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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1

비틀거리는 소 - 아이바 히데오 / 최고은 : 별점 2.5점

 

비틀거리는 소 - 6점
아이바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가와 신이치 형사는 미해결 사건인 나카노 역 앞 선술집 강도 사건 수사를 맡았다. 그는 수사를 진행하면서, 외국인이 금품을 노린 강도 살인 사건이 아니라, 두 명의 피해자를 노린 계획 살인 사건이라는걸 알아 내었다. 그리고 범인이 도주할 때 사용했던 차량 소유주를 알아내고, 소유주 아베 사나에의 정부인 가시와기 노부토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시와기 노부토모는 유통 재벌 옥스 마트의 후계자로, 수사에 대한 여러가지 압력이 들어왔다. 그래도 다가와 형사는 상사 미야타 과장의 지지를 받아 노부토모를 체포하기 위한 증거를 모아 나가는데....

'현대 사회의 폐부를 날카롭게 찌르는 궁극의 사회파 미스터리!'라며 마쓰모토 세이초를 소환하는 소갯글에 흥미가 끌렸었습니다. 그런데 엘릭시르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네요. 좋은 책을 선사해주신 엘릭시르 담당자분들께 우선 감사드립니다.

<<미스터리 사전>>에 따르면, '사회파 미스터리'는 사회 제도의 모순이나 심각한 사회 문제를 사건, 트릭보다 더 자세하게 묘사한 미스터리 작품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정의에 동의할 수는 없어요. '미스터리' 이기 때문에 사회 문제만 그리는건 적절하지 않지요. 제가 읽어왔던 다른 걸작 사회파 미스터리물 모두 사회 문제는 사건과 엮어 은근하게 드러납니다. <<화차>>에서의 사채와 개인 파산, <<도끼>>에서의 실업 문제, <<제로의 촛점>>에서의 전후 양공주 문제, <<천사의 나이프>>의 소년 범죄 문제, <<붉은 손가락>>의 치매 노인 문제 등이 그러합니다. 여러가지 사회 문제들이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걸맞게, 사건에 녹여져 있는 거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사회 문제 따로, 사건 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사회 문제를 사건, 이야기에 잘 녹여냈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이래서야 '사회파'일 수는 있지만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부족합니다.

옥스 마트가 지역 상권, 공동체를 집어 삼키는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가 대표적입니다. 이는 다가와 형사가 지방으로 탐문 수사를 가서 유령 상가를 보고 느끼는 감정들, 쓰루타 기자가 쓴 기사 등을 통해 자세히 그려집니다. 띠지에서도 소개될 정도로요. 그러나 옥스 마트가 무슨 로비를 해서 지방 도시에 출점을 했건, 임대 매장이 매상 부진에 시달리건 말건, 모두 곁가지 이야기에요. 선술집 살인 사건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옥스 마트 관계자를 악역으로 설정하는 역할 말고는 하는게 없어요.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지역 상점가가 무너진걸 옥스 마트 탓으로 돌리는 시선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터넷 쇼핑몰이 활성화 된다면? 어차피 모두 사양 산업입니다. 옥스 마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이유는 없어요.
식품 안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조금 더 와 닿기는 했습니다. '싸고 좋은 음식은 없다'는 주장으로, 남의 이야기같지 않아서 공감이 갔습니다. 이를 위해 '걸레'라고 부르는 햄버거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소개도 큰 도움이 되었고요. 하지만 사건과 별 상관이 없다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이유로 사회 문제를 작품안에서 드러내는 역할인 쓰루타 기자 역시 선술집 살인 사건만 놓고 본다면 불필요했습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는 사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등장시킨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그녀가 잘 나가던 언론사를 그만두고 인터넷 매체에서 옥스 마트를 공격하는 기사를 쓴 원인이 되었다는 가정사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으며, 캐릭터도 전형적이라 별다른 매력을 느기기 어려웠고요.

그렇다면 사건 이야기는 재미있느냐? 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애초에 선술집 강도 사건이 미궁에 빠진건 초동 수사가 잘못된 탓이거든요. 대단한 수수께끼가 있는게 아니에요. 약간의 수사만으로 강도가 아니라 수의사와 산업 폐기물 처리 업자를 노린 계획 살인이라는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피해자인 수의사와 산업 폐기물 처리 업자를 '소'와 연결하면 '광우병'과 관련된 범죄라는건 쉽게 떠올릴 수 있고요. (제목이 스포일러이기도 합니다) 이를 대단한 수수께끼가 있는 것 처럼 포장하는건 무리였습니다. 이 모든건 탐문 수사로 단서가 드러나기에 추리의 여지도 없습니다.
범인이 가시와키 노부토모라는 것도 큰 문제라 생각됩니다. 거대 유통 기업 총수 아들이 직접 2명이나 죽이는 범행을 저지른다는건, 그것도 개인적인 약점이 아니라 회사에 닥칠 위기를 막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건 영 와 닿지 않았거든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이마트 후계자 쯤 되는 인물인데 말이지요. 입을 막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겁니다. 최소한 돈으로 회유하려는 시도부터 먼저 해 보았어야죠. 회사의 온갖 궂은 일은 도맡아 하는 다키자와라는 인물도 존재하기 때문에 직접 나설 이유도 없고요. 중간부터 노부토모가 진범임을 확신하고 수사를 펼치는 형사들 모습도 잘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범행 수법도 어설픕니다. 심지어 도주할 때 자기 차를 썼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요. 초동 수사가 지나칠 정도로 미비해서 잘 빠져나갔을 뿐으로 피해자 중 한 명이라도 살아남았다던가, 경찰에서 처음부터 다가와 형사같이 접근했더라면 2년 전에 이미 구속되었을 겁니다. 별다른 증거가 없는데, '역수'로 칼을 잡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백을 이끌어내는 장면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고요. 한마디로, 추리적으로는 딱히 볼만한 부분이 없었어요.
마지막에 미야타 과장이 옥스 마트와 결탁하여, 사건을 치정 살인 사건으로 축소, 은폐하는 모습도 개인적으로는 불필요했다 생각되네요. 이럴 바에야 처음부터 다가와에게 수사를 맡기지 않았으면 되잖아요? 이를 묵인하면서 뒤로 진상을 폭로하려는 다가와 형사의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수사 과정에 대한 묘사 만큼은 좋았거든요. 특히 끈기있는 탐문 수사가 장기라는 다가와 신이치 형사의 수사는 아주 매력적입니다. '프렌치 경감'을 연상케하는, 우직하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수사 대상과 인간적인 친분을 먼저 쌓고, 항상 메모를 한다는 디테일도 잘 살아 있고요. 광우병이 연결 고리라는걸 너무 늦게 파악하는 등 추리력은 딱히 없어 보이지만요.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도 재미가 없지는 않아요. 한번 정도는 곱씹어볼만한 좋은 이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사회파 미스터리'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을 좀 더 미스터리에 밀결합하여 전개했어야 했습니다. 술집 강도 사건 수사는 이 작품 분량의 절반이면 충분했을거에요. 피해자 아카마 유아, 니시노 마모루와 '소', 그리고 범인 가시와키 노부토모를 연결하는 연결 고리를 찾는 과정은 실제로 그 정도 분량에 그치니까요. 또 광우병은 후반부에 급작스럽게 등장하는데, 딱히 문제로 제기되지도 않습니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부산물을 불법적으로 섞어서 식품을 제조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언급은 등장하지 않거든요. '사회파 + 미스터리'가 아니라 '사회파 | 미스터리'인 셈이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다가와 신이치 형사는 마음에 들은 만큼, 다른 작품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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