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투스의 심장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답다 싶은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악녀 야스코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만, 꽤나 공들인 정교한 트릭이 돋보입니다. 최초에 등장한, 3명이 실행하는 사체 이동 계획부터 꽤 흥미롭습니다. 오사카, 나고야, 도쿄까지의 거리와 시간을 잘 계산한 괜찮은 트릭이었어요. 나오키의 말대로 2명이라면 모를까, 3명이 실행하는 계획은 경찰도 쉽게 예상하기 힘들었을테고요.
두 번째 범행인 만년필을 이용한 살인도 그럴듯합니다. 만년필 잉크를 넣는 곳에 청산가리 결정을 넣어 놓고 잉크를 넣으면 청산가스가 발생하여 사망한다는 트릭인데, 청색 잉크만 산성을 띄고 있어서 청산가스가 발생한다는 등의 과학적인 설명이 뒷받침되어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이공계 출신 작가다운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마지막 범행인 다쿠야가 야스코를 살해한 방법도 기발하기는 뒤지지 않습니다. 미리 야스코의 방에 잠입해서 찻주전자 주둥이 안쪽에 청산가리를 발라 놓은 후, 저녁에 당당하게 방문해서 차를 직접 끓여마시게끔 유도하여 살해하는 계획으로 완벽하게 성공하죠. 야스코도 이미 2명이나 살해된 상황이라 다쿠야를 조심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탄 차에 독이 들어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으니요.
그러나 초기작인 탓인지 모두 헛점이 있어요. 첫번째의 사체 이동 계획은 나오키가 나고야에서 오사카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신칸센을 탔어야 했고, 다쿠야 역시 이용한 차량을 처리할 때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다쿠야는 이 때문에 덜미를 잡히죠. 두번째 청산가스 살인도 경찰이 현장 조사할 때 가스가 남아 있어서 들통난다는 점에서는 완벽하다고 보기 어렵고요. 마지막 트릭 역시 다쿠야가 직접 야스코의 집을 방문했어야 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운 좋게 들키지 않았을 뿐이죠.
물론 사람이 만든 계획에 헛점이 있는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를 작중에서 형사들이 치밀한 수사를 통해 밝혀내는 것도 볼거리로 이런게 도서 추리 소설의 묘미이기도 하죠. 정작 문제는 이야기 자체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3명의 사체 이동 계획부터 애매합니다. 애초에 나오키가 고로의 약점을 잡아 청부 살인까지 시킬 수 있었다면 그냥 고로를 시키면 됩니다. 알리바이고 뭐고 만들 필요도 없죠. 비밀을 아는 사람은 한 명이라도 적은게 좋잖아요? 이야기를 보면 고로와 나오키의 연결 고리는 그 누구도, 심지어 고로에게 청혼을 받은 나오키의 비서 유미에마저 모르니 완벽한 청부 살인이 되었을겁니다. 왜 하시모토와 다쿠야를 끌어들이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나오키가 트럼프 카드 마술이 특기라는 설정도 고로의 존재 때문에 말이 안됩니다. 그냥 뽑으면 되죠. 최악인 살인이 걸린다면 고로를 시키면 되니까요. 다른 살인을 뽑은 관련자에게 빚을 지게 만들 수도 있고요. 이런걸 대단한 단서인 것 처럼 흘릴 이유는 없습니다.
진범 고로가 야스코 대신 나오키를 살해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살의를 품을 만큼 원한이 깊었다는 설명도 없을 뿐더러, 그랬다면 진작에 살인을 저질렀다면 모를까 왜 이 때 저질렀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사체 이동 계획에 대한 종이가 차에 없었더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고요. '시체가 야스코가 아니라 나오키였다'는 충격적인 설정을 제대로 설명할만한 합리적인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나오키를 죽인건 살인까지 시켜서 살의가 폭발했다고 치죠. 그러면 시체 이동 계획에 참여한 하시모토와 다쿠야까지 죽이려 한 이유는 뭘까요? 자신의 존재가 노출되었는지 먼저 간을 보는게 순서였을텐데 말이죠. 시체가 발견되어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된 마당에, 연이어 범행을 저지른다는건 아무리 봐도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수사 와중에 직접 나서서 야스코를 죽이고 마지막에 고로까지 살해하려한 다쿠야의 정신상태도 마찬가지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대로 모리무라 세이이치 류의 설정이 너무 과한 것도 문제입니다. 주인공인 다쿠야가 온갖 어려움을 혼자 힘으로 이겨낸 자수성가형 엘리트이자 야심가라는건 흔해빠지긴 했어도 봐줄만은 합니다.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의 근거로는 타당하고요. 그러나 니시나 나오키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후계자가 되었으며, 아버지 도시키를 증오한다는 설정은 불필요했습니다. 3인 살인 계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까요. 아버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로봇이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위장한다는 설정도 말이 안됩니다. 실제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로봇 '나오미'는 바로 폐기되고, MM 중공은 그 뒤로도 잘 나가고 있으니 무의미한 복수였죠. 차라리 로봇을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걸 널리 알리는게 더 효과적이었을거에요.
니시나 가문의 딸 호시코의 방자한 행동이라던가, 니시나 도시키의 문란한 사생활 역시 콩가루 재벌집 설정을 드러내는 역할 뿐입니다. 특히 니시나 도시키와 야스코의 관계는 충분히 재미있게 가져갈 수 있는 소재였는데 이래저래 이상하게 소모된 느낌이에요.
마지막의 열린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다쿠야가 고로의 존재를 눈치챈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쿠야는 고로를 살해할 이유는 없었어요. 경찰에 고로가 나오키를 죽였다고 알리면 그만이죠. 다쿠야가 시체 운반을 맡았던 이유는 예비 처남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고 하면 문제 없었을겁니다. 설령 3인 살인 계획의 증거인 연판장이 남아있었더라도, 이미 2 명은 확실하게 살해한 고로보다는 다쿠야 쪽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죠. 오히려 야스코 살인까지 고로가 뒤집어 썼을 거에요. 어차피 누가 죽였는지 증명할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마지막에 다쿠야가 만든 브루투스가 오작동하여 다쿠야를 죽인다는 결말은 솔직히 납득이 잘 되지 않더군요. 어차피 로봇 자체는 이야기의 핵심 소재도 아닌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등장해서 이야기를 끝맺는건 이상하다 싶었어요. 인간보도 로봇이 우수하다고 주장했던 다쿠야의 죽음으로는 어울린다 싶기도 한데, 그동안 뛰어난 엘리트의 모습을 보여왔으니 마지막 로봇을 이용한 범행도 멋지게 성공하는게 더 설득력은 높지 않았을까요?
그 외에도 세세한 문제점들이 많아서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재벌 가문과 야심가, 알리바이 트릭이라는 3위 일체는 이미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질릴 정도로 써 먹기도 했고요. 거장이 되기 위해 겪었던 시행착오를 보여주는 그런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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