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3/09/15

꽃밥 - 슈카와 미나토 / 김난주 : 별점 2점

꽃밥 - 4점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예문사

공포 소설에 가까운 환상 소설 <<도시전설 세피아>>로 접했던 작가 슈카와 미나토의 단편집. 몰랐는데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수상 이력이 중요한건 아니지만, 흥미가 생겨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부 주인공 화자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오사카 변두리 어딘가에 있는 서민가 뒷골목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웃간 소통이 많고, 아이들끼리는 항상 어울려 놀곤 했던, 우리나라로 따지면 <<검정 고무신>>이 떠오르는 그런 시대 그런 거리입니다. 이 거리에서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이 접하게 된 다소 기이하고 환상적인 경험들이 그려지는데, 환생, 성불하지 못한 영혼과 같이 뻔한 것도 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서정적인 묘사는 나오키 상을 수상할만하다 싶고요.

그런데 소년, 소녀가 묘한 경험을 한 뒤 한 뼘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이 겪은 경험은 기억에 깊숙한 자국을 남기기는 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뻔하지 않아서 좋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래서 어쩌라고?'처럼 기승전결없는 단순한 추억담이에요. 그들이 겪은 기묘한 경험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고요.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으려던 작가의 의도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답답했습니다. 별다른 설명없이, 기승전결없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미쓰다 신조의 괴담물과 별로 다를게 없어요. 결말은 명확해서 괴담물보다는 이야기로서 완성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결말은 모두 추억과는 별 관계가 없어요....
무엇보다도 추리물도 아니고 호러도 아닙니다. 장르 문학 팬이 평가할만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포일러를 알아봤자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요.

<<꽃밥>>
초등학생인 여동생 후미코가 열병을 앓고 난 뒤, 스물 한 살 때 살해당한 시게타 기요미라는 여자의 환생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기요미의 집을 보러가자고 졸라서, 나는 후미코를 데리고 히코네라는 동네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요미의 아버지가 딸이 살해당할 때 튀김을 먹고 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곡기를 끊었다는걸 알게 된 후미코는 기요미가 어릴 때 만들었다는 꽃으로 만든 밥을 기요미의 아버지에게 전해준다...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는 표제작. 후미코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초, 중반부는 사뭇 흥미진진했습니다. 후미코가 노트에 시게타 기요미 가족 이름을 써 둔 것, 어린 아이임에도 보이는 기묘한 행동들로 공포물스러운 느낌을 전해주거든요. 약간 <<오멘>> 같은 분위기였달까요?
아직 어리지만 여동생을 끔찍히 아끼고 가족으로 여기는 나의 모습을 통해서, 가족과 추억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이런 부분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하지만 환생임을 밝히고 난 뒤, 아버지에게 꽃밥을 전해준다는 최루성 가족 드라마스러운 전개는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너무 뻔했어요! 결말도 예상대로였고요. 뻔하고 무난한 탓에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도까비의 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도쿄에서 오사카 서민촌으로 이사온 나 (유키오)의 주변에는 또래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중 모두가 은근히 따돌리던 한국인 형제가 있었다.
나는 형제 중 동생 정호와 친해졌지만 몸이 약했던 정호는 그 해 여름 죽고 말았다. 그리고 마을에 정호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친구 중에 한국인 형제가 있다는 설정은 반가왔습니다. 도까비 라는 제목도 도깨비에서 따 왔으며, 귀신을 퇴치하기 위해 고추를 문에 걸어둔다는 한국적인 설정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실제 작가 유년 시절에 한국인 친구가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여튼 읽으면서, 정호 귀신 소동은 몸이 튼튼하고 강했던 정호의 형 준지가 자기들을 왕따시킨 마을에 대한 작은 복수극일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정호의 도까비가 소동을 일으켰고, 이유는 원래 정호의 몸 상태 - 몸이 아프고 약해서 방에만 있었다 - 때문이었다는건 의외였어요. 그래도 죽은 뒤 아프지 않고 자유로와져서 온 마을을 싸돌아다녔다는 건 꽤 신선했습니다. 유키오의 장난감으로 신나게 논 뒤, 드디어 성불하게 되었다는 결말도 그럴싸 했고요.

그러나 진짜 도까비였다는건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복수극으로 생각했던 탓입니다. 너무 추리, 범죄 소설에 뇌가 찌들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요정 생물>>
오사카 변두리 주택가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소녀 세쓰코는 정체불명의 상인으로부터 '요정 생물'을 구입하게 되었다. 키우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말처럼, 아빠의 부하로 잘생긴 훈남 다이스케가 찾아왔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엄마와 함께 도망가 버렸고, 세쓰코는 요정 생물을 죽여서 버렸지만, 그 뒤 아빠의 다른 부하 지로에게 강제로 몸을 빼앗긴 뒤,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다...


요정 생물이라는 기묘한 존재로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환상 소설에 가깝습니다. 요정 생물의 계란 프라이같은 생김새와 키우는 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 - 물은 사흘에 한 번 갈아줄 것. 물에 티스푼 절반 정도의 설탕을 풀 것. 강한 햇볕을 쬐면 안되고, 더운 곳에 두어도 안됨. 병을 바꿀 때는 같은 크기로. 병이 커지면 덩치도 커진다 - 등을 통해 <<그렘린>>과 비슷한 크리쳐 물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알고보니 어린 소녀가 '성'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을 '요정 생물'과의 접촉에 직접적으로 비유하여 전개하는 작품이더군요.

디테일한 설정이 뒷받침된 요정 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그 외에는 별로였습니다. 엄마와 다이스케가 불륜을 저지를거라는건 너무 뻔했으며, 성적인 소재를 일본 특유의 변태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낸 느낌이라 즐겁게 읽을 수가 없었어요. 세쓰코가 비참한 상황에 처한다는 결말도 와 닿지 않았고요. 왜 요정 생물이 세쓰코에게는 행운을 가져다 주지 않은걸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참 묘한 세상>>
아키라의 백수 삼촌이 죽었다. 술에 취해 육교를 건너다 계단에서 떨어진 탓이었다. 그런데 장례식 후 화장터로 향하던 영구차가 멈춰버렸고, 관을 꺼낼 수도 없게 되었다. 영문을 모르던 어른들은 당황했는데, '나'는 삼촌의 애인이었던 가오루 씨를 부르면 될 것이라 여겼다...

장례식에서 난봉꾼 망자의 관 이동을 놓고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극. 사실혼 관계의 아내 외의 애인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는 반전은 살짝 깼고, 이 여자들이 모두 친구가 된다는 결말도 유쾌합니다. 제목 그대로 참 묘한 세상이에요. 하지만 딱히 재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오쿠린바>>
40년 전, 나는 어린 나이로 '오쿠린바'인 먼 친척 할머니의 조수가 되었다. 오쿠린바는 주문으로 사람의 혼과 몸의 연결을 끊어 죽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임종하면서 나에게 주문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그 일을 잇지 않기로 결심했다.

줄거리 요약은 단순하지만 실제 작품에서는 오쿠린바가 주문을 외워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일화가 여러개 소개되며, 주문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주문은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듣게 만들어야 효과가 있으며, 중간까지 들려주면 살아있지만 나머지를 듣게되면 바로 죽는다는 등으로요. 
하지만 일화들은 모두 비슷비슷했고, 설정도 작 중 그렇게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합니다. 그냥 오쿠린바 할머니의 또다른 회고로만 설명되며, 주인공 화자 미사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재미있고 극적인 드라마로 끌고 나갈 수 있었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함 그 자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얼음 나비>>
수십년 전, 오사카 변두리 거리 동네에 살았던 나(미치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왕따를 당해왔다. 친구가 없는 탓에 묘지에 놀러갔다가 18살이라는 누나 미와와 친해졌다. 그녀는 아픈 동생을 구하기 위해 머나먼 타지로 나와 일하고 있다고 해다. 그리고 겨울에도 살아남는 신비한 나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겨울에도 살아있는 나비를 통해 어린 시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아픈 사랑(?)과 사라져버린 추억을 형상화한 작품.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신비로운 상황이라는게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겨울 나비를 보고 미와와 헤어지는 미치오의 모습은, 청춘의 환영인 메텔을 떠나보내는 테츠로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서정적인 버젼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겨울 나비에 대한 묘사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습니다. 미와가 유령이 아니라면 몸을 팔고 있을 거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결말은 둘의 파국이라는게 너무 뻔해서 의외성도 없었고 진부했습니다.
환상 소설 측면으로 보아도 '겨울 나비' 자체는 실존하는 것이기에 딱히 언급할게 없네요. 마지막에 함께 본 나비는 환상일 수 있지만, 그건 단지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는 상징일 뿐입니다. 특별히 장르 문학적으로 바라볼 부분은 없어요.
그 외에도 미치오가 왜 왕따를 당하는지 설명되지 않고, 미와와의 이별 후 급작스럽게 마사히코가 친구가 되자고 이야기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럴 바에야 왕따 설정은 빼고 그냥 외로운 아이였다고 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