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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30

정의 - 하마오 시로 외 / 페가나 : 별점 2점

정의 - 4점
하마오 시로 외/페가나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된 컨텐츠들을 번역 소개하는 전자책 전문 출판사 페가나의 일본 단편 추리소설 모음집입니다. 비교적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임에도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 번역의 질도 괜찮다는 점에서 가끔 생각이 나면 구입해 읽곤 하는 시리즈죠. 

총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전 모음집에 비하면 별로였습니다. 추리물도 아니고 한 편의 이야기로 보기에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2편 (<<촬영장 살인사건>>, <<병사와 배우>>) 가 포함되어 있으며, 다른 추리물들도 딱히 새롭거나 신선하지 않은 고전 본격물의 재탕이거나 심각한 단점을 한가지 이상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제작인 <<정의>> 만이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진주탑의 비밀>> 코가 사부로
일본 작가 코가 사부로의 명탐정 하시모토 빈이 등장하는 단편. 이전 읽었던 <<혈액형 살인사건>> 에 수록되었던 작품이죠. 전람회장에서 거액의 진주탑이 가짜로 바꿔치기 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12Kg 정도 되는 탑을 5미터 높이의 창으로는 가지고 나갈 수 없고, 범행 당시의 유리 깨지는 소리가 침입할 때가 아닌 도망갈 때 들렸다는 점, 그리고 진주탑이 바꿔치기 되었다는 증언은 사세 주임 단 한 명이 확인했다는 단서를 모아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내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면 다 아셨겠지만 진주탑은 바꿔치기 된 게 아니고, 가장 비싸다는 진주 한 개만 바꿔치기 된 것이죠...
이렇게 몇몇 단서들을 토대로 진상을 밝혀내는 전개는 전형적인 고전 본격물 스타일로 단서, 추리, 진상 모두 그런대로 합리적이라 딱히 흠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무난해서 새로운 점은 딱히 찾아보기 어려우며,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했었지만 모조 진주탑을 만들어 달라는 우연한 의뢰가 겹쳐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든 건 완전한 억지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제 3의 인물이 개입한 것이 우연이라는 점에서 작위적일 뿐더러, 사세 주임이 처음부터 진주 몇 개를 빼돌릴 생각을 하지 않고 우연에 기인해 거액을 들여 기묘한 사기를 치려고 한 건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그렇게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촬영장 살인사건>> 사카이 카시치
촬영장에서 동료 엑스트라를 죽인 남자는 미친 척을 한 것일 뿐이라는 내용의 단편.
의외성도 없고 추리물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망작입니다. 어차피 도주에 성공한 거라면 미친 척을 할 이유도 없잖아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미친 기관차>> 오사카 케이키치
명탐정 아오야마 쿄스케가 등장하는 단편으로 오사카 케이키치는 다른 단편집으로 이미 접했었던 작가인데 추리적으로는 반짝반짝했던 작품들이 많아서 기대가 컸습니다.

내용은 기차역 (W역) 에서 가해자의 흔적이 전무한 사체가 발견된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데, "과학 수사" 가 핵심이라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쿄스케가 광학 현미경을 요구한 후 피해자 상처의 모래의 재질에 대해 분석한 후 흉기를 추리하는 과정이 특히 그러합니다. 내용도 단순하지만은 않아서 조면암과 석영조면암을 구분하여 설명할 정도로 깊이가 있는 편이에요.
그 외에도 기관차와 선로. 열차 운행 시간, 물과 석탄의 보충, 운행 속도 등을 감안한 추리, 또 열차 내부 장치와 흉기인 곡괭이 자루 구멍을 연결하는 추리도 나름의 탄탄하고 깊이 있는 자료 조사가 뒷 받침 된 덕에 굉장히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 초창기 기차와 기차역에 대한 묘사는 철덕들에게는 굉장히 사랑을 받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푸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추리로 밝혀낸 진범인 역장의 동기가 장점을 다 잡아 먹습니다. 열차에 손을 잃은 후 그 열차를 바다로 밀어넣는 복수를 위해 두 명이나 되는 승무원을 죽인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요. 정차해 있는 동안 불이라도 지르던가... 때문에 감점해서 별점은 2점입니다. 동기만 설득력 있었어도 조금은 높은 점수를 받았을텐데 아쉽네요.

<<병사와 배우>> 와타나베 온
병사 옹과 배우 하루는 친구로 옹은 옆나라 맘루크 술탄 왕국의 파르티잔 파업 진압 전쟁에서 막 돌아온 상태, 하지만 실제 전투는 없었기 때문에 영화사의 속임수가 아닐까 의심한다는 내용.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던 꽁트. 발표 년도인 1928을 생각해보면 체제 비판인 듯 싶은데 거의 백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눈길을 끌 만한 요소는 전무합니다. 왜 이상한 판타지스러운 설정을 만들어 이야기를 전개하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죠. 체제 비판이라서 설정을 틀었다고 보기에는 어차피 내용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그닥 효과가 있어 보이지 않거든요. 핵심 주제인 "전쟁은 추악하지만 전쟁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영화야 말로 진짜 쓰레기다." 라는 주제도 그다지 설득력있게 드러나지 못했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정말로 파르티잔 파업 진압 전쟁이 영화사의 속임수라는게 밝혀졌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검은 수첩>> 히사오 주란
히사오 주란은 에도 시대를 무대로 한 <<아고주로 체포록>> 시리즈로 접해보았던 작가입니다. 모험물 성격이 강했던 아고주로 시리즈는 재미있게 읽었었죠. 이 작품은 근대를 무대로 일본인 파리 유학생 "나" 가 같은 건물에 살던 주민들과 얽힌 후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 가 허름하고 저렴한 하숙집으로 이사온 첫 날, 아래층 부부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게 됩니다. 그들은 미국 태생의 음악 전공인 일본계 이민자 2세 커플이죠. 그리고 우연히 친분을 맺게 된 윗층 남자는 룰렛 순열을 예측하는 공식을 알아낸 수학자고요.
그리고 유학 자금이 끊겨 한 방을 노리는 아래층 부부가 윗층 남자의 룰렛 순열 공식이 담긴 검은 수첩을 노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법 탄탄한 설정으로 꽤나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 하나만큼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는 독자 심리를 자극하는 전개 능력이 탁월한 덕분일 뿐, 실제 그닥 깊이있는 고민이 반영된 좋은 작품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아요. 룰렛 순열 공식이 무엇인지 등장하지 않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야기의 핵심인데 장황한 대사로 그럴듯하게 포장할 뿐, 결국 실체가 없는 이야기라 별로 설득력있게 느껴지기 않더군요.

그리고 캐릭터들도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유학 자금이 끊겼다는 이유로 도박이나 하려는 철없는 부부는 볼썽사납기 그지 없어요. 도박에서 살인으로 흐르는 인과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함이라 해도 정도가 너무 지나치고요.
단지 살인을 관찰하기 위한 주인공의 심리도 이해 불가입니다. 타인의 죽음을 방조하는 방관자는 또 다른 살인의 공범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그걸 정당화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캐릭터 설정과 묘사로 낯선 느낌과 불쾌함을 자극하는, 가학적인 분위기가 흥미를 자극하는 건 사실이지만 도무지 취향이 아니었어요. 

마지막에 결국 부부는 인간다움을 되찾지만 6층 남자는 실연과 잃어버린 젊음을 저주하며 자살하고, 도박 비법인 수첩은 주인공에 의해 난로로 향한다는 결말도 앞서 풀어나가던 과정에 비교하면 너무 쉽게, 대충 넘어가는 느낌입니다.

그나마 룰렛 시스템을 완성한 남자 수학자 캐릭터는 나쁘지 않긴 합니다. 카리스마 있고 괜찮은 편으로, 그가 일부러 잃으려 했지만 따 버렸다는 중반부 반전도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뭔가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갔어도 훨씬 괜찮았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펄프 픽션 이상의 결과물은 아닙니다.

<<정의>> 하마오 시로
키누가와 변호사에게 찾아온 옛 친구 키요가와 준은 키누가와가 맡고 있는 마츠무라 자작 살인 사건 이야기를 꺼낸다.
마츠누마 자작은 호텔 방에서 총에 맞은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처음에는 자세와 현장 상태를 미루어 자살이라 생각되었지만 유서가 없는 점과 왼손잡이인 백작이 오른손으로 총을 쏠 리가 없었다는 점에서 호텔 종업원 모리키가 체포된 상황...


표제작. 하마오 시로의 작품은 역시나 페가나의 추리 단편 선집 <<감방>> 을 통해 접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감방>> 에 수록되었던 <<그는 누구를 죽였는가>> 도 아주 좋았는데 이 작품도 괜찮습니다. 이 단편집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로 꼽을 만 합니다.
내용은 이른바 '딜레마' 를 다루고 있는데, 모리키의 무고를 입증할 증인은 키누가와의 아내와 불륜 관계였다는 이야기로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전개가 실로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뻔한 설정이지만 이를 법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논쟁을 벌이는 둘의 대화가 그야말로 압권이에요. 

딱 한가지, 증인인 A씨는 키요가와의 동생이 아니라 키요가와 준 본인이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 읽어도 여전한 재미를 선사하는 긴장감 넘치는 좋은 이야기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8/06/29

금일자 독일 신문 가판대

독일 출장 중입니다. 와중에 독일에서 현지인들과 독일 월드컵 예선 탈락을 확정하는 경기를 함께 관전했습니다. 정말 제 평생 두번 하기 힘든 값진 (?) 경험이었어요. 즐겁긴 했지만, 다음에는 한국에서 보고 싶습니다. ㅎㅎㅎ 아래는 금일 독일 신문 가판대 사진입니다!

2018/06/24

O. J. 심슨 사건의 진실 - 권영법 : 별점 3점

O. J. 심슨 사건의 진실 - 6점
권영법 지음/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그간 격조했습니다. 오랫만이네요. 업무 관련 출장과 야구 응원팀의 선전, 월드컵 때문에 통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집어 든 이 책은, 오래되긴 했지만 생중계된 도주극, 이어진 세기의 재판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O.J 심슨 사건에 대해서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 논픽션입니다.

책은 심슨이 무죄 선고를 받은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무죄 선고를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방대했던 재판 과정을 앞에서부터 하나씩 되짚으며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번역서가 아니라 한국의 변호사가 썼다는 점에서 걱정도 컸지만 읽어보니 방대한 자료 조사와 깊이 있는 분석이 상당한 수준이라 마음에 들더군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는 심슨이 범인인데 거액을 들여 드림팀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운 좋게 빠져 나간 것일 뿐!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검찰 측 증거가 확고한 것이 많았으리라 여겼고요.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니 검찰측 주장이 상당부분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무척 놀랐습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심슨의 흔적들, 특히 혈액 검사 결과나 DNA 검사 결과 모두가 오염되거나 왜곡될 수 있었다는 것이 변호인단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검사가 주장한, 질투라는 동기도 마찬가지에요. 이미 이혼한지 2년이 지났고 현재 미모의 여자 친구가 있는 심슨이 전처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질투를 한다? 설득력이 낮죠... 그 외에도 마크 퍼만으로 대표되는 백인 수사관들이 심슨이 범인임을 확신한 인물들이었다는 게 증명되고, 심슨이 장갑을 끼며 맞지 않음을 증명하는 등 변호사 측의 승리가 이어지니 무죄 선고를 받은건 당연한 결과로 보입니다.
아울러 심슨이 범인이라고 생각했던 민사에서의 패소 이유를 설명해 주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형사 재판은 '실재적 진실'을 발견해야 하기에 재판이 굉장히 빡빡해서 검사가 심슨이 유죄임을 입증하지 못해 패했지만, 민사에서는 단지 가능성이 높다 정도만 증명하면 될 정도로 기준이 낮기 때문이라는군요. 이런 정보는 정말이지 처음 알았네요

그리고 재판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진짜 니콜을 살해한 진범이 누구인지도 심도 깊게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은 그야말로 한 편의 추리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등장하는 여러 가설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을 소개해드리자면, 유명 사립탐정 윌리엄 디어가 처음으로 주장한 심슨의 아들 제이슨이 범인이라는 가설입니다. 요리사인 제이슨은 칼을 사용하는데 능숙했다, 흉기와 유사한 칼을 실제로 소지하고 있었다, 사건 당일 니콜에 대한 적개심을 품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가족 모임이 있었는데 제이슨이 일하던 식당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식당을 예약함), 알리바이도 없었다, 심슨의 옷과 신발을 자주 함께 착용하여 범인의 족적으로 밝혀진 고급 신발을 신을 수 있었다, 알콜 중독 및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등 수많은 이유가 차례대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O.J. 심슨이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증거와 증언도 이 가설을 통해 설명됩니다. 해당 증언, 증거들은 모두 심슨이 아들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이후 아들을 감싸주려고 거창한 도주극을 벌인 뒤 스스로 죄를 뒤집어 쓰고 재판에 임한 것이고요. 이 역시 부성애와 엇나간 아들에 대한 책임감을 생각하면 말이 되어 보입니다.

이외에도 사건의 후일담, 가족들과 변호사와 검사, 증인, 배심원들 등 사건에 연관된 다양한 사람들이 현재 어떻게 지내는지까지 소개해 주기 때문에 그야말로 O.J. 심슨 사건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 기억에 남는 건 심슨이 형무소에 가게 된 라스베거스 강도 사건은 사실 심슨에게는 억울한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심슨은 친구의 꾀임에 넘어가 분실한 것으로 알고 있던 자기 물건을 다시 찾은 것에 불과한데, 사건 후 친구들이 사건 관련 녹음 테이프를 거액에 팔고 사법 거래에 응해 빠져나가는 식으로 심슨의 뒤통수를 친 것이거든요. 의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인간 말종들이라 심슨이 정말로 불쌍했을 따름입니다.

이렇게 법정극추리물, 인간 드라마 등 모든 측면에서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는 좋은 책이지만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법률과 재판에 대해 조금 어려운 설명 분량이 제법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던 부분이었거든요. 물론 가설을 잘 못 세우는 오류에 빠지지 않게 만드는 4가지 전략 - 가설이 부당하다는 증거를 찾아보아야 한다, 증거를 객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믿음을 반박하는 증거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과신하면 안된다 - 등과 같은 좋은 내용이 없지는 않지만 분량만 좀 조절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에요.
그리고 사건이 이야기의 진행이 시간 순서가 아니라 뒤죽박죽인 것도 읽기 편하게 느껴지지는 않더군요. 모든 도판이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것은 법정물 논픽션스러운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효과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추천작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법, 재판에 대해 많은 걸 배운 듯 합니다. 예컨데 형사 재판에서는 목격 증인이 있으면 이러한 직접 증인 대신 그 말을 들은 사람을 증인으로 세우면 안되는게 원칙이라고 합니다. 최근 경기도 지사 관련 트위터에서 이슈가 된 사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배심원들은 재판 초기에 결론을 내린다는 등 관련된 정보들도 인상적이었고요.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3점. 사건과 법정 다툼을 다룬 책, 논픽션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2018/06/16

집에서 차 한잔 할까? - 미야케 타카오 / 최우영 : 별점 2.5점

집에서 차 한잔 할까? - 6점
미야케 타카오, 최우영/스트로베리

일본의 중국 정부 공인  전문가인 저자가 일본차, 중국차, 홍차, 허브차, 커피의 5가지 종류 차에 대해 한 페이지에 한 가지씩 모두 100가지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입니다.

100 가지나 되는 이야기가 수록된 만큼 볼거리가 많습니다. 특히 일본차와 중국차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한 책은 처음 접해봅니다. 물론 제 공부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이 책으로 많은 걸 알게 되었네요. 그 중 제 기억에 남은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자면, 먼저 중국의 차 중 "황차" 는 다른 차와 마찬가지로 채취하고, 볶고, 비비고, 건조시키는 과정은 동일하지만 종이로 싸서 가볍게 찌는 '민황' 이라는 작업이 추가되어 깊이가 있는 독특한 향이 생긴다고 합니다. 종이 위에 찻 잎을 얹어놓고 불 위에서 가볍게 굽는 작업이 소개된 <<맛의 달인>> 의 한 에피소드가 떠오르는데, 우미하라 (가이바라) 는 중국차 애호가였던 걸까요? 왠지 안 어울리는데 말이죠.
여러 명차도 잔뜩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도 우롱차 중 최고라는 '봉황단총' 은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꿀 향기가 나는 우롱차인 '동방미인' 도 마찬가지로 땡기고요. 이 차는 꿀을 첨가한 게 아니라 어린 잎을 해충에게 먹힌 차나무가 해충의 천적을 부르기 위해 천적이 좋아하는 물질을 분비해서 꿀 향기가 난다는데, 자연의 신비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 외에도 맛있는 차가 어떤 것이며 어디서 구입하면 되는지, 차를 맛있게 우려내려면 어떻게 하는지, 여러 도구들은 어떻게 쓰며 간단한 다도에서의 매너는 무엇인지 등 실제 차를 마시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그냥 뜨거운 우유를 넣는 밀크티가 아니라 우유로 끓여 만드는 "차이"에 대한 소개가 개중 백미였어요. 나중에 한 번 꼭 만들어 마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러한 정보들과 함께 매 이야기마다 수록되어 있는 일러스트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림도 잘 그렸지만 내용을 재미있게 압축해서 잘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제목 그대로 "집에서 차를 먹는" 방법에 더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 가장 크게 실망했어요. 차에 대한 역사와 그 유래 등에 대한 정보도 많이 전해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최소한 항목을 일본차, 중국차, 홍차와 같은 식으로 나누려면 "왜 일본은 차를 쪄서 만들고, 왜 중국은 덖어서 만들고, 왜 영국과 유럽은 홍차를 더 좋아하는지?" 는 알려줬어야 하지 않을까요?
또 100개의 이야기를 한 페이지 정도로 요약, 소개하기 때문에 재미보다는 참고서를 읽는 느낌이 강하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일러스트로 보강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한 내용이 많았어요. 홍차나 커피의 경우, 다른 전문 서적이나 자료가 굉장히 많아서 이렇게 소개할 필요가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차라리 중국차와 일본차에 집중해서 이야기마다 보다 상세하게 소개하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Ceylon을 실론이 아니라 세이롱이라고 표기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고, "본 차이나"를 백색 점토 대신 소의 뼈를 사용하여 만들었다는 소개는 오해의 여지가 커 보이는 등 번역 문제도 조금은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차를 즐겨 마신다면 도움이 될 내용이 수록되었다는 건 분명합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도구를 하나씩 장만해서 집에서 제대로 차를 우려내는게 개인적인 꿈 중 하나인데 그날이 올 때까지는 두고두고 소장할 생각입니다.

2018/06/15

한국에만 있는 정통 중화요리에 대한 수사보고서 - 최준식 : 별점 2점


한국 문화 전문가인 저자가 한국에만 있는 "중화 요리"가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느 시대의 음식인가를 밝히고 몇몇 중요 요리와 그 역사,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는 책. 
왜 "중국 요리"가 아니라 "중화 요리" 였는지 여태까지 별 생각이 없었는데 "중화" 라는 단어가 쓰인 이유가 무엇인지, "화교" 라는 말의 유래와 한국의 화교는 어떤 사람들인지 설명하는 등 내용 자체는 아주 본격적입니다.

저자의 질문은 몇 페이지 되지 않아 답이 나옵니다. 화교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한 건 1882년 임오군란 발발 시 중국에서 동원된 청나라 군대를 따라온 40여 명의 청나라 상인들이며, 당시 한국에 온 중국 군대는 산동의 연태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라 이들은 산동에서 온 사람들이었다고 설명됩니다. 그 이후 산동 반도와 인천항 사이 정기선이 오가게 되고, 의화단 사건으로 산동 주민들이 대거 이주하기도 했고요. 때문에 우리나라의 중국 음식은 산동 음식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본토와 고립되어 100여년이 지났기에 우리나라의 중화요리는 본토와 달라지게 되었다고 설명되죠. 그래서 우리나라의 중국 음식은 20세기 초의 산동 요리이며, 해삼과 죽순 등 청나라 말기의 식재료를 고집 - 당시 산동 요리가 궁중요리였기에 - 하는 것입니다!

이 다음은 유명한 음식들에 대해 한국화된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짜장면과 짬뽕이 대표적인데 이 두 음식의 역사, 유래는 이미 다른 많은 컨텐츠에서 접했던 것이라 별로 새롭지는 않았지만 짜장면의 원조인 중국 산동 "작장면"의 특징을 상세히 설명해 주는 부분은 나름 독특했고 짬뽕이 아니라 "짬뽕밥"에 대한 소개, 그리고 볶음밥에 짜장 소스를 곁들이는 이유는 우리나라 볶음밥이 맛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볶음밥 쌀이 인디카 종이어야 잘 볶아지고 맛이 있다는 이유에서인데 굉장히 그럴듯 했어요. <<맛의 달인>> 의 한 에피소드에 충분히 쓰임직 할 정도로 말이죠. 최소한 이 내용을 먼저 알았더라면 <<경성탐정록>> 의 <<소나기>> 에피소드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기타 유명 음식들의 이름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었습니다. 난자완스, 유린기 등 몇몇 음식들은 그 설명 자체가 충분히 새로왔을 뿐더러 한국의 중화요리는 그게 무엇이든 굴소스를 잔뜩 넣고 이런저런 부재료가 많이 들어가며 전분이 많고 오래 찌는 등 결국 맛이 비슷비슷하다는 설명도 와 닿았습니다. 저도 한국식 "중화 요리"를 좋아해서 자주 먹긴 하지만 정말로 그게 그거라고 생각될 때가 많거든요. 물론 오리지널 중국 요리도 향신료나 향초의 쓰임새가 제 입맛에 맞는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이렇게 요리에 관심이 있다면 재미있을 내용이 많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저자 스스로 가장 큰 참고가 된 건 산동 출신 제자 마 씨아오루의 도움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정도로 내용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우선 그러합니다. 인용되는 사료의 깊이와 넓이 모두가 부족하여 충분한 고증, 연구를 거친 결과물로 보이지는 않았어요. 150여 페이지가 안되는 짤막한 분량도 읽는 데에는 분명한 장점이나 깊이를 느끼게 하기는 역부족이었으며 12,000원이라는 가격은 많이 과했습니다. 거의 한 페이지에 100원 꼴인데, 그 정도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은 되지 않더라고요. 왜 "중국 요리" 가 아니라 "중화 요리" 인지도 결국 설명되지 않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재미도 있고 여러모로 참고할 점은 많지만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는 결과물은 아닙니다. 가격을 내려 "살림 지식 총서" 의 한 권으로 내 놓았더라면 모를까, 이대로라면 딱히 추천해 드리기는 어렵네요.

2018/06/09

소주 이야기 - 이지형 : 1.5점

소주 이야기 - 4점
이지형 지음/살림

살림 지식 총서 중 한 권. 소주는 개인적으로 즐기는 술이라 그냥 별 생각없이 구입해 읽어보았습니다.

책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소비되는 소주는 가짜라는 말에서 시작합니다. 95퍼센트 순도의 에틸알코올인 '주정'에 물을 부어 만든 희석식 소주로 증류해 마시는 전통적인 증류식 소주와는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죠. 그리고 희석식 소주의 제조 방법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줍니다. 주정을 만드는 원재료의 대부분은 저렴하면서 에틸알코올을 많이 생산해 낼 수 있는 타피오카이며, 주정을 만드는 열 군데 정도의 회사는 모두 (주) 대한주정판매로 납품하고 소주업체들은 (주) 대한주정판매에서 주정을 사다가 물과 섞어 만들고, 소주맛을 내는 대표적인 감미료는 과거에는 사카린, 1980년대 이후 스테비오사이드가 많이 사용된다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한 구절,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을 인용하며 소주는 피난민과 실향민의 술이다, 소주는 삼류였기에 사회 도처의 삼류 인생들을 위로해 주었기에 진짜던 가짜던 상관없다는 말로 마무리해서 좀 당황스럽더군요. 희석식 소주가 아닌 전통 증류 소주에 대해 자세히 파헤치는 내용이 등장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어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요.

다음에는 난데없이 소주 광고에 조인성이 모델로 등장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내용은 소주 업계의 마케팅 경쟁에 대한 것으로 자도주 의무판매제도 폐지 후 소주업계가 자유 경쟁하기 시작한 1996년 부터 스타를 동원한 공격적 마케팅이 시작되었으며, 초반 부드럽고 순한 술을 강조하기 위한 이영애 등의 순수 컨셉 모델 이후 '처음처럼'의 이효리로 대표되는 섹시 모델 시대로 진입하여 현대로 이어지고 있는 흐름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심한 마케팅 전쟁의 이유는 주정에 물을 타고 첨가물을 약간 추가하는 간단한 공법으로 맛에 큰 차이가 없어서 마케팅과 영업에 사활을 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맛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서 완전히 동의하기는 좀 어려웠어요.

이어서 황석영의 <<객지>> 속 문장과 함께 막소주와 소주 도수에 관해 설명됩니다 <<객지>>의 무대는 1960년대 말 쯤으로 당시는 희석식 소주 초창기 로 알코올 도수는 30도였는데, 1973년 주정 배정 제도가 생긴 후 소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25도로 도수가 내려가게 되고 25년간 25도가 대세가 되었다는군요. 저 역시 대학 생활 중 마셨던 소주는 모두 빨간 뚜껑 진로 25도 짜리였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1990년 소비자 단체의 의뢰로 알코올 도수 확인 결과 22~24도 정도로 밝혀졌다는 에피소드는 처음 알았습니다. 진로는 부인했지만 도수를 내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꼼수였던 것이겠죠? 1998년 이후 소주 도수가 유행처럼 지속적으로 떨어진 흐름은 저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요.

그리고는 폭탄주의 역사, 몇 가지 해장국 소개와 저자의 1,2,3차 술자리에 대한 개인적인 고찰이 이어지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고, 마지막인 안동이 소주의 명산지가 된 이유 정도만 재미있었습니다. 700여년 전 고려 시대 당시 몽골이 일본을 치기 위한 병참기지가 안동이었고, 안동 외에도 고려의 수도 개성은 몽골 군의 본거지, 제주도와 진도는 몽골의 전진 기지였는데 이 4 지역 모두 전통 소주로 유명하다는 점에서 (진도는 홍주) 소주의 유래는 몽골의 독한 발효주 '아라크' 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럴듯하죠?

이렇게 몇몇 이야기는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솔직히 그다지 잘 쓴 책은 아닙니다. 미시사 서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두서가 없고, 소주 자체에 대한 고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저자 스스로 석달 간 자료조사를 거쳐 열흘 만에 쓴 책이라고 하는 말 만큼이나 내용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가격과 분량에 부담이 없다는게 살림 지식 총서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이 책은 그 어떤 점으로 보아도 추천해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2018/06/08

메두사호의 조난 - A. 코레아르.H. 사비니 / 심홍 : 별점 2점

메두사호의 조난 - 4점
A. 코레아르.H. 사비니 지음, 심홍 옮김/리에종



뗏목에서 여러명의 사람들이 절박하게 구조를 기다리는, 메두사 호의 조난을 제리코가 그린 위의 그림은 한 번씩 보신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이 책은 이 그림의 소재가 된 메두사 호 해상 조난 사건의 피해자의 수기로 이루어진 논픽션입니다. 이런 류의 해상 재난 관련 논픽션은 <<바다 한 가운데서>>를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책 소개도 그럴듯해서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네요.

책은 메두사 호가 항해하게 된 이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814. 15년 파리 조약을 통해 원래 프랑스 땅이었지만 영국이 보유하고 있던 아프리카 서해안의 권리가 명확해 진 후, 프랑스가 자신들의 소유지인 거점 도시 생 루이를 다시 차지하기 위해 4척으로 구성된 세네갈 원정대가 출발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 원정대원들도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해 3개 중대 250여명의 군인은 물론 신부, 의사, 정원사에 제빵 기술자 등 다양한 직업의 인원들로 구성되었으며, 같은 이유로 다양한 물자도 운반하였는데 이 중에는 무려 10만 프랑에 이르는 자금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능한 원정 함대 사령관 쇼마레 탓에 원정대의 기함 메두사 호는 케이프 블랑코 모래톱에 좌초하게 되고, 무익한 노력이 이어지다가 배의 파손이 심해져 결국 구명정 등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당연히 악천후 등에 의해 망망대해에서 배가 침몰한 사고라 생각했었는데 부주의로 인해 육지 근처 모래톱에 좌초한 것이라니 굉장히 황당하더군요.

하지만 이 정도로 끝났다면 당연히 이 사건이 그림의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하진 않았겠죠? 더 큰 어려움, 비극이 찾아오는데 그건 바로 조난자들의 절반 가까이인 152명이 프리깃함의 자재로 대충 만든 뗏목에 탑승하게 되고, 노 하나 없어서 다른 구명정 들이 끌어주어야 함에도 이들이 예인줄을 풀어버렸기 때문에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가 소수만 구조되는 처참한 이야기로 이 책의 절반 정도 분량을 차지합니다. 주로 뗏목에서 당시 군의관 사비니와 인부 리더 코레아르가 활약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 조난당한 이유도 황당하지만 무려 백 명이 넘는 사람이 타야 할 뗏목의 준비 역시 황당하기 그지 없더군요. 나침반 하나 없고 음식도 제대로 싣지 않고 출발했을 뿐 아니라 그 이후에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닥치거든요. 심지어 일부 승선자들이 반란을 일으키기기까지 하니 말 다했죠. 이 과정에서 당연하다면 당연할 식인도 시작되고 말이죠. 결과적으로 10%인 15명만 생존하고, 이 중 5명도 구조되자마자 바로 죽어버리는 참혹한 표류가 적나라하게 펼쳐집니다.

뗏목 조난 외의 나머지 절반 분량은 다른 구명정과 상륙정에 탑승했던 조난자들이 육지로 상륙하여 도보로 사막을 가로지르는 이야기인데 이 역시 처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확실히 바다보다는 사막이 생존에는 더 낫다 싶긴 했어요. 물과 식량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고 탐욕스러운 (이들의 말에 따르자면 그렇습니다. 멀쩡한 남의 나라를 자기 멋대로 식민지로 만드는 무리들이 염치도 없지...) 무어인들을 만나 고초를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망한 사람은 소수라는 점에서 말이죠.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애초부터 메두사 호에 있던 군인들 중심으로 확실하게 규율을 잡고 식량을 확실하게 확보하여 도보로 이동하는게 더 나은 판단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표류, 조난 이야기 외에도 구조된 이후의 후일담도 상세합니다. 생존자 대부분이 가진 재산 모두를 약탈당하고 알거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들로부터 잊혀졌고, 심지어 사비니의 수기는 정치적인 음모로 이용되고 코레아르는 정부 관계자에게 완전히 무시당하는 등 살아 남은 뒤에도 고초를 겪는다는 내용이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수기가 쓰여진 목적은 사비니와 코레아르가 자신들의 영웅적인(?) 행동에 대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걸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묘사들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었어요. 식량이 없어 죽어나가며 식인도 했다고 서술하면서 또 어떤 부분에서는 국왕 폐하의 신하들을 바닷 속으로 돌려보냈다는 식으로 장례를 치뤄 주었다고 쓰는 등 앞 뒤도 잘 맞지 않고요. 때문에 정말로 함대 사령관 쇼마레가 이렇게나 무능했는지, 총독은 자비심이라고는 없었는지 등도 별로 신뢰가 가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류의 사건이 벌어졌을 때 문제는 보통 윗 사람들 때문이라는 고금동서의 전례가 있기는 합니다만 아무 것 증명된 건 없으니까요. 솔직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포도주를 독차지하고 죽은 사람들의 고기를 먹은 인간 말종들이었을 수도 있죠.
게다가 수기 내내 스스로의 영웅적인 행동과 박애정신에 감탄하고, 자기들이 조국과 국왕에 충성하며 헌신하는 국민이라는 걸 수기 내내 강조하는 것도 읽으면서 솔직히 짜증이 났던 부분입니다. 이유는 역시나 자신들에 대한 보상 목적이라 생각되는데 오히려 이런 불필요한 묘사로 정작 중요한 표류, 생존을 위한 투쟁에 대한 묘사가 희석되고 깊이가 없어지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여러가지 디테일들 - 뗏목에서 더위를 잊기 위해 모자에 바닷물을 담가 얼굴을 씻고, 머리를 적시고, 물속에 손을 넣는 것을 반복했다, 사막을 도보로 횡단하던 중 약 2미터 깊이로 모래를 파면 물을 얻을 수 있었다, 무어인은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불을 붙인 나무뿌리와 함께 잡은 황소를 던져 넣고 모래로 덮은 후, 다시 그 위에 숯불을 덮어 조리했다. 무어족 가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염소 가죽은 방수가 완벽했다 등 - 은 나쁘지 않습니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도보 횡단 중 만난 무어인의 왕 자이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자이드 왕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에 대해서도 잘 알고있는 국제인으로 소개되거든요. 왕이라기 보다는 좀 큰 유목민을 이끄는 리더로 보이는데 당대 아프리카 서부 세네갈의 한 지역 부족장이 이 정도의 국제 감각과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건 상당히 신기하게 다가왔습니다. 토착 민간 요법으로 열병을 치료하는 방법도 인상적이었어요. 럼주를 넣은 매우 뜨거운 펀치를 '카엔 후추' 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고추 삶은 물과 함께 큰 잔에 넣어 마시는 것이라 하는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먹는 것과 진배 없어 보였거든요.

하지만 살기 위한 처절한 투쟁 묘사는 그닥 상세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애초 글이 쓰여진 목적이 조금은 불순하고, 그래서 저자 시점에서 왜곡된 내용이 많은 듯 하여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인쇄 상태, 폰트 등 책의 만듬새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 류의 해상 조난 관련 논픽션을 원하신다면 <<바다 한 가운데서>>를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디테일, 깊이 모두 차원이 다릅니다.

2018/06/03

스무고개 - 윤은조 : 별점 2점

양여준은 삼촌의 집 관리와 포토샵 알바로 연명하는 백수. 그런 그에게 십년전 '스무고개'로 연을 맺은 PC 통신 동호회 당시 지인 '로매 (로케이션 매니저)' 가 갑작스럽게 연락을 해 온다. 이유는 그에게 보내진 협박성 메세지 때문. 과거 동호회에서 '총무' 라고 불리었던 양여준은 로매와 함께 과거 동호회 경험을 되살려 사건 해결에 뛰어들지만, 살인 사건과 로매의 실종이라는 현실에 직면한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가 아는 최고의 추리력을 지닌 과거 동호회의 창조자이자 리더 '여고' 형 김남중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국내 최대, 최고의 미스터리 커뮤니티 사이트 '하우미 (Howmystery.com)' 의 운영자이신 decca님이 집필하여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 여기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장편보다는 중편 길이의 작품으로 1, 2부 구성입니다. 추리 소설 애호가, 전문가가 쓴 작품답게 현대물이지만 여러모로 고전 본격물 느낌이 강한게 특징으로, 이는 단서들이 대체로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특히 <<1부 관찰 놀이>> 은 양여준의 설명으로 여고형이 진상을 알아낸다는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물과 동일한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모든 정보가 탐정과 독자에게 거의 모두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음은 물론이고요. <<2부 탐정 놀이>> 는 양여준과 로매가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흐름에 맞춰 함께 추리를 하는 방식이라 조금 다르지만 공정하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합니다.

이렇게 고전 본격 추리 애호가를 기쁘게 만드는 내용 외에도 오래 전 PC 통신 시대를 무대로 한 핵심 설정과 인간 관계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어 반갑더군요. 특히나 작 중 PC 통신 동호회의 주요 활동이었던 '관찰 게임' 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셜록 홈즈의 의뢰인 분석을 현대적으로 변주했다는 점에서 고전 본격물의 향취가 한껏 느껴졌을 뿐 아니라 실제로 놀이에 가까운 여흥으로 실제로 해도 됨직한, 설득력넘치는 아이디어였기 때문입니다. 이 관찰 게임만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어도 참 좋겠다 싶더라고요.

하지만 정작 이야기 자체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고 작위적이라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1부 <<관찰 놀이>> 부터 이야기하자면, 양여준의 삼촌이 유명한 추리 소설 수집가로 모든건 그의 집에서 희귀본을 훔치기 위해 로매가 벌인 연극이라는게 진상의 설득력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집의 번호를 카메라를 설치하여 알아낸다? 그랬다면 차라리 몇주간 총무의 행동을 관찰하여 집을 비울 때 잠입하여 책을 훔치는 게 상식적일 뿐더러 훨씬 나았을 겁니다. 양여준이 경찰에 신고만 하면 그 집이 로매의 여친 김미영의 집이라는게 밝혀질테고 그렇다면 로매가 엮여 있다는게 바로 드러날테니 말이죠. 그리고 삼촌이 책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더라도 유력한 용의자가 로매가 될 게 뻔하다는 것도 문제에요. 아무리 동떨어진 사건이라도 두 사건을 엮어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범인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까지 드러내고 무언가 하려고 한다는건 사실 이해하기 힘들어요.

2부 격인 <<탐정 놀이>> 의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과거 여고형의 실종에 대한 진상은 설득력이 빵점이기 때문이에요. 우선 아파트 밖에 나간다고 하고 실제로는 밖에 나가지 않고 사라졌다면 아파트 안에 있으리라 생각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왜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어차피 윗 층으로 가서 범행을 저지를거라면 그냥 계단으로 올라가면 되지 왜 줄사다리를 썼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CCTV 때문에? 그렇다면 올라가 사다리를 설치한 여고형의 누님은 찍혔을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 범행을 위해 로매와 총무를 끌어들인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관찰 놀이>> 와 마찬가지로 경찰에 신고했다면 큰 일이 났을테고, 설렁 그렇지 않아도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이상한 사람에 대해 행방을 묻고 다녔나는 증언을 경찰이 접수하면 역시나 검거는 시간 문제였을 거에요. 살인까지 저지르려는 인간이 이러한 위험 요소를 구태여 외부에서 불러온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이지가 않습니다.

유괴 사건에 대한 복수라고 하는 동기도 어설픕니다. 일단 범인이 유괴로 소소하게 먹고 살았다는 설정부터 문제에요. 유괴 사건은 대서특필하고 범인을 검거하고야 마는, 미제 사건일 경우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다양한 매체에서 기억에서 잊혀질 때 쯤 다시 드러내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설득력이 빵점에 가깝거든요. 심지어 피해 아동 한명이 사망까지 한 범행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차라리 체포된 후 십 수년의 징역을 마치고 나온 범인에게 복수했다는 식으로 풀어내는게 설득력은 더 높았겠죠. 아니면 이 때 범인이 문을 열었을 때 기절 시키고 그의 어린 아들을 유괴하여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고형과 그 누나가 키우고 있었다던가... (<<1부 관찰놀이>> 에서 총무가 고등학생 아들을 보고 놀라는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정작 추리물로서는 조금 미흡하기에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판타지나 무협 등 타 장르와 이종 교배한 괴이한 추리물이 범람하는 현 시점에서 보기 드문 정통 추리물이기도 하고 추리 애호가로서 충분히 즐길거리도 많다는건 분명하니 추리물 팬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지금은 네이버에서 무료로 읽으실 수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냥 PC 통신 시절, '관찰 놀이' 으로 소소한 추리를 즐기던 멤버들이 나이가 들어 또다시 뭉쳐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가벼운 일상계 이야기로 풀어내는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관찰 놀이 아이디어가 그만큼 괜찮았기 때문인데 작가님이 이 IP를 활용한 다른 아이디어도 있다고 하니 후속작을 기대해 봅니다.

2018/06/02

주간문춘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개정판

하우미스터리에 올라온 주간문춘선정 동서미스터리 100저도 예전에 소개했던 1986년 리스트의 신규 개정판입니다.

온라인 사이트에는 50개씩만 실려있는 듯 한데 리뷰를 남긴 작품 (링크), 리뷰는 없지만 읽은 작품 (붉은색)을 체크해 보았습니다.
일본 작품들 중에서는 국내 출간된 39편 중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은 <도구라 마구라>. <흑사관 살인사건>과 얼마전 출간된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그리고 <모방범>과 <죽음의 샘>의 5편을 읽지 않았네요. 해외 작품은 국내 출간 44편 중 <밀레니엄 1>, <본 컬렉터>, <흥분>의 3편을 빼고는 다 읽어 보았고요. 와 대단하다!
8편만 더 읽으면 일단은 완전정복이니만큼 당분간은 이 리스트부터 정복해봐야 겠습니다. 딕 프랜시스의 <흥분>은 왜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 2013.02.18 수정 <죽음의 샘> 완독

- 2013.02.24 수정 <흥분> 완독

- 2013.03.02 수정 <본컬렉터> 완독

- 2013.03.08 수정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완독

- 2017.10.16 수정 <하늘을 나는 말> 완독

- 2018.3.30 수정 <레이디 조커> 1권 완독

- 2021.1.3 수정 <<비숍 살인사건>> 완독

- 2021.5.7 수정 <<통>> 재독

- 2023.2.12 수정 <<황제의 코담뱃갑>> 재독

아울러 이런 류의 리스트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하락하긴 했지만 이 리스트는 고전 걸작이 많기에 꽤 괜찮다 생각됩니다. 전부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대부분은 자신있게 권해드릴만 하니 아직 읽지 않으신 작품이 있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본>
1위 옥문도, 요코미조 세이시
2위 허무에의 공물, 나카이 히데오
3위 점성술 살인 사건, 시마다 소지
4위 도구라 마구라, 유메노 규사쿠
5위 화차, 미야베 미유키
6위 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7위 대 유괴, 덴도 신
8위 십각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9위 망량의 상자, 교고쿠 나쓰히코
10위 혼진 살인 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11위 검은 트렁크, 아유카와 데쓰야 (국내 미출간)
12위 회귀천 정사, 렌조 미키히코
13위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14위 흑사관 살인 사건, 오구리 무시타로
15위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16위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아와사카 쓰마오
17위 하늘을 나는 말, 기타무라 카오루
18위 백야행, 히가시노 게이고
19위 불연속 살인 사건, 사카구치 안고
20위 시계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21위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시마다 소지
22위 쌍두의 악마, 아리스가와 아리스
23위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쓰히코
24위 이전 동화, 에도가와 란포
25위 모래 그릇, 마쓰모토 세이초
26위 내가 죽인 소녀, 하라 료
27위 외딴 섬 악마, 에도가와 란포
28위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다카기 아키미쓰
29위 레이디 조커, 다카무라 카오루
30위 요이 금병매, 야마다 후타로 (국내 미출간)
31위 기아 해협, 미나가미 쓰토무 (국내 미출간)
32위 문신 살인 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33위 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34위 혼란 계략, 아와사카 쓰마오 (국내 미출간)
35위 음수, 에도가와 란포
36위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37위 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38위 11장의 트럼프, 아와사카 쓰마오 (국내 미출간)
39위 이누가미 일족, 요코미조 세이시
40위 상자 속의 실락, 다케모토 겐지 (국내 미출간)
41위 모방범, 미야베 미유키
42위 한시치 체포록, 오카모토 기도
43위 아웃, 기리노 나쓰오
44위 죽음의 샘, 미나가와 히로코
45위 독 원숭이, 오사와 아리마사
46위 산 고양이의 여름, 후나도 요이치 (국내 미출간)
47위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48위 태양 흑점, 야마다 후타로 (국내 미출간)
49위 무당거미의 이치, 교고쿠 나쓰히코
50위 불야성, 하세 세이슈

<해외>
1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2위 Y의 비극, 엘러리 퀸
3위 셜록 홈스의 모험, 아서 코난 도일
4위 환상의 여인, 윌리엄 아이리시
5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6위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7위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8위 브라운 신부의 동심, G. K. 체스터튼
9위 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10위 화형 법정, 존 딕슨 카
11위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12위 밀레니엄 1, 스티그 라르손
13위 죽음의 키스, 아이라 레빈
14위 X의 비극, 엘러리 퀸
15위 소름, 로스 맥도널드
16위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17위 재칼의 날, 프레드릭 포사이드
18위 주교 살인 사건, S. S. 반 다인
18위 독수리 내리다, 잭 히긴스
20위 독 초콜릿 살인 사건, 앤서니 버클리 콕스
21위 800만 가지의 죽는 방법, 로렌스 블록
22위. 본 컬렉터, 제프리 디버
23위 그리스 관 미스터리, 엘러리 퀸
24위 제제벨의 죽음, 크리스티아나 M. 브랜드
25위 심야 플러스 원, 개빈 라이얼
26위 별의 계승자, 제임스 P. 호건
27위 화이트 재즈, 제임스 엘로이 (국내 미출간)
28위 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루르
29위 무죄 추정, 스콧 터로
30위 웃는 경관, 셰발과 발뢰
31위 시행 착오, 앤서니 버클리 콕스
32위 쉐도우 81, 루시엔 네이험 (국내 미출간)
33위 통, F. W. 크로포츠
34위 모르그가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
35위 흥분, 딕 프랜시스
36위 몰타의 매, 대실 해밋
37위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
39위 붉은 수확, 대실 해밋
39위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40위 경찰 서장, 스튜어트 우즈 (국내 미출간)
41위 신데렐라의 함정,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42위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엘러리 퀸
43위 크리스마스의 프로스트 경부, R. D. 윙필드 (국내 미출간)
44위 유다의 창, 존 딕슨 카
45위 나인 테일러스, 도로시. L. 세이어스
46위 채찍을 쥔 오른손, 딕 프랜시스
47위. 버스커빌 가의 개, 아서 코난 도일
48위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이든 필포츠
49위 점핑 제니, 앤서니 버클리 (국내 미출간)
50위 보이지 않는 그린, 존 토머스 슬라덱 (국내 미출간)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 - 시미즈 기요시 / 문승준 : 별점 4점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 - 8점
시미즈 기요시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모두 5명의 어린 여자 아이들이 유괴된 후 살해되거나 실종된 북관동 연쇄 아동 납치 살인 사건에 대해 파고든 탐사 보도 논픽션미제 사건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취재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 가 떠오릅니다. 이런 류의 컨텐츠에 관심이 많기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추천작입니다. 재미 측면만 놓고 보아도 나무랄데 없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으로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가져다 주거든요.
우선 400페이지 가까운 분량에서 5건의 사건 중 1건의 사건에 대해 유죄로 판결받아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17년 반 동안 투옥되었던 스가야가 진범이 아님을 증명하여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게 한다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야기부터 그러해요.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증거였던 DNA 감정의 오류를 취재를 통해 하나씩 밝혀내는 과정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얻어낼 정도로 탄탄한 논리와 함께 드라마틱하게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스가야가 자전거로 피해자 마미를 유괴했다고 한 거짓 자백이 17년 후 만난 마미 어머니에 의해 마미는 유아용 안장에만 탄다는 게 밝혀지며 부정되는 장면, 스가야가 무죄이기에 곧 풀려날 것으로 믿고 미납한 세금을 내려고 했다는 등의 디테일이라던가, 무엇보다도 누명을 쓴 피해자의 구명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루팡 3세"를 닮았다 하여 "루팡" 이라고 부르는 실제 범인은 누구인지? 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 역시 추리 소설을 연상케 합니다. 5건의 사건을 통해 이미 알려져 있거나 아니면 이 책에서 언급되듯 "기자라도 제대로 조사할 수 있었던 것" 들만 제대로 조사하여 얻은 정보를 토대로 범인의 조건 - 지리에 밝고, 담배를 피우고, 휴일에 파친고를 다닌다는 등 - 에 맞는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은 그야말로 추리 소설 그 자체잖아요?

그리고 스가야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시미즈 기자가 이 사건을 파헤치며 경찰의 한심한 작태를 고발하기 위해 예를 든 "오케가와 사건", 잘못된 DNA 형 감정이 주요 증거로 사용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된 "이이즈카 사건" 에 대한 취재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중에서도 "이이즈카 사건" 에 대한 비중이 높은데 스가야 씨가 누명을 쓴 과정처럼 모순된 DNA 감정, 잘못된 목격 증언 등 경찰이 입맛대로 고른 증거만으로 사형 선고를 받아 집행되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이즈카 사건"은 DNA 형 감정 결과는 주요 증거의 하나일 뿐 다른 증거가 많아 사형된 구마 씨가 진범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시미즈 기자가 다른 증거들 - 자동차 목격 증언 들 - 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잘못된 증거라는 걸 밝혀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에요. 경찰이 이런 정도의 검증도 하지 않고 증언 만으로 범인임을 확정했다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는 경찰이 스가야를 범인으로 이미 확정한 후, 신발 밑창의 무늬를 기억하고 그리라고 하면서 따라 그리라고 샘플을 전해 주었다는 식으로 증거들을 그에 맞춰 조작하거나 날조했다는게 밝혀지는 과정과도 일맥상통하죠. 일본 경찰은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런 취재를 접해 보면 과연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약촌 오거리 사건' 같은 사건이 있으니 남의 이야기 같지 않기도 했고요.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경찰이 마음을 먹고 범인으로 몰면 빠져나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싶습니다. 무섭네요.

이렇게 재미를 안겨다 주지만 결말은 조금 아쉽습니다. 스가야 씨의 무죄는 증명했지만 경찰과 검찰의 제대로 된 사과는 별로 이끌어 내지도 못했고, 모순 투성이의 DNA 형 감정 문제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진범 체포 노력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현실을 그리고 끝맺거든요. 조금씩 세상은 바뀌고 있고 바뀔 것이라는 나름의 희망섞인 메시지는 조금 전해지지만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한게 사실인 듯 합니다.
또 진범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실체는 여러가지 이유로 공개하고 있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이었어요. 일개 기자의 취재 결과로 특정인을 범인이라고 지목하기는 무리일테고, 이미 경찰에 그 존재는 알린 만큼 더 이상 기자의 일은 없겠지만 후일담이 무척 궁금한데 말이죠.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책 자체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재미 뿐 아니라 생각해 볼만 한 메시지를 함께 전해주기도 하고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와 같은 미제 사건을 다룬 컨텐츠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만화 버젼도 있다고 하는데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