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고주영 옮김/황매(푸른바람)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45년, 전쟁 막바지에 아버지 요양차 지방 친척집으로 향하게 된 중학생 마스미는, 호감이 있던 슈이치에게 직접 만든 선물을 전해주고 작별을 고한다. 슈이치와 마음이 통한걸 느꼈지만, 슈이치는 폭격으로 죽고 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린이 책을 만드는 직장인이 된 마스미는 초등학교 졸업반 무라카미와 친해진다. 그리고 그가 슈이치의 환생이라는걸 알게 되는데...
일상계 미스터리인 '엔시 씨와 나'로 유명한 기타무라 가오루의 '시간과 사람' 3부작 중 한 편. 예전 미스테리아 8호에 수록되었던 요네자와 호노부 특집에서 요네자와 호노부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책으로 꼽았던 책입니다. 기타무라 가오루를 좋아하기도 하고, 요네자와 호노부 역시 좋아하는 작가라 기억에 담아 두었다가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작품 장르는 생각과는 다르게 윤회전생 멜로물이더군요. 그런데 핵심인 윤회전생은 초능력이나 특정 장치, 장소와 같은 방법이라던가, 우연한 자연 현상이나 사고와 같은 계기가 없는, 그야말로 단순한 윤회전생입니다. 다시 태어난 연인이 원래의 사랑을 발견하는 과정도 우연에 불과하고요. 이런 부분들에서 약간이나마 추리적 요소를 기대했지만 찾아보기 힘듭니다.
내용도 윤회전생 멜로물이라면 누구나 떠올릴법한, 수천 수만가지 비슷한 콘텐츠와 비슷합니다. 어린 중학생 청춘 남녀가 사랑에 빠지지만, 남자가 전쟁통에 폭격으로 죽고 여자는 결혼하지 않은 채 직장인으로 지낸다, 그러다가 환생하여 중학생이 된 남자를 다시 만난다, 그러나 여자는 사고로 죽고 다시 환생한다, 그리고 다시 만나 결혼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래도 차별화 요소를 찾아 본다면, 우선 슈이치가 마스미가 만나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교감한게 '2차 대전'이라는건 독특했습니다. 마스미와 주변 지인들 모두 유복한 가정이고, 사는 동네도 부촌이라는 설정이라 2차 대전에서 일본이 극에 몰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여유있고, 공포와 두려움은 찾아보기 힘든 묘사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무대로 한 작품들 중에서는 돋보일 정도로 색다른 분위기였어요. 이런 분위기는 작 중, 공습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커피에 설탕을 곁들여 먹는다는 묘사라던가, 마스미 지인 중에서 전쟁 때문에 죽는건 슈이치 말고는 징집된 친구 유코 오빠 밖에는 없다는 걸로 잘 드러닙니다.
그리고 1, 2부 구성으로 1부는 마스미, 2부는 환생한 슈이치인 무라카미 가즈히코 시점으로 전개된다는건 다른 윤회전생이라 시공간 초월 멜로물과 유사하지만, 성인, 아니 중년 이상 나이가 된 무라카미가 자신이 어린 시절 썼던 일기를 토대로 자식들에게 녹음한 테이프를 전달한다는 2부 구성은 색다른 맛이 있더군요. 당대 분위기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압권이었고요. 아마 저자 본인이 1949년 생이라 직접 경험해 보았던 덕분이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어린 시절 마스미와 슈이치가 공유했던 기억이, 슈이치가 환생한 무라카미와 마스미, 그리고 무라카미와 마스미가 환생한 마이코가 서로 인연임을 공유하는 방아쇠 중 하나가 ''책" 이라는게 가장 독특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던 부분입니다. 이야기 서두에서 갓 알게된 마스미에게 슈이치는 사펠 여사가 쓴 <<사랑의 가족>>이라는 책을 빌려 줍니다. '사자 자리 유성균'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한 게 이유였지요. 그리고 성장하여 중학생이 된 뒤, 전쟁 탓에 비행기 공장에서 일하는 마스미에게 슈이치는 기노시타 유지가 쓴 시집 <<전원의 식탁>>을 빌려 줍니다. 두랄루민이 비행기 제조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두랄루민이 언급된 시가 있는 시집을 빌려준거지요. 그리고 그 시집에는 '텐 예다 프뤼링 핫 누아 아이넨 마이'라는 슈이치가 쓴 메모가 꽂혀 있었습니다. <<춤추는 회의>>라는 독일 영화 속 주제가로 '그래도 5월은 한 번 밖에 오지 않겠지'라는 뜻이었습니다. 5월이 생일인 마스미에게 자신의 마음을 함께 담아 전하는, 애틋한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슈이치가 환생한 무라카미에게 마스미는 기노시타 유지가 쓴 <<아동 시집>>을, 그 뒤 무라카미가 입원했을 때 <<사랑의 가족>>을 빌려주게 됩니다. 마지막에 무라카미 가즈히코와 마스미가 환생한 마치코가 만나게 된 건, '텐 예다 프뤼링...'을 무라카미가 부르다가, 그 노래에 마치코가 가능하여 달려나온게 인연이 되고요.
그 외에 여러가지 책들에 대한 소개도 재미있으며, 사소한 단서들을 쌓아 올려 환생과 재회에 이용한건 추리 작가다운 솜씨라 생각되어 좋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한 이야기라는건 어쩔 수 없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작품이 발표된 2001년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권해드릴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