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관의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지현 옮김/황금가지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팍하고 성미 급한 성격을 가진 프로더로 대령은 조용한 마을 세인트 메리 미드의 골칫거리이다. 그의 딸이 수영복 차림으로 화가의 모델이 된 일로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는 대령을 보고, 교구 목사는 무심히 중얼거린다. "누군가 프로더로 대령을 죽인다면, 세상에 더없이 이로운 일을 하게 되는 셈일 거야." 예언이 들어맞은 것처럼 며칠 후 총에 맞아 사망한 대령의 시신이 목사관 연구실에서 발견되는데... (출판사 소개 책 소개 인용)
추리소설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이 쓴 미스 마플 시리즈 첫 장편이기 때문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공략>>이 부여한 별점은 3점이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나오지도 않고, 두드러지게 괴상한 인물이 등장하지도 않고, 무대가 특색이 있지도 않은 후더닛 물이며, 무료한 작품'이라고 평하고 있지요.
그런데 무료하지는 않았어요. 프로더로 대령 살인 사건이라는 핵심 사건 외에도, 고고학자 스톤 박사가 사기꾼 도둑이었고, 그 누구도 정체를 모르는 귀부인 레스트랭 부인이 프로더로 대령을 협박했었으며, 마을에 소문을 이야기하는걸 즐기는 프라이스 리들리 부인에게 걸려온 협박 전화가 걸려오는 등 여러가지 사건이 곁가지로 잘 배치되어 있었거든요.
시리즈 첫 작품다운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취미로 인간의 품성에 대해 연구하고, 세인트 메리 미드 마을에서 연구한 인간 품성을 다른 큰 사건에 대입시킨다는 미스 마플의 추리법도 처음으로 설명되고 있어요. 마을에서 있었던 사건들이 이 사건과 맞아 떨어지는 과정은 기가 막혔습니다. 이런 부분은 후대 미스 마플 시리즈에서는 보기 힘들죠.
그러나 의외로 추리적인 부분이 함량 미달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미스 마플의 목격 증언입니다. 그녀는 유력한 용의자인 프로더로 부인과 상간남 로렌스 레딩이 각각 화실로 들어가서, 살인 시각에 나오지 않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진범은 둘이었습니다! 먼저 온 로렌스 레딩이 현장 근처에 총을 숨겼고, 뒤이어 나타난 앤 프로더로가 목사관 서재에 앉아있는 남편을 쏜 뒤 화실로 향했다는게 진상이에요.
미스 마플이 직접 '둘은 화실로 바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계속 지켜보았는데 이게 가능했을까요? 가능했다면, 그 이유와 방법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은 덧붙여져 있어야 했어요.
범행 당시 소음기를 사용했다는걸 대충 넘기는 전개도 영 납득이 가지 않고요.
로렌스 레딩이 벌인 여러가지 공작도 어설픕니다. 우선, 프로더로 대령이 살해당한건 6시 20분 경으로 밝혀집니다. 검시 의견부터가 명확하니까요. 검시의가 용의자 중 한 명이라 검시 의견은 무시한다 쳐도, 7시에 귀가한 클레멘트 목사가 시체를 만졌을 때 이미 차가와져 있었다고 언급했었죠. 즉, 레딩이 애써 만든 메모와 멈춰진 시계를 통한 조작은 별 의미가 없었던 셈입니다.
숲에서 총성이 들리게 만든 조작도 무의미했던건 마찬가지입니다. 미스 마플이 한 증언이 없었다면, 숲에서 총성이 들리건말건 앤 프로더로가 혐의를 벗는건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호즈 부목사를 진범처럼 위장하려 한 방법도 억지스럽습니다. 부목사가 황령을 저질렀다고 클레멘트 목사에게 고백하기 전에 그를 처치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간 과정이 너무 길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 문제가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덧붙이자면, 목사라는 직업이 정말로 '성직'이라는걸 느꼈습니다. 세인트 메리 미드에는 혐오스러운 인간들이 너무 많이 살거든요. 이들과 어울리며 사는건 정말로 힘든 일로 보였어요. 부목사 호즈가 헌금을 횡령할 생각을 한건 무리가 아닙니다. 그는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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