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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9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의자들 - 아가타 토로마노프 / 최다연 : 별점 3점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의자들 - 6점
아가타 토로마노프 지음, 최다연 옮김/시공문화사

의자는 제품 디자인의 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용도가 명확하고, 역사도 오래되어 새로운 게 많이 나올 것 같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소재와 구조를 연구하여 계속 진화하고, 발전해 나간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디자이너들의 도전 정신을 일깨우는 주제인 셈이죠. 요리로 따지면 라면같달까요. 그래서 의자 디자인을 좋아하고, 관심도 많아서 이런 저런 책 (<<명작 의자 유래 사전>>, <<의자의 재발견>>, <<세상을 바꾼 50가지 의자>> 등)을 읽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 특이합니다. 의자 디자인만을 다루고 있지 않거든요. 제목 그대로 유명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건축물과 그들이 디자인한 의자를 각각 한 페이지씩 서로 비교하며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자와 건축의 연관성을 깊게 느끼게 만드는 구성이지요.
실제로 책을 읽어 보면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사상이 의자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게 명확하게 드러나서 재미있었습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프랭크 게리, 마리오 보타 등 건축계 거장들이 디자인한 의자들은 딱 보면 그들의 건축물과 곧바로 연결될 정도로 이미지가 강하고 확실합니다.
심지어 아예 건축물을 위해서 디자인된 의자들은 두말하면 잔소리겠지요.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토르셀 스피릿 하우스와 스피릿 하우스 체어, 쿠마 켄고의 GC 프로스토 박물관 리서치 디자인 센터와 GC 체어, 위엘 아레츠의 라이트쉐 라인 칼리지와 LRC 체어는 의자 자체가 건축물의 일부라 생각될 정도였어요.

물론 앞서 말씀드린대로, 의자 자체를 혁신적으로 디자인한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유명 건축가들은 유명 디자이너이기도 하니 당연하겠죠. 특히 미스 반 더 로에가 1929년에 디자인한 바르셀로나 체어 (아래 이미지 참고)와 1968년에 디자인한 베를린 신 국립 미술관 모두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은,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는게 놀랍습니다. 단순함과 균형감이 핵심이라고 하는데, 이런 디자인을 해 보고 싶어지네요. 바르셀로나 체어는 꼭 구입해서 앉아보고 싶은데, 천만원이 넘는다니 과연 생전에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리처드 마이어의 1978년 작품인 암체어 810과 2006년 디자인 된 아라 파키스 박물관도 같은 맥락입니다. 완벽한 비율, 기하학적 구조의 완벽한 균형감이라는 점에서요. 과한 장식이나 패턴보다는 이런 작품들이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 의자는 유명하지만 반대로 건축가로서의 작품은 잘 알지 못했던 디자이너들의 건축물 소개도 반가왔습니다. 게리트 리트벨트가 대표적입니다. 그가 디자인했던 레드 블루 체어 (아래 이미지 참고)는 몬드리안의 작품과 유사해서 유명한데, 건축물은 처음 보았네요. 건축물 역시 기하학적으로 사각형 평면을 강조했으며, 포인트 컬러가 선명하다는 점에서 레드 블루 체어와 연관성이 느껴지는데, 실제로 보고 싶네요.

그 외 이소자키 아라타가 1973년에 디자인 한 마릴린 체어는 유명한 찰스 레니 매킨토시의 디자인을 유머스럽게 재해석했다는게 눈에 띄더군요. 론 아라드의 3 스킨 체어도 역동적인 형태가 과장되어 유머스럽게 느껴졌고요. 건축가들의 의자는 딱딱하고 기능적일거라는 인상이 짙은데 이를 깨 주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책의 구성과 디자인, 도판 역시 취지에 걸맞게 높은 수준이라 만족스러웠어요.

그러나 의자에 비해 대표작 건축물 소개는 여러모로 조금 부족했습니다. 유명 건축가의 경우, 대표작이 많을텐데 한 개만 선정된 것도 그렇고, 실내, 외가 모두 중요할텐데 사진이 딱 한장만 실려있어서 전체를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종의 화보처럼 설명은 최소화하고 있는데, 의자의 캔틸레버 구조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 정도는 별도로 해 주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하지만 단점은 크지 않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조금 부족하지만, 책의 취지를 살리는데에는 충분했습니다.

2020/11/28

형사의 눈빛 - 야쿠마루 가쿠 / 최재호 : 별점 2점

 

형사의 눈빛 - 4점
야쿠마루 가쿠 지음, 최재호 옮김/북플라자

야쿠마루 가쿠가 쓴 단편집. 모두 7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한 편 한 편이 완결되는 이야기이지만, 긴 이야기가 포함된 연작 구성이라는 점입니다. 긴 이야기는 주인공이자 탐정역인 나츠메 노부히코가 형사가 된 계기가 된, 나츠메 딸의 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단편별로 사건이 조금씩 설명되며 마지막 수록작인 <<형사의 눈물>>에서 진상이 드러나는 구성이지요.
나츠메 노부히코는 범죄 아동을 담당하는 법무부 직원이었지만, 30세에 경찰공무원 시험을 보고 6년간 파출소에서 일한 뒤 형사가 된 집념의 사나이죠. 추리력도 만만치 않고요. 작품 내내 '인간미'를 느끼게 만든다는게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완성도는 그닥입니다. 사건들 대부분 증거가 명확하고, 범인들의 자백도 잘 이루어지고 있어서 추리할 여지가 많지 않은 탓입니다. 나츠메 형사가 펼치는 약간의 추리는 볼거리이기는 합니다. 문제는 이 추리가 사건 해결에 영향을 미치는건 별로 없다는 거지요. 오히려 이렇게 추리력을 드러내기 위해 억지스럽게 전개한 이야기들이 많은 편입니다.
또 설정과 동기가 극단적이라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죽이려 한다던가, 아동 대상 잔혹 범죄가 등장하는 극단적인 이야기가 절반에 가깝거든요. 흥미를 잡아 끄는 설정에 능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부족했던 작가의 전작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전작들 보다도 못해요. 설정의 재미를 느끼기에는 분량이 덕없이 부족한 단편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무라이스>>
방화로 히데아키가 죽었다. 그러나 사실혼 배우자인 케이코의 아들 유우마는 덤덤했다. 친아빠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연립 주택 근처에서 벌어졌던 연쇄 방화 사건 범인 소행으로 의심되었지만, 나츠메 형사는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의외의 진상을 추리해내는데...


케이코가 진범이며, 원래는 아들 유우마가 목표였다는 반전은 인상적입니다. 정부의 육체에 빠져 재혼에 걸림돌이 된 아들을 살해하려 한 거지요.

그러나 반전을 드러내는 추리는 모두 억지스럽습니다. 현장에 남아있던 오므라이스가 단서가 된다는 것 부터 그러합니다. 나츠메 형사는 케이코가 히데아키가 집을 비운다는걸 이미 알고 있어서 수면제가 든 오무라이스를 유우마 용으로 한 개만 준비했다고 추리합니다. 그러나 히데아키가 애인 시즈카에게 만나자는 보낸 문자 메시지를 케이코가 봤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케이코에게 그날 늦는다고 메시지를 보냈다면 모를까요. 즉, 히데아키가 집을 비울거라는걸 알았다는건 순전한 상상입니다.
또 유우마는 히데아키를 싫어해서 그가 있으면 집에서 저녁을 먹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녁을 한 명분만 준비한게 이치에 맞지요.
아들 유우마가 어머니의 살의를 눈치채었을거라는 추리도 마찬가지에요. 수면제 오므라이스가 자기 몫이었다는걸 유우마가 확신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또 케이크를 위해 거짓 증언을 한 환자 야스오카 씨 손에 서툰 주사자국이 많았던게 단서가 된다는 묘사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주입구(?) 역할을 하는 주사 바늘은 고정시키고, 링겔액만 바꾸는게 일반적이지 않나요?
마지막에 케이코가 흔들려 진상을 고백하는 장면도 영 설득력이 없었어요. 끝까지 버텨 정상참작을 받는게 현실적이니까요. 1년 반만 기다려 처럼 말이지요.
아울러 젊은 새 애인의 육체에 빠진 탓이라는 일본 AV스러운 동기도 그저 그랬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여러모로 추리적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빨간 줄>>
코이데 신이치는 일하던 이자카야에서 막 해고되었다. 11년 전 삼촌을 살해했던 전과자였기 때문이었다. 그 뒤 함께 사는 조카 하루나의 친구 요코세의 아빠가 살해되는데...

범인은 신이치의 누나 나오코였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던 요코세를 구해주려다가 살인을 저질렀던 거지요.
그러나 이 작품 역시 추리는 약합니다. 별다른 단서가 없는 탓입니다. 누나 나오코가 요코세의 집에서 벌어진 사망 소식을 듣고, 피해자가 요코세가 아니라 그 아빠임을 확신하고 반문한게 증거다? 턱도 없는 주장입니다. 어차피 나오코가 자수해서 범행이 드러나서 추리의 여지도 거의 없고요.
11년 전 사건도 누나가 진범이었고, 신이치가 위증했다는 반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딱히 증거도 없고, 작위적이에요. 모든 남자가 아동 성범죄자에 아내와 딸을 구타하는 인간 말종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물론 누나 나오코를 위해 거짓으로 자수한 신이치의 위증을 나츠메 형사가 곧바로 밝혀내는 장면은 괜찮았습니다. 신이치가 인형 뽑기에서 뽑았다는 인형이 결정적 증거가 되지요. 신이치가 말했던 시간에는 기계 안에 없는 인형이었거든요. 인형 뽑기 경품 교체 시간은 수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정보로, 꼼꼼한 수사가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잃어버린 심장>>
마츠시타 마사유키는 7개월 전, 아들 토모키를 사고로 잃었다. 그 뒤 아내 사에코를 질책하다가 이혼 서류를 남겨 놓고 그 길로 출근하던 회사를 지나치고 노숙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속한 노숙인 무리의 리더 쇼우가 살해당하는데...

쇼우가 오래 전 괴롭히던 학우를 죽였던 과거가 있었으며, 얼마전 TV에 나왔을 때 피해자 가족에게 타겟이 되었다는 내용.
범인이 같은 노숙자인 나카 씨가 범인이라는 결말인데 그닥 신선하지는 않았습니다. 흉기인 술병에 나카 씨 지문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추리할 여지도 없고요.
'힛츠미'라는 요리를 나카 씨가 모르는걸 보고, 나카 씨로 변장한 가짜라는걸 알아채는 <<절대미각 식탐정>>스러운 추리만이 볼거리였습니다. 이 추리는 사건 해결에 딱히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요. 여러모로 추리물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자존심>>
수사 1과 형사 나가미 와타루는 나츠메 형사와 파트너가 되어 연립주택 살인 사건 해결에 나섰다. 둘은 피해자 사쿠라이 아야노가 다녔던 직장에서 몇 가지를 알아내었다. 그녀가 직장을 옮긴건 전 남자 친구가 괴롭혔기 때문이며, 지금은 다른 사람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며 번민했다는데....

수사 과정에서 두 형사는 피해자 친구라는 아가씨 미우를 만납니다. 남자같은 화물 운송업을 하고, 복싱 도장까지 다니는 남자같은 아가씨였지요. 그런데 알고보니 범인은 그녀였습니다. 미우는 성정체성 장애로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야노와도 '남자로서' 진지하게 사귀었고요. 그러나 육체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어서, '바람을 피우던' 아야노를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살해한거지요. 설정은 꽤 재미있었어요.

그러나 추리는 역시나 억지스럽습니다. 나츠메 형사는 미우가 '남성적'이라는 말을 듣고 흥분한걸 보고 그녀가 성정체성 장애를 갖고있다는걸 눈치챘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하는데, 여자 치고는 남자같다는 의미의 말을 들어서 흥분한거라면서요. 그러나 그냥 끼워맞춘 이야기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싫다던가, 남자 자체를 싫어했다던가, 남자같다는 말을 듣고 불쾌할 이유는 수도없이 많은데, 하필이면 가장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을 추리한다는건 이상하지요. 게다가 권투 스파링을 통해 그녀가 마음만큼은 남자라는걸 알아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만화에나 나옴직한 발상이에요.

'카이'라는 피해자 애인 이름에 대한 추리는 나쁘지 않아요. 미우라는 이름을 뒤집어 우미 (海), 그리고 카이로 이어졌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 역시 미우가 범인임을 밝혀낸 다음 끼워맞춘거라 대단한 추리로 보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아버지의 휴일>>
요시자와 아츠로는 아내 아키코가 7년 전 병으로 죽은 뒤, 아들 류타와 함께 살아왔다. 어느날, 그는 귀가하다가 류타가 수상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걸 목격했다. 그리고 류타가 금속 케이블 절도단에 속한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증거들이 집에서 발견되었다. 요시자와는 친구 나츠메와 상담한 뒤, 나츠메와 함께 류타를 미행하는데...

결국 경찰에 의해 류타는 체포됩니다. 류타는 진짜로 금속 케이블 절도단에 속해 있던 거지요.
류타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약간의 반전은 있습니다. 이는 집에 단서를 보란 듯이 놔 두었으며, 공중 전화로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는 정황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공중 전화 신고는 시간과 장소만 특정되면 별다른 추리가 필요한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추리물로 보기는 어려운, 나츠메 형사가 왜 형사가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연작 단편의 가교 역할에 불과한 이야기였습니다. 딸 에미가 연쇄 테러 사건으로 식물인간이 된 모습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모습이 어떻든 미래의 가능성을 믿으라면서"며 자기 딸 에미도 지금 누워 있지만, 언젠가는 일어날거라는 희망을 드러내는 나츠메의 말은 울림을 남기고요.

하지만 별점은 1.5점. 여러모로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군요.

<<흉터>>
고등학교 상담 교사 타나베 쿠미코는 결석, 자해를 반복해 온 유카가 걱정이다. 결국 유카는 자살 시도를 하고 입원하는데, 다음날 학교로 나츠메 형사가 찾아 왔다. 학교 학생이 상해 치사 사건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해 치사 사건 피해자인 사와무라는 유카의 몹쓸 사진을 찍고 협박해 왔습니다. 유카는 지하철에서 무고한 사람에게 성추행 누명을 씌우고, 돈을 갈취하는 사기에 가담하게 되었지요. 그 때마다 죄책감에 자해를 했고요. 그러다 이 범행의 피해자로 모든 걸 잃은 이와사키 씨가 진상을 알게 되어 상해 치사 사건을 일으킨겁니다.

그런데 이 모든건 유카와 이와사키 씨가 한 자백으로 설명됩니다. 계속 반복되듯, 나츠메 형사가 특별히 추리력을 발휘할 부분이 없어요. 이래서야 추리물은 아닌 셈이지요. 나츠메가 형사가 된 건 딸 아이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범인에 대한 복수심 때문은 아니었다... 는 심리 묘사 정도만 볼만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형사의 눈물>>
츠카모토 세이지와 쿄코 부부는 중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 거기서 세이지는 자기가 괴롭혔던 오오타를 만났다. 오오타는 세이지가 어린 아이를 망치로 때리는걸 목격했다며 협박하기 시작하는데....

작품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 나츠메 형사 딸이 식물인간이 된 사건의 범인이 밝혀집니다. 불량 학생이었던 세이지는 나츠메로부터 진심어린 충고를 듣지만, 오히려 짜증과 증오가 일어나 그 딸을 테러한 것이었습니다. 오오타는 이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 협박했던 거고요.
하지만 사진에 함께 찍혀 있었던 여성 목격자가 쿄코라는 진상은 조금 의외였어요. 그녀는 세이지를 좋아해서 신고를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오오타가 일으킨 모방 범죄로 여동생 야스코를 잃고 만 거지요. 이를 통해 오오타에게 협박당해 농락당하다가, 야스코를 죽인건 오오타라는걸 알고 그를 살해한게 오오타 사건의 진상이고요.
이렇게 자기가 신고만 했다면 동생은 죽지 않았을 거라는, 쿄코가 놓인 기구한 상황만큼은 인상적입니다. 빠져나가기 힘든 생지옥 상황은 야쿠마루 가쿠의 특기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불쾌했습니다. 세이지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탓입니다. 세이지가 현재 시점에서 개과천선한 괜찮은 청년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그가 과거 오오타를 괴롭혀서 히키코모리로 만들었고, 에미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범행을 저지른건 사실입니다. 이런 놈이 최소한 죗값을 치루지 않고 행복하게 살 자격 따위는 없어요. 오오타를 만나 협박당하는 정도는 형벌로 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자수할 생각 없이 살해할 결심을 한다는건 쓰레기라는걸 재차 인증한 셈입니다.
물론 오오타 역시 죽어 마땅한 범죄자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애초에 오오타가 범죄를 저지른건 세이지 탓이 큽니다. 세이지가 저지른 테러를 모방한 범죄니까요. 그런데 오오타와는 다르게 세이지는 나쁜 녀석이 아니고, 그냥 궁지에 몰렸던 것에 불과하다고 전개하니, 영 와 닿지 않아요. 가혹한 왕따 가해자들 시점으로 그들이 정당하다는 식으로 묘사한 <<콜드 게임>>만큼 불쾌한 묘사였습니다.
오오타를 죽인 진범인 쿄코 역시 딱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은건 마찬가지에요. 그녀가 신고하지 않아서 여동생이 죽은건 사실이니까요.

게다가 두 부부가 각각 살인과 과거 폭행으로 형을 받는다면, 남겨진 딸은 어떻게 하나요? 끝까지 무책임한 모습에서 일말의 연민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이지는 어린 아이를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계획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동기도 보복 목적에 가깝고요. 이는 비난 동기 살인 미수에 해당되며, 가중 처벌 요소가 많습니다. 18년 이상에서 무기 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어요. 그나마 나츠메 형사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던가, 초범이며 진지하게 반성한다는 등의 감경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15년 이상은 선고받을 중범죄죠.
쿄코는 피해자가 친족을 살해했다는 명확한 귀책 사유가 있어서 참작 요소가 많기는 하나 최소 3년은 복역해야 할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복역하고 나와서 정상적인 직업을 갖고, 정상적으로 딸을 양육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모두 살인자인 셈인데, 왕따나 안 당하면 다행일겁니다. <<편지>>에서처럼, 살인자 가족이 피해를 받고 사는건 당연하고요.

전개도 우연, 억지가 많이 겹쳐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마침 세이지가 오오타를 살해 결심한 날, 쿄코가 오오타를 살해했다는 것 부터 그러합니다. 애초에 오오타가 쿄코를 농락하고 있었다면 구태여 세이지를 찾아가 협박을 할 필요도 없었어요. 얻을게 없으니까요. 과거 세이지가 범행을 저지르던 순간과 목격자를 적절하게 사진에 담았다는 설정도 작위적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쿄코가 놓인 생지옥 상황만큼은 점수를 줄 만 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좋은 부분이 없네요. 아니, 불쾌하고 불편한 이야기였습니다. 나츠메 형사가 세이지를 사살하는 결말이 훨씬 나았을 겁니다.

2020/11/27

골든 슬럼버 - 이사카 고타로 / 김소영 : 별점 2.5점

 

골든 슬럼버 - 6점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택배 기사로 일하다가 아이돌 린카를 구해줘 유명세를 탔던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오랫만에 대학 친구 모리타를 만났다. 그러나 모리타가 준 음료수를 먹고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잠에서 깬 뒤, 모리타는 도망치라며 상상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총리 암살과 관련된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으로 선택되었다는 말이었다. 반은 억지로 도주를 택한 아오야기는 경찰에 쫓기며, 총리 암살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썼다는걸 알게 되는데....


이사카 고타로가 쓴 서스펜스 스릴러. 작가의 대표작입니다. 2009년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1위 등 차지했으며, 여러 상을 수상했던 이력이 있지요.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영화화되기도 했었고요. 그동안 두께 탓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지만, <<남은 날은 전부 휴가>>가 재미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일반인이 거대 조직에 의해 누명을 쓰고 도주하는, 이른바 <<도망자>> 장르물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이쪽 장르 작품들과는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스케일입니다. 무려 일본 총리를 암살했다는 누명이니 아내를 살해했다는건 비교할 수도 없지요. 누명을 씌우려는 조작도 증거를 조작하는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매스컴을 활용하는 수준입니다.
작 중에서는 '이미지' 구축이라고 언급되는, 아오야기가 범죄 성향이 있었다는걸 조작해서 드러내는 이 매스컴 활용 과정이 특히 재미난데 우선 아오야기에게 치한 누명을 씌운 뒤 도주하게 만드는 걸로 시작합니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 증언이 이어지고요. 그리고 아오야기가 저지르지도 않았던 패밀리 레스토랑 난동을 조작하고, 음험해 보이는 사진을 골라 매스컴에 공개하는 등으로 범죄자 이미지를 덧 씌웁니다. 이는 과거 영웅 이미지에 대한 반동으로 더 큰 충격을 불러 일으키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만듭니다.
총리 암살 누명을 씌우기 위한 공작도 여성에게 호감을 가진 척 연기를 시켜 RC 헬리콥터를 구입하게 만드는 등 디테일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과정에 대한 세밀한 묘사 덕분에 설득력도 높고요.
그리고 두 번째 차이점은 진범을 잡거나, 흑막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흑막은 경찰보다도 위에 있는 거대 조직임이 암시될 뿐입니다. 결말도 아오야기가 겨우 도주하고, 성형 수술을 해서 모습을 감추는게 전부에요. 허무하고 시시하지만, 오히려 현실적인 결말이기는 합니다. 경찰까지 좌지우지하는 세력 앞에서 누명을 쓰고 도주하는 평범한 일반인이 할 수 있는건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차이점만 있는건 아닙니다.이 쪽 장르물의 재미 요소, 장점은 빠짐없이 갖추고 있습니다. 경찰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도주하는 과정 묘사부터 빼어납니다. 단지 도망만 다니는게 아니라, 아오야기가 겪었던 경험들, 아오야기가 맺었던 여러가지 관계가 도주를 돕는걸 잘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요하게 등장하는건 대학 시절 친구, 연인과의 경험과 추억입니다. 친구 모리타에게 배웠던 '밭다리 후리기'를 작중 내내 잘 활용하며, 대학 시절 알았던 버려진 차를 도주에 활용하고 있거든요. 과거 아르바이트 했던 도도로키 연화의 도움을 받아 불꽃놀이를 터트려 도주에 성공한다는 클라이막스도 마찬가지고요. 아오야기가 택배 기사로 일했던 시절 익혔던 정보를 이용한 도주극도 꽤나 실감나게 그려집니다.
인간관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택배 회사 선배 '록' 이와사키 에이치로, 예전에 도와주었던 아이돌 린카 및 옛 연인 하루코 등이 적절하게 등장해서, 적절한 도움을 주거든요.
여러가지 디테일들도 돋보입니다. 하루코가 아오야기는 범인이 아님을 깨닫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아오야기는 밥풀을 남기는 나쁜 버릇이 있었는데, 아오야기가 범행 전 먹었다는 돈가스 집 주인이 TV에 나와서 "밥풀 하나 안 남기고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니까!" 라고 말하는걸 보는 장면이지요. 그 외에도 비틀즈의 'Help'를 부르는 노숙자를 도와준 뒤, 그 노숙자가 나중에 아오야기에게 도움을 주는 등 디테일은 아주 좋았습니다.
이런 대학 시절 추억과 여러가지 경험들, 아오야기의 인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사건에 휘말려 도주하는 과정과 엮어 교차시키는 구성도 일품입니다. 등장인물과 시점을 달리하는 복잡한 교차 전개에 능한 작가 특징이 잘 살아있거든요. 제목처럼 '골든 슬럼버'라는 곡을 돌아갈 수 없는 청춘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하는 묘사들도 인상적이었어요.

결국 성형 수술로 도주에 성공한 아오야기에게 하루코가 딸을 통해 "참 잘했어요" 라는 최고급 칭찬을 남기는 장면, 부모님에게 비난같은 안부 편지를 보내는 장면도 마음에 드네요. 승리는 하지 못했어도 최소한 살아남기는 했으니까요. 맞아요. 죽어 천국보다는 살아 지옥이 낫습니다. 일단 살고 봐야죠. 나중에는 신분 세탁에 성공해 르포라이터가 되는 듯 하니 다행입니다. 두 장면 모두 앞서 설명된 복선이 적절하게 사용되는 등 디테일도 여전했고요.

그러나 뒤로 가면 갈 수록 지루해진다는 단점은 어쩔 수가 없군요. 앞서 말씀드렸듯 스케일이 큰 탓에 아오야기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오야기가 이 모든게 누명이며 조작되었다는걸 증명할 증거도 없고요. 그냥 도주만 이어나갈 뿐입니다.
도주 역시 초, 중반부까지 아오야기 혼자 이어나갈 때와 비교하면, 연쇄 살인마 미우라가 도와주기 시작하면서부터 영 이상해집니다. 우선 연쇄 살인마가 아오야기를 도와줄 이유가 도무지 설명되지 않아요. 단지 경찰, 공권력이 싫었다 치더라도, 도쿄로 이송되던 아오야기를 차로 들이받아 탈출시킬 정도로 도와줄 이유는 없잖아요? 본인도 생명과 체포당할 각오를 해야 벌일 수 있는 행동인데 말이지요. 미우라를 통해 자기 모습으로 성형 수술한 가짜가 있다는걸 알게 되고, 그 의사에게 성형 수술을 받게 된다는 결말도 편의적이고 작위적이었어요. 한 마디로 위기에 처할 때 마다 '미우라' 카드를 내미는 식인데, 정도가 너무 지나쳤습니다.
다른 도주 과정도 뒤로 가면 갈 수록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학 부지 어딘가에 있는 버려진 차의 존재가 대표적이지요. 거의 10여년 버려졌던 차가 배터리 교체만으로 움직일 거라는건 솔직히 말이 안됩니다. 이럴 거라면 택배 기사 시절 자동차 정비를 어느정도 배워서, 그 기술로 차를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하는게 더 나았을거에요.
경찰도 딱히 하는게 없어서 도주 과정의 긴박감이 잘 살아나지 못합니다. 시민의 편이 아니라 흑막의 편임을 강조하는 무자비한 체포 과정 묘사만 두드러질 뿐이에요. 아오야기가 미우라 도움으로 대포폰을 확보하고, 폐차로 이동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경찰이 추적하지 못한다는 것도 좀 어이가 없었고요. 앞서 뭔가 두뇌파인 듯 등장했던 경찰 과장 사사키가 실상 하는게 없는 탓도 큽니다. 시큐리티 포드를 이용한 정보 수집도 거창한 소개에 비하면 정작 하는건 별로 없고요.

그리고 아오야기가 보이는 행동들도 많이 답답했습니다. 미우라가 말한대로 자기 모습으로 성형 수술한 가짜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건 말이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해결책으로 생각한게 방송을 통해 직접 이야기를 하는 정도라는건 순진함이 도가 지나쳐요. 물론, 앞서 이야기했듯 흑막이 너무 거대해서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건 별로 없긴 합니다만, 그의 말을 누가 믿어줄걸로 생각한다는게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더라고요. 무슨 말을 해 봤자 '이미지'를 덧씌워 가공하는건 일도 아닐 뿐더러, 무엇보다도 아오야기에게는 증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경찰이 말한대로, 범인이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뻔한 발버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론내지라면 별점은 2.5점. 도주극, 스릴러로서 기본 재미는 보장하는 작품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아서 감점합니다, 제가 읽은 작품들 중에서도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네요. 그래도 엔터테인먼트로는 아주 우수한 만큼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11/22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고 파리로 - 슈테판 마르틴 마이어 지음, 토어발트 슈팡겐베르크 그림 / 류동수 : 별점 2점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고 파리로 - 4점
슈테판 마르틴 마이어 지음, 토어발트 슈팡겐베르크 그림, 류동수 옮김/찰리북

오스만 제국의 소년 시난은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고 파리로 향한다. 아버지와 함께 파리 만국 박람회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열차에서 시난은 주방 보조 피에르와 친구가 된다. 피에르는 정식 승무원이 꿈이었다. 그러나 남작 부인이 회중 시계를 잃어버리고 피에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시난은 피에르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3일 동안 시계를 찾기 위한 조사에 나서는데...

오리엔트 특급 열차로 오스만 제국에서 파리까지에 이르는 여정을 화려한 그림과 함께 보여주는 동화책. 단순한 지도, 풍경 묘사 뿐 아니라 열차 구조라던가 증기 기관차의 원리 등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관련된 여러가지 정보가 가득합니다. 또 실존했던 무기 거래상 바실 자하로프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키고, 당시 불가리아 왕 페르디난트 1세가 열차를 모는걸 좋아했다던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후가 여행을 좋아해서 전용 객차가 있었다는 등 실제 역사를 이야기에 녹여내어 재미를 더합니다.
당시 유럽의 패권 구도라던가 신분 제도 등을 어린 아이들이 약간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는 전개도 좋았고요.

그러나 회중 시계는 단지 분실했던 것이고, 남작 부인은 오스만 제국 비밀 정보를 몰래 옮기던 첩자였다는 반전은 너무 급작스러웠습니다. 사악한 갑질로 일관하던 남작 부인이 사실은 사랑 때문에 위험한 첩자 역할을 수행한 사랑꾼이었다는 설정도 당황스러웠고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지금보다는 단서가 더 많이 제공되었어야 했습니다.
아울러 그림도 아주 빼어나다고 하기는 어려웠어요. 공들여 열심히 그리기는 했는데, 디테일이라던가 컬러 사용, 기본적인 뎃생력은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아동용 책을 어른 시각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제 딸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더군요. '스칼라 월드 북스' 수준의 그림과 지금보다는 상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2020/11/21

편지 - 히가시노 게이고 / 권일영 : 별점 1.5점

 

편지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다케시마 츠요시는 빈집 털이에 나섰다. 동생 나오키를 대학교에 보내려는 의도였었다. 그러나 집 주인을 만나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 뒤, 체포된 츠요시는 15년 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며, 동생 나오키는 대학에 대한 꿈을 접은 채 하루하루 먹고 사는데 급급한 삶을 이어 나가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추리 소설인줄 알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살인 강도라는 중범죄가 초반에 자세히 서술되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 뒤에는 별다른 사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오키가 흉악범 가족으로 불행한 (?) 삶을 사는 과정을 그린 인간 드라마에요. 알라딘에도 추리 소설로 분류되어 있어서 완전히 낚였네요. 솔직히 이런 장르인줄 알았다면 읽어보지 않았을겁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이 아닌 작품은 몇 편 읽어보았지만, 대체로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고 지루했었으니까요.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류라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뻔한 이야기가 이어질 뿐이거든요. 흉악범인 형 때문에 가수가 되는 꿈, 사랑하는 여자를 모두 놓치는 과정은 그만큼 진부했습니다. 나오키가 보컬로 밴드 스페시움에 합류하고, 밴드가 성장하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고요.
작품을 끌어가는 주인공 나오키도 별다른 매력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짜증나는 스타일이에요. 결단력이 있어 보이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항상 유유부단하기 때문입니다. 형 때문에 피해를 보면서 살아왔다고 하면 진작에 손절했어야 하고,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라고 생각했다면 진작에 면회라도 갔었어야죠. 나오키는 끝까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행동만 반복할 뿐입니다. 노래에도 재능이 있고, 외모도 평균 이상이라는 설정이 있는데 이는 잘 활용되지도 못합니다. 솔직히 이 설정은 왜 나오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나오키의 청춘은 버블 시기 대학생들의 청춘과 고민, 그리고. 사랑과 방황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웬지 모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와 유사한 느낌을 전해 주는데, 무언가 독특하고 새로운, 세련된 맛을 풍겼던 하루키와는 다르게 뻔한 묘사만 가득했습니다.
전개도 그닥입니다. 심포 유이치의 <<추신>>처럼 '편지'를 잘 활용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핵심 설정도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츠요시가 저지른 범죄는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돈을 훔치려다가 무고한 노인을 죽인건 명백한 사실이에요. 집안 환경이 아무리 어려웠다고 한들, 목적이 동생을 대학에 보내려는 선한 의도였다고 한들 그 죄가 변할건 없습니다. 그래서 나오키가 불쌍하다! 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어요. 죗값의 하나로 당연히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작중에 나오는 말 그대로 "자신이 죄를 지으면 가족도 고통을 받게 된다는 걸 모든 범죄자들이 깨달아야 한다."인 거지요.
또 형이 살인 강도라 하더라도, 그게 대학 진학이나 직장을 구하는데 문제될건 없습니다. 연예인 활동은 조금 어려웠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지는 직업이 아니라면 뭘 해도 크게 상관 없었을 겁니다. 실제로 작중에서도 우연한 사고로 형의 존재가 드러나기 전에는 취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요. 나오키가 필요 이상으로 형을 의식하고, 피해 의식에 시달리는건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울러 형의 존재가 드러나는 장면들은 모두가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웠어요.

자기 딸마저 따돌림당해서 아예 형을 인생에서 지워버릴 결심을 한다는 마지막도 영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동기는 알겠지만 구태여 이제 와서?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회사를 옮기고 이사를 하면, 형의 존재는 주위로부터 쉽게 감출 수 있어요. 직접 선을 그을 필요는 없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위문 공연으로 형을 찾는다는 결말은 정말 난데 없더군요. '이래도 안 울거야?'라며 독자를 마지막에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트리겠다!는 억지 의도가 훤히 들여다 보였습니다. 항상 최루성 신파를 막판에 넣곤 하는 한국 영화의 병폐와 별다를게 없는 셈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물이 아니라서 실망이 컸던 탓도 있지만, 여러모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네요.

2020/11/20

움직이는 집의 살인 - 우타노 쇼고 / 박재현 : 별점 2점

 

움직이는 집의 살인 - 4점
우타노 쇼고 지음, 박재현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자마 아키라가 이끄는 극단 '마스터 스트로크'는 연극 <<신은 예술가를 좋아해>> 공연 연습에 한창이었다. 이 공연은 6년 전 무대에서 사고로 죽은 이자와 기요미 추모 공연으로, 그녀의 아버지인 유명 건축가 이지와 야스노리가 직접 만든 극장인 시어터 KI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다. 시어터 KI는 계란 형태로 생겨서, 가운데 노른자 부분인 무대가 회전하는 독특한 극장이었다. 시나노 조지는 이 공연 제작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단원인 모리 쿄코와 연인이 된다.
그런데 연극 공연 당일 배우 스미요시 가즈오가 부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 소품인 칼이 진짜 칼로 바꿔치기 된 탓이었다. 그럼에도 단원들은 공연을 강행하는데, 마지막 공연에서 각본가 겸 배우 다키가와 요스케가 무대에서 똑같은 소품용 칼에 찔려 죽고 만다.
경찰은 칼을 바꿔치기 할 수 있던 단원들을 의심하고, 단원들은 내분에 휩싸이지만 시나노 조지는 극장 구조를 검토한 뒤 외부 인물이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한 가지를 깨닫게 되는데...


198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 태동하여 대 유행한 본격 미스터리를 '신본격'이라고 부릅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논리성과 게임성을 중시하는 작품들이지요. 문제는 비현실적인 설정과 트릭이 많다는 점으로 이 작품은 전형적인 신본격물입니다. 설정과 캐릭터, 트릭 등 모든게 비현실적, 만화적이며 과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연극을 공연하는 무대에서 사람이 다치고 죽는다는 설정부터가 비현실적입니다. 핵심 등장 인물들인 극단 '마스터 스트로크' 인물들도 마찬가지에요. 연극에 미쳐 다른 건 돌아보지도 않는 성격에, 대체로 사회성이 부족하고 비인간적이며 자기 이익만 챙기는 극단적인 캐릭터들이 대부분이거든요. 대마초를 재배해서 피우고, 민폐 끼치기가 일쑤인 탐정 시나노 조지야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연극 <<신은 예술가를 좋아해>> 무대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도 비현실적입니다. 애초에 소품을 잘못 써서 사고가 일어났다면, 장난감 같은걸로 바꾸는게 당연한거 아닐까요? 또 연극용 소품으로 만들어진, 몸에 닿으면 쑥 들어가는 장치가 된 칼을 진짜 등산용 칼로 바꿔치기 하여 사건이 벌어진다던가, 한 명이 부상을 입은 뒤, 또 다른 한 명이 같은 흉기로 살해된다는 전개는 너무 뻔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무엇보다도 시나노 조지가 진상이라고 설명하는, 객석이 무대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는 거대한 장치 트릭이야말로 과장된 이야기의 정점입니다. 무대가 회전하는 줄 알았지만 반대였다는건데 <<웃지 않는 수학자>>같은 트릭이지요. 이를 통해 건축가 이자와가 나갔을 때 문은, 원래 방향과 정 반대로 분장실과 이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당연히 현실성이 낮습니다. <<웃지 않는 수학자>>는 개인 건물에서 단 몇 명만 속이면 됐지만, 그리고 천문대가 회전하는건 말이 되는데 거대한 극장 객석이 회전한다는건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요. 300명의 관객이 좌석이 회전한다는걸 모두 몰랐다던가, 중간에 아무도 화장실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건 아무리 신본격이라 하더라도 면죄부를 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생각이에요. 문을 빠져나가 칼을 바꿔치기 하고 다시 돌아오려면, 객석이 회전하고 있으므로 문 위치가 틀어졌을텐데 그 해결 방법도 설명되지 않고요. 이자와 혼자만이 아니라 극장을 만든 모든 사람들, 그리고 범행 당시 무대 조작하는 사람 도움이 필요하다는 문제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경찰이 조금만 조사해도 금방 알 수 있다는 문제도 큽니다. 읽으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그나마 다행인건 이 트릭은 사실이 아니었다는겁니다. 경찰 조사 결과 객석은 회전하지 않았고, 이자와는 무죄로 풀려나게 되지요.

이후 시나노 조지는 피해자 다키가와가 자살했다고 추리하는데, 좀 시시하기는 하지만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앞서 추리보다는 낫더군요. 연극에 미친 사나이가 자신이 직접 쓴 연극 무대를 자살 장소로 삼았다는건 과장된 캐릭터성에 기초하고 있기는 하나, 미래에 대해 절망한 차에 옛 연인 기요미 추모 공연이 도화선이 되었다는 등, 여러가지 동기에 대한 설명이 꽤 설득력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살이라서 별다른 트릭이 없다는 문제는 존재합니다. 앞서 가즈가 다친건 우연한 사고에 불과했다는 설명이지요. '신본격'의 전형적인 틀을 깨고는 있는데, 이래서야 '신본격'이라고 부르기는 또 애매한, 그런 기묘한 장르물이 되어 버렸네요. 작가도 뭔가 트릭에 대한 사명감을 느꼈는지, 연극 무대 살인 사건과는 별개로 핵심 트릭이 따로 등장하기는 합니다. 극단 '마스터 스트로크' 제작 담당으로 일했던, 주인공인 시나노 조지가 사실은 시나노 조지가 아니었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그것입니다. 그는 소극장을 상대로 일 년에 한 두번 씩 5년 동안 수익금을 빼돌려 왔던 사기꾼 오니쓰카 도시였지요. 시나노 조지가 등장하는 전작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전작을 읽었던 사람들은 놀랄만한 트릭일거에요. 변장을 위해 착용했던 선글라스와 마스크, 수염을 기르는 행위 등을 절묘하게 드러내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고보니 제목도 트릭이네요. '움직이는 집' 에서 '살인' 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가짜 시나노 조지가 사기꾼이라는걸 눈치챈 배우 사이키와 다투다가 머리를 부딪혀 죽은 뒤, 트릭이 밝혀지면서 나름 추리력을 보여준 가짜 시나노 조지 캐릭터가 엉망이 된건 아쉽습니다. 그의 말대로 5년 동안 일 년에 한두 번씩 극단 상대로 사기를 쳤다면 최소 5번에서 10번 정도 반복했다는건데 진작에 들키지 않았을 이유가 없습니다. 연극계가 발이 좁다는 묘사는 작품에 넘쳐나니까요. 진짜로부터 신분을 훔친 방법도 '우연히' 보험증을 손에 넣은게 전부고요. 이래서야 나름대로 추리력을 보여 주었던 치밀한 범죄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시한 죽음을 맞은건 당연해 보입니다. 서술 트릭도 곱씹어보면 이야기와는 무관한 곁가지 이야기에 불과하고요.

그나마 가짜가 죽은 뒤 진짜 시나노 조지는 대마 불법 소지 및 재배 혐의로 체포되고, 모리 쿄코가 투신하는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건 좀 괜찮았습니다 . 과장된 세계에 종지부를 찍는 작가 나름의 의식으로 보였기 때문이에요. 모든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죽음, 아니면 감옥으로 현실의 굴레에 갖혀버리고 만 셈이니까요. 작가가 쓴 서문을 보면 본격 추리물을 쓰기 위해 등장시켰던 시나노 조지를 퇴장시키기로 결심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결심에 어울리는 결말이라 생각됩니다. 더 제대로 쓰려면, 시나노 조지를 진짜로 죽여버리는게 나았겠지만요.
그래도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본격 추리, 신본격 소설이면서도 트릭은 별볼일 없는데다가, 신본격 소설들이 갖춘 단점들도 두드러지는 탓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0/11/19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7) : 조경규 만화들

 

돼지고기동동 - 6점
조경규 지음/송송책방

<<오무라이스 잼잼>>으로 유명한 조경규 작가가 꽤 오래전에 연재했던 웹툰. 단행본은 올해 출간되었네요. 연재당시 다 봤었지만, 우연찮게 단행본도 구입하게 되어 리뷰를 남깁니다.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하늘이네 가족이 친지, 이웃들과 돼지고기 요리를 해 먹는게 전부니까요. 남편이 요리를 전담하고, 아내는 밑준비와 밥을 짓는다는 역할 분담은 독특하지만, 평범한 한국인 가정답게 등장하는 요리 모두 평범합니다. 돼지 갈비를 이용한 김치 찌개, 삼겹살 구이, 돼지고기 앞다리살 불고기, 콩나물 밥이 등장하는데 누구나 집에서 한 번 해 먹어 봄직한 요리들이죠. 밖에서 사 먹는 요리도 순댓국과 감자탕이고요. 중국 식당에서 탕수육을 먹고, 회사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집밥'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평범한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제한될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인지 작 중 <<오무라이스 잼잼>>을 그린 인기 만화가 조경규 씨!가 직접 등장해서 중국 요리 회과육을 선보이고, 아파트 반상회를 빙자한 요리 대결이 펼쳐지는 와중에 아파트 윗집 아가씨가 돼지고기 소시지로 만든 핫도그를 대접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던것 같아요. 요리 대결을 끝으로 마무리 되고 맙니다. 오래 연재되기는 좀 힘든 소재였어요.
전개도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아래와 같이, 별 내용도 없는데 힘을 주어 표현한 부분들이 그러합니다. 연재를 지나치게 의식한 듯한데, 영 작품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결말도 깔끔하고 하늘이네 세 가족의 화목한 모습도 귀엽고 볼거리이며, 이웃간의 훈훈한 정이 느껴지는 이야기라 마음에 드네요. 딸 아이에게 선뜻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조경규 작가가 직접 등장하여 <<오무라이스 잼잼>>과 이어지는 세계관이라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 1 : <<오무라이스 잼잼>> 보다는 큰 판형이라는게 특이했습니다. 세밀한 그림을 감상하기 용이한 판형인데, 보통 웹툰에는 잘 어울리지 않지만 조경규 작가 만화는 펜터치가 세밀한 덕분인지 큰 판형에도 잘 어울리더군요.
덧 2 : 하늘이가 사랑하는 '삼통 파워'가 작중 세계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만화로 보이는데, '팬더 댄스'를 등장시키는게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조경규 유니버스'를 구축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오무라이스 잼잼 11 - 6점
조경규 글.그림/송송책방

딸아이가 좋아해서 계속 구입해서 읽어보고는 있지만, 어느 순간 리뷰를 쓰지는 않게 된 조경규 작가의 인기 일상계 식도락 만화. <<돼지고기 동동>> 리뷰를 쓰는 김에 최신권 리뷰를 올려 봅니다.

이전 권에 비해 조경규 작가와 가족들이 직접 겪은, 일상계스러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조경규 작가 가족이 메추리알 요리 파티를 하고, 식당에서 간 요리를 시켰는데 너무 많아서 당황했던 경험, 중국에 가서 마라샹궈를 먹는다던가, 홍콩에서 에그롤을 사기위해 분투했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식으로요.
나쁘지는 않은데, 이전처럼 특별한 경험에서 시작해서 요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전개가 많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인 <<오무라이스 잼잼>> 최고 매력 포인트인데 말이지요. 그나마 등장하는 것도, 오락실 기계를 사러가서 너무 많이 하지 않도록 룰을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초코칩 쿠키처럼 멈출 수 없게 된다는 초코칩 쿠키 이야기같이 뻔하거나 억지스러운게 많았습니다. 아울러 음식들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알려주는 내용도 이전보다는 부족한 편입니다. 가족 일상계 중심 이야기니까요.

그래도 이야기 중간중간 소개가 없는건 아닙니다. 양꼬치를 위구르 족이 팔기 시작한게 대유행의 시초라던가 하이라이스의 유래, 도토리묵 묵사발 원조인 대전 강태분 할머니, 에그타르트에 대한 상세한 설명 등 볼만한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전 권과 비교하기 어려운 장점이 있는데, 단행본 구입한 보람이 느껴진다는 겁니다. 게임기가 등장하는 이야기 두 편이 웹툰에서는 삭제된 덕분입니다. 게임기가 불법 복제품이기 때문이라는데, 책에는 수록되는게 문제 없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출판물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라서 기뻤습니다. 게다가 <<오묘하고 잼있는 이야기>>라는 만화 게임북 부록도 아주 좋았어요. 해가 지나면 쓸 일없는 달력이나, 용도도 불분명한 스티커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2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은 좀 세기는 하지만, 600페이지라는 볼륨과 풀 컬러라는 점에서 수긍할 만 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6)

2020/11/15

완전 범죄 연구 - 사노 요 / 김한경 : 별점 2.5점

일본 추리 작가 사노 요가 쓴 단편 6편이 수록된 단편집.

이전 <<금색의 상장>> 리뷰에서 언급해 드렸듯, <<금색의 상장>>과 함께 국내에 유이한, 사노 요 단행본입니다.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발견하고 구입하였습니다. 가격은 배송료 제외하고 2만원. 1991년 발간 당시 정가는 210여 페이지에 3,500원이었지만 뭐, 이 정도면 적절한 가격이라 생각합니다. 절판본 중에서는 터무니없는 가격이 형성된 책도 많으니까요. 잠깐 찾아보니 <<환영박람회>> 1~4 권 셋트는 최소 160,000원에서 시작하네요.

하여튼, 읽어보니 그동안 구전되어 왔던 명성의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디어' 만큼은 확실히 좋았거든요.

그러나 완성도 측면에서는 다소 아쉽습니다. 좀 더 길게, 설득력있게 전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작품이 꽤 되거든요. 단편에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빼어나기 때문에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오랜 숙제를 끝낸듯한 후련한 기분은 보너스고요.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시체이동>>
<<중앙일보>> S 지국 지방판에 기묘한 기사가 실린다. 누군가 자동차 3대에 벌거벗은 마네킹을 가득 담고 이동했던 사건이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오이카와는 기사에 흥미를 보이고, 기사를 쓴 젊은 기자 사쿠라이에게 사건에 대해 좀 더 조사해 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사쿠라이와 중앙일보 지국 조사를 통해, 자동차 3대에 실렸던 마네킹 18개 중 17개가 별장지인 '학자촌'에서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오이카와는 마네킹 사건은 친구인 심리학 교수 이나무라 가즈히코와 관련되어 있다는걸 눈치채고 그를 추궁하는데...

이야기는 이나무라가 참석했던 대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대담에서 문학 평론가 시노다는 차로 시체를 산 속에 버리는건 완전 범죄에 가깝지만, 불시 검문이나 불의의 사고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나무라는 이에 동의하지요. 

문제는, 여기에서 마네킹은 벌거벗은 여성 사체를 위장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되는데 이건 말도 안됩니다. 사체를 버리러 가면서 구태여 이상한 티를 낼 이유는 없으니까요. 실제로 마네킹 운반자들은 무려 2번이나 검문을 받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목격되어 이동 경로도 곧바로 밝혀지고요. 이럴 바에야 불시 검문, 불의의 사고와 같은 예상치 못한 불운은 무시하고, 혼자서 차 트렁크에 시체를 넣고 이동하는게 훨씬 상식적이고 납득이 가는 행동일 겁니다.

그래도 다행히 결말까지 허술하지는 않습니다. 마네킹 관련 사건은 오이카와가 날조했다는게 진상이거든요. 동기는 이나무라가 오이카와의 횡령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오이카와는 이나무라를 독살한 뒤, 이나무라가 범행이 드러날까 두려워 자살했다며 완전 범죄를 완성시키지요. 말 그대로 '완전 범죄 연구'라는 표제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또 오이카와는 이나무라를 살인범처럼 보이도록 매스컴을 이용했는데 그 발상과 과정에 대한 묘사도 꽤 그럴듯했습니다. 기자가 기사로 자살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많이 있었지만 기자가 기사를 만들어서 있지도 않은 범행을 엮은 뒤, 그걸 남에게 뒤집어씌워 자살을 위장한채 죽인다는 이야기는 처음 봤네요.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였습니다.

하지만 이나무라가 살인 사건을 저지른 범인이라는건, 오이카와의 주장 뿐입니다. 이나무라가 살해했다는 여대생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고요. 앞서 이야기한대로 마네킹 작전은 어이가 없었을 뿐 아니라, 고용한 학생과 자동차 번호로 이나무라가 주도했음이 뻔하게 드러날 겁니다. 조금만 조사가 이루어져도 이나무라가 살인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다는건 금방 드러났을 거에요. 그런 점에서 치밀한 계획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전개에 문제가 많았기에 감점합니다.

<<위장 자살>>
K시에서 부정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요 증인이었던 시장 비서 자살 후 수사는 중단되었고, 시장은 구속되지 않았었다.
얼마 뒤, 도쿄에서 살던 K시 출신 아키코는 자살했다는 비서를 긴자에서 목격한다. 아키코는 비서 나카바야시가 국회의원인 삼촌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낸다. 아키코의 이모 사에코는 애인인 전직 기자 다자키 류이치와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다자키는 비서가 비슷한 사람을 자신으로 위장하여 살해했다고 추리하는데...


다나카가 내놓은 추리는 예상대로였습니다. 그런데 뒷부분은 나름 반전이 있어서 신선했어요. 우선, 다자키 때문에 근무하던 은행에서 횡령을 저지른 사에코는 이 트릭을 그대로 이용하여 도주할 계획을 세웁니다. 마침 자기와 꼭 닮은 카페 주인 도무라에 대해 알게 돠었기 때문이에요. 도무라를 죽이고 자신이 자살한걸로 위장한 뒤, 다자키와 함께 도주할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나카바야시 비서건은 아예 조작이었고, 다자키와 아키코가 공모하여 사에코를 죽이려는게 진상이자 반전이 드러납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나카바야시 비서 사건과 관련된 추리 모두가 아예 조작이었다는 발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키코의 말 외에는 증거가 없는데,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어서 깜빡 속아넘어갔네요.

문제는 다자키와 아키코가 손을 잡고 사에코를 죽이려 한다는 전개에 의외성이 없다는 겁니다. 사진 한 장, 그리고 아키코와 다자키의 말 외에는 사에코와 꼭 닮았다는 도무라라는 여성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지요 이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을리도 없으니, 다자키와 아키코가 꾸민 계략이라는건 뻔합니다.
또 아키코와 사에코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사에코가 다자키에게 나카비야시 목격 증언을 이야기하게 해서 추리를 듣는 흐름도 좀 이상해요. 사에코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차라리 함께 사는 아키코와 사에코가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는게 더 설득력이 높지요.

모든게 거짓이라는 대담한 발상은 좋지만, 이렇게 전개에서 보이는 단점 때문에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증거 인멸>>
어느날 작가인 나에게 미카미 노리코가 찾아 왔다. <<반대급부>> 라는 단편 속 주인공이 자기 아버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골 현청 만년 과장 구로카와가 간부후보생인 엘리트 다가가 저지른 음주 교통 사고를 자신이 낸걸로 뒤집어 쓰는 내용인데, 실제로 미카미 노리코의 아버지 미카미 조키치도 시골 현청 만년 과장으로 교통사고를 저지른 이력이 있었다.
미카미 조키치는 퇴직 후 일자리를 찾아 도쿄에 상경한 후 육교에서 투신 자살했고, 노리코는 아버지를 죽인건 교통사고를 실제 저지른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순수하게 창작한 작품이 실제로 있었던 사건과 상당히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 우연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재미있는건 미카미 조키치 자살 사건이 아니라 미카미 노리코가 살해당한게 진짜 핵심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경찰이 이를 밝혀낸 추리도 합당합니다. 처음에 노리코는 원래 책을 읽지 않는 조키치 유품 속에서 이 책을 남편 유사쿠가 발견하고, 장인 어른 이야기 아니나며 건네주었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조키치는 책을 읽지 않는데 어떻게 이 책 속 단편이 자기 이야기란걸 알았을까요?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이 조사한 결과, 책에는 조키치의 지문이 묻어있지 않았습니다! 즉, 노리코의 남편 유사쿠가 꾸민 거짓말이었던거지요. 유사쿠는 장인어른이 자살한 사건을 이용하여 노리코를 움직이게 만든 뒤, 그녀를 살해하고 그 죄를 실제 작품 속 또다른 모델인 엘리트 공무원 이케다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겁니다.

'진짜처럼 보였던 이야기가 사실은 특정 인물의 말 외에는 증명할 도리가 없는 거짓말'이었다는건 이 단편집 수록작들 대부분에 해당되는 설정인데, 이 작품에서는 특히나 적절하게 잘 사용되었다 생각됩니다. 정말로 자기가 쓴 소설같은 과거가 있었으며, 조키치는 그 사실이 폭로되는걸 두려워한 이케다가 살해한게 아닐까 하는 화자인 작가 생각으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인상적이고요.

그런데 유사쿠가 별다른 조작없이 살인을 저질러 체포된다는건 좀 아쉬웠습니다. 앞서 이 정도로 꼼꼼히 조작한 증거를 내세울 정도였다면, 실제 범행도 본인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교묘하게 저질렀어야 했어요. 알리바이 하나 없이 체포되자마자 자백한다는건 많이 시시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유사쿠가 저지르는 범행만 더 꼼꼼하게 그려낸, 중편 정도 분량이었다면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살인계약>>
재계의 거물인 후나사와 료스케가 살해된다. 공개된 유언장에는 여류 추리 소설가 에모토 유리노에게 7천만엔을 상속한다고 적혀있었다. 경찰은 7천만엔을 받기 위해 에모토 유리노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재판에 회부한다. 밀회를 위해 가명으로 호텔에 드나든 탓에 그녀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데...

무고한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완전 범죄를 완성시키는 범죄극입니다. 후나사와 료스케가 살해당한건, 에모토 유리노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무효화 시키기 위해 저지른 자작극이라는게 진상이거든요. 회사를 손에 넣기 위해 비열한 수단을 동원했던 증거를 그녀가 몰래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노인성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료스케는 그녀를 살인범으로 몰고 죽습니다. 세상은 살인범이 가진 증거 따위는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고, 보기 좋게 성공합니다. 에모토 유리노가 빠져나갈 수 없는 개미 지옥에 빠졌다는 결말은 인상적이네요.

그러나 료스케가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는건 좀 설득력이 없고, 살인범이 가진 증거라도 회사에 치명적일 수는 있다는 점에서는 헛점이 보입니다. 이 쪽 바닥 걸작인 카트린느 아를레가 쓴 <<지푸라기 여자>>와 비교한다면, 에모토 유리노는 정말 무고하다고 보기는 힘들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완전 상속>>
유산한 충격으로 아내가 자살한 미즈키에게 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아내가 다카라이라는 남자때문에 매춘을 하다가 자살했다고 전해 준다. 미즈키는 경찰 시로다에게 이 사건에 대해 상담하고, 어떤 여성이 다카라이를 중상모략하는 전화를 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카라이가 정말로 살해당하는데...

중상모략하는 전화를 건 범인은 아내 아키요였습니다. 그녀는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서른 살 이상 차이나는 다카라이와 결혼했었습니다. 유산이 목적이었지요.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암에 걸린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다카라이보다 먼저 죽으면 아들에게는 한 푼도 돌아가지 않게 되기 때문에, 다카라이가 먼저 죽은 뒤 자신이 죽게끔 수를 쓴 겁니다. 억울한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다카라이가 범인이라고 전화를 걸다 보면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다카라이를 살해할걸로 생각한거지요. 다카라이가 살해되면, 그 유산은 아내인 본인이 상속받고, 본인이 죽으면 아들에게 모든 유산이 상속되게 되니까요.
이는 제목 그대로 '완전 상속' 범죄인 셈입니다. 당시 수사 기술로는 전화를 누가 걸었는지까지는 알아낼 수 없으니, 아키요가 전화를 걸었다는걸 밝혀내는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전화를 걸었다는게 드러나더라도, 직접 범행을 저지른건 아니기도 하고요.

순전히 운에 의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아쉽지만, 계획만큼은 정말 비상했습니다. 약간의 설득력만 더하면 걸작이 될 수 있었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심리 살인>>
경찰인 나에게 조카딸 미나코가 찾아와 괴상한 편지,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며 도움을 청했다. 나는 미나코의 남편인 신용금고 이사 하야마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 의심했고, 하야마가 어떤 여성과 아이를 몰래 만난다는걸 알게 되었다. 장난은 더욱 심해져 미나코가 자살 미수까지 저질러서 나는 하야마를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신 착란을 일으킨 미나코가 하야마를 살해하는 사건을 저지르는데..


자신이 미친 걸로 위장해서 살인 사건을 저지르고, 심신 미약 등으로 무죄 방면된 뒤 유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입니다. 하야마가 아니라 미나코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으며, 불륜남이 전화를 거는 등으로 조작에 협력한거지요.

증거를 잡을 수 없는 완전 범죄이기는 한데, 좀 뻔했습니다. 미나코에게 장난을 걸 사람이 없다면, 장난 자체가 조작이라는건 당연하니까요. 미나코에게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이미 나온 상황이고요. 경찰이 불륜남을 조사하지 않은건 직무유기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네요. 불륜이라는 동기도 식상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 수록작 중 워스트로 꼽겠습니다.

2020/11/1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로버트 바 외 / 이정아 : 별점 2.5점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6점
로버트 바 외 지음, 이정아 옮김, 박광규/코너스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추리 소설 역사 초기인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 단편이 수록된 앤솔러지입니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과 마찬가지로 정가 할인되었기에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탐정들 등장이 많은게 이채롭습니다. 유명한 외젠 발몽마틴 휴잇을 비롯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당대 탐정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산사나이, 자연인 명탐정 노벰버 조와 초창기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는 캐릭터가 독특해서 인상적이더군요. 플랙스먼 로우는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수록작들 수준이 모두 높지는 않습니다. 셜록 홈즈의 영향을 짙게 받은, 모방작이 많은 탓입니다. 시대와 유행에 충실했지만, 뛰어넘지는 못한 셈이지요.
<<두 개의 양념병>>이라는 걸작이 수록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수준 이하 작품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가 인하된 가격이 워낙 저렴하기에,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고전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세요.


<<거브 탐정, 일생 일대의 사건>>
파일로 거브는 마대 자루에 꿰메어진 채 익사한 헨리 스미츠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나선다. 그의 활약을 모든 리버뱅크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끊어진 전구를 쥐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하는데...

도배 및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통신 교육으로 탐정이 된 파일로 거브가 활약 (이라고 쓰고 좌충우돌이라고 읽는)하는 시리즈 단편.

통신 교육을 받은 탐정은 <<탐정 피트 모란>>이 유명합니다. 피트 모란은 겉에 드러난 것들만 1차원적으로 해석하는 단순한 인물이었습니다. 고민따위는 하지도 않고요. 당연히 추리보다는 코미디가 핵심인 이야기였습니다.
이 작품도 별로 다르지 않아요. 탐정에 대한 희화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스는요. 마을 주민 모두가 변장이라는 걸 알아채는 변장을 한 뒤 탐문 수사에 나선다던가, 파일로 거브가 펼치는 수사를 마을 주민 모두가 지켜본다는 등의 묘사 등이 그러합니다.

그래도 <<피트 모란>> 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웃음거리를 제외하면, 나름대로는 추리물이기 때문입니다. 작 중 기묘하게 죽었던 헨리 스미츠 사건의 결정적 단서는 피해자가 쥐고 있던 전구였으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어디서 전구를 갈았는지?"를 파악한 뒤 피해자의 작업실로 올라가 전구를 가는 동작을 따라하다가 진상을 알게 되거든요. 피해자는 자신이 만든 '양고기 자동화 포장 기계'로 넘어져 마대 자루로 포장된 뒤 강물로 던져졌던 겁니다. 단서를 찾고, 추리한 뒤 추리를 검증한다는 순서만큼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 셈이에요. 추리라기 보다는 겉에 드러난 단서를 '추적'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넓은 범주의 추리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대단한 추리는 아니며, 흡사 <<월레스 앤 그로밋>>을 연상케 하는 황당무계한, 일종의 다고베르트 머신같은 기계가 등장한다는 점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단지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서만 점수를 받았을 뿐입니다. 당연합니다.

<<두 개의 양념병>>
로드 던세이니가 1934년에 발표했던 작품. 장르 문학을 사랑하시는 모든 애호가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실 고전 걸작 단편이지요. 마지막의 의외성이 돋보이는, 이른바 '기묘한 맛' 장르의 대표작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었었는데, 정통 추리물 성격이 강할 뿐더러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량이 충실해서 놀랐습니다. 이는 마지막 반전을 훨씬 돋보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상세한 묘사를 통해 반전을 탐정역인 린리 씨가 룸 메이트인 스메더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은근히 드러내는 덕분이거든요.
린리씨는 샐러드에 뿌려먹게 넘누모 좀 달라고 합니다. 스메더스는 살인 용의자 스티거가 구입했다는 양념 '넘누모'를 파는 행상인이라서요. 그러나 스메더스는 거절합니다. "고기와 짭짤한 음식에만 뿌려 먹는 겁니다"며, 잘 모르고 채소에 뿌려 먹더라도 "두 번은 안 하죠"라고요. 이 말로 진상이 드러납니다!

2주일 동안 고기를 어떻게 보존했을지, 뼈와 정말 먹을 수 없는 내장 같은 부산물은 어떻게 처리했을지 등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는 합니다. 그래도 후대에 많은 영향을 준 고전 걸작임에는 분명해요. 제 별점은 4.5점입니다. 린리 씨와 스메더스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더 많이 읽어보고 싶네요.

<<백작의 사라진 재산>>
외젠 발몽 시리즈 단편.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에도 수록되었던 작품. 다시 읽어보니 트릭이 황당해서, 이전만큼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인지 잘 모르겠네요. 지금 주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래시계>>
골동품상에서 버트럼 이스트퍼드는 오래된 모래 시계를 구입한다. 시계는 30분 정도 지나면 시간이 멈추는 문제가 있었다. 그날 밤, 모래 시계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던 (?) 버트럼 앞에 옛날 군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그 모래 시계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190여년 전 자신이 참전했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시계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는데...

표제작. 저자는 '외젠 발몽' 시리즈 작가인 로버트 바인데, 작품은 외젠 발몽 시리즈와는 관계없는 역사 판타지네요.

일단, 모래 시계 소유권을 주장하던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해 준 전쟁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중위는 장군으로부터 기습 공격 작전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걸 몰라서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죠. 그래서 작전 실패 후 체포되었습니다. 장군은 '모래 시계 모래가 다 떨어지면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리를 떠나죠.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 탓에 총살을 집행할 수 없었고, 장군도 그 사실을 확인한 뒤 총살 지시를 철회한다는 내용입니다.
긴박하면서도 왠지 모를 유머, 여유가 느껴지는 좋은 이야기였어요.

그러나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았어요.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어떻게 버트럼 앞에 나타났는지부터 이유 불명이니까요. 왜 모래 시계가 파괴되고 중위는 사라졌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야 버트럼 이스트퍼드가 꾼 꿈이라고 해도 될 정도에요.
그래서 점수는 2.5점입니다. 여러모로 마무리가 아깝습니다.

<<일곱 명의 벌목꾼>>
노벰버 조를 벌목꾼 막사 책임자 클로즈 씨가 찾아 왔다. 작년에 나타났던, 벌목꾼을 대상으로 강도 행각을 벌이는 검은 가면이 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클로즈 씨로부터 범인 체포를 부탁받은 조는 파트너 쿼리치와 함께 막사로 향했다. 다음날, 강도를 막기 위해 여섯 명이 뭉쳐 떠났던 인부들이 강도를 당했다며 돌아 오는데...

탐정 노벰버 조 시리즈 단편. 깊은 산을 무대로 벌목꾼이라는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입니다.

전개 방식은 셜록 홈즈와 동일합니다. 주어진 단서를 통해 귀납적 추리를 펼쳐 범인을 잡아내니까요. 여섯 명 벌목꾼이 차를 마셨던 주전자를 깨끗이 씻은 행동 등 보통 사람은 생각하기 힘든 사소한 일이 단서가 된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이 마신 차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었고, 그걸 숨기기 위해 주전자를 씻은 거지요.

그러나 자질구레한 단서가 범인을 드러내는건 아닙니다. 범인을 드러내는건 돈을 숨겨 놓았을 막사를 해체한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 덕분이거든요. 이에 놀란 범인을 현장에서 잡는게 전부입니다. 차에 수면제가 들어있던건 분명해서, 그걸 씻으나 안 씻으나 별 차이가 없었고, 범인이 특정 시간에 개울가에서 무슨 짓을 했건 별로 중요한 단서가 아니에요.

결론적으로 완성도는 그닥이었습니다. 셜록 홈즈 흉내를 내고는 있지만, 그 수준은 한참 미치지 못했어요. 벌목꾼이라는 직업이 유용하게 사용돼지도 못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부여한 가치도 역사적 중요성과 초판본 희귀성 뿐입니다. 엘러리 퀸도 '오지 탐정' 이라는 개념 도입만 높이 평가한 셈입니다.

<<유령 저택의 비밀>>
"잘 생각해보게.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말이지. 또한 거기에 덧붙여 이 단 하나의 발자국까지 잘 생각해보게 뭔가 번쩍하고 해답 같은 게 떠오르지 않나?"

심령학에 정통한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가 등장하는 단편. 심령 현상도 과학과 추리로 풀어낸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통해 그가 나병에 걸렸다는걸 추리해 내는 과정도 합리적이었고요. 

그러나 진짜 유령이 나온거라는 결말 만큼은 영 별로네요. 이 정도까지 추리로 풀어내었다면, 사람이 꾸민거라는 진상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아이디어는 좋고, 추리도 볼만하지만 앞서 설명드렸듯 진상, 결말 때문에 감점합니다.

<<레이커 실종 사건>>
은행에서 수금을 담당하던 사원 레이커가 실종되었다. 그는 1만 5천 파운드를 지닌 채였다. 경찰은 그가 돈을 가지고 도주한걸로 판단했지만, 마틴 휴잇은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다.

사립탐정 마틴 휴잇 (휴이트) 시리즈 단편. 셜록 홈즈 시리즈가 연재된 스트랜드 매거진 출신 탐정입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명이지요. 그래서인지, 작품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탐정이 사건을 조사하여 추리
한 뒤, 경찰과 다른 결론을 내린다는 내용.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추리한 결과가 의외라는 전개 등이 그러합니다.

추리적으로는 꽤 괜찮았습니다. 수금할 때 레이커를 제대로 바라본 은행 직원은 거의 없었다, 은행 중 한 곳은 입구가 수리 중이었다는 수금 당시 정황, 그리고 레이커가 파리행 표를 살 때 본명을 댔고, 독특한 우산만 채링크로스 역에 남겨졌다는 도주 정황을 통해 마틴 휴잇은 수금을 한 레이커는 변장한 가짜라고 추리하거든요. 합리적이지요. 발표 당시에는 의외성있는 반전이었을 테고요.

하지만 마틴 휴잇이 진범을 알아내는건 작위적이었습니다. 레이커 이름이 적힌 우산 속 광고지가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광고지만 없었더라도, 이 범행은 완전 범죄가 되었을거에요.
광고 내용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범인들에게 진범이 자기 집으로 오라고 광고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지요. 최소한 암호 정도는 써 줬어야 합니다. 이럴 거라면 마틴 휴잇이 구태여 발품을 팔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신문 광고란 속 수상한 광고만 보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마틴 휴잇 캐릭터도 문제네요. 유명세에 비하면 별다른 매력은 없기 때문이에요. 이름만 바꾸면 셜록 홈즈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전형적이더라고요. 후대에 그나마 이름을 남긴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은 다들 차별화된 특징들이 있었지요. 도둑인 뤼뺑을 비롯해서 장님인 맥스 캐러도스, 이름도 모르고 정체도 모르는 안락의자 탐정 구석의 노인, 멋드러진 별명만큼은 길이 남은 밴 듀슨 (반 두젠), 법의학 탐정의 시조인 손다이크 박사처럼요.
물론 독특하다고 해서 역사에 길이 남는건 아닙니다. 아마추어 괴도 탐정 래플스처럼 지금은 잊혀진 존재도 허다하죠. 그러나 이는 작품 수준이 기대 이하였던 탓입니다. 마틴 휴잇 시리즈는 추리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던 만큼, 마틴 휴잇만의 개성과 매력을 더하지 못한게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셜록 홈즈 스타일을 잘 따르고 있는,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이야기지만 단점이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바다 건너온 살인자>>
로프터스 디컨 씨가 자택의 하치만 성상 아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현장은 거의 밀실이었다.
다음날 아침, 고인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헨리 콜슨 씨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에게 사건을 의뢰했고 둘은 함께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서 헨리 콜슨 씨는 고인이 애지중지했던 '마사무네 검'이 사라졌다는걸 알아챘다. 그 검은 일본인 게이고 가나마로가 되찾기 위해 부탁과 협박을 반복했던 과거가 있었다. 가나마로는 원래 검의 소유주 아들로, 아버지 영전에 검을 바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헨리 콜슨 씨는 게이고 가나마로가 일본으로 돌아갈 표를 예약했다는걸 알아내는데...

아서 모리슨이 쓴 단편인데 의외로 마틴 휴잇 시리즈가 아니네요. 내용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로, 마틴 휴잇이 등장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겁니다. 등장하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이 마틴 휴잇, 셜록 홈즈와 구분되는 특별한 매력이나 특기, 특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볼만 했습니다. 추리가 진행되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단서도 공정한 편이거든요. 약간의 범인 심리 분석도 눈길을 끄는 요소였고요.
디컨 씨는 외출했다가 급한 용무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집 안에 있었던 누군가가 범인이었을테고요.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왔을까요? 경찰은 침실 창문을 주목했지만, 도링턴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침실 창문으로 들어왔다면, 디컨 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침실로 향했을테고, 그곳에서 범행이 일어났을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이유였지요.
그리고 도링턴은 하치만 성상이 집에 들어온 날 범행이 일어났고, 성상이 원래 있던 상점에서 물건이 없어지고 부서진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통해 '하치만 성상 안에 누군가 숨어서 잠입했다'고 추리하지요.
물건 안에 범인이 숨는 이야기는 많을테지만, 이 정도면 꽤 설득력있는 이야기였다 생각되네요. 범인 카스트로를 특정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볼 만 했습니다.

게이고 가나마로를 유력한 용의자로 등장시킨 전개도 좋습니다. 앞서 피해자가 집착했다는 마사무네 검과 보라빛 옻칠 세공품 소개를 통해 가나마로가 한 말 - 큰 돈을 들여서 겨우 검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의미 - 의 뜻이 드러나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 외에 여러가지 일본 물품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 했습니다.

물론 하치만 성상 무게에 대해 좀 대충 넘어가고 있기는 합니다. 사람 한 명 무게가 추가되었다면 이상함을 느끼는게 당연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범행을 저지른 카스트로가 다시 성상에 숨은 뒤 몰래 빠져나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한 몫 잡아서 도주 자금을 마련하는게 상식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단점은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빼어난 점이 분명 있고요. 탐정이 조금만 더 매력적이었다면 역사에 남을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날 밤의 도둑>>
프로비던트 은행 지점장 아일랜드가 텅빈 금고를 보고 혼절한다. 그런데 경비원 제임스 페어베언은 전날 밤, 지점장 아내인 아일랜드 부인이 지점장실을 향해 남편을 부르는걸 목격했다. 아일랜드 부인은 그 사실을 부정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지점장이 지점장실 문을 통해 금고로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건강을 회복한 뒤, 범행 시간에 있었던 완벽한 알리바이를 입증한다. 그리고 그의 재산 상태는 완벽해서 금고 돈을 훔칠 필요가 없다는게 드러나는데...


'구석의 노인' 단편. 이 시리즈는 좋아하고 시리즈도 여러 편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낯서네요. 이전 다른 단편집 수록작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다른 단편집에서 빠진게 이해가 되더군요. 단순하고 뻔했거든요. 재미없고 지루했습니다. '지점장은 범인이 아니다', '지점장 아내는 거짓말을 해가며 누군가를 감싸주려 한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결론은 쉽게 추리할 수 있어요. 범인은 바로 아일랜드 지점장의 아들이었던 거지요. 아들이 사건 발생 후 은행을 바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도 이 추리를 뒷받침하고요.
이 정도 사건을 구석의 노인에게 의지하는 버튼 양은 너무 무능력한게 아닌가 싶네요. 경찰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좋아하는 시리즈의 미번역 초역을 읽어보았다는 의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었습니다.

<<대리 살인>>
작가는 M.M 보드킨입니다. 작가는 영국에서 판사까지 역임했던 법조인이었다네요. 그래서인지, 클라이막스는 법정 공방이더군요. 정식 법정은 아니고, 검시이긴 합니다만 배심원이 배석하고, 변호사가 반대 심문을 하는 등 정식 법정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법정 미스터리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밀실에서 구식 전장총이 발사된 장치 트릭입니다. 물병을 돋보기처럼 쓴 게 진상이고요. 엉클 애브너 시리즈인 <<둠도프 사건>>으로 익숙한 트릭이지요. 엉클 애브너는 1918년 발표되었으니 이 작품이 원조일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작가 보드킨과 탐정 폴 벡이 포스트와 명탐정 엉클 애브너만큼 알려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원조로서의 영광은 커녕, 잊혀져 버린거지요.

그러나 읽어보니 잊혀진 이유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소설 완성도가 별로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쓸데없는 묘사가 많고 장황합니다. 에릭 네빌이 정원으로 나가 복숭아를 먹는 묘사가 2페이지에 걸쳐 설명될 이유는 없어요. 그에 비해 추리적인 부분, 트릭은 대충 넘어가는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에릭 네빌이 압박에 못 이겨 자백하고 쓰러진다는 결말은 최악이었어요. 트릭이 간파되었다 하더라도, 실수인지 살의가 있었는지 증명하는건 쉽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에릭 네빌이 정말로 목이 말라서 물병을 그곳에 놓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엉클 에브너 시리즈가 훨씬 좋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