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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31

까대기 - 이종철 : 별점 2.5점

까대기 - 6점
이종철 지음/보리

'까대기'는 택배 상하차 일을 일컫는 말로 이 작품은 만화가를 꿈꾸는 주인공 이바다가 까대기 알바를 하면서 꿈을 이루어가는 이야기입니다.

까대기 알바를 하면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 까대기 알바 중에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펼쳐지는 와중에 이바다가 꿈을 이루기 위해 보내는 치열한 삶의 묘사가 담담하게 그려진게 인상적입니다. 굉장히 평면적인 구도, 묘사, 전개로 일관하고 있거든요.
나쁘게 말하자면 극적인 드라마는 거의 없긴 한데, 저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과장된 묘사와 억지스러운 눈물 짜내기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이바다의 긍정적이고 치열한 모습과 택배 상하차 알바의 실상이 담담한 묘사를 통해 더 설득력있게 다가온 것 같아요. 결국 데뷰라는 꿈을 이루는 순간마저도 담담할 정도입니다. 겨울철 까대기 알바 중 너무너무 힘들지만 '눈물 대신 콧물만 나온다' 는 식으로 달관과 유머가 느껴지는 이야기들도 좋았고요.

악역이 거의 없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처음 일했던 중소 택배회사 지점장이 사실상의 악역이지만 비중은 적으며, 그나마의 악행도 이바다에게 타격을 입히는건 거의 없거든요. 짠돌이이자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서 일하다 쓰러진 택배기사를 위한 구급차를 부르기 망설였다는 장면은 선명한 악의를 드러내지만, 이 장면에서는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아, 매력적인 악역의 존재를 부정하는건 아닙니다. 단, 일상계 만화로 일상 속 에피소드가 그려지는 작품에서 강력한 악역이 나오는건 비현실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사악하고 나쁜 사람이 있었다면, 이바다는 아르바이트 하는 마당에 오래 근무했을리가 없잖아요? 무슨 노예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요.

나는 과연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가,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앞으로 이바다, 아니 이종철군의 앞길에 꽃길만 펼쳐지면 좋겠네요.

2019/08/25

테러호의 악몽 1, 2 - 댄 시먼스 / 김미정 : 별점 3점

테러호의 악몽 1 - 6점
댄 시먼스 지음, 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


테러호의 악몽 2 - 6점
댄 시먼스 지음, 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


1845년, 최신식 함정 이리버스호와 테러호를 타고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출발한 존 프랭클린 경 탐사대는 무리한 항해 끝에 얼음 속에 고립된다.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탐사대를 키가 4m가 넘는 하얀색 괴물이 습격하기 시작한다.

괴물과 추위, 식량 부족 등의 문제가 겹치며 프랭클린 경을 비롯한 탐사대원들이 하나씩 죽어가자, 테러호의 함장인 크로지어는 배를 버린 후 생존한 탐험대 전부와 함께 육로로 탈출을 결행한다. 그러나 계속된 괴물의 습격과 식량 부족은 생존자들을 계속 괴롭히고, 누수방지공 히키를 중심으로 한 세력의 반란까지 일어나는데...

<<칼리의 노래>>로 접했었던 댄 시몬즈의 장편 호러 팩션. 실존했던 싱클레어 탐험대에게 닥친 비극과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작가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실존하는 미해결 미스터리를 풀어낸다는 점에서는 코난 도일의 <<J.하버쿡 젭슨의 진술>>이 연상되네요.

이전부터 굉장히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 2권 합쳐서 9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순식간에 읽어버렸을 정도로 말이죠.
재미의 가장 큰 요소는 끔찍한 초극한 상황의 생생한 묘사입니다. 이들에게 닥친 비극은 작 중에서도 언급되다시피 포경선 에식스 호의 비극과도 유사하지요. 그러나 에식스 호는 십 수명의 선원들이 주로 '굶주림' 과 싸우며 그래도 다섯 명이나 생존했던 것에 비해 싱클레어 탐험대는 백명을 훌쩍 넘는 대원들이 아무 것도 잡지 못해 줄어드는 자원만으로 버텨야 해서 직면한 굶주림은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와도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몇 수 위입니다. 최고 영하 60도 이하로 떨어져 맨 손으로 총을 잡으면 살갗이 벗겨질 정도니까요. 

탐험대를 곤경에 빠트리는 요소로는 괴혈병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묘사도 굉장합니다. 모공 등 모든 몸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이빨이 빠지고, 붓기가 심해지며 피부의 탄력도 사라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몇몇 선원들이 걸린 납중독 묘사도 처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죽어가는 핏제럴드 함장의 최후가 특히나 끔찍하지요.
게다가 탐험대를 습격하는 거대 괴물 툰바크의 위협도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4m도 넘는다는 거대한 체구에 속도도 엄청나며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괴물로 인간은 도저히 제압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나마 탐험대의 발버둥은 테러 호의 항해장 블랭키가 괴물에 맞서 오랫동안 버티며 살아남는 정도에 불과해요. 참고로 블랭키의 사투는 박력이 넘쳐서 전체 내용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수많은 어려움에서 드러나는, 인간 관계를 통한 드라마도 탄탄해서 재미를 더합니다. 작중 최고 악역인 누수방지공 코닐리우스 히키의 존재는 비교적 평범한 편이나, 다른 인물들의 묘사와 설정이 아주 빼어납니다. 실력은 없지만 운과 허세에 의존하는 존 프랭클린을 비롯, 실력은 뛰어나나 아일랜드인이라는 출신 성분 탓에 뼛 속 깊이 분노를 품고 사는 크로지어 함장, 순수한 군인이자 '인간' 인 어빙 소위, 체력이나 능력은 딱히 없지만 열정과 신념으로 무장한 해리 굿서 등 모든 인물들이 눈에 보이듯 그려져 정말 살아 숨쉬는 듯 합니다.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다가 죽어가는 인물들과 인간임을 포기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인간 군상들의 대비도 확실하고요. 사실 극한 상황에서 군율과 군기가 유지된다는게 처음에는 영 와 닿지 않았는데, 묘사를 통해 국가와 인간에 헌신적인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덕분에 나름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탐험대가 전멸할 때 이누이트의 도움을 받지 못한게 영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히키가 어빙을 죽이고 이누이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탓이라는 설명이 더해진 것도 좋았습니다. 탐험대가 이누이트를 복수 명목으로 학살해서 도움을 받지 못한거죠.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탐험대의 생존 경쟁만 그렸으면 좋았을텐데, 초자연적이고 신화적인 영역의 이야기가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많은 탓입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툰바크, 그리고 툰바크와 관련된 벙어리 여인 실나의 정체였습니다. 실존한다기 보다는 결국 이누이트 신화 속의 존재라는 진상은 이게 뭔가 싶었거든요. 크로지어 함장이 '천리안'을 갖춘 인물로 그 역시 실나와 결혼하고 이누이트 주술사로 거듭난다는 결말 역시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크리쳐 호러물이 갑작스러운 퇴마물로 전환된달까요? '프레데터'와 총으로 싸우다가 나중에 부적을 붙여 퇴치한다는 식인데 영 개운치 못했습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TV 시리즈에서는 툰바크가 실체가 있는 괴물로 그리고 있던데, 그렇게 그리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그래도 워낙에 압도적인 내용이 많고 재미 또한 빠지지 않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결말만 더욱 현실적으로 그려내었더라면 4점도 아깝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물론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히 좋은 작품인건 분명합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밀리의 서재' 처음 한 달 무료 프로모션을 통해 읽게 되었는데, 아직 '밀리의 서재' 가입을 하지 않으셨다면 무료로 읽어보실 수 있을 겁니다.
TV 시리즈도 무척 땡기기는 하는데, 심하게 무서울 것 같아 망설여지는군요.

2019/08/24

아자젤 - 보리스 아쿠닌 / 이항재 : 별점 2.5점

아자젤 - 6점
보리스 아쿠닌 지음, 이항재 옮김/아작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유한 대학생 코코린이 백주대낮에 기묘하게 자살하고, 막 스무살이 된 14등급 서기관 에라스트 판도린은 목격자 중 한 명의 '대학생' 이라는 증언에서 이상함을 느낀다. 코코린의 복장은 대학생임을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사를 통해 판도린은 코코린과 함께 행동한건 대학교 제복을 입은 니콜라이라는걸 알아낸다. 니콜라이는 심지어 코코린의 유언장에 집행인으로 언급된 인물이었다. 코코린의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둘이 수수께끼의 미녀 아말리야를 두고 벌인 일종의 결투였었다. 그러나 니콜라이는 곧바로 암살자에게 칼에 찔려 죽고 판도린도 죽을 뻔 하는데....

19세기 후반의 제정 러시아를 무대로 14등급 (중간에 진급해서 9등급) 서기관 에라스트 판도린이 활약하는 추리 모험 소설. 일종의 역사 추리물로 볼 수도 있으며, 특별한 정보를 입수하고 해석하여 국제적인 음모와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일종의 스파이 소설로 볼 수도 있는 복합적인 장르의 작품입니다.

러시아에서는 현재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는 시리즈라는데 수긍할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줄거리 요약이 된, 니콜라이가 살해되는 초반부까지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유쾌한 분위기도 좋고, 러시안 룰렛을 흉내낸 기묘한 자살이 사실은 '결투' 였다는 아이디어도 기발하거든요. 사건에 니콜라이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깨달은 판도린의 직감도 높이 평가하고 싶고요. 이런저런 복선도 꽤 충실합니다. 고래뼈 코르셋은 아주 일품이에요.

그러나 이어지는 중반부는 많이 어설픕니다. 아말리야와 애증의 관계라는 주로프가 그녀의 행방을 알려주는 부분부터가 억지스럽거든요. 판도린이 정상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객기를 부려 주로프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완벽하게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목숨을 내거는 모습에 감명한 주로프가 오히려 그를 살려주고 아말리야의 주소까지 전해준다는건 여러모로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결투를 촉발한 둘 사이의 도박도 굉장히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물주가 카드 한 장을 오픈하고, 두 장을 차례로 오픈한다, 첫 카드가 오픈된 카드와 같으면 물주가 이기고 두번째 카드가 같으면 상대방의 승리. 만약 두 카드 모두 오픈된 카드와 다르면 판돈을 2배로 올려 이를 최대 5번까지 반복한다는 룰인데 누가 봐도 물주가 너무 유리해요! 여기서 물주가 이길 확률은 97%!!!!에 달합니다. 이런 도박을 졌다고 주로프가 열이 받는건 말이 안됩니다. 어차피 다음 물주는 주로프였으니까요.
게다가 아말리야의 영국 주소를 받고 영국에서 벌어진 모험은 더 가관입니다. 판도린이 중요한 서류를 손에 넣은 건 단순한 미행 덕분이고, 그의 행방을 밝혀낸 아말리야 일당에게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익사 직전에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범인들이 칼을 미쳐 빼앗지 않은 덕분입니다. 순전한 행운이죠. 배신자 프이조프에게 죽을 뻔 할 때 갑자기 나타난 주로프가 그를 구해주는 건 우연과 행운의 행진에 정점이고요. 워낙에 말도 안되는 행운인지라 작가도 무안했는지 주로프의 입을 빌어 '판도린은 '후광'을 갖춘 특별한 행운의 소유자다'라고 양념을 조금 치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럴리가 없잖아요? 행운은 걷어내고 보다 설득력있게 전개할 필요가 있었어요. 아말리야를 사살하고 탈출한 판도린은 프이조프의 배신 덕분에 위기에 처하지만, 특유의 호흡법으로 살아나서 그들을 되려 해치운다는 식으로요. 이렇게 된다면 주로프는 등장할 필요도 없죠.

그래도 다행히 겨우 살아난 판도린이 팀장 브릴링에게 진상을 말하는 데에서 시작되는 후반부는 또 괜찮습니다. 특히 '아자젤'이라고 불리우는 집단의 정체가 백미입니다. 각국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이 유력자로 급부상했다는게 확보한 서류로 알아낸 전부인데, 판도린은 이들이 모두 에스터 남작 부인이 운영하는 보육원 에스테르나트 출신이라고 추리하죠. 이 놀라운 추리는 앞 부분에서 상세하게 설명되었던 여러가지 복선들로 뒷받침 됩니다. 부유했던 두 대학생이 유산을 남기기로 유언한 곳은 에스터 남작 부인의 보육원이었다는 당연한 증거는 물론, 남작 부인의 교육 철학 역시 중요한 복선입니다. 각자의 재능을 딱 맞춰 개회시킨다는 것으로 이를 통해 고아들이 각자의 분야 (경제, 군사, 정치) 에서 두각을 나타낸게 그럴듯하게 설명됩니다.

물론 후반부에서도 판도린은 두 번의 위험을 순전히 행운으로 벗어난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특히 남작 부인에게 사로잡히지만 오래 수련한 호흡법으로 숨을 참아 클르르포름 마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대체 이게 뭔가 싶더군요. 판도린의 모습을 본 브릴링이 엄청난 충격을 받는 묘사에서 브릴링이 흑막 중 하나라는건 눈치챌 수 있어서 반전의 묘미도 약했고요. 
개인적으로는 남작 부인까지 처지하고 성공과 미인 신부까지 손에 얻은 판도린의 행복이 아자젤 잔당에 의해 박살나는 비극적인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도 행운이 이어지는 전개 문제는 핵심 추리와 진상이 놀라운 덕분에 상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시대상을 세밀하게 그려낸 묘사도 좋습니다. 러시아 작가가 쓴 오리지널 러시아 추리 소설은 알렉산드라 마리리나의 작품 이후 십수년만에 처음인데 저력이 대단하네요. 재미와 흡입력이 아주 상당합니다. 별점 2.5점은 충분합니다. 번역 출간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어설픈 전개를 조금 보완해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2019/08/18

라스트 차일드 - 존 하트 / 박산호 : 별점 3점

라스트 차일드 - 6점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년 전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인 앨리사가 실종된 이후 조니의 가족은 풍비박산난다. 앨리사 실종을 남편 탓이라 여긴 엄마 캐서린 때문에 아빠는 집을 나가고, 마을의 실력자인 켄은 그 틈을 노려 엄마를 마약 중독자로 만든 뒤 엄마와 조니에게 폭행을 행사한다. 조니는 이런 고난을 피하기 위해 책에서 읽은 인디언 주술에 의지하며 홀로 군 전체를 돌며 앨리사 찾기를 되풀이한다.
그러던 어느날, 조니 앞에서 한 남자가 추락사하는데 그는 죽기 전 "내가 그녀를 찾았어."라고 말한다. '그녀'가 앨리사라고 생각한 조니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자비스의 집으로 숨어든다...


최근 읽었던 추리 소설들은 대부분 완성도가 그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최근 평이 가장 좋은 듯한 작품을 골라보았습니다. 사실 미국산 장편 범죄 스릴러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요.

그런데 다행히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꽤나 긴 분량이지만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끌만한 요소가 많기 때문이에요. 조니와 엄마 캐서린에게 닥친 불행과 사건 수사 현황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만 지나면 곧바로 온갖 사건이 이어지기도 하고요. 데이비드 윌슨이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죽는데 죽기 전 조니에게 실종된 아이를 보았다고 말한 사건에서 시작해서 거대한 흑인 레위 프리맨틀의 등장, 또다른 소녀의 실종, 조니가 몰래 유력한 용의자 자비스의 집에 잠입하다가 죽을 뻔 하는 등 강력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거든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죽는 사람만 해도 무고한 목격자였던 데이비드 윌슨과 연쇄 어린이 납치 살해범인 자비스와 미첨, 조니 가족을 괴롭히던 켄 홀웨이, 순수한 신의 사자 레위 프리맨틀까지 무려 다섯 명에 이를 정도에요. 전개도 그만큼 긴박하고 박진감 넘칩니다.
등장인물들의 선악 구분도 명확한 편이며,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결말도 깔끔하며 권선징악을 담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를 무대로 현대적이고 성인 대상의 <<허클베리 핀>>이나 <<톰 소여의 모험>>을 그려낸 듯한 묘사들도 인상적입니다. 인디언 신앙을 추종하여 독수리 깃털 등의 부적을 손수 만드는 조니는 곧바로 톰 소여를 떠오르게 합니다. 동생을 찾기 위해 미지의 장소인 허쉬 아버로 떠나는 모험에 유일한 친구 잭과 함께 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고요. 조니가 사건을 겪으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디테일도 좋습니다. 엄청난 역경에 처해 있지만 그걸 이겨내는 소년의 심리 묘사는 정말로 발군이에요.

그러나 범죄물로는 기대에 값하는 편은 아닙니다. 사건들은 우연에 의해 작위적으로 전개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데이비드 윌슨이 조니 앞에서 유력한 증언을 남기고 죽은 것 부터가 그러합니다. 실종된 소녀의 시체를 발견했다가 살해당하는 피해자가 실종된 소녀의 오빠를 죽기 직전에 만난다? 조금만 생각해도 너무 지나친 우연이죠. 조니가 어린이 납치범 자비스에게 죽을 뻔 했을 때 납치되었던 소녀 티파니가 마침 탈출해서 자비스를 쏴 죽인다는 상황도 완벽한 우연과 행운이고요. 조니가 잭과 함께 허쉬 아버로 향했다가 레위 프리맨틀을 만난 것도 우연입니다. 이렇게 만나지 못했더라면 레위가 켄을 죽이고, 잭이 레위의 말을 듣고 앨리사 실종 사건의 전말을 조니에게 털어놓는 결말도 이루어지지 않았을테죠.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아쉬운건, 잭이 레위의 "No crows"라는 말을 듣고 앨리사 시체가 숨겨진 '노스 크로제 광산'을 떠올리는게 와 닿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노스 크로제'를 약자로 '노. 크로즈'라고 표기했기 때문이라는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원어민이라면 이해가 되었을까요? 저에게는 차라리 "No crows"에서 '크로스'라는 이름을 떠올리는게 더 와 닿았을 것 같네요.

또 경찰이 한심할 정도로 하는게 없습니다. 어린이 납치범 자비스가 죽은 것, 탈옥수 레위 프리맨틀을 발견한 것, 앨리사 실종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 것 모두 조니의 활약 덕분이니까요. 경찰이 유일하게 추리력을 발휘하는 건 조니가 어린이 납치범 자비스의 공범이 '경찰' 이라고 착각한걸 토대로 '경비원'인 미첨이 범인이라는걸 알아채는 정도입니다. 오히려 경찰인 크로스가 음주 운전을 하다가 앨리사를 차로 치어 죽인 아들을 위해 시체를 유기한 앨리사 실종 사건의 협력자이자 데이비드 윌슨 살인범이기까지 합니다! 그가 시체만 유기하지 않았어도 조니의 아버지도 죽지는 않았을테고 가족도 풍지박산은 나지 않았을테니 조니 시점에서는 모든 사건의 원흉이죠. 심지어 조니의 유일한 친구인 아들 잭을 협박해서 조니에게 진상도 말 못하게 하고, 궁지에 몰린 잭이 아버지 살인 미수까지 범하게 만드니 작품 최고의 악질입니다. 이래서야 경찰은 없는게 더 나아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레위 프리맨틀이 켄을 죽인게 일종의 기적처럼 묘사되며, 이 모든게 조니의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라는 기독교적 사고 방식이 근저에 깔려있는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구태여 넣을 필요없는 완벽한 사족이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작풍은 다르지만 토머스 H 쿡의 작품들이 떠오를 만큼 재미와 문장력을 모두 갖춘 좋은 작품입니다. 추리적으로 별 볼일 없기 때문에 약간 감점하지만 이 정도라면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되네요.

2019/08/17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 오카자키 다쿠마 / 민경욱 : 별점 1.5점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 4점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민경욱 옮김/㈜소미미디어

후쿠오카 내 유치쿠 시에 위치한 도연사의 승려 가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상계 추리물.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등장하는 일상계 추리물은 굉장히 많습니다. 해당 분야의 지식이 추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현학적인 재미를 함께 가져다 줄 수 있고, 손님이 수수께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서 이야기 전개를 쉽게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일겁니다. 일상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하늘을 나는 말>>의 탐정역부터가 '라쿠고가'라는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하겠죠. 현재까지도 추리 소설계에서 큰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읽었던 작품들로는 서점고서점화과자점골동품점중고매장사진관수프가게초등학교 (선생)시계방 등을 무대로 해당 분야 전문가나 업무 종사자가 활약하는 작품을 접해왔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 역시 배경 설정만 놓고 보면 절에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가 주요 소재로 사용되고, 스님이 핵심 인물로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스님이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아토다 다카시의 <<a 사이즈 살인 사건>>,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을 이미 접해보았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여러모로 생각과는 다릅니다. 우선 화자인 도연사의 부지주 잇카이가 탐정역을 맡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 좋은 어른으로 갈등의 중재자이자 해결사 역할을 담당하죠. 탐정 역할을 맡는건 제목의 쌍동이입니다. 그래서 절이나 스님 관련된 이야기가 중요한 소재로 쓰이는 전문가적인 이야기보다는, 학생들이 등장하는 학원 일상계 스타일 느낌이 강합니다. 네 편의 이야기 중 그나마 공양을 주요 소재로 삼은 세 번째 이야기 정도만 소재와 어울리거든요. 법사, 법요, 불경, 공양 등 디테일한 절과 스님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묘사되지 않는건 아니에요. 그러나 이야기의 핵심, 추리적인 부분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배경 묘사에 그치는게 문제죠.

쌍둥이에 대한 만화적인 설정도 거북합니다. 쌍동이가 정 반대의 성격을 지닌 존재라는게 특히 그러합니다. 남자아이 렌은 "절 옆에는 귀신이 산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성악설 신봉자, 여자아이 란은 "불천인신천인(仏千人神千人)"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성선설 신봉자로 이 둘이 서로를 보완해가며 사건을 해결한다는데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고 만화적입니다. 란이 단 것을 미친듯이 좋아한다는 설정도 과했고요. 다른 주요 캐릭터들 - 사투리를 입에 달고 사는 아버지인 주지스님 신카이와 절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먼 친척으로 잇카이를 가지고 노는 (?) 어린 처녀 고테가와 미즈키 - 은 상당히 괜찮았기에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차라리 쌍둥이없이 잇카이를 탐정역으로 내세워 절과 신도들에 관련된 사건을 해결하는게 훨씬 나았을 거에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추리면에서도 눈여겨 볼 부분은 없습니다. 별점은 1.5점. 널리고 널린 일상계 물 중에서 특별히 주목할 점은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입니다. 에피소드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1화. 절 옆에는 귀신이 살까?
마을 유지로 자산가인 오가미 집안의 장례식 진행 차 상가를 방문한다. 그런데 오가미 집안 아들 딸 들의 조의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스님이 주관하는 장례식에서 조의금이 도난당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 범인은 접수대를 맡았던 야스에로 그녀가 고인의 가족들 봉투를 다른 것과 바꿔치기 해서 넣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 봉투만 바꿔치기해서 가져갈 이유가 없잖아요? 봉투째 가져가는게 당연하죠. 어차피 맨 밑에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을테고요, 봉투를 바꿔치기 하는 것 자체가 지문 등의 단서가 남을 수도 있고, 바꿔치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극도로 제한된다는 점에서 평범한 조의금 도둑이 할 범행이 아닙니다. 차라리 조의금 도난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가 강했다는걸 부각했어야 하는데 이야기 상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이도저도 아닙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이보다는 절을 방문했던 란의 동급생은 사실 새전함을 노리고 있었을거라는 서두의 추리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제2화. 할머니의 매화가지 떡
도연사 일생은 신도인 마쓰다이라 상점댁 13주기 제사를 위해 그 집을 찾는다. 법요가 끝난 후 할머니가 권한 상점의 명물 매화가지 떡을 중학생 손녀 유카리가 집어 던져 버린다. 유카리가 반항(?)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매화가지 떡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이를 집어 던질 정도로 손녀 유카리가 비뚤어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는 두 번째 이야기 역시 추리를 끌어내기 위한 단서가 너무 부족합니다. 단지 아침에 비닐 봉투 한 가득 청소를 했다는 정도로 무언가 결론을 끌어내기는 어렵죠. 렌의 반에 전학온 다이손의 존재가 추리의 결정적 근거가 된다는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요. 한마디로 여러모로 억지스러웠던 이야기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제3화. 아이를 생각하다
미즈키의 지인 유나가 유산된 아이 '미즈코'를 공양하며 임신을 기원하는데, 사실 그녀는 이미 임신을 하고 있었다. 한달 뒤, 유나의 임신을 알게 된 남편 슈운이치은 도연사로 찾아와 임신 기간 중 자신은 출장 중이었다고 말하며 잇카이와 유나의 관계를 의심한다.

절과 스님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 유일한 이야기입니다. 불심이 깊은 시어머니와 틀어진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처님 덕에 임신했다는걸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동기 역시 사뭇 불자스러워서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대단한 추리력이 발휘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유나의 고백으로 모든게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제4화. 저 세상의 꿈, 이 세상의 생명
교통사고로 사망한 불쌍한 여인의 경야를 맡게 된 잇카이는 고인이 자신이 전날 꾼 꿈에 등장한 여인이라는걸 알게 된다. 그는 그녀가 쌍둥이의 모친일 것이라 확신하는데...

교통사고로 사망한 여인의 경야, 법요가 소재로 등장하지만 핵심 내용은 사망한 여인의 아이를 찾는 것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모든 이야기 중 가장 볼 만 합니다. 사고를 당한 여성은 열쇠가 없었으니 다이얼 식 열쇠였을 것이다, 어딘가 맡길 형편이 안되니 근처의 빈집일 것이다, 사고 장소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다 등 모든 추리가 이치에 맞거든요. 아이를 빈 집에 몰래 두고 일하러 갔다는 진상도 쇠락해가는 시골 마을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좋은 아이디어였고요.
문제는 아이의 실종을 잇카이가 꿈을 통해 알게된다는 오컬트적인 전개죠. 망자가 잇카이에게 이를 전달할 이유도 딱히 모르겠고, 절과 스님이 등장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과했습니다. 이어지는 가족간의 사랑 어쩌구 하는 분위기도 영 닭살돋아서 취향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19/08/15

역향유괴 - 원샨 / 정세경 : 별점 1.5점

역향유괴 - 4점
원샨 지음, 정세경 옮김/아작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즈덩런은 대부호의 후손으로 투자 은행 A&B의 IT 부서에서 일하던 중, 퀸타스 투자 계획에 관련된 기밀 자료가 납치(?)된 사건에 말려든다. 퀸타스 융자 계획 컨설팅 팀원 중 한 명인 샤오루가 즈덩런에게 자료가 사라진 사실을 처음 알렸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이 외부에 유출되기를 꺼린 본부장 존은 팀원 모두와 즈덩런을 자료 몸값 지불일인 3일 뒤 까지 A&B 소유 아파트에 경찰과 함께 연금시킨다.
즈덩런은 사건에 샤오루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몇 가지 조사를 통해 이를 확신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적은 몸값에 주식 시장에서 한 몫 잡으려는 움직임도 없어서 범인의 목적이 무엇인지 혼란에 빠지는데...


시마다 소지 상을 수상한 중국 추리 소설. 그동안 찬호께이의 작품들로 중국 추리 소설에 대한 기대가 커진 참에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A&B를 협박한 '기밀 문서 (재무 자료)' 납치 사건은 즈덩런을 3일 동안 일종의 연락 두절된 가택 연금 상태에 놓이게 만들려는 목적이었다는 진상, 반전은 좋습니다. 연락이 두절된 상태를 유괴된 걸로 위장하여 거액의 몸값을 받아내려는 계획이죠. 즈덩런이 즈리 은행의 후예라 가능했습니다. 이를 위해 별 의미없어 보였던 도입부의 '술 먹기 게임'의 벌칙 - 즈덩런을 의자에 묶어 놓은 것 - 때 찌은 사진을 이용한다던가 중간에 즈덩런의 자는 모습을 찍은 걸 살아있다는 증거로 활용한다는 식으로 단서와 복선을 배치한 솜씨도 제법이에요.

기밀 문서의 몸값, 그리고 최종적으로 즈덩런의 몸값을 받아내기 위한 과정도 꽤나 합리적입니다. 먼저 백 명의 협력자들에게 인터넷 옥션에 콘플레이크 박스를 고가로 출품하게 하고, A&B가 이를 낙찰받는 방식으로 10만 달러를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콘플레이크 박스를 경찰이 A&B로 가져오게 만드는데 사실 박스 중 하나에는 즈덩런의 몸값인 5백만달러에 상당하는 다이아몬드가 들어있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박스 속 알람 시계가 울리는 혼란 와중에 챙기고요. 박스를 범인이 의도한대로 쌓아놓게 만드는 디테일, 백명 단위가 필요했던 협력자들 모집을 일종의 폰지 사기 방식으로 끌어모으고 다이아몬드도 폰지 사기 형태로 벌어들인 현금에 대응하여 기존 투자자에게 돌려주어 증거를 인멸한다는 아이디어도 좋습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 출신답게 시각적인 볼거리가 연상되는 장면도 많아서 즐겁습니다. 콘플레이크 박스 회수 작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일종의 플래쉬 몹 처럼 회수자와 똑같은 복장을 차려 입는다는 묘사가 대표적이죠. 전개도 복잡하지 않고 깔끔한 편이라 쉽게 읽힌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몇몇 장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A&B가 투자 성공을 위해 사력을 타하는 퀸타스의 사업이 너무 유치해서 몰입하기 힘들었어요. 차후 그들이 주력으로 내세운건 흔하디 흔한 IoT 서비스일 뿐이거든요. 이런 서비스는 이미 전세계 모든 제조사가 하고 있죠. 또 진짜 핵심이라는 '초크' 프로젝트의 K 포인트 역시 마찬가지에요. 가상 세계에서 얻은 포인트를 현실 세계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는 개념부터가 별로 새롭지 않으니까요. 가상 세계에서의 적극적인 행동 - 별점을 준다던가 - 에 따른 보상이라는 점을 차별화로 내세우지만 자동으로 쌓이는 카드, 통신사 서비스보다는 오히려 뒤떨어진 개념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이런 서비스는 퀸타스와 같은 소프트웨어, 휴대폰 제조 업체가 진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가상화폐를 만들었어요! 1K포인트는 1달러에요! 라고 이야기해봤자 쓸모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시장에서 그걸 받아줘야 성립되는 사업 모델인데, 이런 신규 통화가 시장에 자리잡는건 불가능에 가깝죠. 이런 이유로 퀸타스의 사업 문제가 금융 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는건 영 와닿지 않았습니다.

이야기 전개도 어설픕니다. A&B 사건을 맡은 T시의 탕푸 경감이 A시 경찰이 맡은 즈덩런 유괴 납치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요. 유력 인사의 아들이 납치된 사건에서 그 아들이 나디는 회사에 관련 정보가 알려지지 않는다? 각 도시별 관할이 다르다는 언급 정도로는 설명될 수 없 습니다. 또 A시 경찰이 A&B 본사 건물을 감시할 때 이들을 탕푸 경감이 체포했더라면 사건은 진작에 해결되었을거라는 문제도 있죠.

샤오루의 완벽해 보이는 범행 계획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상합니다. A&B는 단돈 4만 8천 달러만 손해본 걸로 - 5만 2천 달러는 폰지 사기 형태로 이전 참여자로부터 선입금을 받은 덕분 - 사건에서 손을 뗍니다. 투자 계획과 신용의 문제라 이 정도 손해는 입다물겠다는 A&B의 입장은 이해됩니다. 그러나 즈덩런 유괴 사기 사건은 상황이 달라요. 무려 5백만불을 손해 본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건 무리죠. 진상이 드러나면 퀸타스 투자 위험성이 함께 밝혀지고, 연구 개발 증권의 흐름이 막혀 금융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에 함구한다는 설명도 말이 안됩니다. A시 경찰한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샤오루의 일종의 폰지 사기 역시 협력자와 투자자가 많이 필요하다는 큰 약점이 있습니다. 연결고리가 많으면 많을 수록 한, 두 군데에서 꼬리를 잡힐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건 백명 단위를 넘어가니까요. 단적인 예로 다이아몬드를 투자자들에게 전해주는 방법이 그러합니다. 직접 편지를 배달하던가, 최소한 누군가를 시켜야 하는데 백 명 이상에게 이런 짓을 하면 들키지 않는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사내 정보를 이용해 사기를 치려면 이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없이 차라리 퀸타스 문서를 인터넷에 뿌리고 주식으로 차익을 얻는게 더 손쉬웠을 겁니다.

깊이있는 캐릭터 형성은 찾아보기 어렵고 심리 묘사도 얄팍한 캐릭터들 모두 전반적으로 수준 이하입니다. 대부호의 후손이자 컴퓨터 천재라는 즈덩런이 개중 최악입니다. 만화적인 설정부터 별로이며 무엇보다도 하는게 없기 때문입니다. 컴퓨터, IT 관련된 지식 수준도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정도에 그치고요. 찬호께이의 <<망내인>> 속 아녜와 비교하면 초등학생 이하로 보일 정도에요.
다른 캐릭터들 모두 평면적인 스테레오 타입에 불과하며, 천재 미형 악역인 샤오루 역시 뚜껑을 열고보면 사내 정보를 이용해 사기치는 사기꾼일 뿐입니다. 마지막에 'A&B'에서 더 배울게 없다'는 범인 샤오루의 뻔뻔함과 당당함에는 어이가 없어집니다. 모자라 보이는 개그 캐릭터 폴 형사는 대체 왜 나왔나 싶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장점이 없지는 않고 핵심 아이디어는 반짝반짝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설정들 모두 설득력이 결여됐다는게 문제죠. 영화화되었다고 소개되는데, 나중에 한국에 소개된다면 영화로 보는게 훨씬 나은 선택일거에요. 영화는 런닝타임이 85분에 불과하까요.

2019/08/11

브루투스의 심장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1.5점

브루투스의 심장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MM 중공의 엘리트 사원 스에나가 다쿠야는 회사의 후계자 니시나 나오키가 주도한 살인 계획에 동참한다. 몰래 만나던 아마미야 야스코가 임신을 했는데, 아이의 아빠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점을 제거하려 한 나오키가 아빠 후보(?)를 불러 모아 완벽한 살인 계획을 세운 것. 니시나 나오키, 하시모토, 다쿠야는 트럼프 카드로 제비를 뽑아 각자의 역할을 맡는다. 나오키가 오사카에서 야스코를 살해하고 나고야까지 옮기고, 나고야에서 도쿄까지는 다쿠야가, 도쿄에서 시체의 뒷처리는 하시모토가 맡는 계획으로 이를 통해 모두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시체를 옮기던 다쿠야와 하시모토는 시체가 야스코가 아니라 나오키라는걸 알아차리고 소스라치게 놀라는데...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 한정 일본 추리 소설의 제왕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추리 소설. 1989년에 처음으로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입니다. 범행이 먼저 등장하는 일종의 도서 추리 소설로 작가 생활 초창기에 이런저런 시도를 하던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풍과는 사뭇 다른게 특징입니다. 흡사 70년대를 풍미했던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같았어요. 기차 시간표는 아니지만 상당히 정교한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에다가 재벌 가문의 문란한 생활, 출세를 위해 살인도 서슴치 않는 야심가, 등장인물마다 엮여 있는 콩가루같고 불우한 가정사 등 모든 면에서 흡사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에서 거의 보기 힘든 적나라한 성행위 묘사도 마찬가지고요. 잘은 모르겠지만, 인기를 얻기 전 무명 작가 시절의 히가시노 게이고가 전 시대의 인기작을 분석하고 따라해서 어떻게든 인기를 얻어보려 했던 결과물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답다 싶은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악녀 야스코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만, 꽤나 공들인 정교한 트릭이 돋보입니다. 최초에 등장한, 3명이 실행하는 사체 이동 계획부터 꽤 흥미롭습니다. 오사카, 나고야, 도쿄까지의 거리와 시간을 잘 계산한 괜찮은 트릭이었어요. 나오키의 말대로 2명이라면 모를까, 3명이 실행하는 계획은 경찰도 쉽게 예상하기 힘들었을테고요.
두 번째 범행인 만년필을 이용한 살인도 그럴듯합니다. 만년필 잉크를 넣는 곳에 청산가리 결정을 넣어 놓고 잉크를 넣으면 청산가스가 발생하여 사망한다는 트릭인데, 청색 잉크만 산성을 띄고 있어서 청산가스가 발생한다는 등의 과학적인 설명이 뒷받침되어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이공계 출신 작가다운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마지막 범행인 다쿠야가 야스코를 살해한 방법도 기발하기는 뒤지지 않습니다. 미리 야스코의 방에 잠입해서 찻주전자 주둥이 안쪽에 청산가리를 발라 놓은 후, 저녁에 당당하게 방문해서 차를 직접 끓여마시게끔 유도하여 살해하는 계획으로 완벽하게 성공하죠. 야스코도 이미 2명이나 살해된 상황이라 다쿠야를 조심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탄 차에 독이 들어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으니요.
그러나 초기작인 탓인지 모두 헛점이 있어요. 첫번째의 사체 이동 계획은 나오키가 나고야에서 오사카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신칸센을 탔어야 했고, 다쿠야 역시 이용한 차량을 처리할 때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다쿠야는 이 때문에 덜미를 잡히죠. 두번째 청산가스 살인도 경찰이 현장 조사할 때 가스가 남아 있어서 들통난다는 점에서는 완벽하다고 보기 어렵고요. 마지막 트릭 역시 다쿠야가 직접 야스코의 집을 방문했어야 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운 좋게 들키지 않았을 뿐이죠.

물론 사람이 만든 계획에 헛점이 있는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를 작중에서 형사들이 치밀한 수사를 통해 밝혀내는 것도 볼거리로 이런게 도서 추리 소설의 묘미이기도 하죠. 정작 문제는 이야기 자체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3명의 사체 이동 계획부터 애매합니다. 애초에 나오키가 고로의 약점을 잡아 청부 살인까지 시킬 수 있었다면 그냥 고로를 시키면 됩니다. 알리바이고 뭐고 만들 필요도 없죠. 비밀을 아는 사람은 한 명이라도 적은게 좋잖아요? 이야기를 보면 고로와 나오키의 연결 고리는 그 누구도, 심지어 고로에게 청혼을 받은 나오키의 비서 유미에마저 모르니 완벽한 청부 살인이 되었을겁니다. 왜 하시모토와 다쿠야를 끌어들이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나오키가 트럼프 카드 마술이 특기라는 설정도 고로의 존재 때문에 말이 안됩니다. 그냥 뽑으면 되죠. 최악인 살인이 걸린다면 고로를 시키면 되니까요. 다른 살인을 뽑은 관련자에게 빚을 지게 만들 수도 있고요. 이런걸 대단한 단서인 것 처럼 흘릴 이유는 없습니다.

진범 고로가 야스코 대신 나오키를 살해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살의를 품을 만큼 원한이 깊었다는 설명도 없을 뿐더러, 그랬다면 진작에 살인을 저질렀다면 모를까 왜 이 때 저질렀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사체 이동 계획에 대한 종이가 차에 없었더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고요. '시체가 야스코가 아니라 나오키였다'는 충격적인 설정을 제대로 설명할만한 합리적인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나오키를 죽인건 살인까지 시켜서 살의가 폭발했다고 치죠. 그러면 시체 이동 계획에 참여한 하시모토와 다쿠야까지 죽이려 한 이유는 뭘까요? 자신의 존재가 노출되었는지 먼저 간을 보는게 순서였을텐데 말이죠. 시체가 발견되어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된 마당에, 연이어 범행을 저지른다는건 아무리 봐도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수사 와중에 직접 나서서 야스코를 죽이고 마지막에 고로까지 살해하려한 다쿠야의 정신상태도 마찬가지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대로 모리무라 세이이치 류의 설정이 너무 과한 것도 문제입니다. 주인공인 다쿠야가 온갖 어려움을 혼자 힘으로 이겨낸 자수성가형 엘리트이자 야심가라는건 흔해빠지긴 했어도 봐줄만은 합니다.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의 근거로는 타당하고요. 그러나 니시나 나오키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후계자가 되었으며, 아버지 도시키를 증오한다는 설정은 불필요했습니다. 3인 살인 계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까요. 아버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로봇이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위장한다는 설정도 말이 안됩니다. 실제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로봇 '나오미'는 바로 폐기되고, MM 중공은 그 뒤로도 잘 나가고 있으니 무의미한 복수였죠. 차라리 로봇을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걸 널리 알리는게 더 효과적이었을거에요.
니시나 가문의 딸 호시코의 방자한 행동이라던가, 니시나 도시키의 문란한 사생활 역시 콩가루 재벌집 설정을 드러내는 역할 뿐입니다. 특히 니시나 도시키와 야스코의 관계는 충분히 재미있게 가져갈 수 있는 소재였는데 이래저래 이상하게 소모된 느낌이에요.

마지막의 열린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다쿠야가 고로의 존재를 눈치챈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쿠야는 고로를 살해할 이유는 없었어요. 경찰에 고로가 나오키를 죽였다고 알리면 그만이죠. 다쿠야가 시체 운반을 맡았던 이유는 예비 처남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고 하면 문제 없었을겁니다. 설령 3인 살인 계획의 증거인 연판장이 남아있었더라도, 이미 2 명은 확실하게 살해한 고로보다는 다쿠야 쪽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죠. 오히려 야스코 살인까지 고로가 뒤집어 썼을 거에요. 어차피 누가 죽였는지 증명할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마지막에 다쿠야가 만든 브루투스가 오작동하여 다쿠야를 죽인다는 결말은 솔직히 납득이 잘 되지 않더군요. 어차피 로봇 자체는 이야기의 핵심 소재도 아닌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등장해서 이야기를 끝맺는건 이상하다 싶었어요. 인간보도 로봇이 우수하다고 주장했던 다쿠야의 죽음으로는 어울린다 싶기도 한데, 그동안 뛰어난 엘리트의 모습을 보여왔으니 마지막 로봇을 이용한 범행도 멋지게 성공하는게 더 설득력은 높지 않았을까요?

그 외에도 세세한 문제점들이 많아서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재벌 가문과 야심가, 알리바이 트릭이라는 3위 일체는 이미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질릴 정도로 써 먹기도 했고요. 거장이 되기 위해 겪었던 시행착오를 보여주는 그런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19/08/10

봉제인형 살인사건 - 다니엘 콜 / 유혜인 : 별점 2점

봉제인형 살인사건 - 4점
다니엘 콜 지음, 유혜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쇄 살인 방화범 칼리드 체포 과정에서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가 복직한 형사 울프는 무려 여섯 명의 사체를 꿰머어 만든 '봉제 인형 살인 사건' 수사를 맡게 된다. 범인은 울프의 전처인 기자 안드레아를 통해 뒤 이은 여섯 명의 살인을 예고한다. 경찰은 예고 살인을 막기 위해 애쓰지만 공개된 명단 속 인물들은 차례로 살해당한다. 울프와 수사팀은 이 모든 사건이 칼리드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채나 범행을 막지 못하는 와중에, 경찰 대학을 나온 브레인 에드먼즈는 혼자만의 조사를 통해 울프가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는걸 밝혀낸다.

최근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죠. 여섯 명의 사체를 결합해 만든 '봉제 인형' 이 등장하는 서두도 강렬하지만, 경찰의 눈 앞에서 피해자들이 차례대로 살해되는 과정과 경찰의 수사가 숨돌릴 틈 없이 진행되는 작품. 속도감과 흡입력이 상당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재미 외의 요소는 부족합니다. 싸구려 펄프 픽션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어요. 많은 부분에서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재산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홀로 행동하는 범인 매스가 어떻게 놀라운 범행을 계속 벌일 수 있었는지부터 전혀 설명되지 않거든요. 보통 이렇게 전능한 악당의 경우, 경찰 관계자이거나 본인 스스로가 어떤 식으로든 - 머리가 좋다던가, 돈이 많다던가, 초능력이 있다던가... - 대단한 능력을 갖춘 인물들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작품 속 매스는 정신병을 앓고있는 퇴역 군인에 불과합니다. 턴블 시장을 살해하기 위해 그의 천식 흡입기를 어떻게 바꿔치기 했는지? 갈랜드 기자를 죽이기 위해 연극에 사용한 보호대를 어떻게 바꿔치기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요. 그나마 천식 흡입기야 그렇다쳐도, 갈랜드 기자가 죽은 것 처럼 꾸미기 위한 작전은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그가 어떤 보호대를 쓰고 어떤 연극을 할 지 매스는 알 도리가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마지막에 울프가 희생자로 예고된 상황에서는 울프가 개인 행동만 벌이지 않았어도 범행을 성공할 방법이 없었을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꼭 이 연쇄 살인이 아니더라도 봉제 인형을 만들기 위해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인물들을 납치하여 토막낸게 시체 발견 시점까지 사건화 되지 않은 이유도 알기 어렵습니다. 부랑자나 노숙자도 아니고 파트너급 변호사나 경찰 등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 전 부터도 매스는 이른바 '악마의 거래'로 살인 행각을 계속해 왔지만 아무도 정체를 몰랐다니 어이가 없더군요. 그만큼 영국의 치안이 허술하다는 이야기일까요? 이 정도면 정말 사람 살 곳이 아니네요.

추리적으로도 볼만한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범인을 후반부에 알아내기는 하는데 앞 부분의 수사는 별 관련이 없거든요. 에드먼즈의 프로파일링으로 도출된 인물상에 해당하는 인물을 DB를 통해 뒤지다가 사진 속 눈동자를 보고 범인임을 직감한다는데, 이럴거면 앞에서 벌였던 온갖 수사는 대체 뭔가 싶습니다. 왜 진작에 이렇게 수사를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사건 전개도 혼란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울프를 주인공으로 하여 피해자들의 정체를 알아내어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밝히는 과정, 예고된 범행을 막는 과정이 한참 펼쳐지다가 갑자기 에드먼즈 쪽으로 시점이 이동하여 울프가 진범이 아닐까? 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탓입니다. 이럴거면 애초부터 시점을 울프가 아니라 에드먼즈 쪽으로 했어야 말이 됩니다. 에드먼즈 시점으로 전개되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신병원에서 울프가 벽에 새겨놓은 피해자들의 이름을 드러내는 장면만큼은 아주 괜찮았는데 많이 아쉽네요. 울프의 수사는 현재로, 에드먼즈의 수사는 과거를 뒤지며 결국 두 시점이 하나로 합쳐지는 식으로 했더라면 설득력도 높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내용에서 불필요한 부분도 너무 많습니다. 자극적인 뉴스로 시청률을 올리려고 혈안이 된 방송국장 엘리야와 그 밑에서 수족처럼 일하며 양심과 싸우는 울프의 전처 안드레아 이야기는 정말이지 쓰잘데 없어요. 이런 매스컴의 행각을 지적한 다른 컨텐츠에서 흔하디 흔하게 보아왔던 스테레오 타입의 재탕일 뿐 아니라 실제 이야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거든요. 안드레아의 개입은 사건을 혼란스럽게만 만들 뿐입니다.
에밀리 벡스터 형사와 울프의 친구 이상 연인 이하라는 설정에 할애한 분량도 마찬가지입니다. 등장해서 하는거라곤 울프와 울프 주변 여자들과의 감정 싸움 말고는 없는데 이러느니 없어도 될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어요. 싸구려 매스컴의 행태는 대폭 줄이고, 울프 주변의 여자 관계도 모두 쳐냈다면 이야기는 절반 정도 분량으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거기에 에드먼즈 시점에서 썼다면? 1/3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한때 유행처럼 쏟아졌던 '전능한 살인마의 예고 연쇄 살인'을 별 생각없이 재탕한 결과물입니다. 에드먼즈가 활약하는 부분만큼은 흥미를 자아내지만 그 외에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네요.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19/08/09

앨리스 죽이기 - 고바야시 야스미 / 김은모

앨리스 죽이기 - 6점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리스가와 아리는 이상한 나라에서 험프티 덤프티가 살해되는데 범인으로 지목되는 꿈을 꾼다. 아리는 대학원생 이모리 겐을 통해 이 꿈을 여러 명의 주변 사람들이 꾼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두 세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로 현실 세계에서는 꿈 속에서 험프티 덤프티였던 오지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상황이었다.
그 뒤 그리핀이었던 시노자키 교수가 상한 굴을 먹고 병사하며 흰토끼 다나카 리오는 약물 중독자에게 습격당해 죽는다. 유일한 동료였던 도마뱀 빌인 이모리 겐 마저 살해당한 뒤, 여러가지 단서를 통해 아리는 진범이 누구인지를 알아낸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장편 추리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와 현대의 지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발표 당시 평이 꽤 좋았어요.

그런데 중반부까지는 굉장히 지루하고 짜증이 많이 났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계 속 정신나간 인물들이 정신나간 대사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수사, 추리는 커녕 이야기조차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어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앨리스만 정상일 뿐 조력자 이모리 겐의 아바타르 - 지구의 인물들이 이 세계 속에서 실체화된 존재의 통칭, 그런데 왜 아바타가 아닐까요? - 인 도마뱀 빌조차 너무나 멍청해서 방해만 될 뿐입니다. 물론 마지막에 다잉 메시지를 남기는 활약을 펼치기는 하나 애초에 그리핀 살인 사건의 유력한 증인인 굴을 먹어버리지만 않았어도 진상이 바로 드러났을테니 도움을 줬다고 보기는 힘들죠. 아무리 원작 느낌을 잘 살렸다 해도 정도가 너무 과했습니다.
그나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세계야 원작 그대로라고 쳐도, 현대 지구의 등장인물들이 이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동문서답만 일삼는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명목이 대학원생들과 조교수들인데 하는 행동은 흡사 초등학생처럼 느껴질 정도에요. 심지어는 등장하는 경찰들마저도 언행 모두 경찰로 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이럴 바에야 그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에서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만 쓰면 되지, 구태여 현실 지구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상한 나라 속 피해자들 모두 현실 지구에서 사망하지만 모두 사고나 병사로 처리된다는 설정 때문에 현실 지구에서는 특별한 수사나 추리가 이루어질리 없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서술한 이유는 후반부에 드러납니다. 이 설정이 후반부에 연속되는 반전에 요긴하게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공작 부인'인 줄 알았던 히로야마 부교수가 '메리 앤'으로 진범이라는게 드러나는 첫번째 반전부터 그러합니다. 현실의 지구가 없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반전으로 써 먹을 수 없었겠죠. 이 반전은 추리적으로도 꽤 합리적입니다. 여러가지 단서를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전달하고 있기도 하고요. 예를 들자면 앨리스가 험프티 덤프티 살인 사건 현장에 출입했다고 증언한 흰토끼는 시력이 좋지 않았고 여러 사람들을 냄새로 구분했다는 것, 흰토끼가 앨리스와 메리 앤을 착각했던 적이 있다는 것, 공작 부인은 알 수 없었던 정보를 히로야마 부교수가 입에 올렸던 것 등입니다. 
뒤이은 반전은 더 놀랍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히로야마 부교수가 자살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상한 나라'에서 죽지 않고 부활하여 앨리스를 살해하죠. 이는 '이상한 나라'가 현실이고 현실의 지구는 오히려 이상한 나라의 '붉은 왕'이 꾸는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은 한 쪽에서 죽으면 막연히 다른 쪽 세계에서도 죽는구나 싶었는데, 사실은 현실인 '이상한 나라'에서 죽어야 '현재의 지구'에서 죽을 뿐이고 반대의 경우는 다시 살아나게 되는 거죠.
이후 마지막 반전이 이어집니다. 구리스가와 아리는 앨리스가 아니라 앨리스 주머니 속 겨울잠쥐여서 현실의 지구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 다니마루 경감과 니시타카지마 형사와 함께 히로야마 부교수의 범행을 드러내는데 성공한다는 반전이죠. 형사는 이상한 나라에서 공작 부인, 경감은 바로 여왕이었기에 이상한 나라에서 메리 앤은 능지처참에 가까운 끔찍한 사형을 당하는게 결말이고요. 히로야마 부교수가 공작 부인이 아니라 메리 앤이었다는 첫번째 반전과 겨울잠쥐가 말을 할 수 있다는 서두의 묘사를 복선으로 활용한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그 외의 복선도 탄탄합니다. 험프티 덤프티를 죽인 이유는 히로야마 부교수가 자신의 승진의 걸림돌이라 생각하여 살의를 품었던 시노자키 선생으로 착각했기 때문인데 이를 '험프티 덤프티에는 시노자키 선생이 어울린다'는 등의 지나가는 말로 드러내는 식이죠.

하지만 조금 깊게 생각하면 문제도 많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는 무의미한 캐릭터와 전개가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일단 도마뱀 빌, 이모리 겐은 존재와 죽음 모두 무의미합니다. 현실 지구의 이모리 겐은 뭔가 있어보였던 첫 등장에 비하면 너무 하는게 없어서 놀랄 정도입니다. 도마뱀 빌은 이상한 나라에서의 온갖 민폐 행동도 거슬리는데, 유일한 활약이라 할 수 있는 다잉메시지도 불필요했습니다. 히로야마 부교수가 진범 메리 앤이라는건 다른 단서를 통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냥 분량 늘리기에 불과합니다. 미치광이 모자 장수와 3월 토끼 역시 이상한 나라에서의 괴상한 언행 외에는 왜 나왔나 싶네요. 현실 세계에서의 비중은 아예 없다시피 하니까요.
다니마루 경감과 니시나카지마 형사 콤비도 등장과 비중에 비하면 활약이 미미합니다. 그들은 히로야마 부교수가 공작 부인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죠. 그렇다면 그녀가 수상하다는 전제 하에서 움직였어야 하는데 행동이 너무 굼뜹니다. 또한 구리스가와 아리가 다니는 대학원에서는 오지의 자살로 보이는 추락 사건, 시노자키 교수가 상한 굴을 먹고 죽는 사건, 다나카 리오가 약물 중독자의 칼에 찔려 죽고 약물 중독자는 자살하는 사건, 이모리 겐이 술을 먹고 자다가 들개에게 뜯어먹혀 죽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납니다. 아무리 자살과 병사, 사고사라도 '이상한 나라' 속 인물이기도 한 다니마루 경감과 니시타카지마 형사는 당연히 수상하다는걸 알았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메리 앤은 현실의 지구가 사실은 이상한 나라의 꿈이라는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꿈 속에서의 신분 상승을 위해 현실에서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대단한 신분 상승도 아니에요. 단지 부교수가 교수가 되는 정도니까요. 이래서야 위험에 비하면 얻는게 너무 약하죠. 실제로 흰토끼가 냄새만 잘 맡았어도, 굴을 빌이 삼켜버리지만 않았어도 범인으로 체포되었을겁니다. 그녀의 주장대로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나갔다고 치더라도, 이 정도 단서라면 빠져나가기는 불가능했을테니까요. 차라리 스나크나 벤더스내치를 조종하는 재주를 이용하여 이상한 나라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계획이 더 나았을겁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기발한 설정과 아이디어, 반전은 충분히 매력적이며 추리적으로도 평균은 됩니다. 저 같은 평범한 독자에게는 캐릭터, 전개, 묘사 모두 과한 느낌이라 조금 감점합니다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팬이시라면 이 모든게 다 즐길거리겠죠. 앨리스 팬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19/08/07

텀블벅 펀딩 성공!

얼마전 제가 쓴 책의 텀블벅 펀딩이 시작되었다고 소개해 드렸었죠.

그런데 펀딩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100% 달성에 성공했더군요. 금액이 얼마 되지 않은 덕분이고 지인 비중도 높겠지만 기분은 좋네요. 앞으로도 탄력받아 쭈욱 잘 되었으면 합니다.

혹 관심있으신 분이 계시다면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19/08/04

추리소설 900번째 리뷰 등록

추리소설 800번째 리뷰 등록

2003년 첫 리뷰 <<구석의 노인 사건집>>에서부터 시작한 추리소설 리뷰가 2019년 8월 4일 오늘 <<조용한 무더위>>로 900번째가 되었습니다. 계절과 딱 맞아떨어지는 제목이네요.

800번째 리뷰였던 2017년 5월 28일 <<허즈번드 시크릿>으로부터 2년 2개월, 약 26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이전보다 3개월 정도 늦어졌는데 아무래도 예전만큼 책을 많이 읽기는 조금 힘드네요. 나이도 들고, 애도 커 가면서 독서에만 시간을 온전히 내기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에는 출간 준비로 바빠서 도저히 책을 읽을 수도 없었고요. 이제 목표인 1,000권까지 100권 남았는데 이대로라면 2022년 쯤 달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여튼 900권째 추리소설 리뷰를 쓰는 동안 누추하고 마이너한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최근 도서 리뷰는 글을 올려도 제대로 노출도 안되고, 방문객 수도 급감하여 블로그 운영에 대해 의욕은 전혀 생기지 않긴 합니다. 그래도 이글루스가 존재하는 한 리뷰는 계속 올릴 예정이니 관심 있으시다면 앞으로도 자주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그림은 10년 전에 EST님이 보내주셨던 <블로그 6주년 축전>을 이용한 것인데 EST님께 특히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조용한 무더위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3점

조용한 무더위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와카타케 나나미의 '유능하지만 불운한' 여성 사립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하무라 아키라는 마흔을 넘긴 나이를 제외하고는 여전하네요. 독신에다가 하루하루 근근히 먹고산다는 점에서 말이죠. 나이 탓에 어깨 근육통 등 건강에 문제가 생기긴 했으나 다행히 아직까지는 탐정으로서 꽤 유능합니다. 그런 그녀가 백곰 탐정사 탐정이자 미스테리 전문 서점 '살인곰 서점'의 거의 유일한 아르바이트 생으로 2014년 7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벌어진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 여섯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읽기 전에는 아무래도 일상계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현재 모습을 보면 딱히 대단한 사건에 휘말릴걸로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내용과 사건들은 상당히 묵직합니다. <<파란 그늘>>만 들치기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이며 그 외의 작품들에서는 강력 범죄들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작품별로는 <조용한 무더위>>는 살인 미수, <<아타미 브라이튼 록>>은 불법 약물 제조에 살인과 사체 은닉, <<소에지마씨 가라사대>>는 살인과 감금, <<붉은 흉작>>은 호적 도용과 살인 강도, <<성야 플러스 1>>은 살인 사건입니다.
이런 강력 범죄들이 왁자지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일어나고, 시니컬한 하무라 시점의 묘사가 더해져 독특한 재미를 안겨다주는 이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도 잘 살아 있습니다. 진지한 주인공이 자신도 휩쓸린 대소동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는, 우디 알렌이 연상되는 블랙 코미디 스타일이죠. 역시나 시리즈의 매력인 평범한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악의'도 곳곳에서 드러나고요. 추리적으로도 잘 정리되어서 깔끔합니다.

무엇보다도 '미스테리 전문 서점'이라는 '살인곰 서점'이 주요 무대이며, '살인곰 서점'에서 매월 벌이는 '미스터리 투어'가 이야기의 핵심 소재 중 하나라는게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굉장히 반가왔습니다. 여러 추리 소설과 작가들이 중요하게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파란 그늘>>에서 사건의 진상은 작 중 언급되는 <<레베카>>의 티 타임 비밀 레시피에 얽힌 진실이 드러난 덕분입니다. <<아타미 브라이튼 록>>에서 피해자가 영국 추리 소설을 읽었다는 수상한 증언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고요. <<성야 플러스 1>>은 개빈 라이얼의 <<심야 플러스 1>>이 핵심 소재 중 하나로 사용됩니다. 마지막에 부록처럼 붙어있는 살인곰 서점 점장 도야마의 입을 빌어 작 중 등장하는 작품들을 소개해주는 부분도 인상적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재미와 추리 모두 충분한 수준이며, 추리 애호가의 덕심(?)을 잘 건드리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추리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은 작품이에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란 그늘>> 7월
하무라 아키라는 6월에 기치조지에 있는 서점으로 출근하다가 5명이나 사망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그 때 한 피해자의 가방을 훔쳐가는 '뱀녀'를 무심히 바라보았던 하무라는, 가방 속 레시피 노트만큼은 꼭 찾고 싶다는 피해자 쓰구미의 모친의 부탁과 일종의 사명감으로 '뱀녀'의 행방을 추적한다. 몇 안되는 단서를 통해 결국 '뱀녀'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단편집을 개시하는 첫 단편. 더위에 대한 하무라의 푸념에서 대형 교통사고로, 그리고 '뱀녀'의 행방을 쫓다가 그녀가 택배 배달원과 손을 잡은 들치기범이라는게 밝혀진다는 전개가 빠르면서도 설득력이 높게 진행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무라가 범인의 대략적인 인상 착의와 차림새, 범인이 이동한 방향이라는 몇 안되는 단서로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도 꽤 설득력 높고요.
평범한 인간의 '악의'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발 벗고 나서는 교통 사고 현장에서 죽어가는 피해자의 가방을 훔치는 범죄가 그러하죠. 모친의 애끓는 호소에도 가방을 버렸다고 하지만 정작 돌려달라고 한 레시피 노트를 연인에게 선물한 사실을 밝히지 않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 추리 모두 일정 수준 이상입니다. 이어지는 작품들에 기대를 갖게 만드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런 책을 쓴 입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핵심인 쓰구미의 노트에 수록되었던 소설 <<레베카>>와 관련된 레시피가 진상을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책에는 상세하게 알려주지 않는 레시피 속 비밀 재료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떤 맛일지 아주 궁금하네요. 또 서점 점장인 도야마가 기획한 7월 미스터리 페어의 주제가 "달콤한 미스터리 페어" 라는 점에서도 그러합니다. 각종 추리 소설에 관련된 레시피 책들도 소개되는데 그 중 <<Len Deighton's Action Cookbook>>은 꼭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작가 렌 테이턴의 레시피인데 레몽 머랭 파이 레시피가 실려 있는 등 디저트 부분이 충실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스터리 티 파티 계획도 발군이에요. 미스터리에 등장하는 과자들을 죽 늘어놓고 티 파티를 열다니! 아, 이런 서점이 집 근처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한 무더위>> 8월
점장은 고서 매입차 지방으로 떠나고, 오기로 한 아르바이트 생은 오지도 않는 상황에서 하무라에게는 사건 의뢰가 쏟아진다. 운 좋게 의뢰받은 사건을 하루에 다 해결한 하무라는 이 모든건 마을 자치회장 이토나가의 계획이라는걸 눈치챈다. 그는 골칫덩어리 모친을 돌연사로 위장하여 살해하기 위해 거리에서 사람들을 비우려 했던 것이었다.

전편에 이어 무더위가 이어집니다. 무더위가 일종의 흉기로 사용되기도 하고요. 자치회장은 어머니를 열사병에 걸리게 할 속셈이었거든요. 이 아이디어는 실제 뉴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설득력도 강합니다. 계절 묘사도 발군입니다.

하지만 범행을 위해 자치회장이 무리하게 거리를 비운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남의 집 에어컨 소리를 귀담아 들을 이유는 없죠. 또 거리를 찾아오는 방문객이 있을 수도 있는 등 어차피 통제는 불가능하니까요. 하무라의 탐정일이 수월하게 풀린다는 것도 좀 과했습니다. 진상을 깨닫게 되는, 자치회장의 볼펜은 순전히 우연이었다는 점도 감점 요소죠. 이런 부분은 조금 더 정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타미 브라이튼 록>> 9월
거의 40여년전 종적을 감춘 소설가 시타라 소가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출판사에서는 시타라 소의 마지막 행적을 뒤쫓는 기획을 만들어 하무라에게 의뢰한다. 출판사 사장이 저작권과 함께 손에 넣은 시타라 소의 일기가 단서로, 하무라는 사라지기 전 일기에 자주 언급된 5명의 지인을 찾아 나선다. 탐문 중 그들의 행적에 약물이 개입된걸 알고 진상을 깨닫는다. 부동산 업자, 상사 사원, 약국 경영자 아들, 언더그라운드 화학자, 아마츄어 요트맨 5명이 모여 배 위에서 불법 약물을 제조하려 했는데, 발을 빼려 한 시타로 소가 살해되고 만 것이었다.

하무라 아키라가 이동하는 모든 이야기가 그렇지만 이 작품은 특히나 이동이 잦아서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강하게 풍깁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악의가 아니라 명확한 목적이 있는 범죄 모의라는 점, 그리고 과거의 수수께끼를 다양한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현재 시점에 밝혀낸다는 고전적, 왕도적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조금 다른 분위기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를 깔끔하게 전개하는 솜씨는 대단합니다. <<브라이튼 록>>이라는 소설을 시타라 소가 읽은 시점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 이를 본인이 발로 뛰어 얻어낸 정보와 엮어 진상을 도출하는 하무라의 활약도 눈부실 정도고요. UFO에 미친 부동산업자, 바퀴벌레를 키우는 전 상사맨같은 독특한 등장인물들도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묘사와 맞물려 재미를 더해줍니다.

하지만 결말이 '그래서 어쨌는데?' 수준으로 마무리 되어서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수십년 전 사건으로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하무라가 자신이 애써 진상을 밝힐 필요도 없었다는 점에서는 이게 최선이었겠지만요. 그 외 추리적으로도 '자백'에 의존할 뿐이라 - 다른건 몰라도 시타로 소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백이 아니라면 알아낼 도리가 없었으니 - 조금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소에지마씨 가라사대>> 10월
과거에 탐정으로 하무라의 지인인 무라키 요시히로가 긴급하게 전화로 사건을 의뢰한다. 리모델링 업자 호시로 구루미 사건을 조사해 달라는 것. 하무라는 인터넷 조사와 오래전 발표된 추리 단편 <<암모니아>>를 통해 떠올린 착상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하무라가 서점에서 전화와 인터넷만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니 현대적인 '안락의자 탐정물' 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작 중 미스터리 페어의 주제가 '학자 탐정' 으로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재미있어요. 이런저런 지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은 동일하니까요.
추리 애호가를 위한 정보도 한 가득입니다. '학자 미스터리 페어'라는 페어의 주제는 심심하지만 그만큼 소개되는 작품들이 친숙해서 마음에 들더군요. '싱킹 머신' 반 두젠 교수를 비롯한 다양한 학자, 박사들이 등장하거든요. 또 피해자가 리모델링 업자라는 걸 듣고 '딕 프랜시스의 주인공이 이런 일을 했었는데' 라고 생각하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닐테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너무 뻔해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은퇴한 변호사가 리모델링 업자에게 판 저택이 동기일거라는게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하무라의 추리대로 저택에 사체가 묻혀 있었다는 결말도 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변호사 조카가 호시노 구루미를 살해한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설퍼요. 운 좋게 용의자가 소에지마씨로 특정되었을 뿐, 용의자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궁지에 몰린 소에지마씨가 무라키를 감금하여 인질극을 벌인다는 설정도 지나쳤습니다. 이런 류의 소동극이 작가의 장기이기는 한데, 자극이 자니치다 보면 무덤덤해지는 법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붉은 흉작>> 11월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가 쓰노다 고다이는 자신의 호적이 도용당한 사건에 대해 하무라에게 의뢰한다. 쓰노다 고다이의 본명 쓰노다 지로라는 호적을 가진 사체가 발견되었기 때문. 여러 번의 헛수고끝에 호적을 도용한건 쓰노다 고다이의 이사를 맡았던 업체의 직원 쓰다 지로라는게 밝혀진다. 그는 고가 간타가 오기 노보루를 살해한 사건의 관계자였다.

하드보일드 팬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 하드보일드 작가가 의뢰인인데다가 주요 소재가 <<붉은 수확>>과 비슷한 사건을 일으킨 다카노바바의 저주받은 땅이니까요. 심지어 고가 간타가 오기 노보루를 살해한 흉기도 '얼음 송곳' 입니다. 게다가 삼천만엔이라는 거금을 가지고 있지만 드러내 쓰지도 못하고 홀로 약간의 사치만 부리면서, 죄책감에 몸부림치다가 죽어간 불쌍한 남자가 주인공이며, 그의 평생의 은인은 광인이 되어 저주받은 땅에서 살아간다는 설정도 하드보일드스럽습니다. 냉정한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작가 선생의 한 마디는 화룡 정점이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애매합니다. 가짜 츠노다 지로가 자주 다니던 지압원에서 의료 보험증 사본을 입수하여 '고가 간타'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 장소를 찾아가고, 그 곳에서 고가 간타가 저지른 살인 사건과 참고인이었던 츠다 지로를 확인하는 과정이 일사천리이기 때문입니다. 오기 노보루가 지녔지만 사라진 삼천만엔을 츠다 지로가 손에 넣었을 거라는 추리는 딱히 중요한 요소는 아니고요.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드보일드라는 의미 외의 가치는 조금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성야 플러스 1>>
크리스마스 이브, 하무라는 서점 오너 도야마의 지시로 크리스마스 파티 경매용으로 사용될 <<심야 플러스 1>>의 초판 저자 사인본을 받으러 간다. 책의 주인인 작가 소노다가 부재 중이라 그의 아내로부터 책은 전달 받는다. 그런데 그녀는 하무라에게 슈톨렌을 지인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슈톨렌을 전달받은 에리코는 곰인형 선물 전달을 부탁한다. 이렇게 심부름을 해 나가다가 마지막 심부름 상대인 고이시바라 미야코의 집에서 미야코의 사위가 칼부림을 하는걸 목격한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모든 진상이 밝혀지며, 책 도둑도 피해서 무사히 사인본을 서점에 전달하고 임무를 완수한다.


개빈 라이얼의 <<심야 플러스 1>>에서 따온 제목이죠. <<심야 플러스 1>>은 서스펜스 가득한 모험물인데 이 이야기 속 하무라에게 닥친 시련도 <<심야 플러스 1>> 못지 않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부탁을 들어주고 임무를 완수하는 모습은 성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에요. 조금 의아했던건 일본인들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걸 굉장히 두려워 한다는데, 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하무리에게 폐를 끼치는걸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무라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이러한 하무라가 부탁받은 심부름을 수행하기 위한 여정의 정도는 지나친 편입니다. 중간의 여정들은 딱히 재미있지도 않고요. 솔직히 중간 과정들은 불필요했다 생각되네요. 소노다 씨가 <<심야 플러스 1>>의 가짜 사인본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책 도둑들이 사인본을 노린다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무라의 말대로 옥션에서 2백불 정도면 살 수 있는데 노상강도짓을 할 이유는 없죠.

추리적으로도 별 내용은 없습니다. 백골 사체는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어차피 본 편 정보로 추리가 가능한 사건은 아닙니다. 고이시바라 미야코 할머니와 사위의 칼부림 역시 억지스러운 요구에 불과할 뿐이고요. 오히려 사위가 딸을 살해한게 아닌가? 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더라면 말이 되었을텐데 말이죠. 책을 날치기한 2인조의 경우는 앞서 말씀드렸듯 사건 자체의 현실성이 약해서 추리의 여지도 부족합니다.

그래도 하무라의 불운을 잘 드러내고 있고, 중간중간 벌어지는 사건들이 많아서 왁자지껄한 블랙 코미디로 본다면 괜찮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고이시바라 미야코와 사위 사이에서 벌어진 칼부림입니다. 정말 급작스럽게 말려들었는데 미야코 할머니가 하무라의 가방을 잡고 놔주지 않는 등의 황당한 상황이 이어지거든요. 이를 슈톨렌이 해결한다는 결말도 재미있었고요.
그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다 극복하고 모두가 원하는 상황으로 매조지하는 결말도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행복해지는게 크리스마스의 핵심요소이긴 하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지만 재미 만큼은 확실한 작품입니다.

2019/08/03

살인 카드 게임 - 제임스 패터슨 / 조은아 : 별점 1점

살인 카드 게임 - 2점
제임스 패터슨 지음, 조은아 옮김/북플라자

내 소개를 하지. 이름은 딜런. 저명한 심리학 교수지. 어느 날, 아름답고 당찬 여형사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지. 그녀는 대뜸 내게 피 웅덩이 위에 쓰러진 피해자의 사진을 보여주었어. 맙소사, 사진 속 모습이 얼마나 참혹한지 역겨움이 들 지경이었어. 그녀는 범인이 시신 옆에 트럼프 카드 ‘킹’을 두고 갔다고 설명했어. 남기고 간 카드로써 다음 희생자를 예고하는 연쇄 살인 게임이 시작된 거야. 나는 그녀를 도와 범인을 잡는 수사에 참여하기로 했지. 그런데 빌어먹을! 놈은 그런 우리를 비웃듯이 교묘한 방법으로 살인을 계속 저질렀어. 과연 이 살인 카드 게임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미국의 인기 작가 제임스 페터슨의 신작. 제임스 페터슨 작품은 아주 오래 전 몇 권 읽어보았는데 사실 좋았던 기억은 없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흐른 만큼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살짝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역시나 실망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실망도 아니고 왕실망이었어요.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와 주인공이 대결하는 작품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살인마가 특정 소재 - 동요라던가, 타로 카드라던가... - 로 살인 예고를 한다는 작품도 많고요. 무작위로 보였던 피해자들에게 무언가 공통점, 패턴이 있다는 이야기도 굉장히 흔합니다. 그렇다면 이야기에 무언가 특별한걸로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차별화된 재미 요소는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나마의 노력은 주인공 캐릭터의 설정 뿐입니다. 주인공 딜런 라인하르트 교수는 예일대의 이상 행동 분석 교수로 정신 감정 전문가이자 전직 CIA요원, 거기에 아이를 입양하려고 하는 게이 부부의 남편! 이거든요. 파트너격인 엘리자베스 니덤은 게이마저도 반할만한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에 뒤지지 않고요. 그런데 이게 과연 재미요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헐리우드 영화같기는 한데 딱히 이야기와는 별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이렇게 캐릭터를 구성하기 위한 여러가지 이야기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한 덕에 이야기는 구멍 투성이입니다. '트럼프 카드'로 다음 피해자를 예고한다는 핵심 설정부터 억지스러워요. '클로버 킹'이 뉴욕 클럽의 왕으로 군림했던 두번째 피해자를 나타낸다는 것, 그리고 '하트 퀸'이 여성 흉부외과 전문의를 가리킨다는 정도만 아슬아슬하게 괜찮은 수준이며 그 외에는 전부 무리수입니다. 예를 들어 하트 2가 두명의 불륜 남녀를 가리킨다? 그 대상자는 뉴욕에 수만명은 될 겁니다. 킹스맨 재판 관련자라는 조건이 걸리더라도 둘의 불륜을 어떻게 알아낼까요? 최소한 경찰은 알아내기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래도 억지스럽지만 피해자들을 어떻게든 알아내기는 합니다. 허나 범인보다 앞서가고자 할 때마다 간발의 차이로 항상 범인이 앞선다는 식상한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너무 뻔해서 놀랄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렇게 범인에게 계속 뒤진다면 경찰이 딜런 교수에게 협조를 요청할 이유도 없죠. 실제로 딜런 교수가 사건 해결을 위해 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피해자들 모두 악인들로 킹스맨에게 재판받았다는 공통점을 찾아내고, 진범이 엘리야 티미츠라는걸 눈치챈 뒤 그라임스 기자에게 달려간 정도만 경찰보다 빠른 정도죠. 하지만 이건 무의미한 행동이었습니다. 엘리야 티미츠는 그라임스 기자를 죽일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어차피 킹스맨 판사가 범인이 아니라는게 밝혀진다면 그의 자동차, 옷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인 엘리야 티미츠가 범인이라는게 드러나는건 시간 문제였고요. 마지막에 시장을 구하는 활약? 범인이 죽기전 '나를 야구장으로 데려다 주오'를 부르고 손목에 문신이 새겨졌다는 정도로 무언가 행동을 벌인다는건 억지 아닐까요? 그야말로 작위적인 전개의 끝판왕 느낌이었습니다. 즉, 딜런 교수의 유일한 활약은 총상을 입은 엘리자베스를 구한게 전부입니다. 

범인 엘리야 티미츠의 설정과 그의 범행들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에 특별한 연줄도 없고, 대단한 기술을 배우지도 않은 흑인 청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복잡하고 거대한 살인 계획을 경찰보다 앞서 실행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무합니다. 그냥 어릴 때 부터 다이너마이트와 피를 가까이하면서 살았는게 고작이에요. 전직 경찰이었다, 전직 무슨 요원이었다는 등으로 어떻게든 설득력을 갖추고자 하는 시도는 없습니다. 등장도 급작스러워서 반전의 묘미도 없고요.

한마디로 독서에 들인 시간이 아까운 수준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리뷰를 쓰기도 아깝지만 다른 피해자 (?) 분들을 막기 위해 몇 자 적습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제임스 페터슨의 소설은 손에 대지도 않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