독서에 들인 시간이 아까운 수준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리뷰를 쓰기도 아깝지만 다른 피해자 (?) 분들을 막기 위해 몇 자 적습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제임스 페터슨의 소설은 손에 대지도 않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