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의 교수형 집행인 - 오사카 케이키치 7가지 미스터리 - <오사카 케이키치> 저, <곽은숙> 역/그래출판 |
"감방"에서 이 작가의 "세 광인"이 마음에 들었다고 리뷰를 올렸었죠. 그래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았는데, e-book으로 출간되어 있더군요. 퍼블릭 도메인 작품인 덕분이겠지요? 가격도 2,000원으로 착해서 주저 없이 구입했습니다.
참고로 "감방"에서는 오오사카 케이키치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오사카 케이키치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찾아보니 "오오사카" 쪽이 맞는 번역이네요. 그런데 위키를 보니 작가의 인생도 정말 드라마같습니다. 태평양전쟁에 징집되어 출정 전 은사인 고가 사부로에게 장편소설 원고를 맡겼는데, 오오사카는 루손 섬에서 병사했고 고가 사부로 역시 급사해 버린 탓에 원고가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하여튼, 이 책은 제목 그대로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단편집입니다. 일상계 소품 한 편을 제외하고는 고전 황금기 스타일의 정통 본격물들입니다.
수록작 전체의 별점 평균을 낸다면 2.5점 정도인데, 별점 3.5점 이상의 작품이 두 편이나 있으며 고전 황금기 스타일을 충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독서였습니다. 이런 작품이 전전(1945년 이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본 추리소설의 탄탄한 기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요. 고전 황금기 본격물 애호가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런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보다 많이 소개되길 바라며 리뷰를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 리뷰에서는 항상 그렇지만,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꼭두각시 재판"
20여 년 동안 법정 정리로 일해온 화자가 겪었던, 무려 세 건의 재판에서 핵심 증인으로 활약한 요정 여주인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법정물로 볼 수 있는데 요정 여주인이 사건 피해자나 용의자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으면서도 유·무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만드는 증언을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재미있으면서도 설득력 넘치게 그리고 있습니다. 복선 및 단서 제공 역시 적절했고요.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도박을 그린 작품은 본 적이 없는데 너무 가볍게 소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아이디어가 돋보였어요.
조금 낡은 구성과 언젠가는 꼬리가 밟힐게 분명했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야말로 숨어있는 보물 같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향수 신사"
여고생 구루미가 기차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신사가 은행강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는 것을 알고 벌이는 작지만 용감한 행동을 그린 작품.
거의 대부분이 구루미의 심리 묘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1. 여행 중 앞좌석에 앉은 신사를 불쾌하게 생각한다.
2. 손가락이 하나 없다는 큰 특징을 알게 된 후 왜 그 사실을 숨길까?를 궁금해한다.
3. 우연히 신문기사를 통해 은행강도 사건의 용의자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한다.
라는 순서로 전개됩니다.
여고생이다 보니 딱히 용감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언급된 사촌에게 줄 결혼 선물을 이용하여 명확한 증거를 남긴다는 재치가 돋보이네요. 딱히 대단한 트릭이나 추리가 등장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귀여운 소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백화점의 교수형 집행인"
탐정역으로 아오야마 교스케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표제작.
노구치라는 백화점 점원이 교살된 채 추락사한 사건을 가지고 사체의 상태와 범행 현장에서 아래의 단서들
1. 범인은 힘이 셀 것이다.
2. 범행은 옥상에서 일어났다.
3. 흉기는 길고 거친 표면을 가진, 밧줄과 같은 것이다.
4. 동기가 없다.
을 끌어내어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주어진 증거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고전 황금기 시대 본격물 스타일에 충실한 작품이죠. 나름 과학적인 트릭이 사용된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일단 트릭이 너무 작위적이었어요. 애드벌룬 안에 목걸이를 숨길 당위성도 좀 부족하고요. 이렇게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움직임이 자유로웠다면 범인이 통제 가능한 다른 수를 내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땅에다 파묻던가... 여튼 이래서야 트릭을 떠올리고 억지로 작품을 끼워 맞춘 결과물로 보일 뿐입니다.
전개에 있어서도 피해자 노구치가 목걸이를 훔치지 않았으리라 주장한 귀금속 코너 주임의 증언은 너무 심각한 오류를 독자에게 불러일으키기에 공정해 보이지 않았고요. 아울러 번역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피해자의 사체에서 끌어낸 정보로 추리가 시작되는데 어려운 법의학 용어가 많이 등장할 뿐더러 주요 단서가 되는 특징도 지나치게 직역이라 이해가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조사해보니 작가의 데뷔작이던데, 뭔가 보여주고 싶은 의욕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장례식 기관차"
운행 중 유별나게 역살(사람을 치는 것) 사고가 많은 기관차가 어느 날부터 매주 돼지를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키는 이유는?
사고가 많은 기관차라는 독특한 소재와 기발한 동기가 결합된 본격물. 돼지 역살 사고가 결국 끔찍한 비극으로 끝나는 전개까지도 어떻게 보면 고전적인 작품이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추리, 진상 모두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단점이 조금 거슬렸습니다. 예를 들어 복잡한 도구를 이용하여 돼지를 선로에 잡아놓는 범인의 행동에서 범인이 이 도구를 판매한다는 추리를 끌어낸다든가, 범인의 동기가 역살 사고 때 "화환을 사러 오는" 오사센 기관사를 자주 보기 위해서라는 것 등입니다. 첫 번째 추리는 당연히 말도 안 되죠. 누구나 상상 가능한 쉬운 방법이 있는데 손에 넣기 쉽다고 구태여 복잡한 방법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두 번째의 동기도 범인이 스스로 움직여 자살이 가능했다면, 그게 불가능했더라도 아버지가 업고서라도 근처로 나가보는 식으로 오사센의 얼굴을 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테고요.
형식과 전개는 마음에 들지만 이러한 비약 때문에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위키피디아에는 작가의 대표작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이해가 잘 되지는 않습니다...
"꽃다발 속의 벌레"
역시나 전형적인 고전 황금기 스타일 본격물. 한 재산가가 절벽에서 추락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홈즈 스타일의 탐정역인 오츠키 변호사의 활약이 볼거리인데 현장의 발자국을 조사하여 "범인은 여성"이라고 추리하고, 떨어져 있던 사과껍질은 범행 당시 떨어진 것이며 방향이 왼쪽이라 왼손잡이가 깎은 것이라는 것을 밝혀내며, 경찰이 놓친 얇은 조각이라는 주요 증거를 발견하는 식입니다.
또 진짜 수수께끼라 할 수 있는, 체구도 작은 연약한 여성이 어떻게 격투 끝에 피해자를 절벽 밑으로 밀어 떨어뜨릴 수 있었는가?라는 것에 대한 해답이 위의 단서들로 밝혀지는 결말도 아주 좋았습니다. 깎는 위치에 따른 사과껍질의 방향성 같은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고요.
아쉬운 점이라면 농부라는 목격자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인데 농부의 규칙적인 생활에 대한 언급 정도를 해 주었더라면 더 나았을겁니다. 아울러 동기 역시도 썩 와닿지는 않았어요. 이래서야 범인이 너무 명백하니까요. 사실 경찰이 원고 조각을 회수한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지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앞선 두 편의 본격물보다는 훨씬 정교하고 합리적인, 추리의 과정과 트릭만큼은 수준 이상의 본격물로 고전 황금기 걸작과 겨룰 만한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칸칸충 살인사건"
아오야마 교스케가 재등장하는 단편.
앞선 작품들에 비하면 추리의 비중이 낮은 단순한 살인극이지만 피해자 키사부로의 시체 상태로 범행 장소는 물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리해내는 교스케의 모습은 명탐정이라 불러도 손색없어 보입니다. 조선소의 구조를 실제 추리에 응용한 디테일도 나쁘지 않았고요.
허나 내용이 워낙 단순해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별로 없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그리고 G.Y라는 이니셜이 어떻게 "야마다 히로노스케"의 이니셜이죠? 번역 오류인가... 여튼 세세한 부분이 좀 아쉽네요.
"등대귀"
시오마키 등대의 불이 갑자기 꺼지고 당직인 도모다 간수에게 닥친 끔찍한 사건. 성인 두 명이 들어도 움직이기 어려운 큰 바위를 등대 꼭대기로 옮긴 계획의 진상은?
임해시험소의 아즈마야 소장이 탐정역으로 등장하여 등대의 기계장치를 이용한 트릭을 밝혀내는데, 등대라는 장소의 특수성에 복잡한 장치 트릭이 더해진 것이라서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등대의 구조를 독자가 머릿속에 그리면서 추리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탓입니다. 동기도 정신병적인 것이라 너무 쉽게 간 느낌이고요.
완고한 옛날 사무라이 같은 카자마 간수의 거짓말을 잡아내는 소소한 활약은 좋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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