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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31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 제프 린제이 / 최필원 : 별점 1점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 2점
제프 린제이 지음, 최필원 옮김/비채

마이애미,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살인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덱스터는 양부였던 헨리의 충고에 따라 사회악적인 존재만 골라서 처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본 직업인 경찰 혈흔 분석가로서의 이중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그러나 덱스터와 유사한 연쇄살인범이 나타나 마이애미는 광란 상태에 빠지고 덱스터는 살인범과의 교감을 느끼면서도 의붓 여동생인 데보라의 소망에 따라 자신의 직감과 본능에 따라 살인범을 추적한다...

모던 스릴러 소설가이자 기획자라는 모중석씨가 선정한 스릴러 소설들을 출간하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의 4번째 작품입니다. 스릴러 소설은 별로 취향은 아니지만 평도 좋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그러나.. 읽어본 결과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대실망!" 입니다.

일단, 대체 이 소설의 어디가 스릴러라는 것인지 저는 당쵀 알 수 없더군요. 살인범과의 몇가지의 단서를 놓고 벌이는 스릴 넘치는 두뇌게임이나 쫓고쫓기는 추격? 이 작품에서는 그런건 전혀 없습니다. 살인범의 추적은 덱스터가 같은 연쇄살인범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순전히 자신의 "본능"과 "직감"에 따를 뿐입니다. "단서" 이런건 전혀 없습니다. 단서랍시고 나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실제 수사에는 군더더기일 뿐이고요. 압권은 살인범이 덱스터를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오히려 서서히 접근해 온다는 설정. 장난쳐 지금? 주인공은 하는게 하나도 없잖아!

혹 잔인한 장면의 나열만으로 스릴을 줄 수 있다고 작가가 착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구태의연하고 지루한 묘사였을 뿐입니다. 제임스 옐로이의 블랙 다알리아같은 숨이 콱콱 막히고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는 범죄소설 보고 연구나 좀 할 것이지... 작가가 본 건 헐리우드 영화들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의붓동생과의 관계나 직장 상사와의 관계 등 모든 다른 세부 설정들도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를 아주 충실히 모방하고 있거든요. 아, 주인공 직업에 대한 설정이나 몇몇 장면들에서는 CSI도 좀 본 티를 내긴 하더군요.

그리고 덱스터의 심리묘사에 너무 많이 치중하고 있는 것도 실수로 보입니다. 작가의 필력이 그닥 캐릭터의 심리묘사를 돋보이게 할 정도로 화려하지도 않아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져서 소설만 불필요하게 길어질 뿐이었습니다. 이놈은 왜이리 잡생각이 많은지 원...

범죄자를 잔인하게 응징하는 이야기는 온갖 만화에서 써먹은 소재이니 별반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고 경찰과 범죄자의 이중생활 역시 뻔한 이야기고.... 잔인하면서도 완벽한 연쇄살인범을 "착한"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설정빼고는 건질게 별로 없는 알맹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연쇄살인마가 경찰 업무를 수행한다는 이중생활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더라면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최소한 웃기기는 했을텐데.

요새 이래저래 안좋은 일이 생겨 좀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라 이 작품이 좀 집중포화를 맞은 듯도 하지만 두번다시 손에 잡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뒷 커버에는 "리얼리티의 힘!" 이라는 카피가 나와있는데 이 소설의 어디가 리얼하다는 건지 대관절 알 수가 없네요. 보름달에 살인 충동을 이기지 못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게 리얼하다니... 보름달이 뜰때 주인공이 늑대인간으로 변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인하는 것이 리얼하다고 표현한 건가?

PS : 원제가 "Darkly Dreaming Dexter" 니 줄이면 "3D"군요. 전혀 상관없지만 더들리 보이스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PS2 (2006.10.11) : 블로그를 둘러보다 보니 영상화가 끝난 모양이군요. 의외로 TV Series인 듯 합니다. 뭐 워낙 영상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작품이다 보니 의외성은 없고 외려 보고싶어지네요.

해고

당한적은 처음이라 좀 당황스럽습니다...


여태까지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문 닫은 경우는 한 두어차례 있었던 것 같은데....

불쾌하면서도 나름 새로운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긴 한데, 너무 회사를 자주 옮기는 것 같아 이젠 지겹습니다. 제가 옮기는 회사마다 왜 이모양인지 굿이라도 한번 해야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군요. 빨리 새로운 곳에 정챡했으면 좋겠는데...

인력채용 사이트를 좀 뒤져 보았는데 제가 하는 일이 너무 전문적인 일이라서 그런가? 하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뽑는데도 별로 없군요. 쩝.



그래서, 당분간 블로그 라이프는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어려울 듯 합니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2006/08/29

고독한 은행가 (Banker) - 딕 프란시스 / 정성호 : 별점 2.5점

 

BANKER - 6점
DICK FRANCIS/홍익미디어

에카테린 은행 창립자의 손자인 팀 에카테린은 전도 유망한 은행가로 부모님의 실패를 딛고 은행에서의 지위도 확실히 하고 있으나 상사인 고든의 부인 쥬디스에 대한 연모의 정으로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 초대받아 방문한 애스컷 경마장에서 몇명의 경마관련 인사와 친해지고, 무면허지만 탁월한 실적으로 전 영국에 이름이 높은 "기적의 의사" 콜더 잭슨의 생명을 구해주기까지 한 인연 탓에, 팀은 이사 진급 직후 유망한 종마를 사기위한 투자금 500만 파운드의 대출건을 책임지도록 결정된다. 
그리고  애스컷 경마장 방문당시 기적의 우승을 했던 경주마 샌드캐슬에 대한 강한 인상과 사육장 주인 올리버에 대한 믿을만한 조사를 통해 대출을 결정한다. 일종의 주식과도 같이 한 종마의 노미네이션 (접붙이는 횟수에 대한 권리) 40개에 대한 투자로 약 20여년을 바라본 장기투자지만 확실한 수익을 안겨다 줄 것으로 기대되었고 거의 모든 사고에 대한 보험처리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한 상태.

그러나 샌드캐슬과 교미했던 말들이 낳은 망아지들의 절반이 경주마로 뛸 수 없는 장애마, 기형마로 밝혀지고 이 건에 대해서는 미처 보험에 들지 못한 상태라 샌드캐슬의 인기와 주가가 폭락하면서 위기가 닥치며 올리버의 딸 지니마저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내놓은 작품 모두가 평균 이상의 재미를 주는 희대의 "타율왕"작가 딕 프란시스의 1982년도 작품입니다. 원제는 "Banker"인데 국내에서 앞에 "고독한"이란 타이틀을 붙였군요. 제가 읽은 딕 프란시스의 네번째 작품이기도 합니다.

제목 그대로 은행가가 주인공이고 초반부에는 은행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로 그려지나 역시나 경마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주 스토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경마 레이스가 아닌 "종마 투자"라는 굉장히 이색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참신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가져다 줍니다. 그런데 이 종마와 그 투자에 대한 설명과 내용에 대한 묘사가 정말이지 너무나 디테일하고 매력적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흥미로웠어요. 저도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또한 500만 파운드라는 거금과 그 이면에 얽힌 음모 역시 설득력있게 묘사되며 살인까지 얽힌 복잡한 사건을 사소한 단서를 통해 밝혀낸다는 전개는 언제나처럼 흥분과 재미를 가져다 주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다지 내세울만한 점은 없습니다. 트릭이 중요한 정통 본격 추리물은 아니고 스릴러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나 대충의 줄거리만 보아도 가장 수상한 사람이 드러나 보일 만큼 전개가 뻔하기 때문에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이 주인공의 "가택침입"을 통한다는 점, 가택침입에서 중요한 증거가 드러나도록 방치해 놓은 범인의 방심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거액이 걸린 음모에는 걸맞지 않는 허술한 결말이었어요.

그래도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정보의 제공, 그리고 별다른 이야기가 구성될 것 같지 않는 소재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능력은 "타율왕"이라는 별명에 값하긴 합니다. 시작 부분에 있었던 사소한 사건에서부터 전체적인 사건을 엮어나가는 이야기 솜씨도 탁월하고요.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06/08/26

팔묘촌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3점

팔묘촌
요코미조 세이시

팔묘촌은 에이로쿠 9년, 멸망한 가문의 젊은 무사 8명이 삼천냥의 황금을 가지고 숨어 지내다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참살된 전설이 있는 마을. 그러나 황금은 결국 발견되지 않고 여러명에게 저주가 내린 듯 죽음이 닥치자 마을 사람들은 8명의 무사를 공양하고 그들을 마을의 신으로 삼는다.

그로부터 300여년 뒤, 나 데라다 타츠야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양부에게 얹혀 지내다 전쟁 후 양부의 집마저 불타 혼자 살아가고 있는 중 라디오에서 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회사 과장에 의해 내가 팔묘촌이라는 마을 최고 갑부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팔묘촌으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 다지미 요조는 일찌기 내가 태어난 직후 어머니와의 부적절한 관계때문에 발광하여 마을사람 20여명을 살해하고 행방불명된 과거가 있는 인물이었다.

팔묘촌으로 출발하기 직전 처음 만난 외할아버지가 독살당한 것을 시작으로 처음 만난 의붓 형, 그리고 의붓형의 장례식에서 마을 스님마저 독설당하고 이 모든것이 아버지의 업보를 뒤집어 쓴 내가 돌아왔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며 흉흉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나의 편인줄 알았던 마을 두번째가는 유지의 며느리인 미야코도 서서히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마을 사람들의 폭동을 일으켜 어쩔 수 없이 비밀 통로를 통해 도망친 후 유일한 힘이 되어 주었던 의붓 누나인 하루요마저 살해당한것을 발견하고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노리코와 함께 정체모를 인물인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모든것을 의지한채 지하 동굴에 숨어 있게 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집요한 추적이 이어지고 노리코와 나는 동굴 깊숙한 곳으로 계속 쫓겨 결국 막다른 곳에 이르게 되는데...


간만에 읽은 추리소설인 것 같네요. 블로그의 정체성에 좀 더 충실해져야 하나.... 하여간 지인이자 은인이신 decca님의 도움으로 전에 TV 드라마로 먼저 보았던 긴다이치 코스케 등장 추리물의 대표작 "팔묘촌"을 드디어 책으로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제일 큰 특징이라면 에도가와 란뽀의 "고도의 마인 (외딴섬 악마)" 처럼 주인공의 1인칭 시점의 수기 형태로 기술되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유행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쨌건 주인공 타츠야의 시점으로 모든 전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이나 추리는 마지막 추리극 형태의 설명 부분을 제외하고는 크게 보여지지가 않으며 외려 타츠야에게 닥치는 공포스러운 사건들과 상황들을 변격물 형태로 잘 포장하여 보여주는데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고도의 마인" 처럼 트릭도 많고 추리적인 장치도 잘 짜여진 편이지만 아무래도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변격물의 성격을 띈 모험소설로 보입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 본다면 이야기의 큰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연쇄살인과 보물찾기 중에서 연쇄살인 쪽은 꽤 잘 짜여진 트릭을 보여주고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8명의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미신에서 비롯된 무차별 살인을 보여주는 설정이 꽤 그럴싸하거든요. 가장된 동기 아래에서 벌어지는 무차별 살인 와중에 꼭 죽여야 하는 인물을 죽여야 하는 전개는 크리스티 여사님의 "ABC 살인사건"과도 굉장히 흡사하고요. 그러나 범행 자체가 완전범죄에 가까웠다는 점은 좋았지만 범인이 최초에 대신 죄를 뒤집어 쓸 희생양을 잘못 골랐다는 것 때문에 사건의 결정적 해결이 범인의 자백에 의존한다는 점은 많이 아쉬웠습니다. 희생양이 버젓이 살아있던 중반까지는 참 좋았는데 말이죠... 뭐 이러한 점은 완전범죄 트릭물의 가장 큰 맹점이기도 하고 다른 고전 정통 트릭물에서도 많이 눈에 뜨이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탐정역인 긴다이치의 활약이 굉장히 적어서 최소한의 추리쇼는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나 싶거든요. 이런 문제들 때문에 결과적으로 마지막의 해결 장면, 그리고 긴다이치 코스케의 캐릭터가 많이 약해져버리더군요. 막판에 긴다이치가 사건이 다 끝난 다음에, 범인도 결정적 단서가 남겨져 있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라고 말하며 마무리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허무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리고 보물찾기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뭔가 근사한 트릭이 등장할 줄 알았는데 결국은 치밀한 탐색과 우연에 의한 발견이라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앞부분에 미완성된 지도와 수수께끼같은 싯구, 지명 등 괜찮은 암호트릭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니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숨겨진 보물은 이야기의 핵심 요소로 등장하긴 하지만 결국은 사족에 가까운 내용인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무려 60여년전에 발표되었다는 시대를 뛰어넘는, 최소한 드라마 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소설이여서 무척이나 재미있고 만족스러웠던 독서였습니다. 위의 아쉬운 점은 분명히 존재하더라도 이야기의 진행과 소설적 구성이 참으로 완벽해서 흡입력도 굉장했기 때문이죠. 덕분에 저는 손에 잡고 거의 2~3시간만에 다 읽어버렸을 정도였습니다. 소설을 읽고나니 무려 세번의 영화, 여섯번의 드라마 (띠지에서 인용)로 영상화 되긴 했지만 이 소설을 영상화하는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듭니다. 아무래도 긴다이치의 비중이 너무나 작기 때문인것 같네요.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이 너무나 미미해서 탐정 캐릭터물의 팬이라면 2% 부족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김전일의 팬이라면 굉장히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원전격의 내용으로 김전일 시리즈의 교과서적인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좋은 의미이건 나쁜 의미건 말이죠) 그 외에도 많은 곳에서 패러디된 회중전등을 머리띠와 가슴에 둘러맨 싸이코 연쇄살인마의 원전이라는 의미도 있고요. 국내에 이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옥문도"와 "팔묘촌", 그리고 동서에서 나온 "혼징 살인사건"까지 세권이 정식 출간되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출간되길 희망합니다.

2006/08/24

만화 채플린 웃음속의 칼 - 마사루 / 김경대

 


일본의 프리 일러스트 작가인 하시모토 마사루가 저술한 채플린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룬 책입니다. 책 앞부분은 출생과 여자관계, 가족관계와 당시 시대상황등에 대한 자세한 묘사 및 설명이며 중반 이후는 채플린이 출연, 감독했던 모든 영화들에 대해서 단편별, 장편별로 묶어서 꼼꼼하게 기록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뭐니뭐니 해도 일러스트 작가인 저자의 그림이 매 페이지, 매 주제마다 다채롭게 삽입되어 있다는 것인데 플러스펜으로 간단하게 그린 것 같지만 디테일과 유머스러움, 그리고 상황의 맥을 콕 집어내는 능력이 탁월하여 눈이 무척 즐겁습니다. 쉽게 그린 것 같지만 따라하기는 힘든, 그런 내공을 보여주는 그림들이라 굉장히 마음에 들고 가끔 정성들여 그린 진짜 일러스트도 몇점 삽입되어 있어 작가의 넓은 작업 범위를 보여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림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다른 내용은 그닥 토를 달고 싶은 것도 없지만 채플린에 대해 몰랐었던 많은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것 역시 수확이랄까요? 복잡한 여성관계와 마지막 매카시즘의 광풍속에 미국에서 추방당하다시피하여 스위스에 거주하며 마지막 영화를 감독하고 아카데미상에서 화려한 복귀를 했다는 후일담, 막내아들은 히피가 되어 부모속을 무척 썩였다는 가족의 이야기, 여러 유명인들의 한토막 이야기 등등 그간 알지 못했던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네요.

제목 처럼 "만화"라는 말이 붙을 정도의 내용은 아니지만 일러스트로 채플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데에는 이만한 책이 없으리라 생각되네요.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에서도 채플린에 관련된 책이 나와있지만 저는 일러스트로만 이루어진 이 책이 훨~씬 더 마음에 듭니다. 희대의 천재이자 수많은 명작들을 감독했던 채플린... 그의 일대기를 보여주는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거든요. 92년도에 출간된 책이라 구하기 쉽지는 않지만 꼭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간만에 채플린 영화나 좀 구해 봐야겠네요.

국립 중앙 박물관 간략 기행

 

휴가 중에 모처럼 방문해 보았습니다.

확실히 평일이지만 방학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무척 많더군요.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지라 조금 짜증나기도 했지만 어쨌건 아이들이 국립 박물관에 많이 오는 현실 자체는 마음에 들긴 했습니다. 숙제일지는 모르지만요.

어쨌건 재 개관하고 두번째 방문인데 전시 품목이나 기획전이 계속 바뀌고 있어서 가끔 가도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는 듯 합니다. 이번 기획전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불화에 관련된 기획전이었는데 정말 볼만했던 것 같고요, 개인적인 관람 주제로 전에 갔을때에는 도자기나 미술품 위주로 많이 보아서 이번에는 소품과 역사, 무기류 등을 좀 자세하게 살펴보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사진도 몇장 찍었지만 대부분 손떨림으로 건질게 없고 저 위의 귀여운 작은 도기류 사진 몇점을 건졌는데 정말 표정이 예술이군요^^. 그런데 정확한 명칭이 기억이 안나네요. 공식 명칭을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리플을....^^

가는 길은 좀 덥긴 했지만 박물관 자체는 냉방도 확실하니 피서지로도 좋았고 기분전환도 되어서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짧은 기행이었습니다. 어차피 한번 가서 제대로 전부 보기에는 너무 넓고 다리도 아픈 만큼 1년에 한번쯤 시간내서 방문하면 참 좋을 것 같네요.

2006/08/23

삼국지 11 클리어

 


하아 마지막에는 지루해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얼마전 즐겼던 10은 마등으로 클리어했는데 이번에는 한번 해 보고 싶었던 "백마" 공손찬으로 플레이했습니다.

10하고 시스템이 너무 달라서 처음에 익숙해 지는 데에만 하루는 잡아먹더군요. 3D 맵 시스템을 도입하고 "전투"가 보다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 너무 큰 차이로 다가왔거든요.

어쨌건 사실 모드로 시작하긴 했는데 튜토리얼을 조금 하다가 얻은 고대무장들을 싸그리 불러 넣어서 초반에 좀 쉽게 플레이 할 수 있었습니다. 10때에는 쓸만한 무장이 방덕 뿐이었는데 이번에는 무장이 넘치니 초반에 진도가 팍팍 나가는게 느껴지더군요.

그런데 하다보니 역시나... 땅은 넓어지고 관리가 안되면서 실제 게임보다는 땅관리가 중요해지는 상황이 자꾸 발생해서 군단을 나눠서 관리했는데 갑자기 동탁이 배신을 때려서 또 시간 잡아먹고... 이래저래 거의 2주일에 걸친 플레이, 마지막은 휴가 이틀을 풀로 잡아먹은 끝에 클리어 할 수 있었습니다.

뭐 재미있기는 한데 노가다성도 짙어서 또 하게될 것 같지는 않네요. 개인적으로는 시스템이나 재미 모두 약간 육성(?) 시뮬레이션 성격이 들어있는 10이 더 좋았습니다. 그래도 끝낸 기념으로 포스팅 해 봅니다.

2006/08/21

내이름은 콘래드 (This Immortal) - 로저 젤라즈니 / 곽영미 최지원

 


지구가 핵전쟁으로 거의 멸망하고 타이탄과 화성 등지에 이주해 있던 이주인들이 외계인 베가인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연명하여 지구도 베가인들과 테일러에 있는 부재자 정부를 통해 타격받지 않았던 지역을 중심으로 지배되는 시기.


지구 정부의 예술 유적 문서 보존국의 국장 콘래드 노미코스는 코르트 미슈티고라는 중요한 지위의 베가인의 지구 관광을 가이드할 것을 명령받고 래드폴이라는 저항 단체의 수장 도스 산토스와 경호원 하산 등 수상쩍은 인물들과 이집트와 그리스 등을 경유하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콘래드 노미코스는 수백년을 살아온 인물로 일찌기 래드폴을 결성하여 지구정부와 베가인들에 대항했었고 그 이외에도 수많은 전설을 남긴 인물. 그는 이 여행에 뭔가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미슈티고의 경호를 강화하지만 수많은 위험이 그들을 기다리게 되는데...

젤라즈니 선생의 첫 장편입니다. 좋아하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몇번 한 것 같은데 지금 와서 읽었다고 하니까 좀 늦은 감도 있고 창피하기도 하지만 어쨌건 완독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다른 장편이었던 "신들의 사회"는 동양권, 그 중에서도 주로 인도 신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과 비교한다면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 중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 소재 측면에서 유사함을 가져다 줍니다. 아무래도 배경이 그리스인 탓이 크겠지만 예를 들자면 주인공인 콘래드의 설정 -불노불사의 인물인것 같다는 것과 타고난 괴력과 체력, 그리고 독특한 외모- 은 그리스 신화의 한 영웅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고, 콘래드가 외계인 관광 가이드(?)를 하며 펼치는 괴물, 식인종들과 벌이는 모험 역시 헤라클레스의 모험과 굉장히 유사하죠. 심지어 식인종 우두머리의 이름은 "프로쿠루스테스" (침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죽였던 신화속 악당) 이기까지 하니까요.

하지만 신들의 사회는 신들 그 자체의 이야기가 중심인데 비해 이 작품은 "인간" 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겠죠. 개인의 능력이나 파워, 그리고 불노불사의 존재라는 것은 물론이고 한 개인이 범 우주적인 거대한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 자체를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자기 자신이 시도한 노력이 지금 와서는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전개인데 달리 생각해 본다면 "초인 로크"와 가장 비슷할 것 같네요. 히지리 유키가 이 작품에서 뭔가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개인적으로는 콘래드가 자신의 신성이나 영웅성을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 남은 이후에 장편이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굉장히 특이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전체적인 스케일 자체는 작아졌지만 오히려 더 현실감있게 와 닿는 설득력있는 전개가 된 것 같거든요. 외계인에 대항해 싸우는 슈퍼 히어로물보다는 전 이쪽이 훨씬 마음에 들더군요. 뭐 중간중간에 불필요한 액션 장면이 너무 길고 특히 "흑수"라는 존재와의 마지막 사투는 너무 우연에 의지하는, 뜬금없는 감이 있지만 읽는 재미는 확실한, 젤라즈니 선생의 필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수작이라 생각합니다.

뒷부분에 같이 수록된 "프로스트와 베타" 역시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SF적으로 풀어낸 걸작이죠. 물론 저는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 수록된 버젼으로 이미 읽긴 했지만 이 책에는 번역가가 관련된 정보를 잘 제공해 주고 있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 같네요. 하여간 아직 젤라즈니 선생의 글을 접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내 이름은 콘래드
로저 젤라즈니 지음, 곽영미.최지원 옮김

2006/08/19

저주받은 자, 딜비쉬 (Dilvish, The Damned) - 로저 젤라즈니 / 김상훈

 


고귀한자의 후예 해방자 딜비쉬는 서방과의 전쟁에서 포타로이를 해방시킨 전쟁 영웅으로 어느날 어둠의 의식을 거행하던 마법사 젤레락을 방해한 뒤 젤레락의 저주를 받아 200년을 지옥의 나락으로 추방당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복수를 위해 지옥에서 파괴의 주문과 친구 블랙을 얻어 현세로 돌아온 딜비쉬는 젤레락을 찾기위한 기나긴 여행을 떠난다...


형이 사둔지는 꽤 되었지만 그닥 손이 가지 않다가 얼마전 읽게된 책입니다. 일단 손이 가지 않은 이유는 형의 혹평도 많이 작용했기에 아무리 젤라즈니 선생의 책이지만 그동안은 좀 멀리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읽고 나니 생각보다는 재미있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단편집이기도 하지만 주인공 딜비쉬와 그 친구인 블랙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인공 딜비쉬는 이 바닥에서는 좀 뻔한 설정의 재반복이긴 합니다. 예를 들자면 고귀한 자의 후예로 용병 생활을 통해 해방자로 거듭나는 사연이나 타고난 강함, 냉정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 모두 이런 영웅담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반복된 이야기이긴 하죠. 그러나 저주받아 떨어졌던 지옥에서 익힌 주문과 보이지 않는 검과 엘프의 선물이라는 녹색장화 (발자국이 남지 않고 어딘가에서 떨어지거나 할 때 발부터 떨어지게 됨) 라는 아이템 등 디테일이 특이하고 젤라즈니 선생 특유의 묘사가 좋아서 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인상적인 캐릭터로 창조된 것 같습니다.

또한 강철로 된 말같은 형상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친구 블랙의 설정은 그야말로 왔다!입니다. 판타지의 기본이 되는 아이템인 "말" 그 자체를 주인공의 하나로 만드는 발상이 기발하기도 하지만 이 말이 강철로 된 몸을 지녀 거의 무적에 가깝고 마법까지 쓸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말(言)도 하는데 이 블랙이 지껄이는 대사가 시니컬하면서도 꽤나 유머스러운 것이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여자가 길을 지나는 딜비쉬를 붙잡고 애인을 구해달라고 통사정 할 때 하는 말입니다. "이건 고전적이다 못해 해묵은 수법 아니오. 저 여자 뒤를 따라가면 매복하고 있던 무장한 사내 두어명이 당신을 덮칠거요. 그자들을 처치하면 여자는 뒤에서 당신 등을 찌를 거고. 이런 것을 소재로 한 발라드까지 나와 있지 않소"

하지만 이러한 멋진 설정도 이야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겠죠? 이 책에는 총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딜비쉬의 과거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셀린데의 노래"를 제외한다면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셈이죠. 저는 개인적으로는 스케일이 큰 전쟁 이야기 보다는 적은 규모의 무대와 인물들을 바탕으로 색다른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메라이사의 기사" 와 "악마와 무희",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저주받은 자 딜비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이건 순전히 제 개인 취향이니 다른 분들은 다른 편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 취향이든 아니든 대부분 본격적인 영웅담을 한번 써 보고 싶어서 손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맛이 잘 살아 있어서 쭉쭉 읽는 재미 하나는 확실합니다.

뭐 젤라즈니 선생 수준에 걸맞지 않는 단순하고 뻔한, 그냥 무협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알맹이가 없긴 하지만 젤라즈니 선생도 심심풀이로 쓰고 싶은 책도 있을 테니까요. 작품의 수준을 논하지 않고 젤라즈니의 작품에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수준으로 보면 적당할 것 같네요. 작가 이름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라 생각합니다.

저주받은 자, 딜비쉬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너머

2006/08/16

너무나 뜨거운 날씨... 집에서 스포츠 중계를!

어제는 정말 집 밖으로 한발자국도 나가기 싫을 정도로 더운 날씨였죠. 전주 주말에 지갑마저 분실해 현금확보 기능을 상실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집에서 TV만 봤습니다.

유심히 본 것은 미국 "드림팀" 대 한국 국가대표팀의 농구시합! 제가 농구 중계를 그렇게 열심히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들은 것도 있고 해서 시합 결과야 뭐 뻔하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몇점차로 질까가 관심거리였는데 그것도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일단 서장훈-문경은 선수 등 그동안 국제대회와 프로 경기에서 친숙한 선수들을 제외하고 주로 대학생들인 젊은 선수들로 승부한 것 자체는 높이 사고 싶습니다. 물론 프로 선수들도 몇명 있었지만 김주성 선수 외에는 대학생 선수들과 수준차를 많이 느끼기는 어려울 정도로 대학생들의 패기와 열정이 많이 묻어나오더군요. 국내 넘버원 가드라는 김승현 선수는 국내용이라는 말이 맞는지 하드웨어에서 밀리니 특유의 패스나 돌파, 스피드가 살아나지를 않아서 안타깝긴 했지만요.

그 와중에 어제 제일 눈에 들어온 선수는 "아르헨티나 특급"  김민수 선수! 얼굴도 곱상하니 잘 생겼고 기본적인 하드웨어가 될 뿐더러 적극적 플레이와 탄력이 인상적이더군요. 그리고 연대생 양희종 선수도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짧은 시간이지만 즐거움을 안겨다 주었고요. 적이었지만 앤서니나 르브론 제임스의 플레이는 경악과 흥분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하승진 선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플레이로 일관하여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 전 경기를 보지 못해서 평가하기는 좀 뭐하지만 어제 경기만 놓고 본다면"단지 키만 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3점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센터가 평범한 골밑슛도 실수하고 리바운드도 손만 갖다댈 뿐 자주 놓치며 스피드도 없고 대인 수비능력도 없는.... 그리고 르브론 제임스가 인상적이었다고 이야기한 최다득점인 방성윤 선수는 글쎄요. 너무 보여주려는게 많았던 것 같은데 하드웨어와 기본적인 능력은 있지만 돌파력과 드리블, 스피드에서 아쉬웠고 너무 외곽슛을 난사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긴 저 모든것을 갖췄다면 국내 농구로 돌아오지도 않았을테니 논외일까요?

시합은 참패했지만 어차피 NBA 올스타들이 나온 경기이니만큼 젊은 선수들이 이제 하드웨어적으로는 최소한 밀리지 않는 능력을 지니고 강호와 맞상대를 해 보았다는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네요. 세계적 스타들도 패스 하나하나에 신경쓰며 루즈볼과 수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꼭 배웠으면 하며, 하승진 선수의 각성과 앞으로 아시아권에서의 선전을 기대해 봅니다.

2006/08/13

괴물 (2006) - 봉준호

 


국내 인구의 1/5이 볼거라는 (아마도) 영화입니다.

저는 그동안 한국 관객 기록을 세운 영화는 거진 다 극장에서 봤습니다. 십수년 전의 "투캅스"에서 시작해서 "친구",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나 "왕의 남자" 등등등. 하지만 이 수많은 영화중에서 들인 돈과 번 돈에 걸맞는 스토리와 비쥬얼로 무장된 영화는 흔치 않았습니다. 대부분 지나치게 애국심이나 한국적인 상황을 강조하거나 (태극기..나 JSA, 친구 등) 한국에 특화된 소재 (왕의 남자)만을 가지고 승부한 경우였었다고 생각되거든요. (물론 이 전략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국내에 특화된 괴수영화이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아도 세계적으로 충분히 먹힐만 하다고 보였으며 (칸에서 기립박수 받았다는 이야기는 왠지 오버같긴 하지만요) 흥행에 성공할 만한 재미와 미덕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영화라 생각되었습니다.

모 감독이 "한국영화의 수준과 관객의 수준이 잘 만났다" 라고 했다는데 영화를 보고 이해가 되더군요. 헐리우드의 비싼 영화들에 익숙해진 눈 높이를 제대로 뒷받침 해주는 괴수의 특수효과 장면들은 마지막 불타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그 수준이 굉장히 높았으며 무게감과 스피드, 박력 모두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각본도 큰 무리가 없고 한국적인 실상을 나름 반영한 블랙코미디적인 설정도 좋았고요. 하여간 보면서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최소한 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영화라 만족스러웠습니다. 한마디로, 제 주위 사람들에게도 자신있게 추천하고 싶은 근간 보기드문 "재미있는" 영화였었습니다.

줄거리나 내용 등에 대한 글들은 워낙 많으니 대충대충 생략하고 짧은 제 단상만 두서없이 몇자 적는다면,

1. 송강호는 원래 지능이 떨어지는 캐릭터인가? :
보면서 들은 제일 큰 의문이었는데... 아무리봐도 정상인은 아닌 캐릭터라 계속 의심이 갑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설명이라고는 어렸을때 유기농 식단으로 생활해서 단백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얘기 정도인데, 솔직히 설명도 와 닿지 않더군요. 어쨌건 송강호의 캐릭터는 영화에서 겉도는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2. 현서는 살려줬더라면 좋았을 것을 :
혹자는 현서를 죽인 것이 이 영화가 한국적 괴수 영화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도 하던데 그 생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면서 갖은 고생과 가족들의 처절한 노력땜시 감정이입을 심하게 해서 살았으면 했는데.. 안됐더라고요. 또 이왕 죽일거면 꼬마애도 같이 죽었어야 하는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이거 대체 몇살부터 볼 수 있는거지? :
12세 이상 관람가인데 극장측에서 무슨 짓을 하는건지 척 보기에도 어려보이는 애들이 많더군요. 애들이 보기에는 썩 좋은 소재는 아닌것 같기도 한데, 부모님들이 무슨 생각하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보고 잘 터지는 새 핸드폰 사달라고 조르기만 할 것 같은데.....

2006/08/10

경성기담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과 스캔들 - 전봉관

 조선말에서 일제 강점기 사이에 있었던 잘 알려지지 않았던 괴사건들을 모아서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역사와 추리를 모두 좋아하는 저로서는 흥미가 안갈래야 안갈 수 없는 책이었는데 마침 형이 구입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쌩유!)


책은 크게 2개의 주제로 나뉘어 구성되고 있는데 첫번째가 "1부 - 근대 조선을 뒤흔든 미스터리 살인사건"이고 두번째가 "2부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스캔들"입니다. 두가지 주제 모두 흥미롭고 제목만 보아도 읽고 싶어 지지만 역시 저같은 미스터리 팬에게는 첫번째 주제가 더 와 닿더군요.

1부에는 총 4개의 사건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사건인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은 대낮 경성거리에서 발견된 아이 머리를 둘러싼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이고 두번째 사건"안동 가와카미 순사 살해사건"은 안동에서 피살되어 발견된 일본인 순사 가와카미와 용의자로 붙잡힌 조선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 세번째 사건은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으로 부산의 조선인 하녀 마리아가 주인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을 다루고 있고 네번째 사건은 "살인마교 백백교 사건"으로 지금도 유명한 사교집단 백백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건 자체도 흥미롭지만 단순히 흥미거리위주로 수록된 사건들이라기 보다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역학관계를 논할만한 주제가 많아 의미 있는 선정이었다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안동 가와카미 순사 살해사건"의 용의자인 조선 청년들의 억울함과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의 주요 용의자인 다카하시 부인에 대한 수사와 처우, 처벌이 너무나 달라서 한번쯤 비교해 보며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거든요. 특히 고문과 폭행으로 자백을 이끌어낸 순사 살해사건의 경우는 그 수사의 방법이 너무 원시적이고 황당해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쩐지 영화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용의자 동생의 증언인 "형이 목을 졸라 죽이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봤지만 그 다음은 졸려서 잤기때문에 모른다"라는 증언은 폭소 그 자체였습니다. 조선 남아들은 형이 살인해도 졸리면 잔다는 이야긴지 원...

또한"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은 "문둥이가 아기 간을 먹으면 낫는다"라는 토속적인 주술적 사고방식을 드러내고 있어서 역시 인상적이었고 법의학자로 경성제대 교수까지 등장하는 등 당시 수사 방식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자료적 가치도 상당합니다. 사건의 엽기성과 내용에서 최근 유명한 "프랑스 영아 유기 사건"을 떠올리게도 하더군요. (이 주술적 믿음을 소재로 퇴마록의 이우혁씨가 쓴 괜찮은 단편이 갑자기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1부의 마지막 사건인 백백교 사건은 다른 매체에서 많이 접해서 크게 새롭거나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역시 "역사적" 측면에서 선정한 것이겠죠? 이만한 대형 사건은 정말 드물테니 말이죠. 뭐 뻔한 내용이지만 그런대로 도판과 자세한 재판과정의 수록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2부는 "스캔들"이라는 주제를 다룬 만큼 내용적으로나 사건 측면으로나 1부에 비하면 아무래도 임팩트가 떨어지긴 하지만 역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전부 6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첫번째인 "중앙보육학교 박희도 교장의 여제자 정조유린 사건"은 3.1 운동때 민족대표 중 한명이었던 교육자 박희도의 여제자 성추행(?)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두번째인 "채무왕 윤택영 후작의 부채 수난기"는 순종의 장인으로 매국노였던 윤택영 후작의 어마어마한 빚과 그 최후를 상세하게 그리고 있고요. 세번째 "이인용 남작 집안 부부싸움"은 역시나 매국노였던 이인용 남작 부부의 재산을 둘러싼 의미없는, 허무한 싸움을 다루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이화여전 안기영 교수의 애정도피행각"으로 조선 제일의 테너로 불렸다는 음악가 안기영 교수가 제자와 사랑의 도피(?)를 한 이야기, 다섯번째는 "조선의 노라 박인덕 이혼 사건"으로 당시 국내 제일의 신여성이었던 박인덕의 이혼에 관련된 이야기, 마지막 여섯번째는"조선 최초의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로 최영숙이라는 스웨덴 유학생의 비참한 최후를 서술한 내용입니다.

제가 제일 흥미롭게 읽은 것은 매국노들 대부분이 가산을 탕진하여 외려 총독부에 구걸(?)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두편의 이야기인 "채무왕 윤택영 후작" 이야기와 "이인용 남작 부부싸움" 이야기였습니다. 친일파들이 다 떵떵거리면서 한자리 차지하고 살아온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대부분 당대에 가산을 탕진했다는 통쾌한(!) 이야기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들끼리 싸우는 이야기도 신났고요. 특히 저자의 덧붙인 코멘트, 요사이 매국노들의 후손이 땅 반환 소송을 한다는데 과연 그들에게 남은 재산이 있었는지 부터 조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와 닿았습니다.

그 외의 남녀간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는 요사이 연예면에 나올만한 소재의 이야기들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져 역시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여성과 전형적 조선 남자와의 결혼이 "돈"에서 비롯되었다는 "조선의 노라 박인덕 이혼사건"은 읽다보니 요사이 모 아나운서 결혼 이야기와 맞물리는 부분이 있는것 같아 재미있더군요.

마지막 이야기인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는 당시 조선에서의 여자의 존재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내용으로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지금 수준으로 보아도 5개국어에 능통한 수재 여성이 국내에서 대접도 제대로 못받고 콩나물 장사나 하다가 혼혈아를 낙태한 것 때문에 외려 탕녀 취급이나 받다니....저자가 하인스워드의 예를 들어 설명한 것과 같이 지금도 변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 때문에 더더욱 안타깝네요.

기획만으로도 무척 특이한 역사-인문 서적이지만 읽는 재미도 충분히 전해주는 책이었습니다. 현재 30대 중반의 나이로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는 저자의 글 답게 고루한 역사관을 논하는 것이 아닌, 요사이의 시사적인 문제를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재미난 내용이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거든요. 저 스스로도 반성하고 한번 생각해 볼만한 주제도 많았고요.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의 또 다른 측면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아울러 구상중인 일제 강점기 배경의 추리 소설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서 기쁨 두배였습니다.

단 가격이 12,000원이라는 것은 확실히 문제네요. 책의 내용은 재미있고 가치도 있지만 사진도 거의 없고 그다지 많은 분량의 이야기도 아닌데 솔직히 너무 비쌉니다! 한 8000원 정도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그날 까지 팍팍 밀어줄만 한 책인데 가격이 좀 많이 걸리네요.

2006/08/08

밴디다스 (Bandidas) - 조아킴 로엔닝, 이스펀 샌드버그

 


19세기 멕시코의 한 마을, 미국 은행에 고용된 악당의 농간으로 땅을 잃게 된 마리아 (페넬로페 크루즈), 그리고 마을 은행장의 딸로 유럽에 유학갔다 잠시 귀국한 사라 (셀마 헤이엑) 는 각각 아버지가 살해된 것을 목격하고 마을의 은행을 털어 복수를 꿈꾼다. 한편 사라의 아버지 살해사건 조사를 맡은 미국 경찰요원 퀀틴마저도 그녀들의 정의에 설득되어 같이 강도행각에 나서게 되며 멕시코 총독은 연이은 은행강도 피해 때문에 금괴를 통째로 수송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멕시코의 돈과 땅을 빼앗아가는 미국 강도에 대항한 그녀들의 작은 저항이 성공할 수 있을까?

간만에 본 영화네요. 프랑스, 멕시코, 미국의 합작 제작 영화로 뤽 베송이 각본을 썼습니다. 음악도 에릭 세라가 맡았고요. 무엇보다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서 보게 된 영화입니다.

그런데 3개국 합작이긴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멕시코 자금이 제일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내용만 딱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멕시코의 두 젊은 미녀가 악덕 미국 은행의 끄나풀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ViVa Mexico!"라는 주제의 영화거든요. 요새 미국내에서도 급증하고 있는 라틴계 미국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일까요?

하여간 영화는 위의 내용을 가지고 그야말로 공식대로 흘러갑니다. 두 젊은 미녀의 은행강도를 시작하게 된 원인, 그리고 특훈을 거쳐 은행강도계의 떠오르는 별(?)로 부상하고 두 미녀 모두 마음에 드는 전문가 남성을 멤버로 끌어들여 마지막 최후의 한탕... 이라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전개거든요. 2명으로 축소된 미녀 삼총사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도 각본이 뤽 베송인 탓인지 의외의 디테일이 꽤 많아서 뻔한 장면의 연속임에도 크게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두 미녀가 각각 특기가 있다는 것 역시 뻔하지만 (마리아는 말을 잘 다루고 명사수, 사라는 유럽에서 교육을 받고 와서 똑똑하며 단검 던지기의 명수라는 설정) 그런대로 설득력있게 표현되고 있어서 크게 위화감이 들지는 않거든요. 또한 은행강도 쟝르(?) 영화답게 나름 재미난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있는데 폐쇄된 은행에서의 변장을 통한 잠입과 탈출이라던가 압력 감지장치가 설치된 은행을 돌파하는 장면은 상당히 기발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처음부터 등장해서 뭔가 대단한 변수를 만들어 낼 것 같았던 남자멤버 퀀틴의 활약과 비중이 애매하다는 것은 의아하더군요. 설정과 캐릭터만 본다면 맥가이버같은 활약을 보여줄 것 같았는데 말이죠. 막판에 두 미녀를 놔두고 떠나는 모습 역시 전형을 깬 파격적인 부분이긴 했지만 싱거운 느낌이 더 강하고요. 그리고 아무래도 여성이 주인공인 탓에 액션이 좀 약하다는 것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미녀로 잘 알려진 두 라틴계 미녀를 더블로 포진시킨것에 비한다면 영화에 섹시함이 거의 없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뭐 이것저것 따지자면 문제점도 많고 무엇보다도 은행강도들이 조국을 구한다는 말도 안돼는 해피엔딩 등 설득력은 제로에 가까운 스토리라인이지만 한여름 아무생각없이 웃으면서 즐기기에 적당한 영화였다 생각합니다. 대작들 틈바구니 속에서 여름 흥행을 잡기에는 2% 정도(?)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요. 결말에서도 속편을 암시하긴 하지만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PS : 간만에 보는 셈 셰퍼드의 모습은 반가왔습니다만....

2006/08/06

메두사 - 이노우에 유메히토 / 송영인 : 별점 3점

메두사 이노우에 유메히토 지음, 송영인 옮김/시공사

공포소설가 후지 요조가 스스로를 시멘트에 파묻은 채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다. 시멘트 더미 안에서 발견된 빈 약병에서 남겨져있던 "메두사를 보았다"라는 글귀는 유서라기에는 의아스러웠다. 
후지 요조의 외동딸 나나코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 '나'는 후지 요소가 마지막으로 작업하던 소설을 찾기 위해 여러가지 조사를 시작했다. 
연이어 발생하는 이상 현상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조사로 후지 요조가 이시우미라는 촌에서 발생한 기묘한 사건 취재를 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는 이시우미에서 23년전에 발생했던 수수께끼 같은 사건과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연쇄적인 죽음에 주목하게 되는데...

하아.. 정말로 덥네요. 뫼르소처럼 순간적이고도 돌발적인 살의가 일어날 것도 같은 더윕니다. 이런 더위에는 호러 소설이 딱이죠. 예전에 읽었었지만 리뷰를 올린적은 없었던 작품인 "메두사"를 다시 꺼내어 읽어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대박을 쳤던 "링"의 영향을 받은 티가 물씬 납니다. 한 소녀의 원한과 저주로 시작된 죽음이라는 소재, 그리고 극적 반전이 있는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가 비슷하거든요. 과거의 원한이 현재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기본 내용도 뻔하고요.

그러나 단순히 영향만 받았다고 보기에는 특별한 점도 많습니다. 일단 작가가 원래 오카지마 후타리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써 냈던 도쿠야마 준이치 - 이노우에 유메히토 컴비 중 한명인 이노우에 유메히토인 덕분에 후지 요조의 미발표 원고를 추적하는 과정은 여러가지 단서가 잘 조합되어 짜임새있게 전개됩니다. 단순히 죽음의 원인을 찾는다는 뻔한 전개가 아니라, 잊혀진 원고를 찾는다는 설정도 새롭게 느껴졌고요.
호러 소설로도 기본 이상입니다. "메두사를 보았다"라는 글귀를 남기고 돌(?)이 되어 죽는 후지 요조의 자살방법이라던가 24년전 초등학교 5학년 같은반이었던 학생들이 모두 죽었다는 등의 디테일한 여러가지 설정들은 독자를 충분히 오싹하게 만들거든요.
소설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살리는 이야기들 (소설 속의 후지 요조의 미발표 소설과 실제 소설이 겹쳐져서 보여지는 독특한 구조), 그리고 시공간이 흔들리는 반전은 색다르면서도 아주 충격적이었는데, 서평을 쓰신 김지운 감독은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느낌이 든다고까지 평하셨더군요.

아쉬운 점은 후지 요조의 숨겨진 원고를 찾는 결정적 계기가 "우연"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과 너무 진보(?) 적인 소설 구조가 반칙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점이겠죠. 발표된지 10년이 지났기에 지금 읽으면 아무래도 조금 낡았다라는 생각도 들게 되고요.

그래도 호러 소설이라는 쟝르에 충실한, 그닥 잔인하지도 않고 사람도 많이 죽지 않지만 공포라는 감정은 잘 전해주는 괜찮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표현 매체의 특성을 잘 살린 소설인 탓에 영상화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작품이라 링보다 저평가될 수 밖에 없지만 공포에 치중하면서도 잔인하지 않은, 어떻게보면 여성적이고 섬세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색적인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6/08/02

알렉산드로스의 음모 - 폴 C 도허티 / 한기찬 : 별점 2점

 의사 텔라몬은 과거 미에자의 숲에서 알렉산드로스와 동문수학했던 사이지만 전사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의사로 살아가는 인물. 이집트에서의 살인사건으로 마케도니아로 돌아온 그는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에게 협박받은 뒤 헬레스폰토스에서 전군을 소집하여 페르시아로 출정을 앞둔 알렉산드로스를 돕기 위해 떠난다. 한편 다리우스왕과 그리스인인 로도스의 멤논은 알렉산드로스를 저지하기 위한 갖가지 계략을 짜내고 그 계략의 중심에는 알렉산드로스 진영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첩자 나이팟이 있었다.

텔라몬이 알렉산드로스와 합류한 직후 길안내를 맡기로 했던 일당들이 살해당하고 그들이 작성한 지도마저 상자안에서 불타버린 재로 발견되며 아테네 여신을 모시는 여사제마저 의문의 죽음을 맞는 등 알 수 없는 죽음이 꼬리를 물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출진을 감행하는데...

폴 C 도허티라는 작가의 역사 추리소설. 조사해 보니 이 작품 이외에도 "누가 파라오를 죽였는가"라는 역사 추리물이 출판되었는데 이 작품도 그렇고 제가 처음 접하는 것을 보니 두권 모두 그다지 인기를 끈 것 같지는 않군요. 우리나라에서 역사 추리물이 별 인기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장점도 많지만 단점 역시 확실히 눈에 들어오기에 이해는 갑니다.

장점부터 설명한다면, 역사 추리물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원정 직전의 병영 분위기와 주변 정세, 실존 인물들이기도 한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묘사와 디테일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데 그 묘사의 수준이 생생해서 실제 눈으로 보고 쓴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잘 표현되어 있다는 점을 우선 꼽고 싶습니다. 특히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당시로서는 무적의 전법을 보여주던 알렉산드로스 군대의 여러 묘사나 실존인물들인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은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에요.
또 이러한 알렉산드로스 관련 "역사물"을 "역사 추리물"로 바꾸기 위해 가공인물인 텔라몬이라는 의사이자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 인물을 탐정역으로 내세우고 밀실 살인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고 입구를 보초가 지키고 있는 천막) 과 순간 소실 (나무로 된 상자안의 지도가 재로 변하지만 상자는 그을리지 않은),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파이까지 등장시키고 있는 등 추리적으로도 꽤 풍성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리적 부분에서의 단점이 너무 확연한 것이 아쉽습니다. 일단 텔라몬의 관찰력에 의한 결과가 독자들에게 공평하게 전달되지는 않는 부분은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살인 사건도 여러번 일어나지만 "살인자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살인 행위"의 트릭을 밝히는 것 보다 우선되는 작품 내용 탓에 추리적으로 특출난 부분이 없다는 것도 추리물로서의 가치를 많이 떨어트리는 부분입니다. 트릭도 허술하고요.
무엇보다도 진범, 즉 스파이 나이팟의 정체가 명쾌한 설명 없이 순전히 진범의 자백에 의존하고 있어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나름 추리물로서의 가치 때문인지 나이팟에 대한 단서를 앞부분에서 던져주긴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 대해 박식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단서이기에 조금 반칙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결론내리자면 추리물적인 부분보다는 역사물로서의 가치가 훨씬 높은 작품이었어요. 어설프게 추리적 요소를 도입하다 외려 실패한 느낌이 강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역사 추리물의 거장 엘리스 피터스의 작품들보다는 훨씬 스케일이 크기에 화려한 맛은 있고, 작가의 자료 수집 등의 노력이 느껴질 정도의 알렉산드로스 군단의 생생한 묘사는 꼭 한번 볼만한 가치가 있으며 당시 알렉산드로스와 페르시아쪽 인물들과 분위기를 이해하는데에는 많은 도움을 주기는 하나 제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덧붙이자면 비슷한 그리스 시대를 무대로 한 "탐정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할 수 있을텐데 소박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고 모험물에 가깝지만 내용 전개 등에서 추리물적인 가치가 더 높은 "탐정 아리스토텔레스" 쪽이 제 취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