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3/09/02

근대 사물 탐구 사전 - 정명섭 : 별점 3점

근대 사물 탐구 사전 - 6점
정명섭 지음/초록비책공방

근대를 대표하는 사물들 8종에 대해 언제 들어와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뀌었고,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추적하여 알려주는 미시사 서적.
대부분 다른 유사 미시사 서적에서 접했던 사물들이지만, 그 시작과 끝을 철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바라보는 시각도 분석적이며 냉철하고요. 도판들도 충실하게 실려있어서 보는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류의 책들을 워낙 많이 읽은 탓에 중복되는 정보가 많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성 영화>>는 <<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이름, 시네마 천국>> 내용과 비슷합니다. 변사 스타일이 여러가지 있었다던가, 장르별로 선호된 변사들이 달랐다는 등 색다른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대동소이해요. 무성 영화가 사라진건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성냥>>은 성냥이 개발된 과정이 오히려 더 중심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근대와는 큰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조선에도 여러 회사들이 있었다 정도인데, 그 회사들도 대부분 일본인이 운영했다니..... 어원이 '석류황'이라는 것만 기억에 남습니다. <<석유 풍로>>는 굉장히 혁신적인 물건이었던건 분명합니다만, 그렇게 근대와 관계가 있는 물건인지 좀 아리송했어요.

그래도 상세하게 소개하는 만큼 기억에 남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노면 전차>>
노면 전차는 서구의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여 국가를 개혁시킨다는 광무개혁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저자는 이는 서구의 시간과 속도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통수단이 미약하고 시간에 대해 명확한 개념이 없던 시대에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는게 어려웠지요. 시간도 정확히 알 수 없었고요. 그러나 전차는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시간에 도착하는걸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시간'에 대한 개념이 더 명확해진 것과 같지요. 그러나 저자는 전차의 첫 노선이 죽은 왕비 (명성황후)의 무덤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점에서 광무개혁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고종은 역시, 개혁 군주로 칠 수 없는 인물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또 전차가 대한제국에 부설된 시기가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는게 신기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전차는 교토와 나고야에만 있었지 오히려 수도 도쿄에는 없었다고 하네요. 진짜 제대로 개혁만 했어도 뭔가 이루어졌을 시기로 보이는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 외 전차를 타려면 전차표를 썼다는 것, 다양한 할인 정책과 회수권, 정기권 등 여러 형태가 있었다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습니다. 광복 후까지 미제 전차를 도입하면서 노면 전차는 운행되었지만, 궤도를 깔고 전신주를 세우는 등의 절차가 필요없는 버스의 숫자가 증가하는 등의 이유로 결국 사라져버렸다는데, 무려 1968년까지 운행되었다는건 몰랐었네요.

<<재봉틀>>
전 세계 재봉틀 점유율 1위였던 싱거사가 1905년에 한성에 지점을 세우고 할부와 같은 공격적 마케팅으로 조선 시장을 장악했다는 유래담은 신기했습니다. 이렇게 일찍 들어와서 모두에게 알려진 사물이었다는건 여태까지 몰랐었거든요. 세일즈맨과 여성 강사 - 여교사라고 불리운 - 를 한 팀으로 가정집을 방문하여 판매했다는, 당시 시대 상황 - 여성이 바깥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 에 꼭 들어맞는 영업 방식도 인상적이었어요. 역시 세계 1위는 뭔가 달라도 다르네요. 이를 통해 조선 시장을 장악한 싱거사의 조선 지점은 1930년대 이미 200여개에 직원은 2,000명에 달했다고 하니 대단합니다. 판매량도 1937년에는 2만 5,000여대를 팔았는데, 동시기 일본에서 4만여대를 팔았다니 두 나라간 경제력과 인구수를 감안하면 조선에서의 매출은 엄청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인력거>>
여러가지 규칙과 조항이 있었다는 걸로 보면 근대적인 탈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현대의 택시와 별로 다를게 없더라고요. 10리 안에는 40전의 기본 요금이 책정되었으며 승차 거부는 금지되어 있었다던가, 인력거꾼에게 영업 허가증을 발급해 주었으며 인력거 주차장도 있었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1925년 1월에 진남포에서 있었던 기생들의 결의는 눈길을 끕니다. 기생들이 인력거를 타지 않고 걸어서 요리점까지 가기로 하자, 인력거 회사 사장이 이유를 물었습니다. 기생들은 '사람이 어찌 사람이 끄는 인력거를 탈 수 있느냐'고 답했다고 합니다. 기생보다도 인력거꾼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다는 것, 그리고 기생들이 당대 상당히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여성들이었다는걸 알 수 있네요.
그리고 인력거꾼은 광복 이후에도 살아남았지만 1961년에 결국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이유야 여러가지겠지만, 결국 다른 탈 것과의 경쟁에서 뒤쳐졌기 때문이겠지요.

<<축음기>>
유성기라는 명칭의 어원으로 조선인들이 이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가격을 비롯하여 1932년 <<황성의 적>>이라는 음반이 대략 5만장 쯤 판매된 공전의 히트작이었다는 등의 다양한 정보가 함께 제공됩니다.

<<고무신>>
인천의 이성원이라는 양화점 주인이 전 세계에서 수입된 다양한 신발을 보고 조선만의 독자적 신발을 만들 결심을 한 게 고무신의 시작이었습니다. 1913년 특허받은 그의 경제화는 바닥은 가죽, 서양식 구두와 같은 뒤축에 나머지는 천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바닥을 고무로 만든 경제화도 나왔지요. 이를 모방하여 1921년 이화영이 신발 전체를 고무로 만든 신발을 내 놓습니다. 이는 조선 양반들이 신던 당혜라는 가죽신 모양을 차용하여 거부감이 덜했고, 사람들이 어색해하던 뒤축이 없어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이화영의 대륙고무회사는 당시로서는 독특한 마케팅도 도입했는데, 하나는 '대장군표'라는 브랜드를 붙여 브랜딩한 것이고, 또 하나는 유명인을 적극 활용한 겁니다. 순종에게 진상하고 이를 홍보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이외에도 정말 많은 정보가 소개되니, 이런 류의 미시사 서적을 좋아하시거나 한국 근대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