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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3

시계와 문명 -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 / 최파일 : 별점 3점

시계와 문명 - 6점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 지음, 최파일 옮김/미지북스

부제는 '1300~1700년, 유럽의 시계는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일종의 미시사문화사 서적인데 이전 <<해상 시계>>에서 느꼈던 지적인 충만감을 얻을 수 있는 책으로 기대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우선 좋았던 부분부터 말씀드리자면, 흥미롭다는건 분명합니다. 유럽에서 기계식 시계의 개발이 시작된건, 도시 문화의 발전과 연관되어 있다는 도입부부터 말이지요. '종'을 울리는게 굉장히 중요했었던 당시 시대 문화가 결국 효율적으로 종을 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로 이어져, 그 결과 도시와 수도원에 '시계탑'이 설치되기 시작했다는 흐름인데 굉장히 그럴싸합니다. <<노틀담의 꼽추>>도 종을 치는게 주 업무였잖아요? 이를 정확한 기계로 대치하고자 한 건 풍차 등으로 기계적인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당시 분위기와 충분히 맞아 떨어집니다. 도시마다 경쟁적으로 '아름다운', 혹은 '놀랍고 기묘한' 시계를 장치하고자 한 것도 국가의 발전보다 '도시'의 발전이 더 에너지가 넘쳤던 시대 상황에 따른 것이고요.

그리고 이후 16세기를 지나면서 '수공업자' 들 중 시계공이라는 직업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원래 이들은 대장장이에서 시작되었지만 시계가 가정용, 휴대용으로 널리 확산되면서 독자적인 직업군을 이루게 되었다는, 시계공이라는 직업 자체의 역사적 흐름도 흥미롭습니다. 여러 도시들이 시계 산업을 시작하지만 결국 시계 산업을 주도한 곳은 영국과 파리, 그리고 제네바였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시계 산업은 '시계공의 유입'과 관계가 깊었다네요. 제네바의 경우는 종교 개혁으로 특정 시기에 전 유럽에서 많은 시계공 유입이 벌어졌고, 영국 런던도 마찬가지로 외국 이주 숙련공이 정착한게 시계 산업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하거든요. 특정 직업군 장인들이 모여 산업을 일으키고, 그게 현대까지 이어진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프랑스는 종교 개혁 당시 시계공이 유출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불사조처럼 부활하여 18세기에는 시계 산업 세 축의 하나가 되었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다는데, 이유가 무척 궁금해집니다.
아울러 시계 자체의 역사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최초 '탈진기'에서 시작된 기계식 시계가 언제 조절장치로 폴리옷 대신 진자를 도입하였으며, 그래서 어떻게 고정밀 기기가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잘 짚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된 도판, 부록에서 설명해주는 시계의 원리와 진화 과정, 주석도 모두 완벽한 수준입니다.

이렇게 앞 부분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시계 발전 과정 설명을 마친 뒤, 동양, 특히 중국에 기계식 시계가 도입된 과정을 설명해주는데 이 역시 아주 재미있더군요. 저 개인적으로는 유럽의 시계사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항상 궁금했던, "서양과 양산된 생산물의 수준에서 전혀 뒤지지 않았던 중국이 왜 시계, 그리고 총기류는 자체 개발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해주는 내용이기도 했거든요.
저자는 이에 대해 '중국의 정치 및 관료 체제가 문제였다, 전통적으로 수공업자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다, 무역이 가능했던 대도시 외 대부분 지역 주민들은 외부와 고립되어 서양 신문물에 대해 알지 못했다' 등 여러가지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중국이 유럽의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발전시키는걸 당연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라는 겁니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좀 허무하네요.

여기까지만 보면 굉장히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높은 책이라 생각되지요?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프롤로그와 주석을 제외하면 100여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라는 점입니다.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담고 있는 내용도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아쉽습니다. 60여 페이지에 달하는 주석도 미주가 아니라 각주로 표기해서 본문 분량을 풍성하게, 깊이있게 만들어 주었어야 했고요.

그래도 재미있게, 흥미롭게 읽은건 분명한 만큼 별점은 3점입니다. 이런 류의 책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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