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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5

역향유괴 - 원샨 / 정세경 : 별점 1.5점

역향유괴 - 4점
원샨 지음, 정세경 옮김/아작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즈덩런은 대부호의 후손으로 투자 은행 A&B의 IT 부서에서 일하던 중, 퀸타스 투자 계획에 관련된 기밀 자료가 납치(?)된 사건에 말려든다. 퀸타스 융자 계획 컨설팅 팀원 중 한 명인 샤오루가 즈덩런에게 자료가 사라진 사실을 처음 알렸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이 외부에 유출되기를 꺼린 본부장 존은 팀원 모두와 즈덩런을 자료 몸값 지불일인 3일 뒤 까지 A&B 소유 아파트에 경찰과 함께 연금시킨다.
즈덩런은 사건에 샤오루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몇 가지 조사를 통해 이를 확신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적은 몸값에 주식 시장에서 한 몫 잡으려는 움직임도 없어서 범인의 목적이 무엇인지 혼란에 빠지는데...


시마다 소지 상을 수상한 중국 추리 소설. 그동안 찬호께이의 작품들로 중국 추리 소설에 대한 기대가 커진 참에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A&B를 협박한 '기밀 문서 (재무 자료)' 납치 사건은 즈덩런을 3일 동안 일종의 연락 두절된 가택 연금 상태에 놓이게 만들려는 목적이었다는 진상, 반전은 좋습니다. 연락이 두절된 상태를 유괴된 걸로 위장하여 거액의 몸값을 받아내려는 계획이죠. 즈덩런이 즈리 은행의 후예라 가능했습니다. 이를 위해 별 의미없어 보였던 도입부의 '술 먹기 게임'의 벌칙 - 즈덩런을 의자에 묶어 놓은 것 - 때 찌은 사진을 이용한다던가 중간에 즈덩런의 자는 모습을 찍은 걸 살아있다는 증거로 활용한다는 식으로 단서와 복선을 배치한 솜씨도 제법이에요.

기밀 문서의 몸값, 그리고 최종적으로 즈덩런의 몸값을 받아내기 위한 과정도 꽤나 합리적입니다. 먼저 백 명의 협력자들에게 인터넷 옥션에 콘플레이크 박스를 고가로 출품하게 하고, A&B가 이를 낙찰받는 방식으로 10만 달러를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콘플레이크 박스를 경찰이 A&B로 가져오게 만드는데 사실 박스 중 하나에는 즈덩런의 몸값인 5백만달러에 상당하는 다이아몬드가 들어있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박스 속 알람 시계가 울리는 혼란 와중에 챙기고요. 박스를 범인이 의도한대로 쌓아놓게 만드는 디테일, 백명 단위가 필요했던 협력자들 모집을 일종의 폰지 사기 방식으로 끌어모으고 다이아몬드도 폰지 사기 형태로 벌어들인 현금에 대응하여 기존 투자자에게 돌려주어 증거를 인멸한다는 아이디어도 좋습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 출신답게 시각적인 볼거리가 연상되는 장면도 많아서 즐겁습니다. 콘플레이크 박스 회수 작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일종의 플래쉬 몹 처럼 회수자와 똑같은 복장을 차려 입는다는 묘사가 대표적이죠. 전개도 복잡하지 않고 깔끔한 편이라 쉽게 읽힌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몇몇 장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A&B가 투자 성공을 위해 사력을 타하는 퀸타스의 사업이 너무 유치해서 몰입하기 힘들었어요. 차후 그들이 주력으로 내세운건 흔하디 흔한 IoT 서비스일 뿐이거든요. 이런 서비스는 이미 전세계 모든 제조사가 하고 있죠. 또 진짜 핵심이라는 '초크' 프로젝트의 K 포인트 역시 마찬가지에요. 가상 세계에서 얻은 포인트를 현실 세계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는 개념부터가 별로 새롭지 않으니까요. 가상 세계에서의 적극적인 행동 - 별점을 준다던가 - 에 따른 보상이라는 점을 차별화로 내세우지만 자동으로 쌓이는 카드, 통신사 서비스보다는 오히려 뒤떨어진 개념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이런 서비스는 퀸타스와 같은 소프트웨어, 휴대폰 제조 업체가 진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가상화폐를 만들었어요! 1K포인트는 1달러에요! 라고 이야기해봤자 쓸모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시장에서 그걸 받아줘야 성립되는 사업 모델인데, 이런 신규 통화가 시장에 자리잡는건 불가능에 가깝죠. 이런 이유로 퀸타스의 사업 문제가 금융 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는건 영 와닿지 않았습니다.

이야기 전개도 어설픕니다. A&B 사건을 맡은 T시의 탕푸 경감이 A시 경찰이 맡은 즈덩런 유괴 납치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요. 유력 인사의 아들이 납치된 사건에서 그 아들이 나디는 회사에 관련 정보가 알려지지 않는다? 각 도시별 관할이 다르다는 언급 정도로는 설명될 수 없 습니다. 또 A시 경찰이 A&B 본사 건물을 감시할 때 이들을 탕푸 경감이 체포했더라면 사건은 진작에 해결되었을거라는 문제도 있죠.

샤오루의 완벽해 보이는 범행 계획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상합니다. A&B는 단돈 4만 8천 달러만 손해본 걸로 - 5만 2천 달러는 폰지 사기 형태로 이전 참여자로부터 선입금을 받은 덕분 - 사건에서 손을 뗍니다. 투자 계획과 신용의 문제라 이 정도 손해는 입다물겠다는 A&B의 입장은 이해됩니다. 그러나 즈덩런 유괴 사기 사건은 상황이 달라요. 무려 5백만불을 손해 본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건 무리죠. 진상이 드러나면 퀸타스 투자 위험성이 함께 밝혀지고, 연구 개발 증권의 흐름이 막혀 금융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에 함구한다는 설명도 말이 안됩니다. A시 경찰한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샤오루의 일종의 폰지 사기 역시 협력자와 투자자가 많이 필요하다는 큰 약점이 있습니다. 연결고리가 많으면 많을 수록 한, 두 군데에서 꼬리를 잡힐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건 백명 단위를 넘어가니까요. 단적인 예로 다이아몬드를 투자자들에게 전해주는 방법이 그러합니다. 직접 편지를 배달하던가, 최소한 누군가를 시켜야 하는데 백 명 이상에게 이런 짓을 하면 들키지 않는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사내 정보를 이용해 사기를 치려면 이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없이 차라리 퀸타스 문서를 인터넷에 뿌리고 주식으로 차익을 얻는게 더 손쉬웠을 겁니다.

깊이있는 캐릭터 형성은 찾아보기 어렵고 심리 묘사도 얄팍한 캐릭터들 모두 전반적으로 수준 이하입니다. 대부호의 후손이자 컴퓨터 천재라는 즈덩런이 개중 최악입니다. 만화적인 설정부터 별로이며 무엇보다도 하는게 없기 때문입니다. 컴퓨터, IT 관련된 지식 수준도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정도에 그치고요. 찬호께이의 <<망내인>> 속 아녜와 비교하면 초등학생 이하로 보일 정도에요.
다른 캐릭터들 모두 평면적인 스테레오 타입에 불과하며, 천재 미형 악역인 샤오루 역시 뚜껑을 열고보면 사내 정보를 이용해 사기치는 사기꾼일 뿐입니다. 마지막에 'A&B'에서 더 배울게 없다'는 범인 샤오루의 뻔뻔함과 당당함에는 어이가 없어집니다. 모자라 보이는 개그 캐릭터 폴 형사는 대체 왜 나왔나 싶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장점이 없지는 않고 핵심 아이디어는 반짝반짝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설정들 모두 설득력이 결여됐다는게 문제죠. 영화화되었다고 소개되는데, 나중에 한국에 소개된다면 영화로 보는게 훨씬 나은 선택일거에요. 영화는 런닝타임이 85분에 불과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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