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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8

살인을 예고합니다 - 애거서 크리스티 / 이은선 : 별점 2.5점

살인을 예고합니다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인을 예고합니다. 시각은 10월 29일 금요일 6:30 P.M. 장소는 리틀 패덕스. 친구들은 이번 한 번뿐인 통지를 숙지하기 바랍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 치핑 클래그혼의 온갖 가십이 실리는 신문 「가제트」에 기묘한 광고가 떴다. 이웃들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약속이나 한듯 정해진 시각에 리틀 패덕스를 찾아왔다. 그리고 6시 30분에 방안의 불이 꺼지고 누군가 침입했다! 곧이어 총성이 울리고, 사람들은 쓰러진 침입자를 보았다. 리틀 패덕스의 주인 블랙록 양을 쏜 뒤, 스스로에게 총을 쏴 사망한 듯 했다. 하지만 크래독 경위 등 경찰 관계자들은 미심쩍음을 느꼈고, 마을을 방문한 미스 마플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블랙록 양의 친구이자 동거인 버너 양의 독살, 마을 주민 머거트로이드 양의 교살 사건이 이어지는데....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중 두 번째로 읽은 작품. 미스 마플 시리즈인데, 세인트 메리 미드가 아닌, 또 다른 시골 마을 치핑 클래그혼이 무대입니다.

살인을 예고하는 광고를 실으면서 시작되는 도입부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였어요. 이에 대한 설명 - 좀도둑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강도짓을 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 도 꽤 그럴싸했고요. 경찰 관계자들이 미심쩍어 하지만 않았어도,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한 번에 털려고 했던 창의적인 강도가 실수로 쏜 총에 맞아 죽은 우발적인 사건으로 처리되었을 수도 있었을거에요.
전후 식량과 의류가 배급제로 이루어지고, 때문에 마을 내에서 물물교환이 버젓이 이루어지던 시대 배경도 흥미로왔습니다. 이를 통해 마을 사람 누구나 리틀 패덕스에 드나들 수 있어서 다들 용의자가 되어 버리고 말거든요. 힘들었던 시대에 있었던 일까지 작품에 효과적으로 반영시키는건 정말이지 거장다운 솜씨라 할 수 있겠지요. 감탄을 금치 못하겠어요.

본격 추리물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공정함 측면에서도 만점을 줄 만합니다. 블랙록 양이 사건을 꾸몄다는걸 처음 마을 주민들이 리틀 패덕스에 모일 때의 대사로 명확하게 알려주는 덕분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 리틀 패덕스에 모인 마을 주민들 모두가 석탄 배급 중임에도 불구하고 중앙 난방을 돌린걸 언급하는데, 벽난로 불을 때면 간접 조명이 발생하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범행을 저질러야 했던 블랙록 양은 어쩔 수 없이 중앙 난방을 돌렸던 겁니다! 불을 꺼지게 만든 장치도 가구에 남은 담뱃자욱, 바뀐 조명등, 물이 없어 말라버린 제비꽃 등으로 확실하게 설명되며, 레티셔 블랙록과 샬럿 블랙록 신분이 뒤 바뀌어 있다는 것도 도라의 말실수 - 어떨 때는 레티, 어떨 때는 로티라고 부르는 - 를 비롯하여 스위스에서의 수술, 항상 목에 거는 가짜 티 나는 진주 목걸이 등의 여러가지 단서로 알려줍니다. (레티와 로티는 한국 독자에게 그다지 유용한 단서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핍과 에마의 정체가 이란성 쌍둥이지만 둘 다 여자아이였다는 사소하지만 나름대로의 반전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헛점이 많은 편입니다. 범인 블랙록 양의 계획부터 안이했습니다. 경찰들이 엄연한 강도 살인 사건을 이렇게 쉽게 덮을리는 없는데 말이지요.
기발했던 '살인 광고'도 재미있는 아이디어이기는 했지만 현실성이 부족했습니다. 경찰들도 지적하듯이 마을 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 봤자 강도가 얻을 수 있는 잇점은 많지 않아요. 오히려 마을 주민들이 다른 곳에 모이기를 기도하고 빈 집을 털 생각을 하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동네 이웃 집을 방문하는데, 귀하고 값비싼 물건이나 거액의 현금을 들고갈리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마을 주민들이 모인 탓에, 블랙록 양이 총소리가 났을 때 자리에 없었다는걸 머거트로이드 양이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좀 바보같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고 있습니다만 빠릿빠릿한, 아니 보통 수준의 지적 능력만 갖추고 있었더라도 초반부 머거트로이드 양 증언으로 블랙록 양의 계획은 실패하고 체포되었을 거에요. 
한마디로 말해 살인 광고는 증인만 늘린 무의미한 행동이었습니다. 광고없이 셰르츠를 집으로 오라고 속이고 살해하는게 더 나은 선택이었어요. 증인이야 버너 양, 가정부 미치면 차고 넘쳤을테니까요. 동거하는 조카들도 있고.

또 사건을 꾸밀 때 블랙록 양을 향해 총을 쏜 걸로 위장한건 너무나도 큰 실수였어요. 수사하다보면, 그녀가 벨 괴들러의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을 예정이라는게 드러날테고, 그렇다면 용의자로 유산을 노리는 벨 괴들러 동생의 자녀들 - 핍과 에마 - 이 떠오르는게 당연했습니다. 흉기인 권총도 마을 주민 이스터브룩 대령의 소장품을 훔쳤다는게 밝혀졌다면, 죽은 강도 세르츠가 그 총이 있다는걸 알고 훔쳤을리가 없으니 - 불가능한건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웠겠지요 - 용의자는 마을 주민으로 더욱 좁혀졌을테고요. 그냥 아무데나 총을 쐈더라면 아무 문제 없었는데, 왜 자기한테 총을 쏜 것처럼 꾸몄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범행 자체의 설득력도 떨어집니다. 셰르츠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시도를 하기전에, 괴들러의 유산을 받을 때 까지만이라도 버티는게 상식적이니까요. 실제로 협박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지레짐작으로 살인까지 저지른다는건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불필요한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설명도 많습니다. 특히 블랙록 양의 가정부 미치는 타고난 거짓말장이에 과대 피해 망상증 소지자로 등장할 때마다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라서, 빨리 피해자가 되기를 바랄 정도였어요. 제가 블랙록 양이라면 리틀 패덕스에 강도가 든 걸로 꾸밀 때, 미치를 죽이고 셰르츠가 실수로 죽인걸로 위장했을 겁니다....

그래도 동기에 대한 설명만큼은 확실하고, 공정함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전 본격 추리물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완전 공략>>에서는 따분하다는 이유로 별점 2점을 주었던데, 다소 지루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2점은 다소 가혹해 보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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