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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9

방주 - 유키 하루오 / 김은모 : 별점 2.5점

방주 - 6점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슈이치는 대학 동창들, 그리고 사촌형 쇼타로와 함께 유야의 별장에 놀라왔다가 유야가 발견한 기묘한 시설로 향했다. '방주'라 불리우는 거대한 지하 시설이었다. 버섯을 따러 왔다가 길을 잃었다는 야자키 가족과 하룻밤을 보내던 일행은 지진 탓에 '방주'에 갇히고 말았다. 
지하에서부터 물이 차올라 일주일 안에 탈출해야 했는데, 방법은 입구를 막은 돌을 떨어트리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돌을 떨어트린 사람 혼자 방주에 남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마침 유야가 살해되자, 일행은 유야를 죽인 범인을 방주에 남도록 하자는 암묵적인 동의를 이루었다. 
그러나 증거가 없어 시간이 흘러가던 차에, 사야카와 야자키도 차례로 살해당했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쇼타로는 추리쇼를 벌여 범인을 밝혀냈다.

2022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23년 '본격미스터리 10' 2위에 선정되는 등 최근 가장 뜨거운 작품. 추석 연휴를 맞아 읽어보았습니다. 찬사를 받은 이유는 바로 알겠더군요. 일반적인 클로즈드 써클 (클로즈드서클) 장르의 틀을 완전히 깨버린 덕분입니다. 이렇게 닫힌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해결하는 이야기는 한, 두편이 아닙니다. 산장이나 섬같은 고전적인 장소에서 현대적인 빌딩이나 기묘한 이공간 등으로 장소도 확장되어 왔고, 고립되는 이유도 폭설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에서 정전 등의 현대적인 이유, 특수한 집단이 납치하여 게임을 벌이거나 좀비가 등장하는 식의 특수 설정까지 다양한 상황을 선보여 왔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고립된 장소도 독특하지만, '범행을 벌이는 동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범인 마이가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원한따위가 아닙니다. 오로지 "고립된 장소에서 탈출해서 살아남기" 위해서에요. 게다가 이를 위해서 범행이 결국 밝혀지도록 유도하기까지 하고요. 전에 보지 못한 신선한 발상이었습니다.
고립된 장소인 '방주' 설정도 좋습니다. 출입구를 거대한 바위로 막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이유는 물론, 반전에 유용하게 활용되는 출입구와 비상구를 감시하는 카메라의 존재를 오래전 과격 분자나 사이비 종교 단체가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하는건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방주 내에 이런저런 시설과 장비, 음식 등이 갖추어져 있는 것도 같은 이유로 충분히 말이 되고요. 지하 3층에서부터 물이 차오르고 있어서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도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좋은 장치였습니다. 이렇게 '방주'의 존재감이 너무 확실해서 초, 중반부까지는 방주가 주인공인 느낌마저 전해줍니다.

그러나 문제도 많습니다. 첫 번째는 '범인'에게 닻감개로 바위를 치우고 홀로 고립될 역할을 맡긴다는 사람들간의 암묵적인 동의입니다. 범인이 누구든간에 자기 범행이 드러났다고 그런걸 순순히 받아들일 이유는 없어요. 만약 범인이 피트니스 센터 강사 류헤이였다면 완력으로 제압하여 굴복시키기도 어려웠을테고요. 그리고 침수되는 중이라 시간 제한이 있는 와중이라면 범인을 찾아서 희생하라고 설득하느니 누구든 빨리 돌을 치워 사람들을 탈출시키고 구조를 기다리는게 빨랐을겁니다. 아무리 산사태가 일어났어도 한나절 만에 올라온 산을 내려가는데 1주일이나 걸릴리가 없잖아요? 기본적인 상식을 부정하는 설정이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아무도 공기통을 활용하여 지하 3층을 지나 비상구로의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범인을 밝히는 것 외에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건 설득력이 약합니다.

마이가 범행을 저지르는 일련의 과정도 작위적입니다. 물론 마이가 곧바로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제비뽑기 같은 것으로 희생자(?)를 고르기 전에 상황을 바꿔야 했기 때문이라는건 어느정도 말은 됩니다. 전에 '방주'에 왔던 경험이 있는 유야는 출입구와 비상구가 바뀐걸 눈치챘을지도 몰랐기에 제일 먼저 죽였다는 것, 유야 사건에 증거가 남지 않고 모두가 범행이 가능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납득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야카의 핸드폰 속 사진이 출입구와 비상구가 바뀐걸 나타낼 수 있어서 죽였고, 사야카가 핸드폰을 분실해서 어쩔 수 없이 목을 잘랐다 - 핸드폰이 안면인식으로 잠금 해제가 되는 모델이라 - 는 것까지는 그렇다쳐도, 애써 종이 타월을 가져오면서까지 증거 인멸을 위해 노력했다는건 설명이 안됩니다. 어차피 범인임을 드러내어 희생양이 될 목적이었다면 시체의 목을 자르다가 들통나는게 더 확실했을거에요. 제한 시간까지 기다리면서 범행을 드러내는 것 보다는 말이지요. 사체의 목을 자르는 행동이 의심을 불러 일으킬까봐 그랬다? 그래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을겁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고립된 사람들 앞에서는요. 마지막 쇼타로의 추리쇼에서 어떤 사진 때문에 사야카를 죽였는지에 대해 마이가 설명한걸 아무도 부정하거나 지적하지 않았던 것처럼요. 또 마지막 추리쇼에서 마이가 범인이라는건 증명하지만, 앞서 쇼타로가 말했듯 "동기가 없다"는 이유는 간과하고 있습니다. 식량이 부족했다던가, 유야가 방주로 일행을 억지로 데리고 왔다는 등의 설정을 덧붙였더라면 좋았을겁니다.
마이가 탈출에 성공했다 한들, 이후 다른 사람들의 실종과 죽음을 어떻게 설명하려 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테이프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이 범인이라던가 유야의 손톱깎기와 지퍼백을 범인이 가지고 왔던 이유는 핸드폰이 방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억지스러웠습니다. 테이프 정도야 잊어버릴 수도 있지요. 지퍼백의 용도도 지나치게 국한되어 있고, 발표 시점에 생활 방수가 되지 않는 핸드폰을 사용하는 MZ 세대가 있을걸로 보이지도 않고요. 

이렇게 장점도 확실하고 단점 또한 확실한 그런 작품입니다. 돌직구 하나로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변화구도 적절하게 섞어주지 않으면 버티기 힘듭니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그래도 한 가지 장점으로 정면 승부를 벌일만큼의 매력도 충분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비슷한 설정들에 지친 추리 소설 애호가분들이라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덧붙이자면, 10명에 불과한 등장인물 - 심지어 3명은 중간에 살해당함 - 과 폐쇄된 공간, 일주일의 시간 제한 등의 설정은 '무대'에 잘 어울릴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각색해도 괜찮은 연극이 될 수 있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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