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순례 - 유홍준 지음/눌와 |
우리 옛 그림, 글씨와 궁중미술 중 주목할만한 일품에 대해 소개하는 책. 그림이 책의 중심으로 총 32점이 조선 전기, 중기, 후기로 나뉘어 설명되며, 뒤이어 글씨 9점과 궁중미술 8점에 대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그림에 대한 소개만은 아닙니다. 작가 및 작가 관련 일화, 그림이 그려진 상황 및 시대 배경 등도 함께 평가하고 소개해주고 있지요.
제일 큰 장점은 시각적인 만족감, 그리고 읽기 쉽다는 점이었습니다. 시각적인 만족감은 도판이 화려하고 인쇄질이 좋은 덕입니다. 읽기 쉬운건 유홍준 교수의 쉽고 편안한 글 솜씨와 짤막한 분량 덕이고요. 이야기 한 편 당 4~5페이지 분량밖에 안 되거든요. 하루에 조금씩 읽다보니 금방 읽게 되더라고요.
시대별로 대표작가와 대표작들이 소개되는, 일종의 연대기 식 구성이라는 점도 좋았습니다. 조선 서화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었으니까요. 잘 몰랐던 대가와 작품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요. 수월헌 임희지가 그린 난초, 몽인 정학교가 그린 괴석 그림들은 지금 보아도 가히 일품이라 할 만 하더군요.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오원 장승업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저는 솔직히 조선 문인화가 왜 좋은지 잘 모릅니다. 선비들이 그림을 그리는건, 글씨와 어우러질 때만 뭔가 있어보이지, 그림만 놓고 보았을 때 그 결과물이 대단한 감동을 주는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 속 오원 장승업 소개를 보니, 환재 박규수라는 분 생각이 저와 같더군요. 문인화가 극에 달한 탓에 아마추어리즘이 가득해져버렸다고요. 그래서 추사 이후 주눅들어있던 전문 화원들에게 '직업 화가라면 프로 의식을 찾으라!'고 호소했고, 이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서 나타난게 오원 장승업이라고 합니다. 요약하자면, 선비라는 한량들이 얼척없는 그림을 서로 돌려보며 뭔가 있어보이는 듯 자화자찬하던 상황에서, "진짜 프로는 이런거다!"라며 튀어나와 그들을 압살해버린 겁니다. 심지어 장승업은 일자무식이었다고 하는데에도 그림 하나로 당대를 평정했다니 그 실력은 두 말할 필요 없지요. 소개된 <<수리>>와 <<고양이>> 그림은 이를 잘 증명해주는 걸작이었습니다.
또 16세기 함경도 기생 홍랑이 임과 헤어지면서 쓴, 아주 오래전 교과서에서 보았던 "묏버들 가려 꺽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라는 시조를 직접 한글로 쓴 '절유시'는 글씨가 너무 예뻐서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이 시조가 아직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러나 만약 수록되어 있다면, 홍랑이 직접 쓴 이 서예 작품도 함께 실어주면 참 좋을 듯 합니다. 학생들에게 우리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려줄 수 있을거에요.
물론 새로운 내용, 작품, 작가만 소개된건 아닙니다. 당연히 신사임당,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표암 강세황 등등 일찌기 잘 알고 있던 대가와 명작들도 함께 소개되고 있지요. 조선 서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가와 작품들이라 어쩔 수 없었을거에요.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좋은 책입니다. 편집과 디자인도 완벽한 수준이고요. 이런 책을 소장하지 않으면 무슨 책을 소장하겠습니까. 별점은 5점입니다.
그런데 자료를 찾다보니, 제가 구입한 책은 2013년 초판 2쇄 버젼인데, 지금은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시리즈 두번째 권으로 표지까지 바뀌어서 재출간되었네요. 제가 예전에 구입했던 <<국보순례>>도 이 시리즈에 포함되어 재출간되었고요. 이럴거면 처음부터 시리즈로 출간하는게 좋았을텐데 말이죠. 가격을 올리려는 꼼수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