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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0

유령탑 - 에도가와 란포 / 민경욱 : 별점 1점

유령탑 - 2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미야자키 하야오 그림, 민경욱 옮김/북홀릭(bookholic)

'아케치 코고로'나 '괴인 20면상', '소년 탐정단' 시리즈가 아닌 에도가와 란포의 스탠드 얼론 장편으로 쇼와 12년, 즉 1937년 첫 연재가 시작되었던 초기작입니다. 쿠로이와 루이코의 번역서를 에도가와 란포가 다시 재가공하였으며, 원작은 앨리스 M 윌리엄슨의 "회색빛 여인" 이라고 하네요.

사실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발표 시기나 발표된 형태(번역서의 재가공)를 볼 때 구릴 것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집어든 이유는 딱 한 가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그리고 해설한 서두 몇 페이지의 일러스트와 콘티가 마음에 들었던 덕분입니다. 지브리 미술관에서 "유령탑에 어서 오세요 전시 - 통속 문화의 왕도" 라는 기획전을 개최할 때 전시되었던 자료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본 편은 역시나, 생각만큼 구립니다. 별로에요. 설정은 작위적이기 짝이 없으며 모든 내용은 우연에 의지하고 있는 탓입니다. 키타가와 미츠오와 노즈에 아키코가 폐허가 된 유령탑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작위적이며, 뒤로 가면 갈 수록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집니다.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 곡마단에서 탈출한 호랑이가 난입하고, 협박범을 미행하면서 탄 열차가 탈선 사고를 일으켜 협박범의 집에 잠입하게 되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설정과 전개는 슬랩스틱 개그물을 방불케 하거든요. 게다가 이를 공포스럽게 묘사하는 에도가와 란포 특유의 과장된 문체는 정말 가관입니다. "아아!" 라는 감탄사가 대표적이에요. 뭔 일만 일어나면 "아아...!" 거리니 이거 참 뭐라고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네요.

작위적이라도 이야기 전개가 탄탄하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설득력있고 합리적이라면 참아줄만 했을겁니다. 그러나 역시나, 그럴리가 없죠. 짜임새가 헐거워서 극적인 재미를 느끼기 힘듭니다. 이야기는 초반부의 "유령탑에 얽힌 비밀"을 풀어내어 보물을 찾는 이야기에서, 중반부터의 노즈에 아키코의 정체가 무엇인지? 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유령탑에 얽힌 비밀은 고딕 호러에 모험물이 섞인 느낌이고, 노즈에 아키코의 정체는 전형적인 추리 서사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두 이야기 모두 짜임새가 헐거워 완성도가 낮습니다 .

보물을 찾는 과정은 고딕 호러같은 유래에 아주 약간의 암호 트릭이 결합된 전형적인 모험물인데, 결론적으로 보면 너무 쉬워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초록색 문(?)이 열린다는건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그냥 시계탑에서 쳐다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미로로 들어간 뒤에는 아키코의 발자욱을 따라 걸어갈 뿐이라 극적 긴장감을 느끼기는 힘듭니다. 아키코가 어떻게 미로의 비밀을 풀어냈는지 설명도 되지 않고요. 단지 연구로 미로의 비밀을 풀어냈다는건 너무 유치한 발상이잖아요? 최소한의 암호 트릭이나 비슷한 무언가는 독자에게 전해주었어야 했습니다.
노즈에 아키코의 정체 관련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과거 양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던 죄수 와다 긴코였다! 까지는 뭐 그럴 듯 합니다. 하지만 노즈에 아키코, 즉 와다 긴코가 유령탑의 보물을 찾고 진범을 찾으려고 하는 사명이 있다는 설정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어요. 복수를 위해 진범을 찾고자 하는건 알겠지만, 보물을 찾는게 왜 사명이 될까요? 그리고 애초에 유령탑에 살 때에는 왜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요? 또 변호사 쿠로카와를 제외한 잔챙이 악당들의 협박에 휘둘리는 것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번역작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라니르' 라는 독약을 이용하여 와다 긴코를 탈옥시킨 작전은 "몽테크리스토 백작" 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지금 시점으로 본다면 표절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에요. 아울러 처음에 아키코의 정체는 살해된 노파의 하녀 아카이 도키코가 아닐까? 라고 의문을 던지지만 아키코가 항상 손목을 감추고 있다는 묘사로 그녀가 와다 긴코라는건 처음부터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이는 분량 낭비일 뿐입니다.

주인공의 모험도 앞서 말씀드렸듯 우연이 이어지는 전개이며, 차례로 수수께끼에 대해 증언이 이어지는 식이라 추리가 개입될 여지는 전무합니다. 무엇보다도 진범이 나카다 초조로 밝혀지는 장면도 어처구니 없습니다. 열 두 시 종소리에 공포를 느낀게 증거라니? 그리고 공포를 느껴 죽은게 천벌이라니? 20세기 초기의 사고 방식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당시 나카다 초조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어서 혐의를 벗었다는데, 그 알리바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는 것도 황당합니다.

딱 한가지 건질만 했던 부분은 죽은 와다 긴코가 어떻게 다르게 생긴 노즈에 아키코로 돌아왔는지? 에 대한 수수께끼입니다. 현재로서는 별거 아닌 미용 성형을 무슨 대단한 과학 기술인양 포장하여 묘사한건 우습게 느껴지지만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면 참아줄 만 합니다.

하지만 괜찮은 부분은 전체 분량의 1/10도 안되는 느낌이에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근대 직전의 신소설 느낌이 날 정도로 낡은 작품입니다. 그 어떤 가치도 찾기 힘들기에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에 낚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차라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해설 부분만 떼어내어 1/10 가격으로 파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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