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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30

조선의 뒷골목 풍경 - 강명관 : 별점 3점

조선의 뒷골목 풍경 - 6점
강명관 지음/푸른역사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이라는 미시사 서적을 통해 접했었던 강명관 교수의 초기작. 2003년 첫 발표되었으니 거의 20여년 전이네요. 제목처럼 조선 시대, 정사 등으로는 언급되기 힘들었던 여러가지 생활사를 다양한 사료를 통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인 <<수만 백성 살린 이름없는 명의들|민중의>> 에서는, 일반 백성들이 어떻게 병을 치료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줍니다. 조선 시대의 공식적인 의료 기관과 의사들은 왕과 권력자들을 위해서 존재했는데, 일반 백성들은 '민중의'를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네요. 방법도 침술과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처방하는 수준에 그쳤다니, 참 민중들은 살기 힘들었던 시대였을 겁니다.

<<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된다|군도와 땡추>>는 '군도', 즉 무리를 지은 도둑 집단과 이 군도 무리의 핵심 세력이었다는 '땡추'에 대해 자세히 알려줍니다. 보원 스님 등 여러 분의 증언에 기반하고 있는데, '땡추'는 '당취'에서 나온 말로 조선 초 강력한 배불 정책 이후 금강산으로 들어가버린 종파가 그 유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배불 정책을 반대하니 당연히 반체제 집단이었고, 민중 교화 뿐 아니라 민중 구제까지 겸해서 산적과 결탁하게 되었다는군요. 1908년, 화적 집단이 체포되었고, 그 중 스님 송학이 동료들을 팔아넘겼다는 기사가 황성 신문에 실렸으며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관련된 기록이 있다니,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투전 노름에 날새는 줄 몰랐다|도박>>은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습니다. 우선은 제목 그대로 조선 시대 도박에 대한 상세히 소개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 도박계의 패권을 차지한 것은 '투전'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던 '돌려대기'는 40장 투전목을 써서 다섯 명이 5장씩 나누어 가진 뒤 각기 3장을 모아서 10, 20, 30을 만들고 나머지 2장의 숫자에 따라 승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답니다. 남은 2장은 여러가지 족보가 있는데 이는 현재 화투 도박 족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네요.
물론 이런 내용은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에서 더욱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지만, 이 책의 가치는 도박과 관련된 다른 일화 소개가 상세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18세기 조선 투전계 최고의 타자 (打子 투전고수)가 효종 딸 경숙옹주의 손자이자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냈던 원경하의 아들로, 그리고 본인 역시 이조판서에 우의정까지 올랐던 원인손이었다는 이야기처럼 말이지요. 당시 양반사회 최상부층까지 투전이 침투했었다는걸 극명하게 드려내주는 일화가 아닐까 싶군요.
그리고 투전 이야기 짤막하게 뒤에 언급된 조선 후기 도박 성행의 이유와 그와 관련된 '언막이', '보막이' 등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정말 머리를 세게 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조선 후기 도박 성행의 이유 중 핵심으로 개인의 재능과 노력과 사회적 성취가 정비례하지 않았던 불확실성에서 유래되었다고 봅니다. 즉, 사람들이 큰 성공을 하려면 정상적인 방법보다는 극한의 위험을 짊어지고 '한탕'을 노릴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이지요. 공한지에 둑을 쌓아 논을 만든다는 '언막이', '보막이', 광산을 찾는다는 금점, 은점도 이런 사회적 불확실성으로 조선 후기 널리 유행했다고 하고요. 조선 후기로부터는 거의 200여년, 이 책이 발표된지도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이런 상황이 2020년대 현재 시점에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는게 정말 놀랍지 않나요? 젊은이들이 '노오력'에 대한 정당한 성취를 얻지 못해서 좌절하고, 심지어 주식과 코인, 부동산에 '투자' 하지만 이는 '언막이'나 '보막이' 처럼 위험부담이 크고 심지어 사기와 불법으로 점철되어 있는게 많아서 더 큰 좌절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정말 세상이 변한게 없다는걸 이렇게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 글은 최근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셨다 하면 취하고, 취했다 하면 술주정|금주령과 술집>>에서는 연암 박지원이 알려주는 조선 시대 음주 문화(?)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열하일기>>에서 중국의 청결하고 화려했던 술집과 조선 술집을 비교하며, 조선 술집은 운치도 없을 뿐더러 술 마시는 양은 너무 커서 큰 사발에 철철 따라서 들이 붓는 식으로 마셔서, 마셨다 하면 취하고 취했다 하면 싸움질이라며 한탄했다는데 이게 뭐 한탄할 일이랍니까? 술은 취하기 위해서 마셔야죠! 조선 사나이, 남자일세!
그 외에도 술집은 목로술집, 내외술집, 사말막걸리집, 모주집, 색주가로 구분되며 술집은 쳇바퀴로 등롱을 달아 술집임을 표시했다는 등의 디테일, 영조가 금주령을 강하게 시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귀양을 갔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왔습니다.

<<서울의 게토, 도살면허 독점한 치외법권 지대|반촌>>과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뒤흔든 무뢰배들|검계와 왈자>>, <<조선 후기 유행 주도한 오렌지족|별감>>, <<은요강에 소변 보고 최음제 춘화 가득하니|탕자>>는 전체적으로 조선 시대 풍류를 즐기던 일종의 협객? 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반촌은 성균관 잡역을 세습적으로 맡아보던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이곳 남자들은 사치스러운 복색, 호협한 기질과 폭력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검계와 왈자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다만 가진 신분의 차이만 있을 뿐, 일종의 폭력 집단(?) 속 남자들이라는건 똑같으니까요. 거지들이 모인 개방과 나름 문무를 겸비한 인재들이 모인 명문정파도 결국 폭력으로 모든걸 해결한다는 무협지 속 세계인 셈이지요. 별감은 화려함, 그리고 풍류를 추구하는 이른바 유흥의 최전선에 있으며 '오락'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이들 폭력 집단과 연결되고요. 영화 배우들을 장악했었던 홍콩 흑사회 조직이 떠오릅니다. 탕자는 이들과 어울리며 돈을 물쓰듯 쓰던 사람들이니 역시 한 배를 탄 인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는 조선 후기의 풍류와 오락, 그리고 당대 패션 리더 별감이 입었던 화려한 옷차림이 무엇인지 등 흥미로운 정보들이 가득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과거 시험이나 어우동의 이야기를 다룬 부분은 다른 책에서 많이 접했던 이야기라 별로 새롭지 않았으며, 사료가 조선 후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나마도 특정 인물 증언에 지나치게 의지한다던가, <<이춘풍 전>>과 같은 소설 등 그 근거가 다소 희박하다는 점 등이 그러했어요. 도판도 이야기를 뒷받침해주는 용도보다는 일종의 일러스트(?) 개념으로 들어간 그림들이 많아서 실망스러웠고요.

하지만 단점은 크지 않습니다. 이렇게 조선의 풍속과 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었다 생각되네요. 앞서 말씀드렸듯, 현재와 다르지 않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성케하고 미래를 고민케 만드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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