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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9

스와이프 엄금 - 치넨 미키토 / 김은모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밝은 미래를 위해 선배 야에가시가 부탁한 '도메키의 동네'라는 괴담 조사를 나섰다.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도메키의 피해자였던 아메치의 정보를 입수하여 도메키의 동네가 어디인지 알아냈지만, 현장 조사 후 나에게 '도메키'가 들러붙은걸 알게 되었다... 

한쪽에는 본문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휴대폰 앱 화면이나 관련 그림이 실려 있는 그림책에 가까운 단편입니다. "유리탑의 살인" 등으로 유명한 치넨 미키토의 신작으로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었습니다.

형식만큼은 휴대폰 중심의 이야기와 잘 어울립니다. 메시지, 위치 정보, 앱 인터페이스처럼 보이는 화면이 동일한 내용의 본문과 함께 펼쳐져서 독자가 화자와 똑같은 화면을 보는 느낌을 주는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외의 장점은 없습니다. 우선 괴담치고 무섭지 않은 탓이 가장 큽니다. "도메키의 동네"는 눈이 그려진 이미지 외에는 긴장감이 거의 없고, 도메키의 습격도 뻔합니다. 피해자들을 추적하는 매개체가 휴대폰이었다는 진상 역시 책의 형태와 도메키의 행태를 보면 쉽게 짐작되고요.

내용도 별게 없어요. 화자가 하는거라고는 앱에 표시된 내용을 확인하거나 검색하는게 전부입니다. 피해자인 아메치의 집을 찾아가 계정 정보를 얻는 정도를 빼면요.

처음에는 야에가시의 후배 가즈마가 화자였던걸로 보였지만, 사실 화자는 가즈마의 연인 루리카였다는 반전도 애매합니다. 교묘하게 서술 트릭을 쓴건 맞지만, 이 반전은 이야기와 별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화자가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가즈마와 루리카는 모두 죽거든요. 이래서야 그냥 서술 트릭을 활용한 깜짝쇼에 불과합니다.

그림도 아쉽습니다. 휴대폰 앱 화면처럼 꾸민 페이지는 형식과 잘 어울리는데 그 외의 일러스트는 영 별로에요. 분위기를 살리기는커녕 유치하게 보여 그렇잖아도 무섭지 않는 괴담으로의 가치를 더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독특한 편집 형식 하나를 제외하면 추천할 만한 부분을 찾기 어려운,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일러스트로 포장했을 뿐인 망작입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2026/05/15

친구가 사라졌다 - 가네시로 가즈키 / 양억관 : 별점 1점

화려한(?) 고교 생활을 보냈지만 지금은 평범한 생활을 보내던 대학생 미나가타에게 동급생 유토가 찾아왔다. 사라진 친구 기타자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기타자와가 푹 빠졌었다는 연합서클 ESSC와 관련된 문제로 생각한 미나가타는 ESSC의 리더 시다와 대면했지만, 오히려 기타자와가 강간과 대마 밀매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가 사라졌다는걸 알게되는데...

"GO"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네시로 가즈키의 장편입니다. 몰랐는데 미나가타가 고등학교 때 활약했던 전작이 있습니다. 작 중에서도 전작의 활약이 자주 언급되고요. 하지만 이 작품만 읽어도 별 문제는 없습니다.

내용은 그대로 사라진 친구 기타자와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미나가타가 해결사처럼 움직이며 사건의 배후를 파고드는 전개로, 정통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청춘 범죄 활극에 가깝습니다.

장점은 분명합니다. 쉽게 읽힙니다. 한마디로 가독성이 좋은 책입니다. 문장은 빠르고, 장면 전환도 가벼우며, 크게 막히는 부분 없이 술술 넘어갑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읽는다면 금방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독성 외에는 전부 단점에 가깝습니다. 우선 설정부터 빈약합니다. 주인공 미나가타부터 그러합니다. 무언가 그럴듯한 과거가 있고 지금은 혼자 살면서 휴대폰과 TV도 없이 LP로 음악을 듣는 취미가 있으며, 유명 탤런트와 친구라는 등의 설정은 지나치게 멋을 부린 느낌입니다. 현 시점에 맞지도 않고요. 80~90년대 하루키 작품 주인공이 액션 영화 주인공이 된 느낌인데 영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맛 쓴맛 다 본 인물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나이를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기껏해야 대학생인 주제에 무슨 대단한 경험을 했나 싶거든요. 이보다는 군대 갔다 와서 취업전선에 뛰어든 우리나라 20대 청년 경험이 더 화려할 겁니다.

미나가타 주변 인물들의 설정은 더 황당합니다. 미나가타에게 취미삼아 살인 격투술을 가르치는 노숙자 람보와 윌, 대학생으로 연합 서클 ESSC를 이끌며 군림하지만 이면에서는 개인정보를 이용해 협박과 조종을 일삼는 시다, 친구들을 돕다가 사적 복수 활동까지 시작한 여고생 리츠 등 만화로 보기에도 황당한 설정이 넘쳐납니다. 이들 모두 미나가타와 함께 이야기의 현실감을 떨어뜨리기만 합니다.

이야기도 허술합니다. 핵심인 '사라진 친구' 기타자와 실종 사건의 원인이 된, 유명 대학 서클 멤버의 음주 강간 사건은 와세다 대학 슈퍼 프리 사건을 그대로 따왔으며,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도 치밀한 추리나 강한 긴장감이 만들어지지는 않는 탓입니다. 기타자와를 되찾는 작전도 별볼일없습니다. 결국은 미나가타의 개인기와 인맥에 의존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리츠의 도움으로 야쿠자를 제압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재미가 있을 수 없지요. 별로 통쾌하지도 않고요.

그리고 가장 불쾌했던 건 납치된 기타자와를 불쌍한 피해자처럼 그려내는 묘사입니다. 고바야시에게 성폭행당했던 과거가 현재의 그가 저지른 여대생 강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작품은 성폭행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탓에 그랬다면서 기타자와를 불쌍하게 보이도록 묘사합니다. 본인이 피해자였다고 해서 가해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런 놈은 "사채꾼 우시지마"의 이벤트 서클 에피소드에서처럼 철저하게 부숴버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완성도도 별로이지만,  "콜드 게임"처럼 기본적인 윤리 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더 이상의 점수는 못 주겠네요. 가네시로 가즈키의 광팬이라면, 그리고 전작을 읽었다면 참고 삼아 읽어볼 만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2026/04/11

더 하드웨이 (2019) - 키오니 왁스먼 : 별점 1점

넷플릭스를 통해 찾아 감상한 B급 액션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딱 한 가지였습니다. 런닝머신을 뛰면서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아드레날린을 분출하게 만드는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고 골랐습니다. 그런데 제 예상보다도 훨씬 엉망인 한심한 망작이더군요. 아드레날린이 아니라 분노가 분출될 지경이었습니다.

B급 영화에서 각본까지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테니, 각본에 대해서는 굳이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액션은 처참함을 넘어서 황당할 지경입니다. 가장 볼 만한 액션이 초반에 존이 자신의 가게에 쳐들어온 양아치들을 참교육하는 장면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악당 토로의 조직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절정부 역시 문제입니다. 맨몸 액션을 기대했는데 총질만 해 댈 뿐이고, 중화기로 무장한 조직원들이 권총 하나만 든 존에게 쓸려 나가는 모습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토로의 정체가 옛 전우 브리그스였다는 반전도 대단치 않습니다. 브리그스 역을 맡은 배우가 옛 UFC 챔피언 랜디 커투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우를 캐스팅해 비중 있게 출연시키면서 제대로 된 액션 신을 하나도 보여주지 않을 리가 없으니,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토로의 정체는 너무나 뻔했습니다.
존과 브리그스의 마지막 일기토에서는 맨몸 격투가 나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에 등장한 맨몸 격투 중에서는 가장 별로였습니다. 랜디 커투어가 나이가 든 탓인지 움직임이 상당히 느리고, 그렇다고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런 영화가 수백만 달러를 들여 제작되었다는게 신기하네요. 최근 본 그 어떤 컨텐츠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망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6/03/29

캐시 아웃 (2024) - 렌들 에멧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페이드 에이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전설적 도둑 메이슨은 FBI 잠입 수사관 아멜리아에게 푹 빠졌다가 체포될 뻔한 다음 은퇴를 택했다. 그러나 자신을 뺀 일당이 동생 숀의 주도로 벌이던 암호화폐 강탈 작전에 문제가 있다는걸 알고 현장으로 향했지만, 곧바로 경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메이슨은 협상 전문가로 나타난 아멜리아와 밀땅을 벌이면서도, 안전하게 탈출하기 위한 플랜B를 고민하여 결국 회심의 카드를 손에 쥐게 되는데...

넷플릭스에 떴길래 별 생각없이 감상한 영화입니다. 오랜만에 본 존 트라볼타는 반갑더군요. 잔혹하거나 무겁게 끌고 가지 않아서 가볍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존 트라볼타와 크리스틴 데이비스의 중년 로맨스도 귀여워요.

그러나 그 외에는 뭐 하나 건질게 없습니다. 은행을 노리는 케이퍼 무비 장르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범죄 계획이 케이퍼 무비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형편없는 탓이 큽니다. 숀의 계획이라고는 은행장을 데리고 개인 금고를 여는 것 뿐이었으니까요.

그 이후의 전개 역시 치밀한 준비나 단계별 장애물 돌파가 아니라, 우연과 억지로 상황을 이어 붙이는 식으로 흘러갑니다. 메이슨 일당은 개인 금고 안에서 특정 숫자가 찍힌 사진을 확보하고, 그것이 살리자르라는 거물 독재자의 비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개인 금고 속 사진에 표시된 숫자로 거대한 국제적 비밀에 접근한다는 설정부터 설득력이 크게 떨어지고, 애초에 그런 민감한 자료가 왜 그런 방식으로 보관되어 있었는지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마침 은행장이 개인 서버가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는 설정도 뜬금없고, 그가 메이슨 일당을 그 장소까지 안내하는 상황도 이해가 안되고요. 그냥 모른다고 우겼으면 됐을텐데 말이지요.

결말은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음의 결정체입니다. 메이슨 일당은 결국 경찰 특공대에 포위되고, 정상적인 범죄 영화라면 이 지점에서 가장 치밀한 탈출 설계나 마지막 반전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플라워스라는 살리자르의 부하를 불러낸 뒤, 그와 협상하는 방식으로 이 상황을 정리해 버립니다. 그것도 메이슨의 요구가 꽤 무리한데도 불구하고 플라워스가 이를 선뜻 들어주는 식이라서, 관객 입장에서는 긴장감보다 허탈함이 먼저 듭니다. 수많은 경찰과 특공대가 현장에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입을 막았는지, 어떤 식으로 사태가 수습되었는지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요. 

또한 경찰에게 포위된 상황임에도 느릿느릿한 전개는 분통터질 정도이며, 액션도 뭐 하나 눈에 띄는게 없습니다. 공간도 작은 은행 내부가 거의 전부라 돈을 들인 티도 나지 않아요. 한마디로 별점 1점도 아까운 완벽한 망작입니다. 케이퍼 무비의 외형은 빌려 왔지만, 장르를 이루는 핵심인 계획의 정교함, 실행 과정의 묘미, 반전의 설득력을 거의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시하고, 진행 과정도 엉망진창이며, 중요한 설정과 결말까지 납득하기 어려워 장르 영화로서의 재미는 전무합니다.

2026/01/25

명탐정 코난 : 17년 전의 진상 (2025) - 야마모토 야스이치로, 카마나카 노부하루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티빙에 업로드되었길래, 작년 말에 기말고사가 끝난 딸과 오랜만에 감상한 코난 극장판입니다. 리뷰가 많이 늦었네요. 정확히 말하면 해당 내용의 TV 시리즈 총집편입니다.
이야기는 두 가지입니다. 현재 벌어진 체스 대회 살인 사건과 17년 전에 있었던 아만다 휴즈와 하네다 코지 살인 사건이 이어지며 전개됩니다. 현재 체스 대회에 참가했던 쿠로다 관리관이 17년 전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설정이지요.

하지만 두 이야기 모두 추리적으로 완성도가 치명적으로 낮습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에요. 우선 체스 대회 살인 사건은 ‘다이잉 메시지’가 핵심 단서로 등장하는데, 피해자가 죽기 전에 굳이 이런 암호 같은 메시지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범인의 이름을 쓰면 되니까요. 트릭을 위한 억지 설정입니다.
범인이 잔을 깨는 척 자작극을 벌인 트릭 역시 억지스럽습니다. ‘네덜란드의 눈물’이라는 일종의 유리 덩어리를 활용해 잔을 깨뜨렸다는 트릭인데, 번거롭고 지나치게 복잡합니다. 한 손으로 컵을 잡고 다른 손으로 네덜란드의 눈물 끝부분을 부러뜨릴 만년필을 사용하는 모습도 어색할 테고요. 이럴 바엔 잔 깨지는 소리를 녹음해 틀어놓은 뒤 컵을 떨어뜨려 깨는 편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17년 전 사건도 마찬가지에요. 원작 이야기를 읽지 않아서 왜 검은 조직과 럼이 아만다를 살해하려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독약이 완벽하다 해도 이렇게 많은 조직원이 호텔에 침투해 보디가드들을 제압했다면 굳이 독을 사용할 이유가 있나 싶습니다. 괜히 다이잉 메시지를 남길 시간만 준 셈이니까요. 언제나처럼 등장하는 독약 설정도 유치했고, 다이잉 메시지의 구체적인 내용도 유치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리고 17년 전 당시 현장에서 도주했던 생존자, 아만다의 보디가드 아사카가 현재 소년 탐정단의 부(副)담임인 루미 선생님이라는 설정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초반부터 ‘수상하다’는 분위기를 깔고 가서 대단한 반전도 없었고, 코바야시 선생님을 죽을 지경으로 만들면서까지 검은 조직을 노렸지만 결국 헛수고로 끝난 결말도 황당했습니다. 이게 대체 뭔가 싶더군요. 키안티 등의 저격을 코바야시 선생 일행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 점도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긴 시리즈를 끌고 가는 중간 징검다리 역할에 불과한,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졸작입니다. 등장인물의 매력도 별 볼 일 없고, 추리와 트릭은 엉망이며, 액션은 부족하고 작화 역시 수준 이하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이전에 보았던 총집편 "흑철의 미스터리 트레인"은 이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았는데 아쉽네요. 앞으로 총집편은 웬만하면 보지 말아야겠습니다. 

2026/01/09

러브데이 브룩, 탐정 - 캐서린 루이자 퍼키스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 명인 러브데이 브룩 단편집입니다. 이전에 단편은 다른 앤솔로지(이거, 이거)를 통해 읽어본 적이 있지요. 그녀가 등장하는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곱 편이 그녀 시리즈의 전부인데, 저자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만료된 덕분에 국내 소개된 것으로 보입니다.

주인공인 러브데이 브룩은 2025년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아도 독특한 매력을 뽐냅니다. 뛰어난 관찰력과 ‘여성’이라는 점을 활용한 활약이 지금보다 여성 인권이 확연히 낮았을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추리라기보다는 관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도 당시 시대에 잘 어울립니다. 실종된 아가씨 방을 둘러본 뒤, 이건 하녀가 정리한 솜씨라는 걸 눈치채는 장면처럼요.

그러나 좋은 작품들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전 본격물이라고 보기에는 추리적으로 보잘것없는 탓이 큽니다. 러브데이 브룩이 관찰을 통해 수집한 정보와 단서는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아요. 그래서 독자가 추리할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자기만 아는 정보로 자기의 추리 결과를 진상이라고 마지막에 털어놓는 게 전부일 뿐입니다.

그나마 추리의 핵심인 러브데이 브룩의 관찰도 비약이 심합니다. “공주의 복수”가 대표적입니다. 러브데이 브룩이 집사가 수상하다는 걸 눈치챈 건 ‘눈빛’ 때문이었고, 결정적 단서인 모자 가게의 이름을 알아낸 것도 러브데이 브룩이 탐정이라는 걸 밝히자 그윈 부인이 모자를 쳐다보았기 때문입니다. 눈빛으로 수상한 사람을 알아챌 수 있다면, 추리가 왜 필요할까요?

트릭도 실망스럽습니다. 수록작 중 무려 네 편, “현관 앞 검은 가방”, “레드힐 수녀회”, “그려진 단검 사건”, “실종”에서 변장과 착각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실종”에서는 죽은 어머니의 사체를 본 아버지가 딸로 착각하는 상황이 펼쳐지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둘이 닮았다는 설정이라도 쳐도, 이건 너무 말도 안되지요.

범행들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레드힐 수녀회”에서 존 머레이는 자기 집에 세 들어 사는 수녀들이 강도단일지 모른다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이 그녀들에게 집중하는 사이 스스로 강도짓을 벌일 생각으로요. 하지만 그냥 강도짓을 벌였으면 사전에 주목도 받지 않았을 겁니다. 이게 무슨 헛짓거리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 외에도 빅토리아 시대의 짜증 나고 이상한 사고방식도 가득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읽기에는 시대착오적인 망작입니다. 역시 잊혀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네요.

2025/08/24

스펜서 컨피덴셜 (2020) - 피터 버그 : 별점 1점

경찰 스펜서는 부패한 상관 보일런을 폭행했다가 5년 동안 수감되고 말았다. 스펜서의 출소 직후 보일런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선량한 경찰 테렌스가 누명을 썼다는걸 알게 된 스펜서는 룸메이트 호크와 함께 잔상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부패한 경찰들이 범죄 조직과 함께 대량의 마약을 유통한 자금으로 카지노 '원더랜드'를 개장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걸 알아내는데...

로버트 B. 파커가 창조한 보스턴 사립탐정 ‘스펜서’ 시리즈 중 하나인 에이스 앳킨스(로버트 B.파커 사후 원작을 이어서 쓰고 있는 작가)의 "원더랜드"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장편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액션물로 범죄 스릴러, 액션, 버디 코미디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나, 어느 쪽에서도 두드러지 못합니다.

특히 기대했던 범죄 스릴러, 수사물로는 최악에 가깝습니다. 일단,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수사는 전개상 거의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결정적인 단서들은 스펜서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우연히 제공해 주니까요. 예를 들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도청 파일을 피해자 테렌스의 아내가 스펜서에게 직접 전해주는 식으로요.
스펜서의 옛 파트너 드리스콜이 악당이라는 사실도 너무 쉽게 밝혀집니다. 초반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이쑤시개 조각이라는 단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추측이 가능한 수준이라 긴장감 있는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부패한 옛 파트너, 마약 조직, 조직 내부의 은폐 구조 등 설정들도 지나치게 전형적이고요.

전개 또한 뻔하고 치밀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중간 보스급인 벤트우드에게 쳐들어가서 물고문을 통해 마약 운송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게 대표적입니다. 이럴 거라면 은밀한 수사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지요. 게다가 정보를 털어놓았다면 악당들도 운송 시간을 바꾸는건 당연한데, 예정대로 운송하다가 마약 트럭을 스펜서에게 탈취당하는건 대체 이게 뭔가 싶더군요.

스펜서 캐릭터도 원작 붕괴 수준입니다. 원작에서는 문학에 조예가 깊어서 시니컬한 말투, 심리 묘사 측면에서 복잡한 면을 보여주는데, 영화에서는 그냥 말빨(?)좋은 전형적인 마초 헐리우드 경찰, 형사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액션에서라도 화끈했어야 했는데, 작중 대부분 장면에서는 적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장면만 반복될 뿐입니다. 이럴거라면 권투에 일가견이 있다는 설정은 왜 덧붙였는지 모르겠어요. 마크 월버그도 그리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 아니고요.

액션은 다른 부분에서도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격투 장면들 모두 속도감이나 위력이 느껴지지 않는 탓에 맨손 액션의 쾌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호크가 덩치를 활용해 마지막에 잠깐 활약하긴 하지만, 이 역시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워 액션적 재미는 떨어집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야기의 절정부입니다. 부패 경찰과 범죄 조직이 결탁한 악의 무리와 대단한 결전을 벌여야 할텐데, 스펜서가 트럭을 몰고 악당 본거지에 돌진한 뒤 호크가 몇 명을 때려눕히는 걸로 결전은 대체로 마무리됩니다. 스펜서와 드리스콜의 1:1 맞짱은 너무 작위적이라 어이가 없더군요. 부패 경찰들 때문에 보도도 못하고 사건이 은폐되었었는데, 스펜서와 호크의 활약 이후 사건이 대대적으로 폭로된다는 결말도 이해가 안되고요.

그래도 너무 바보같아서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다는건 오히려 장점이기는 하네요. 몇몇 유머 코드는 피식 웃게 해 주기는 하고요. 거인 호크, 조력자 헨리 캐릭터는 캐스팅이 좋습니다. 완전한 권선징악 마무리도 후련했고요.

다만 이 정도 장점은 이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보완해주기엔 턱도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범죄물로서도, 수사극으로서도, 액션 영화로서도 건질게 없는 졸작입니다. 원작인 탐정 스펜서에 대한 모독이라 할 수 있는 쓰레기로 에필로그에서 후속작, 시리즈의 여운을 남기는데 어림도 없지요. 소리없이 망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2025/02/23

세인트 세이야: 더 비기닝 (Knights of the Zodiac) (2023) - 토마스 바진스키 : 별점 1점

"세인트 세이야"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 원작의 오랜 팬으로, 옛 추억을 되살리고자 넷플릭스로 감상했습니다. 

장점이라면 주인공 세이야 역을 맡은 아라타 맛켄유의 비쥬얼, 그리고 일부 액션 장면입니다. '성투사'의 싸움답게 맨몸 액션이 펼쳐지는데, 세이야가 각성한 뒤 카시오스를 포함한 구라드의 부하들을 인형처럼 내동댕이치는 장면이라던가, 성투사 피닉스의 성의 액션, 마이록을 연기한 마크 다카스코스가 선보인 권총과 곤봉을 활용한 액션 등이 그러합니다. 원작 팬이라면 비교적 원작에 가깝게, 하지만 촌스럽지 않게 구현된 마린의 등장은 만족할 만 하고요.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장점을 제외하면 영화의 완성도는 전반적으로 처참합니다. 우선, 무슨 이야기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세이야는 마린에게 훈련을 받던 중, 알먼이 누나 패트리샤를 납치한 일당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훈련을 중단하고 떠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갑자기 아테나를 데리러 온 구라드를 막기 위해 카시오스 일당과 싸웁니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져서 전개가 엉성하고 난잡합니다. 아테나가 각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구라드는 아테나를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고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처럼 보였던 도스카라스가 구라드의 부하에게 한 방에 쓰러져 포로가 되는 장면도 황당했어요. 배우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입니다.

각본이 별로라면 적어도 볼거리라도 화려해야 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CG 티가 강하게 나는 화면도 조악하고, 앞서 언급한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액션 연출도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맛켄유의 액션 연기가 어색해서 많이 거슬렸습니다. 그나마 볼만했던 액션 장면들은 성의를 입은 후에야 등장하는데, 이 점을 고려하면 주요 액션 장면에서는 대역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어야 할 성투사들의 싸움이 맛보기 수준이며 심지어 페가수스 유성권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원작 팬들이 가장 기대했을 대표적인 기술이 빠진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덕분에 페가수스와 피닉스 성투사의 클라이맥스 대결 장면은 80년대풍 특촬 영화보다 못한 빔 공격 연출이 반복되면서, 원작의 느낌을 살리지 못하고 어설프게 마무리되고 맙니다.

결론적으로, 영화의 완성도는 매우 낮습니다. 스케일을 줄이고 원작 초반부의 줄거리를 충실하게 따르면서, 성투사 변신 장면과 성투사들 간의 격투를 좀 더 멋지게 연출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별점은 1점인데, 솔직히 1점을 주기도 아깝습니다. 여러분들은 시간 낭비 하지 마시고, 이 작품은 쳐다도 보시지 말기 바랍니다.

2022/01/08

악마의 문장 - 에도가와 란포 / 주자덕 : 별점 1점

악마의 문장 - 2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주자덕 옮김/아프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제당 주식회사 대표 가와테 쇼타로 씨는 일족 모두를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고, 명탐정 법의학자 무나가타 류이치로 박사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두 딸이 차례로 살해당한 뒤 가와테 쇼타로 씨 마저도 은신처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곳곳에 '3중 소용돌이 지문'의 흔적을 남긴 범인에 의해서였다. 특히 첫째 딸 다에코는 저택 주변에는 형사가, 잠긴 방 창문과 출입문은 박사와 조수가 직접 보초를 섰는데도 불구하고, 깜쪽같이 방에서 사라진 후 유령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유령의 집에서 박사에게 쫓기던 범인은 박사의 조수 코이케도 살해했고, 출동한 경찰에게 완전 포위되었지만 끝내 거울의 방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스미다강에서 보트 놀이하던 남녀가 우연히 잘린 손가락을 발견한걸 계기로, 박사는 기타조노 류코가 사건에 관계가 있다는걸 추리해 냈다. 도주한 그녀의 은신처를 밝혀낸 박사는 추격 끝에 그녀를 사로잡지만 결국 그녀는 물론, 진범으로 생각되는 안대를 한 남자 역시 자살해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수사과장, 나타무라 경감, 형사부장과 무나카타 박사, 아케치 코고로가 함께 한 사건 마무리 축하 연회에서, 아케치는 자신이 추리한 진짜 사건의 진상을 펼쳐 보이는데...

대담하면서도 스케일 크고, 기묘하면서도 변태스럽기까지한 범행이 연이어 등장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의 장편입니다. '3중 소용돌이 지문'은 이 작품을 읽기 전에도 워낙에 유명해서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불가능 범죄가 많이 등장하는 덕분에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 부분이 제법 됩니다. 다에코 소실 사건을 빈 침대와 연결하여 풀어내는 과정이라던가, 거울의 방 소실 트릭을 통해, 무나카타 박사가 진범이라는걸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죠. 

무나카타 박사가 기타조노 류코를 포박하고 경찰에 연락한 뒤 돌아와보니 그녀가 끈을 끊고 자결했던 상황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던 아케치 코고로의 추리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끈을 먼저 끊었다면 도망치는게 타당했고, 누군가 살해했다면 끈을 끊을 이유는 없었다는건 당연하니까요. 박사가 손가락을 싸고 있는 신문지와 손수건으로 류코의 거처를 알아냈다던가, 류코가 도주 전 대량의 식재료를 배달받았다는걸 근거로 자택 다락에 은신하고 있다는걸 추리해내는 등의 소소한 추리들도 괜찮습니다. 

3중 소용돌이 지문을 일종의 아이콘처럼 활용하고 있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문이 찍힐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문이 발견되도록 만들어서 범인이 전능하다는걸 드러내는 연출도 좋았고, 무고했던 류코가 3중 소용돌이 지문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녀가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는 범인의 계획도 그럴듯했거든요.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의 활약도 팬으로서는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연극적인 상황을 지나치게 많이 연출하고 있는건 문제입니다. 이야기에 별 상관도 없고, 설득력을 떨어트리는 요소들일 뿐인 탓입니다. 가와테의 두 딸 시체를 '인체 전시회'와 '유령의 집'에 각각 전시하듯 유기한 상황부터가 그러합니다. 범인이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은 하나도 없는 불필요하며 불합리한 행동에 불과하니까요. 오히려 유령의 집에 시체를 유기하려다가 경찰에 포위되었고, 그래서 정체가 드러날 빌미를 아케치 코고로에게 제공했을 뿐이니 이는 완전한 패착이었습니다. 완전 포위당한 거울의 방에 갖혀있던 범인이 사라지고, 박사 튀어나왔다는건 박사가 범인이라는거니까요. 이 소실 트릭이 보다 현실적인 상황에서 등장했더라면 그나마 괜찮았을텐데, 범인의 억지 연출로 자기 무덤을 판 것에 지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애초에 복수 대상이었던 가와테 쇼타로가 사건 수사를 범인인 박사에게 의뢰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완전범죄로 죽이면 되는데, 왜 자기 정체가 드러날 위험을 무릅쓰고 충직한 조수마저 죽게 만들면서까지 억지 상황을 연출하면서 복수를 질질 끌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합니다. 이런 연출로 박사가 얻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표면적으로 아케치 코고로에 버금간다는 명탐정이었던 박사의 명성에 흠집만 났을 뿐이에요.

또 이 상황에서 묘사되는 유령의 집 가짜 시체와 여러 장치들은 당시 기술력으로는 재현이 불가했을 장치들이라 완전 억지에 불과했습니다. 거울의 방 묘사는 작가의 작품에서 반복되던 그대로라 지겨웠고요. 이야기와는 아예 상관없는 쓸데없는 내용이 이렇게까지 길게 묘사될 이유도 없었어요. 쇼타로의 은신처에서 그를 죽이기 전 복수의 이유인 쇼타로의 아버지 가와테 쇼베가 저질렀던 악행을 연극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묘사도 억지스럽고 불필요한건 마찬가지고요. 이런 묘사들은 아마 당시 잡지 연재를 하면서, 매 편마다 독자들의 흥미와 재미를 불러 일으키기위해 자극적인 묘사로 채우기 위한 의도였다고 생각은 됩니다. 연재 시 분량을 늘여 원고료를 더 받기 위한 얄팍한 술책도 한 몫했을테고요. 문제는 이걸 하나의 책으로 묶어 보니, 과하고 불필요한 묘사만 가득차 버리고 말았다는거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낡기만 했을 뿐, 특별한 가치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 정도면 그냥 잊혀져도 무방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2021/08/15

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 유성운 : 별점 1점

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 4점
유성운 지음/이다미디어

총 6장 구성으로, 이런저런 한국의 역사적 상황이 현재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걸 알려주는 역사서입니다. 신라 4대왕 석탈해의 다파나국은 캄차카반도인가?, 고대 남부 한반도 왜의 위치는 한반도 남부를 포함할 수 있다, 처용은 페르시아 왕자일 수 있다, 金을 왜 금이 아니라 김이라고 읽게 되었나?, 왕건의 호남 차별론은 사실인가? 등 목차만 보아도 흥미로우며, 재미있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다양한 사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주는 구성도 좋았고요. 도판들도 빼어나며 특히 제목처럼 지도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소개하자면, 金을 김이라고 읽게 된 이유입니다. 원래는 조선 왕가와 관련된 음양오행설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는데, 최근 설은 수, 당 시대만 해도 '금'에 가깝던 발음이 5대 10국을 거치며 '김'에 가까운 발음으로 변했기 때문이라는군요.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고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몽골 상류층 이름에 金이 많아서 발음 변화가 퍼졌다는 설인데 꽤 그럴싸했어요. 

왜 중국의 왕조들이 한반도를 완전히 정복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도 나름 괜찮았습니다. 이른바 '실용적인 외교'를 잘 했기 때문이라며, 대표적인 예로 서희가 거란과 강동 6주를 얻어낸 담판을 들고 있습니다. 고려와 거란의 국교를 위해서는 여진이 머무는 압록강 일대 확보가 필요하니, 그걸 달라는 요청이었다면서요.

하지만 당시 고려군은 이미 두 번의 승리를 거두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냥 말 만으로, 외교만으로 평화와 땅을 얻어낸건 아니지요. 이게 적합한 예인지는 아리송합니다. 이 보다는 항복하러 몽골로 향하던 고려 태자 왕전이, 몽케 칸이 급작스럽게 죽자 후계자 후보 중 쿠빌라이에게 미래를 걸었던 행동이 더 좋은 예라 생각됩니다. 아무리 자료와 소문을 수집했다 하더라도 이건 순전히 '감' 이었다고 생각은 됩니다만... 

고려 말, 토지 개혁을 외치며 건국했던 건국 공신들이 결국은 자기들 잇속을 챙겼다는 이야기는 씁쓸했습니다. 공신 조준이 받은 표지는 현재 기준으로 약 124만 7,300평이나 된다니까요. 고려에서도 최고의 권문세족 가문이었던 조준이 혁명에 동참했던건 다 이런 이유가 있던 거지요. 왠지 청렴한 학자일 것 같은 퇴계 이황도 무려 36만평이 넘는 땅부자였다고 하니, 돈이 없으면 성공 못하는 세상인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것 같네요.

이외에도 17세기, 전 세계를 강타했던 소빙기 한파로 조선이 입었던 피해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부분이라던가, 조선에서도 서울 주택 가격은 100년 동안 10배 가량 뛰었다는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큽니다. 가장 큰 단점은 지나치게 본인 생각이 많이 담겨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게 임진왜란 당시 끌려간 도공 이야기를 하면서, 이들이 일본에 남은건 비극이 아닐 수도 있다, 이들이 조선에 남았더라면 이런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시각이에요. 당시 끌려간 포로 일부는 조선 귀환을 거부했다는 사료를 토대로, 조선이 문제였다고 마무리하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기 때문에 조선이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는 논리하고 똑같죠. 애초에 왜 끌려갔는지를 망각한 망발입니다.

이러한 친일적 시각은 왜의 위치에 대해 분석하며, 그들이 실제로 가야와 신라 이남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보는 내용 등에도 진하게 묻어 나옵니다. 아울러 역사적 상황이 현재와 별로 다르지 않다며 추가한 저자의 개인 의견들도 마찬가지에요. 한국사 도감에 이런 내용이 들어갈 이유도 없고, 그나마도 한 쪽에 치우쳐진 개인적인 시각이라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신진 사대부를 강남 좌파에 비유하는 정도에서 그쳤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이런 내용이 포함된줄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알았다면 절대로 읽어보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제대로 된 역사서로 볼 수 없습니다. 개인의 잡문에 가깝습니다.

2020/10/10

루팡의 딸 - 요코제키 다이 / 최재호 : 별점 1점

루팡의 딸 - 2점 요코제키 다이 지음, 최재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탐정'으로 불리우는 수사 1과 형사인 카즈마의 가족은 모두 경찰이며, 심지어 키우는 개 까지 은퇴한 경찰견인 경찰 집안. 그와 교제하는 하나코는 도서관 사서로 위장했지만 가족 모두가 도둑인 도둑 가문의 딸이었다.

카즈마가 결혼을 전제로 하나코를 가족들에게 소개시킨 얼마 뒤, 카즈마와 수사 1과는 한 살인 사건을 맡게 되었다. 피해자는 처참하게 구타당해 죽은 고령의 노인으로 얼굴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 여러가지 단서로 경찰은 피해자의 신원이 '다테시마 마사오'라는걸 알아냈다. 이 사실을 뉴스로 접한 하나코 가족은 피해자가 신분을 감춘 할아버지 미쿠모 이와오라는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경찰은 피해자가 '다테시마 마사오'로 위장한 이와오라는걸 알아내지 못해 사건은 미궁에 빠졌지만, 카즈마는 시체에 남겨져 있었다는 손수건을 단서로 진상을 알아냈다. 이 사건은 50년 전 성폭행 미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 성폭행 미수범은 카즈마의 동료 마키 형사의 할아버지 에이스케였다. 이와오에게 쫓기던 에이스케는 손자 마키를 시켜 그를 죽이려 했는데, 마키의 착오로 진짜 다테시마 마사오가 살해되었다. 그래서 이와오와 와이치는 마사오의 죽음을 이용하여 범인을 잡을 계획을 세웠다...

일본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만화적인 설정이 극대화된 작품입니다. 그냥 봐도 "세인트테일"이 바로 떠오르지요. 그래도 카즈마가 하나코를 소개한 날, 그녀가 며느리로 적합한지 아닌지에 대해 가족회의 하는 등 나름 설정을 살린 요소들은 재미있었습니다. 형사인 아버지는 감으로 그녀가 착해서 마음에 든다고 하지만, 과학 수사대 요원인 어머니는 '착하다는 증거'를 요구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설정에 따른 재미는 소소할 뿐, 전개와 내용 모두 지나치게 만화적이고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추리적으로도 건질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와오를 죽인건 누구인가?' 라는 수수께끼를 풀어가기는 하는데, 동기가 말도 안되고 제공되는 단서도 공정하지 못하며, 범인도 급작스럽게 드러나는 탓입니다. 동기는 이와오가 50년 전 성폭행 미수범이 누구인지 알게 되자, 성폭행 미수범이 자신의 손자를 시켜 이와오를 살해한 거랍니다. 증거는 이와오가 '범인의 눈을 보면 안다'라는 말 밖에 없는데 무려 50년 전 성폭행 미수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것도 손자를 시켜서? 심지어 손자 마키도 능력있는 형사로 전통있는 경찰 집안 출신이라 나름대로 출세가 보장되어 있는데 할아버지가 시킨다고 살인을 저지른다? 뭐 하나라도 말이 되는게 있어야지, 이래서야 어디서부터 딴지를 걸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키가 범인임을 알아채는 과정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마사오를 살해한 마키 형사를 이와오가 쫓다가, 그의 손수건을 훔쳐 마사오의 시체에 남겨 놓은게 가장 큰 증거가 되는데, 손수건을 훔쳐낼 정도로 쫓았다면 지갑을 훔쳐내는 등으로 신원을 밝혀낼 수도 있던거 아닐까요? 왜 손수건을 훔쳐내는 정도로 만족했을까요?
그리고 성폭행 미수범이 마키 에이스케라는걸 안 이상, 이렇게 복잡하게 범인을 밝혀낼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마키 에이스케를 협박(?)하면 될 일이었어요. 

또 손수건에 'M'이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게 단서라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카즈마는 신원을 감춘 미쿠모 이와오가 자신의 이니셜을 새길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테시마 마사오의 이름도 M으로 시작되니 별로 이상한건 아닙니다. 아울러 손수건에 지문이 남아있다면 모를까 손수건이 마키 형사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될 수도 없고요.

범행을 밝혀내는 카즈마 결혼식에서의 몰래 카메라 생중계 역시 지극히 만화적입니다. 촬영이 가능했다면, 구태여 생중계를 할 이유는 없지요. 이건 하나코와 헤어진 뒤, 충동적으로 선택한 에미리와의 결혼을 어떻게든 파토내려는 카즈마의 수작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카즈마는 솔직히 죽어 마땅한 나쁜 놈으로 이래서야 주인공으로는 실격이지요. 속편에서 에미리에게 처절하게 보복당해도 할 말이 없어요. 

그 외에도 카즈마가 하나코가 도둑 집안의 딸이라는걸 알게 되는 과정, 카즈마가 단 며칠 사이에 수십년 전 부터 활약해 왔던 천재 강도단 L을 사로잡을 증거를 모은다는 전개 등 모두가 작위적이며 어설프고, 만화적입니다.
 또 아무리 나쁜 사람들 물건만 훔치고 라며 포장하고 있지만, 도둑은 분명한 악당인데도 우리 편인양 포장이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중반에 중국 강도단이 보석상을 턴 뒤, 그 강도단을 미쿠모 가족이 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중간 과정이 하나 끼어 있을 뿐 보석상을 턴건 마찬가지잖아요? 할아버지 이와오가 죽은 걸로 알고 있는 가족이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와 희희낙락하는 묘사도 이해가 잘 안되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입니다. 세세한 묘사는 전부 들어내고 캐릭터에 집중한 빠른 호흡과 전개 덕분에 읽기는 편했지만, 그 외에 건질건 하나도 없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읽어 볼 가치는 전무합니다. 작가가 쓴 다른 작품들도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군요.

2020/07/05

콜드게임 - 오기와라 히로시 / 신유희 : 별점 1점

콜드게임 - 2점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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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여름, 복수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중2 때 동급생들이 한 명 한 명 습격당하기 시작하고 결국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다. 범행 예고에서부터 토로요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4년 전, 학급 내 집단 따돌림의 표적이었던 토로요시. 하지만, 전학 간 토로요시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츠야를 비롯해 뜻을 같이 하는 아이들은 ‘기타중학 방위대’를 결성, 토로요시를 찾아 나서는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 경악할 만한 반전,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상처로 남을 슬픈 이야기. 고3의 끝나지 않는 여름방학을 그린 오기와라 히로시 스타일의 청춘미스터리.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오기와라 히로시는 개인적으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다른 그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작가입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기묘할 정도로 유쾌한 분위기와 함께 달릴 때 달려주는 화끈함이 아주 일품이지요. 이 작품은 존재를 전혀 몰랐었는데,, 우연찮게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순전히 작가 이름만 보고 대여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장점만큼은 기대에 값합니다. 입시를 앞둔 중학교 2학년 동창들이 모여, 시덥잖은 농담과 옛 추억담 등을 털어놓고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들은 상황과는 걸맞지 않게 유쾌하며, 토로요시를 쫓는 과정과 마지막 습격과 위기는 손에 땀을 쥘 정도로 화끈하고 박진감 넘치거든요. 토로요시의 타겟이 료타 한 명으로 좁혀지고, 료타와 미츠야가 위기에 처하는 클라이막스로 이어지는 전개도 직구 승부로 일관하고 있어서 화끈함을 더해줍니다. 누군가 습격당하고, 그걸 막기 위해 노력하고, 현장을 목격하고 추격을 벌이지만 실패하고.... 의 반복인데 회를 거듭할 수록 폭력의 수위도 업그레이드 되고요. 오로지 직구로만 승부하는 오기와라 히로시 작품답더군요. 

마지막 결정구로 토로요시는 이미 죽었고, 그의 부모가 진짜 복수귀였다! 는 반전도 묵직하게 스트라이크로 꽂힙니다.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출만한, 그런 이야기였어요. 이런 장점들 덕분에 읽는 맛 하나만큼은 기대에 값합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삽시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흡입력은 빼어납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소재와 설정이 굉장히 불쾌한 탓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토로요시에게 가해진 왕따 행위는 처참하기 이를데 없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전개에서 그에 대한 반성, 속죄는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왕따 가해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고, 친구의 복수를 하기 위해 '기타중학 방위대' 라는 이름의 친목 자경단(?)을 조직해서 자기들끼리 자경단 놀이를 하는게 내용의 대부분으로 이들에게 닥치는 토로요시의 위협은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하는 난관, 토로요시는 최종 보스인거죠. 이래서야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왕따 피해자가 과거의 가해자였던 인간 쓰레기들을 하나씩 쓰러트리면서 최종 보스인 료타를 해치우는 토로요시 시점의 이야기였어야 했는데 말이죠. 최소한 절대악 료타 시점에서 닥쳐오는 복수를 느끼며 두려워하다가 왕따 가해자들이 모두 파멸하는 이야기였어야 했습니다. 

토로요시 부모가 그 집요한 복수의 행각으로 욕을 먹고, 죽다 살아난 료타가 불구가 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일어설 것이다!를 다짐하는 마지막 장면은 불쾌함의 정점을 찍어 줍니다. 피해자는 자살하고, 가족은 몰락했지만 가해자 우두머리는 뉘우침도없이 불사조처럼 살아남아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건데 이건 피해자 입장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악몽일거에요.

아울러 이야기가 미츠야 시점으로 전개되는 것도 이상합니다. 왕따 가해자는 아니라는 식으로 대충 빠져나가고 있는데,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라 치더라도 피해자 토로요시 시점에서는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악질 가해자와 별다를게 없잖아요? 진솔한 반성의 모습도 드러나지 않고요. 이런 놈이 위험을 딛고 성장하여 어른이 된다는 성장기처럼 이야기를 포장하고 있으니 참 염치도 없다 싶었습니다. 야구 소년다운 관련 묘사들은 재기발랄하지만 그 뿐이고요.

마지막으로 토로요시의 부모가 아들을 대신해 복수극을 벌였다는 반전도 설득력 측면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무기, 그 중에서 스턴건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평범한 중년 아저씨가 고3 싸움꾼들을 차례대로 손쉽게 제압한다는건 잘 와 닿지 않았거든요. 높은 굽의 구두로 변장한 것 역시 활동성이 떨어지는건 당연할터라 이유를 알기 어려워서 좀 이상했고요. 차라리 원래 미츠야들이 생각했던 것 처럼, "홀리랜드"처럼 토로요시가 급작스럽게 거구가 되었고, 꾸준한 노력으로 힘과 여러가지 기술을 손에 넣었다는 설정이 더 현실적이었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하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입니다. 읽는 재미만큼은 높이 평가하지만, 왕따 가해자 옹호를 위한 작품이 아닌가 싶을 생각이 들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제 기준으로는 콜드 게임이 아니라 몰수 게임입니다. 왕따라는 소재가 이렇게 소비되는 작품은 두번 다시는 읽고 싶지 않습니다.

2020/04/19

중세 유럽의 레시피 - 코스트마리 사무국 / 김효진 : 별점 1점

중세 유럽의 레시피 - 2점
코스트마리 사무국 지음, 김효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주제에 대해 깊숙히 파고들어, 일반 상식 이상의 정보를 전해준다는 취지의 AK Trivia books 시리즈의 한 권입니다. 제목 그대로 중세 유럽 요리의 레시피 43개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레시피 외에 중세 요리 및 저자의 중세 축제 체험기를 다룬 컬럼 몇 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고요.

특징이라면 중세 유럽의 레시피를 현대의 재료로 재현하는걸 중요한 포인트로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제인 "손쉽게 만들어 즐겁게 맛보는 중세 요리'에 충실한 셈이죠. 그래서 수록된 대부분의 레시피들이 실제로 현재, 그리고 가정 내에서 구현 가능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맛이 짐작 가능해서 딱히 신선한 레시피는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쿠민 수프'는 향신료 쿠민이 들어갈 뿐, 현재도 우리가 즐겨먹는 '달걀국'과 같아요. 버섯 수프 '펑거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닭 육수에 다듬은 버섯들과 파, 시나몬, 클로브, 후추를 넣고 끓이는 레시피와 결과물 사진을 보면, 닭 육수를 쓰기는 하지만 멸치 다시마 육수를 써서 만드는 버섯국과 별로 맛이 다를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새의 무덤' 이라는, 중세풍 이름의 요리도 그 정체는 다진 마늘, 소금, 후추와 버무린 닭다리살을 볶은 뒤 타임, 로즈마리를 넣고 레드 와인과 물에 조리는 와인 닭찜입니다. 이 정도라면, 우리가 흔히 먹는 닭가슴살 간장 조림에서 간장만 와인으로 대체하면 되는 수준이라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어 먹을 수 있겠죠.
또 현대에 재현하기 위해 재료를 나름 응용한다는 것도 눈에 뜨입니다. 중세의 허니 토스트를 재현하기 위해 '식빵'을 쓰는 식으로요.

물론 현대에 중세 요리를 재현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나쁠건 없습니다. 문제는 내용의 깊이와 전문성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지요. 레시피 하나하나의 분량은 많아야 2페이지 정도에 머물 뿐으로, 정말 '레시피' 이외의 다른 정보가 거의 소개되지 않을 뿐더러, 레시피들의 출처들도 소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저자의 마음 속에서 그럴듯하게 꾸며낸 중세 유럽의 요리인지, 아니면 실존했지만 이를 현대에도 맛볼 수 있게 어레인지한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전문성 측면에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네요.
수록되어 있는 컬럼들도 중세 유럽의 장미, 백합, 제비꽃에 대해 알려주는 정도만이 괜찮았을 뿐 그 외에는 별볼일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쓸데 없는 저자의 중세 축제 체험기나 일본 내 중세 유럽 관련 행사에 대한 정보에 대한 사진과 비중이 높다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풀 컬러지만 재현한 음식들 한 컷씩만 실려있는 수준의 도판도 딱히 대단하지 않으며 책의 완성도도 그냥저냥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중세 유럽의 레시피를 현대에 재현한다는 취지 외에 건질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17,000원이라는 가격도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고요. 이쪽 분야에 관심이 지극히 많으시더라도,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0/03/11

너무 예쁜 소녀 1~3 - 얀 제거스 / 송경은 : 별점 1점

[세트] 너무 예쁜 소녀 (전3권) - 2점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한경비피

인적이 드문 프랑스의 한 마을에 어느 날 숨이 막힐 정도로 예쁜 소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마농인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녀를 돌봐주던 미망인이 심장마비로 죽자 마농은 마을에 올 때 그랬던 것처럼 홀연히 마을을 떠났다. 때마침, 총각 파티를 떠나던 세 명의 남자들이 길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해 차에 태워 주었다.

장면이 바뀌어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프랑크푸르트. 미국대통령의 방문으로 도시 전체가 삼엄한 어느 날, 프랑크푸르트 도시 숲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강력계 팀장 로버트 마탈러가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사건 발생 이틀 뒤, 사건 현장 근처 호수에서 물에 빠진 자동차가 발견된다. 트렁크에서 또 다른 남자의 시체가 나오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진다. 트렁크 안에서 발견한 피해자의 옷에서 주유소 영수증을 찾아내고, 그 일행이 주유소 주인의 조카는 자동차에 남자 세 명과 유난히 눈에 띄게 예쁜 여자가 타고 있었다고 증언하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작가의 추리 소설 데뷰작이자 로버트 마탈러 형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네요. 코로나 사태로 방콕하는 와중에 도서관 e-book 대여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유럽 추리 소설은 딱히 취향이 아니지만, 이전에 분명 어디선가 소갯글을 읽고 장바구니에 담아놓았었기 때문이죠. 제목에서 왠지모를 호기심도 느꼈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선택은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끔찍한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범인을 뒤쫓는 형사들의 활약이 펼쳐지는 전형적인 범죄 스릴러의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모든 면에서 함량 미달인 탓입니다. 주인공인 로버트 마탈러 형사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오랫동안 형사로 일하고, 지금은 팀장이라는데 전혀 전문가스럽지 않기 때문이에요. 피해자 가족에게 피해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리기를 지극히 꺼려할 정도로요. 독일 형사라면 기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것 같지만, 연락하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도 잊어버린다거나,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 잔 실수도 많습니다. 추격전과 같이 대단한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고, 사람 몇 명 만났다고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모습을 보면 영 신뢰하기 어렵고요. 여기에 먹는걸 좋아하고, 15년 전 사망한 아내를 잊지 못하면서도 단골 카페의 새로운 아르바이트생 테레사를 유혹하는 모습을 더하면, 이게 무슨 독일인이가 싶습니다. 이탈리아 인에 더 가까운거 아닐까요? 수사 외에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미술 쪽에 대한 취미도 피력하는데 이는 완전한 사족이었습니다. 운전을 싫어하고, 담배와 커피를 즐기는 모습 정도의 독특함만 가져가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다른 경찰들도 무능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탈러의 부하들은 도주 중인 플뢰거에게 습격당해 총을 빼앗기고, 플뢰거에게 사로잡혀 끌려다니는데다가, 마리 루이제가 있는 쇼핑몰 봉쇄에 실패하고, 심지어 유력 용의자인 마리 루이제를 호송 중에 놓치기까지 합니다. 다른건 몰라도 유력한 용의자를 놓친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너무 예쁜 소녀' 마농, 마리 루이즈의 존재도 별거 아닙니다. 누구나 반할만큼 대단한 외모를 소유했다고 묘사는 되지만, 그 미모 탓에 사건이 벌어진다고는 보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미모 때문에 가족이 파멸하고, 그녀가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또 소악당 3명의 차에 얻어탄 뒤 성폭행 당한건 미모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외모가 평균 수준만 되었어도 충분히 닥칠 수 있는 범죄였으니까요. 로만을 유혹한 뒤 살해하는 범행에는 명백히 미모가 도움이 되었겠지만,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마농의 모든 행동은 뒤떨어져 보이는 지능 등으로 모두 즉흥적, 수동적으로 묘사됩니다. 미모를 사용하려는 의지가 아예 없어요. 미모를 활용한 어린 팜므파탈을 기대했었지만, 실망스럽기만 하네요.

내용에서도 스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추리의 여지도 당연히 없고요. 시체가 발견된 뒤, 목격자들의 증언과 이런저런 증거를 모아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요. 마농이 베른트 풍케와 요헨 힐셔, 플뢰거가 탄 차에 동승한 뒤 숲 속에서 플뢰거를 제외한 사람들끼리 성관계가 있었고, 일행 중 베른트 풍케와 요헨 힐셔가 난도질당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범인이 제 3의 인물이 아니라면 플뢰거나 마농, 둘 중의 한 명이 범인인건 뻔합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여자인 마농보다는 플뢰거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봐야겠죠. 마농 혼자 남자 2명을 살해하고, 그 중 한 명을 차 트렁크에 실어 호수에 버릴 정도의 능력이 있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우니까요. 마농이 범행을 저지르는 와중에 플뢰거 혼자 도주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하지만 이 가설은 사건 뒤 마농이 우연히 만나 유혹한 로만을 난도질해서 살해한 것 때문에 부정됩니다. 그녀는 정말 살인마였던거죠, 그렇다면 플뢰거는 왜 마농과 따로 도주한 뒤 경찰에 쫓기다가 투신자살했을까요? 범행의 공범이었다 하더라도 직접 실행범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릴 이유가 없었을텐데 말이죠. 그리고 공범이었다면, 애초에 자기 친구 두 명 살해와 시체 유기에 가담한 이유와 요헨 힐셔의 시체를 은닉한 뒤 마농이 플뢰거를 살해하지 않은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요? 단지 자신과 성관계를 맺은 남자만 죽인다는게 이유였을까요? 그렇다면 왜? 정말로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했던 트라우마가 있었던걸까요? 그리고 로만과는 몇일간 함께 지내며 관계를 맺었는데 왜 바로 살해하지 않은걸까요?
이렇게 떡밥을 던진건 많은데 제대로 회수되는건 별로 없어요. 범행 동기도 도무지 알 수 없고요. 게다가 모든 수수께끼는 결말에서 마농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서 그랬다, 즉 심신 미약 상태에서 일으킨 불가항력적인 범행이었다는 식으로 대충 마무리됩니다. 이 정도면 막장 드라마기억 상실급에 비교할 만한 최악의 결말이라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설명되지 못한 부분은 많습니다. 애초에 왜 마농의 아버지 페터가 가족 동반 자살을 기도했는지, 가족 동반 자살 사건에서 마농 혼자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인지, 살아남은 뒤 왜 정상적인 사고를 갖추지 못하게 되었는지, 마농이 체포되고 난 후 장 루크 지로가 죄를 뒤집어 쓰기 위해 나선 이유는 무엇인지 등 많은 부분이 모호합니다. 장 루크 지로는 마농에게 홀딱 반한 멍청이라서 그렇다지만, 딱히 납득이 되는 설명은 아니었어요.
그나마 추리가 등장하는건, 페터 가이슬러가 좌절하여 일가족 동반 자살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 익명의 투서를 누가 썼느냐를 밝혀내는 정도에 그치며, 이 역시 사건 후 페터의 주변 동료 중 한 명이 자주 쓰지 않는 단어를 진술서에 썼는데 이 단어가 투서에도 쓰였다는게 이유라서 대단한 추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캐릭터, 내용 모두 뭐 하나 건질게 없었던 완벽한 시간 낭비였습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읽을 필요가 없다는걸 알게된게 유일한 수확이에요. 로버트 마탈러가 팀장으로 근무하는 독일의 치안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2019/08/03

살인 카드 게임 - 제임스 패터슨 / 조은아 : 별점 1점

살인 카드 게임 - 2점
제임스 패터슨 지음, 조은아 옮김/북플라자

내 소개를 하지. 이름은 딜런. 저명한 심리학 교수지. 어느 날, 아름답고 당찬 여형사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지. 그녀는 대뜸 내게 피 웅덩이 위에 쓰러진 피해자의 사진을 보여주었어. 맙소사, 사진 속 모습이 얼마나 참혹한지 역겨움이 들 지경이었어. 그녀는 범인이 시신 옆에 트럼프 카드 ‘킹’을 두고 갔다고 설명했어. 남기고 간 카드로써 다음 희생자를 예고하는 연쇄 살인 게임이 시작된 거야. 나는 그녀를 도와 범인을 잡는 수사에 참여하기로 했지. 그런데 빌어먹을! 놈은 그런 우리를 비웃듯이 교묘한 방법으로 살인을 계속 저질렀어. 과연 이 살인 카드 게임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미국의 인기 작가 제임스 페터슨의 신작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아주 오래 전 몇 권 읽어보았는데, 사실 좋았던 기억은 없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흐른 만큼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살짝 기대를 했지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역시나 실망이었습니다. 그냥 실망도 아니고 왕실망이었어요.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와 주인공이 대결하는 작품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살인마가 특정 소재 - 동요라던가, 타로 카드라던가... - 로 살인 예고를 한다는 작품도 많고요. 무작위로 보였던 피해자들에게 무언가 공통점, 패턴이 있다는 이야기도 굉장히 흔합니다. 그렇다면 이야기에 무언가 특별한걸로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차별화된 재미 요소는 전무합니다.
그나마 주인공만 조금 독특한 정도입니다. 딜런 라인하르트 교수는 예일대의 이상 행동 분석 교수로 정신 감정 전문가이자 전직 CIA요원, 거기에 아이를 입양하려고 하는 게이 부부의 남편! 이라는 설정이니까요. 파트너격인 엘리자베스 니덤은 게이마저도 반할만한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에 뒤지지 않고요. 그런데 이게 재미요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헐리우드 영화같기는 한데 이야기와는 별 상관이 없는 탓입니다.

또 이렇게 캐릭터를 구성하기 위한 여러가지 이야기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해서, 정작 본 사건 이야기는 구멍 투성이입니다. '트럼프 카드'로 다음 피해자를 예고한다는 핵심 설정부터 억지스러워요. '클로버 킹'이 뉴욕 클럽의 왕으로 군림했던 두번째 피해자를 나타낸다는 것, 그리고 '하트 퀸'이 여성 흉부외과 전문의를 가리킨다는 정도만 아슬아슬하게 설정과 어울리며 그 외에는 전부 무리수입니다. 예를 들어 하트 2가 두명의 불륜 남녀를 가리킨다? 그 대상자는 뉴욕에 수만명은 될 겁니다. 킹스맨 재판 관련자라는 조건이 걸리더라도 둘의 불륜을 어떻게 알아낼까요? 최소한 경찰은 알아내기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래도 억지스럽지만 피해자들을 어떻게든 알아내기는 합니다. 허나 범인보다 앞서가고자 할 때마다 간발의 차이로 항상 범인이 앞선다는 식상한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너무 뻔해서 놀랄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렇게 범인에게 계속 뒤진다면 경찰이 딜런 교수에게 협조를 요청할 이유도 없습니다. 실제로 딜런 교수가 사건 해결을 위해 한 일은? 거의 없어요! 피해자들 모두 악인들로 킹스맨에게 재판받았다는 공통점을 찾아내고, 진범이 엘리야 티미츠라는걸 눈치챈 뒤 그라임스 기자에게 달려간 정도만 경찰보다 빠른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건 무의미한 행동이었습니다. 엘리야 티미츠는 그라임스 기자를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킹스맨 판사가 범인이 아니라는게 밝혀진다면 그의 자동차, 옷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인 엘리야 티미츠가 범인이라는게 드러나는건 시간 문제였고요.
마지막에 시장을 구하는 활약? 범인이 죽기전 '나를 야구장으로 데려다 주오'를 부르고 손목에 문신이 새겨졌다는 정도로 무언가 행동을 벌인다는건 억지 아닐까요? 그야말로 작위적인 전개의 끝판왕입니다. 딜런 교수의 유일한 활약은 총상을 입은 엘리자베스를 구한게 전부에요.

범인 엘리야 티미츠의 설정과 그의 범행들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에 특별한 연줄도 없고, 대단한 기술을 배우지도 않은 흑인 청년이 어떻게 이런 복잡하고 거대한 살인 계획을 경찰보다 앞서 실행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무합니다. 그냥 어릴 때 부터 다이너마이트와 피를 가까이하면서 살았는게 고작입니다. 전직 경찰이었다, 전직 무슨 요원이었다는 등으로 어떻게든 설득력을 갖추고자 하는 시도도 없습니다. 등장도 급작스러워서 반전의 묘미도 없고요.

한마디로 독서에 들인 시간이 아까운 수준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리뷰를 쓰기도 아깝지만 다른 피해자 (?) 분들을 막기 위해 몇 자 적습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제임스 페터슨의 소설은 손에 대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2019/07/21

귀신나방 - 장용민 : 별점 1점

귀신나방 - 2점
장용민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로드웨이의 한 뮤지컬 극장에서 오토 바우만이 열일곱 살 소년을 살해했다. 소년은 좋은 부모에게 좋은 교육을 받은 흠잡을 것 없던 아이였다. 소년과 살인범은 아무 관계가 없어서 경찰은 살해 동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수백 명이나 되는 목격자 앞에서 소년을 죽인 오토 바우만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사형 집행일을 사흘 앞둔 날 그는 갑자기 특별 면회 요청을 하는데, 상대는 과거 전도유망했던 기자 크리스틴이었다. 갑작스럽게 사형수와 인터뷰를 하게 된 크리스틴은 바우만으로부터 도무지 상상할 수 없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한국 작가 장용민의 장편 소설입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히틀러의 부활을 다루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한국 작가가 섣불리 손 댈 소재는 아니라 생각했으니까요. 또 히틀러의 부활에 대한 창작물은 굉장히 많아서 차별화를 통한 비교 우위를 가져가기도 쉽지 않을테고요. 예를 들어 히틀러의 머리 (뇌)만 따로 보관했다가 다른 몸에 이식한다는 "모레", 클론을 만든다는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 있지요.
이 작품에서는 요제프 멩겔레의 뇌이식을 통해 젊은이로 거듭난다는 설정을 보여주는데 아니나다를까, 예상대로 차별화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방법만 조금 다를 뿐, 유대인 생체 실험을 통해 기술을 터득한 멩겔레가 주도하여 히틀러의 부활을 이끈다는 케케묵은 설정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나마 뇌이식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도 거의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부활까지는 히틀러의 뒤를 쫓는 비밀 조직 아디 헌터와의 악연 등 재미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부활 이후부터입니다. 아담 휘슬러로 새롭게 태어난 히틀러가 미국 정복(?)을 위해 일으킨 사건들과 여러 계획이 펼쳐지는데 어이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탓입니다.
첫 번째로 아담은 시골 마을에서 6명이 죽는 참극을 일으킵니다. 일종의 심리 조작을 통해서요. 그런데 이 참극을 통해 그가 얻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단한 능력을 보였다고 하기도 어려워요. 원래 사이가 좋았던 사람들끼리 다 틀어지게 만든 것도 아니고, 악감정이 있던 두 집안 사이에 불똥을 튀긴 정도니까요. 경제학 서적을 독파해가며 자본주의를 통달한 세기의 악마가 하는 일 치고는, 그리고 사악함을 드러내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합니다.

그 뒤 미국 연방 준비 위원회를 손에 넣겠다는 두 번째 계획은 그야말로 실소를 자아냅니다. 무려 800톤이 넘는 금괴의 댓가로 하는게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밀턴의 비서가 되는 것 뿐입니다! 2019년 7월 현 시세로 금 1kg은 6천만원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48조의 현금성 자산으로 2019년 기준 세계 부자 순위 20위권이에요. 현금성이라 투자 시 자본 증식과 대출 가능 규모를 감안하면 몇 배가 될 수 있고요. 한마디로 스스로의 돈과 능력으로 세계 금융계를 지배할 수 있는데 고작 비서가 되는게 다라니 이게 말이나 될까요? 비서가 되려는 목적도 루 게릭 병으로 죽어가는 밀턴에게 뇌수술을 알선하는 댓가로 밀턴의 주식을 넘겨받으는건데, 이를 위해서는 구태여 비서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경로건 간에 자신이 히틀러라는걸 증명만 하면 죽기 직전인 밀턴이 알아서 접근해 왔을 테니까요.
게다가 연방 준비 위원회 주식을 소유한다고 그가 미국을 지배하는게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차피 연방 준비 위원회 회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상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요. 이보다는 차라리 세계를 지배하는 대기업 회장이 되려는 계획이 더 설득력이 높아요. 2019년 현 시점에서 연준 위원장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보다 세계 파워 랭킹 순위가 낮으니까요. 아니면 직접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던가....

세 번째 계획인(두번째 계획에서 이어지는) 케네디 암살에 히틀러가 있었다는건 황당하고 어이없는 픽션의 정점입니다. 일단 케네디 암살의 이유는 그가 은본위의 새로운 화폐계혁을 단행하여 연준을 무력화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케네디에게 알려준건? 히틀러입니다! 연준의 권력을 먹으려는게 계획인데, 연준에 괜한 위험을 가하고 그걸 또 스스로 이겨낸다? 이 쯤 되면 이야기의 합리성을 논하는게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암살이라는 무모한 계획은 리스크도 너무 크고요.

거기에 더해 무리수 설정도 너무 많습니다. 우선 옛 연인 에바 브라운, 그리고 그녀의 전생인 죠안나 이야기는 없으니만 못합니다. 사악한 카리스마만 희석될 뿐입니다. 등장하는 비중에 비하면 아무것도 하는게 없기도 하고요.
하기사, 죠안나 설정은 그나마 낫지 연쇄살인범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든다는 설정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특수부대 출신 킬러들을 불러모아도 시원치않을판에 왠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UFC 파이터를 이길 수 있을까요? 게다가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는 방법은 한니발 렉터를 표절한 천재 교수의 설명되지도 않는 수학 공식이고, 그들을 자기 부하로 만드는 방법은 히틀러가 혈혈단신 찾아가 말로 설득하는게 전부니 더 말을 해 무얼하겠습니까.

이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경찰 바우만의 집요한 추적도 흥미를 자아내지 못하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고작해아 달라스 경찰서 형사인 그가 온갖 배후 정보에 손을 대 가면서 히틀러를 추적하는 과정부터가 설득력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히틀러라고 확신하고 쏴죽인 애덤이 사실 히틀러가 아니라 뇌수술을 받은 밀턴이라는걸 정작 조사를 시작한 지 몇일 되지도 않은 크리스틴이 밝혀낸다는 이야기도 당황스러워요. 바우만의 반평생은 대체 뭔가 싶거든요.
작위적인 전개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케네디 암살 현장에서 모사드 요원이 바우만을 구해주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그 정도 지켜봤으면 누가 흑막인지 당연히 알아채고 아담을 죽이거나 납치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총 한자루 전해주고 손을 터는건 영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히틀러는 살아있다는 극적인 진상이 귀신나방 이야기와 함께 드러나는 장면도 실소를 자아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기껏 자신이 살아있는걸 아는 사람을 다 죽여놓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 여기자 크리스틴 앞에서 살아있다는 암시를 남기고 떠난다? 그것도 직접 칵테일을 대접하는 등 있는대로 폼을 잡으면서?

이렇게 어디서 본듯한 설득력없는 설정, 전혀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계획들, 작위적인 수사, 개연성없는 전개라는 환장의 4종 셋트가 모인 망작으로 종이가 아까운 수준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가 희대의 망작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를 발표한지도 수 십년이 지났지만, 발전한 부분은 전무하네요. 앞으로 이 작가 작품을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18/04/20

지금은 더 이상 없다 - 모리 히로시 / 이연승 : 별점 1점

지금은 더 이상 없다 - 2점
모리 히로시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하시즈메의 별장에 약혼녀 마리코와 함께 방문하여 휴가를 보내던 공무원 사사키는 우연히 만난 니시노소노 양에게 푹 빠졌다. 마침 니시노소노 양은 가출 상태로 사에키에게 가까운 역까지 이동을 부탁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폭풍우 탓에 니시노소노 양도 별장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는데, 마침 그날 밤 밀실인 오락실-영사실에서 아사미 자매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모리 히로시의 대표작인 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 8편입니다.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이야기의 대부분이 사사키라는 인물의 1인칭 수기 형태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완벽한 졸작입니다! 이유는 추리적으로 도저히 점수를 줄 수 없는 탓입니다. 거의 500여 페이지 가까운 분량으로 쌓아 올린 이야기와 설정을 모두 뭉개고 설득력이 전혀 없는 이야기를 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생을 살해한 언니가 자살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여기까지는 뭐 그렇다 칩시다. 그렇지만 구태여 좁은 창을 빠져나가면서 현장을 밀실로 만든 이유, 그리고 아사미 유키코가 동생 아스코에게 가발을 씌우고 옷도 바꿔 입힌 이유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른 가설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들이 정작 진상에서는 유키코가 흥분 상태로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흘러가니 황당할 뿐입니다. 이에 비교하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등장하는, 방을 밀실인 척 할 수 있는 사사키가 범인이다! 라는 추리 퀴즈 수준의 가설들이 진상보다 더 흥미롭습니다.

또 사사키의 수기 속에 등장하는 니시노소노가 모에가 아니라 모에의 고모 무쓰코였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반전도 사기에 가깝습니다. 보통의 서술 트릭물은 앞부분에서 진상을 눈치챌 수 있는 단서를 던져주는데, 이 작품 속에는 휴대폰이 없고 HAM을 취미로 한다는 정도의 설정 밖에는 없고, 오히려 이름이 "모에" 라는 잘못된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리는 등 독자를 속이려는 노골적인 의도가 강해서 괘씸하기 짝이 없네요.

사실 중간까지는 제법 읽을 만 했기에 더욱 아쉬움이 큽니다. 사에키 1인칭 시점의 모에 홀릭 서술 트릭은 도대체 사이카와는 어떻게 된거지? 라는 독자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며, 폭풍우가 밀어닥쳐 고립된 산 속 별장의 밀실 살인이라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설정도 나쁘지는 않거든요. 또 "둥글둥글해졌다" 는 말은 약한 부분이 없어지고 강한 부분만 남은 강한 형태다, 트럼프나 타로는 자신의 미래를 트집잡으며 기뻐하는 자학적 게임이다는 식의 모리 히로시다운 조금 삐뚤어진 사고 방식이 엿보이는 묘사들도 나쁘지는 않고요. 그러나 이런 요소는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거나 재미를 주지는 못하며, 약혼녀와 여행 온 주제에 18살이나 어린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어떻게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밖에 없는 사사키라는 인간 쓰레기 시점에서 이런 묘사가 많은 탓에 사사키의 비호감도만 상승할 뿐이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한마디로 본격 추리물로는 함량 미달에다가 서술 트릭물로 보기에는 트릭이라는 게 없는 사기극이라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작가 스스로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이건 추리 소설이 아니라 연애 소설이다, 사사키는 글재주가 없어서 이야기가 완전 별로다, 운운하는 마지막 대단원의 작가 변명은 이 길고 긴 이야기를 읽은 독자를 더욱 허탈하게 만듭니다. 연애 소설이지만 추리 소설로도 완벽한 작품들을 쏟아낸 여사님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죠.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끄는 몇몇 설정은 시리즈 독자라면 그런대로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이 작품만 놓고 보면 일고의 가치도 없기에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단연코 제가 읽은 이 시리즈 중에서는 최악이었습니다.

2018/03/10

유령탑 - 에도가와 란포 / 민경욱 : 별점 1점

유령탑 - 2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미야자키 하야오 그림, 민경욱 옮김/북홀릭(bookholic)

'아케치 코고로'나 '괴인 20면상', '소년 탐정단' 시리즈가 아닌 에도가와 란포의 스탠드 얼론 장편으로 쇼와 12년, 즉 1937년 첫 연재가 시작되었던 초기작입니다. 쿠로이와 루이코의 번역서를 에도가와 란포가 다시 재가공하였으며, 원작은 앨리스 M 윌리엄슨의 "회색빛 여인" 이라고 하네요.

사실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발표 시기나 발표된 형태(번역서의 재가공)를 볼 때 구릴 것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집어든 이유는 딱 한 가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그리고 해설한 서두 몇 페이지의 일러스트와 콘티가 마음에 들었던 덕분입니다. 지브리 미술관에서 "유령탑에 어서 오세요 전시 - 통속 문화의 왕도" 라는 기획전을 개최할 때 전시되었던 자료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본 편은 역시나, 생각만큼 구립니다. 별로에요. 설정은 작위적이기 짝이 없으며 모든 내용은 우연에 의지하고 있는 탓입니다. 키타가와 미츠오와 노즈에 아키코가 폐허가 된 유령탑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작위적이며, 뒤로 가면 갈 수록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집니다.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 곡마단에서 탈출한 호랑이가 난입하고, 협박범을 미행하면서 탄 열차가 탈선 사고를 일으켜 협박범의 집에 잠입하게 되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설정과 전개는 슬랩스틱 개그물을 방불케 하거든요. 게다가 이를 공포스럽게 묘사하는 에도가와 란포 특유의 과장된 문체는 정말 가관입니다. "아아!" 라는 감탄사가 대표적이에요. 뭔 일만 일어나면 "아아...!" 거리니 이거 참 뭐라고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네요.

작위적이라도 이야기 전개가 탄탄하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설득력있고 합리적이라면 참아줄만 했을겁니다. 그러나 역시나, 그럴리가 없죠. 짜임새가 헐거워서 극적인 재미를 느끼기 힘듭니다. 이야기는 초반부의 "유령탑에 얽힌 비밀"을 풀어내어 보물을 찾는 이야기에서, 중반부터의 노즈에 아키코의 정체가 무엇인지? 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유령탑에 얽힌 비밀은 고딕 호러에 모험물이 섞인 느낌이고, 노즈에 아키코의 정체는 전형적인 추리 서사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두 이야기 모두 짜임새가 헐거워 완성도가 낮습니다 .

보물을 찾는 과정은 고딕 호러같은 유래에 아주 약간의 암호 트릭이 결합된 전형적인 모험물인데, 결론적으로 보면 너무 쉬워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초록색 문(?)이 열린다는건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그냥 시계탑에서 쳐다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미로로 들어간 뒤에는 아키코의 발자욱을 따라 걸어갈 뿐이라 극적 긴장감을 느끼기는 힘듭니다. 아키코가 어떻게 미로의 비밀을 풀어냈는지 설명도 되지 않고요. 단지 연구로 미로의 비밀을 풀어냈다는건 너무 유치한 발상이잖아요? 최소한의 암호 트릭이나 비슷한 무언가는 독자에게 전해주었어야 했습니다.
노즈에 아키코의 정체 관련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과거 양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던 죄수 와다 긴코였다! 까지는 뭐 그럴 듯 합니다. 하지만 노즈에 아키코, 즉 와다 긴코가 유령탑의 보물을 찾고 진범을 찾으려고 하는 사명이 있다는 설정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어요. 복수를 위해 진범을 찾고자 하는건 알겠지만, 보물을 찾는게 왜 사명이 될까요? 그리고 애초에 유령탑에 살 때에는 왜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요? 또 변호사 쿠로카와를 제외한 잔챙이 악당들의 협박에 휘둘리는 것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번역작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라니르' 라는 독약을 이용하여 와다 긴코를 탈옥시킨 작전은 "몽테크리스토 백작" 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지금 시점으로 본다면 표절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에요. 아울러 처음에 아키코의 정체는 살해된 노파의 하녀 아카이 도키코가 아닐까? 라고 의문을 던지지만 아키코가 항상 손목을 감추고 있다는 묘사로 그녀가 와다 긴코라는건 처음부터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이는 분량 낭비일 뿐입니다.

주인공의 모험도 앞서 말씀드렸듯 우연이 이어지는 전개이며, 차례로 수수께끼에 대해 증언이 이어지는 식이라 추리가 개입될 여지는 전무합니다. 무엇보다도 진범이 나카다 초조로 밝혀지는 장면도 어처구니 없습니다. 열 두 시 종소리에 공포를 느낀게 증거라니? 그리고 공포를 느껴 죽은게 천벌이라니? 20세기 초기의 사고 방식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당시 나카다 초조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어서 혐의를 벗었다는데, 그 알리바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는 것도 황당합니다.

딱 한가지 건질만 했던 부분은 죽은 와다 긴코가 어떻게 다르게 생긴 노즈에 아키코로 돌아왔는지? 에 대한 수수께끼입니다. 현재로서는 별거 아닌 미용 성형을 무슨 대단한 과학 기술인양 포장하여 묘사한건 우습게 느껴지지만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면 참아줄 만 합니다.

하지만 괜찮은 부분은 전체 분량의 1/10도 안되는 느낌이에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근대 직전의 신소설 느낌이 날 정도로 낡은 작품입니다. 그 어떤 가치도 찾기 힘들기에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에 낚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차라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해설 부분만 떼어내어 1/10 가격으로 파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2017/06/11

후쿠오카 살인 - 김성종 : 별점 1점

후쿠오카 살인 - 2점
김성종 지음/뿔(웅진)

국내 추리문학의 거목인 김성종 선생님의 근간입니다만, 단언컨데 그 동안 읽은 책 중에서도 최악을 다툴만합니다. 감히 '작품' 이라는 표현을 붙이기도 어려운 지경의 종이 무더기에요. 얼마전 "하카다 돈코츠 라멘즈"가 '나무야 미안해' 수준이라면 이건 미안하다는 말로 끝낼 수준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최악입니다.

지나와 봉수 부부, 세호와 서라 부부가 등장하고 그들이 각자 상대방 배우자들과 불륜을 저지른다는 시대착오적인 도입부 설정부터 가관입니다만, 유지나가 이세호를 시켜 서봉수를 죽이기 위한 일본 여행을 떠나는 본편이 시작되면서 더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먹고살기 힘든 인쇄소 사장에 불과해 보였던 이세호의 정체가 사실은 국내 위조 조직에서도 거물인 범죄자로, 과거 살인을 포함한 수 없이 많은 범죄를 저지른 변장의 달인이자 범죄의 황제라는 진상은 어이를 상실케 만듭니다. 알고 보니 옆집 남자가 팡토마고르고 13이었다는 건데, 이렇게 설정을 변경하려면 최소한의 설득력은 보장해 줬어야 합니다. 뜬금없기가 과거 김삼 화백 만화를 수준이에요.

더 웃기는 것은 이세호가 개중 나은 편이라는 겁니다. 여성들 캐릭터는 모두 삼류 성인 만화에나 나옴직한 색정광들로 이해의 영역을 넘어섭니다. 그 중에서도 형사 구밀라 캐릭터는 최악 오브 더 최악이에요. 섹스 중독증이라는 설정부터가 유치하지만,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는 상황은 뭐라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더블맨을 만나기 위해 먼저 위조업자 황사장과 관계를 갖고, 한국과 일본 양국 경찰에게 쫓기는 흉악범이 된 더블맨 이세호와 마지막에 관계를 갖는 식이니까요. 섹스 중독증에 걸린 이유도 어처구니 없습니다. 어렸을 때의 성폭행 때문이라는데 요새 삼류 성인만화도 이렇게 막 나가지는 않을것 같군요. 게다가 이 조교로 육노예를 만든다는 싸구려 성인물 설정을 구밀라 한명 뿐 아니라 미치코라는 다른 여성에게도 써먹는 건 정말이지 어안이 벙벙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최악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이세호가 일본에서 위조지폐를 구태여 쓴 행위부터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깟 잔돈푼이 뭐가 중요해서 청부살인을 앞두고 사건을 일으켰을까요? 자신의 위조 기술을 괴신했다기에는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서봉수가 유지나를 청부 살해하는 전개도 억지스럽습니다. 유지나와 이세호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서 유지나를 죽일 하등의 이유는 없어집니다. 이혼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니까요. 게다가 유지나가 살해된 이후는 더 문제입니다. 적극적으로 피해자 남편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두 여성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섹스나 하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되잖아요. 경찰이 자신을 찾아온 것도 잊어버렸단 말인가요?
서봉수가 문서라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의 대응도 최악입니다. 당연히 이세호의 불륜을 눈치채고 쳐들어온 것이라고 둘러댔어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주역을 보는 것도 참 오랫만이에요.
그나마 괜찮았던 것은 도다이, 미치코가 유지나를 죽이기 위해 아무런 연고 없는 부랑자를 동원하여 일종의 자살 테러를 하는 정도인데, 이 역시 미치코와 범인간의 관계를 작위적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제목처럼 일본 홋카이도에서 후쿠오카에 이르는 장대한 여정을 녹여낸 것 만큼은 나쁘지 않습니다. 등장하는 여행 코스도 꽤 그럴듯하고요. 허나 일본 여행 역시 결정적 문제가 있습니다. 작품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일본에서 살해하는게 여러모로 더 쉽다? 무슨 근거인지 알 수가 없어요. 일본도 나름대로 유능한 경찰력을 보유한 선진국인데 말이지요. 게다가 이 책을 읽으면 일본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무모한 행동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 여행 설정은 아무래도 일본에 대해서 잘 알고, 많이 가 봤다는 아는 척에 분량을 늘리기 위한 꼼수가 아니었나 싶어요. '미우라 아야코 문학관'에 대해 장황하게 풀어내는 등 작품과 상관없는 작가 개인 생각이 너무 많이 드러나는 것도 문제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김성종 선생님이 척박한 한국 추리 문학을 어떻게든 일으켰던 이 바닥의 거목이라는건 분명합니다. 항상 존경하고 있고요. 그러나 이 쓰레기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네요. 과거의 좋은 기억만 안고 가는게 훨씬 좋을 뻔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쓰레기만큼은 주의하시고 피하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2016/02/20

산적 다이어리 2 - 오카모토 켄타로 / 주원일 : 별점 1점

산적 다이어리 2 - 2점
오카모토 켄타로 지음, 주원일 옮김/애니북스

"산적 다이어리 1" - 오카모토 켄타로 / 주원일 : 별점 2점

1권이 별로라 다시 읽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방문한 만화가게에 비치되어 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1권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는 했지만, 사냥 초보자가 조금씩 사냥에 대해 익혀 가는 과정이나 잡은 동물들을 조리해 먹는 과정 등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권은 이러한 기존의 재미 요소마저도 사라져 버린 희대의 졸작이더군요.

이유는 이미 사냥에 익숙해진 켄타로와 동료들의 핵심 타깃이 멧돼지인 탓입니다. 상세하지만 너무 길고 지루했어요. 멧돼지 해체 같은 것은 전혀 와 닿지도 않았고요. 사냥 과정에서 별다른 에피소드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작화도 별로입니다. 1권도 그닥이었는데 그보다 더 별로예요. 캐릭터 조형까지 무너지는 등 정말 마음에 들지 않네요.

한마디로 재미도 없을 뿐더러 완성도 면에서 심대한 결함이 있습니다. 구입하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에요. 별점은 1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