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3/10/31

동네마트 생참치회

지금 사는 동네에 제법 큰 식자재마트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온갖 식자재를 파는데, 육류와 해산물도 취급하는 코너도 포함되어 있지요. 해산물이 제법 신선하고 가격도 적당해서 가끔 사먹곤했는데 지난 주말에 무려 "생참치회"가 있길래 구입해 보았습니다.
이만큼이 15,000원으로 가볍게 한 번 먹기 좋은 양이었어요.
대체로 아까미 (적신 / 붉은살) 위주인데다가 생참치회에서 기대했던 쫄깃함과 쫀득함보다는 폭신한 (?) 식감이라서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그리 느끼하지 않고 부드럽게 잘 넘어가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참기름과 소금, 초고추장, 와사비에 그냥 소금까지 준비했는데 그냥 소금만 찍어먹어도 좋더라고요. 피냄새도 없고.
무엇보다도 가성비 측면에서 만족합니다. 다음에 또 행사를 한다면 구입할 의사 있습니다.

2023/10/29

겨우살이 살인사건 - P.D. 제임스 / 이주혜 : 별점 4점

겨우살이 살인사건 - 8점
P. D. 제임스 지음, 이주혜 옮김/아작

P.D. 제임스 여사의 단편집. 표제작을 포함 모두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사님의 "어떤 살의"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걸작이지만 다른 작품들 - "검은 탑",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 은 다소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어요. 그래도 단편이라기에 집어들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선입견 때문에 읽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했네요.
표제작을 비롯하여 모두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완성도 높은 명작들입니다. "단편은 좁은 반경 안에서 독자들이 좋은 범죄 소설에 기대하는 것 - 믿을 만한 미스터리, 긴장감, 흥분, 언제나 공감할 수는 없어도 정체를 알 수 있는 인물들, 그리고 실망스럽지 않은 결말 등 - 들을 찾아 신뢰 가능한 세계를 제공한다."며 단편 소설의 장점을 짚어낸 서문 그대로, 수록작 모두 독자들이 좋은 범죄 소설에 기대하는 것들을 충족시켜 줍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4점. 모든 추리 애호가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크리스마스가 무대이니 만큼, 얼마 안 남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읽어주시면 더욱 좋겠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겨우살이 살인사건" 
18살 어린 나이에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P.D. 제임스는 오래전 가족과 결별했던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초대를 받아들였다. 할머니의 스터틀리 영주 저택에는 할머니와 사촌 폴, 그리고 또 다른 먼 친척 롤런드 메이브릭이 있었다. 가족과 함께 하던 즐거움도 잠시, 크리스마스 밤에 롤런드가 살해당했다.

여사가 추리 소설계에 투신하게 된 계기였던 사건을 그린 자전적 소설. 실제 있었던 사건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주 실감나게 쓰여있습니다.

작중에서도 언급되지만 전형적인 애거서 크리스티 유형의 이야기입니다. 시골 저택, 그것도 치명적인 장소인 '서재'에서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다는 점에서는요. 주인공이자 화자이자 탐정역인 여사가 간단한 조사로 밝혀낸, 폴과 공범 - 할머니로 생각되는 - 이 폴의 형을 협박해서 자살하게 만든 롤런드를 살해했다는 진상도 설득력이 넘칩니다.

여사의 조사로 밝혀지는 단서가 곧바로 추리로 이어져서 독자가 함께 범인을 찾아내게 만드는 맛은 부족하지만, 고전 황금기 걸작에 뒤지지 않는 재미와 흥미를 가져다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아주 흔한 살인사건"
16년 전, 어니스트 게이브리얼은 직장에서 몰래 포르노를 읽다가 이웃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남녀 - 데니스 스펠러와 에일린 모리시 - 의 불륜 행각을 목격했다. 둘의 만남은 매주 금요일마다 이루어졌다. 에일린이 살해된 후 데니스는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이 집행되었다. 게이브리얼은 그날 데니스가 에일린을 만나지 못했다는걸 목격했지만 자신의 은밀한 행동 -포르노를 숨어 읽은 것 - 이 들통날까 두려워 증언을 하지 않았다....

딱 4페이지 전까지는 게이브리얼의 딜레마를 그린 심리극으로 보였습니다. 심리극으로도 워낙 묘사가 탁월해서 흥미롭기 그지 없는데, 마지막에 게이브리얼이 에일린을 살해한 진범이라는게 드러나면서 범죄극으로 전환되는건 정말 기가막혔습니다. 서늘한 반전이 중요한 '기묘한 맛'류의 장르물로도 아주 우수해요.

그런데 딱 한 가지, 부동산 중개업자가 피해자 에일린의 남편이었다는게 마지막에 드러나는데 이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상황을 짐작할만한 설명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박스데일의 유산"
애덤 달글리시 총경의 대부 허버트는 앨리 종조모로부터 5만 파운드라는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다. 하지만 앨리 종조모가 67년 전, 크리스마스 다음날 남편 오거스터스를 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고 달글리시에게 진상 조사를 부탁했다.

"이 세상에서 부자들은 딱 한 번만 대가를 치른답니다."

애덤 달글리시 시리즈 단편. 무려 67년 전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4살이었던 허버트가 진범이라는 진상은 놀랍습니다. 그리고 앨리를 미워해서 사형 선고를 받게 하려다가 오히려 약점을 잡혀 전 재산을 잃고 만 고다드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왔고요. 강한 여자들이 패자가 모든걸 잃고만다는 공정한 영국식 결투를 벌였다는게 신선했거든요. 앨리가 뛰어난 두뇌와 소매치기(?) 능력으로 승기를 잡는다는게 앞서 복선처럼 잘 설명되어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당시 4살이었던 허버트가 진범이라는 진상은 다소 비약이 심했고, 이를 추리할 논리적인 근거도 전무하다는 약점은 큽니다. 달글리시가 아이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는게 근거의 거의 전부거든요. 주전자 물이 줄어들었고 물 웅덩이가 닦였다는 정도로 앨리가 진상을 꿰뚫어 보았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억지스러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3.5점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열두 가지 단서"
막 경사로 승진한 젊은 달글리시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한 고모 집으로 향하던 중 급한 용무가 있다는 헬무트 하커빌을 태워주게 되었다. 그는 삼촌 하커빌이 자살했다고 했다. 하지만 달글리시는 무려 열두 가지나 되는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하커빌을 조카 가족들이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하려한걸 달글리시가 여러가지 단서들로 밝혀내는데, 단서 제공은 공정하고 전개도 깔끔합니다. 작 중에 달글리시가 설명하는 아래의 열두 가지 이상한 점은 모두 독자들에게도 똑같이 제공되거든요.
  1. 유서는 편지의 마지막 장으로 봉투에 넣으려고 두 번 접었는데 누가 다림질을 해서 펴려고 했는지 (유서에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언급했는데 왜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살했는지)
  2. 벽난로에 타다 남은 여권
  3. 저택 매각을 의미하는 내용의 편지 조각
  4. 피해자는 모자를 쓰고 죽었는데 베개에 발모제 연고가 훨씬 많이 묻은 이유
  5. 크리스마스 크래커 장난감은 어디갔는지
  6. 유서에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조카 며느리가 만든다고 되어 있는데 요리사를 구하는 광고를 내라고 시킨 이유
  7. 전날 밤 조카들 가족과 같이 도착했다는 요리사 가방이 풀리지 않은채 침대 위에 놓여 있는 이유
  8. 요리사가 쪽지 필체가 하커빌 것이라는걸 알고 있는 이유
  9. 직전에 고용되었다는 요리사가 엉망인 부엌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이유
  10. 피해자 잠옷 맨 위 단춧구멍에 호랑가시나무 가지가 꽂혀있었는데, 피해자 손은 가시에 찔리지 않았고 가시에는 연고가 묻어있지 않았다.
  11. 피해자가 크리스마스 푸딩을 손으로 파냈다면, 손톱 밑에 푸딩이 끼어 있지 않은 이유
  12. 피해자가 죽고 8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난로 안의 재가 여전히 따뜻했던 이유 (그리고 성냥은 어디 있는지?)
이 중 크리스마스 푸딩에 관련된건 잘 설명되어 있지 않은 등 몇 가지는 다소 억지스럽기는 합니다. 모든 이상한 점이 다 자세하게 설명되지도 않고요.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크래커 당기는 소리와 장난감과의 관계라던가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꽂은 이유는 잘 모르겠더군요. 영국식 크리스마스 파티의 필수 요소였던걸까요?

그래도 본격 추리 단편의 교과서같은 느낌을 전해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달글리시 말 그대로 '완전히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셈이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2023/10/28

후회하는 소녀와 축제의 밤 - 아키타케 사라다 / 김은모 : 별점 2점

후회하는 소녀와 축제의 밤 - 4점
아키타케 사라다 지음, 김은모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 '나'는 구관 빈 교실에서 마루판을 뒤집는 기묘한 무언가를 만났다. 마쓰리비 사야로부터 이미 뒤집어진 마루판 위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말을 들었던걸 떠올리고, 유일하게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마루판 위로 재빠르게 몸을 옮겼다...
고등학교 1학년 아사이 로쿠로는 밤마다 거대한 지네와 마주치는 꿈을 꾼다. '신사에 가면 안된다'는 말을 사촌 누나로부터 들었지만, 마쓰리비 사야의 권유로 신사를 지나친 뒤 지네는 아사이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었다....
이토카와 아오이는 어린 시절 '시게토라'라는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원피스 한 벌을 빚졌다. 시게토라는 10년 뒤 빚을 몸으로 받으러 오겠다며 때마다 나타나 이토카와를 괴롭혔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연인을 사고로 잃고, 구관에서 괴이를 접했던 '나'에게 사야가 도움을 요청했다. 마물로부터 오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오빠의 대역이 될 뼛가루를 품고, 축제의 밤 동안 자동차로 도망다니는 작전이었다. 사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아사이와 이토카와도 함께였다. 축제의 밤, 도망다니던 '나'는 신문 기사 등을 통해 알게된 정보, 그리고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달의 모양이 틀린 등의 현상을 통해 4년 전 사야의 오빠가 죽은 밤으로 시간을 이동해 왔다는걸 알게 되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겸한 세 편의 단편,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힘을 합쳐 마물로부터 도망치는 모험을 펼치는 중편으로 이어지는 중, 단편집.
 
세 편의 단편은 짤막하지만 재미있었습니다. 마루판을 뒤집는 이야기에서 흠집 투성이 마루판은 알고보니 바닥 밑에서 '그것'이 딱딱한 뭔가로 흠집을 낸 것, '시게토라'는 자기가 준 것의 댓가를 '무게'로 계산하기 때문에 원피스는 머리카락으로 충분했다는 등의 진상, 반전은 아주 괜찮았어요.
본편도 전체적으로 읽기 쉽고, 마물로부터 도주하는 과정은 박진감이 넘쳐서 페이지가 쭉쭉 넘어갑니다. 자동차로 도망치지만 마물이 지능을 갖추고 있어서 자동차 도로를 나무로 틀어막고, 주행 경로를 예상하여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덮치는 등으로 압박을 가하며 흥미롭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제목의 '후회하는 소녀' 마쓰라비 사야는 오빠 겐이치로가 죽은 뒤 내내 후회해왔었지만, 모험을 끝낸 뒤 오빠는 사야 대신에 죽음을 택했었으며, 살아남은 뒤에는 부모님의 원수를 갚고 죽어서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는 결말도 깔끔합니다. 죽을 사람은 죽는다는 인과율의 법칙도 따르면서요.

하지만 큰 문제가 있는데.... 전혀 무섭지 않다는 점입니다! '제 25회 일본 호러 대상'을 수상했다는 이력과는 다르게요. 다른 수상작 - 예를 들어 <<보기왕이 온다>> - 들은 꽤나 무서웠었는데, 이 작품은 호러 소설이라기보다는 모험 소설에 가깝습니다.
설정과 소재도 어디서 많이 봤던거라 신선함도 부족합니다. 특히 마물을 잘 아는 미소녀 마쓰라비 사야 캐릭터는 진부함 그 자체였어요. 마물을 무너지기 직전의 다리로 유인한 뒤 다리를 붕괴시켜 퇴치한다는 결말도 마찬가지로 뻔했고요. 알고보니 4년전으로 타임 슬립해왔다는 전개도 쉽게 눈치챌 수 있어서 반전 매력이 떨어집니다. 잘 활용했더라면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였는데 말이지요. 
무엇보다도 '나'의 연인이 붕괴 사고로 죽은 다리를 4년 전 시점에서 무너트려서, '나'의 새로운 현재에는 아내가 생겨 있다는 결말은 이상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사야의 오빠도 결국 죽을 이유가 없잖아요? 이런 설정 오류 때문에라도 과거를 바꿔서 미래가 변하는건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지양해야 합니다. 즉, '나'의 연인도 어쨌건 죽고 없는게 맞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머리를 비우고 가볍게 시간을 보내는데 적당한, 스낵같은 작품입니다.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3/10/27

백조와 박쥐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점

백조와 박쥐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망높은 변호사 시라이시 겐스케가 살해당했다. 형사 고다이와 나카미치는 시라이시에게 연락했던 구라키 다쓰로가 수상하다는걸 알아내었고, 수사를 통해 구라키 다쓰로의 자백 - 구라키가 30여년 전 하이타니를 살해했다는걸 알게된 시라이시가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자살했던 후쿠마 준지 유가족에게 사죄하라고 강요했기 때문 - 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자백과 동기에 의문을 품은 구라키의 아들 가즈마와 시라이시의 딸 미레이는 각자 조사를 통해 구라키의 자백의 헛점을 각자 찾아내었고, 이는 경찰의 재수사로 이어지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추천 작품 30선에 있길래 읽어보게된 작품.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 인생 30년 기념작이라고도 하네요.

상당한 분량, 그리고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작품을 통해 고발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읽기 쉽다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최대 장점은 여전합니다.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억압하여 자살하게 만든 33년전 사건과 구라키 다쓰로의 자백으로만 이루어진 현재의 시라이시 겐스케 살인 사건을 통해 검찰, 경찰과 가해자 변호인 모두 재판에서 이기는게 목적이지 진상에는 관심이 없다는걸 드러내며 비판하는 것을 비롯하여 살인죄 공소 시효 폐지가 정당한지, 피고인의 진심어린 사죄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부모, 가족이 저지른 범죄로 다른 가족과 자녀가 피해를 입는다는게 말이 되는지, 황색 언론의 어거지 취재와 발표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등의 여러가지 이슈를 녹여내고 있는데 무겁지 않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구라키가 공들여 만들어서 헛점이 거의 없었던 자백이 사소한 단서들에 의해 거짓이라는게 하나씩 밝혀지는 과정은 볼만합니다. 경찰과 유족, 관계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 각자의 영역에서 조사를 진행하는 덕분에 설득력도 높았고요. 예를 들어 구라키는 시라이시 변호사에게 TV에서 유산 증여에 대한 방송을 보고 궁금한 점이 생겨 전화를 한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아무런 문제없는 자백이지요. 하지만 그 날 TV에서 관련된 내용은 방송되지 않았고, 구라키가 가지고 있던 명함첩을 통해 이미 다른 변호사에게 똑같은 내용을 물어보았다는게 추가 조사 결과 밝혀집니다. 이런 점에서는 잘 만들어진 수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라키가 거짓 자백을 해서 죄를 뒤집어 쓴 이유, 시라이시가 살해당한 이유에 대한 설명도 명쾌하게 이루어집니다. 33년전 사건이 도화선인건 맞아요. 다만 구라키가 아니라 시라이시가 진범이었던 겁니다! 이를 우연히 알게 된 당시 누명을 쓰고 자살했던 후쿠마의 손자 안자이 도모키가 복수를 위해 범행을 저질렀던게 진상이고요.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이를 위한 구성이 탄탄해서 별로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의 딸과 가해자의 아들이 진상을 밝힌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힘을 합쳐 사건을 조사한다는 설정도 괜찮았습니다. 제목 그대로 완벽한 정 반대의 커플의 조합이니까요. 둘이 힘을 합침으로서 혼자라면 불가능했을 단서 - 시라이시 겐스케의 어린 시절과 가족 관계, 그리고 진짜 동기 - 를 알아낸다는건 그야말로 무릎을 칠만 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둘 사이에서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는 것도 독자로 하여금 납득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보아왔던 소재와 설정을 뒤섞어 보여주는 자기복제에 가까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오래전 사건이 동기가 된다는건 작가의 수많은 다른 작품에서 보아왔던 설정이며, 살인자의 가족이라고 고통받는 이야기는 작가의 "편지" 등에서 선보였고, 살인자의 죗값에 대한 이야기는 "공허한 십자가"에서, 촉법소년과 사적 제재에 대한 이야기는 "방황하는 칼날"에서, 피해자의 이동 경로가 핵심 단서 중 하나가 된다는건 "기린의 날개"나 "신참자"를 연상케합니다. 정 반대측에 놓인 청춘 남녀가 함께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은 "몽환화"와 거의 똑같고요.

또 하나씩 제시되는 단서들을 통해 구라키의 자백이 거짓이라는게 하나씩 밝혀지데, 이 단서들이 단계별로 소개되지도 않아서 '추리'적으로 좋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예를 들어 앞서 구라키가 시라이시를 만났던 계기가 거짓말이라는 것 등은 모두 제각각 독립적인 단서들이며, 친할머니에게 하이타니가 사기를 쳤기 때문에 살해했다는 시라이시의 동기도 시라이시 겐스케의 어린 시절 사진과 호적 등본이라는 독립적인 단서로 밝혀지거든요. 즉, 이 단서를 먼저 접했다면 중간의 다른 조사는 불필요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의 단서가 다른 단서로 이어지는 식의 정교하게 잘 짜여진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가즈마와 미레이가 힘을 합치게 되는 과정에 따른 빌드업만 있을 뿐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시라이시를 살해한 안자이 도모키의 동기를 설명하는 일종의 에필로그는 최악이었습니다. 소년은 자기 가족을 불행에 빠트린 진범을 응징했다고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이는 거짓말이었고 단지 살인에 흥미를 느껴 저지른 범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라이시가 고백하지 않아서 어머니가 이혼을 한건 명백한 사실이니 소년은 시라이시에 대해 원한을 가질 이유는 충분해요. 구태여 중학생 싸이코패스 설정을 집어넣어 이야기를 흐릴 이유는 없었습니다. '촉법소년' 제도를 고발하기에는 안자이 도모키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부족해서 별로 와 닿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이미 충분히 고통을 겪은 후쿠마 준지의 딸 아사바 오리에가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누명을 쓰고 자살하고, 어머니와 자기는 살인자의 딸이라며 손가락질 받다가 이혼까지 당했고, 연심을 품었던 남자(구라키) 는 사랑을 받아주지도 않고 죽었는데 아들까지 살인범이 되었다니.... 이렇게까지 기구하고 잔혹하게 쓸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있게 읽었고, 생각할 거리도 많지만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부르기에는 한없이 미흡했습니다. 다른 작품들을 읽으셨다면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 없습니다.

2023/10/25

명탐정 코난: 하이바라 아이 이야기 ~흑철의 미스터리 트레인~ (2023) - 이시하라 슌스케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난과 친구들은 출발 후 추리 게임이 진행되는 '미스터리 트레인'에 탑승했다. 코난과 소년 탐정단에게 추리 게임 미션을 알려주는 봉투가 전달되었고, 란과 소노코 일행의 다른 미션으로 우왕좌왕하던 중 밀실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이바라 아이가 도주 중인 '셰리'라는걸 알아챈 검은 조직의 베르무트도 열차에 탑승해 아이를 노리는 상황에서, 코난은 밀실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모든 인맥과 방법을 총 동원하는데....


추석 연휴를 맞아 딸아이와 함께 티빙으로 감상한 "명탐정 코난" 최신작. TV 시리즈의 총집편이라고 하네요. 리뷰가 좀 늦었습니다. 
시리즈를 제대로 안 본지는 꽤 오래 되었기에, 아이의 정체가 조직에게 들통난 까닭을 몰라 이야기의 흐름을 온전히 쫓아가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본편 사건만큼은 정통 본격 추리물에 가까운 이야기라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그동안의 코난 극장판은 아동용 모험물이나 팬 서비스 성격이 강했다면, 이 작품은 추리물로도 평균 수준은 되더라고요. 특히 걸쇠의 연결 고리를 추가하여 밀실을 만들었다는 트릭이 현실적이라서 좋았습니다. 코난이 시야각 - 사건이 일어난 방에서만 반대편 의자가 보였다 - 을 통해 이를 알아낸다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던 부분입니다.
다만 범인이 문에 거울을 붙이는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사라졌다는건 다소 억지스러웠습니다. 설치와 제거에 시간도 오래 걸릴테고, 차장이 거울을 보고 있다는걸 눈치챌 수도 있는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거든요. 그래도 이는 걸쇠 연결고리와 함께 범인이 피해자 무로바시의 객실을 바꾼 이유를 설명해 주기는 합니다. 중간 위치여야 차장을 속일 수 있고, 낚싯줄을 설치해 문을 열고 닫으려면 범인은 피해자 객실 옆방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화재 사건의 피해자일 승객이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는걸 보고 수상하다는걸 간파하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고요. 

제목 그대로 하이바라 아이의 팬 입장에서의 볼거리도 많습니다. 대표적인건 언제나의 앞부분 코난의 소개 부분을 하이바라 아이가 대신한다는 겁니다. "불가능을 모르는 명탐정!""미라클 큐티 사이언티스트!"라고 바꾼건 귀여웠어요. 총집편답게 하이바라 아이의 과거를 간략하게나마 과거 영상을 사용하여 짚어주기도 하고요. 분량도 적고 작화도 옛날 것이기는 하지만 옛날 에피소드를 전혀 알지 못하는 딸이 아이의 과거를 알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검은 조직 일당들과 아무로 토오루, 세라 마스미에다가 괴도 키드까지 등장인물도 많고 베르무트와 쿠도 유키코의 대결도 흥미로왔어. 사건에 개입하면 짜증만 불러일으키는 소년 탐정단 녀석들의 등장이 극히 미미하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갑자기 괴도 키드가 튀어나온 이유라던가 하이바라는 대체 어디 숨어있었는지, 그리고 베르무트가 하이바라의 생존을 알았지만 함구한 이유 등이 설명되지 않는건 좀 답답했습니다만 추리물로의 코난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충분히 좋은 선물이었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조금 찾아보니 원작에 있는 이야기인 듯 한데, 아직 코난 원작은 본격 추리물 장르 역할은 하고 있나 보군요. 안심했습니다. 원작도 좀 챙겨봐야겠군요.

2023/10/22

이상한 집 - 우케쓰 / 김은모 : 별점 1.5점

이상한 집 - 4점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리드비
<<아래 리뷰에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묘한 집 평면도를 가지고 범죄의 가능성에 대해 추리했던 글이 있었습니다. 원문을 처음 읽었을 때는 굉장히 감탄했었습니다. 아래의 평면도인데요, 별 관심없이 본다면 그냥 지나칠 그림이지요.
하지만 평면도에서 부엌의 불필요한 공간이 2층 아이방과 겹쳐지고, 2층 아이방은 창문 하나 없이 폐쇄된 공간이라는 것에 주목하여 이 집은 "아이 방을 통해 욕실로 이동하여 사람을 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이라는 추리가 그럴듯하게 펼쳐지는게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잘라낸 사체를 옮기는 방법까지 완벽하게 설명해 주고요. 이런 이야기라면 책으로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책은 제 생각과는 굉장히 다르게 아주 별로였습니다. 재미있었던 원문은 역시나 감탄스러웠지만, 뒤에 덧붙여진 이야기와 진상이 모두 수준 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원문에 이어지는 다른 집의 평면도를 활용한 이야기는 원문을 그대로 반복할 뿐이며, 어린아이 살인자 이야기가 진짜였다는걸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왼손 공양' 설정은 최악이었습니다. 가문에 전해져 내려온 의무때문에 어린 아이에게 살인을 저지르게 하고 왼손을 절단하여 공양했다? 기발함이나 신선함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설득력도 전무합니다. 오히려 이런 만화같은 설정 탓에 "평범해보이는 평면도에서 기묘하지만 있음직한 추리를 끌어낸다"는 핵심 재미마저 희석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런 3류 괴담같은 억지 설정보다는 차라리 히키코모리 아이에게 음식을 배달하기 위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던가 하는 식의 현실적인 설정이 더 바람직했어요.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 인터넷을 통해 원문을 읽으셨다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소설 형태로의 각색을 하느니, 원문이 연재된 사이트의 저자 글들을 그대로 번역해서 책으로 만드는게 나았을 겁니다.

2023/10/21

해변의 카프카 상/하 - 무라카미 하루키 / 김춘미 : 별점 4점

해변의 카프카 -상 (양장본)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문학사상사
해변의 카프카 -하 (양장본)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문학사상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중 하나죠. 1990년대 이후 하루키의 장편 소설을 완독한건 처음이네요. 1Q85는 2권까지는 읽었는데 완독에는 실패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상징과 은유, 그리고 정확하게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모호한 부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모험 소설같은 재미를 가져다 주는 덕분이지요.

많은 분들이 각자 다른 줄거리와 해석을 내 놓고 있는데, 저는 다른 분들처럼 이 책에 대해 저만의 해석을 내 놓을 정도로 깊이있게 읽지 못했기에 뭔가 설명드리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따로 자료를 찾아보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개인적인 기록 차원에서 제 해석과 상상의 결과물을 짤막하게 정리해봅니다.
제 생각에는 다무라 카프카는 사에키 씨의 첫사랑 그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이 죽은 뒤 사에키 씨는 소년의 환생(?)을 위해 문을 열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그 댓가(?)로 소년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결국 둘이 다시 만났지만 다무라가 문 안 세계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사에키 씨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즉, 과거는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결말인 셈입니다. '문' 안의 세계에서 세상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문 안에서 통제할 수 있었던 나카타 노인을 이용하여 '문'을 열고 닫으며, 사에키 씨에게 끝맺음을 알리는 등의 과업을 시켰고요.

'문' 안에서의 의지는 누구의 것인지, '문' 안의 세계를 위협하는 '피리부는 남자'는 누구인지 등은 아직도 모르갰습니다. 다무라 카프카의 아버지인건 분명한데, 왜 '죠니 워커'가 되어서 나카타 노인에게 살해당하는지는 설명이 되지 않거든요. 마지막에 문 안으로 다시 돌아가려 했던 괴이한 생명체와 같은 존재라면, '문' 밖으로 나와 사에키 씨를 만나 다무라를 낳았지만 '문' 안으로 돌아가기 위해 항상 노력해왔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같은 존재인 거지요. 차이라면 자식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는 원인이 되는게 아니라, 자식을 이용해서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려 했던 것 같고요. 이건 다 제 상상일 뿐입니다만.... 그래도 잘 모를 이야기를 이렇게 뭔가 있는 듯, 그리고 재미있게 풀어내는건 분명 놀라운 재능입니다. 감탄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이런 것들은 읽다보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도 전부 '어떻게든 되겠지'하면서 일을 저지르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특히 호시노 군의 활약이 놀랍습니다. 양아치 출신 트럭 운전사였지만 나카타 노인과 함께 했던 짧은 모험을 통해 그는 인간적으로, 정서적으로 분명한 성장을 보여줍니다. 베토벤의 '대공 소나타'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식입니다.

다만 '사랑의 완성' 이라던가 '관계의 끝맺음'을 '섹스'라는 형태로만 풀어낸건 아쉬웠습니다. <<노르웨이의 숲>>도 그랬었지만, 이 작품은 어머니일 수 있는 사에키 씨와 다무라 카프카가 관계를 갖는 묘사가 등장하는 등 그 수준이 한층 더 과했습니다. 좀 변태적이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이런 점 때문에 제 딸에게 권해주지도 못하겠어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상 속 비일상적인 상황과 다무라 카프카, 나카타 노인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엄청난 개성, 각 장면마다 빚어지는 상세한 묘사들은 대단합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23/10/20

히가시고 게이고 추천 작품 30선

"'정말 아까운 (못타이나이)' 책방" 이라는 이름의 일본 중고 서점에서 직원이 선정했다는 히가시고 게이고 추천 작품 30선입니다. 2022년 5월에 발표된 기사라서 아주 최신작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래의 작품들입니다. "유성의 인연"은 다른 리스트에서도 높은 순위로 선정되었던데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선정된 작품들이 추리물보다는 드라마 쪽 비중이 높은게 영 불안하기는 합니다만.....

2023/10/18

2023 두산 베어스 정규시즌 단평

KBO 레전드 이승엽 선수를 새로운 감독으로 맞아들이며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2023년 두산 베어스의 정규 시즌이 끝났습니다. 간략하게 평을 정리해봅니다.

제 평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겁니다.
작년 대비 외국인 선수의 합산 승수는 +10승이었습니다. 양의지 선수의 WAR은 박세혁 선수보다 +4이상이니 작년보다 14승을 더한 74승을 거두고 5위를 차지한건 일견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작년보다 빼어난 성적을 거둔 곽빈, 최승용 선수 등의 스텝업이 반영되어 있지 않으며, 역시나 작년보다는 뛰어난 성적을 거둔 외국인 타자, 양석환 선수, 정수빈 선수 등의 성적도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야수들 성적도 작년보다는 좋았습니다.
즉, 단순 +/-로는 더 많은 승수를 거두었어야 하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지 못했을까요? 팀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실패한 탓이라 생각합니다. 올해 두산 베어스에서 가장 내세울 만 했던건 괜찮은 선발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키는 야구로 가는게 당연했는데 여기서 감독의 패착은 두가지에요. 첫 번째는 "지키지도 못했다"는 것과 두 번째는 "지킬 점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첫 번째는 믿었던 박치국, 정철원, 홍건희 선수의 부진 탓이니 온전히 감독의 탓이라고 보기는 힘들긴 합니다 (정철원 선수는 작년의 혹사도 영향을 미쳤을테니까요). 그리고 계투진을 혹사시키지 않고 성적이 나올 수 없는게 KBO의 현실이니 어느 정도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는 명백히 이승엽 감독의 잘못입니다. 알칸타라 선수를 비롯한 선발진이 잘 버텨주었지만 패한 경기가 수도 없는데, 이 경기들 대부분 베어스는 한, 두 점 밖에는 내지 못했습니다. 10개 구단 통틀어 타점이 꼴찌니 더 말해 무얼하겠습니까.
그렇다면 한 방을 쳐 줄 수 있는 타자 위주로 기용해야 했는데, 감독은 한 점 짜내기 전문의 발야구 담당 선수들을 중용합니다. 이게 맞는 방향입니까? 도대체 왜 조수행 선수가 김인태 선수보다 더 많은 기회를 받아야 하죠? 올해만 보나 통산으로 보나 베스트 시즌으로 보나 두 선수의 타격은 급이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2군 무대를 평정하다 못해 지배했던 홍성호 선수라던가, 타격으로는 2군에서 더 보여줄게 없는 김민혁 선수 등을 기용하지 않는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조수행 선수에게 줄 기회를 저 선수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었어야 합니다.
애초에 이승엽 감독을 선임한 이유부터가 타격 생산성 향상에 방점이 찍혀 있을텐데, 이래서야 김태형 감독 시대와 비교해서 더 나은 점을 찾기 힘드네요. 마찬가지 이유로 포스트시즌도 별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감독의 능력이 더 중요한 경기들이니....
 
5위 확정을 한 날, 이승엽 감독을 향한 야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날 야유를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감독으로서 잘못하고 반성할 부분을 느끼고 다음 시즌에는 모쪼록 다른 모습으로 이승엽 감독만의 두산 베어스 팀 컬러를 찾아서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깡패곰, 육상부, 판타스틱 4 등 다양한 수식어가 있었던 과거의 두산 베어스와 비교해볼 때 올해의 두산은 뭐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23/10/15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운을 즐기자! '기묘한 맛'의 신구 단편 모음집



honto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천. 대부분 국내 소개된 작품들입니다. 원조이자 대표작인 "특별 요리"를 추천하지 않았는데, 국내 출간되지 않은 마지막 작품 대신 "특별 요리"를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3/10/14

야시 - 쓰네카와 고타로 / 이규원 : 별점 3점

야시 - 6점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노블마인

<<아래 리뷰에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람의 도시>>
나는 일곱 살 때 '고도'라고 불리는 기묘한 거리를 지나갔던 적이 있었다. 열두 살이 되고 친구 가즈키와 다시 고도를 찾은 나는 빠져나가지 못하다가 고도 주민 렌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고모리와 렌의 싸움에 말려들어 가즈키가 죽고 말았다. 고도의 물건은 원래 세계로 가지고 돌아갈 수 없다는 규칙 탓에 가즈키의 시체를 옮길 수 없게 되었고 (시체는 고도의 소유물) 렌과 죽은 사람을 살려낸다는 사원으로 향했다. 렌은 여행하며 나에게 과거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고도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고모리가 살해했던 니시무라 쇼헤이였다. 사원에서 죽은 사람을 아이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었는데, 쇼헤이의 연인이 쇼헤이를 자신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게 했던 것.

<<야시>>
이즈미는 호감을 갖고 있던 친구 유지와 함께 이상한 시장 '야시'를 방문했다. 그곳은 이형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물건을 사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유지는 자기가 어린 시절 팔아넘겼던 동생을 되사기 위해 야시를 찾았었는데, 납치업자가 유지에게 팔려고 했던 건 동생이 아니었다. 이 사실을 알고있던 신사는 납치업자의 목을 베어 죽였다. 알고보니 그가 바로 유지의 동생이었다.

쓰네카와 고타로의 호러 판타지 소설. 제 12회 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으로 국내에 소개된지도 15년이 넘어가는, 조금 오래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처럼 살아있는 사람은 거의 갈 수 없는 거리를 우연히 방문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은 많습니다. 보통은 낯선 공간에서 낯선 존재에게 쫓기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곤 하지요. 조금 성격은 다르지만 <<인스머스의 그림자>>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테고요.
하지만 <<바람의 도시>>에서는 친구가 죽고, <<야시>>에서는 이공간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공포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는데도 불구하고 공포스럽다기보다는 잔잔하다는게 독특했습니다. 
전개도 낯선 공간의 상세한 설정이 전개를 통해서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도록 잘 짜여져 있습니다. <<야시>>의 경우 유지가 어린 시절 동생을 팔아넘겼던 과정 설명도 설득력이 넘칠 뿐 아니라,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 '야시의 상인은 규칙을 어기지 않는 한 죽일 수 없다'는 등의 설정이 전개에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즈미를 데리고 온 이유도 야시의 규칙을 이용하여 이즈미에게 자신을 팔어넘기게끔 - 동생을 구입하기에는 돈이 모자라니, 유지를 납치업자에게 팔고 대신 동생을 구입하는 식으로 - 하려고 했다는 의도를 드러내며 합리적으로 설명해주고 있고요. 신사가 알고보니 유지의 동생이었다는 반전도 그럴듯했습니다.이즈미가 이미 납치업자와 거래를 끝냈기 때문에, 유지는 야시에 속하게 되어서 야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결말도 좋았어요.
그 외에도 기묘한 공간의 여러가지 물건들과 장소들에 대한 설정 역시 상세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바람의 도시>>도 렌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까지 고도에 대한 설정과 단서, 복선을 잘 배치하여 설득력을 높이는 전개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렌의 엄마가 왜 떠났는지, 고모리가 왜 사람을 죽였는지 등은 설명되지 않으며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가 여정 중심이라 정교한 맛은 조금 떨어집니다.
 
그래도 별점은 3점. 어딘가에서 본 듯한 소재들 투성이지만 작가만의 설정을 더해 새로운 재미를 전해줍니다.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딱 한가지 단점이라면 '호러'를 기대했는데 전혀 무섭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호러 소설보다는 일본풍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읽기 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호러 대상에 대한 신뢰가 점점 사라져가네요. 

2023/10/13

COCKTAILS WITH PHILIP MARLOWE, SAM SPADE, AND BOGART

예전에 제가 썼던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이라는 에세이에서 추리 소설 속 칵테일에 대해 소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셜록 홈즈가 연재된 잡지로 영원히 기억할 "The Strand Magazine"에서 비슷하게 하드보일드 탐정들과 칵테일에 대한 칼럼이 있길래 번역해보았습니다. 수준은 엉망이고 의역도 많으니 내용 참고 정도로만 보아 주세요.
"I like liquor and women and chess and a few other things."- 필립 말로우 <<기나긴 이별>>

누아르 속 탐정의 이미지는 샘 스페이드 역의 보가트, 하루 일당을 받고 갱스터와 팜므파탈과 싸우는 하드보일드 탐정 필립 말로우 역의 로버트 미첨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상징적인 영화와 배우들을 통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가상의 탐정들 캐릭터는 그들이 선택한 술에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고요. 분홍색 빨대와 함께 제공되는 프로즌 다이키리는 없습니다.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진하면서 요란하지 않은 클래식 음료를 마셨지요. 지저분하고 어두운 술집이나 구식 호텔 바, 스테이크 하우스 옆 칵테일 라운지, 현지 펍에서요.
"어둡고 연기가 자욱한 바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음모를 꾸미고, 비밀을 밝히고, 속삭이는 고백에는 낭만적인 느와르가 있습니다."라고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 리사 웅거(Lisa Unger)는 말합니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탐정 필립 말로우는 열렬한 애주가였습니다. 그는 항상 사무실에 올드 포레스터 버번 한 병을 보관했습니다. "나는 손을 뻗어 올드 포레스터 병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병은 3분의 1 정도 차 있었다."라고 소설 <<리틀 시스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 토비 위디컴이 쓴 <<레이몬드 챈들러를 위한 독자 가이드>>에는 챈들러 작품 속 등장 음료에 대한 목록이 실려 있습니다. <<핑거맨>>에는 바카디가, <<빅 시티 클루스>>에는 바카디와 그레나딘이 등장합니다. <<더 하이 윈도우>>에는 포 로즈 위스키가 등장하고요. <<라온트 피전>>에는 더블 깁슨이 있습니다. 이 목록에는 올드 그랜드대드 위스키와 브루클린 스카치도 포함됩니다.
칵테일 문화에 대해 말로는 영구히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바로 김릿에 대해서였습니다. 소설 <<기나긴 이별>>에서 영국 출신이자 열렬한 애주가인 테리 레녹스는 필립 말로우에게 "진짜 김렛은 진 반, 로즈 사(社)의 라임 주스 반을 섞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섞지 않는 거죠. 마티니는 비교도 안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뒤 말로우가 혼자 바에 갔을 때, "바텐더가 내 앞에 음료를 갖다 놓았다. 라임 주스 때문에 엷은 녹색 기미가 있는 신비한 노란 빛깔이었다. 입을 대 보니 부드러운 단맛과 날카롭게 혀를 찌르는 강한 자극이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나를 보았다. 그리고 자기 잔을 들어 내 앞에 올려 보였다. 우리는 함께 마셨다. 그제서야 그녀의 음료도 똑같은 것임을 알아차렸다." 라고 했지요.

김릿
진 2온스 
로즈 라임 주스 ¾온스 
얼음과 함께 쉐이커에 넣은 뒤 30초간 세게 흔든다. 칵테일 잔에 따른다.

대쉴 해밋의 사립 탐정 샘 스페이드는 위스키를 즐겨 마셨고, 해밋의 코믹한 부부 범죄 해결사 닉과 노라 찰스는 칵테일 잔을 손에 들고 있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닉 찰스가 1934년 소설 <<씬 맨>>에서 묘사한 것처럼, 이들은 완벽한 칵테일을 만드는 전문가였습니다. 닉은 "중요한 것은 리듬입니다. 항상 쉐이킹에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맨해튼에서는 폭스트롯 음악에 맞춰, 브롱크스에서는 투스텝 음악에 맞춰 흔들지만 드라이 마티니는 항상 왈츠 음악에 맞춰 흔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작가 제임스 크럼리의 미스터리 소설은 술집과 맥주, 초라한 인물들로 가득합니다. 1975년에 발표한 소설 <<잘못된 사건>>에서 사립 탐정 밀로 드라고비치는 음주에 대해 긴 독백을 합니다. "아들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독선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 절대 믿지 마라. 그는 항상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테니까. 그들 중 일부는 선한 사람이지만 선의 이름으로 세상의 대부분의 고통을 야기한다. 그들은 심판자이자 간섭자야. 그리고 아들아,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남자는 절대 믿지 마라. 그들은 보통 겁쟁이나 바보, 그렇지 않으면 비열하고 폭력적인 무언가를 내면 깊숙이 두려워하고 있는 놈이기 때문이야. 자신을 두려워하는 남자는 믿을 수 없단다. 하지만 가끔 변기 앞에 무릎을 꿇는 남자는 믿을 수 있다. 그는 겸손과 인간 본연의 어리석음,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무언가를 배우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야. 남자가 더러운 변기에 내장을 내밀 때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지."

사람들이 미스터리를 쓰는 한, 술을 좋아하는 탐정은 계속 존재할겁니다. 사립 탐정은 힘든 직업입니까요. 긴 근무 시간과 낮은 급여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은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가끔은 미키 스필레인의 소설 속 주인공 마이크 해머처럼 술집에 가서 주문을 해 봅시다. "더블 버번 한 잔, 병은 놔두게."

2023/10/11

슈퍼맨 : 레드 선 - 마크 밀러 외 / 최원서 : 별점 2점

슈퍼맨 : 레드 선 - 4점
마크 밀러 외 지음, 최원서 옮김/시공사(만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슈퍼맨은 공화국 동지들을 위해 스탈린의 뒤를 이어 위대한 지도자가 된 후, 뛰어난 능력으로 전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다. 오직 슈퍼맨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는 렉스 루터가 버티고 있는 미국을 빼고. 그러나 슈퍼맨의 독재와 인류에 대한 간섭이 심해지자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배트맨 등 반대 세력이 등장했고, 결국 슈퍼맨은 렉스 루터에게 패배하고 세계의 패권을 그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걸작이라고 소문난 작품. 이번 추석 연휴 때 우연찮게 읽어보았습니다. 
소련의 영웅이 된 슈퍼맨 뿐 아니라 배트맨의 부모를 죽인게 스탈린의 서자이자 비밀경찰의 우두머리였던 표토르였다던가, 그린 랜턴 할 조단을 공산주의와 싸우는 미국 해병대원으로 각색하는 식으로 여러 DC 히어로들의 신화를 비틀어 이야기에 적절히 녹여낸건 볼 만 했습니다. 단순히 설정 변경 놀이보다는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였어요. 슈퍼맨이 다른 지구에서 와서 태양광 - 레드 선- 을 받으면 힘이 약해진다는 반전도 괜찮았고요. 붉은 군대, 즉 소련의 리더의 정체성과도 잘 엮이는 멋진 설정이었습니다. 후술할 어이없는 결말보다는 이 설정을 더 잘 살리는 쪽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는게 좋았을겁니다.

그러나 전개는 평이해서 특별히 재미를 느낄 부분은 별로 없었습니다. 배트맨과 원더우먼은 비중에 비하면 하는게 너무 없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슈퍼맨이 아래와 같은 렉스 루터의 편지 하나에 큰 죄의식을 느끼며 무너져버린 뒤 렉스 루터가 이를 40년 전부터 계획했다는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설명이 부족했어요. 슈퍼맨이 세계를 지배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렉스 루터 따위가 걸림돌이 될 까닭도 없고요.
번역도 이상할 정도로 읽기 힘들었는데, 번역 결과물이 원전을 충실히 반영한 것인지도 살짝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23/10/08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 히가시노 게이고 / 최고은 : 별점 2점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마술사면서 사기, 거짓말, 위조도 서슴치 않는 안티 히어로 '블랙 쇼맨' 다케시 삼촌이 활약하는 단편집. 전작은 묵직한 장편 추리물이었던 반면, 이번 작품들은 가벼운 단편 범죄 드라마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웠습니다. 핵심 매력 포인트였던 다케시의 안티 히어로적인 속성이 거의 사라진 탓이 큽니다. 손님들을 위해 솜씨를 발휘하는, '정의의 바텐더'로 캐릭터가 변해 버렸더라고요. 사건들도 대단한 추리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결말도 거의 예상대로였습니다. 칵테일이 주요 소재로 쓰이는 등의 소소한 디테일만 괜찮았어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후속작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기대는 되지 않는군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맨션의 여자>>
마요는 손님 우에마쓰 가즈미와의 미팅 장소로 다케시 삼촌의 바 '트랩핸드'를 이용하게 되었다. 다케시는 거짓말과 사기로 가즈미 남편의 지인인 척 했다.
어느정도 마요, 다케시와 친해진 가즈미는 다케시의 바에서 오래전 연이 끊긴 오빠 유사쿠와 만나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흔쾌히 허락한 다케시와 마요는 도청장치로 유사쿠가 가즈미가 가짜라고 협박하는걸 들었다. 다케시는 간단한 조사와 추리로 가즈미는 가짜가 맞지만 진짜와 협력했을거라 생각하고, DNA 검사를 요구하는 유사쿠를 가짜 사진으로 물리친 뒤 가즈미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나나에는 가즈미의 부탁으로 역할을 수행했고, 그 이유는 췌장암으로 곧 죽게 되는데 유산이 자기에게 끔찍한 짓을 한 오빠에게 상속되는걸 막기 위해서였다.

다케시가 사기꾼으로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가짜 가즈미의 정체를 꿰뚫고, 조작한 사진으로 유사쿠를 물리치는 등의 활약을 보이는 전반부, 그리고 나나에의 입을 통해 가짜 가즈미가 된 이유가 설명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탐정(?)의 활약과 범인(?)의 고백이 1, 2부 구성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셜록 홈즈와 같은 고전 추리물을 연상케합니다. 

다케시의 DNA 검사 요구를 퇴치하기 위해, 유사쿠는 아빠의 블륜으로, 가즈미는 엄마의 불륜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사실을 조작한건 기발했는데, 그 외에는 딱히 눈여겨 볼 부분이 없습니다. 나나에와 가즈미가 꼭 닮았다는 우연에 모든게 기반하고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고요. 이런 우연보다는 가즈미의 재산을 이용하여 나나에에게 성형 수술을 시켜주고, 회복 기간 동안 바꿔치기를 위한 학습을 했다고 풀어가는게 더 현실적이었을거에요. 추리, 범죄물이라기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다는 점도 아쉽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위기의 여자>>
나미는 만남 어플로 만난 기요카와로부터 그가 가지고 있다는 하와이 별장 이야기를 듣고, 함께 트랩핸드에 방문해서 칵테일 '블루 하와이'를 마셨다. 연이어 자기 재산을 자랑하던 기요카와는 다케시의 칵테일 한 잔을 더 마신 뒤 미친듯이 졸려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알고보니 기요카와는 어플로 만난 여자에게 재신이 많다는 거짓말로 환심을 산 뒤, 수면제를 먹인 뒤 몹쓸 짓을 하는 악당이었습니다. 이를 꿰뚫어 본 다케시가 술잔을 바꿔치기했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칵테일 '블루 하와이'가 트릭의 주요 소재로 사용된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면 유도제가 범죄에 악용되는걸 막기 위해 물에 녹으면 파랗게 변하게 만들었는데 (일본 이야기겠지요?), 그걸 숨기기 위해 원래 색이 파란 블루 하와이를 선택했다는 아이디어가 괜찮았거든요. 바텐더 다케시에게도 어울리는 소재였고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후속작이 나온다면 추가되어도 좋을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다케시가 기요카와의 수작을 눈치채고 경고를 하기 위해 '비트윈더시트'를 대접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재료만 듣고 칵테일 이름을 떠올리고, 이게 '경고'라고 느낄 사람은 많지 않을테니까요. 또 같은 재료라도 비율에 따라 여러 결과물이 나오는게 칵테일이라서, 경고의 의미로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뭐, 이 모든게 다케시 삼촌의 억지라면 할 말이 없지만요.

그래도 나름 트릭도 사용되었고, 다케시의 활약도 빛나며 기승전결도 깔끔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환상의 여자>>
유즈키는 치과의사이자 재즈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도모야와 불륜 관계였다. 그러나 도모야갸 교통사고로 죽은 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다독이는 절친 야요이와 함께 트랩핸드를 찾은 유즈키는 도모야가 과거 요코스카에서 연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모야의 과거를 되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코스카에서 도모야가 '딸'이라는 여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걸 알아내는데....

표제작. 도모야가 딸과 함께 보냈던 과거는 모두 조작으로, 유즈키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려는 친구 야요이의 계획이었다는 내용.

불륜녀인 친구를 위해 본처를 설득하기까지 한 친구 야요이의 엄청난 노력은 절절이 전해집니다만, 이런 계획이 유즈키의 새로운 시작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차라리 요코스카에서도 불륜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조작해서 정나미가 확 떨어지게 했더라면 모를까요. 불륜녀의 사랑이야기라는 소재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재미도 없고 알멩이도 없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3/10/07

방황하는 칼날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2점

방황하는 칼날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하빌리스
<<아래 리뷰에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번 생긴 ‘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령 가해자가 갱생하더라도 그들이 만들어낸 ‘악’은 피해자들 속에 남아, 영원히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나가미네가 아내와 사별 후 홀로 키워왔던 딸 에마가 강간 살해당했다. 좌절한 나가미네에게 범인이 도모자키와 스가노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었고, 메시지 속 주소로 도모자키의 집에 잠입한 나가미네는 에마가 강간당하는 동영상을 확인하고 분노에 휩싸여 도모자키를 잔혹하게 죽였다. 그리고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스가노가 있다는 나가노 현으로 향했다. 도모자키 살해범이 나가미네라는걸 알아낸 경찰 역시 그의 뒤를 쫓는데....

우연찮게 제 구글 홈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한국 영화 소갯글이 떳길래 잠깐 찾아보았다가 급 호기심이 생겨 구독 중인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무섭다 알고리즘!

작품은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도 가벼운 형을 선고받는게 과연 옳은지를 비판하는 사회파 범죄 소설입니다. 미성년자 범인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극도로 흉악하게 설정한 덕분에 읽는 내내 나가미네에게 감정이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딸이 강간 살해당했다면 어떤 아버지가 가만 있을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 상황의 동영상까지 보았다면 피가 꺼꾸로 솟는다 정도의 말로는 부족한 분노에 휩싸이는게 당연합니다. 때문에 범인들 - 특히 도주한 스가노 - 이 나가미네에게 합당한 응징을 받기 원하며 응원하면서 읽었습니다. 
미성년자 범죄에 대해 강력한 응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다시 하게 되었네요. 요새처럼 아이들 성장이 빠른 시기에 오래전 잣대를 기준으로 판단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저는 중학생부터는 성인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관용 원칙으로요. 하긴 그래봤자 술을 먹어서 심신 미약이었다던가, 초범이라던가, 깊이 뉘우치고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빠져나올 놈들은 다 빠져나오는게 현실이라는게 더 씁쓸하기는 합니다만.
최근 언론에 언급되는 여러 학부모들의 민원(?)과 같이, 미성년자 범죄자들의 부모들의 눈 뜨고 못 볼 작태들도 잘 묘사됩니다. 이런걸 보면 미성년자 범죄는 그 부모도 함께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 역시 무관용 원칙으로요.

하지만 나가미네가 결국 응징에 실패하고 경찰에게 사살당한다는 결말은 씁쓸했습니다. 이 마지막 장면, 그리고 경찰 수사 과정과 경찰들의 생각을 통해 경찰의 자괴감 - 그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죄를 저질러도 어떤 보복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국가가 그들을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나?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 ‘악’을 벨 힘을 가지고 있나? - 을 잘 드러내기는 하나 독자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어요.
특히 경찰 히사쓰카 반장이 나가미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는 반전은 최악이었습니다. 자수를 결심했던 나가미네가 사살당한건 히사쓰카 반장이 준 정보 탓입니다. 이렇게 애매한 정보만 전달하고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하기 보다는 직접 수사를 뛰는 마노, 오리베와 같은 부하들을 설득해서 더 적극적으로 나가미네를 도와주는게 맞지 않았을까 싶어요. 과거 유사 범행의 수사를 맡았던 경험 때문이었다는 동기도 별로 와 닿지 않고요. 
정보를 나가미네의 핸드폰으로 보내는 것도 당황스러웠어요. 잠깐이라도 핸드폰을 켜서 메시지를 확인하면 현재 위치가 바로 추적되지 않나요? 경찰이 이 정도 수사도 하지 않는다는건 솔직히 억지스러웠습니다.

짜임새도 헐겁습니다. 중간에 매스컴이 단순히 화제와 시청률을 위해 보도를 벌이는 장면은 그냥 뻔한 이야기를 답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펜션 여주인 와카코가 나가미네에게 협력자가 된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나가미네에게 협력자가 필요했던 상황도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은신처를 제공받으며 스가노 추적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그녀 없이도 이야기를 풀어갈 방법은 많았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없으면서 하룻밤 보낼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스가노가 폐업한 펜션에 숨어 있을 수 있다는걸 깨닫는게 훨씬 자연스러웠을거에요.
그리 기대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추리적인 요소도 거의 없습니다. 나가노에 있던 나가미네가 범인 스가노에게 안도감을 주기 위해 일부러 아이치에서 편지를 보냈다는 정도만 약간 머리를 쓸만 했을 뿐입니다.

한국 영화 소개를 보니 제가 언급한 단점들을 인지했는지 보다 명확하게 이야기를 정리한 듯 하더군요. 펜션 여주인 와카코의 존재를 지우고, 직접 수사에 뛰어든 형사가 정보 제공도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결국 나가미네가 사살당하는건 변함이 없던데, 자수해서 집행유예를 받은 뒤, 스가노를 끝없이 추적한다는 결말은 어땠을까 싶네요. 다른 피해자 가족들과 연대해서요. 스가노 같은 녀석 때문에 인생을 망칠 이유는 없습니다. 군자의 복수는 몇 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 법이고요. 살아서 스가노와 그 일당, 가족들에게 영원한 지옥을 선사하는게 복수로서 더 의미가 있었을겁니다. 지금의 죽음은 그냥 개죽음이니까요.

하여튼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몰입해서 읽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완성도와 결말 부분은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덧붙이자면, 범죄자 가족이라고 모두 고통받아야 하는지? 에 대해서 히가시노 게이고 자신이 <<편지>>를 통해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범죄의 종류와 범죄자 상황을 다 고려해서 선별적으로 비난하기는 불가능하니, 참 어려운 이야기지요....

2023/10/05

Nervous Breakdown 너버스 브레이크다운 1~13 - 타가미 요시히사 : 별점 3점


90년대 초, 중반 시기를 무대로 '타누마 사립탐정 사무소' 멤버들이 - 특히 브레인 역할인 안도와 액션 전담 미와 컴비 - 이런저런 사건을 해결한다는 추리 만화. 지금은 없어진 월간지 "코믹 NORA"에 연재했었지요. "그레이" 등 성인 취향의 어둡고 비정한 SF, 범죄물로 유명한 타가미 요시히사의 작품입니다. 저는 "그레이" 때부터 좋아했던 작가라 이런저런 작품들 - 예를 들어 "화석의 기억" - 을 원서로 구해 읽었었는데, 이 작품은 "메탈헌터"와 함께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유이한 작품입니다. 소개 당시 한 권씩 구입해서 읽었고,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지요. 
예전에 스핀오프 "Night Adult Children" 리뷰를 올렸던 적은 있었는데, 추석 연휴를 맞아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전 13권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등장인물들이 3등신과 8등신을 오가는 작화가 가장 큰 특징으로, 대부분의 경우 3등신인데  아래와 같이 특정 컷에서만 8등신으로 등장하는 식입니다. 


3등신 캐릭터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추리를 하고 시니컬하고 분위기있는 대사를 내뱉는게 묘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특별히 모든 등장인물들이 8등신으로만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두 편 있습니다. - 안도가 주인공인 "고즈에로 가는 마지막 버스", 미와가 주인공인 "살인자에게 인사를" - 두 편 모두 의외의 재미를 가져다주는 좋은 작품으로, 전부 8등신으로 진지하게 그렸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등장인물들도 독특합니다. 안도는 포지션은 전형적인 명탐정이지만, 정의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인물이거든요.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진범을 체포하는데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정해진 보수를 받은 만큼 일하고요. 사건 도중에 일어난 트러블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의뢰인에 대해서 "그 여자가 죽건 말건 난 상관없어"라고 말할 정도고, 아래처럼 지인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빡않는, 인정머리 없는 남자입니다.



몸이 굉장히 약하고, 여자들이 쉽게 반하는 미남이라는 속성도 붙어 있는데 이런 캐릭터는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네요. 아래와 같이 멋진 말을 남기는 장면은 과연 여자들이 반할만하다 싶기도 하고요.

"미야한테 전할 말이 있는데...."

미와는 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그 캐릭터에 가깝지만, 그 초인적인 체력이 유용하게 활용될 때가 많다는 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아래와 같이 가끔은 멋지게 등장합니다. 그냥 개그컷에 가깝지만....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작가의 추리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이 잘 녹아 있거든요. 목차부터가 고전 명작의 패러디들이 많을 정도로요. 
하지만 트릭이 사용된 본격물보다는 범죄 드라마, 스릴러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이 더 완성도가 높습니다.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전개도 좋고, 사건에 몰입하게 만드는 상황과 심리 묘사가 탁월한 덕분입니다. 죽어가는 남편의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조사에 나선다는 "어느 조용한 죽음" 처럼 잔잔한 일상계로 인간 관계를 되새기게 만드는 에피소드들도 독특했고, "고백의 십자가", "마지막 Chiristmas" 같은 일상계 러브 스토리까지 수록되어 있는 등 다루는 장르의 폭도 넓습니다. "노리코의 죽음"같이 SF 등 다른 장르물과 혼합된 사랑 이야기(?)과 미와가 맹활약하는 액션물들도 괜찮았고요. 작가도 이런 특성을 알아챘는지 뒤로 갈 수록 트릭보다는 드라마에 집중하며, 덕분에 더 볼 만해집니다.
정통 본격물 맹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 패러디들도 큰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과거 잔혹한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곳에서 실종자가 한 명 나왔지만 안도가 "아직 기껏해야 실종에 지나지 않으니까. 이런 사건은 다음 피해자가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장면처럼요. 아래의 밀실 살인에 대한 비판 역시 공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추리 만화로서 논리적이거나, 감탄할만한 트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많지 않다는건 다소 아쉽습니다. 만들기 쉬운 암호 트릭 - 10권 "산쥬노출"의 "미키가 노래하는 미버 (タレラヤ小さぃ子羊肉)"처럼요 - 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오히려 트릭이 사용된 에피소드는 다소 억지스럽기까지 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바이바이 엔젤"에서는 수조로 이루어진 밀실에서 수조를 치우는건 불가능하다고 등장인물들이 이야기하지만, 수조를 어떻게든 치웠다는게 진상이기까지 합니다. 이런건 반칙을 넘어서는 억지라고 할 수 있죠. 

3등신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인지 개그도 많은데, 안도의 약한 체력과 미와의 야수같은 육체, 의뢰인이었다가 타누마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게 되는 미야가 재벌 이나바 테츠노스케의 손녀라는 등의 캐릭터 설정을 활용한게 많습니다. 문제는 다소 뻔하고 식상한 개그들이라는 거지요. 반복적이기도 하고요. "15세" 딱지가 붙을 정도로 외설적인 개그도 많은데 작품과 잘 어울리지 않아서 안 나오느니만 못했습니다. 마지막 에피소드 "마지막은 참극"은 미와가 등장인물 모두를 죽이는 꿈을 꾼다는 내용인데,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영 어울리지 않았고요.
아울러 학산 문화사 초기 번역 소개작이라 그런지 여성의 노출 장면을 어거지로 덧칠하는 등의 문제도 크며, 3등신 캐릭터들의 얼굴 구분이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3권의 "모두가 닮은 사람"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모두가 닮았다는걸 트릭으로 써먹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다시 읽어도 여전한 재미를 가져다주는건 분명합니다. 수록작들 편차는 크지만 몇몇 작품들은 충분히 '걸작' 소리를 들을만 하다 싶고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각 권별 수록작들 제목을 소개해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제가 아는 한 원제를 달아보기는 했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1권 :
갑자기 사라져 버린 케이코
그래도 사랑스러운 여인이여
원과 면 : 점과 선
황색의 연구 : 주홍색 연구
 
2권
일요일은 죽는 날
걱정일세, 여탐정!
여름빛깔 카루이자와
타누마 소장 최후의 사건 : 트렌트 마지막 사건
얼어붙은 파도 : 얼어붙은 섬 또는 얼어붙은 송곳니
 
3권
도둑은 가득히 : 태양은 가득히
모두가 닮은 사람 : 당신을 닮은 사람
제로의 정점 : 제로의 초점
한여름 낮의 꿈 : 한여름 밤의 꿈
어느 조용한 죽음

4권
하얀 커튼 : 검은 커튼
입학 : 졸업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새빨간 거짓말
사라질 뻔한 탐정 : 사라진 남자 (?)
 
5권
새벽녘의 시선 : 새벽의 데드라인
그리고 소녀는 사라졌다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변호인측 괴인 : 검찰측 증인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내일도 무사하게 하소서

6권
오발탄
타누마 가의 일족 : 이누가미 일족
노리코를 위하여 : 요리코를 위해
분수령
마진테 부인은 죽었다

7권
귀여운 설녀
어느 비오는 오후 갑자기
Midnight Fool
매장 지도
50의 살인

8권
시체와 여행하는 남자 :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고백의 십자가 : 공허한 십자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남자들
토모여, 고이 잠들라 :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기타가타 겐조)

9권
바이바이 엔젤 : 바이바이, 엔젤
추억의 매장
모르그 가의 살인 : 모르그 가의 살인
레이디 하트브레이크
" " (무제)

10권
산쥬노출
마지막 Chiristmas
고즈에로 가는 마지막 버스 : 우드스톡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
불타는 사나이 (Man on Fire) : Man on Fire (크리시 시리즈)
치에는 어디에
사람은 어째서 살해당하는가 :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11권
악몽같은 여자 : 악마같은 여자 ("디아볼릭")
환상의 여인 : 환상의 여인
의뢰인으로부터 한마디 (과거 연재작 특별편) 시리즈
  • 귀여운 여인
  • 설녀가 보고 있었다, 또는 "고립된 산장"을 주제로
  • 울부짖는 여자

12권
보디가드
살인자에게 인사를
셀룰로이드 살인
어설픈 시체
움직이는 시체

13권
여자에게는 맞지 않는 직업 :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사랑의 탐정들
가장 위험한 유행 : 가장 위험한 게임
도중의 집 : 중간 지점의 집
리틀 루즈 걸 : 리틀 드러머 걸
마지막은 참극


본편 외에도 "스페셜 리포트"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유명 추리 소설들을 패러디한 4컷 만화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당시에 만화책이 3,500원이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모든 물가가 3배 이상은 올랐을텐데, 만화책만은 거의 오르지 않았네요.

2023/10/03

그놈의 참사 타령, 이제는 지겹다 못해 한심하다.

어제 아시안 게임에서 야구 대표팀이 대만에 0:4로 패했습니다.

패배는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런 기사가 또 올라왔네요. 기자가 참사 (慘事) 뜻이나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참사의 사전적 의미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입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지는게 비참하고 끔찍한 일인가요? 
게다가 어제 대만팀은 강팀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손쉽게 이길 수 있는 팀은 절대로 아니에요. 아니, 우리보다도 더 강팀이었습니다. 선발투수 린여우민만해도 평균 구속이 150km는 넘어보이는 빠른 공에 변화구도 수준급이더군요. 미국 마이너리그 유망주라는데, 우리나라 타선이 마이너 수준도 아니고, 못 치는게 당연했어요. 게다가 우타자도 몇 명 없어서 대응하기도 힘들었고요. 

어제 경기에 기자가 엄청난 돈을 걸었다던가 하는 개인적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다수 일반인에게는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스포츠에 참사 운운하며 관심을 유도하는 행태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상대 팀에 대한 존중과 예의도 찾아볼 수 없고요. 이런 기사는 앞으로 두 번 다시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2023/10/01

류 - 히가시야마 아키라 / 민경욱 : 별점 3점

- 6점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해피북스투유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할아버지와 의형제가 되었는지 묻자, 마 할아버지는 만두를 입에 넣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어릴 때부터 알았고, 뭐, 네 할아버지와 있으면 굶지는 않았으니까.”
리 할아버지와 구오 할아버지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는데 먹는 것과 목숨을 거는 일은 같은 거라는 사실을 이때 새삼 깨달았다. 할아버지는 함께 먹는 것, 제대로 먹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시대에 살았고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이었다.

예치우성의 할아버지가 살해당했다. 단순 강도 사건은 아니고 국공내전 때 많은 공산당원을 살해해서 원한을 샀기 때문으로 보였다. 예치우성은 대리 시험을 보다가 퇴학당해서 3류 고등학교로 전학가고, 거기서 온갖 문제를 일으키다가 대학을 떨어지고, 소꼽친구인 두살 연상 마오마오와 사랑에 빠지지만 어릴 때 부터의 친구 사오잔과 큰 사고를 치는 바람에 군대에 갔다가 마오마오와 헤어지는 등 질풍노도와 같은 청춘을 보내며, 할아버지 사건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버블 일본에 농산물 등을 수출하는 회사에 일하면서, 중국에 있는 할아버지의 의형제 마 할아버지로부터 온 편지를 받고 범인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범인은 삼촌 위우원으로, 알고보니 할아버지가 살해했던 왕커창 일가의 유일했던 생존자 아들이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의형제 슈알후의 아들인 척 하여 할아버의 양자가 되었었다.....


대만계 일본 작가의 작품.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집어들었는데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주인공 예치우성의 고등학교에서 군 생활까지가 내용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청춘 소설이자 예치우성의 성장기더라고요.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는 이력답게, 묘사는 출중합니다. 70년대 대만을 이렇게까지 실감나게 그린 작품은 정말이지 처음 보네요. 숨막히는 더위로 대표되는 이국적인 풍광이 가득하지만 70~80년대를 거쳤던 한국인 독자에게 친숙한 광경들이 많다는 것도 재미요소였어요. 가학적이고 거친 학교 생활, 무식한 군대 생활, 거리에서 노는 아이들을 비롯하여 레코드 가게에서 테이프에 노래를 녹음해준다는 등 당시 우리나라와 그리 다르지 않은 분위기가 많이 느껴진 덕분입니다. 특히 전쟁으로 본토에서 쫓겨난 외성인들과 본성인들의 갈등 상황은 분단 국가인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고요. 의형제, 의리를 강조하는건 확실히 중국스러웠습니다만.
등장인물들도 하나같이 모두 강렬하며, 이들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치우성의 그야말로 폭풍같은 청춘도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파괴적이기도 하면서, 연민도 불러일으키는 온갖 상황이 펼쳐져서 눈을 떼기 힘들정도였어요. 살짝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떠오르더군요.
치우성이 제대한 뒤인 80년대는 나카모리 아키나의 <<세컨드 러브>> 등이 언급되는데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저도 익히 잘 아는 시대니까요. 그런데 치우성이 마오마오와 헤어진 뒤 '두 번째 사랑'을 만났다는걸 의미하기 위해 이 곡을 일부러 등장시켰을텐데 이렇게 노골적인 제목보다는 은근하게 <<슬로 모션을 다시 한번>>처럼 접근하는게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영 아닙니다. 추리 소설이라고 분류할 수도 없어요. 작품 내에서 할아버지가 살해당한 사건이 중요하게 언급되며, 치우성도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살인범을 찾아나서는 노력을 펼치기는 합니다. 그러나 단서도 없고, 치우성의 수사도 근거없는 헛된 노력에 그칩니다. '분신사바'가 중요한 단서인 것처럼 등장할 정도니 말 다했지요.
범인이 삼촌 위우원이었다는건 나름대로 반전이지만, 중국에서 할아버지의 친구 마 할아버지가 보낸 사진으로 드러나는 탓에 추리의 여지는 없습니다. 이전에 쌓아 올렸던 단서들, 예를 들어 위우원이 했던 거짓말 등이 있기는 하지만 피상적이며, 단서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사건의 설득력이 부족해서 추리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위우원이 십 수년이 지난 뒤에야 예준린을 살해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예준린을 살해했을 때 치우성을 포함한 다른 예씨 일가를 모두 살해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고요. 예준린이 위우원이 슈알후가 아니라 왕커창의 아들이라는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는걸 위우원이 깨닫는건, 예준린을 살해하고도 몇 년이 지난 후입니다. 그 동안 복수를 멈추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런 점들을 본다면 이 사건은 추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위우원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진짜 아들처럼 대했다는 묘한 상황을 통해 중국과 대만 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그리는 소재로 쓰였을 뿐입니다. 치우성의 질풍노도와 같은 정춘은 과거를 벗어나 새로운 대만으로 향하는 성장통인 셈이고요.

후기를 보니 작가는 캐릭터가 마음대로 날뛰도록 작품을 쓴다던데, 그 말대로 전체적으로 완성된 이야기를 구성하고 쓰지 않은 티도 물씬 납니다. 치우성이 어리석게 사오잔과 어울리며 비슷한 사고를 치고다니는 전개도 그렇지만, 치우성이 마오마오와 헤어지게 된 이유가 둘이 이복 남매일지도 모른다는 급작스러운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황당해서 할 말을 잃게 만들더군요. 치우성이 중국으로 위우원 삼촌을 찾아가 담판을 짓는 결말도 이게 뭔가 싶었고요. 사랑하는 연인도 새로 생기고, 안정된 직장도 있는데 지금와서 왜? 라는 의문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읽는 재미만큼은 분명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우리나라를 무대로 각색할 수 있어 보이네요. 한국 전쟁 때 북한의 부역자라는 이유로 학살당했던 가족의 생존자 아이가 흥남 철수 때 남한으로 탈출에 성공한 뒤, 학살을 주도했던 국군 집안에 어찌어찌 양자로 들어갔다는 식으로요. 그리고 양부와 기묘한 애정을 쌓다가 20여년이 지난 후, 복수를 위해 양부를 살해하지만 양부가 자기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걸 깨닫고 허무함을 느낀다, 그리고 뿌리를 찾기 위해 일본을 통해 북한으로 향한다 정도로요. 
이렇게 정리하니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전쟁의 아픔과 분단이라는 현실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그리 특별한 이야기는 아닌 탓이겠죠. <<최후의 증인>>이 전쟁으로 인한 양쪽 세력의 악행과 비극을 더 잘 그려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후의 증인>>이나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