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주 오래된 서점 - ![]() 가쿠타 미츠요.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이지수 옮김/문학동네 |
원제는 "古本道場"입니다. 제목에 걸맞게 작가 가쿠다 미쓰요가 헌책 전문가 오카자키 다케시로부터 헌책에 대한 수련을 받는다는 에세이 모음으로, 오카자키 다케시가 지정한 특정 지역 헌책방에서 '미션' 에 따른 헌 책을 구입하는 여덟 번의 '수련'을 그리고 있습니다. 미션에 따른 가쿠다 미쓰요의 헌책방 투어와 그 결과를 평하는 오카자키 다케시의 글이 한 세트이고요.
가쿠다 미쓰요와 오카자키 다케시의 에세이들은 모두 재미있게 읽어서 별 생각 없이 집어 들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하기사, 재미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하필이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글을 써 버렸으니 이거 참, 재미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죠.
두 명의 저자 중 오카자키 다케시는 헌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론과 의견을 전해주는 '선생님' 역할이고, 가쿠다 미쓰요는 가르침을 받아 따르는 '학생' 역할입니다. 그래서인지 헌책 관련한 이야기는 오카자키 다케시 쪽 글이 더 기억에 남는 게 많네요.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일단 헌책방에 있는 헌책은 '장서'라는 주장입니다. 일반 서점의 책은 반품이 되지만 헌책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주인이 한 권 한 권 구입한 그야말로 '남의 책'이라는 의미로요. 여태껏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고 딱히 신경 써서 책을 다루지도 않았었는데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또 헌책을 가격으로 보지 말라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정꾼이 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최우선으로 고르라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인데 정말 새겨들어야 할 말이지요. 헌책방 투어를 실제 다녀본 경험으로는 절판된 책이나 비싸게 팔 수 있는 희귀본에 더 눈길이 가기 마련이고, 그래서 결국 필요없는 책을 사곤 하니까요. 저도 집에 왠지 귀할 것 같아서 사놓고 안 읽은 책이 많은데, 이 역시 반성해야 할 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고 싶을 때 안 사면 다음은 없다!' 라고도 하니 결국 사는 사람이 신중하게 생각하여 판단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헌책 관련된 이야기는 아닌데, 사진집을 읽고 소장하는 이유를 설명한 글도 근사합니다. '다양한 시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더욱 올바르고 깊게 세계를 이해하려는 무한에 가까운 시도다'라는 소설가 겸 사진작가 가타오카 요시오의 글과 함께, 좁은 시야를 넓히기 위한 용도로 산다고 하는데 그럴듯했어요. 물론 이 정도 의도라면 요새는 인터넷으로 보아도 충분할 것 같긴 합니다만.
이러한 정보 중심의 오카자키 다케시의 글과는 다르게 가쿠다 미쓰요의 글은 헌책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 정보보다는 개인 감상 위주입니다. 그런데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묘하게 정확해서 놀랐습니다. 특히 사물의 본질을 짚어내는 데 능숙해서 확실히 작가는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어요. 설명해 드리기는 어렵지만 저 역시 작가를 꿈꾸는 입장에서 참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가쿠다 미쓰요가 구입한 책들도 볼거리입니다. 일본에서도 오래전에 절판된 책들도 많은 등 국내에서 구하기는 어려운 책들이 대부분이긴 합니다. 국내 출간된 책들도 절판 상태가 많고요. 하지만 소개가 멋진 몇몇 책들은 구해보고 싶어지더군요. 헌책방을 소개한 글에 소개된 헌 책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져야 한다는 것도 뭔가 낭만적이고요. 가쿠다 미쓰요가 구입한 대충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표시가 제가 찾아본 국내 출간작인데, 8권이 전부입니다).
진보초 - 이구치 분슈의 그림책 2권, 에토 준 "개와 나", *"싫어싫어 유치원", *"꼬마 모모", 다나카 고미마사 "야시의 여행", 노사카 아키유키 "서서 읽으면 안 되는 책", "비록 가와시마 요시코"
다이칸야마, 시부야 - 노미야마 고지 "사백 자의 데셍", "셀피시", *"그레이엄 그린 선집 9 (제 3의 사나이, 떨어진 우상, 패자가 모두 가진다", *콜린 윌슨 "현대 살인 백과", 이토 히로미 & 우에노 지즈코 "노로와 사니와", 다네무라 스에히로 "사기꾼 칼리오스트로의 대모험"
도쿄 역, 긴자 - 팀 오브라이언 "실종", 홋타 요시에 "다리 위의 환상", 무라마쓰 쇼후 "여경", 기시다 리오 "롱 굿바이", 구사카베 엔타 "정말로 사랑했다면", 스다 사카에 "전후 풍속 천일 야화", 쿠사마 야요이 "신주 사쿠라가쓰카"
와세다 - 가이코 다케시 "베트남 전기", 요시다 겐이치 "기묘한 이야기", *하야시 후미코 "삼등 여행기", 단 가즈오 "풍랑의 여행", 고보리 진지 "요괴를 보았다", 다나카 고미마사 "간음문답", 한스 헤니 얀 "열세 가지 으스스한 이야기", *"엘리엇 시집", 가이코 다케시 "시부이", "대화록, 현대 만화 비가"
아오야마, 덴엔초후 - "인민 사원", 도요시마 요시오 "에밀리안의 여행", *앙드레 지드 "여인들의 학교", 기무라 모토노리 "영혼이 고요한 때에", *"타고르 시집", 오야 소이치 "세계의 뒷길을 가다 - 남북 아메리카편"
니시오기쿠보 - 세토우치 하루미 "다무라 도시코", *마르케스 "사랑과 다른 악마들", 다케다 유리코 "말의 식탁", "도시에 널리 퍼진 기묘한 소문", 아유카와 노부오 "시대를 읽다", "하쿠슈 가요집", 나카가미 겐지 "이야기 서울", 다나카 고미마사 "아아, 수면 부족이다"
가마쿠라 - 가이코 다케시 "최후의 만찬", 후카자와 시치로 "고슈 자장가", "브로마이드 쇼와사", 오카베 이쓰코 "부처님과의 대화", 다쓰미 하마코 "손수 기른 나의 요리", 다무라 류이치 "저스트 예스터데이", 나가이 다쓰오 "홍차의 시간", 오사라기 지로 "시인"
다시 한번 진보초 - 미시마 유키오 "무예를 숭상하는 마음", 쇼와 전쟁문학 전집 11 "전시하의 하이틴", 가미사카 후유코 "스가모 프리즌 13호 철문", 요시카와 에이지 "남방기행"그 외에 확실히 '일반인' 으로서 헌책방을 대하는 시선도 남 같지 않아서 좋았는데, "노라쿠로" 전 권을 사는 노년의 신사를 보며, 늙어서 "유리 가면" 이나 "더 파이팅" 전 권을 한 번에 살 것을 꿈꾸는 장면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일반인 취향이 짙게 느껴져서 더욱 반가왔거든요.
이렇게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고, 무엇보다 헌책방과 헌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일본 도쿄 소재 헌책방을 주로 소개하고 있으며, 소개된 책방들도 지금은 문을 닫은 곳이 많다는 지역적, 시기적 한계와 소개된 책들 대부분이 미 출간작이라는 이유로 약간 감점했지만, 저와 같은 취향의 분들 모두에게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저 역시 한때 결혼 전에는 홍대 입구의 '숨어있는 책'을 비롯한 헌책방 투어를 정기적으로 떠났을 때가 있습니다. 당시 이런저런 보물과도 같은 책을 많이 샀었죠. 지금은 결혼 후 이사도 했고, 근처에 헌책방도 없으며, 그나마 가는 곳도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알라딘 헌책방이 전부라 예전과 같은 보물찾기 느낌이 들기는 힘든데 옛날이 그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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