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방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2 - 하시 몬도/페가나 |
<심령 살인사건>에 이은 페가나북스의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두번째. 건승을 기원한다는 페가나북스의 책인데 출간된지 1년도 더 된 작품이네요. 조금 무안하긴 합니다,,.
여튼 일본 근대 추리 단편의 걸작을 모았다는 시리즈의 2탄으로 작가의 명성보다 추리소설의 형식과 완성도에 기준을 두고 작품을 골랐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소개에 값하는 좋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작가, 작품이 아니라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었고요..
작품별로 상세하게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하기 소개 및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감방> - 하시 몬도
전전 홋카이도의 가혹했던 노동현장 (일명 문어방)을 무대로 한 작품.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관리가 파견되어 그들의 고충을 듣는 자리가 마련된다는 내용.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재애그룹 지하 강제 노역장이 연상되는 독특한 소재가 인상적으로 발표 시기에는 금기시되었던 소재가 아니었을까 싶던데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실제로 현장의 묘사도 짧지만 상당히 괜찮은 편이고요. 또한 극적 반전 - 사실은 정부관리가 실제로 파견되기 전 불평분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쇼였다 -도 좋았습니다. 한번 정도 더 꼬아서 주인공 화자가 정부관리가 파견된 상황에서 다시 목숨을 걸고 가혹한 실태를 증언하지만 진짜 정부관리인지, 아니면 쇼인지 고민한다는 열린 결말로 끝내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깔끔한 단편이라는 미덕에 충실한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덤불 속>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유명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 원작 중 하나. 영화는 소설 <라쇼몽>의 무대설정에 이 <덤불 속> 서사를 혼합한 구조라죠.
익히 알려진대로 서로 다른 증언들 속에서 진상을 찾아낸다는 전통적 추리물 서사를 갖추고는 있지만 진상이 무엇인지 끝내 밝혀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화는 잘 모르겠으나 소설은 마지막 피해자 타케히로의 증언때문에라도 더더욱 그러하죠. 스스로의 이득을 위해 이기적인 증언을 하는 다른 인물들에 비하면 피해자의 마지막 증언이 진상일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까요. 물론 "빙의"라는 현상의 신뢰성 여부가 관건이기는 합니다만....
결론내리자면 유명세에 비하면 딱히 대단한 점을 느끼기는 어려웠습니다.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감안한다면 독특한 시도였음에는 분명할테지만 시대를 초월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세 광인> - 오오사카 케이키치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인데 놀랐습니다. 정말 괜찮은 멋진 본격물이었거든요. 망해가는 정신병원을 무대로 독특한 특징의 정신병자들이 등장하는데 정신병자 중 두명, 톡톡과 부상자의 특징을 복선으로 트릭과 단서에 잘 버무린 솜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점이라면 이 정도로 복잡하고 교묘한 계획을 세우면서도 피해자의 주요한 특징을 과연 간과했을까? 라는 점입니다만 워낙 장점이 확실해서 추리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그야말로 일본 추리소설계의 묵직한 저력을 느끼게하는 수작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이런 작가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게 신기한데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네요.
<진동마> - 운노 쥬자
화자인 "나"를 통해 친구 카키오카 아키로가 시도했던 불륜녀 낙태 작전과 직후 그에게 닥친 폐질환에 대해 서술해나가는 작품. 물체 고유의 진동수와 공명현상을 이용한 트릭, 즉 자궁을 울리게 만들어 낙태를 하게 한다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만큼은 현실성여부를 떠나 돋보였습니다. SF작가라고 하는데 그다운 상상력을 여지없이 발휘했달까요.
그러나 자궁과 카키오카 아키로의 폐 내부의 공동의 크기가 유사하다는 우연, 그리고 "나"가 그것에서 착안하여 범죄를 계획했다는 진상은 억지스럽네요. 탐정이 갑작스럽게 등장하여 모든 것을 밝히는 추리쇼 역시 실질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고요. 친구의 사망보험금을 화자가 수령했다는 것은 확실한 증거이기는 하나 작품을 마무리하기 위해 억지로 집어넣은 느낌이 더 컸습니다.
한마디로 아이디어를 잘 받쳐주지 못한 전개가 아쉬웠습니다. 전문 추리소설 작가가 썼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것 같아요.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로 써내려갔더라면 그럴듯한 변격 추리물이 되었을것 같은데 말이죠.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는 누구를 죽였는가> - 하마오 시로
아내의 불륜상대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데 자동차 운전자는 첫번째 피해자의 형이었다... 는 기묘한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를 다룬 작품.
자동차 운전자인 호소야마 백작이 공들여 계획한 복수극으로 보이지만 마지막에 모든 사고가 우연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반전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러가지 복선 (특히 백작이 당일 크라이슬러에서 팩커드로 차량을 교체한 것)도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등 그야말로 모범적인 범죄물 단편이 아닌가 싶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은 국내에 <살인귀>라는 장편이 출간되어 있는데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전체 평균 별점은 반올림해서 3점. 분량도 적절하고 번역도 깔끔하며 가격도 저렴하다는 장점까지 함께하고 있으므로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최소한 2,000원이 아깝지는 않거든요.
다시금 페가나 북스의 건승과 함께 이 시리즈의 계속된 출간을 기원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