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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1

아주 오래된 서점 - 가쿠다 미츠요, 오카자키 다케시 / 이지수 : 별점 4점

아주 오래된 서점 - 8점
가쿠타 미츠요.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이지수 옮김/문학동네

원제는 <<古本道場>>으로 제목에 걸맞게 작가 가쿠다 미쓰요가 헌책 전문가 오카자키 다케시로부터 헌책에 대한 수련을 받는다는 내용의 에세이. 수련은 오카자키 다케시가 지정한 특정 지역 헌책방에서 '미션' 에 따른 헌 책을 구입하는 것입니다. 모두 8번의 미션이 수록되어 있으며, 미션에 따른 가쿠다 미쓰요의 헌책방 투어와 그 결과를 평하는 오카자키 다케시의 글이 한 세트입니다.
가쿠다 미쓰요와 오카자키 다케시의 에세이들은 모두 재미있게 읽어서 별 생각 없이 집어 들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하기사, 재미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하필이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글을 써 버렸으니 이거 참, 재미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죠.

두 명의 저자 중 오카자키 다케시는 아무래도 헌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론과 의견을 전해주는 '선생님' 역할이고, 가쿠다 미쓰요는 가르침을 받아 따르는 '학생' 역할입니다. 그래서인지 헌책 관련한 이야기는 오카자키 다케시 쪽 글이 더 기억에 남는 게 많네요.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일단 헌책방에 있는 헌책은 '장서'라는 것이 그러합니다. 일반 서점의 책은 반품이 되지만 헌책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주인이 한 권 한 권 산, 그야말로 '남의 책'이라는 거죠. 여태껏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고 딱히 신경 써 책을 다루지도 않았었는데 많이 반성 되네요.
또 헌책을 가격으로 보지 말라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정꾼이 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최우선으로 고르라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인데 정말 새겨들어야 할 말이에요. 헌책방 투어를 실제 다녀본 경험으로는 절판된 책이나 비싸게 팔 수 있는 희귀본에 더 눈길이 가기 마련이고, 그래서 결국 필요없는 책을 사곤 하니까요. 저도 집에 왠지 귀할 것 같아서 사놓고 안 읽은 책이 많은데 이 역시 반성해야 할 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고 싶을 때 안 사면 다음은 없다!' 라고도 하니 결국 사는 사람이 신중하게 생각하여 판단할 수 밖에 없겠죠.

그리고 헌책 관련된 이야기는 아닌데, 사진집을 읽고 소장하는 이유를 설명한 글도 근사합니다. '다양한 시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더욱 올바르고 깊게 세계를 이해하려는 무한에 가까운 시도다'라는 소설가 겸 사진작가 가타오카 요시오의 글과 함께, 좁은 시야를 넓히기 위한 용도로 산다고 하는데 그럴듯했어요. 물론 이 정도 의도라면 요새는 인터넷으로 보아도 충분할 것 같긴 합니다만.

이러한 정보 중심의 오카자키 다케시의 글과는 다르게 가쿠다 미쓰요의 글은 헌책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 정보보다는 개인 감상 위주입니다. 그런데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묘하게 정확해서 놀랐습니다. 특히 사물의 본질을 짚어내는 데 능숙해서 확실히 작가는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설명해 드리기는 어렵지만 저 역시 작가를 꿈꾸는 입장에서 참 많은 공부가 되었네요.

개인적으로는 가쿠다 미쓰요가 산 책들도 관심거리였습니다. 일본에서도 오래전에 절판된 책들도 많은 등 국내에서 구하기는 어려운 책들이 대부분이긴 합니다. 국내 출간된 책들도 절판 상태가 많고요. 하지만 소개가 멋진 몇몇 책들은 구해보고 싶어지더군요. 헌책방을 소개한 글에 소개된 헌 책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져야 한다니! 뭔가 낭만적이에요. 가쿠다 미쓰요가 구입한 대충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표시가 제가 찾아본 국내 출간작인데, 8권이 전부입니다.

진보초 - 이구치 분슈의 그림책 2권, 에토 준 <<개와 나>>, *<<싫어싫어 유치원>>, *<<꼬마 모모>>, 다나카 고미마사 <<야시의 여행>>, 노사카 아키유키 <<서서 읽으면 안 되는 책>>, <<비록 가와시마 요시코>>
다이칸야마, 시부야 - 노미야마 고지 <<사백 자의 데셍>>, <<셀피시>>, *<<그레이엄 그린 선집 9 (제 3의 사나이, 떨어진 우상, 패자가 모두 가진다>>, *콜린 윌슨 <<현대 살인 백과>>, 이토 히로미 & 우에노 지즈코 <<노로와 사니와>>, 다네무라 스에히로 <<사기꾼 칼리오스트로의 대모험>>
도쿄 역, 긴자 - 팀 오브라이언 <<실종>>, 홋타 요시에 <<다리 위의 환상>>, 무라마쓰 쇼후 <<여경>>, 기시다 리오 <<롱 굿바이>>, 구사카베 엔타 <<정말로 사랑했다면>>, 스다 사카에 <<전후 풍속 천일 야화>>, 쿠사마 야요이 <<신주 사쿠라가쓰카>>
와세다 - 가이코 다케시 <<베트남 전기>>, 요시다 겐이치 <<기묘한 이야기>>, *하야시 후미코 <<삼등 여행기>>, 단 가즈오 <<풍랑의 여행>>, 고보리 진지 <<요괴를 보았다>>, 다나카 고미마사 <<간음문답>>, 한스 헤니 얀 <<열세 가지 으스스한 이야기>>, *<<엘리엇 시집>>, 가이코 다케시 <<시부이>>, <<대화록, 현대 만화 비가>>
아오야마, 덴엔초후 - <<인민 사원>>, 도요시마 요시오 <<에밀리안의 여행>>, *앙드레 지드 <<여인들의 학교>>, 기무라 모토노리 <<영혼이 고요한 때에>>, *<<타고르 시집>>, 오야 소이치 <<세계의 뒷길을 가다 - 남북 아메리카편>>
니시오기쿠보 - 세토우치 하루미 <<다무라 도시코>>, *마르케스 <<사랑과 다른 악마들>>, 다케다 유리코 <<말의 식탁>>, <<도시에 널리 퍼진 기묘한 소문>>, 아유카와 노부오 <<시대를 읽다>>, <<하쿠슈 가요집>>, 나카가미 겐지 <<이야기 서울>>, 다나카 고미마사 <<아아, 수면 부족이다>>
가마쿠라 - 가이코 다케시 <<최후의 만찬>>, 후카자와 시치로 <<고슈 자장가>>, <<브로마이드 쇼와사>>, 오카베 이쓰코 <<부처님과의 대화>>, 다쓰미 하마코 <<손수 기른 나의 요리>>, 다무라 류이치 <<저스트 예스터데이>>, 나가이 다쓰오 <<홍차의 시간>>, 오사라기 지로 <<시인>>
다시 한번 진보초 - 미시마 유키오 <<무예를 숭상하는 마음>>, 쇼와 전쟁문학 전집 11 <<전시하의 하이틴>>, 가미사카 후유코 <<스가모 프리즌 13호 철문>>, 요시카와 에이지 <<남방기행>>

그 외에 확실히 '일반인' 으로서 헌책방을 대하는 시선도 남 같지 않아서 좋았는데, <<노라쿠로>> 전 권을 사는 노년의 신사를 보며, 늙어서 <<유리 가면>> 이나 <<더 파이팅>> 전 권을 한 번에 살 것을 꿈꾸는 장면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일반인 취향이 짙게 느껴져서 더욱 반갑더라고요.

이렇게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고, 무엇보다 헌책방과 헌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결론 내리자면 별점은 4점! 일본 도쿄 소재 헌책방을 주로 소개하고 있으며, 소개된 책방들도 지금은 문을 닫은 곳이 많다는 지역적, 시기적 한계와 소개된 책들 대부분이 미 출간작이라는 이유로 약간 감점합니다. 그래도 저와 같은 취향의 분들 모두에게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저 역시 한때 결혼 전에는 홍대 입구의 '숨어있는 책'을 비롯한 헌책방 투어를 정기적으로 떠났을 때가 있습니다. 당시 이런저런 보물과도 같은 책을 많이 샀었죠. 지금은 결혼 후 이사도 했고, 근처에 헌책방도 없으며, 그나마 가는 곳도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알라딘 헌책방이 전부라 예전과 같은 보물찾기 느낌이 들기는 힘든데 옛날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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