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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1

펜슬 퍼펙트 - 캐롤라인 위버 지음, 오리아나 펜윅 그림 / 이지영 : 별점 4점

 

펜슬 퍼펙트 - 8점
캐롤라인 위버 지음, 오리아나 펜윅 그림, 이지영 옮김/A9Press

연필이 만들어지고,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알려주는 미시사문화사 서적. 광물 흑연이 발견된 뒤, 필기 재료로 팔리다가 점차 나무 사이에 흑연 기둥을 넣는 필기구로 진화하고, 흑연 심과 제조 공법에 여러가지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가 도입되어 현대 연필로 발전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조 공법, 연필 등급, 주목할만한 인물과 회사, 회사별 주요 제품에 대한 설명은 물론, 2차 대전으로 재료가 부족했을 때 탄생한 플라스틱 연필, 또 복사용 연필과 컴퓨터용 연필, 향기 나는 연필, 더 나아가 '노벨티 연필' 이라고 불리우는 독특한 연필까지 망라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연필 광고, 연필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지우개, 연필에서 지우개를 고정하는 페럴까지 빼 놓지 않고 소개되고요.
연필로 그려진 우아하고 섬세한 일러스트는 소장 가치를 더해 주네요.

몇가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소개해드리자면, 우선 흑연이 발견되어 광물로 값어치를 갖게 된 1560년대부터 이미 '필기 재료'로 팔렸다고 합니다. 태생부터가 필기구인 셈이지요. 1600년대에는 끈으로 감싸서 사용하는 초기형 연필이 등장했다니 그 역사가 실로 깊네요.

미국 연필 산업 부분 소개를 통해 <<월든>>으로 이름을 날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원래 연필 산업에 종사했다는걸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존 소로와 연필을 만들기 시작한 헨리 데이비드는 독일 연필들을 연구한 끝에, 당대 미국에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흑연 심과 연필을 만들어 내었다고 합니다. 독일산 연필이 시장을 점령했고, 자신이 만든 기술을 극비로 하여 특허를 내지 않았기에 결국 연필 산업에서 손을 떼게 되었지만, 이 책 저자 표현에 따르면 그는 미국 최초의 연필 혁신가, 즉 "펜슬 히어로"라고 불리워야 한답니다.

그리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존 스타인백 등 유명 문필가들이 사랑한 연필인 블랙 윙 602는 그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왜 그들이 사랑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이 책을 통해서 드디어 알 수 있었습니다. 블랙 윙 602에는 연필심에 왁스가 다소 많이 첨가되었고, 흑연은 더 많이, 점토는 더 적게 함유되었기 때문이라네요. 그래서 4B연필 처럼 쓰이지만 독특하게 미끄러지고, 똑같은 흔적을 남기기 위해 다른 연필에 비해 힘이 반만 들어가서 더 빨리 쓸 수 있었던게 인기의 비결이었던 거지요. 이 특성 덕분에 문필가들 뿐 아니라 월트 디즈니와 애니메이터들 역시 블랙 윙을 애호했고요.
1988년, 블랙 윙을 만드는 에버하르트 파버사가 파버-카스텔에 인수된 뒤 블랙 윙 생산이 중단되었는데, 2010년 팔로미노사가 블랙 윙을 부활시켜 정식으로 출시했다니 다행입니다. 연필심은 동일하지는 않지만 꽤 비슷하다니, 저도 한 번 기회가 되면 써 보고 싶네요. 정말 "힘은 반으로, 속도는 두 배로" 쓸 수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반 쯤은 농담같았던 <<연필 깎기의 정석>>의 저자 데이비드 리스가 온라인에서 공인된 연필 깎는 장인으로, 최근까지 연필 한 자루에 40달러씩 받고 연필을 깎아주었다는 이야기에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건 농담이 아니라 거의 사기가 아닌가 싶거든요. 이 책에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시시하고 사소한 일에 대한 헌신'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고 칭송하는데, 이렇게까지 포장할 일인지는 아닌듯한데 말이지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하여튼, 재미도 있고 소장 가치도 있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조금 두서없는 설명도 얼마간 있고, 개인적으로는 불필요하다 싶은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별점 4점은 충분합니다. 2만원이라는 가격은 제법 센 편이지만 그 정도 값어치는 있어요. 연필의 역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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