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살인마 - 짐 톰슨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
텍사스 작은 마을의 신뢰받는 부 보안관 루 포드는 창녀 조이스와 얽힌 뒤,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정신적인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느낀다. 결국 조이스를 그녀를 짝사랑하는 엘머 콘웨이와 엮어 살해하지만 조이스가 큰 상처를 입고도 살아있는채 발견된 뒤, 루는 걷잡을 수 없게 폭주하게 되는데....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1952년도에 발표된 고전. 이 리스트가 없었더라면 아마 읽게 되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지만 운 좋게 그것을 숨겨온 주인공 루 포드가 특정 사건을 계기로 폭주를 벌이는 이야기를 1인칭으로 그린 범죄 - 심리 서스펜스물입니다.
여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돌직구 그 자체랄까요? 죽이고 싶고 죽여야 하면 바로 죽이는 식으로 작품 내내 시종일관 돌직구 스트라이크가 팍팍 꽂힙니다. 때문에 루 포드 캐릭터 묘사가 가장 중요한데 캐릭터 묘사, 즉 직구 구위 역시 일품이에요. 지역 주민들에게 굿 가이로 통하지만 실상은 잔인무도한 살인마인 주인공이 이렇게 설득력있게 표현된 작품도 드물 것 같습니다. 1인칭 시점으로 여러가지 살인계획을 세우고 수행하는 것이 냉정하면서도 하나의 게임처럼 그려지고 있는데 오싹할 정도였거든요. 그야말로 소시오패스 그 자체인 인물로 귀공자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가 살짝 연상되기도 하는데 작품 발표 시기가 테드 번디 사건 20여년 전이니 그야말로 이 분야의 선구자적인 인물이겠죠.
이러한 캐릭터를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그리는 묘사도 대단했습니다. 하드보일드 작가가 맘먹고 그려낸 "나쁜 놈" 이라는 이미지인데 1인칭 하드보일드 스타일 범죄물은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 등의 작품이 있기는 하나 이 작품의 범인은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라요. 타당한 동기는 뒷전인 살인마니까요.
아울러 추리적으로도 최초 범행에서 받은 뒤 우연찮게 사용한 20불의 존재가 동네의 껄렁한 불량아인 조니에게 이어지고, 교도소 안에서 살해한 조니가 사실 알리바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다른 희생양을 찾아 약혼녀를 살해하고 협박범을 강도로 위장하여 살해하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이 모든 범행이 1인칭으로 그려지다보니 도서 추리물같은 느낌을 전해주는게 독특했습니다.
마지막의 조이스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어요. 사실상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였다는 점에서 더더욱 말이죠.
그러나 불필요한 잔설정이 많은 것은 좀 아쉽더군요. 초반에 루 포드가 다국어를 하고 심심풀이로 미적분을 푸는 지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만 이후 그러한 설정은 별로 드러나지 않는 것 같은 점이죠. 루 포드가 정신적 문제를 가지게 된 계기인 가정부와의 에피소드라던가 그의 죄를 뒤집어 썼던 의붓형 마이크에 대한 것도 솔직히 사족이었습니다. 이왕지사 돌직구를 날리려면 그냥 나쁜 놈이다는 식으로 가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전개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콘웨이는 처음부터 진범을 알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초반에 보안관 밥에게 무언가 이야기했다는 것이나 조니 파파스의 아버지 가게를 리모델링하는 것을 돕는 식으로요. 그런데 왜 루 포드를 그냥 방치해서 사건을 키우는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또 변호사 빌리 보이 워커가 루 포드를 정신병원에서 꺼낸 것 때문에 불필요한 마지막 사건이 또 발생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고요. 이렇게 설정면의 오류나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는 어딘가의 연재물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만듭니다.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문제는 있지만 강력한 소설로 컨트롤은 별로지만 돌직구 하나로 타자를 제압하는 투수가 연상되는 작품입니다. 지나치게 잔인하고 묵직한, 불쾌감 남는 묘사 탓에 모든 분들께 권해드리기는 어려우나 명성에 어울리는 가치는 충분하죠. 시대를 뛰어넘어 여러차례 영화화 된 이유는 분명해 보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크리스마스에 읽고 리뷰를 올리기에는 좀 너무한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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