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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8

2017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2016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14차, 열 네번째!를 맞는 블로그 결산입니다. 열네살이라... 블로그 생활도 이제 중학생 레벨에 진입한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숫자부터 정리해보면, 2017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2 (53)권, 기타 장르문학 3 (8)권, 역사서 15 (18)권, 디자인 및 스터디 도서 2 (4)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9 (9)권, 기타 도서 20 (15)권으로 모두 101 (107)권입니다 (괄호는 작년). 작년보다 소폭 줄었지만 100권은 넘겼으니 만족합니다.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17년 베스트 추리소설 :
<<올빼미의 울음>>
단평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장편 중에서 재미와 함께 서스펜스를 가져다 주는 보기드문 수작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추리, 호러 장르물 중 별점 4점 이상 작품은 단 한편도 없습니다. 이 작품 홀로 별점 3.5점을 받았을 뿐이죠. 전반적으로 흉작인데, 내년에는 좀 더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2017년 워스트 추리소설 :
<<나를 사랑한 스파이>>
<<후쿠오카 살인>>
단평 : 과연 바닥은 어디인가?
올해 별점 1점을 받은 쓰레기는 이 두 편입니다. 뭐라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망작들로 꼭 피해가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7년 베스트 /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수상작 없음>>
올해 기타 장르문학은 딱 3권밖에 읽지 않아 선정할 작품이 없네요.

2017년 베스트 역사 도서 :
<<보석 천 개의 유혹>>
단평 : 첫번째 장은 별점 5점도 아깝지 않음.
올해는 역사 도서 중에서 무려 3 권의 별점 4점 짜리 책들이 등장했습니다. 그 책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지를 보라>>
<<북로우의 도둑들>>
<<보석 천 개의 유혹>>
전부 재미와 가치를 동시에 지닌 좋은 책들이지만 이중 한 권을 꼽는다면, 일제 강점기 시대에 대한 개인적 관심사가 크게 작용한 <<대지를 보라>>, 특정 특정 소재에 집중한 <<북로우의 도둑들>> 보다는 <<보석 천 개의 유혹>> 이 훨씬 재미와 대중적인 측면에서 앞선다고 생각되기에 이 책을 올해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2017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수상자 없음>>
역사 도서는 좀 가려읽는 편이라 워스트가 대체로 없습니다. 올해 별점 2점 짜리 책은 두 권인데 "워스트"라고 할만한 책들은 아닙니다.

2017년 베스트 디자인 / 스터디 도서 :
<<수상자 없음>>
읽은 책이 2권 밖에 안되기에 평가가 불가하네요.

2017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수상작 없음>>
올해 읽은 10권 모두 고만고만해서 딱히 베스트는 없습니다. 별점 3점짜리 책은 4권인데 이 정도 별점은 베스트로는 좀 애매하죠.

2017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진짜? 가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본 음식 이야기>>
단평 : 전반적으로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다.
온갖 잡다구레한 정보를 담아내어서 주제에 걸맞지도 않았고, 깊이있는 내용도 부족한 등 총체적 난국입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e-book 으로 읽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2017년 베스트 기타 도서 :
<<작가의 수지>>
단평 : 이쪽 바닥에 속한, 관심있는 사람들 모두의 필독서
작가로서의 벌이에 대한 상세한 정보 전달은 물론 여러모로 허투루 듣기 어려운 프로 작가의 의식이 선명히 빛나는 멋진 에세이. 재미까지 있으니 별점 4점을 받는건 당연하죠. 이 쪽 바닥 (출판)에 어떤 식으로건 속해 있거나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2017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윤광준의 신 생활명품>>
단평 : "생활 명품"과는 몇 광년 멀어지다.
올해 기타 도서 중 별점 1.5점을 받은 책은 이 책과 <<학교 출입 금지>> 의 두 권입니다. 그래도 <<학교 출입 금지>> 는 애초부터 제 취향은 아닌, 아동용 성장기 비스무레한 책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딸이 골라줘서 억지로 읽었을 뿐입니다...) 이 책은 너무나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당당한 올해의 워스트에요. "생활 명품" 이라는 말이 아까운, 그냥 비싼 명품 소갯글에 불과하기 때문으로 널리고 널린 잡지와 구분하기도 어렵더군요. 오히려 최신 트렌드나 신상을 소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잡지보다도 못합니다.

그 외 만화는 <<피너츠 완전판 5>>가 별점 4점으로 올해의 베스트이며, 다른 작품들은 대체로 무난했습니다. 딱히 소개해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결산평 :
순수한 책만 따져서 올해도 완독한 책이 100 권이 넘네요. 이 정도면 취미인으로 할만큼 했기에 만족스럽습니다.
추리, 호러 등 장르 문학은 최근 점수가 별로 좋지 않지만 그래도 작년 보다는 조금 나은 듯 해서 다행이에요. 내년에는 보다 재미있고 가치있는 작품을 많이 읽게 되면 좋겠습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는 그런 한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임이 분명할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거에요. 사랑합니다~!

2017/12/25

죽이는 요리책 - 케이트 화이트 엮음 / 김연우 : 별점 2점

죽이는 요리책 - 4점
케이트 화이트 엮음, 김연우 옮김/라의눈

MWA (미국 추리 작가 협회) 에서 소속 작가들을 대상으로 레시피를 추천받아 모아 놓은 요리책. 개인적으로 "추리 소설 속 요리"라는 주제로 글을 조금 쓰고 있기 때문에 흥미가 생겨 사 보았습니다.

사실 구입 전부터 "요리"와 "추리 소설" 에 관련된 글들은 아니고 단순한 레시피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별로 큰 기대도 없었고요. 책은 유명 작가들이 짤막한 레시피 소갯글과 함께 레시피를 실어 놓은게 전부라 딱히 언급할 내용이 많지는 않네요.

그런데 책의 성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이런 의뢰를 받았다면 최소한 제 작품, 자기 작품에 등장했던 인상적인 레시피를 소개했을 겁니다. 루이즈 페니의 <<마담 브누아의 투르티에>> 처럼 말이죠. 루이즈 페니는 자신의 작품 속 묘사와 함께 투르티에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품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소재에 불과하긴 하지만, 최소한 자신의 작품 속에는 등장하는 소재죠. 그러나 요리가 특별한 소재로 등장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우리 어머니의 특기 요리" 라던가, "내 시리즈 탐정이 즐겨 먹음직한 요리"라면서 작품과 별 상관도 없는 레시피들이 실려 있는 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MWA" 소속 작가들의 지명도가 떨어지는 것도 책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입니다. 전부 110명의 작가가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는데, 제가 이름을 들어보았거나 한 권이라도 책을 읽어본 작가는 15명이 채 안 됩니다. 제가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추리 소설을 꽤 읽은 편인데 이 정도라면 아마 일반 독자분들은 한두 명 (리 차일드나 제임스 패터슨, 길리언 플린 정도?) 아시는 정도겠죠. 유명 작가의 레시피라면 팬심으로라도 구해 볼지 모르겠는데 이름을 알 만한 작가조차 적으니 우리나라에서는 여러모로 흥행하기 힘든 책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또 레시피들의 거의 대부분이 "오븐"을 필요로 해서 집에서 해 먹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재료도 많고요. 토머스 H. 쿡의 <<채식주의자 칠리 프롤로그>> 는 아주 그럴듯해 보이는데 "초리조" 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예 절망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존 매커보이 <<파산자의 굴라시>> 처럼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이루어진 레시피도 제법 되니까요. 파산자의 굴라시는 제일 먼저 간 쇠고기를 양파, 피망과 함께 냄비에 볶은 후 마늘 소금으로 간합니다. 국수를 알 덴테 직전까지 삶아 쇠고기, 채소를 볶은 냄비에 넣고 토마토소스도 넣은 후 뚜껑을 연 채 약한 불에 15분 정도 끓이고 케첩을 넣어 잘 섞으면 완성입니다. 맛있어 보이죠?
또 "베이커 가의 음식 사냥개"라는 제목으로 홈즈의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소개한다던가, "당신의 정원에 있는 예쁜 독"이라는 제목으로 일상 속 독초를 소개하는 식으로 짤막하게 실린 몇 가지 팁들은 무척 반가웠고요. 책도 아주 잘 만들어져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딱히 마음에 드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2점. 유명 작가가 되면 몇 줄의 레시피 소개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어서 참 좋겠다는 생각만 뿐입니다. 수록 작가 중 누군가의 굉장한 팬이 아니시라면 딱히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25,00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죠.

2017/12/24

막대가 하나 - 타카노 후미코 / 정은서 : 별점 2점

막대가 하나 - 4점
타카노 후미코 지음, 정은서 옮김/북스토리

북 스토리 아트코믹스 시리즈 다섯번째 단행본. 관심이 가던 차에 연휴를 맞이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모두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일 처음에 실려있는, 과묵하면서도 성실한 남편과 그를 믿고 따르며 묵묵히 내조하는 아내의 잔잔한 일상을 그린 <<아름다운 마을>> 은 괜찮습니다. 잔잔한 이야기에서 일상 속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다른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게 하는 좋은 작품이에요. 이와 비슷한 잔잔한 이야기인, 익숙치 않은 초행 심부름길을 다룬 <<버스로 네 시에>> 도 마음에 들었고요. 특히 이 작품은 앵글을 과감하게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영화적이기도 하면서 시대를 뛰어넘어 신선함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들은 그냥 저냥입니다. 우선 <<병에 걸린 토모코>>는 굉장히 짧은 소품이라 언급하기 애매하고, <<내가 아는 그 아이>> 는 자신의 감정 표현에 대한 이야기인데 대단한 내용은 아니에요. <<도쿄 코로보클>>은 이야기는 명확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이야기였고요.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야기로 성립은 하는데, 마지막 수록작으로 가장 긴 중편 분량의 <<오쿠무라 씨의 가지>> 는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더군요. 전기점을 운영하는 오쿠무라 씨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마도 외계 지성체로 보이는 아가씨가 찾아옵니다. 그녀는 25년전 6월 6일 목요일 오쿠무라 씨가 먹었던 식사에 대해 물어봅니다. 그가 먹은 식사가 자기 선배의 결백을 증명해 줄 수 있다는 이유로요. 그리고 온갖 기묘한 도구로 당시 상황을 추측해 나가는 내용으로 "막대가 하나"라는 대사가 여기 등장하는데...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 줄거리를 요약해드리기도 힘드네요. 기묘한 설정과 과감한 묘사들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작품에 제대로 녹아났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시대를 초월하는, 아직도 세련되어 보이는 깔끔한 작화와 선 굵은 전개는 충분히 인상적이기는 합니다. 이러한 그림과 함께 잔잔한 이야기 속에서 깊이있는 심리 묘사와 기묘한 설정이 가끔 눈에 띈다는 점에서는 <<카페 알파>>의 직계 조상 쯤 되는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그러나 <<카페 알파>> 만큼의 재미나 고즈넉함, 여유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아트 코믹" 취향은 아닌듯 싶네요.

2017/12/17

배빵빵 일본식탐여행 한 그릇 더! - 타카기 나오코 / 채다인 : 별점 2.5점

배빵빵 일본식탐여행 한 그릇 더! - 6점
다카기 나오코 지음, 채다인 옮김/애니북스

2권이 나왔는지 전혀 몰랐는데 얼마전 알고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1권과 마찬가지로 타카기 나오코 에세이 만화의 진수인 음식, 여행, 일상과 유머가 모두 포함된 즐거운 작품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화, 만화적 구성도 조금 실망스러웠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훨씬 '만화'에 가깝고요.
1권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술과 음식을 더 많이 먹고, 더 먼 곳으로 떠난 여행이 많다는 정도? 제목에 '배 빵빵'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정말 많이 먹더라고요.

하지만 대지진 이후 갈 생각이 없어진 후쿠시마를 비롯한 동북부 지방 여행기가 절반 정도 되는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후쿠시마와 카나가와 편에서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많이 등장해서 더 그러했어요. 후쿠시마의 꿀경단과 도부지루를 비롯한 해산물들, 카나가와의 네이비 버거와 시로코로 곱창 등은 당장이라도 먹고 싶은데 말이죠. 그래도 이러한 부분은 여행의 용이성 문제일 뿐, 이야기 자체는 충분히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고치, 미야자키와 카고시마는 충분히 허용 범위라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어요. 특히나 고치의 가다랑어 타타키는 이런저런 만화 등에서 많이 접해서 먹어본 적은 없지만 굉장히 친숙한데 정말이지 먹어보고 싶네요. 타카기 나오코도 완전 극찬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맛있다고 한 소금 타타키는 <<술 한잔 인생 한입>>에서 주인공 소다츠의 친구 다카노마타가 집에서 만들어 주는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이렇게라도 먹어봐야하나...
그 외에도 고치 시골 초밥과 각종 디저트, 미야자키의 토종닭 숯불 구이도 언젠가는 한 번 먹고야 말겠습니다.

이렇듯 1권, 그리고 타카기 나오코 팬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마지막 에피소드는 번역본이 출간된 대만 출판사 요청에 의한 대만 여행기인데 우리나라에도 거의 전 작품이 번역 출간된 만큼, 3편에서라도 다루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번역하신 채다인님도 찬조 출연하시고....

캐리 - 스티븐 킹 / 한기찬 : 별점 2점

캐리 - 4점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황금가지

호러 문학의 제왕 스티븐 킹의 기념비적인 대표작. 영화 버젼으로도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죠. 주말 내 읽을 거리를 찾다가 호기심에 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영화를 먼저 봐서 내용을 알고 있던 탓입니다. 광신도 어머니 때문에 겪는 성적인 무지와 왕따로 촉발되는 거대한 재앙이라는 핵심 내용은 영화 그대로거든요. 
게다가 돼지피를 뒤집어 쓴다던가 하는 묘사는 아무리 잘 써도 영상을 따라가기도 힘들 판인데 정작 잘 쓰여져 있지도 못합니다. 돼지피에서 이어지는 클라이막스인 캐리의 폭주와 마을에 닥치는 거대 재앙은 데뷰작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박력과 화끈함, 통쾌함 모두 부족해요. 너무 짧기도 하고요. 대표적으로 크리스와 빌리의 최후는 최근 영화 쪽이 몇 배는 더 낫습니다.

그래도 소설에서는 혹시 뭔가 다른 전개가 있을까 싶었는데 별다른 건 없습니다. 신문 기사, 다양한 인터뷰, 고백서 등 이런저런 인용 문서들로 캐리 사건이 실존했음을 강하게 드러내고, 전개에 설득력을 더하고는 있지만 있으나 마나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작가 후기에서 고백하듯 단편 분량을 중, 장편 이상으로 늘리기 위한 꼼수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몇가지, 담임과 교장 선생님은 제대로 된 교육자였고 수지와 토니, 특히 그 중에서도 토니는 순수한 의도만 가지고 있었던 점은 눈에 띄더군요. 이들의 노력만으로도 캐리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악역을 담당하는 크리스와 빌리가 단순한 일진은 아니고 비교적 복잡한 배경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조금 특이했고요. 그래봤자 동네 건달이긴 하지만...

한마디로, 스티븐 킹의 데뷰작이라는 점 외의 장점은 찾기 힘듭니다. 발표 당시라면 모를까,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만, 역사적인 가치를 감안했을 뿐입니다. 영화를 이미 보셨다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7/12/10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김정선 : 별점 2.5점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6점
김정선 지음/유유

20년 이상 단행본 교정 교열 작업을 해 온 저자가 어색한 문장을 다듬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예제가 많고 현실적이라 마음에 듭니다. 굉장히 실용적이거든요.

특히 빼야 하는 것들이 아주 대박이네요. 굉장히 충실하고 이치에 맞습니다. 저 자신부터 생각없이 반복했던 습관이 빼야 하는 것들로 굉장히 많이 등장해서 부끄럽기도 했고요. 그래도 이런 방법들을 잘 익힌다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겠죠. 대표적인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 '-적', '-의' 를 뺄 것
  • 의존명사 '것'을 뺄 것
  • '있다' 라는 표현은 주의하고 뺄 수 있으면 빼자. 쓸데없는 장식이다.
  • '- 들 중 하나', '- 중 대부분' 역시 습관적으로 쓸 때가 많다. 되도록 빼자.
  • '될 수 있는', '할 수 있는' 도 뺄 수 있으면 빼자.
  • 지시대명사 '그', '이', '저' 와 '이렇게' 도 마찬가지로 빼자.
  • '여기', '저기', '거기'도 가려 써야 한다.
  • '놀라기 시작했다' 대신 '놀랐다' 처럼 '시작하다'는 명확한 항목 외에는 붙이지 말자.
  • 말을 이어 붙이는 접속사는 자제하자. '가령', '그리고', '그래서' 나 '은', '는' 과 같은.
  • '이', '가' 와 같은 주어 하나에는 서술어 하나를 쓴다. 그 뒤에 관형사를 붙이는 말도 많지만 뺄 수 있다.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대신 '아무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처럼.
  • '- 같은 경우', '- 에 의한', '-으로 인한' 은 쓸 수는 있지만 습관처럼 반복하지 말자.

이렇게 빼야 하는 요소들을 실제 문장 예와 함께 차분히 설명해 주고 있어서 이해가 쉽습니다. 당연하지만 사전적인 의미와 함께 설명되어서 합리적이기도 하고요. '-에 대한' 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입니다. 사전적 의미와 함께 용례를 설명해 주는데 뭉뚱그리지 말고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는 결론이에요. '사랑에 대한 배신' 이라는 문장에서는 빼기 어려우며, 빼려면 '사랑을 저버리는 일'과 같이 풀어써야 한다는군요. 하지만 뭉뚱그려 표현한 문장은 구체적으로 쓰는게 좋다고 합니다. 아울러 '-에 대해'는 빼도 되고요.

또 사전적 의미를 통해 새롭게 알게된 용법들도 많습니다.
  • 주격 조사는 '이','가' 고 '은', '는' 은 보조사이기 때문에 '이', '가' 는 말하는 주체이고 '은', '는' 은 화제의 중심이라는 설명.
  • '에' 는 처소나 방향, '을' 은 목적이나 장소라는 것.
  • '-에' 는 무생물, '- 에게'는 생물에 붙이므로 선전포고는 '적국에게' 가 아니라 '적국에' 하는게 맞다는 것.
  • '- 을 하다'와 '하다'는 다른 말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 '멋진 그림으로 장식을 했다.' 에서는 장식이 목적어입니다. 멋진 그림으로 다른걸 할 수도 있었지만 장식을 했다는 의미죠. '멋진 그림으로 장식했다' 는 말 그대로 멋진 그림으로 장식한 것이고요. 즉 내가 쓰려는 문장이 하다가 동사인지, 다른 동사가 주가 되는지 가려 써야만 합니다.
피해야 하는 용법 설명도 많아요.
  • '-로의', '-에게로' 처럼 조사가 겹친 표현은 피하자.
  • '-로부터' 는 '-에게', '-와', '-에서' 로 나누어 써야 할 표현을 뭉뚱그려 대신한 것으로 피해야 한다.
  • 두번 당하는 말을 만들지 말자. '나뉘어지다' 는 '나누다'의 당하는 말인 '나뉘다'와 '나누어지다'가 합쳐진 말이다.
  • '시키다'는 자제하자.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대신 '소개해 줘' 로 충분하다.
  • '-가 되다'와 같이 구태여 '되다'를 동사로 쓸 필요는 없음.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저자가 쓴 "문장의 주인은 문장을 쓰는 내가 아니라 문장 안위 주어와 술어임." 이라는 글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여태까지 놓치고 있던 것을 비로서 깨달은 느낌이랄까요?

이렇게 실용적이고, 도움이 되는 부분도 많은 좋은 책인데 아쉽게도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용례 중간 중간에 삽입된 저자와 소설가 함진주 씨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은 재미도 없고, 내용에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200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인데 가격이 12,000원이나 한다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도서출판 유유의 책들이 대체로 분량에 비해 가격이 높은데 솔직히 무슨 근거로 책정된 가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만해도 쓸데없는 함진주 씨 이야기를 빼고 120여 페이지 정도로 정리해서 '살림 지식 총서' 처럼 5,000원 이하 가격으로 내 놓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글을 쓰시는 분들이라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괜찮겠지만 가성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도판이 하나도 없는 만큼 ebook으로 읽어도 되긴 하지만 ebook의 현재 가격도 8,400원이나 하는군요. 혹시 모를 세일이 있다면 한 번 노려보시기 바랍니다.

2017/12/09

마스터 키튼 리마스터 - 우라사와 나오키, 나가사키 타카시 / 강동욱 : 별점 2점

마스터키튼 리마스터 - 4점
우라사와 나오키, 나가사키 타카시 지음, 강동욱 옮김/대원씨아이(만화)

전설의 작품의 후속작. 마스터 키튼의 20 년 뒤 이야기. 출간된지 1년이 넘었는데 리뷰가 늦었네요.
키튼이 오리지널 시리즈 마지막에 도전한 도나우 강 유적 발굴에 성공하지만, 박사 학위도 없고 후원자도 없어서 연구를 계속하지 못하고 여전히 탐정업무를 - 짬을 내어 - 진행한다는 설정입니다.

각 단편 에피소드들은 일견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구 시리즈의 좋았던 이야기들과 비슷한 느낌은 전해주거든요.
그 중에서도 키튼의 학자적 지식이 돋보인 <<매리언의 덫>> 과 <<하바쿡의 성야>>가 특히 괜찮았습니다. <<매리언의 덫>>에서는 트로이 목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하바쿡의 성야>>에서는 물에 적신 신문지로 총알을 막는다는 설정이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아 사태가 이야기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점, 구 시리즈에서 질릴 정도로 보았던 특정 인물의 도망과 암살 시도 등이 반복되는 점 등은 지루했습니다 . 냉전 시대 스파이들과 군인의 사회 부적응을 다룬 에피소드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한마디로 좋았던 과거 영광의 자가 복제에 불과하죠.
게다가 키튼은 전직 군인으로서의 실력을 거의 보여주지 않고, 그냥 학자나 보험 조사원 이미지로만 등장해서 나름의 매력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키튼의 아버지도 건재하고 성인이 된 딸 유리코도 반갑긴 한데, 가족 외 다른 구 시리즈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는건 아쉬웠습니다. 특히 후반부 주요 인물이었던 찰리 채프먼의 근황은 아주 궁금했는데 말이죠. 그나저나 딸 유리코도 이혼하는데 3대가 다 이혼하다니, 참 유니크한 가족이에요. 물론 유리코가 이혼한 건 키튼의 편이 되어주지 않은 남편 탓이기는 합니다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많이 부족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돌아오지 않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작화, 내용 모두 구 시리즈에서 한 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한 과거의 유물에 불과해서,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페퍼로드 - 야마모토 노리오 / 최용우 : 별점 3점


페퍼로드 - 6점
야마모토 노리오 지음, 최용우 옮김/사계절

고추의 발상지가 어디인지에서부터 고추가 전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을 그린 음식사문화사미시사 서적.

농학 박사이자 민족, 민속학자로 화려한 이력을 지닌 저자가 직접 발로 뛰고 조사한 정보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용이 굉장히 충실하고 신뢰가 갑니다. 고추가 자생종에서 처음 재배종으로 바뀌게 된 남미에서의 이야기가 대표적이에요. 저자의 젊은 시절 박사 논문을 읽기 쉽도록 재구성했다고 하는데, 수록된 사진과 분포도 등의 도판만으로도 박사 학위는 충분히 딸만 하다 생각될 정도입니다.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많습니다. 고추가 매운맛을 지니게 된 이유는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새는 고추를 좋아한다고 하네요. 씨앗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선택적으로 진화되었기 때문이라는군요.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고추는 중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 식물로 기원전 8,000~9,000년 경부터 이용되기 시작하여 수천 년에 걸쳐 재배화되었습니다. 이후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하여 후추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16세기 중반 무렵에는 스페인 곳곳에서도 재배가 시작되죠. 매운맛은 이런저런 편견을 불러일으켜 유럽 전역으로 퍼지지는 못했지만, 이탈리아 등에서는 널리 퍼지게 됩니다. 흔히 들어본 "페페론치노"가 바로 고추라는 뜻이죠.
또 고추의 하나인 파프리카는 헝가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헝가리에는 맛이 아니라 관상용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는데, 이후 오스만 제국을 거쳐 식용 고추가 유입됩니다. 헝가리에서 고추를 "터키 후추"라고 부르는 게 가장 큰 증거죠. 그 후 덜 매운 고추를 선별해가는 과정을 거쳐 파프리카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파프리카는 1937년 얼베르트 센트죄르지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센트죄르지는 비타민 C를 연구하기 위해 이를 분리해내어야 했지만, 감귤류에서 분리하는 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답보상태에 이르렀다가, 우연히 저녁 식사로 올라온 파프리카를 실험한 결과로 다량의 비타민 C를 분리하는데 분리하여 성공하게 되죠. 수많은 국경과 시대를 넘어 대단한 결과를 가져온 멋진 이야기입니다.

이후 노예제 때문에 아프리카로 전해지는 과정, 대항해 시대를 거쳐 인도로 전해지는 등 세계화되는 과정 모두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한, 중, 일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로의 전래도 상세하고요.
여기서 몇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매운 요리로 유명한 사천 지방에서도 고추를 이용한 건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라는 점, 한국에서도 18세기나 되어서야 김치에 고추를 사용한다는 기술이 등장한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고추는 중국에서 전래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전래하였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또 일본에서 왜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고추를 많이 먹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고기 요리를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많이 먹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 아주 그럴듯했거든요. 또 빨간색과 매운맛을 통한 일종의 '벽사 신앙'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이렇게 고추의 역사와 그 전파 과정, 그리고 나라별 특징 등을 모두 아우르는 고추의 집대성 같은 책입니다. 재배화 과정에 대한 내용은 조금 지루하고, 나라별 전파 과정과 레시피를 보다 상세하게 실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재미와 가치 모두 높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고추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당장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7/12/03

대포와 스탬프 03, 04권 - 하야미 라센진 : 별점 2.5점

[고화질] 대포와 스탬프 03권 - 6점
하야미 라센진 지음/미우(대원씨아이)

[고화질] 대포와 스탬프 04권 - 6점
하야미 라센진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출간된 지 제법 되었지만 리뷰가 늦었네요. 대포와 스탬프 제3, 4권입니다. 전자책으로 구입하여 읽었습니다.

이번 권들에는 단편 에피소드도 있지만, 전작에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 비중이 더 큽니다. 특히 헌병대 이중스파이 시난 중위를 핵심으로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가려는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엿보이더군요. 물론 짤막하게 소모될 캐릭터는 아니라 생각했지만, 가면 갈수록 그 스케일이 정말로 커져서 (마약밀매 조직의 운영이라던가, 비행선 테러 등)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문제는 덕분에 밀리터리 물로서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점이겠죠. 특히 공화국, 공국에 걸쳐 있는 범죄 조직을 다룬 에피소드는 군대 이야기하고는 별 상관없었으니까요. 이는 사라진 보고서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는 4권 마지막 에피소드도 마찬가지고요.

또 그림체와 어울리지 않는 잔혹함, 성적인 묘사도 작품과 어울린다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형무소 내 세력 다툼과 그에 따른 희생, 잔혹한 현실을 그린 아네티카 주인공의 번외편 <<북극 번외지>> 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작화로 다루기에는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았어요.

물론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전편부터 이어지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 - 장갑 열차 부대의 재등장이라던가, 대령이 나름 SF 작가로서 확고부동한 위치가 있다던가 등 - 은 즐거웠으며 캐릭터들을 꼼꼼하게 만드는 캐릭터 관련 에피소드도 나쁘지 않았어요. 보이코 상사의 부인 등장이나 마르티나 중위의 고향과 가족 이야기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림체하고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아네티카 병장이 과거 형무소에 있었던 죄수였다는 과거도 이야기만큼은 마음에 들었고요. 작화와 어울리는 귀엽고 유쾌한 이야기도 없지는 않아요.

또 비중은 작아졌지만 특유의 집요한 밀리터리 관련 설정도 여전히 즐길 거리임에는 분명합니다. 구소련군이 모티브인 독특함에 더해진 묘사는 그야말로 최고 수준이니까요.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있었음 직한' 메카닉들도 마찬가지로 반가웠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며 별점은 2.5점. 저는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팬이 아니라면 조금 애매할 수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전자책으로는 2페이지 양 쪽을 사용하여 에피소드별 주력 등장 메카닉을 소개하는 부분 편집이 영 괴상하더군요. 이왕지사 전자책으로 출간했다면 이런 부분에 대한 세세한 수정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미카미 엔, 구라타 히데유키 / 남궁가윤 : 별점 2.5점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6점
미카미 엔.구라타 히데유키 지음, 남궁가윤 옮김/북스피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의 작가 미카미 엔과 <>의 작가 쿠라타 히데유키가 여러가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담집. 얼마 전에도 읽었던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프로젝트의 한권이기도 합니다.
정말 자연스럽게 일상생활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대담이 인상적으로, 술집에서 옆자리에 두 남자가 주고받는 대화를 귀 기울여 들었더니 꽤 재미있더라 하는 책 뒤 소갯글 그대로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구라타 스스로도 북 가이드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거든요.
이런 책까지 출간되는 일본 출판 시장은 부럽네요. 우리나라 같으면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 정도로 소모되고 끝날 내용으로, 좋게 말하자면 읽기 쉽고 나름 재미도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그닥 깊이가 있거나 진지한 내용은 아니고요.

그래도 워낙 독서광 작가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터라 독서광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서에 있어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되는 저로서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순서대로 한 번 살펴볼까요?

우선 모던 호러가 주제인 수다에는 스티븐 킹, 딘 쿤츠, 클라이브 바커 등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용은 딱히 새롭지 않아요. 모던 호러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 누구나 이야기할만한 내용이었거든요.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롱워크를 극찬하는 등 저와 취향이 다른 탓도 크고요.
하지만 잭 케첨 소개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웃집 소녀>>라는 작품은 구라타 히데유키 말에 따르면 산 그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오늘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을 정도라니 꼭 읽어 보고 싶네요. 마침 국내에 유일하게 소개되어 있기도 하니까요. 그 외에도 소니빈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데뷔작 <<비수기>> 와 후일담 <<더 우먼>>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 두 작품은 아쉽게도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와 에도가와 란포, 야마다 후타로를 소개하는 챕터는 더 뻔합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거든요. 딱 한가지, 일본 초등학생이 읽기 힘들어했다는 토로는 색달랐지만요. 구라타가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인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번역을 잘 한건지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역사와 과거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냥 일본 초등학생보다는 제가 이해력이 좋기 때문인걸까요?
그래도 좋아한다고 언급하는 작품들이 대체로 저 역시 좋아하는 작품들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백일홍 나무 아래>> 만 빼고 말이죠. 그 외 작품으로는 읽어본 적 없는 식인 테마 작품인 <<어둠에 꿈틀거리다>>가 궁금했습니다. 국내 출간되었는지 찾아봐야겠군요.
그런데 갑자기 야마다 후타로와 <<마계전생>> 이야기로 넘어가는건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야마다 후타로의 대표작이라는 <<인법첩>> 시리즈도 영화, 만화로 접한게 전부라 딱히 수다에 공감하거나 이해할 내용도 별로 없었고 말이죠.

영화화된 작품 원작에 대한 수다는 가도카와 하루키가 이끌던 가도카와 문고와 영화 전성 시대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작가 시점에서 아카가와 지로를 나름 극찬하는 - 쉽게 대사를 쓴, 일종의 라이트 노벨 선구자라는 등 - 정도만 눈에 뜨일 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듯한 아카가와 지로가 쓴 크리쳐 호러 소설 <<밤>>이 그나마 궁금하지만, 최고 걸작이라는 <<마리오네트의 덫>> 수준을 미루어 본다면 구태여 읽어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좌절본은 읽다가 포기하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아예 그 생각이 없었던 작품들에 대해 수다를 떠는 챕터로 보통은 어려운 책 - 커트 보니컷의 <<제 5 도살장>>이나 케플러의 <<우주의 신비>> 등 - 이거나 너무 길어 포기한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100권이 넘는 <<구인사가>>, 미완으로 끝났다는 일본의 시대소설 <<대보살고개>> 등이 그러한데...
<<제 5 도살장>> 이 어렵다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고 <<삼국지>> 나 <<삼총사>> 같이 재미도 있고, 읽기도 쉬운 작품이 좌절본에 포함되어 있는 등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르더군요. 미카미보다는 구라타 취향이 특히 그런데, 뭐 이런 것이야 말로 개인 취향이겠죠?
허나 오래전 작품이라 요새 취향과 맞지 않기 때문에 읽기 힘들다는 이유로 <<반지의 제왕>> 은 좌절본이다!라는 의견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런 류의 독서광들 수다라면 빼 놓을 수 없는 진귀한 책, 기이한 책이 이야기도 물론 들어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희귀 도서들보다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책들 소개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아와사카 쓰마오의 <<산 자와 죽은 자 - 명탐정 요기 간지의 투시술>> 이 대표적입니다. 모든 페이지가 16 페이지 단위로 봉해져 있어서 그대로 읽으면 25페이지 짜리 단편이지만 다 읽고 봉한걸 풀면 새로운 장편 소설이 된다는 책으로 여러모로 신기했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소개되다 만 게모노기 야세이의 만화 <> 소개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려 30년간 이어진 연재의 설정을 초기에 확립하여 그대로 끌고가다니! 미카미 엔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국내에는 절판되어 말 그대로 진귀한 책이 되어버렸는데 어떻게 다시 구해보고 싶어 지네요.

또 추억 속에 깊게 남은 인상적이었던 책도 소개합니다. 구라타를 독서가로 이끈 책은 <<투명인간>>, <<우주전쟁>> 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SF에 빠졌다가 미스터리로 관심이 이동한다는 전형적인 장르 애호가 루트를 밟았더군요.그 리고 또 다른 추억의 책은 폴란드 아동문학인 <<크레크스 선생님의 학교>>를 들고 있으며 미카미 엔은 <<마더 구스>>, 히노 히데시의 만화 <<죠로쿠의 기묘한 병>>를 이야기하는데 이 책들은 국내 소개되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미카미 엔이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집 <에렌디라> 속 수록작인 <단순한 에렌디라 와 무정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 정도만 국내 출간되었을 뿐입니다. 마르케스 작품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는데 일정한 틀의 캐릭터에서 빠져나온 뭔가를 소설에서 배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미카미의 말이 마음에 들기에 한 번 구해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만화 이야기도 하는데, <<블랙잭>> 이야기에서는 확실히 두 사람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더군요. 미카미 엔이야 블랙잭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한 편에 소개되었으니 그렇다 쳐도 그에 뒤지지 않는 구라타가 참 대단했습니다.
후지코 후지오 이야기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 더 반가왔습니다. 도 아마 <<비블리아 고서당>> 에서 소개되었었죠? 개인적으로는 <<만화의 길>> 에서 접했기에 더욱 반가왔고요. 어차피 지금은 복간되어 구하기 그리 어렵지 않긴 하죠. <<모쟈코>>와 <<에스퍼 마미>>는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언급되는게 기뻤습니다. 또 <<유혈귀>> 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의 내용을 상당히 길게 언급하는데 결말이 뭔지 궁금해 미칠 지경으로 만들어서 구해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흡혈귀는 신인류고, 구인류는 선량한 신인류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유혈귀로 결국 주인공도 신인류?가 되어 즐겁게 살아간다는,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굉장히 시대를 앞서간 호러물이더군요. <<만화의 길>> 에서는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아카츠카 후지오 등 다른 거장들보다 못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누가뭐래도 후지코 후지오 역시 뒤지지 않는 천재임에는 분명해요.
무엇보다도 소설가로 계속 활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처음 안 사실은 계속 하는게 정말 어렵다는 점이라는군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쌓아두었던 것을 토해내면 첫 번째 책은 어떻게든 모양은 갖출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뒤로 세 번째, 네 번째 때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만이 프로로서 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인데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전해줍니다. 데뷰작이 가장 좋은 작가들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겠죠.

그리고 책을 사랑해서 벌어진 에피소드들은 주로 재미있은 책을 읽었을 때의 경험들에 대한 수다입니다. 미카미 엔이 코니 윌리스의 <<항로>> 라는 소설을 읽을 때, 절묘한 부분에서 상권이 끝났지만 한밤중이라 문을 연 서점이 없었다는 이야기같이 말이죠. 저도 이런 경험이 몇번 있죠. <<용오>>의 복제 예수 에피소드 다음 권을 사기 위해 업무 중 홍대 앞 한양 문고로 뛰어갔던 적도 있고, <<불멸의 용병>> 이라는 해적판으로 접한 <<베르세르크>> 의 그리피스 편 다음을 읽기 위해 한 밤중에 도서대여점을 돌아다닌 적도 있으니까요.
페이지를 접거나 메모하는 행동에 대한 대화도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같아 좋았습니다. 저는 둘 다 안합니다만.
책 때문에 담배를 끊고 심지어 하루에 라면 한개로 버틴다는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심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라고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베스트셀러는 왠지 꺼린다는 미카미와 구라타의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좀 청개구리과라서, 인기가 있다고 하면 그냥 좀 싫거든요.

이렇게 다양한 책에 대한 수다가 장황하게 펼쳐지는데, 공감가는 이야기도 있고 동의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그래도 재미만 놓고보면 나쁘지는 않았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러나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리뷰에서 적었듯이, 수다 중 언급되는 작품들 중 국내 출간된 작품 정도는 조사하여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하루도 안 걸렸을 것 같은데, 이 정도 수고도 하지 않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네요.

2017/12/01

관계의 조각들 - 마리옹 파욜 / 이세진 : 별점 2점

관계의 조각들 - 4점
마리옹 파욜 지음, 이세진 옮김/북스토리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그림이 좋아서 읽게 되었는데 묘사나 풍자, 담고있는 사상들 모두 은근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요즘 작품같지가 않더군요.예를 들면 <<고독>>이라는 작품이 그러합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앞에 두고 한참 식사를 하다가 그 남자를 말아버립니다. 그 남자는 그림이었던거죠. 그리고 여자는 홀로 고독에 잠긴다는 내용입니다. 반전이 아주 놀랍지도 않고, 드라마도 별건 없습니다. 풍자로서도 평범하고요. 그래도 그림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아주 잘 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이 여자가 다시 등장해서 그림 고양이를 꺼내어 잠깐의 평화를 얻는다는 후일담도 과하지 않고 적당한 수준이었고요.
그 외에도 남자는 초, 여자는 남자에게 불을 당긴다. 남자는 여자때문에 녹아버리고, 여자는 그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는 그럴듯한 이야기인 <<불을 당기는 여자>> 라던가, 여자들에게 사랑받지만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남자를 여자들이 부숴버리고 조각들을 나눠 갖는다는 <<미남자>> 등이 기억에 남네요.

그러나 굉장히 평범하거나 지나치게 소박한 이야기의 비중이 더 많아서 아쉬웠습니다. <<식육 식물>>이 대표적이에요. 아이를 키우다가 너무나 커져버린 아이에게 부모가 죽거나 잡아 먹힌다는 이야기인데 풍자로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내용도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어요. 그 외 프랑스 감수성 탓인지 이해 못할 작품도 많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이야기 보다는 빼어난 그림을 보는 맛이 더 좋았습니다. 그림책으로서는 괜찮은 미덕이지만 두 번 보게 될 것 같지는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