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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

조용한 무더위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3점

조용한 무더위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와카타케 나나미의 '유능하지만 불운한' 여성 사립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하무라 아키라는 마흔을 넘긴 나이를 제외하고는 여전하네요. 독신에다가 하루하루 근근히 먹고산다는 점에서 말이죠. 나이 탓에 어깨 근육통 등 건강에 문제가 생기긴 했으나 다행히 아직까지는 탐정으로서 꽤 유능합니다. 그런 그녀가 백곰 탐정사 탐정이자 미스테리 전문 서점 '살인곰 서점'의 거의 유일한 아르바이트 생으로 2014년 7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벌어진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 여섯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읽기 전에는 아무래도 일상계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현재 모습을 보면 딱히 대단한 사건에 휘말릴걸로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내용과 사건들은 상당히 묵직합니다. <<파란 그늘>>만 들치기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이며 그 외의 작품들에서는 강력 범죄들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작품별로는 <조용한 무더위>>는 살인 미수, <<아타미 브라이튼 록>>은 불법 약물 제조에 살인과 사체 은닉, <<소에지마씨 가라사대>>는 살인과 감금, <<붉은 흉작>>은 호적 도용과 살인 강도, <<성야 플러스 1>>은 살인 사건입니다.
이런 강력 범죄들이 왁자지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일어나고, 시니컬한 하무라 시점의 묘사가 더해져 독특한 재미를 안겨다주는 이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도 잘 살아 있습니다. 진지한 주인공이 자신도 휩쓸린 대소동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는, 우디 알렌이 연상되는 블랙 코미디 스타일이죠. 역시나 시리즈의 매력인 평범한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악의'도 곳곳에서 드러나고요. 추리적으로도 잘 정리되어서 깔끔합니다.

무엇보다도 '미스테리 전문 서점'이라는 '살인곰 서점'이 주요 무대이며, '살인곰 서점'에서 매월 벌이는 '미스터리 투어'가 이야기의 핵심 소재 중 하나라는게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굉장히 반가왔습니다. 여러 추리 소설과 작가들이 중요하게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파란 그늘>>에서 사건의 진상은 작 중 언급되는 <<레베카>>의 티 타임 비밀 레시피에 얽힌 진실이 드러난 덕분입니다. <<아타미 브라이튼 록>>에서 피해자가 영국 추리 소설을 읽었다는 수상한 증언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고요. <<성야 플러스 1>>은 개빈 라이얼의 <<심야 플러스 1>>이 핵심 소재 중 하나로 사용됩니다. 마지막에 부록처럼 붙어있는 살인곰 서점 점장 도야마의 입을 빌어 작 중 등장하는 작품들을 소개해주는 부분도 인상적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재미와 추리 모두 충분한 수준이며, 추리 애호가의 덕심(?)을 잘 건드리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추리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은 작품이에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란 그늘>> 7월
하무라 아키라는 6월에 기치조지에 있는 서점으로 출근하다가 5명이나 사망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그 때 한 피해자의 가방을 훔쳐가는 '뱀녀'를 무심히 바라보았던 하무라는, 가방 속 레시피 노트만큼은 꼭 찾고 싶다는 피해자 쓰구미의 모친의 부탁과 일종의 사명감으로 '뱀녀'의 행방을 추적한다. 몇 안되는 단서를 통해 결국 '뱀녀'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단편집을 개시하는 첫 단편. 더위에 대한 하무라의 푸념에서 대형 교통사고로, 그리고 '뱀녀'의 행방을 쫓다가 그녀가 택배 배달원과 손을 잡은 들치기범이라는게 밝혀진다는 전개가 빠르면서도 설득력이 높게 진행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무라가 범인의 대략적인 인상 착의와 차림새, 범인이 이동한 방향이라는 몇 안되는 단서로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도 꽤 설득력 높고요.
평범한 인간의 '악의'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발 벗고 나서는 교통 사고 현장에서 죽어가는 피해자의 가방을 훔치는 범죄가 그러하죠. 모친의 애끓는 호소에도 가방을 버렸다고 하지만 정작 돌려달라고 한 레시피 노트를 연인에게 선물한 사실을 밝히지 않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 추리 모두 일정 수준 이상입니다. 이어지는 작품들에 기대를 갖게 만드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런 책을 쓴 입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핵심인 쓰구미의 노트에 수록되었던 소설 <<레베카>>와 관련된 레시피가 진상을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책에는 상세하게 알려주지 않는 레시피 속 비밀 재료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떤 맛일지 아주 궁금하네요. 또 서점 점장인 도야마가 기획한 7월 미스터리 페어의 주제가 "달콤한 미스터리 페어" 라는 점에서도 그러합니다. 각종 추리 소설에 관련된 레시피 책들도 소개되는데 그 중 <<Len Deighton's Action Cookbook>>은 꼭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작가 렌 테이턴의 레시피인데 레몽 머랭 파이 레시피가 실려 있는 등 디저트 부분이 충실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스터리 티 파티 계획도 발군이에요. 미스터리에 등장하는 과자들을 죽 늘어놓고 티 파티를 열다니! 아, 이런 서점이 집 근처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한 무더위>> 8월
점장은 고서 매입차 지방으로 떠나고, 오기로 한 아르바이트 생은 오지도 않는 상황에서 하무라에게는 사건 의뢰가 쏟아진다. 운 좋게 의뢰받은 사건을 하루에 다 해결한 하무라는 이 모든건 마을 자치회장 이토나가의 계획이라는걸 눈치챈다. 그는 골칫덩어리 모친을 돌연사로 위장하여 살해하기 위해 거리에서 사람들을 비우려 했던 것이었다.

전편에 이어 무더위가 이어집니다. 무더위가 일종의 흉기로 사용되기도 하고요. 자치회장은 어머니를 열사병에 걸리게 할 속셈이었거든요. 이 아이디어는 실제 뉴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설득력도 강합니다. 계절 묘사도 발군입니다.

하지만 범행을 위해 자치회장이 무리하게 거리를 비운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남의 집 에어컨 소리를 귀담아 들을 이유는 없죠. 또 거리를 찾아오는 방문객이 있을 수도 있는 등 어차피 통제는 불가능하니까요. 하무라의 탐정일이 수월하게 풀린다는 것도 좀 과했습니다. 진상을 깨닫게 되는, 자치회장의 볼펜은 순전히 우연이었다는 점도 감점 요소죠. 이런 부분은 조금 더 정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타미 브라이튼 록>> 9월
거의 40여년전 종적을 감춘 소설가 시타라 소가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출판사에서는 시타라 소의 마지막 행적을 뒤쫓는 기획을 만들어 하무라에게 의뢰한다. 출판사 사장이 저작권과 함께 손에 넣은 시타라 소의 일기가 단서로, 하무라는 사라지기 전 일기에 자주 언급된 5명의 지인을 찾아 나선다. 탐문 중 그들의 행적에 약물이 개입된걸 알고 진상을 깨닫는다. 부동산 업자, 상사 사원, 약국 경영자 아들, 언더그라운드 화학자, 아마츄어 요트맨 5명이 모여 배 위에서 불법 약물을 제조하려 했는데, 발을 빼려 한 시타로 소가 살해되고 만 것이었다.

하무라 아키라가 이동하는 모든 이야기가 그렇지만 이 작품은 특히나 이동이 잦아서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강하게 풍깁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악의가 아니라 명확한 목적이 있는 범죄 모의라는 점, 그리고 과거의 수수께끼를 다양한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현재 시점에 밝혀낸다는 고전적, 왕도적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조금 다른 분위기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를 깔끔하게 전개하는 솜씨는 대단합니다. <<브라이튼 록>>이라는 소설을 시타라 소가 읽은 시점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 이를 본인이 발로 뛰어 얻어낸 정보와 엮어 진상을 도출하는 하무라의 활약도 눈부실 정도고요. UFO에 미친 부동산업자, 바퀴벌레를 키우는 전 상사맨같은 독특한 등장인물들도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묘사와 맞물려 재미를 더해줍니다.

하지만 결말이 '그래서 어쨌는데?' 수준으로 마무리 되어서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수십년 전 사건으로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하무라가 자신이 애써 진상을 밝힐 필요도 없었다는 점에서는 이게 최선이었겠지만요. 그 외 추리적으로도 '자백'에 의존할 뿐이라 - 다른건 몰라도 시타로 소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백이 아니라면 알아낼 도리가 없었으니 - 조금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소에지마씨 가라사대>> 10월
과거에 탐정으로 하무라의 지인인 무라키 요시히로가 긴급하게 전화로 사건을 의뢰한다. 리모델링 업자 호시로 구루미 사건을 조사해 달라는 것. 하무라는 인터넷 조사와 오래전 발표된 추리 단편 <<암모니아>>를 통해 떠올린 착상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하무라가 서점에서 전화와 인터넷만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니 현대적인 '안락의자 탐정물' 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작 중 미스터리 페어의 주제가 '학자 탐정' 으로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재미있어요. 이런저런 지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은 동일하니까요.
추리 애호가를 위한 정보도 한 가득입니다. '학자 미스터리 페어'라는 페어의 주제는 심심하지만 그만큼 소개되는 작품들이 친숙해서 마음에 들더군요. '싱킹 머신' 반 두젠 교수를 비롯한 다양한 학자, 박사들이 등장하거든요. 또 피해자가 리모델링 업자라는 걸 듣고 '딕 프랜시스의 주인공이 이런 일을 했었는데' 라고 생각하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닐테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너무 뻔해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은퇴한 변호사가 리모델링 업자에게 판 저택이 동기일거라는게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하무라의 추리대로 저택에 사체가 묻혀 있었다는 결말도 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변호사 조카가 호시노 구루미를 살해한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설퍼요. 운 좋게 용의자가 소에지마씨로 특정되었을 뿐, 용의자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궁지에 몰린 소에지마씨가 무라키를 감금하여 인질극을 벌인다는 설정도 지나쳤습니다. 이런 류의 소동극이 작가의 장기이기는 한데, 자극이 자니치다 보면 무덤덤해지는 법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붉은 흉작>> 11월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가 쓰노다 고다이는 자신의 호적이 도용당한 사건에 대해 하무라에게 의뢰한다. 쓰노다 고다이의 본명 쓰노다 지로라는 호적을 가진 사체가 발견되었기 때문. 여러 번의 헛수고끝에 호적을 도용한건 쓰노다 고다이의 이사를 맡았던 업체의 직원 쓰다 지로라는게 밝혀진다. 그는 고가 간타가 오기 노보루를 살해한 사건의 관계자였다.

하드보일드 팬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 하드보일드 작가가 의뢰인인데다가 주요 소재가 <<붉은 수확>>과 비슷한 사건을 일으킨 다카노바바의 저주받은 땅이니까요. 심지어 고가 간타가 오기 노보루를 살해한 흉기도 '얼음 송곳' 입니다. 게다가 삼천만엔이라는 거금을 가지고 있지만 드러내 쓰지도 못하고 홀로 약간의 사치만 부리면서, 죄책감에 몸부림치다가 죽어간 불쌍한 남자가 주인공이며, 그의 평생의 은인은 광인이 되어 저주받은 땅에서 살아간다는 설정도 하드보일드스럽습니다. 냉정한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작가 선생의 한 마디는 화룡 정점이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애매합니다. 가짜 츠노다 지로가 자주 다니던 지압원에서 의료 보험증 사본을 입수하여 '고가 간타'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 장소를 찾아가고, 그 곳에서 고가 간타가 저지른 살인 사건과 참고인이었던 츠다 지로를 확인하는 과정이 일사천리이기 때문입니다. 오기 노보루가 지녔지만 사라진 삼천만엔을 츠다 지로가 손에 넣었을 거라는 추리는 딱히 중요한 요소는 아니고요.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드보일드라는 의미 외의 가치는 조금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성야 플러스 1>>
크리스마스 이브, 하무라는 서점 오너 도야마의 지시로 크리스마스 파티 경매용으로 사용될 <<심야 플러스 1>>의 초판 저자 사인본을 받으러 간다. 책의 주인인 작가 소노다가 부재 중이라 그의 아내로부터 책은 전달 받는다. 그런데 그녀는 하무라에게 슈톨렌을 지인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슈톨렌을 전달받은 에리코는 곰인형 선물 전달을 부탁한다. 이렇게 심부름을 해 나가다가 마지막 심부름 상대인 고이시바라 미야코의 집에서 미야코의 사위가 칼부림을 하는걸 목격한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모든 진상이 밝혀지며, 책 도둑도 피해서 무사히 사인본을 서점에 전달하고 임무를 완수한다.


개빈 라이얼의 <<심야 플러스 1>>에서 따온 제목이죠. <<심야 플러스 1>>은 서스펜스 가득한 모험물인데 이 이야기 속 하무라에게 닥친 시련도 <<심야 플러스 1>> 못지 않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부탁을 들어주고 임무를 완수하는 모습은 성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에요. 조금 의아했던건 일본인들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걸 굉장히 두려워 한다는데, 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하무리에게 폐를 끼치는걸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무라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이러한 하무라가 부탁받은 심부름을 수행하기 위한 여정의 정도는 지나친 편입니다. 중간의 여정들은 딱히 재미있지도 않고요. 솔직히 중간 과정들은 불필요했다 생각되네요. 소노다 씨가 <<심야 플러스 1>>의 가짜 사인본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책 도둑들이 사인본을 노린다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무라의 말대로 옥션에서 2백불 정도면 살 수 있는데 노상강도짓을 할 이유는 없죠.

추리적으로도 별 내용은 없습니다. 백골 사체는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어차피 본 편 정보로 추리가 가능한 사건은 아닙니다. 고이시바라 미야코 할머니와 사위의 칼부림 역시 억지스러운 요구에 불과할 뿐이고요. 오히려 사위가 딸을 살해한게 아닌가? 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더라면 말이 되었을텐데 말이죠. 책을 날치기한 2인조의 경우는 앞서 말씀드렸듯 사건 자체의 현실성이 약해서 추리의 여지도 부족합니다.

그래도 하무라의 불운을 잘 드러내고 있고, 중간중간 벌어지는 사건들이 많아서 왁자지껄한 블랙 코미디로 본다면 괜찮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고이시바라 미야코와 사위 사이에서 벌어진 칼부림입니다. 정말 급작스럽게 말려들었는데 미야코 할머니가 하무라의 가방을 잡고 놔주지 않는 등의 황당한 상황이 이어지거든요. 이를 슈톨렌이 해결한다는 결말도 재미있었고요.
그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다 극복하고 모두가 원하는 상황으로 매조지하는 결말도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행복해지는게 크리스마스의 핵심요소이긴 하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지만 재미 만큼은 확실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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