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0시의 몸값 - 교바시 시오리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참 변호사 고야나기 다이키는 보스의 지시로 여대생 혼조 나코와 상담을 진행했다. 그녀는 범죄 조직 리더 가와사키의 여자친구였던 친구 사키때문에 보이스 피싱 사기 범죄에 가담했었다. 그러나 가와사키에게 맞은 사키가 죽고나서 복수하고자 가와사카의 중요한 물건을 빼돌린 뒤, 조직에게 쫓기는 중이었다. 다이키는 그녀를 자수시키려 했지만 나코는 사라져버렸고, 다음 날 아침 나코의 몸값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일본 최대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모기업 ‘사이버앤드인피니티’에 전달되었다. 범인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나코의 몸값 10억엔을 모금하라고 요구했다.
나코를 구하고자 발품을 팔던 다이키는 사무실 보스 미사토 변호사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걸 깨닫는데...
소갯글이 흥미롭길래 읽어보게 된 신작. 잘 모르는 작가인데 이 작품이 데뷰작이더군요. 잘 모를 수 밖에.
나코의 유괴와 몸값 요구에서 시작되어 숨쉴 틈 없이 계속 사건이 벌어진다는건 장점입니다. 나코 유괴는 어느새 사이버앤드인피니티의 기밀 자료를 노리는 산업 스파이 범죄와 관련이 있다는게 밝혀집니다. 여기에는 다이키의 보스도 연루되어 있고요. 그러다가 다이키의 사촌 와카를 납치한 뒤 기밀 자료를 요구하던 가와사키가 폭사하며,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나코의 친아빠였다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이런 내용이 적절한 분량 안에서 펼쳐져서 읽는 재미는 괜찮은 편이에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비현실적입니다. 범인이 세세한 조건을 붙여서 크라우드펀딩으로 몸값을 요구한다는 아이디어부터가 그러합니다. 흥미롭기는 하나 실제로 범인이 몸값을 수령할 가능성은 전무한 탓입니다. 작 중에서는 "별도로 몸값을 입금할 계좌를 알려주겠다"고만 언급하고 대충 넘어가는데, 이 점 하나만으로도 몸값 수령이 범인의 의도가 아니라는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어디 기부하라고 하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사이버앤드인피니티'가 납치 사건과 몸값 모금을 일으킨 진짜 흑막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전개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막 런칭해서 이름을 알려야하는 스타트업이었다면 해 볼만한 시도였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기밀을 빼돌리려는 산업 스파이를 잡아내기 위해서 납치 사건을 조작했다? 단순 산업 스파이 수사는 경찰이 나서지 않고, 안이하게 직원들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서? 납치 사건을 일으켜서 직원들을 재택 근무시킨 뒤 시스템을 조사하고, 회사에 파견된 경찰 수사진에게도 회사 내부에 협력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정보를 흘려 스파이를 찾도록 만든다? 뭐 하나 이해가 되는게 없었습니다. 직원이 4,000명이나 되는 회사의 산업 스파이 조사 의뢰를 경찰이 흘려듣는다는 것 부터가 와 닿지 않는데 뒷 이야기들은 더 말해 무얼하겠습니까.
물론 사이버앤드인피니티가 가짜 유괴를 저지른다는 막장으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가짜 유괴 사건을 일으키고, 가와사키를 조종해서 회사 기밀 정보를 빼돌리려고 했던건 나코와 사키의 친 아빠들이었다는게 진상이니까요. 문제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나코가 저지른 범죄로 가족이 가와사키에게 협박을 받았고 사키는 가와사키 때문에 죽었다는게 동기라면, 가와사키만 죽이면 됩니다. 가짜 유괴 사건을 일으켜 몸값을 요구할 이유는 전무합니다! 심지어 가와사키를 죽였던 상황은 유괴 사건과는 무관하게 와카가 납치되었기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든 기회만 있으면 죽일 수 있었다는 말인데, 왜 전 국민이 주목하는 사건을 일으켰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앞서 이야기했듯, 보스의 산업 스파이 색출 작전과 가짜 유괴가 어떻게 절묘하게 맞물렸는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요.
사건의 진짜 동기라 할 수 있는 사이버앤드인피니티사의 기밀 정보도 굉장히 유치한 발상인데다가, 이를 가방에 넣고 다니거나, USB로 전송한다던가 하는 묘사는 어설펐습니다. 화룡정점은 마지막에 빨간 USB와 파란 USB를 건네주며 하나만 진짜라고 하는 장면입니다. 수십년은 늦은 <<매트릭스>>의 철지난 흉내에 불과하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유괴물의 핵심인 몸값 전달에 있어 획기적인 무언가를 선보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별로 추천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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