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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8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 히가시노 게이고 / 최고은 : 별점 2.5점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쿄에서 건축사로 일하는 마요는 중학교 선생으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한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으로 향했다. 현장에서 십여년 만에 만난 삼촌 다케시는 스스로 범인을 찾아내겠다며 수사에 나섰고, 마요도 삼촌과 힘을 합쳤다.
다케시는 오래전 사무라이 젠이라는 예명의 마술사여서 온갖 트릭과 심리전의 달인이었고, 덕분에 결국 범인을 알아내는데 성공하는데....

일본 추리 문학계의 거물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 제목처럼 지명이 명확하지 않은 시골마을. 주인공 마요의 표현대로라면 '이름도 없는 마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와본 적 없는 작고 평범한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답게 쉽게 읽히기는 합니다. 이런저런 수수께끼를 배치해서 흥미를 배가시키는건 솜씨도 여전했고요. 살인 사건을 저지른 범인이 누구인지? 범인은 왜 흉기를 따로 준비하지 않고 수건같은 기묘한 도구를 사용했는지? 범인은 왜 이상하게 피해자 집을 어지렵혔는지?와 같은 핵심 수수께끼 외에도 장례식장에 나타났던 모리와키 아쓰미의 정체는 무엇인지? 가미오 에이치가 도쿄까지 가서 만났던 인물은 누구인지? 모모코의 남편은 왜 간사이에 파견 근무를 갔다고 거짓말을 했는지? 마요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비밀은 무엇인지? 등 작 중에 스치듯 등장하는 수수께끼를 합치면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이에 대한 답들도 모두 합리적으로 공개되고 있고요. 최소한 불필요하게 등장해서 끝까지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맥거핀은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탐정역을 소화하는 '블랙 쇼맨' 가미오 다케시가 보여주는 여러가지 현란한 트릭들도 볼거리입니다. 도청기나 몰래 카메라같은 장치의 효과적인 사용은 기본이고, 손재주를 이용해 경찰 스마트폰을 몰래 빼돌려 정보를 입수하고, 사람들을 경험과 마술 트릭에 기반한 심리전으로 현혹시켜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는데 분명 과장되었지만, 그럴듯하게는 묘사되고 있습니다.
특히 장치, 손재주에 비해 심리를 활용하는 부분이 꽤 설득력있는 편입니다. 마요를 처음 만났을 때 "고양이를 좋아하고, 그림을 잘 그린다"고 말할 수 있었던 방법처럼요. 나중에 알고보니 고양이를 싫어하는 여자 아이는 없고, 그림도 일단 잘 그린다고 칭찬했을 뿐입니다. 어차피 칭찬이니 큰 문제는 안되며, 설령 그림을 못 그리더라도 누군가 칭찬하는걸 들었다고 할 생각으로요.
"일반적으로 인간은 뭔가를 상상하며 이야기하려 할 때 시선이 오른쪽 위로 향하는 경향이 있어. 반대로 사실을 떠올릴 때는 왼쪽 위를 향하지. 대강 말하면 거짓말을 할 때는 오른쪽, 사실을 말할 때는 왼쪽이야."라는 주장은 억지스러울 수 있지만, 이전에 수차례 가키타니 경위를 만나서 확인했다는 전제가 뒷받침 된 덕분에 꽤 일리있는 추론의 근거로 사용되고요. "대화를 통한 정보수집의 철칙은 딱 하나다. 침묵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일 것. 10년지기처럼 대화를 즐겨."와 같이, 전문성이 느껴지는 대사들도 좋았습니다.

그가 수집한 정보들로 펼치는 추리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기름 라이터 오일 자국에 첫 수수께끼였던 '수건을 흉기로 쓴 이유'를 결합한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마요는 범인이 몸싸움을 하다가 오일이 샌 게 아니냐고 했었지만, 라이터의 오일은 왠만하면 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오일 자체를 가지고 왔던 것이고, 이유는 무언가를 불태우기 위해, 즉 방화라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오일을 적시기 위해서 가져왔던 수건이 흉기가 되었던 거지요.

그러나 정교하거나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아서 추리할 여지는 적습니다. 애초에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를 피해자 가미오 에이치 주변 인물들 조사를 통해 드러내는, 일종의 '와이더닛' 계열 범죄물이거든요. 문제는 동기가 이야기 속 당대 최고의 인기만화 <<환라비>>를 그린 만화가 구기야마와 관련되어 있다는게 예상 가능했다는 점이습니다. '이름없는 마을'과 반대로, 당대 최고의 만화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계속 이름이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가미오 에이치가 다가오는 중학교 동창회 겸 쓰쿠미 추모식에서 무언가를 공개하려고 했었고, 쓰쿠미는 생전에 구기야마와 아주 절친했다는 정보가 결합되면 답은 뻔합니다. 구기야마는 중학생 시절, 죽은 쓰쿠미와 함께 했지만 공개되면 안되는 추억이 있었던 것이지요. 즉, 구기야마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고고노에 리리카가 구기야마와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깨진 시점에서, 범인은 구기야마가 되는 셈입니다.
작가도 이렇게 뻔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는 없었는지 가시와기가 주도했던 '환라비 하우스'와 관련된 잇권 다툼을 내세우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퇴직한 중학교 교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요. 급작스럽게 동창회를 앞두고 범행이 일어날 이유도 없고요.
추리도 억지가 많습니다. 고고노에 리리카가 범행 시각에 구기야마와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파헤쳐서, 그녀가 스기시타와 불륜 관계였다는걸 드러낸 추리처럼요. 아무런 근거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고고노에 리리카의 상대가 같은 동창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울러 다케시 캐릭터는 심하게 작위적이라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첫 등장에서부터 고구레 경감과 다투기 시작하는데, 과장이 너무 심했어요. 전형적인 천재형 독불장군으로 새로운 맛도 없고요. 조카에게서도 돈을 우려내는 모습 등 안티 히어로적인 묘사도 만화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며, 마지막에 사건에 관련되었던 동창들 앞에서 다케시가 추리쇼를 펼치는 것도 오랜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는 즐길거리였지만 대체로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엔터테이너로는 뛰어나다는걸 입증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재미 외에 읽어볼 만한 뚜렷한 가치는 비록 없어도, 재미가 가장 중요하지요. 제 별점은 2.5점 입니다. 킬링 타임용으로 적합한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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