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로드 - 야마모토 노리오 지음, 최용우 옮김/사계절 |
고추의 발상지가 어디인지에서부터 고추가 전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을 그린 음식사, 문화사, 미시사 서적.
농학 박사이자 민족, 민속학자로 화려한 이력을 지닌 저자가 직접 발로 뛰고 조사한 정보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용이 굉장히 충실하고 신뢰가 갑니다. 고추가 자생종에서 처음 재배종으로 바뀌게 된 남미에서의 이야기가 대표적이에요. 저자의 젊은 시절 박사 논문을 읽기 쉽도록 재구성했다고 하는데, 수록된 사진과 분포도 등의 도판만으로도 박사 학위는 충분히 딸만 하다 생각될 정도입니다.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많습니다. 고추가 매운맛을 지니게 된 이유는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새는 고추를 좋아한다고 하네요. 씨앗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선택적으로 진화되었기 때문이라는군요.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고추는 중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 식물로 기원전 8,000~9,000년 경부터 이용되기 시작하여 수천 년에 걸쳐 재배화되었습니다. 이후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하여 후추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16세기 중반 무렵에는 스페인 곳곳에서도 재배가 시작되죠. 매운맛은 이런저런 편견을 불러일으켜 유럽 전역으로 퍼지지는 못했지만, 이탈리아 등에서는 널리 퍼지게 됩니다. 흔히 들어본 "페페론치노"가 바로 고추라는 뜻이죠.
또 고추의 하나인 파프리카는 헝가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헝가리에는 맛이 아니라 관상용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는데, 이후 오스만 제국을 거쳐 식용 고추가 유입됩니다. 헝가리에서 고추를 "터키 후추"라고 부르는 게 가장 큰 증거죠. 그 후 덜 매운 고추를 선별해가는 과정을 거쳐 파프리카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파프리카는 1937년 얼베르트 센트죄르지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센트죄르지는 비타민 C를 연구하기 위해 이를 분리해내어야 했지만, 감귤류에서 분리하는 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답보상태에 이르렀다가, 우연히 저녁 식사로 올라온 파프리카를 실험한 결과로 다량의 비타민 C를 분리하는데 분리하여 성공하게 되죠. 수많은 국경과 시대를 넘어 대단한 결과를 가져온 멋진 이야기입니다.
이후 노예제 때문에 아프리카로 전해지는 과정, 대항해 시대를 거쳐 인도로 전해지는 등 세계화되는 과정 모두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한, 중, 일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로의 전래도 상세하고요.
여기서 몇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매운 요리로 유명한 사천 지방에서도 고추를 이용한 건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라는 점, 한국에서도 18세기나 되어서야 김치에 고추를 사용한다는 기술이 등장한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고추는 중국에서 전래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전래하였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또 일본에서 왜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고추를 많이 먹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고기 요리를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많이 먹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 아주 그럴듯했거든요. 또 빨간색과 매운맛을 통한 일종의 '벽사 신앙'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이렇게 고추의 역사와 그 전파 과정, 그리고 나라별 특징 등을 모두 아우르는 고추의 집대성 같은 책입니다. 재배화 과정에 대한 내용은 조금 지루하고, 나라별 전파 과정과 레시피를 보다 상세하게 실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재미와 가치 모두 높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고추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당장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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