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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0

바쿠만 (2015) - 오오네 히토시 : 별점 1.5점

 

히트만화 <<바쿠만>>이 영화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별 관심없던 차에, 이용하는 '옥수수' 앱에 무료 영화로 등록되어 있어 보 되었습니다. 와이프가 애청하는 <<품위있는 그녀>>라는 막장 드라마가 방영하는 동안 눈과 귀를 잡아둘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영화는 기대를 밑돕니다. 원작에서 가장 좋았던, 여러 편집자 및 라이벌들과의 대화와 경쟁을 통해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는 부분은 거의 사라졌으며, 당연히 <<소년 점프>>의 독자 앙케이트를 통한 순위 경쟁이라는 핵심 요소 역시 제대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작을 상위 호환 각색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어설픈 코스프레로 원작 에피소드만 나열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겠죠. 
캐릭터들의 각색도 아주 심각합니다. 모리타카를 좋아하는 여자의 응원 한마디로 만화에 목숨을 거는 열혈 청춘으로 단순화 한 것은 짧은 분량의 영화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덕분에 슈진의 분량이 대폭 삭제된 것은 대표적인 실수죠. 슈진은 원작을 쓴다고는 하지만, 초반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서태지가 만화 어시스턴트를 하네?'라고 생각될 정도의 역할 밖에는 소화하고 있지 못하거든요. 하기사, 슈진 정도는 악역으로 돌변한 니즈마 에이지에 비하면 약과죠.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 건방을 떠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애초에 이런 역할은 불필요한 이야기 구조였습니다. 편집부와의 갈등을 중심축으로 그렸어야 하는데 괜히 원작의 인기 캐릭터를 끌고 들어오려고 무리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기묘한 CG와 함께 니즈마와 사이코, 슈진 컴비가 그림을 그려가며 싸우는 장면은 개중 최악이고요. 이럴거라면 두 작가 작품 속 캐릭터가 작가들을 대신해서 싸우는 식으로 화면을 꾸미는게 훨씬 보기도 좋고, 내용도 와 닿았을 것 같더군요. 

또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사이코가 병으로 쓰러진 후 친구들과 함께 연재 분량을 완성하여 개제한다는 것도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어시스턴트를 왜 안쓰는지부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이렇게 연재를 한 회 연장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기에 '우정, 노력, 승리'라는 점프 3대 키워드를 써먹기 적합한 장면도 아니었어요. 대체 누구한테, 뭘 이겼단 말입니까?

물론 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주인공과 라이벌들의 만화라던가, 만화를 그리는 부분의 디테일은 상당히 괜찮았어요. 실제로 오바타 타케시가 직접 작화를 맡은 듯한 사이코의 만화는 특히나 그럴듯 했고요. 그러나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요새 일본 영화계가 위기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와 닿는 느낌입니다.

2017/07/29

라멘의 사회생활 - 하야미즈 겐로 / 김현욱, 박현아 : 별점 3점

라멘의 사회생활 - 6점
하야미즈 겐로 지음, 김현욱.박현아 옮김/따비

라멘이 현재의 위치를 점하게 된 이유를 다양한 사회 현상과 연결하여 설명해주는 미시사-사회사 서적.

뻔한 라멘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 다루지 않고 라멘의 발전을 주변 환경, 사회의 흐름과 함께 엮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그 설명이 상당히 그럴듯하고 이치에 합당한 것은 물론이고요. 안도 모모후쿠의 '치킨 라멘'이 대세가 된 이유로 전후 극심한 식량난을 든다던가 (쌀 부족으로 인한 밀가루 음식의 발전), 전쟁 전 부터 있었던 '지나 소바', '주카 소바' 등의 명칭이 '라멘'으로 통일된 것은 닛신 식품의 텔레비전 광고 덕분이라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삿포로 미소 라멘이나 규슈 돈코츠 라멘은 모두 각자 독립적으로 발전한 음식이지만 이 역시 '라멘'이라는 명칭으로 통일된 것은 역시나 텔레비전 광고 때문이라는 것, 이러한 지역적 특산물 라멘은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관광지화 되면서 그 지역의 유명 라멘이 순식간에 퍼져 굳어진 것이라는 등 새로운 분석이 가득합니다. 안도 모모후쿠의 '치킨 라멘'이 포드의 T형과 마찬가지로 대량 생산하는 공업 제품으로 접근하여 성공했다는 시각도 독특했어요. 여기서 피터 드러커의 그것과 유사한 '데밍'의 피드백 방법론이 도입되었다는 것도 그러하고요.
<<사자에 상>>, 마쓰모토 레이지의 최초 소년지 장기 연재 출세작 <<사나이 오이동>>, 영화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등과 같은 다양한 콘텐츠, <<아사마 산장 사건>>와 같은 당대 유명 사건 등과 함께 설명하고 있어서 더욱 이해가 쉽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사자에 상>>의 경우는 무려 1948년 연재된 에피소드를 가지고 설명할 정도니 정말 대단해요.

아울러 흔하게 접했던 라멘의 유래에 대해서도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나름의 '고급' 정보들도 눈에 띕니다. 메이지 시대 중기 요코하마나 나가사키에 있는 차이나타운의 길거리 음식 '난킹 소바'로 일본에 들어온 후, 도쿄 아사쿠사의 중화요리 식당 '라이라이켄'에서 지나 소바를 처음으로 내 놓았으며, 이 때 아사쿠사 말고 다른 지역에서 지나 소바의 침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동식 포장마차 "차루메라"라고 소개하면서 에도가와 란포가 이동식 포장마차를 했다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의외네요.

이외에도 재미있는 정보가 많습니다. 나폴리탄 스파게티에 대한 설명이 그 중 인상적이었어요.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처음 만든 사람은 이리에 시게타라고 전해지는데, 그는 종전 직후에 아쓰기 비행장에 내린 더글라스 맥아더가 처음 머물렀던 요코하마의 호텔 뉴그랜드의 셰프로, 그가 미군 병사가 가져온, 스파게티에 토마토케첩을 뿌렸을 뿐인 간이 전투 식량에 피망과 햄을 넣어 이 요리를 발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미군 점령기를 지나 미국 것을 일본식으로 변형시킨 새로운 문화가 도래한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우리로 따지면 "부대찌게"라고 할 수 있겠죠?
"지역 특산물 라멘" 이야기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전통이고 뭐고 없는 음식으로, 관광지로 해당 지역이 유명해지면서 삽시간에 유명해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우리나라에도 '진주 냉면'과 같은 동일, 유사 사례가 많으니까요.

라멘이 지금과 같은, <<라면 요리왕>>에 나오는, 장인이 요리하는 음식으로 발전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누벨 퀴진 및 슬로푸드 운동과 결합하여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도 누벨 퀴진의 특징은 현대 라멘집과 정말 딱 들어맞더군요.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며 지방의 서민적 음식 문화를 중시한다는 것이 그러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식재료의 풍미를 살리는 것과 전통보다 요리사의 창의력을 중시하고 그 지방의 제철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라면 요리왕>>에 등장하는 라면 장인 세리자와의 <<라면 세류보>>가 바로 떠오릅니다. 오너 셰프가 심혈으 만든, 말린 은어의 풍미를 살린 담백한 맛, 진한 맛 라면이 대표 요리라는 점에서 그러하죠.

중간에 장인 정신으로 무기를 만든 탓에 미국의 생산성에 뒤져서 전쟁에 졌다는 난데없는 이야기는 황당했고 '라면 지로'에 대한 이야기는 분량에 비하면 알맹이는 별로 없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아, 도판이 극히 드문 편임에도 가격이 16,000원이라는 것도 단점이네요. 그래도 장점이 더 많습니다. 재미있는 정보, 새로운 시각이 가득 담겨 재미있게 읽었어요. 라면, 아니 라멘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7/07/28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 피터 노왁 / 이은진 : 별점 2.5점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 6점
피터 노왁 지음, 이은진 옮김/문학동네

제목 그대로 섹스 산업과 무기 산업, 그리고 패스트푸드 산업을 통해 현대 과학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설명하는 일종의 미시사 과학사 서적.

섹스 산업이나 무기를 연구하다가 여러가지 과학이 발전하고, 그것이 실생활로 연결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통조림, 전자 레인지 등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이 책은 이들을 모두 망라하여 소개한다는 집대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또 통조림과 같이 전쟁을 통해 등장한 음식들은 알려진 것들이 많았지만 '패스트푸드' 산업을 놓고 설명하는 책은 전에 접한 적이 없어서 신선하게 다가왔고요. 대표적인 것이 맥도날드가 어떻게 품질 관리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비좁은 공간을 감안하였을 때 가장 주방을 잘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은? 맥도날드는 잠수함 주방 설계 경력자를 고용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장소에 적용가능한 표준화 작업, 그리고 튼튼하고 청소하기도 편한 주방을 설계하여 보급하게 되죠. 또 감자 튀김의 전 매장 표준화를 위한 품질 관리 및 튀김 기름 온도를 측정하여 알려주는 센서 감지기 등 신기술의 도입이라던가, 물류, 유통 효율화 등 전 과정에 걸쳐 무기, 전쟁 관련 기술이 유용하게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맥 너겟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었어요. 새로운 닭고기 품종과 뼈에서 고기 발라내는 기계의 도입이 중요했다고 하네요.
군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로 만들어진 오렌지 쥬스 냉동 농축액이 현재의 '미닛 메이드'를 만들었다는 것이라던가 분무 건조 기법으로 만들어진 초코우유 분말 네스퀵, 맥스웰 하우스 인스턴트 커피 등 지금도 즐겨 먹는 음식들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스팸에 대해 설명하면서, 스팸이 이미 현지화되어 일상적으로 먹는 ('무스비' 같이) 태평양 제도 원주민들이 비만과 그에 따른 합병증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현황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고요.

전쟁, 무기 산업에서 연구되던 기술이 장난감과 결합되는 이야기들 역시 인상적입니다. 움직이는 스프링 '슬링키', 고무 찰흙 '실리 퍼티' 등이 그것이죠. 당연히 비디오 게임도 전쟁 관련 연구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세가지 산업의 한 축인 포르노 산업 관련해서는 딱히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비디오 캠코더 시장은 포르노와 결합되어 발전했다는 등 내용도 뻔하고요. 이전에 읽었던 <<포르노 영화, 역사를 만나다>>와 비교했을 때 딱히 더 나은 부분을 찾기는 어려웠어요.

물론 가이아나가 폰섹스 중계기지로 이용되어 통신망 인프라가 갖추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라던가 자신의 누드 사진이 디지털 화상 작업에 이용되어 불멸의 명성을 얻은 레나 셰블롬 이야기, 추억의 스타 테라 패트릭 인터뷰 등 볼만한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무기를 연구하던 연구원 출신 라이언이 만들었다고 해서 무기 산업과 마텔을 결부시키는 것도 억지스러워서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아울러 내용이 분명 재미는 있는데 문체가 굉장히 딱딱해서 읽기가 쉬운 편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도판이 전무하다는 것은 정말 아쉬워요. 모든 소개된 제품은 사진으로 보강해서 설명해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호불호는 많이 갈릴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호' 쪽었는데 이런 류의 서적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라진 소년 - 아즈마 나오미 / 현정수 : 별점 2점

사라진 소년 - 4점
아즈마 나오미 지음, 현정수 옮김/포레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학교 학생 쇼이치가 실종되고, 실종 직전 함께 있던 소년 한자와 마사카즈는 산 채로 성기가 능욕당한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쇼이치의 담임 안자이 하루코의 부탁, 그리고 개인적인 인연으로 '나'는 쇼이치를 찾기 위한 개인적 수사를 시작한다. 현금으로 친한 야쿠자 기리하라의 도움까지 얻은 상황.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쇼이치가 영화 동호회에서 만난 아베 미쓰코라는 지인 집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축배를 들지만,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아베 미쓰코를 폭행하고 쇼이치를 납치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영화화까지된 <<탐정은 바에 있다>>로 잘 알려진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제3작. 어쩌다 보니 1, 2편은 건너뛰고 이것부터 읽게 되었네요.
작품은 일본 추리 문학계의 한 축인 '고독한 늑대' 스타일의 하드보일드 범죄물인데 그런대로 재미는 괜찮습니다. 단순히 액션만 장황하게 펼쳐지는 작품은 아니고 그런대로 정교한 복선이 잘 짜여 있는 덕분이죠.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단순히 분량 늘리기, 혹은 복잡도를 높이기 위한 떡밥이라 여겨졌던 "복지센터 건립 반대 운동"이 사건의 핵심으로 밝혀지는 장면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쇼이치와 마사카즈가 "세면기"라는 말을 나누었다던가, 라면 가게에서 안자이 하루코에게 전화했을 때의 위화감, 교체한 건전지는 있지만, 녹음기는 없는 상황 등 여러 가지 복선과 단서가 조합되어 진실이 드러나는 전개는 꽤 그럴듯했어요. 중요 포인트마다 중요한 순간임을 알려주는 묘사가 덧붙여진 것은 정통 본격물 느낌도 났고 말이죠.

아울러 주인공의 매력도 상당합니다. 특히 작 중 묘사되는 것으로 볼 때 전형적인 탐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해결사라는 독특함이 인상적입니다. 앞부분에 회삿돈을 횡령한 사람을 미행하기는 하지만 돈 되는 용역의 일환일 뿐으로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탐정이라는 직업을 가진 것으로 소개되지는 않거든요. 작중에서 돈벌이는 도박, 또는 마리화나 재배 및 거래라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냥 뭐든 돈 되는 건 다 하는 해결사로 봐야 할 것입니다. 범죄에 한 발 걸치고 있다는 것은 <<불야성>>의 류젠이가 살짝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러나 천성적으로 악인은 아니며, 정의감만큼은 가득하다는 점에서는 신주쿠 거리의 사에바 료의 판박이입니다. 스스키노 거리의 여러 사람, 심지어 야쿠자나 기자까지 연이 닿을 정도로 발도 넓고, 해결사로서의 기본적인 능력은 충분하다는 것, 여자에게 반해서 사건에 뛰어든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똑같다고 해도 무방해요. 안자이 하루코에게 반한 나머지 자신의 돈 250만 엔까지 투자하여 쇼이치를 찾아 나선다니 하드보일드하고 거리는 먼, 그냥 순정 마초일 뿐이지만 나쁘지는 않습니다. 장점이라고만 보기는 좀 어렵지만요. 사에바 료와는 다르게 반한 여자와 '거사'에 성공하는 결말도 좋았고요.
그리고 시대가 언제인지 특정하기 힘들지만 삐삐 등 세세한 곳에서 보이는 90년대 초반을 나타내는 여러 묘사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좋게만 보기에는 단점이 너무나 명확합니다. 그것은 바로 한자와 마사카즈 살인 사건의 설득력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변태적인 성행위가 들통난 사기사카 남매에 의해 마사카즈가 사로잡힌 현장에서 쇼이치가 탈출에 성공했다면, 남매가 마사카즈를 살해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시체가 발견되면 사기사카 남매가 유력 용의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수치심과 분노에 마사카즈를 살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음 이야기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쇼이치를 찾아 나서는데 시간을 쓴다? 최대한 증거를 인멸하려 노력하고, 달아날 준비를 하는 게 상식입니다. 쇼이치가 불량학생으로 그의 증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엽기적인 살인 사건인 이상 수사는 진행될테니까요. 그렇다면 최소한 소각로에 있던 한자와의 옷이라도 치우는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은 무슨 배짱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사기사카 남매의 가문 영향력이 경찰까지 미치고 있다면 모를까, 기껏해야 중학교 정도에 머물 뿐인데 말이죠.

또 앞서 복지센터 건립 반대 운동이 사건의 핵심이라는 것, 그래서 사기사카 마히토 아내 실종 사건과 연결되는 구조는 좋지만 이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한자와 마사카즈의 시체도 당연히 그곳에 묻었어야 합니다. 후미코가 출산 경험이 있으며 아기들은 모두 복지센터 자리에 묻혔을 것이라는 암시를 줄 정도면 더더욱 그러하죠. 지난 10년간 발견되지 않은 실적까지 뛰어난데 말이죠. 사체만 발견되지 않았다면 남매가 이후 쇼이치를 찾아나서는 것이 말이 되는 만큼,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 외에도 허점이 너무 많습니다. 카페 '산책로'에서 사기사카가 구타당한 것, 그리고 그것을 '나'가 구해주는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사기사카를 용의 선상에서 빼기 위한 치졸한 설정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뒷부분을 보면 엄청난 수의 조직원들을 동원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자 남매인데 왜 혼자서 쇼이치를 찾으려고 무리를 하는지 설명도 부족하고요.
아베 미쓰코가 목숨을 걸고 쇼이치를 보호해 준 것도 설명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 게다가 며칠에 걸쳐 중요 참고인을 보호만 하고 진상을 들어 경찰에 알릴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결말 부분에서 사기사카 후미코가 나중에 폭주하여 모든 장애물을 파괴하는 묘사는 시원하기는 한데 역시나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거구라고는 하지만 중년을 넘은 나이의 일반 여성을 성인 남성 여러 명이 어쩌지 못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죠. 흉기를 들었다거나, 프로레슬러라는 설정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크리쳐 물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과한 묘사였습니다.

결론 내리자면 별점은 2점. 흥행작으로 인기를 끌 만한 요소는 많지만,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세 번째 작품이라 아이디어나 좋았던 기세가 고갈된 탓일지도 모르겠는데 주인공은 마음에 들었던 만큼 1편부터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2017/07/23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 - 아론 맥코넬 / 조너선 헤네시, 마이클 스미스 : 별점 2점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 - 4점
아론 맥코넬 그림, 조너선 헤네시.마이클 스미스 글/계단

제목 그대로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입니다. 맥주의 시작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를 만화로 설명해주고 있죠.

그러나 내용은 실망스럽습니다. 만화로 잘 그려냈다기 보다는, 그냥 있는 설명을 그림으로 충실히 설명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때문에 만화라고 해도 읽기 쉽지 않아요. 미국 극화체 스타일의 그림도 내용과 별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지는 않고요.
게다가 지나친 맥주 예찬도 거슬리는 부분입니다. 맥주가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 맥주에서부터 농업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식이기까지 하니까요.

물론 건질 부분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수메르의 바피르는 보릿가루로 구워 만든 일종의 빵으로 이 빵을 단지 안에 넣고 물을 부어 적신 후 발효를 일으킨 것이 최초의 맥주 레시피라는 것. 신부와 관련된 것을 나타내는 Bridal은 Bride Ail, 즉 결혼식에 에일을 마시는 파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홉 이전에 그루이트라는 맥주 첨가물이 있었는데 정부의 이권으로 이용되자 홉이 등장하였고, 홉이 가진 강점으로 그루이트는 사라져 버렸다는 것 등 처음 알게 된 사실들이 그러합니다.
지금도 유명한 맥주들에 대한 유래를 소개하는 내용도 재미있었습니다. 몇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인디아 페일 에일 (IPA) : 원래는 인도를 통치하는 영국인들을 위해 만든 맥주. 인도에 있던 영국인들이 귀국하면서 영국에서도 유행. 이것이 미국에서 재배되는 향이 강하고 쓴 맛이 센 홉이 첨가된 미국식 인디아 페일 에일로 진화함.
필스너 : 오늘날 전 세계 맥주의 95퍼센트가 필스너. 1838년 보헤미아의 플젠 (현재의 체코 공화국)에서 시작됨. 탁월한 양조 기술자 요제프 그롤이 1842년 손에 넣은 바이에른의 라거 효모에 바이에른의 순한 홉, 달콤한 모라비아 지방 보리, 미네랄 함량이 낮은 플젠의 연수로 만든 맥주.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맥주의 원형.

등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내용을 위해 구태여 어렵게 만화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정보면에서도 부실하고, 그렇다고 딱히 재미가 있지도 않으니까요. 이럴 바에야 글 중심으로 설명하고 삽화 몇개 추가하는 것이 노력 대비해서는 훨씬 나은 결과물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네요. 노력이 가상하여 별점을 주고 싶지만 별로 줄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7/07/22

우리 가구 손수 짜기 (보급판) - 조화신 목수, 심조원 / 김시영 : 별점 3점

우리 가구 손수 짜기 (보급판) - 6점
조화신 목수, 심조원 지음, 김시영 그림/현암사

제목 그대로 우리 가구를 만드는 방법을 순서대로 그림과 함께 소개한 책. 나무 베기 등 재료에서부터 가구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다양한 전문 용어들, 그리고 온갖 도구들과 도구들을 사용하는 방법, 가구를 조립하는 기법, 대표적인 가구 종류에 이어 판재의 종류 소개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200페이지 초반에 불과한 얇은 분량이지만 대략의 개요를 파악하기에는 큰 무리는 없습니다. 재미도 있고요. 창피한 이야기지만 그동안 톱질의 자르기와 켜기의 차이를 잘 몰랐는데 그런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잘 설명해주고 있는 식이거든요. 자르는 것은 나뭇결과 직각, 켜는 것은 나뭇결을 따라 세로로 쪼개는 것이라는데 정말이지 처음 알았네요. 
각종 재료에 대해 소개하면서 감나무 속에 검은 무늬가 있으면 먹감 나무라 하여 귀하게 여긴다던가, 열대 지방 나무는 나이테가 없다던가 (계절이 바뀌지 않으면 생기지 않음) 하는 새롭게 알게 된 정보는 그 외에도 많고요.

무엇보다도 그림이 정말 대박이에요. 얇은 분량임에도 내용 이해가 쉬운 것은 거의 모든 설명을 그림으로 하는 덕인데, 제가 여태까지 본 이런 부류의 국내 도서 중 일러스트의 질과 양 모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입니다. 정성스러운 뎃셍과 터치에 수채 물감으로 채색한 느낌의 꼼꼼한 세밀화가 굉장히 미려하여 소장 가치를 높입니다.

물론 이 책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굉장히 간략한 내용에 불과해서 이 책만으로 우리 가구를 만든다든가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며,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정말 불필요한 책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즐거웠기에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정도면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지 않을까 싶네요. 그림만으로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2017/07/21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니시야마 마사코 / 김연한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6점
니시야마 마사코, 김연한/유유

제목 그대로 일본 1인 출판사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인터뷰를 통해 소개하며 일본 출판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책.

저의 오랜 꿈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된 것 같은 1인 출판사가 목표로 개인적으로 내고 싶은 책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과 독특한 요리 관련 서적입니다. 저의 꿈과 어느정도 맞닿아 있는 점이 많을 것이라 여겨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번역하신 김연한 씨도 1인 출판사 그리조아 대표이시고, 출판사도 우리나라에서도 소형 출판사라 할 수 있는 유유 출판사라는 점에서도 뭔가 통하는게 느껴졌고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읽다보면 꿈같은 이야기가 많아 읽는 내내 두근두근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좋아하는 동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한다, 늘 칭찬을 자주한다는 미르의 대표 후지와라의 말도 가슴에 콕 박히고, 1인 출판사에 필요한 첫 번째는 빠른 결단력, 두 번째는 용기였다는 치이사이 쇼보의 야스나가 노리코 대표의 인터뷰, 해보니 혼자서도 할 수 있고 그 날 부터 세상이 넓어졌다는 타바북스의 미야카와 미키 대표의 인터뷰 모두 감명깊은 부분이었습니다.
치이사이쇼보는 제가 만들고 싶었던 책 (어른들을 위한 동화)을 만드는 출판사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기억에 많이 남네요. "셸 실버스타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도 제 생각과 일치하고 말이죠.

또한 1인 출판사라고 해도 원하는 책을 대충대충 주먹구구식으로 만드는게 아니라, 대표들 모두 내고 싶은 책이 있고 삶의 목표와 방향이 명확하여 내놓는 결과물 (책)의 완성도 역시 살벌할 정도로 높다는 것에는 정말 탄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소개된 책들이 사뭇 궁금한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은 <<계획과 무계획 사이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 <<밤의 나무 (나무들의 맘)>> 등 몇 권 되지 않더군요. 당연히 1인 출판사이니 만큼 아주 대중적인 책들이 아니고 심지어 대표가 '내고 싶어서 낸' 책들이기까지 하니 어쩔 수 없는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대중적이지 않은 책들도 천부, 삼천부는 판매한다는 시장 환경은 참으로 부럽습니다.

그러나 좋은 점만 있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명확한 방향, 지침을 가지고 움직이는 회사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1인 출판사가 되었다거나 하는 출판사도 등장하거든요. 온가쿠노토모샤의 대표 다니카와 메구미가 대표적입니다. 유명 시인의 며느리이자 유명 작곡가의 아내로 출판사는 어쩌도보니 하게 된 일종의 취미 활동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꼭 다니카와 메구미 대표 급은 아니더라도 소개된 1인 출판사들 중 상당수가 과거 자리를 잡는 과정 설명을 보면 나름 운이 좌우한 경우도 많이 있더군요. 결단력과 용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운'일지도?

그리고 인터넷 서점이 주도하는 현 시장에 대한 방책이 자세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점도 아쉽습니다. 그냥 전자책 대응에 대한 이야기만 조금 풀어낼 뿐이에요. 서점의 이익을 올려주는 대신 반품이 불가한 미시마샤의 <<커피와 한 권>>시리즈라던가, 이런 독립 출판사들이 연합하여 주문 출고제와 같은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소극적이고도 과도기적인 해결책에 불과하죠. 더 크게, 아예 인터넷 상에 플랫폼을 꾸리던가 최소한 연합체 주도로 오픈마켓에 입점하는 등의 방법론이 고민되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전혀 말이 없어서 의아할 정도였어요.

마지막으로 가장 큰 아쉬움은, 이 책은 인터뷰를 통해 현실을 알려주는 것에 불과하여 실제로 '1인 출판사'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터뷰를 심도깊게 소개한 것은 좋았지만 권말에 실제로 1인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출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략하게나마 소개는 필요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니면 제목 그대로 일하는 방식이라도 좀 더 상세하게 알려주던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1인 출판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과 현실을 잘 알려주는 책으로 재미도 충분했습니다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유유 출판사 책은 이전에도 몇 권 읽어보았고, 솔직히 좋은 점수를 주지는 않았지만 지금 인터넷 서점에서 이북 행사 중인 가격으로 구입하면 가격도 괜찮으니 만큼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글귀 몇개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편집자가 의견을 내어 좋은 방향으로 끌고가는 것이 필요할까? 이쪽이 끄집어내야만 나오는 것은 필요 없다. 자기 내부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을 확실하게 내보내도록 하자.

이상 같은 걸 좇으면 안된다. 먹고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시대와 함께하는 일을 무시하고 이상을 추구할 수는 없다.

효율적으로 하려고 하면 할수록 사람은 피폐해진다.

2017/07/16

스파이더맨 : 홈커밍 (2017) - 존 와츠 : 별점 3점

 

새롭게 리부트되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합류한 스파이더맨 싱글 무비 1작. 많은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써 주셨으니 줄거리 요약같은 것은 생략하고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만 짧게 적어봅니다.

첫번째로 좋았던 점은 스파이더맨의 탄생과 벤 삼촌의 죽음을 그리지 않았다는 것. 이전 작품들은 이 이야기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며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애썼는데 너무 많이 봐서 식상한 내용이었죠. 세번째 리부트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를 생략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두번째는 그냥 너드 공돌이었던 토비 맥과이어, 공대 왕따라고 보기에는 지나칠정도로 상큼했던 앤드류 가필드와 확실히 구분되는 "고등학생" 톰 홀랜드입니다. 전작 주인공들 2명은 학생이라는 설정은 있지만 고민도 많고 너무 강대한 적과 힘겹게 대적하는 성인이었던 것에 반해, 톰 홀랜드는 아직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미숙한 고등학생의 풍모를 몸 전체로 풍겨줍니다. 덕분에 주로 동네 평화를 지키며 동네를 주름잡는 악당과 대결하는 설정에도 딱 들어맞고 어벤져스에 들어가고 싶어 몸부림치는 철없는 모습의 설득력 역시 강합니다. 천재성을 강조하지 않아서 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 역시 한몫 단단히 하고 있고요.

세번째는 '벌쳐' 마이클 키튼입니다. 그간 마블 슈퍼 히어로물의 악역은 모두 명배우들이었죠. 스파이더맨만 해도 윌리엄 데포 (그린 고블린), 앨프리드 몰리나 (닥터 옥토퍼스)가 초반 시리즈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줬었죠. 그러나 샘 레이미 3부작 3편부터 좀 애매해지더니 마크 웹 시리즈에서는 악역의 비중과 캐릭터성이 줄었고 특히나 2편에서는 완전히 말아먹었었습니다. 제이미 폭스의 일렉트로와 데인 드한의 그린 고블린은 정말이지 역대급 최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악역답게, 그리고 전통의 슈퍼 히어로 출신답게, 명배우 답게 마이클 키튼은 본 작품에서 확실히 중심을 잡아주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생계형 악당이라는 점에서, 게다가 '딸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범죄에 뛰어든다는 점은 <<앤트맨>>과 큰 차이가 없는데 이를 빌런화하면서 생긴 복잡한 캐릭터를 생생하게 그려낸 것은 누가 뭐래도 마이클 키튼의 공이죠. 피터가 좋아하는 리즈의 아버지라는 것이 밝혀지는 장면과 그 이후 자동차에서의 대화는 압권이라고 해도 무방했어요.
그래서일까요? 1회를 마치고 퇴장하곤 하는 마블 악역 전통 - 제프 브리지스, 휴고 위빙, 미키 루크, 로버트 레드포드.... - 에서도 제외되어 무사히(?) 사로잡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한번으로 소모되기에는 너무 압도적이었기에 당연한 결과로 보이네요.

그 외 적절한 유머와 성장기스러운 부분을 잘 살린 점, 오래전 TV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오프닝에 사용하는 등의 올드팬을 위한 배려도 마음에 들었던 점입니다. 쫄쫄이 슈트를 논리적으로 구현한 것도 좋았고요.

단점이라면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듯 스파이더맨 특유의 공중 활강 와이어 액션이 부족했다는 것, 그리고 지나치게 인종적으로 평등함을 그려내려고 노력한 것이 조금 거슬렸다는 것 정도인데 단점은 사소할 뿐, 이 정도면 잘 만든 슈퍼 히어로 무비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샘 레이미가 특유의 공포감을 강조하여 묵직함을 극단적으로 그려냈고, 마크 웹은 <<500일의 썸머>>를 다시 찍어 실패를 맛봤다면, 스파이더맨의 원점에 회귀하여 최신 트렌드를 접목한 마블다운 세련된 결과물이었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7/07/14

경성탐정록 만화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2009년 첫 발표되어 셜록 홈즈애호가들의 심금을 울린, 국내 거의 유일한 경성버젼 홈즈 파스티쉬<<경성탐정록>>이 만화화되어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주요 연재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무탈하게 시리즈가 전부 만화화 될 수 있도록, 모쪼록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관찰자 - 샤를로테 링크 / 서유리 : 별점 2점

관찰자 - 4점
샤를로테 링크 지음, 서유리 옮김/뿔(웅진)

삼손 시걸은 직업도 없이 형, 형수와 함께 낡은 집에서 머물며 동네 여자들을 살펴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는 청년. 그런데 그의 흠모의 대상인 질리언 워드의 남편 토머스 워드가 살해되고, 삼손은 형수 밀리가 경찰에 그의 일기를 신고한 탓에 유력 용의자로 몰려 도주하게 된다. 질리언 워드 남편 살해범은 카를라 로버츠와 앤 웨스틀리 독거 노부인 두명 연쇄 살인사건과 동일 인물로 추정되어 경찰의 수사가 집중되는 상태.
삼손은 질리언의 불륜 상대자인 존 버턴의 도움을 얻어 몸을 숨기고, 존 버턴은 토머스 살인 사건은 원래 질리언을 노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사건 수사에 뛰어든다.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일 여류작가 샤를로트 링크의 작품. 충격적인 프롤로그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왠만한 내용으로는 충격을 받기 힘든 요즈음이지만 아동 성애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죠. 솔직히 기분은 아주 불편했습니다만... 여튼, 이 프롤로그가 3건의 연쇄 살인이 펼쳐지는 본문 내용으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10월, 11월, 12월 등 순차적으로 기입된 날짜들로 친절하게 구분된 목차가 단지 시간 흐름 뿐만이 아니라 상당히 정교한 복선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띱니다. 첫 도입부인 10월 생일 파티 현장에서의 에피소드가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다던가, 타라가 이미 12월에 눈치챘던 존의 과거 성범죄 기소 이력을 1월까지 모른 척 한 것, 질리언이 타라에게 부동산 업자 루크 팜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 등이 모두 마지막 반전, 진상으로 연결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이책으로 69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걸맞게 잘 짜여진 소설은 아닙니다. 쓸데없는 묘사와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스코틀랜드 야드의 수사 관련 내용입니다. 놀랍게도 완전히 불필요하거든요. 결국 사건은 혼자 수사하는 전직 경찰 존 버턴의 활약에 의해 해결되며, 그것도 존 버턴이 혼자 잠복하여 리자 스탠퍼드를 만난 것이 결정적 단서라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물론 존 버턴도 경찰 내부에서 결정적 정보를 얻기는 합니다. 허나 이는 경찰 수사 방향과는 무관하기에 경찰은 전혀 하는게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게다가 첫 등장, 수사 과정에서 비교적 유능한 것으로 생각된 피터 필더 경감은 경찰을 그만둔 뒤 잘나가는 존 버턴에게 질투나 느끼는 한심한 중년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지기는 등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초반부 뭔가 있어 보임직했던 사회부적응자 삼손 시걸의 묘사도 분량에 비하면 별 볼일이 없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이러한 경찰 관련 묘사와 삼손 시걸 묘사만 들어내도 1/3 이상 깔끔하게 압축할 수 있었을 겁니다. 여성 작가 특유의 장황한 심리 묘사까지 덜어낸다면 금상첨화일 테고요.

추리적으로 놓고 보아도 별 볼일 없습니다. 탐정역인 존 버턴의 수사는 우직한 탐문, 그리고 '운'이 좋았던 것 불과해서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리자 스탠퍼드의 거처를 알아낸 순간 이야기는 끝난거나 다름없죠. 두 피해자와 질리얼 모두와 관계가 있는 것은 타라밖에 없으니까요.
범죄 측면에서도 무언가 의미가 있어보였던 엘리베이터 장난과 심야의 드라이브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어요. 단지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행동이라는 동기 자체는 설득력 있다 하더라도 정체가 드러나기 쉬운 무모한 행동임에는 분명하잖아요. 꽤 오랫동안 이런 행위를 반복했는데도 타라가 들키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운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그녀 어머니 사체를 진작에 치워버리지 않은 것과도 일맥상통하겠죠.
아울러 범행의 핵심 동기인 '구조 불이행죄' 역시 설득력이 낮습니다. 실제로 범행을 저지른 인물보다 그것을 방조한 인물의 죄가 더 크다는 논리는 다른 몇몇 작품에서도 접한적이 있지만 단 한번도 그것이 합리적이라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에요. 미쳤다는 것으로 설명된다면 아예 이런 동기도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마지막 숨겨진 별장에서의 범행 고백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작위적이라 허무하기까지 했습니다. 질리언을 다른 피해자들처럼 질식사 시키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물론 좋은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다른 유사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에서 타라의 분노는 어린 시절 지옥을 맛보게 한 의붓 아버지의 성폭행을 방조한 어머니로 향하며, 다른 방관자들에 대해서도 어머니와 같은 분노를 느꼈다는 식으로 설명되는건 그럴듯 했어요. 삼손 시걸의 캐릭터도 독특해서 이런 류의 작품에 등장하는 싸이코치고는 착한 인물이라는 의외성에 더해 마지막 장면에서의 활약은 나쁘지 않은 등 독특함은 분명히 전해줍니다.
불륜을 저지른 질리언이 잠깐의 실수로 앞으로 살아가며 정말 힘든 노력을 해야할 것이라는 전개도 마음에 듭니다. 불륜을 쉽게만 보는 다른 작품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측면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러모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비스무레한 타 범죄 스릴러 대비해서 딱히 차별화되는 점도 없고요. 그냥저냥한 평작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교보문고 전자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읽었는데 종이책은 이미 절판되었더군요. 딱히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덧붙이자면, 독일 작가 작품인데 영국을 무대로 한 것은 좀 희한합니다. 미치광이 엘리트 살인자가 나돌아다니는 작품을 모국 무대로 쓰기는 싫다는 기묘한 애국심이 작용한 것은 아닐테고, 이유가 좀 궁금하네요.

2017/07/09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이나가키 히데히로 / 조홍민 : 별점 2점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4점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조홍민 옮김/글항아리

에도와 관련된 식물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읽은 책. 소갯글도 그럴듯하고 만든 모양새도 예뻐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무척 다르더군요. 우리가 익히 아는 에도 시대, 즉 도쿠가와 막부 시대 뿐만이 아니라 일본 각지, 다양한 시대를 망라하여 여러가지 식물 관련 정보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에도 시대로 한정하면 내용이 많지 않는 것은 당연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이래서야 제목과의 괴리감이 너무 큽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이야기도 아니라서 큰 재미를 느끼기도 힘들었어요. 딱히 식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 탓에 더욱 그러했죠.

또 등장하는 해석도 과장되거나 오버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예를들어 에도가 인분을 기반으로 벼농사를 지어서 오물 통제가 가능한, 완벽한 '에코 - 리싸이클링 도시' 였다고 이야기하는 식입니다. 조금 남은 오물 잔류물도 바다에 영양을 공급하여 전설의 황금어장 '에도마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설득력이 낮습니다. 인분을 비료로 쓴 곳이 일본, 에도에 한정된 것은 아니잖아요?
닌자들이 직업 특성 상 각종 식물, 약재에 능통한 전문가들이었다고 설명하는 것 역시 오버스럽기는 마찬가지고요.

물론 분량도 길고 주제가 독특한만큼 볼만한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한 닌자 이야기 중 닌자가 '호로쿠다마'라 불리는 화약 장착 수류탄을 무기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그 재료가 식물 쑥이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네요. 초석은 질산칼륨의 결정으로 닌자는 쑥에 오줌을 뿌려 흙 속에 묻은 후 미생물을 발효시켜 오줌 속 암모니아와 쑥에 함유되어 있는 칼륨을 반응시켜 질산칼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것을 알았는지 정말로 대단해 보입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 성을 축성할 때 과거 조선 출병 시 농성전을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다다미의 심으로 짚 대신 토란 줄기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일종의 보존식으로 벽에는 박으로 만든 박고지까지 발라 넣었고 하는군요. 지금 구마모토의 명물인 가라시렌콘 (삶은 연근 구멍에 물에 갠 겨자와 된장 섞은 것을 넣고 밀가루와 콩고물을 묻혀 튀긴 향토요리)의 재료인 연근 역시 구마모토 성 해자에 비상 식량으로 재배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재미난 이야기들 역시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한 것도 아니고, 출처나 자료가 신빙성있게 제시되고 있지 않아 대체 무슨 사료를 기반으로 이야기하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은 확실히 약점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전국 시대 무장들이 어떻게 초식만 먹고 싸울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고찰입니다. 무장들은 하루에 현미 5홉 정도를 먹었는데, 단백질도 없이 이 정도 식사로 갑옷을 입고 어떻게 전투를 할 수 있었나?를 전투민족 파푸아뉴기니인들과 연결시키고 있거든요. 파푸아뉴기니인들도 바나나와 타로, 토란 등 식물만 먹는데 말이죠. 여기서 전국 무장들은 파푸아뉴기니 사람들 처럼 장내에서 질소를 흡수해 채내에서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당연히 과학적으로 증명도 되지 않은 추론에 불과한 내용으로 보였습니다. 발상은 재미있지만 여러모로 무리였어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랑했던, <<맛의 달인>>에서도 간혹 언급되던 '핫초 된장'의 유래와 같이 내용 자체가 부실한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건질 것은 이름의 유래밖에는 없어요. 이에야스가 태어난 오카자키 성으로부터 8정 떨어진 핫초 마을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데 이건 사실이겠죠.
그러나 그 외 된장의 특성에 대해서는 딱히 대단한게 없습니다. 핫초 마을은 야하기 강 자연 제방 위에 위치해 된장 만들기에 필요한 용천수가 충분했고, 야하기 강을 통해 수로 운송도 용이해서 된장이 발달할 수 있었다. 아울러 핫초 된장 제작에는 성을 쌓는 기술도 응용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찐 콩을 동그랗게 뭉쳐, 누룩균을 묻힌 된장 덩어리를 직경 2미터 정도의 거대한 삼나무 통에 채워 넣고, 된장 덩어리와 같은 무게가 될 정도의 돌을 눌러 쌓아 숙성시키는 것으로 이것은 성의 석벽을 쌓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 환경을 갖춘 지역이야 널리고 널렸을테고, 제작 방식도 축성 기술을 응용했다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인데 너무 억지로 대입시키는 느낌이었습니다. 예컨데 순창 고추장에 대한 설명 - 기후상 습지가 많은 분지 지역이라는 특성 덕분에 고추장 발효가 활발해져서 다른 고추장에 비해서 장맛이 깊고 빛깔 또한 곱다 - 정도의 설득력이 있지는 않아요. 이런 이야기가 '식물'을 이야기하는 책의 주제와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기획의도와 주제, 만든 모양새는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만 내용은 별로 기대에 미치지 못햇습니다. 단점도 많으며 내용에서 딱히 신뢰가 가지도 않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2017/07/08

좀비 - 조이스 캐롤 오츠 / 공경희 : 별점 2.5점

좀비 - 6점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포레

Q_는 얼마전 저지른 흑인 소년 성추행 건으로 정기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청년. 그는 유명 교수의 아들이지만 변태적인 싸이코로 진화하여 '전두엽 절제 수술'로 자신에게만 복종하는 일종의 성노예 좀비를 만들 꿈을 꾸는데....

명성이 자자했던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 스티븐 킹이었나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누군가가 현대를 대표하는 공포호러 소설 중 한편으로 극찬했던 작품이라 평소 관심이 가던 차에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본 결과는 제 생각과는 굉장히 달라서 의외네요. 실제로 좀비가 등장하는 크리처 호러를 생각했는데 작품은 짐 톰슨의 <<내 안의 살인마>>같은, 변태 싸이코 살인마의 범죄극이더군요. 

하지만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재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들에서 봄직한, 무의미한 범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차이점도 있고요. 예컨데 앞서 말씀드린 <<내 안의 살인마>>의 주인공 루 포드의 범죄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즉 그냥 '죽이고 싶으면' 벌이는 무계획적이고 돌직구같은 범죄입니다. 그러나 Q_의 범죄는 명확한 목적이 있고, 이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고 수행하는 과정이 그려진다는 점에서는 조금 독특했어요.
또한 소문대로 묘사력만큼은 대단합니다. 그 중에서도 범죄 행위에 대한 묘사들은 그야말로 발군이에요. 가장 상세하게 묘사되는 '다람쥐'를 잡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대표적이죠. 디테일이 지나쳐서 쉽게 모방범죄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세세한 디테일 - Q_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먹는 음식이나 입고 있는 옷, 기타 여러가지 설정들 - 을 적재적소에 그려내어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드러나고 부각되게 만드는 솜씨도 훌륭합니다.
아울러 전두엽 절제 수술로 사람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동하는 '좀비'로 만든다는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아요. 쉽사리 사람을 사귀지 못하고, 본인에게 별다른 매력도 없는 싸이코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설득력이 높습니다. 좀 이해가 안되는 것은 대학을 수차례 다닐 정도로 기본적인 지성은 갖춘 (것으로 보이는) Q_가 전두엽 절제 수술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는 부분입니다만, 뭐 미친 놈이니까요. 최소한 '최면술' 따위나 실제 좀비 전설의 원전인 '부두교 주술'보다는 과학적이긴 하고요.
260여 페이지에 여백도 많아서 읽기 쉬웠다는 것 역시 장점입니다. 별다를 것이 없는 범죄극에 딱 맞는 적절한 분량이었어요.

그러나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살인마>>도 별로 제 취향이 아니었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에요. 주인공 Q_ (쿠엔틴인데 1인칭 시점에서는 항상 Q_로 묘사됩니다)가 상상 이상의 변태고, 범죄도 혐오스럽기 그지 없기 때문입니다. 하드고어적인 내용만 보면 <<살육에 이르는 병>>과 별로 다를 것도 없다 생각될 정도니 말 다했죠. 그에 더해 Q_의 동성애 취향, 그리고 기껏 전두엽 절제술로 만든 좀비를 만들어 성노예로 부릴 것이라는 목표는 너무 싸구려 성인물 취향이라 역겨웠습니다.
또 엽기적인 변태 싸이코가 등장하더라도 <<내 눈에 비친 악마>>에서처럼 별다르게 범행에 성공하지 못하고 파멸하는 전개라면 모를까, 이렇게 살아있을 가치가 전무한 주인공이 벌이는 엽기 행각이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또 앞으로도 성공할 것 같다는 마무리는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Q_가 자신이 관리하는 하숙집 외국인 유학생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다면 충분히 오랫동안 들통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름이 끼치더군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야기하는 거장의 매력은 충분히 살아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2017/07/07

그가 사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 류위즈.바이잉위 / 강은혜 : 별점 2.5점

그가 사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 6점
류위즈.바이잉위 지음, 강은혜 옮김/시그마북스


두 대만 의사의 의학 관련 컬럼 모음집.

1, 2부로 구분되는데 1부 <<죽음의 현장>>은 역사 속 유명한 죽음에 대해 현대 의학 지식을 동원하여 상세하게 설명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링컨, 가필드, 루즈벨트 등 미국 대통령들의 사인에 대해 분석하고, 이를 현대 의학으로는 어떻게 치료하였을지에 대해 설명하는 식으로요. 
2부는 <<죽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라는 주제로 역사 속 '과장(?)'이나 여러가지 상식에 대해서 현대 의학을 기반으로 설명하고 있고요.

1부가 전체 분량의 2/3를 넘는 핵심 내용이기는 한데 개인적으로는 2부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1부는 해당 사건, 인물에 대해 깊이 알고 있지 않으면 큰 흥미를 느끼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도 당연한 것이라 내용이 와 닿지도 않았고요. 예를 들어 조지 워싱턴의 병명은 급성 후두개염인데 사혈요법 (피를 뽑는 것)으로 치료하려 해 죽었으며, 현대 의학으로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고 설명하지만 사망한 당시 나이가 이미 60대 후반으로 당시 평균 연령을 본다면 어차피 오래 살지는 못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에요. 만약 그를 살릴 수 있었다면 다른 병들도 적절히 치료되어 평균 수명이 올라갔겠죠.
하지만 2부는 '잘린 머리가 말을 할 수 있나?'와 같은 주제를 의학적으로 풀어내고 있어서 보다 흥미로왔어요. 

물론 1부도 아주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의료사고라고 해도 무방할 마이클 잭슨 죽음의 진상이라던가, 아라비아 로렌스 사고 이야기 등은 재미있었어요. 저자들이 이런저런 컬럼을 많이 쓴 글쟁이(?)라 글도 쑥쑥 잘 읽히고요. 실제 역사 속 인물에 얽힌 이야기와 우리의 현실을 이어주면서 흥미를 잡아끄는 솜씨가 특히 좋더군요. 아라비아의 로렌스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로렌스는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로 머리에 심각한 외상을 입어 사망했다고 설명하면서, 영화에서 종종 사람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행위라는 것을 짚어주거든요. 기절할 정도로 강력한 충격을 받으면 뇌내출혈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서 점점 악화될 것이고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결국 죽을 수도 있다고 하네요. 영화 <<천장지구>>에서 유덕화는 머리를 심하게 맞고 결국 죽긴 했지만요. 이에 더해 로렌스를 치료하던 젊은 의사 휴 케언스가 이 사건을 계기로 오토바이 탑승자가 헬멧을 착용할 것을 제안했다는 것이 더해지는 구성입니다. 그나저나 헬멧이 로렌스와 관련이 있다니 의외네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그래도 더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된 것은 다행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긴 하나 앞서 말씀드린대로, 짧아도 2부가 더 제 취향입니다. 잘린 머리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것, 머리가 잘린 순간 몸이 벌떡 뛰어오른다던가 죽어서 서 있을 수 없다는 것, 남성은 사망 후에도 발기하고 사정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면 불가능 하다는 것, 사후 경직이 지나면 경직이 풀리기에 강시는 존재할 수 없다 등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시신을 훼손하는 것이 시신을 은폐하는 가장 하책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색달랐어요. 분해 속도만 따지면 실외에 노출된 시신이 가장 빠르다는 이유에 기반하는데 아주 신선했습니다.시신을 숨기면 곤충 등의 접근이 막혀 분해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이죠. 강에 버리면 떠오를 수 있고, 바닷물은 염분 때문에 분해는 더 느려지고요. 땅에 묻으면 분해속도는 물 속에 던지는 것보다도 더 느려진다고 하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분량에 비하면 건질게 많다고 보기는 어렵고, 읽기전 기대에 미치지도 못했지만 한번 쯤 읽을만 합니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경직 시간은 이런저런 곳에 쓰임직하기에 몇 자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쥐를 이용하여 실험한 결과 섭씨 6도일 때 시체는 48~60 시간 후 비로서 완전히 딱딱해졌고 168시간 후 사후경직이 완전히 사라졌다. 섭씨 24도일 때 시체는 5시간 후 완전히 딱딱해졌고 16시간이 지나자 사후경직이 사라졌다. 섭씨 37도일 때는 3시간 후 완전히 딱딱해졌고 6시간이 지나자 사후경직이 사라졌다.
인체의 근육은 쥐보다 훨씬 많아서 사후경직이 지속되는 시간도 비교적 길다. 법의학자는 섭씨 5도에서 냉장한 시체 146구를 관찰하여 시체의 사후경직이 10일간 지속되었으며 심지어 16일까지 지속되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는 사후경직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 28일이 필요했을 것이다.
중독으로 사망한 경우 사후경직 시간도 달라진다. 스트리키닌 중독일 경우 사후경직의 출현과 해제는 가속화되고, 일산화탄소 중독일 경우에는 사후경직이 풀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사후경직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바로 운동이다. 사후경직은 근육세포의 다네소니 삼인산 함량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사망하기 전 격렬한 운동 또는 반항이나 몸싸움을 한 경우 아데노신 삼인산이 모두 소모되어 사후경직이 비교적 빠르게 일어난다. (264~265p)

2017/07/02

식물 이야기 사전 - 찰스 스키너 / 윤태준 : 별점 2점

식물 이야기 사전 - 4점
찰스 스키너 지음, 윤태준 옮김/목수책방

120가지 식물들에 대해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전해지는 전설이나 재미난 일화를 모아 소개하는 책. 하나하나의 호흡이 굉장히 짧습니다. 길어야 2~3페이지 정도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짧은 것은 반페이지 짜리도 있으니까요.

이런저런 정보들이 많을 것 같아 기대가 컸는데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내용이 재미가 없는 탓이 커요. 식물, 꽃이 많아서 그렇겠지만 사랑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데 대체로 비슷비슷해서 지루하기도 하고요. 슬픈 사랑의 결과로 연인이 꽃이나 식물이 되었다거나 신의 저주 등으로 꽃이나 나무가 되었다는 식인데 이름만 다르지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수록된 내용도 중구난방입으로 항목들의 정리 부터가 모호합니다. '곡식' 이라는 큰 주제로 벼, 귀리, 수수 등을 모아 소개하는 항목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수록된 이야기도 전설이면 전설, 실제 역사면 역사라는 식으로 보다 명확하게 카테고리를 구분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심지어 도판도 하나 없습니다! 사전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항목별 동일, 유사한 구성과 적절한 도판이 필수라 생각합니다. 이런 건 일본 친구들이 잘 하는데 말이죠. 솔직히 사전이라는 표현은 가당치도 않아요.

우리나라 실정이라던가 정서와 맞지 않는 식물들이 많은 것도 아쉬운 점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흔히 봄직한 것들이 별로 등장하지 않거든요. 서구권 신화, 전설, 일화 비중이 높습니다. 동양권 이야기는 그나마 일본 이야기가 많은 편인데 좀 과한 점이 없잖아 있어요. 국화 이야기에서 국화와 아무런 관계없는, 단지 이름이 '오키쿠'인 인물의 전설을 가져다 인용하는 것이 대표적이에요. 재미있기는 하지만 이래서야 '사전'이라는 취지에 많이 어긋나죠.

그래도 워낙에 많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기에 재미있는 것들도 제법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몇개 소개해 드립니다.
우선 처음 알게 된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개암이 헤이즐넛이라는 것. 또 북유럽에서는 굉장히 '신령스러운' 나무로 요술지팡이의 재료이자 일찌기 '다우징' 용으로 많이 쓰였다고 하네요. 이에 식물학자 린네가 이것이 그냥 전설일 뿐이라는 것을 밝히는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숲 속에 돈을 숨겨두고 친구에게 개암나무 가지로 찾아보도록요. 뭘 이런걸 실험씩이나 했는지.... 여튼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서 아담을 불쌍하게 여겨 신이 전해준 것이 개암나무 지팡이라는 등, 잉글랜드 최초의 그리스도 교회 건물은 개암나무 가지를 엮어 지었다는 등 기독교 쪽에서도 알아주는 나무더군요.
- 이와 정 반대되는 식물은 '금작화'입니다. 유다에게 팔려가기 직전 예수의 기도를 방해한 것은 금작화가 내는 소리였고, 헤롯왕에게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은신처를 알려준 것도 금작화와 이집트 콩이라고 하니까요. 마녀가 타는 빗자루도 금작화 가지로 만든다니... 중세 시대에 멸종되지 않은게 신기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 보리수 열매가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라는 것.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마찬가지로 오딘의 우주수 위그드라실이 물푸레나무라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 그동안 선악과가 사과라고 알고 있었는데 성경에는 명확하게 종류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니 의외였습니다.
- 동방 박사가 바친 '유향'은 발삼나무 수액을 말려 만든 약재라네요. 수천년된 전설의 약재인데 무슨 효능이 있는지는 좀 궁금합니다.

그리고 요리 관련 이야기도 몇가지 기억에 남습니다.
- 타비스톡 애비의 수도사들은 맛있는 사과주를 만들어 수도사를 모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톡 쏘는 맛이 너무 강했어요. 와인과 섞어서 부드럽게 만들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고요. 그래서 수도원장이 사과주를 부드럽게 만드는 공정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키작은 절름발이 노인 한 사람이 나섰죠. 그런데 한 수도사가 노인이 뭐하나 궁금해서 몰래 훔쳐보니 악마였다지 뭡니까. 그래서 놀란 수도사가 술통에서 잠자던 악마에게 사과주를 쏟아 붓자 노인은 저주를 퍼부으며 하늘로 사라졌고요. 그런데 화난 노인이 발한 열기 때문에 사과주가 펄펄 끓었고, 식어버린 사과주를 먹어보니 그 맛이 천하일미! 그때부터 모든 사과주를 불타는 유황에 부어 만든다고 합니다.
- 단풍당 (maple sugar)를 발견하게 된 것은 한 인디언 여성의 귀차니즘 때문이랍니다. 어느날 그녀가 사슴고기를 요리하다가 물을 떠오기 귀찮아서 단풍나무 수액을 채워 넣고 불에 올린 것이죠. 그 다음 잡담을 즐기다고 돌아와보니 수액이 모두 날아가버리고 사슴고기는 끈적끈적해 버린 것입니다! 남편에게 혼날게 두려워 도망갔는데 밤에 돌아와보니 남편이 딱딱하게 굳은 고기를 열심히 먹고 그녀를 칭찬했다고 하네요. 아마 일종의 '사슴고기 강정' 이 되어버린 것이겠죠? 쉽게 구할 수 있는 단풍나무 꿀을 고기에 발라먹으면 비슷한 맛이 날 것 같습니다.

악마를 소환하는 방법도 인상적입니다. 1월 6일 밤 딱총나무 가지를 꺾고 나무에게 허락을 구한 후, 대답이 없으면 침을 세 번 뱉는다. 꺾은 가지를 가지고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마법진을 그리고, 주위에 특정 꽃과 산딸기 등을 늘어놓은 다음 한가운데에 선다. 악마가 나타나면 힐다의 지팡이 (딱총나무 가지)로 가리키면 복종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한번 시도해 봄 직 하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질 항목에서 소개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이사벨라, 로렌조 커플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둘의 사랑을 방해한 오빠들에게 로렌조가 죽자 이사벨라는 로렌조의 시신에서 머리만 잘라내어 화분에 숨기고 바질을 심어 소중하게 가꾸었다는 내용이거든요. 머리가 들은 화분이라니! 괴담에서나 봄직한 이야기인데 이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포장한 것도 놀랍기만 하네요.

이렇게 읽을만한 부분도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단점이 더 많습니다. 14,000원에 가까운 가격도 과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그냥 인터넷을 통해 접해도 충분한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2017/07/01

기면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 박수지 : 별점 2점

기면관의 살인 - 4점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진기한 가면을 모아놓았다는 '기면관'은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건물. 추리 소설가 시시야 가도미는 자신을 닮은 환상, 괴기 소설가 휴가 교스케의 부탁으로 기면관에서 열리는 기묘한 의식에 참석하게 된다. 그것은 기면관의 주인인 가게야마 이쓰시가 자신과 생일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을 모아 가면을 씌워놓고 '또 하나의 자신'을 찾는 의식으로 참석자에게 200만엔이라는 거액의 보상이 주어지기에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휴가로서는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것. 시시야 가도미도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건물이라 호기심으로 참석하게 된다.
의식에는 모두 6명의 닮은 꼴들이 모이고 그들 모두 가게야마 이쓰시와의 개인 면담을 진행하나 다음날 가게야마 이쓰시는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고 '기면관'은 폭설로 고립되는데...


아야츠지 유키토의 대표 시리즈인 관 시리즈의 가장 최신작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 작품.

관 시리즈의 장, 단점이 모두 극한으로 드러난 작품입니다. 장점이라면 신본격의 대표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이름에 걸맞는 본격물이라는 점이 가장 크겠죠. 모든 단서가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으며 추리의 과정도 합리적입니다.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설정도 괜찮습니다. 바로 범인 가게야마 이쓰시가 기면관의 2대 주인이고, 살해당한 가게야마 이쓰시는 생일이 같은 동명이인을 찾던 3대 주인이라는 것인데 이 것을 끝까지 드러내지 않는 교묘한 전개는 충분히 인상적이에요. '수면제를 먹이고 가면을 씌운 이유'라는 기묘한 상황이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것은 과연 '관 시리즈' 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요.

또 탐정역인 시시야 가도미의 추리를 진행에 따라 전개에 녹여내어 독자가 이에 동참하게 만드는 것, 전개에 있어 허투루 배치되지 않은 설정들이 많다는 것도 추리소설 지망생으로서 배울만 했습니다. 추리를 드러내는 것은 사건의 핵심 3요소를 꼭 집어 알려주는 부분이 대표적이며, 추리에 활용되는 설정은 아르바이트생 도코가 사실 신게츠류 유술의 달인이라던가, 환희의 가면이 콘택트렌즈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 미네르바라는 잡지 로고에 대한 이야기 등입니다. 이러한 디테일의 활용에 있어 작위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정한 정보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했어요.

마지막으로 기존 '관 시리즈'에서 느껴지던 변격물적인 느낌,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덜하다는 것도 마음에 드네요.. 이 부분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은데 저는 '호' 쪽이었습니다. 읽기가 훨씬 깔끔했고 내용도 보다 합리적으로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범행도 나름대로 상식적(?) 으로 그려지고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라는거죠. 본질을 찾는다 어쩌구 하면서 생일이 같은 동명이인을 불러모아 가면을 씌워놓고 하룻밤 보낸다는 기본 설정부터가 현실적이지가 않잖아요?
거기에 관 시리즈에 등장하는 나카무라 세이지의 비밀 장치도 작위적이라는 점에서는 뒤지지 않습니다. 최악은 별관으로 탈출하기 위해 이용한 비밀통로입니다. 이를 열기 위해서는 '기면의 가면'을 대고 균등하게 눌러야 하기 때문에 기면의 가면을 쓰고 있던 가게야마 이쓰시의 시체 목을 잘랐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눈이 이렇게나 많이 왔으면 눈을 뭉쳐서 가져다대고 눌러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애초에 가면을 대고 누른다고 힘이 균등하게 들어간다는 것도 넌센스고 말이죠.
참석자가 모두 동명이인이라는 것 역시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범인의 범행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래의 가면'과 열쇠를 훔치기 위함이라는 목적은 뭐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기껏 훔쳐봤자 폭설로 고립된 상황에서 뭘 어쩌겠단 것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가게야마 이쓰시를 살해하지 않았더라도 다음날이면 범행이 밝혀졌을테니까요. 이럴거라면 차라리 참석자와 하인들까지 모두 죽이고 도망가는게 도주에는 훨씬 유리했을 겁니다.
오니마루와 도코 등 참석자 외 관계자에게 수면제를 먹이지 않은 것도 이유를 알기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라도 모두 재우는게 훨씬 낫습니다. 실제로 관계자들은 모두 범행 시각에 잠을 자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범행도 많이 틀어져버렸으니까요.
도쿄 근처에서 폭설로 고립되고, 구조를 요청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 실제로 존재할지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너무나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래도 장, 단점 모두 신본격이라는 장르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신본격물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교과서이니만큼, 이쪽 장르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여러모로 '소설' 보다는 '만화'나 '영화'같은 시각적 요소가 중요한 매체에 더 적합한 이야기였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