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취미 - 유재진.이현진.박선양 옮김/문 |
"일본의 탐정소설"에 이어지는, 식민지 조선에서 발표되었던 추리 문학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책입니다. 자료로서 꽤 괜찮았던 전작에 기대가 컸고, 기획 의도도 마음에 들어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창작되었던 추리 소설의 수준이 높지 않았으리라는 건 이미 짐작했었지만, 최소한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수준 이하였던 탓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29년 11월에 연재가 시작된 김삼규의 "말뚝에 선 메스"입니다. "김내성"의 "타원형 거울"보다 먼저 발표된 '한국 최초의 탐정 소설'이라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는건 분명하지만 완성도가 심하게 떨어져 한 편의 소설로 보기 어려웠거든요. 의문의 카드, 엽기적인 연쇄살인 등 이야깃거리는 많지만, 전개는 복선도 단서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간 느낌을 주니까요.
조선의 일본인들이 합작 형태로 발표한 "여자 스파이의 죽음"은 진범과 진상이 너무 황당했고, 세 구슬의 비밀"은 러시아 가문의 암투극이라는 설정이 무리였습니다. 그나마 "여자 스파이의 죽음"에서 ‘누드화와 열쇠구멍을 직선으로 연결해 총을 쏘았다’는 독특한 트릭이 흥미로웠고, "세 구슬의 비밀"은 앞선 복선과 인물들로 연결되는 결말만큼은 괜찮았지만 완성도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그 외에 조선에 소개되었던 셜록 홈즈 번안물 두 편, "명마의 행방"과 "의문의 죽음(얼룩끈)"이 실려 있는데, 원작 대비 특별한 점은 없었습니다. "명마의 행방"은 등장인물과 지명, 설정을 일본식으로 바꿔 놓은게 인상적이긴한데 "진주탑"처럼 시대적 상황을 잘 녹여낸 번안은 아니었고, 단순히 이름만 바꾼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당대 조선의 문인들이 창작하고 발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는 분명 있습니다. 예컨대 당시에 수면제가 널리 쓰였다는 점, 러시아계 여인들이 카페 등에서 일한 것이 그다지 이색적이지 않았다는 사회상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여자 스파이의 죽음"에서의 공산주의자 조직, "세 구슬의 비밀"에 등장하는 종로의 실존 장소들(우미관, 미쓰코시 백화점 등), ‘천 원은 일본인 사무원의 일 년치 연봉’이라는 묘사도 좋았고요. 특히 일본인들이 ‘아파트’에 거주한다고 묘사된 부분이 의외였는데, 조사해 보니 실제로 식민지 조선에 "아파트로 불렸던 건물"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이번 독서의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료적 가치를 제외하면 작품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14,000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책의 완성도도 심하게 낮고요. 번역이 어려운 단어는 ‘XXXXX’로 처리하는 무성의한 편집도 거슬렸고, 두 장의 페이지가 빠진 채 출간되어 내용 이해에 방해가 되는 점도 감점 요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저처럼 식민지 시기의 조선 문학이나 추리소설 문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 아니라면 굳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더라도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 한 권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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