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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7

이과장 생존기 - 불량집사 : 별점 2점

사출 업계를 전면에 내세운 장편 웹소설입니다. 자주 찾는 커뮤니티에 작가분이 계신 덕분에 우연찮게 알게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가장 돋보이는건 배경이 되는 사출 업계에 대한 치밀한 조사와 설명입니다. 생산과 영업 정도만 훑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중국 동포와 탈북민 고용 문제, 현장 생산 환경, 원료 수급, 노동자들의 처우와 수당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는 덕분입니다.
또한 단순히 용어나 업계 분위기를 가져다 붙이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그 배경 자체를 이야기의 동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도 좋습니다. 노동 환경 개선 문제나 공장장과의 갈등, 현장 내부의 자체적인 규율,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과 공장 확장, 원료 수급 등의 실제 공장 내 환경이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되어 업계물로서의 현장감은 압도적이라 할 수 있어요.

웹소설답게 호흡도 빠르고 전개도 시원시원합니다. 문장이 어렵지 않고 사건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때문에 가독성도 좋은 편이에요. 실제 기업을 연상하게 만드는 설정 역시 이 소설의 재미를 높여 주는 요소입니다. 남양, 매일유업, 오뚜기(아마도?) 같은 현실 기업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기업 구조와 이해관계를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줍니다. 

주인공의 성공 방식도 나름 인상적입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나 "상남자"처럼 이미 알고 있는 미래를 발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작품의 이과장은 자기 힘으로 성과를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정도 경영과 사원 복지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고, 유튜브를 성공의 도구로 활용하는 설정은 판타지스럽기는 하지만 아주 거슬리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한 철저한 업계 조사가 뒷받침된 덕분이지요. 한성에서 태성으로 자리를 옮긴 뒤, 된장 계량 스푼에서 시작해서 친해진 '본부장'의 절대미각을 살린 '본부장 부대찌게'와 '본부장 커피' 런칭에 힘을 보태 성공을 거두는 부분까지는 읽으면서도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사와 소재가 잘 짜여져 있었거든요.  

그러나 본부장 커피 이후는 솔직히 망작입니다. 그냥 판타지로 전락해 버리는 탓입니다. 게다가 중국 진출 시점부터는 그야말로 가관이에요. 여러 활동을 통해 이과장(이 시점부터는 이사장이지만) 중국에서 일종의 계몽 활동을 펼치다가, 심지어 시진핑 주석까지 만나는 식으로 흘러가는데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현실적인 산업 현장 서사와 기업 성장담이 이 작품의 강점이었는데, 그와는 동떨어지는 황당무계한 전개였습니다. 

등장인물들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인물들이 상당히 전형적이거든요. 이과장은 착하고 정의로운 인물이며, 그의 아내 오세정도 비슷한 결을 공유합니다. 잘생긴 처남 캐릭터는 설정만 놓고 보면 조금 튀는 편이지만, 결국 엄청나게 착한 훈남이라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서사가 길어질수록 캐릭터의 힘이 떨어집니다. 러브라인도 특별한 긴장감이나 설렘을 주지 못해 보는 맛이 약합니다. 이야기 전체가 산업과 경영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 해도, 인물 관계에서 오는 흡인력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훨씬 풍성한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생생함이 탁월한 외국인 노동자나 탈북자를 좀 더 중요하게 썼더라면 독특한 맛이라도 살렸을 텐데 말이지요.
등장인물들의 설정 활용도 아쉽습니다. 대표적인게 이과장의 탁월한 시력에 대한 설정입니다. 처음에는 뭔가 중요한 장치처럼 보이는데, 막상 이야기 전체를 놓고 보면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결말도 영 별로에요. 태성을 대기업으로 키워 내는 쪽으로 끝까지 밀어붙이거나, 반대로 판타지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확실한 방향성을 가졌어야 하는데 일종의 번아웃 상태에서 대충 살기로 마음먹는다는 결말이라서 성공기라는 측면에서도 애매하고 판타지 서사라는 측면에서도 애매해져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허무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업계물로서의 사실감과 가독성, 그리고 국내에서의 성공담이 주는 재미는 분명합니다. 특히 사출 업계에 대한 묘사만큼은 대단한 강점이고요. 그러나 여러 단점들로 인하여 전체적인 만족도는 많이 떨어집니다. 재미가 아주 없는 작품은 아니지만, 선뜻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5/09/14

대우주시대 - 네이선 로웰 / 이수현 : 별점 2점

행성 네리스에 거주하던 이슈마엘 왕은 어머니의 사고사 이후 쫓겨날 위기에 빠졌고, 어쩔 수 없이 '반의반' 몫 선원으로 우주 무역선 로이스 멕켄드릭 호에 탑승했다. 주방보조로 일하게 된 이슈마엘은 주방장 쿠키, 동료 핍을 비롯한 여러 선원들과 친해지며 자신을 발전시키며, 동료들과 함께 무역을 통해 한 몫 잡을 계획을 세워 진행시키는데...

네이선 로웰의 장편 SF 소설입니다. 특징이라면 우주선이 주요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전투나 액션, 모험은 전무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었습니다.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 ‘무역’이라는 비즈니스적 요소를 도입한 덕분입니다. 특정 행성에서 싸게 구입한 물품을 다른 행성에서 비싸게 되파는 식의 간단한 구조이지만, 개인별 운송할 수 있는 무게 제한과 부족한 자금으로 단순 운송을 넘어서는 전략적 사고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가죽 세공이 뛰어난 행성에서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는 벨트를 사고, 벨트를 팔아 얻은 이익금으로 보석 세공이 특화된 행성에서 버클을 구입한 뒤 일부 남은 벨트에 결합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는 식으로요. 물건을 팔기 위해 행성마다 있는 '벼룩 시장'에 출점하는 등의 아이디어도 돋보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우주선 운영과 생활에 관한 세밀한 설정도 좋습니다. 일종의 인턴이라 할 수 있는 ‘반의반 몫’에서 시작해 한 사람 몫에 이르는 직급 체계, 4개의 직무군으로 구분되며 승급을 위해서는 시험을 치르고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정책, 선원들이 선박 운영으로 발생한 추가 이익을 규칙에 따라 분배하는 보수 체계, 남녀 구분이 없는 침실과 넓게 보장된 운동 시설 및 사우나 같은 선내 생활 등 생활 전반이 디테일하게 설계되어 있어 현실감을 더해 줍니다. 앞서 말했듯, 직급에 따라 철저히 관리되는 화물 무게 할당이라는 설정은 무역이라는 소재에 재미를 더해주고요. 이런 점에서는 상세한 설정이 뒷받침된 해양 무역 모험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가 부실하다는 단점은 큽니다. 주인공의 여정이 지나치게 순탄한 탓입니다. 행성 네리스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곧바로 로이스 멕켄드릭 호에 승선할 기회를 얻고, 첫 임무인 커피 맛 개선도 무난히 해내며, 친구 핍 덕분에 행성간 무역의 요령을 빠르게 익혀서 곧바로 큰 수익을 내는 식이거든요. 실패가 없어요. 주변 인물들 또한 무개성에 모두가 주인공을 돕는 선한 사람들로만 그려져 인간 관계에서의 갈등도 찾을 수 없고요. 우주 공간 항해에서의 위기 역시 전무합니다. 때문에 작 중에서 긴장감 있는 드라마는 찾기 어렵습니다. 전생 지식을 활용해 무쌍을 찍는 이세계 전생물조차 이 정도로 무탈하지는 않을 거에요. 

무엇보다 큰 문제는 국내 번역이 1권에서 멈췄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막 무역 협동조합을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이야기가 끊겨 버리니 독자로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설정의 디테일과 무역 묘사의 신선함은 분명 장점이지만, 완결되지 못했다는 치명적 문제 탓에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

2025/08/30

아르테미스 - 앤디 위어 / 남명성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즈 바샤라는 월면 도시 아르테미스 빈민가에서 밀수까지 행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중, 거래상대 트론으로부터 거액을 줄테니 암석 수확기를 고장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트론이 알루미늄 공장을 손에 넣기 위함이었다. 거액에 넘어간 재즈는 여러가지 장비를 준비해 수확기 파괴에 나섰지만 들통나서 계획은 실패했다. 죽을 뻔한 위기도 넘기고 겨우 아르테미스로 돌아온 재즈는 트론이 살해당했고, 자신도 표적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조사에 나선 재즈는 ZAFO라는 이름의 혁신적 광섬유 생산을 노린 음모가 배후에 있다는걸 밝혀내는데...

"마션"으로 유명한 앤디 위어가 2017년에 발표한 장편 SF 소설입니다. 가장 큰 장점은 과학적인 이론에 기반을 둔 치밀한 설정입니다. 월면 도시 설정이야 새로울 것도 없지만, '아르테미스는 기압이 지구의 20%라 순수산소를 사용하고, 물은 61도에서 끓어서 커피가 맛이 없다, 경찰과 병원이 없고 보안부가 범죄자를 직접 처벌하며 심각한 범죄에는 추방을 적용한다, 법과 도덕 기준은 느슨하고, 낮은 중력 덕분에 관광객들이 색다른 경험을 위해 매춘을 찾는 경우도 있다. 산소는 알루미늄 제련 과정에서 남아돌아서 알루미늄 제련 공장은 이를 공급하는 대가로 전기료를 면제받는 계약을 맺고 있다, 화재는 가장 위험한 사고로 꼽히며, 모든 시설이 이를 피하기 위해 설계되어 있다...' 처럼 바탕이 되는 세세한 세계관 묘사는 실로 대단한 수준입니다.

이 설정들은 사건 전개에도 적극 활용됩니다. '고가의 소재 ZAFO는 중력이 낮은 곳에서만 만들 수 있다, 아르테미스의 통화인 슬러그는 규제를 받지 않고 추적도 불가능하다'는게 핵심이거든요. 즉, 마피아는 슬러그를 이용해 돈 세탁을 하려고 별로 이익도 나지 않는 알루미늄 공장을 월면에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트론은 ZAFO 생산을 위해 원료가 되는 유리, 규석을 만들 수 있는 이 공장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수확기 파괴를 지시한 것이지요. 수확기가 파괴되어 공장 가동이 멈추면, 공장과 아르테미스 간 산소와 전기를 교환하는 계약이 끝날테고, 그 때 자신이 몰래 확보한 산소를 공급해서 그 자리를 차지할 속셈이었습니다.
이렇게 트론이 마피아 소유인걸 알면서도 알루미늄 회사를 노린 이유를 재즈가 추적하여 진상을 밝히는 과정은 작가의 전작과 다르게 잘 짜여진 범죄 스릴러 느낌도 전해주는데, 설득력 높은 이유 덕분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용광로 폭발로 대량의 산소와 메탄이 반응해 클로로폼이 생성 및 아르테미스로 유입되어 주민들이 기절하는 위기도 과학적 설정을 이야기에 잘 녹여 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르테미스에는 차량이 없어 큰 사고는 없었고, 낮은 중력 덕분에 갑자기 쓰러져도 부상자가 적었다는 결과도 월면 도시 설정을 잘 활용한 것이고요. 

작가 특유의 모험물적인 분위기도 잘 살아 있습니다. 재즈가 수확기 파괴에 나섰다가 들통나서 실패한 뒤 길드로부터 도주해 다시 아르테미스에 잠입하는 과정, 범죄 조직의 추격을 피해 도주하면서도 진상을 알아내는 과정, 결국 도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공기를 순환시키려는 과정이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이 과정이 여러가지 과학적인 설정과 함께라는 점도 큰 장점이에요.  

하지만 이야기는 허술한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공장 용광로를 파괴한 후 트론의 딸 레네가 공장을 차지하게 만든다는 마지막 계획은 무리가 있어요. ZAFO가 그렇게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신소재라면, 전기를 공짜로 공급받지 않아도 공장을 유지하는게 당연히 유리하니까요. 마피아 조직이 선선히 공장을 넘겨주고 손을 뗄 이유가 없습니다. 거대한 폭발 후 공장이 멀쩡할 가능성도 낮고요.
용광로 옆의 대량의 산소와 메탄이 있다는걸 미리 알고도 무시하는 전개, 재즈가 아버지 작업장을 날려버린 일을 속죄하기 위해 돈을 벌었다는 결말도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결말은 정말 영 아니었어요. 재즈가 평범한 밀수꾼이아니라 실은 아르테미스의 밀수품을 전부 관리하는 우두머리였다는 건데 어처구니가 없었거든요. 한 도시 밀수 조직의 우두머리가 돈 몇 푼 벌려고 아둥바둥한다는 앞 부분 설정은 대관절 뭔지 모르겠어요. 경쟁자를 어떻게 제거했는지도 설명이 없고요. 밀수품을 잘 관리하겠다는걸 약속하여 행정관과 거래해 추방을 면한다는 것 역시 현실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묘사와 모험적인 전개 덕분에 읽는 재미는 충분하지만, 완성도는 전작에 비해 떨어집니다. 심심할 때 가볍게 읽기에는 무난하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만큼은 아닙니다.

2025/06/06

노인의 전쟁 - 존 스칼지 / 이수현 : 별점 2점

“맹세코 그놈을 때려눕히려고 했다니까. 월드시리즈 우승도 한번 못하고 200년이 지났으니 컵스는 마이너리그로 강등 시켜야 한다지 뭔가."

75세를 맞은 존 페리는 사랑했던 아내 캐시와 사별한 뒤, 미련을 버리고 '젊은 육체'를 준다는 우주개척연맹(CDF)에 입대했다. CDF는 외계 생명체로부터 우주 식민지를 보호하는 군대로, 외계에서 구한 최신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젊고 강화된 육체를 갖게 된 존 페리는 혹독한 훈련을 거쳐 방위군에 복무하게 되었고, 특유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전쟁 영웅으로 거듭나는데...

SF 독자라면 한 번쯤 들어보있을 유명작입니다. 미국 작가 존 스칼지의 데뷔작으로, 읽은지 제법 되었는데 리뷰가 늦었네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75세 이상의 노인들이 입대하면 최신의 젊고 강하며 잘생긴 육체로 바꾸어준다는 설정의 참신함입니다.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늙어가고 있는 저 자신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설득력 역시 무척 강하게 느껴졌어요. 물론 최전선에서 외계인과 전투를 벌여야 하는데 제대가 가능한 10년 뒤의 생존율이 25%에 불과하고, 두 번 다시 지구 땅을 밟을 수 없다는 조건이 붙지만, 어차피 더 잃을 게 없다면 충분히 걸어볼 만한 도박이니까요. 아마 저도 가족에 대한 미련만 없다면 입대했을거에요.

젊은 군인으로 거듭난 존 페리가 같이 입대한 전우들과 훈련을 받는 장면도 생생합니다. 월남전을 다룬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악덕 상사 루이즈의 입담이 돋보였는데, 특히 젊었을 때 광고 문구를 썼던 존 페리와 루이즈 상사 간의 추억담 티키타카가 백미였습니다. 왜 상사들은 이렇게 입담이 좋은걸까요? 사뭇 궁금합니다.

훈련 후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외계 종족과의 전투도 흥미롭습니다. 지구인보다 앞선 과학 문명을 지녔지만 독특한 종교관으로 인해 전면 전쟁을 벌이지 않는 콘수 종족의 설정은 이렇게 소비되기에는 아까울 정도였어요. 3부 마지막 코랄 행성 전투에서, 어떻게 코랄인들이 도약 추진한 전함의 위치를 파악해 타격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와 대응안도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고요. 콘수인이 관련 기술을 전해 주었지만 협상을 통해 기기 한 대만 전달된 것이 확인되어, 이를 파괴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하는 전개가 기승전결이 완벽하여 몰입도를 높여주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단점 또한 분명합니다. 우선, 젊어져서 훈련을 받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전형적인 SF 밀리터리물에 불과해져 버리고 맙니다. "스타쉽 트루퍼스"가 바로 떠오르더라고요. 이 과정에서 노인이었던 전생의 경험과 기억이 뭔가 역할을 해 준다면 독특함을 이어갈 수 있었을텐데,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이는 존 페리가 전쟁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의 비현실성을 높이는 데에도 한 몫 단단히 합니다. 한 번 죽을 뻔했지만, 그 외에는 영웅이 되기까지 탄탄대로인데, 이를 설득력 있게 만들려면 지구에서의 전생이 관련되어야 했습니다. 다른 군인들도 모두 노인이었던건 마찬가지니, 정말 독특한 경험과 기억이 있었다는 설정이었다면 좋았겠지요. 예를 들어 프로 바둑 기사라서 전략적으로 대국을 볼 줄 알았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전개도 후반부로 가면 처집니다. 여러 행성에서 벌어진 전투가 단편 에피소드처럼 나열되는 탓입니다. 게다가 사별했던 아내 캐시가 ‘제인’이라는 클론으로 되살아났다는 설정은 최악이었습니다. 지구의 그 누구라도 클론으로 되살릴 수 있다면 굳이 노인들을 징집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냥 시체를 수거해 육체를 복제하면 될 일입니다. 같은 이유로 초반부에 젊어지는 시술을 받기 직전 지병으로 사망한 존 페리의 룸메이트 디크는 왜 되살려 클론으로 만들지 않은걸까요? 그냥 존 페리의 러브라인과 해피엔딩을 위한 사족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초반 설정은 흥미롭고 몰입도도 높았지만, 이후의 전개가 전형적이고 개연성에서도 아쉬움이 커서 감점합니다. 후속권이 있던데 더 읽어보지는 않을 듯 합니다.

2025/04/11

거짓과 정전 - 오가와 사토시 / 권영주 : 별점 4점

거짓과 정전 - 8점
오가와 사토시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SF 대상을 수상했던 떠오르는 작가 오가와 사토시의 단편집입니다. 표제작인 "거짓과 정전" 외에도 "마술사", "시간의 문", "한 줄기 빛", "무지카 문다나", "마지막 불량배" 등 현실과 환상, 과학과 감성이 절묘하게 섞인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작가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SF적 설정과 기발한 아이디어와 만나 매우 신선한 재미를 준다는 점입니다. 시간 여행을 마술 무대와 연결한 "마술사"부터 그러합니다. 마술에 대해 현실적이며 설득력있게 묘사하다가, 시간을 넘나드는 마술을 '타임머신'과 결합시켜 의외의 결말로 이끄는 솜씨가 정말 탁월합니다.

유행이 사라진 세상에서 유행의 의미를 되짚는 "마지막 불량배", 과거로 정보를 보내 세계를 조정하는 냉전 시대의 첩보극 "거짓과 정전"도 모두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품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불량배"는 유행과 취향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어,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소비에 대해 많은걸 생각하게 해 줍니다. 예전처럼 하나의 앨범도 신중하게 고민하고 구입한 뒤, 그 앨범을 반복해 들으며 취향을 만들던 시대를 지나, 지금은 그런 고민없이 모든걸 쉽게 소비하는 세상이 되어 '취향'이라는게 사라지는 세상이 되었다는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거든요. 지금의 취향은 내가 아니라 인터넷이 만들어주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SF 외에도, 일상 속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들도 돋보입니다. "한 줄기 빛"은 아버지가 남긴 경주마의 계보를 따라가며 자아를 발견하는 성장물인데, “서러브레드가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이유는 생명의 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깁니다. 조금 상황은 다르지만 안도현 시인의 시 -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무지카 문다나"에서는 음악이 화폐인 섬을 배경으로,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되는 과정을 감성적으로 풀어냅니다. 다이가의 아버지는 훌륭한 음악(다이가)을 듣기 위해 자신의 최고 걸작을 남겼지만, 다이가를 들은 뒤에는 음악을 포기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이가는, 스스로 '다이가'를 듣기 위해 포기했던 음악을 다시 시작할걸 결심하고요. 음악을 포기한 다이가에게 이 비밀을 알려주면 음악을 다시 시작하리라 여겼던 아버지의 배려(?), 그리고 미워했던 아버지의 속셈을 알면서도 속는 다이가의 모습이 짠합니다. 이처럼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인간의 감정을 밀도 높게 다루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이야기 자체의 재미도 뛰어납니다. "마술사"에서 시간여행은 실제로 일어났는지, "한 줄기 빛"에서 아버지의 꿈은 이루어졌는지, 템페스트, 레티시아는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등을 따라가면서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추리적인 요소도 흥미롭습니다. "시간의 문"에서 오펜하임이 1932년 7월 31일, 나치당에 투표했을지?를 물어보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전날밤 오펜하임은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켄타우루스 자리를 보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독일 본토로 돌아가 투표할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건 교묘한 전개 능력도 한 몫 단단히 합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결합되어 의외의 결론으로 향하는 "거짓과 정전" 처럼요. 작품은 엥겔스의 재판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바로 다음에 80년대 CIA 모스크바 지국 정보원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결국 두 이야기가 결합되며 마무리되는데 기발하고 교묘하게 잘 짜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수록된 모든 작품이 동일한 수준은 아닙니다. "시간의 문"은 우화에 가까운 작품으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개나 반전이 평이해 다소 뻔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또한 SF적 설정으로 보자면, "거짓과 정전"을 제외하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단지 상징적인 장치로 사용된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의 문"에서의 기억 조작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우화적 도구에 가까우며, 인물의 존재가 사라지는 설정도 설득력 있는 논리로 뒷받침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몇몇 명쾌하지 않은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마술사"에서 정말 타임머신을 만들었는지, 시간여행의 모순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거짓과 정전"의 '정전의 수호자'들이 역사 수정을 방지한다는 진상도 방법적으로는 잘 모르겠고, 설정도 과거 "타임캅"류의 타임 패러독스 방지물과 별다르지 않아서 시시했어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SF적인 상상력과 서정적 감성이 잘 결합된 작품들입니다. 일부 아쉬운 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몰입감 있고, 인상적인 독서 경험을 선사합니다. 아직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5/02/15

A하라 죽이기 - 도미나가 미도 / 김진환 : 별점 2점

A하라 죽이기 - 4점
도미나가 미도 지음, 김진환 옮김/라곰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능한 웨딩플래너 미노 탓에 결혼식이 엉망이 되어 버린 슈헤이, 시에리 부부는 하르모니아 호텔 예식부에 강하게 항의했다. 예식부는 창업주 아들인 미노의 잘못을 다른 플래너 아이하라에게 전가시켰다. 그러나 이는 인플루언서 시에리와 그녀의 친구 키미에의 SNS를 통한 비난을 불러왔고, 아이하라에 대한 악소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제대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린 아이하라를 회사는 전혀 지켜주지 않았고, 아이하라는 친구와 지인, 그리고 변호사 쿠인의 도움으로 맞서 싸울 것을 결심했다...

일본 최대 라이트노벨상 ‘인터넷소설대상(제9회)’수상작이라고 해서 읽게 된 작품. 온라인 범죄 관련 장르 문학이라고 생각했는데, 법정물 성격이 약간 있지만 평범한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SNS, 온라인에서 '#A하라를용서할수없다'는 해시태그가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아이하라가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 고립되는 과정 묘사는 볼 만 합니다. 회사는 결혼식을 망친 원흉인 미노를 창업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철저히 보호하면서, 오히려 아이하라를 공범으로 몰아가며 비난의 화살을 그에게 돌리거든요. SNS에서 아이하라를 향한 비난이 거세지지만, 회사는 아이하라를 방패막이로 삼아 책임을 떠넘기고 전혀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는 경찰의 지시와 아이하라의 도움 요청도 무시하고요. 결국 아이하라는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고용하여 싸우게 되는데, 여기까지의 상황이 아주 상세하며 아이하라는 아무 죄도 없다는게 잘 설명되어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억울해서 미칠 지경인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는 덕분이지요.
아이하라가 쿠인 변호사의 도움으로 진행하는 법적 조치도 볼 만 했습니다. 회사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면서 필요한 자료, 고용 문제 및 진단서 등에 대한 설정이 꼼꼼하게 그려져 있고, 300만엔이라는 청구 금액도 이치에 합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디지털 마녀사냥의 폐해를 다룬 다른 기존 작품들과 비교할 때, 특별히 차별화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두드러지는 독창적인 시각이나 새로운 접근이 없는 탓입니다. 아이하라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슈헤이 부부와 키미에에게 사과를 받는 과정은 지나칠 정도로 무난했고요.

무엇보다도 결말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법정 다툼이 시작되기 직전에서 이야기가 끝나버려서,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인 미노와 회사로부터는 어떠한 반성도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열린 결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더욱 철저한 권선징악의 방식으로 결말을 맺었다면 더욱 만족스러웠을 것입니다. 최소한 발암 물질 미노는 철저하게 응징받았어야 했습니다. 슈헤이 부부와 키미에 역시 단순 사과로 끝낼 일은 아니었다 생각되네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SNS 마녀사냥과 회사의 부조리한 대응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점은 인상적이지만, 유사한 주제를 다룬 기존 작품과 차별성이 크지 않고, 결말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점이 아쉬워 감점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추리'와 관련된 장르 문학이 아니라는 점에 실망하기도 했고요. 특별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4/09/07

오렌지와 빵칼 - 청예 : 별점 2점

오렌지와 빵칼 - 4점
청예 지음/허블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벗어나지 않게 순종하며, 도덕적으로 완벽한 삶을 따라하며 모든걸 속으로 삭이며 살아가는 유치원 교사 오영아는 심리 상담을 통해 전두엽 기능을 일부 조절하는 시술을 받았다. 그 뒤 영아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고, 억압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모든 금기를 범하며 엄청난 쾌락을 얻는다. 그러나 시술 효과는 4주만 지속될 뿐이었다.

통제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금기를 범하는, 도덕에 반하는 행동(배덕의 맛)은 쾌락을 주지만 이는 마약과 같다는 설정의 일상 심리물. 

뇌를 건드려 사람이 변모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많습니다. 전두엽 절제로 멀쩡한 사람을 로봇처럼 만든다던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혹성탈출 1" -, 아니면 바보를 천재로 만드는 - "앨저넌에게 꽃을", "론머맨" - 식으로요. 이 작품처럼 자기 통제를 없애는 설정은 뇌 조작으로 사악한 범죄자를 사회 규범에 충실하게 만드는 "시계 태엽 오렌지"의 반대 버젼이고요. 사회 비판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도 비슷합니다. 다들 자기가 옳다고 믿지만, 그걸 타인에게 강요하는건 잘못되었고 이런걸 추종하지말고 자기 자신의 뜻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내용이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자기 통제, 죄의식을 없애는 설정이라면 SF나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에서 완벽한 군인이나 범죄자, 혹은 킬러를 만들 때 써먹음직 한데, 이를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풀어나간건 분명한 차별화 요소입니다. 사회 비판적 요소도 공정무역, 환경보호와 친환경, 기부 등과 같은 일상과 맞닿아 있는 소소한 것들이라 신선했어요. 이런 작품이 체제와 제도의 비판을 하지 않는건 거의 처음 본 것 같네요.
덕분에 신선한 느낌은 충분히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온갖 통제에 얽매여 살아가는 오영아의 답답한 모습에서,시술 후 통제를 다 부숴버리고 자신을 힘들게 했던 주변인들을 날려버리는 모습으로 변모하는 묘사는 통쾌했고요.

그러나 통제를 벗어난 상황에서 극도의 쾌락을 느낀다는 핵심 설정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왜 쾌락을 느끼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한 탓입니다. 자기 통제가 강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오영아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상황인지도 모르겠고요. 영아의 연인 수원도 피실험자로 영아를 희생양삼아 공짜 시술을 받은 듯 한데, 평상시에 철저한 자기 관리와 영아에 대한 지극정성을 보여준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수원이 은우의 친부였다는 일종의 반전도 그다지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식의 결말도 아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어딘가의 추천에서 접해서 읽어보았는데, 저는 그닥이었습니다. 기대했던 '장르 문학'은 아니었던 탓이 가장 큽니다.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4/09/06

트레몬의 모험 - 로버트 바 / 남원우 : 별점 1점

트레몬의 모험 - 2점
로버트 바 지음, 남원우 옮김/단한권의책

전 재산을 미국인에게 사기당해 잃은 뒤, 나가사키에 머물며 자신을 구해줄 인연을 기다리고 있던 트레몬 눈 앞에 미국의 대부호 헴스터 씨의 요트가 나타났다. 트레몬은 헴스터 씨와의 면회로 그의 비서로 고용되었다. 트레몬이 외교 쪽 연줄이 있고, 여러 외국어에 능통했던 덕분이었다. 햄스터 씨의 딸 거트루드의 허영심 충족을 위한, 각 나라의 왕들을 만나려는 여행 목적을 이루기 위해 트레몬은 연줄이 있던 코레아의 황제를 만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항해 도중, 그리고 황제 알현 중에 거트루드의 오만방자함과 철없음으로 분란이 일어났지만, 트레몬은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헤쳐나가며 헴스터 씨가 보호해 왔던 헴스터 씨 친구의 딸 힐다 스트레톤과 연인이 되었다.

외젠 발몽 시리즈로 유명한 로버트 바의 역사 모험 연애 소설. 
여자 마음을 가지고 놀 줄 알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영국식 화법의 귀재 트레몬의 입담은 볼만했습니다. 말 안 듣는 여자는 때려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신기했고요. 지금 시점에서는 당연히 말도 안되는 발상이지만, 솔직히 작품 속 거트루드 헴스터는 맞아도 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원본에서 각색이 이루어진 듯 한데, '코레아'가 무대라는 점도 독특했어요.

그러나 재미는 입담 뿐입니다. 내용은 유치했고, 정교하지도 못합니다. 기껏 거트루드를 납치한 코레아의 황제가 그녀를 선뜻 순순히 다시 보내준다는 결말이 특히 어처구니 없었어요. 거트루드가 평소의 패악질을 궁 내에서도 부려서 못이겨 쫓아낸다는 설명 정도는 덧붙여줬어야 했습니다. 
 트레몬을 사기쳐 먹었던 미국인 사업기 캐머포드가 거트루드와 결혼하는 결말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연애물에서 가장 중요할 둘 사이의 빌드업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초반에 거트루드에게 마음이 있어 보였던 트레몬의 마음이 힐다에게로 쏠리는, 심지어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청혼부터 하는 급작스러운 전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에서 헤이스팅스의 뜬금없는 청혼과 굉장히 비슷했는데, 당시 영국 남자들의 사고방식이었나 봅니다. 빌드업 따위는 건너뛰고 돌직구를 한복판에 던지는 상남자들!

더 큰 문제는 코레아와 고종 황제의 등장입니다. 후진적이며 남성 중심의 강압적 문화라는걸 강조하는 요소일 뿐더러, 명성 황후 시해 사건가지 집어넣었는데 이건 정말이지 최악 오브 최악이에요. 황후가 무도한 외국 세력에게 살해당했는데, 황제는 여자에 미친 나머지 납치까지 해서 새로 후궁을 들일 생각만 하는 상황으로 그려지니까요. 이 정도면 각색자가 고종에 대한 원한에 사무친게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각색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 그냥도 수준 이하인데, 불필요했던 각색으로 읽을 가치가 전무한 쓰레기가 되어 버렸네요.

2024/02/10

아이를 빌려드립니다 - 알렉스 쉬어러 / 이혜선 : 별점 2점

아이를 빌려드립니다 - 4점
알렉스 쉬어러 지음, 이혜선 옮김/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인간이 노화를 극복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아이가 거의 태어나지 않게 된 미래. 태린은 그를 도박에서 땄다는 디트 삼촌에 의해 아이 대여 사업에 이용되어 왔다.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시간당 대여 후 돈을 받는 사업이었다. 디트는 태린이 영원히 아이의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불법인 '피피 수술'을 시킬 계획을 세웠다.
수술을 거부해왔던 태린은 수술 직전에 간신히 탈출했지만, 갈 곳이 없어 자살을 결심한 찰나 다행히 친부모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알렉스 쉬어러의 SF 소설. 인간이 과학과 의학의 도움으로 평균 수명을 200살 이상으로 늘리고, 외모 변화도 40이후 없는 세상이 되자 그 반동으로 아이가 태어나지 않게 되었다는, "칠드런 오브 맨"과도 유사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나름대로의 상상력으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아이가 귀해서 아이를 잠깐이나마 빌려주는 사업, 심지어 아이들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는 수술까지 성행한다는 핵심 설정은 재미있었고, 학교가 없어졌으며 산부인과 의사가 직업을 잃었으며 거리에 나온 갓난아기가 군중의 주목을 잡아 끈다는 등의 설정과 묘사도 괜찮았습니다. 저출산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모습이 살짝 겹쳐지네요.
태린 시점의 디테일한 심리 묘사로 이루어지는 전개도 긴장감을 전해줍니다. 디트 삼촌에게 혹사당하며 '오후의 아이'가 되어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아이 행세를 하고, 심지어 거금에 팔려 애완동물처럼 지내다가 피피 수술을 받기 직전까지 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리고 끔찍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SF 소설로 보기에는 좀 부족합니다. 아이가 없어진 세상에 대한 설정을 과학적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탓입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과학과 의학이 발전했다면, 인공 수정으로 충분히 임신이 가능한데, 그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과학보다는 종교적인 사상이 근간이 된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감히 신의 영역을 건드려서 천벌을 받은 것이며, 노화 방지 시술을 받지 않은 태린의 부모는 임신과 출산이 가능했다는 설정이 이를 증명합니다. SF보다는 약간 이런 쪽(?) 계열 소설로 보이기도 하네요.
다른 설정들도 합리적이지 못한건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인게 피피 수술입니다. 태린이 피피 수술을 받았다 한들, 태린이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 디트 삼촌이 태린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단 몇 년을 더 벌기 위해 거액의 수술비를 낸다는건 이해하기 힘들어요. 차라리 수술비를 모아서 정착하는게 나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출구를 잃은 태린 앞에 유괴범인줄 알았던 남자가 나타나는데, 그는 태린의 친부라서 태린을 가족이 있는 집으로 데려와 행복을 찾게 만든다는 결말인데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사전에 복선이라던가, 관련된 정보 제공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급작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어요. 이 정도면 거의 "소드 마스터 야마토"급 결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개도 디트 삼촌의 사업과 관련된 태린의 심리 묘사는 반복적이라 지루한 등의 문제가 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부분도 있지만, 결말까지 잘 이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청소년 소설로 유명하던데, 성인들이 읽을만한 장르 소설은 아닙니다.

2024/01/26

수상한 진흙 - 루이스 새커 / 김영선 : 별점 2.5점

수상한 진흙 - 6점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창비

우드리지 사립학교에 다니는 타마야는 친한 이웃 오빠 마셜과 평소에 다니지 않던 숲 속 '지름길'로 하교하던 중 문제아 채드와 마주쳤다. 채드는 마셜을 미워해서 때리기 시작했고, 타마야는 근처에 있던 진흙을 잡아 채드 얼굴에 문지르고 마셜과 함께 도망쳤다. 그런데 그날부터 타마야의 손에 원인모를 발진이 일어났고, 다음날 채드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타마야는 홀로 채드를 찾기 위해 숲으로 향했다. 진흙에 빠지는 악전고투 끝에 도와주러 온 마셜 오빠와 함께 채드를 구해 내었다.
사건의 원인은 에르고님이라는 유전자 조작 생명체의 변이가 발생하여 퍼진 탓이었다. 지역 주민들도 전염되면서 필라델피아 전체가 봉쇄되었지만, 결국 치료제 개발이 성공하여 타마야, 채드 등은 건강을 되찾았다.


딸의 논술 교재로 숲에서 탈출하는 타마야 일행을 그린 모험 소설이자, 유전자 조작 생명체 '에르고님'이 변형을 일으켜 인간에게 감염되는 재앙을 그린 재난 소설. 원인모를 발진이 일어나면서부터, 그리고 숲에서 진흙이 퍼지며 고립되지만 탈출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서스펜스가 괜찮습니다. 장르물로는 충분한 재미를 갖추고 있어요.
감염을 일으키는 진흙이 대체 에너지 연구를 통해 비롯되었다는 설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꽤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탄탄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으며, 아주 낮은 확률이더라도 인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대체 에너지가 필요할까?와 같은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었기 때문이에요. 정답은 없는 질문이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은 일본에서의 대형 사고 이후에도 연구와 설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아무리 많더라도 다른 대안들보다는 그래도 안전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이겠지요. 이 책의 에르고님처럼 자동 생산에 (자가 분열에 따른 증식) 생산 일정도 짧다면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겁니다. 변이가 일어날 수 있는 생물학적 방안보다는 명확한 과학적 방안이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여튼 재미도 쏠쏠하고 담고있는 내용도 나쁘지 않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단, 어른이 읽을만한 책은 아닙니다. 어른용이었다면 진흙이 광범위하게 마을을 포위하여 마을은 고립되고, 감염병도 많이 퍼져서 채드를 비롯한 여러 명이 처참하게 죽었겠지요. "BM 넥타"가 퍼진 일본처럼요. 결말도 이 책처럼 해피 엔딩은 아니었을겁니다!

2024/01/13

로봇 소년, 학교에 가다 - 톰 앵글버거, 폴 델린저 / 김영란 : 별점 3점

로봇 소년, 학교에 가다 - 6점
톰 앵글버거.폴 델린저 지음, 김영란 옮김/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맥스가 다니는 뱅가드 중학교에 로봇 퍼지가 등교하게 되었다. 퍼지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로봇 통합 프로그램(RIP)의 핵심으로, 기술적 기반인 퍼지 논리를 발전, 완성시키기 위해 학교에 보내진 것이었다. 하지만 퍼지는 등교 첫날부터 시끌벅적한 복도를 걷다가 먹통이 되고 말았다. 연구팀은 퍼지를 완성시키기 위해 맥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맥스의 도움과 퍼지 스스로의 프로그래밍으로 퍼지는 진짜 '인간'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편 뱅가드 중학교를 철저히 관리하는 인공지능 바바라 교감은 맥스를 퇴학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맥스가 장래 학업을 방해하는 위험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알게 된 퍼지는 맥스를 돕기 위해 자신의 전력을 다한다....


딸 아이의 논술학교 교재입니다. 별 기대없이 읽어보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인공 지능의 발전과 '인간성'이 어떻게 비롯되는지, 그리고 인공지능에 '인간성'이 타당한지 등의 심각한 주제들을 인공지능 두 개를 통해 이야기로 잘 풀어나간 덕분입니다.
인공지능의 하나는 바바라, 또 하나는 퍼지인데 바바라는 일체의 오류를 허락하지 않는 수학적인 연산 기계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결론에 맞게 상황을 조작까지 하지요. 이로써 인간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기계는 전형적인 흑백논리에 의해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반면 퍼지는 오류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성장해나가면서 점차 인간적인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즉, 사람은 실수를 하지만 이를 통해 성장하며 어른이 된다는걸 퍼지를 빌어 알려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고요. 반면 인간성은 인공지능, 로봇으로서는 필요한건 아니었기에, 인간의 명령을 듣지 않는 문제도 일으킵니다. 
이렇게 어느 쪽이 옳다는걸 확실히 알려주지는 않는 것과 이러한 퍼지의 반항(?)이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이어지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잘 짜여진 느낌이에요. 인간성을 갖춘 퍼지보다는, 말 그대로 주어진 명령에 충실한 바바라야말로 훨씬 군대에 적합한 인공지능임에는 분명하기도 하고요.

바바라가 학업 성과를 올리기 위해 중학교 아이들을 통제 대상으로 삼는 설정도 인상적입니다.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그럴듯하게 설명해주는 덕분입니다. 
퍼지가 함정에 빠진 맥스를 돕기위해 벌이는 여러가지 활약, 맥스와 친구들의 활약이 그럴듯해서 모험 소설로도 괜찮습니다.

물론 '퍼지 이론'은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은 이론이기는 합니다. 냉정한 전자 계산기같은 기계와 인간의 마음을 가진 로봇의 대결도 친숙한 소재이며, 로봇이 학교를 통제하는 것 역시 "폭력 교실 1999"가 바로 떠오를 정도라 신선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중국 회사임이 분명한 로봇 회사 순쭈사의 산업 스파이는 등장하지 않는게 좋다 싶을 정도로 불필요한 설정이었고요.
무엇보다도 끔찍한 표지 일러스트와 유치한 제목은 최악입니다. 원제 (Fuzzy)를 살리고 보다 고급스럽게 디자인을 바꾸는게 높을거에요. 요새는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좋은 디자인이 뭔지 잘 아는 시대이니까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3/09/15

꽃밥 - 슈카와 미나토 / 김난주 : 별점 2점

꽃밥 - 4점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예문사

공포 소설에 가까운 환상 소설 <<도시전설 세피아>>로 접했던 작가 슈카와 미나토의 단편집. 몰랐는데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수상 이력이 중요한건 아니지만, 흥미가 생겨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부 주인공 화자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오사카 변두리 어딘가에 있는 서민가 뒷골목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웃간 소통이 많고, 아이들끼리는 항상 어울려 놀곤 했던, 우리나라로 따지면 <<검정 고무신>>이 떠오르는 그런 시대 그런 거리입니다. 이 거리에서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이 접하게 된 다소 기이하고 환상적인 경험들이 그려지는데, 환생, 성불하지 못한 영혼과 같이 뻔한 것도 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서정적인 묘사는 나오키 상을 수상할만하다 싶고요.

그런데 소년, 소녀가 묘한 경험을 한 뒤 한 뼘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이 겪은 경험은 기억에 깊숙한 자국을 남기기는 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뻔하지 않아서 좋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래서 어쩌라고?'처럼 기승전결없는 단순한 추억담이에요. 그들이 겪은 기묘한 경험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고요.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으려던 작가의 의도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답답했습니다. 별다른 설명없이, 기승전결없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미쓰다 신조의 괴담물과 별로 다를게 없어요. 결말은 명확해서 괴담물보다는 이야기로서 완성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결말은 모두 추억과는 별 관계가 없어요....
무엇보다도 추리물도 아니고 호러도 아닙니다. 장르 문학 팬이 평가할만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포일러를 알아봤자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요.

<<꽃밥>>
초등학생인 여동생 후미코가 열병을 앓고 난 뒤, 스물 한 살 때 살해당한 시게타 기요미라는 여자의 환생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기요미의 집을 보러가자고 졸라서, 나는 후미코를 데리고 히코네라는 동네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요미의 아버지가 딸이 살해당할 때 튀김을 먹고 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곡기를 끊었다는걸 알게 된 후미코는 기요미가 어릴 때 만들었다는 꽃으로 만든 밥을 기요미의 아버지에게 전해준다...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는 표제작. 후미코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초, 중반부는 사뭇 흥미진진했습니다. 후미코가 노트에 시게타 기요미 가족 이름을 써 둔 것, 어린 아이임에도 보이는 기묘한 행동들로 공포물스러운 느낌을 전해주거든요. 약간 <<오멘>> 같은 분위기였달까요?
아직 어리지만 여동생을 끔찍히 아끼고 가족으로 여기는 나의 모습을 통해서, 가족과 추억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이런 부분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하지만 환생임을 밝히고 난 뒤, 아버지에게 꽃밥을 전해준다는 최루성 가족 드라마스러운 전개는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너무 뻔했어요! 결말도 예상대로였고요. 뻔하고 무난한 탓에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도까비의 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도쿄에서 오사카 서민촌으로 이사온 나 (유키오)의 주변에는 또래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중 모두가 은근히 따돌리던 한국인 형제가 있었다.
나는 형제 중 동생 정호와 친해졌지만 몸이 약했던 정호는 그 해 여름 죽고 말았다. 그리고 마을에 정호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친구 중에 한국인 형제가 있다는 설정은 반가왔습니다. 도까비 라는 제목도 도깨비에서 따 왔으며, 귀신을 퇴치하기 위해 고추를 문에 걸어둔다는 한국적인 설정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실제 작가 유년 시절에 한국인 친구가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여튼 읽으면서, 정호 귀신 소동은 몸이 튼튼하고 강했던 정호의 형 준지가 자기들을 왕따시킨 마을에 대한 작은 복수극일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정호의 도까비가 소동을 일으켰고, 이유는 원래 정호의 몸 상태 - 몸이 아프고 약해서 방에만 있었다 - 때문이었다는건 의외였어요. 그래도 죽은 뒤 아프지 않고 자유로와져서 온 마을을 싸돌아다녔다는 건 꽤 신선했습니다. 유키오의 장난감으로 신나게 논 뒤, 드디어 성불하게 되었다는 결말도 그럴싸 했고요.

그러나 진짜 도까비였다는건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복수극으로 생각했던 탓입니다. 너무 추리, 범죄 소설에 뇌가 찌들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요정 생물>>
오사카 변두리 주택가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소녀 세쓰코는 정체불명의 상인으로부터 '요정 생물'을 구입하게 되었다. 키우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말처럼, 아빠의 부하로 잘생긴 훈남 다이스케가 찾아왔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엄마와 함께 도망가 버렸고, 세쓰코는 요정 생물을 죽여서 버렸지만, 그 뒤 아빠의 다른 부하 지로에게 강제로 몸을 빼앗긴 뒤,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다...


요정 생물이라는 기묘한 존재로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환상 소설에 가깝습니다. 요정 생물의 계란 프라이같은 생김새와 키우는 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 - 물은 사흘에 한 번 갈아줄 것. 물에 티스푼 절반 정도의 설탕을 풀 것. 강한 햇볕을 쬐면 안되고, 더운 곳에 두어도 안됨. 병을 바꿀 때는 같은 크기로. 병이 커지면 덩치도 커진다 - 등을 통해 <<그렘린>>과 비슷한 크리쳐 물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알고보니 어린 소녀가 '성'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을 '요정 생물'과의 접촉에 직접적으로 비유하여 전개하는 작품이더군요.

디테일한 설정이 뒷받침된 요정 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그 외에는 별로였습니다. 엄마와 다이스케가 불륜을 저지를거라는건 너무 뻔했으며, 성적인 소재를 일본 특유의 변태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낸 느낌이라 즐겁게 읽을 수가 없었어요. 세쓰코가 비참한 상황에 처한다는 결말도 와 닿지 않았고요. 왜 요정 생물이 세쓰코에게는 행운을 가져다 주지 않은걸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참 묘한 세상>>
아키라의 백수 삼촌이 죽었다. 술에 취해 육교를 건너다 계단에서 떨어진 탓이었다. 그런데 장례식 후 화장터로 향하던 영구차가 멈춰버렸고, 관을 꺼낼 수도 없게 되었다. 영문을 모르던 어른들은 당황했는데, '나'는 삼촌의 애인이었던 가오루 씨를 부르면 될 것이라 여겼다...

장례식에서 난봉꾼 망자의 관 이동을 놓고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극. 사실혼 관계의 아내 외의 애인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는 반전은 살짝 깼고, 이 여자들이 모두 친구가 된다는 결말도 유쾌합니다. 제목 그대로 참 묘한 세상이에요. 하지만 딱히 재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오쿠린바>>
40년 전, 나는 어린 나이로 '오쿠린바'인 먼 친척 할머니의 조수가 되었다. 오쿠린바는 주문으로 사람의 혼과 몸의 연결을 끊어 죽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임종하면서 나에게 주문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그 일을 잇지 않기로 결심했다.

줄거리 요약은 단순하지만 실제 작품에서는 오쿠린바가 주문을 외워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일화가 여러개 소개되며, 주문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주문은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듣게 만들어야 효과가 있으며, 중간까지 들려주면 살아있지만 나머지를 듣게되면 바로 죽는다는 등으로요. 
하지만 일화들은 모두 비슷비슷했고, 설정도 작 중 그렇게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합니다. 그냥 오쿠린바 할머니의 또다른 회고로만 설명되며, 주인공 화자 미사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재미있고 극적인 드라마로 끌고 나갈 수 있었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함 그 자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얼음 나비>>
수십년 전, 오사카 변두리 거리 동네에 살았던 나(미치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왕따를 당해왔다. 친구가 없는 탓에 묘지에 놀러갔다가 18살이라는 누나 미와와 친해졌다. 그녀는 아픈 동생을 구하기 위해 머나먼 타지로 나와 일하고 있다고 해다. 그리고 겨울에도 살아남는 신비한 나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겨울에도 살아있는 나비를 통해 어린 시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아픈 사랑(?)과 사라져버린 추억을 형상화한 작품.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신비로운 상황이라는게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겨울 나비를 보고 미와와 헤어지는 미치오의 모습은, 청춘의 환영인 메텔을 떠나보내는 테츠로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서정적인 버젼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겨울 나비에 대한 묘사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습니다. 미와가 유령이 아니라면 몸을 팔고 있을 거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결말은 둘의 파국이라는게 너무 뻔해서 의외성도 없었고 진부했습니다.
환상 소설 측면으로 보아도 '겨울 나비' 자체는 실존하는 것이기에 딱히 언급할게 없네요. 마지막에 함께 본 나비는 환상일 수 있지만, 그건 단지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는 상징일 뿐입니다. 특별히 장르 문학적으로 바라볼 부분은 없어요.
그 외에도 미치오가 왜 왕따를 당하는지 설명되지 않고, 미와와의 이별 후 급작스럽게 마사히코가 친구가 되자고 이야기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럴 바에야 왕따 설정은 빼고 그냥 외로운 아이였다고 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7/08

마션 - 앤디 위어 / 박아람 : 별점 3점

마션 - 8점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지구로부터 225,000,000km 떨어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에서 조난을 당한 남성, 마크 와트니는 화성 탐사 계획에 참여한 식물학자로 1,000여 일 동안 아레스3 탐사선을 타고 무사히 화성에 도착한다. 예정된 탐사를 수행하던 엿새째, 예기치 못한 모래 폭풍에 휩쓸린 와트니와 일행들 사이에 교신이 끊겨버린다.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동료들은 두려움 속에 귀환하고, 모래 언덕에서 홀로 깨어난 그는 감자 몇 알과 함께 다음 탐사선이 올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이보다 더 최악의 생존기가 있을까? 하지만 이 똑똑한 과학자는 화성에 지구 작물을 심고, 물을 만들었으며 산소와 이산화탄소로 경작을 해낸다. 한편 나사 영상 담당 직원은 마크 와트니의 시체가 보일 줄 알았던 영상 기록을 통해 깨끗이 치워진 막사 근처에서 마침내 그의 생존을 확인한다. (알라딘 책소개에서 인용)

화성에 고립된 우주비행사의 눈물나는 과학적인 생존기. 출간되어 이미 시장을 휩쓴지 오래지만, 이번에 유럽으로 향하는 장거리 비행용으로 좀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찾다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에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인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비교해 본다면, 정 반대, 대척점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화성에 고립된 단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전 지구가 힘을 합쳐 노력하는 반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단 한 명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니까요. 그러나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 작품이 훨씬 낫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페트로바선, 아스트로파지라던가 비교적 손쉽게 외계인과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하는 등의 비현실적인 설징이 바탕이 된 반면, 이 작품은 상식 선에서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이야기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방법으로 위기가 찾아오는 극적인 전개도 이 작품이 우위에 있고요. 무엇보다도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라는 첫 문장부터 독자를 강하게 사로잡아요. 이어지는 화성에 홀로 남은 마크 와트니의 생존을 위한 분투도 엄청 흥미롭고요. <<로빈슨 크루소>> 등과 다름없는 순수한 모험물인데, 고전적인 생존 모험물과는 다르게 치밀한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론의 전문성이 높아서 거의 하드 SF에 가까울 정도인데, 이를 이렇게 재미나게 그려내는건 정말이지 대단한 능력이라 생각됩니다.
또 마크 와트니 시점과 NASA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시점을 번갈아 가며 전개해 내는 것도 좋았습니다. 어느 한 쪽은 모르지만 다른 한 쪽은 알고 있는 위기 상황 - 예를 들어 NASA에서 관측한 모래 폭풍 - 을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불어넣어 줄 뿐 아니라, 마크라는 단 한 명을 구하기 위한 전 지구적인 노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마지막 마크 구조 순간의 감동이 극대화 되기 때문입니다.
유머 넘치는 마크 위트니 캐릭터도 아주 좋습니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조차 유머로 대처하는 강한 멘탈에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어요. 암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갖추고 있는 여러가지 지식과 기술도 적절했습니다. 식물학자 겸 기계공학자로 '식물을 갖고 노는 전담 수리공'이라고 언급되는데, 덕분에 생존에 핵심이었던 화성 토양에서 감자 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거든요. 각종 장비 수리 및 개조를 하는 모습, 심지어 '육분의'까지 자체 제작하여 화성에서 이동할 때 위치를 측정까지 하는걸 보면 단순한 공학자 수준은 아닌거 같아요. 하긴, NASA의 우주 비행사니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하지만 구조 이후의 후일담이 없다는건 다소 아쉬웠습니다. 간단하게나마 마크 와트니의 구조 이후의 모습을 그려주었더라면 아주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발표 당시의 인기가 수긍이 가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덧붙이자면, 할게 없어서 동료 우주 비행사 짐을 뒤져 크리스티의 전자책을 읽어본다는 디테일이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무척 반가왔습니다. <<백주의 악마>> 속 범인을 아예, 터무니없이 잘못 짚기는 했습니다만.

2023/04/14

테스터 - 이희영 : 별점 2점

테스터 - 4점
이희영 지음/허블

<<아래 리뷰에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방새가 있는 동굴에 들어간 사람들이 모두 참혹하게 죽은 탓에 사람들은 동굴을 막을 수 밖에 없었다는 전설 속 오방새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되살아났다. 빛나는 깃털을 지닌 '레인보드 버드'를 복원하여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려는 계획 덕분이었다. 하지만 레인보드 버드는 끔찍한 전설의 원인이었던 치명적인 RB 바이러스와 함께 되살아났고, 복원 계획은 곧바로 폐기되었다. 그러나 계획을 진행했던 호텔 회장의 손자 강마오가 사고로 RB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태어나고 말았다.
회장은 전력을 다해 바이러스를 치료하려고 노력했지만 마오가 16살이 될 때까지 실패하던 와중에, 마오는 자기 말고 다른 바이러스 감염자 하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외부로의 출입,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이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는 마오였지만 하라와 만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하라가 진짜 회장의 손자였고, 마오는 고아 출신으로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 백신을 대신 투약받아왔던 '테스터' 일 뿐이었다.
다행히 백신은 성공하여 바이러스는 퇴치되었다. 하라는 마오를 꼭 치료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마오는 스스로의 의지로 죽음을 택한다.

한국 작가의 SF 소설. 딸이 다니는 학원 교재로 딸이 읽는걸 보고 읽어 보았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비인간적인,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동물들을 활용해서 표현한게 독특했습니다.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 멸종시켰다는 레인보드 버드를 관광상품으로 이용하려고 부활시켰지만 바이러스까지 함께 부활되어 위기에 봉착했다던가, 피부 이식을 위해서라며 만들어낸 인간 피부와 같은 성질의 피부를 가진 스킨 피기의 주 용도는 미용이라는 것처럼요. 동물을 이용한건 아니지만, 화성 이주자들을 모집하는 복권이 가난한 가족을 일종의 테스터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 거라는 음모론도 비슷한 느낌이고요.
핵심 줄거리도 이런 황금만능주의 사상과 이어져 있습니다. 레인보드 버드에 의해 되살아난 RB 바이러스에 감염된 손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대기업 회장이 어린 고아들을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뒤 치료용 테스터로 삼았다는 내용이거든요.

여기서 서술 트릭을 활용한 반전이 하나 등장하는데, 회장의 손자인줄 알았던 마오가 테스터였고, 하라가 진짜 손자였다는 겁니다.
반전에 대한 복선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마오가 마시면 정신을 잃는 시계꽃 차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마오는 차를 마시고 정신을 잃는데, 메이드 로봇 보보가 마오의 지시였다며 바이러스에 대한 검색 결과를 알려주지요. 이는 마오에게 바이러스의 정체와 하라의 존재를 알려주려는 외부의 움직임이 개입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 외에도 마오의 기억이 뭔가 희미하다던가, 하라의 존재에 대해 주변 인물들이 은근슬쩍 정보를 알려주는 등도 마찬가지 복선입니다. 한마디로 꽤 괜찮은 반전이었어요. 
마오의 이름이 테스트용 고아 다섯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지막 다섯번째 아이"였다는 것도 제법 기발했고요.

허나 반전에 대한 설득력은 영 별로입니다. 회장이 마오를 자기 손자라고 속인 이유부터 도무지 모르겠어요. 마오가 그냥 바이러스에 걸려서 아픈 아이였다고 하면 뭐가 문제일까요? 하라를 위해 만든 설정을 마오에게 대입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삶에 대한 의지를 키워주기 위해서? 그럴 리가 없잖아요.
반전이기는 하지만 주인공이 알고보니 무언가를 위해 길들여지고 만들어진 실험체였다!는 것도 SF에서 너무 많이 보아왔던, 지극히 뻔한 설정이라는 것도 단점입니다. 영화 <<아일랜드>>, <<네버 렛 미 고>>나 시미즈 레이코의 <<월광천녀>>처럼 알고보니 장기 제공용 복제 인간이었다는 설정과 흡사한 탓입니다.
또 마오에게 하라의 존재를 알려준건, 하라의 투쟁 때문이었다고 설명됩니다. 하지만 하라가 마오의 존재를 알게 된 것 역시 어느정도 할아버지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 과정의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이왕 숨길거면 끝까지 숨기던가, 말해줄거면 대놓고 사실대로 말해주는게 당연했을텐데 말이죠.
마지막에 마오가 자살을 선택하는 결말도 납득이 가지는 않았어요. 알비노는 하라가 책임지고 치료해준다고 했고, RB 바이러스도 다 나았는데 무엇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걸까요? 작중에서 마오는 잘못한게 하나도 없습니다. 혼자 살아남은 것도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고요. 누군가에게 죄책감을 가지거나 미안해할 이유는 전무합니다. 일종의 PTSD 같은걸 걸려서 괴로와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설명도 없어요. 일종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바이러스 백신이 완성되기 전에 죽었어야 했고요.
마오만 컨트롤 할 수 있는 메이드 로봇 보보가 마오도 모르게 업데이트되는게 굉장히 중요한 단서처럼 묘사되는데, 알고보니 일종의 맥거핀이었다는 것도 실망스러웠습니다. 진솔 아저씨가 사람이 아닌 휴머노이드라서 가능했다는건데, 이야기의 핵심과는 무관한 주변부적인 설정일 뿐이었어요. "알고보니 로봇이었다!"도 흔해빠진 클리셰의 재활용에 불과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이런 암울한 분위기와 설정의 작품이 청소년용으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던건 수확이었고, 반전이 드러날 때의 맛은 괜찮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설정과 줄거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성인에게 권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2023/01/23

사키 - 사키 / 김석희 : 별점 2.5점

사키 - 6점 사키 지음, 김석희 옮김/현대문학

국내 첫 출간된 영국의 쇼트쇼트 대가 사키 단편선. 무려 71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발표작 중 절반에 가까울 정도에요. 몇몇 작품은 이런저런 경로로 읽었었는데, 꽤 인상적이었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대를 앞서는 빛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도 많고, 기묘한 맛 스타일로 서늘한 느낌을 담뿍 전해주는 반전물, 피식거리게 만드는 웃음 가득한 작품들도 다수 수록되어 있거든요. 몇몇 작품은 걸작이라 부를 수 있고, 번역도 좋습니다. '께느른하다' 같은 단어까지 사용한건 놀라왔어요. 열심히 사는 농부가 화가인 이복형을 보고 느끼는 감정인데, 몸을 잘 안 음직이고 게을러 보이는 상태를 잘 표현한 말이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아주 좋았다! 라고 말하기도 애매합니다. 대부분의 작품들 등장인물과 소재가 비슷하고 자가복제한 작품이 많은 탓입니다. 적당한 신분의 어떤 인물이 속물이거나 허영심 가득해서, 혹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 탓에 낭패를 겪는다던가, 부르주아적인 습성으로 타인을 대하다가 예기치못한 상황에 처한다던가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한 거짓말로 문제가 발생한다던가, '소악마' 캐릭터의 원조격인 악동들이 어른들을 골탕먹이는 내용도 많아서 읽다보면 지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나칠 정도로 짜증나는 인물들 묘사, 지나친걸 넘어서는 과한 장난들은 거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키우던 고양이가 아무리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해도, 고양이를 죽인 이웃집 아이를 돼지 먹이로 주려고 한다는 <<참회>>가 대표적입니다. 지나치다 못해 끔찍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정말 엄선된 몇몇 작품만 읽는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몇몇 기억에 남는 작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깜빡 잊은 지명>>
길에 버려진 시체로 자신을 위장하려 한 남자가 살해당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은 뒤 털어 놓은 고백.
기상천외한 발상과 온갖 기묘한 상황이 펼쳐지는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주인공이 당장 체포되지 않는 이유가 그레이하운드들이 그를 쫓고 있고, 누가 먼저 잡는지에 대해 큰 내기가 걸려있었다는 묘사가 등장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화자가 자기가 사실은 죽은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결론은 좀 억지스러웠습니다. 지명을 잊어버린 것은 사소한 문제일 뿐, 생김새 등 모든 면에서 이미 가짜라고 드러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사냥 자루>>
사냥 클럽을 이끄는 펠러비 소령은 후핑텅 부인의 숲에서 오랫만에 사냥을 이끌 계획이다. 그러나 후핑턴 부인의 조카딸 엘리자베스가 데려온 러시아 청년 블라디미르가 여우를 먼저 사냥해 버리고 마는데...
블라디미르의 사냥 자루가 눈 앞에 대롱대롱 매달러 있는 상황을 통해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가져 오는 전형적인 작품. 굉장히 영국 부르주아스럽고 전형적이지만 긴장감만큼은 최고였습니다.
아쉬운 건 블라디미르가 잡은 건 사실 여우가 아니었다는 반전인데... 마지막에 슬며시 드러내는 것 보다는 조금 드라마틱하게 가져가는게 어땠을까 싶네요. 발표 당시에는 먹혔음직 하나 지금은 좀 낡은 방식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생쥐>>
몸 속에 들어간 생쥐 때문에 시어도릭은 모르는 여자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위기에 처하는데....
지금 보아도 괜찮은 반전이 돋보였던 작품. 앞에 앉은 여자가 장님이었다는 암시, 복선을 제공해 주었더라면, 그리고 긴장감을 조금만 더 높여주었다면 쇼트쇼트 역사에 길이 남는 희대의 걸작 중 한 편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토버모리>>
한 시골마을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서, 참석자 중 한 명인 코넬리우스 에핀은 저택에서 키우는 고양이 토버모리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는 곧바로 사실로 밝혀지지만, 토버모리가 그동안 보고 들은 사람들의 말을 폭로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당황해했고, 결국 코넬리우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토버모리를 죽이는데 동의한다.
영국 부르주아들의 가식을 비웃는 풍자물. 뒷담화, 불륜 등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하면서 서로 만났을 때에는 고상한 척을 하는 가증스러운 상태를 말하는 고양이라는 소재로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입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유머러스한 전개도 돋보이고요. 코넬리우스가 코끼리에게 말을 가르치려다가 밟혀 죽었다는 결말도 깔끔했습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토버모리의 폭로가 기대만큼 화끈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인데, 발표된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이 정도가 한계였겠지요. 별점은 4.5점. 풍자 블랙 코미디계의 H.O.F (Hall of Fame)에 입성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브로그>>
마을 최악의 말 브로그를 소유한 멀렛 가족은 수년간의 노력으로 새로 이사온 펜리카드 씨에게 드디어 말을 팔아치웠다. 그러나 펜리카드 씨는 멀렛 가족의 딸 제시에게 호감을 드러냈고, 가족은 브로그가 사고를 쳐서 그 호감을 없애버릴까 노심초사하게 되는데....
내용은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가족)만 생각하는 가족의 이야기로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내용으로 그리 높은 평가를 할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아래의 딱 한마디만큼은 기억에 남기에 소개해드립니다.
“펜리카드가 그 말을 타고 밖에 나가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건 분명합니다.” 클로비스가 말했다. “적어도 제시가 그 사람과 결혼해서 남편한테 싫증이 날 때까지는 안 돼요. "

<<허황된 이야기꾼들>>
잔돈푼을 구걸하려는 사람을 거창하면서 허황된 이야기로 단념시킨다는 이야기. 이야기는 뻔했지만 신사답게 구걸하는게 어떤 것인지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샤르츠 메테르클루메 교수법>>
기차를 놓친 귀부인 칼로타가 자기를 가정교사로 착각한 부인을 따라가 그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이야기.
끔찍할 정도로 지나친 장난을 그리고 있는 소품으로 개그 콘서트에 어울릴법한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리치는 방법이라며 허풍을 떤 제목의 교수법 아이디어만큼은 괜찮았어요. 로마 고대사의 사비니족 여인 납치를 실제로 실연하는 식으로 아이들을 가리지거든요. 다른 방식으로 녹여내었더라면 더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맹점>>
에그버트는 삼촌 롤워스 경에게 대고모 할머니가 요리사 세바스티앙에게 살해당했다는 증거를 입수했다. 하지만 롤워스 경은 증거인 편지를 벽난로에 태워버렸다. “요리사로는 아주 비범하기 때문." 이라며...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범죄물로 흥미롭게 전개되다가 마지막 한 마디로 극적 반전이 이루어지는 초단편 (쇼트쇼트)의 교과서 같은 작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참고로, 롤워스 경의 심정은 어느정도 이해가 됩니다. 대고모가 살해당한건 먼저 세바스티앙을 자극했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다고 살인이 정당화될 수야 없겠지만 컵에 든 커피를 얼굴에 끼얹은건 솔직히 심했습니다.

<<평화 장난감>>
전쟁 놀이에만 열중하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의회와 역사적 인물들 인형을 선물했지만, 아이들은 그 장난감을 가지고 또다른 전쟁놀이를 시작한다는 이야기. 다른건 모르겠지만, '평화 장난감'이라는 발상이 기발했습니다. 전쟁이나 파괴에 대한 장난감이 대세인 지금에도 먹힐만한 아이디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크리스피나 엄벌리 부인의 실종>>
집안의 독재자였던 엄벌리 부인이 사라진 뒤, 남편은 매년 2천 파운드의 돈을 은밀하게 요구받았다. 부인을 돌려보내지 않는 조건이었다...
마크 트웨인의 <<붉은 추장의 몸값>>과 비슷한, 기발한 발상의 유괴극.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부인이 사라졌는데 경찰이 나서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건 조금 아쉽네요. 이런 상황이라면 엄벌리씨가 부인을 죽여서 마당 어딘가에 묻어버렸어도 무방했을 거에요. 차라리 그런 인상을 주면서 마무리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엉뚱한 침입자들>>
평생을 원수로 지낸 울리히와 게오르그는 함께 나무에 깔린 뒤, 해묵은 원한을 청산하고 친구가 되기로 하는데...
숲을 둘러싼 오래된 원한이 살의에까지 이르른 원수 두 명이 산중에 고립된 뒤 친구가 되기로 합니다. 그러나 둘은 구조대가 아니라 배고픈 늑대 떼들에게 둘러싸이고 만다는 반전이 인상적인 걸작 쇼트쇼트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메추라기 먹이>>
인기없는 상점에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주인은 연극을 펼치는데...
인기없는 마을 상점에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상점에 정체불명의 손님이 방문한 뒤 무언가 드라마가 벌어지는 것처럼 꾸민다는 이야기. 전략은 성공해서 마을 주부들의 호기심을 가게에 집중시키게 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SNS 를 활용한 페이크 다큐성 타겟 광고라고나 할까요?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임시 정원>>
정원 자랑하기 좋아하는 밉살스러운 이웃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임시로 멋진 정원을 꾸며주는 서비스 업체가 등장하는 이야기.
결말은 다소 답답했지만, 역시나 독특한 아이디어가 좋았습니다. 브루주아들의 허영심 비판에 딱 맞는 아이디어이기도 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달력>>
클로비스는 예언을 적은 달력을 18펜스에 팔 생각을 했다. 예언은 모두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애매한 것들이었지만, 조슬린이 사냥터에서 화를 당할거라는 예언은 성공하기 힘들어졌다. 조슬린이 절대로 말을 타지 않고 사냥터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상품 아이디어가 등장합니다.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실하게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이비 점쟁이의 뻔한 수법을 특정 시기와 결합된 달력이라는 제품에 도입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거든요. 실제로 만들어 팔았어도 괜찮았겠다 싶을 정도로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불가피한 희생>>
천 파운드가 넘는 돈을 잃은 딸이 그 댓가로 홀어머니를 채권자 도박꾼과 결혼시킨다는 이야기.
다른 무엇보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부르주아 풍자를 잘 그려낸 소품으로 대단히 신선하거나 재밌다기 보다는, 주인공 딸이 이 책에 등장하는 속물 부르주아 중에서도 뻔뻔하기로는 첫 손가락에 꼽을만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별점은 2.5점.

<<네모난 달걀>>
1차대전 참호에서의 참혹한 전투를 겪는 병사들의 위안은 술집가 카페가 합쳐진 공간 '에스타미네'에서의 한 때였다. 그곳에서 나는 자칭 양계업자를 만났다. 그는 품종 계랑을 통해 자기 양계장 닭이 네모난 달걀을 낳게 하는데 성공해서 거액을 벌었지만, 전쟁에 끌려온 뒤 양계장을 운영하는 고모가 돈을 내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송 비용으로 수십 프랑을 요구하는데....
'나'의 마지막 말이 깨는 반전의 맛을 가져다 주는 작품. 그는 휴가를 얻으면 '양계업자'의 고향에 가서 네모난 달걀 산업 현황을 확인하고 돈을 빌려주겠다고 말하지요. 그러자 '양계업자'는 자기 말이 사실이라면 어쩔 셈이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답하죠. "당신 고모님과 결혼하겠소" 별점은 3.5점입니다.
아울러 시키는 1차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했다는데, 그런 경력답게 굉장히 탁월한 참호 묘사도 눈여겨 볼 만 했습니다.

2022/10/20

매혹 - 크리스토퍼 프리스트 / 김상훈 : 별점 2점

매혹 - 4점
크리스토퍼 프리스트 지음, 김상훈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반전 및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폭탄 테러로 일부 기억을 잃은 그레이에게 수잔이라는 여성이 나타나 과거 그의 연인이라고 말했다. 수잔을 통해 프랑스에서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 그리고 수잔의 남자 나이얼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던 기억을 재구성하지만, 그는 프랑스에 간 적이 없었다.
그런 그레이에게 수잔은 이별의 진짜 이유는 그녀가 '불가시인'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녀는 특별한 '구름'을 만들어내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안 보이게 될 수 있었고, 나이얼은 그런 불가시인 중 가장 뛰어난 능력자로 그레이와 수잔이 있는 곳에 항상 함께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그레이에게 수잔은 불가시 능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고, 마지막에 나이얼이 썼다는 글을 건네 주었다. 몇개월 전 쓰여졌다는 그 글에 쓰여있던건 테러 이후 그레이에게 일어났던 일 들이었다.


영국 작가의 SF, 판타지 메타 픽션. 400페이지를 조금 넘는 분량이기도 하고, 작가의 유명세를 전해 들은바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초, 중반부는 상당히 지루했습니다. 수잔과 그레이가 사랑에 빠졌지만, 전 남자친구 나이얼에게 휘둘리는 수잔의 행동과 그러한 수잔의 행동에 사사건건 반응하는 그레이의 행동 묘사가 대부분인데 그레이의 쪼잔함, 사랑한다면서도 나이얼을 놓지 못하는 수잔 모두 짜증만 불러 일으겼던 탓입니다.
분량도 많지는 않지만, 좁은 행간으로 페이지를 온전히 글자로만 빼곡히 채우고 있어서 글 자체의 분량은 다른 장편들 못지 않아서 읽기가 좀 버거웠어요.

그러나 수잔이 나이얼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였던 '불가시인'이라는 정체가 드러나면서부터는 대단한 몰입감을 선사해줍니다. '불가시인'에 대한 설정이 디테일하며 흥미로운 덕입니다. 다른 사람 눈에 띄이지 않던 왕따가 일종의 투명 인간이 되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손에 넣는다는 만화를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데, 여기서 '불가시인' 능력은 타고 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도 눈에 뜨이지 않았고, 결국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리는 거지요.
정체가 드러난 이후는 수잔 시점의 경험담 위주인데, 불가시인들은 서로를 볼 수 있어서 자기들끼리 무리를 짓게 되며, 당연히 직장을 다닐 수 없으니 능력을 이용하여 모든걸 훔치면서 살아가고, 병원에 갈 수 없어서 치아는 물론 전체적인 건강이 좋지 않다는 등 상세하면서도 설득력있는 설정들이 굉장히 흥미로왔습니다. 이 능력을 수잔이 "glamour"라고 부르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수잔을 지배하는 나이얼은 불가시인 중에서도 최고의 능력자로 심지어 불가시인도 볼 수 없었다는건 가장 빼어난 아이디어였습니다. 수잔이 나이얼을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한데, 둘이 여행을 하는 자동차에 몰래 타고 있었다던가, 심지어 사랑을 나눌 때에도 끼어들었다는 이야기에서는 충분한 설득력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레이는 나이얼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먹혀버렸다는, 즉 그레이의 모든 기억은 나이얼이 만들어낸 픽션이라는게 드러나는 마지막 결말은 황당했습니다...... 나이얼이 모든걸 창조했다고 독자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있어서 '메타 픽션'이라고 불리우는 듯 한데, 저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기억이라는건 그렇게 신뢰할 수 없고 알고보면 픽션과 다를게 없다는 개념 자체는 좋습니다. 그러나 작품 속 나이얼의 말처럼, 아니면 수잔의 부모님처럼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모두 기억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아픈 기억도 기억이고 추억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극단적으로 자기 자신의 기억을 조작, 왜곡하는건 비현실적인 '불가시' 능력처럼 드물지만 있을 수는 있겠지요. 문제는 이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는 점입니다. 지금처럼 나이얼 (혹은 작가)의 말 한마디로 떼우는건 "아 x발, 꿈!" 한마디와 다를바 없습니다. '불가시' 능력처럼 기억 조작 방법이 뭔가 말이 되는 것처럼 설명되었더라면 SF 소설로 충분한 가치가 있었을텐데, 지금은 '메타 픽션'이라는 말로 떼울 뿐이라서 많이 아쉽네요.

그래서 결론 내리자면 별점은 2점. 불가시인 이야기만 썼더라면 훨씬 재미있었을텐데, 기묘한 사랑 이야기에 기억 조작, 거기에 메타 픽션 설정까지 우겨넣은건 영 별로였습니다..딱히 구해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2/10/01

변덕쟁이 로봇 - 호시 신이치 / 윤성규 : 별점 1.5점

변덕쟁이 로봇 - 4점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지식여행

호시 신이치는 신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핵으로 논리적인 줄거리와 함께 기상천외한 의외의 결말이 있는 초단편, 이른바 '쇼트쇼트'의 제왕입니다. 저도 좋아하는 작품을 여럿 발표했고요.

하지만 문제라면 워낙 다작이었던 탓에 작품들 수준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또다른 쇼트쇼트 거장 아토다 다카시와 비교해 보아도 호시 신이치 작품 수준 편차가 훨씬 큽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발표되었던 호시 신이치 쇼트쇼트 모음인 '플라시보 시리즈'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지뢰작 모음일 가능성이 높다는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실제로도 그러했는지 시리즈는 금방 절판되고 말았지요. 그래도 이 시리즈 중 <<봇코짱>>은 괜찮은 작품이 많이 모여 있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 일컬어지고 있어서 인기가 많습니다. 저도 한 권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으며 리뷰도 올린 적이 있는데, 소문대로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 <<변덕쟁이 로봇>>이 <<봇코짱>>과 더불어 최고의 작품집으로 선정하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확실한 근거라기 보다는 어딘가의 리스트에 국한된 선정이기는 하지만, <<봇코짱>>이 워낙에 괜찮았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절판된지 오래고, 인터넷 중고가가 비교적 높게 형성되어 있는 책이라 쉽게 구하지는 못했는데, 우연찮게 알라딘 온라인 중고 매물로 최상급 책이 정가의 절반 가격으로 등록된걸 발견하고 바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쇼트쇼트 단편집답게 무려 50편이나 되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후반부까지는 전형적인 쇼트쇼트인데, 마지막 몇 편은 10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단편들이었고요. 수록작은 제목처럼 로봇이 등장한다던가, 과학자가 (대체로 F 박사나 N 박사) 이상한 약이나 기계를 만들거나 와계인이 이상한 장치를 가지고 벌이는 소동 등 SF 설정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조금 특이했던건, 엉터리 발명품이 오동작을 일으켜서 사고가 발생한다는 전형적인 이야기보다는 발명품이 생각대로는 작동하는 이야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의외의 발명품으로 의표를 찌르거나, 아니면 생각대로 작동하는 탓에 문제를 일으키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전자는 화재를 없애기 위해 불이 있는 쪽으로 날아가는 새를 만들었는데, 태양으로 날아가버리고 말았다는 <<불조심>>, 자면서 학습이 가능한 수면 학습 베개로 배운건 잘 때만 효과가 있다는 <<신 발명품 배게>>가, 후자는 벌레잡는 풀꽃을 만들어냈지만, 먹이를 줘야 해서 벌레를 키워야 한다는 <<편리한 풀꽃>>, 소리를 없애는 장치를 만들어 도둑질을 하려고 했지만 비상벨과 경찰차 사이렌 소리도 없앤 탓에 체포되어 버리는 <<실패>>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발명품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사람이 고양이를 돌보는게 아니라, 고양이가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는, 이른바 '집사' 분들의 현실을 (?) 유쾌하게 그려낸 <<고양이>>, 그리고 불사신이 되었다고 믿었지만, 정신만 살아있는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인 <<뼈>> 는 꽤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생각되고요.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이야기 전개와 반전이 기발한 작품을 찾기 힘들었던 탓이 큽니다. 책 뒤 후기를 보니 어린 아이들을 위해 쓴 작품이 많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다소 유치하고 말장난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봇코짱>>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 이하의 작품들로, 고가로 구입하지 않은게 다행일 뿐입니다. 통상적인 중고가가 제가 구입한 가격보다 높기도 하니, 투자 개념으로 그냥 가지고 있어야겠습니다.

2022/06/10

버드 박스 - 조시 맬러먼 / 이경아 : 별점 2점

 

버드 박스 - 4점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검은숲

4년 전, 갑자기 나타난 크리쳐를 목격한 사람들이 발광하여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자살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창문을 가리고 숨어 살던 임산부 멜로리는 언니 섀넌이 발광하여 자살해버린 뒤, 위험을 무릅쓰고 생존자들이 모여산다는 조지의 집으로 향했다. 조지는 죽었지만 리더격인 톰의 원만한 성품덕분에 멜로리, 그리고 그 집에 있던 펠릭스, 줄스, 셰릴, 올림피아는 몇 개월 간 짧은 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멜로리의 출산일에 그녀와 갓난 아기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어버리고 말았다. 비관주의자 돈이 다른 생존자 게리를 만난 뒤 세뇌되어, 집 창문을 가렸던 것들을 모두 치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4년 후 멜로리는 4살된 두 아이와 함께 거주지를 떠났다. 4년 전, 톰의 전화로 연결된 생존자 '릭'의 거처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이 모험을 위해 그녀는 두 아이의 청각을 극도로 강화시키는 훈련을 해 왔다...


신예 작가의 SF 크리쳐물. 무언가를 본 뒤 발광한다는 소재를 가지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닥친 위험과 공포, 그리고 극복 방법을 실감나게 그려낸 묘사가 좋았습니다. 폐쇄 공간에서 빚어지는 여러 긴장감도 잘 살아있어요. 단순히 '물을 뜨러 가는 행위', '배설물을 버리러 가는 행위'에서 긴장감을 빚어내는 솜씨에는 감탄했습니다.
생존자들이 모여 사는 집은 수력 발전으로 전기가 공급되며, 마당에 우물이 있고 일단은 몇 개월 버틸만한 식량을 갖추었다는 식으로 생존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준 것, 그리고 "크리쳐를 보면 발광하기 때문에 집의 창문까지 모두 닫은 폐쇄 공간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설정을 "다른 매체, 예를 들어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크리쳐를 보아도 발광한다.", "동물들도 크리쳐를 보면 발광한다." 는 식으로 디테일을 보강한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디오 카메라는 정말 생각도 못했었네요.

하지만 이외에는 볼 만한 부분이 많은건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일단 소재부터가 너무 진부합니다. 기묘한 상황 탓에 사람들에게 재난이 닥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특정 현상에 의한 급작스러운 실명도 <<걷는 식물 트리피드>>에 등장했던 설정이지요. 운 좋게 재난을 피한 생존자들이 최대한 조심하면서 살지만 위기가 닥친다는 전개 역시 크리쳐물 대부분에서 뻔하게 반복되어 왔습니다. 좀비물 거의 대부분이 이런 내용이잖아요?
물론 보기만 해도 사람, 동물을 발광시키는 크리쳐의 특수한 능력만큼은 독특한 요소였고, 이를 작품 안에서 잘 부각시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크리쳐에 대해 어떤 과학적인 근거나 설명은 없이 주인공 멜로리의 시점에서의 경험만 나열된다는건 문제입니다. 뒤로 가면 갈 수록 식상해지기만 할 뿐이었어요. 뭔가 살아남거나, 해결책은 없이 그냥 버티고 살아가는게 전부이니까요. 톰이 주도해서 활로를 모색하는 전개가 더 등장했더라면 좋았을텐데, 개 몇 마리를 데려오는게 전부라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또 전개의 클라이막스를 차지하는 돈의 폭주에서, 게리가 크리쳐를 보았음에도 어떻게 멀쩡했는지 설명되지 않는건 정말 답답했습니다. 설명이 부족해도 정도껏 했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멜로리와 올림피아가 임신했는데, 마침 그 둘이 출산할 때 돈이 폭주해서 모두가 죽는다는 작위적인 설정도 별로였고, 마지막에 멜로리가 안식을 찾게되는 피난처가 맹인 '릭'이 이끄는 맹인들 학교였다는 약간의 반전 역시 만족스럽지는 못했습니다. 읽으면서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사느니 차라리 스스로 맹인이 되는게 낫지 않나?" 라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제 생각과 별로 다르지 않은 엔딩이었으니까요. 나름대로 해피 엔딩이라는 점 만큼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릭이 멜로리와 아이들 눈을 멀게 만드는 결말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앞서 아이들에게 이런저런걸 보게 해 주고 싶다는 바람과 대조되면서 더 큰 울림을 가져다 즐 수 있었겠지요. 솔직히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소소한 일상계 크리쳐물 분위기는 괜찮았지만 진부한 소재를 뻔한 전개로 풀어냈고, 결말도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감점합니다.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넷플릭스에서 영화화한 모양인데, 영화에 더 잘 어울리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2022/05/14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이미예 : 별점 2점

 

달러구트 꿈 백화점 - 4점
이미예 지음/팩토리나인

백만부가 넘게 판매된 초 베스트셀러. 꿈을 만들고 판매하는 세계가 있고, 여기서 어떤 꿈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만들고 누가 그 꿈을 사가는지, 그리고 그 꿈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들었던 세계관인데 독특한 설정들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판타지 설정에 더해 수록된 이야기들 모두 착하고 긍정적입니다. 이러한 점들로 볼 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책이 많은 인기를 끈 이유도 이 때문일 걸로 짐작됩니다. 팍팍한 현실에 지친 어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착한 힐링물이거든요.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일본 작품에 많은데, 한국 작가가 한국인들을 등장인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는데 큰 도움을 주었을 테고요.
꿈을 소재로 한 판타지는 많지만, 보통 꿈을 조종하거나, 꿈이 현실이 되거나 하는 식인데 반해, 꿈은 꾸는게 아니라 '사는 것' 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울러 IoT라던가 자율 주행 자동차, 업데이트 관련 설명이 살짝 지나가는 부분이 묘하게 디테일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가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인 덕분이었다 생각되네요.

하지만 저는 선뜻 추천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일단 기본 설정부터가 '기묘한 물건을 파는 독특한 가게의 이상한 주인'이라는 널리고 널린 설정의 변주에 불과합니다. <<펫숍 오브 호러즈>> 등에서는 기묘한 물건을 사 간 사람들이 기묘한 물건 덕을 보다가, 지켜야 할 규칙을 지키지 못해 파국이 닥치는 식인데 이 작품은 그런 반전도 없어요. 그냥 사간 물건의 효과를 이용하는게 전부거든요. 달러구트 등 등장인물들도 어디선가 많이 보아왔던 설정을 재탕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장편 소설이라고 홍보하는 것 치고는 담겨 있는 이야기도 빈약합니다. 꿈 백화점과 달러구트를 비롯한 관계자들에 대한 설정 소개가 거의 1/3에 이르며, 꿈에 대한 이야기들은 에피소드들처럼 짧게 지나갈 뿐이니까요. 그나마도 대체로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 학생들이라면 모를까, 어른들이 읽을만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청소년용이었다면 더 좋은 점수를 주었을 거에요. 나중에 조금 더 짧게 요약하고, 설명대신 일러스트를 곁들인 청소년용 버젼이 출간된다면 제 딸에게는 권해주고 싶네요.

2022/03/27

프로젝트 헤일메리 - 앤디 위어 / 강동혁 : 별점 3점

프로젝트 헤일메리 - 6점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태양의 에너지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페트로바선이 에너지를 빼앗아 갔기 때문이었다.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는 외계 생명체 아스트로파지가 대량증식하여 이산화탄소를 찾아 금성으로 향하며 에너지를 내뿜는게 페트로바선의 정체였다. 아스트로파지의 증식과 감염으로 모든 항성들이 10% 정도의 에너지를 잃었지만 타우세티만 건재하다는걸 알아낸 페트로바 대책위원회는, 그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우주선 헤일메리를 건조했다.

'나'는 기억을 잃고 나는 기억을 잃고 우주선 안에서 홀로 깨어났다. 동료 두 명은 수면 여행 중 사망한 상태였다. 서서히 기억을 되찾은 '나'는, 내가 지구의 운명을 걸고 타우세티로 향한 헤일메리호의 유일한 생존자 라일랜드 그레이스 박사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타우세티에서, 같은 목적으로 이 별을 찾아온 외계인 '로키'를 만나게 되는데...


<<마션>>의 원작자가 쓴 장편 SF 소설. 지구를 살리기 위해 용감한 전문직 종사자가 목숨을 건다는 내용의 작품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일단 <<아마게돈>>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날아오는 운석을 파괴하는 수준이 아니라요. 태양 에너지를 빼앗고, 이산화탄소를 향해 움직이면서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증식하는 아스트로파지의 생태에 대한 상세한 설정은 특히 돋보입니다.
뒤 이은,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위해 전 지구의 의지를 모으는 과정에 대한 묘사도 대단합니다. 라일랜드 그레이스가 아스트로파지에 대해 연구하여 그 생태의 비밀을 알아내는 과정,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일종의 반물질 에너지원같은 아스트로파지를 우주선 연료로 사용하려는 모습 모두 적절한 과학적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굉장한 설득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전혀 개념은 다르지만, 엄청난 효율의 에너지원이기도 한 아스트로파지는 '시즈마 드라이브'가 연상되더군요.

타우세티에 도착한 후, '항성 40 에리다니'에서 온 외계인 로키와 만나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하고, 목숨을 건 모험 끝에 아스트로파지를 먹어치우는 '타우메바'를 채집하는 장면도 박진감 넘치고 흥미롭습니다. 탄탄한 과학적 배경을 바탕에 둔 건 마찬가지고요. 아스트로파지의 천적 타우메바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스쳐지나가는 듯한 '진화' 관련 담론이 인상적이었어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진화한 로키와 그레이스가 어떻게 같은 주파수 소리를 듣는지에서 시작해서, "왜 같은 속도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는데 답이 아주 그럴듯했기 때문입니다. 그레이스의 가설은 각자 행성을 확실히 지배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능을 갖춘 뒤 진화를 멈췄다는 겁니다. 그 기준은 '중력'이고요. 중력이 높아지면 땅과 접촉하는 시간이 늘어나므로, 움직임이 더 빨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과학자 역할의 그레이스, 그리고 뭐든지 만들어내는 엔지니어 로키로 확실히 구분되어 있는 팀 구성도 재미를 더해줍니다. 서로의 언어를 습득하고 진짜 친구가 된 뒤, 그레이스가 죽을걸 알면서도 로키를 구해주러 가는 장면은 뭉클하기까지 했습니다. "가고 있어 친구. 기다려"는 정말 명대사였어요.

전편에 흐르고 있는 유머도 남다릅니다. 프로젝트의 어원부터가 미식축구 등에서 경기 종료 직전에 역전을 노리고 시도하는 성공률이 매우 낮은 작전을 일컫고, 그레이스도 자기 부정 등이 포함된 기묘한 유머 감각으로 상황을 그려낼 뿐더러, 상황 자체가 유머스럽게 그려진게 많거든요. 목숨을 건 임무를 거부했던 그레이스를 속여서 강제로 우주선에 태웠던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총책임자 에바의 행동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충격적인 반전이기도 한데 솔직히 너무 웃겼습니다.

그러나 편의적인 전개가 너무 많기는 합니다. 그레이스와 로키가 만나고, 서로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한다는 것 부터가 그러합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아이큐가 80이 넘는다는 돌고래와는 왜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건지 설명이 안됩니다. 설령 가능했다 한 들, 만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아스트로파지를 없애는 방법을 함께 찾을 정도로 서로의 언어에 숙달하게 되었다는건 억지입니다. 외계인이 언어 체계를 제외하면, 사고 방식 등이 모두 인류와 유사하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편의적이었고요.
그 외에도 타우메바의 진화가 쉽게 이루어지는 등 비교적 해결책이 쉽게 도출된다던가, 진화한 타우메바가 제노나이트를 뚫고나와 아스트로파지를 먹어치우는 위기에서 타우메바의 유일한 천적(?)인 질소를 우주 비행사 중 한 명이었던 두보이스가 자살용으로 헤일메리에 실어놓았었다는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과학적인 설명도 가득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까지 있어서 무척 놀라왔던 작품입니다. 별점 3점은 충분하지요. 베스트셀러 작가는 확실히 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