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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미카미 엔, 구라타 히데유키 / 남궁가윤 : 별점 2.5점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6점
미카미 엔.구라타 히데유키 지음, 남궁가윤 옮김/북스피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의 작가 미카미 엔과 <>의 작가 쿠라타 히데유키가 여러가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담집. 얼마 전에도 읽었던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프로젝트의 한권이기도 합니다.
정말 자연스럽게 일상생활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대담이 인상적으로, 술집에서 옆자리에 두 남자가 주고받는 대화를 귀 기울여 들었더니 꽤 재미있더라 하는 책 뒤 소갯글 그대로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구라타 스스로도 북 가이드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거든요.
이런 책까지 출간되는 일본 출판 시장은 부럽네요. 우리나라 같으면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 정도로 소모되고 끝날 내용으로, 좋게 말하자면 읽기 쉽고 나름 재미도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그닥 깊이가 있거나 진지한 내용은 아니고요.

그래도 워낙 독서광 작가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터라 독서광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서에 있어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되는 저로서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순서대로 한 번 살펴볼까요?

우선 모던 호러가 주제인 수다에는 스티븐 킹, 딘 쿤츠, 클라이브 바커 등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용은 딱히 새롭지 않아요. 모던 호러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 누구나 이야기할만한 내용이었거든요.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롱워크를 극찬하는 등 저와 취향이 다른 탓도 크고요.
하지만 잭 케첨 소개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웃집 소녀>>라는 작품은 구라타 히데유키 말에 따르면 산 그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오늘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을 정도라니 꼭 읽어 보고 싶네요. 마침 국내에 유일하게 소개되어 있기도 하니까요. 그 외에도 소니빈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데뷔작 <<비수기>> 와 후일담 <<더 우먼>>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 두 작품은 아쉽게도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와 에도가와 란포, 야마다 후타로를 소개하는 챕터는 더 뻔합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거든요. 딱 한가지, 일본 초등학생이 읽기 힘들어했다는 토로는 색달랐지만요. 구라타가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인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번역을 잘 한건지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역사와 과거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냥 일본 초등학생보다는 제가 이해력이 좋기 때문인걸까요?
그래도 좋아한다고 언급하는 작품들이 대체로 저 역시 좋아하는 작품들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백일홍 나무 아래>> 만 빼고 말이죠. 그 외 작품으로는 읽어본 적 없는 식인 테마 작품인 <<어둠에 꿈틀거리다>>가 궁금했습니다. 국내 출간되었는지 찾아봐야겠군요.
그런데 갑자기 야마다 후타로와 <<마계전생>> 이야기로 넘어가는건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야마다 후타로의 대표작이라는 <<인법첩>> 시리즈도 영화, 만화로 접한게 전부라 딱히 수다에 공감하거나 이해할 내용도 별로 없었고 말이죠.

영화화된 작품 원작에 대한 수다는 가도카와 하루키가 이끌던 가도카와 문고와 영화 전성 시대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작가 시점에서 아카가와 지로를 나름 극찬하는 - 쉽게 대사를 쓴, 일종의 라이트 노벨 선구자라는 등 - 정도만 눈에 뜨일 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듯한 아카가와 지로가 쓴 크리쳐 호러 소설 <<밤>>이 그나마 궁금하지만, 최고 걸작이라는 <<마리오네트의 덫>> 수준을 미루어 본다면 구태여 읽어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좌절본은 읽다가 포기하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아예 그 생각이 없었던 작품들에 대해 수다를 떠는 챕터로 보통은 어려운 책 - 커트 보니컷의 <<제 5 도살장>>이나 케플러의 <<우주의 신비>> 등 - 이거나 너무 길어 포기한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100권이 넘는 <<구인사가>>, 미완으로 끝났다는 일본의 시대소설 <<대보살고개>> 등이 그러한데...
<<제 5 도살장>> 이 어렵다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고 <<삼국지>> 나 <<삼총사>> 같이 재미도 있고, 읽기도 쉬운 작품이 좌절본에 포함되어 있는 등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르더군요. 미카미보다는 구라타 취향이 특히 그런데, 뭐 이런 것이야 말로 개인 취향이겠죠?
허나 오래전 작품이라 요새 취향과 맞지 않기 때문에 읽기 힘들다는 이유로 <<반지의 제왕>> 은 좌절본이다!라는 의견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런 류의 독서광들 수다라면 빼 놓을 수 없는 진귀한 책, 기이한 책이 이야기도 물론 들어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희귀 도서들보다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책들 소개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아와사카 쓰마오의 <<산 자와 죽은 자 - 명탐정 요기 간지의 투시술>> 이 대표적입니다. 모든 페이지가 16 페이지 단위로 봉해져 있어서 그대로 읽으면 25페이지 짜리 단편이지만 다 읽고 봉한걸 풀면 새로운 장편 소설이 된다는 책으로 여러모로 신기했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소개되다 만 게모노기 야세이의 만화 <> 소개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려 30년간 이어진 연재의 설정을 초기에 확립하여 그대로 끌고가다니! 미카미 엔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국내에는 절판되어 말 그대로 진귀한 책이 되어버렸는데 어떻게 다시 구해보고 싶어 지네요.

또 추억 속에 깊게 남은 인상적이었던 책도 소개합니다. 구라타를 독서가로 이끈 책은 <<투명인간>>, <<우주전쟁>> 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SF에 빠졌다가 미스터리로 관심이 이동한다는 전형적인 장르 애호가 루트를 밟았더군요.그 리고 또 다른 추억의 책은 폴란드 아동문학인 <<크레크스 선생님의 학교>>를 들고 있으며 미카미 엔은 <<마더 구스>>, 히노 히데시의 만화 <<죠로쿠의 기묘한 병>>를 이야기하는데 이 책들은 국내 소개되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미카미 엔이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집 <에렌디라> 속 수록작인 <단순한 에렌디라 와 무정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 정도만 국내 출간되었을 뿐입니다. 마르케스 작품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는데 일정한 틀의 캐릭터에서 빠져나온 뭔가를 소설에서 배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미카미의 말이 마음에 들기에 한 번 구해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만화 이야기도 하는데, <<블랙잭>> 이야기에서는 확실히 두 사람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더군요. 미카미 엔이야 블랙잭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한 편에 소개되었으니 그렇다 쳐도 그에 뒤지지 않는 구라타가 참 대단했습니다.
후지코 후지오 이야기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 더 반가왔습니다. 도 아마 <<비블리아 고서당>> 에서 소개되었었죠? 개인적으로는 <<만화의 길>> 에서 접했기에 더욱 반가왔고요. 어차피 지금은 복간되어 구하기 그리 어렵지 않긴 하죠. <<모쟈코>>와 <<에스퍼 마미>>는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언급되는게 기뻤습니다. 또 <<유혈귀>> 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의 내용을 상당히 길게 언급하는데 결말이 뭔지 궁금해 미칠 지경으로 만들어서 구해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흡혈귀는 신인류고, 구인류는 선량한 신인류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유혈귀로 결국 주인공도 신인류?가 되어 즐겁게 살아간다는,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굉장히 시대를 앞서간 호러물이더군요. <<만화의 길>> 에서는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아카츠카 후지오 등 다른 거장들보다 못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누가뭐래도 후지코 후지오 역시 뒤지지 않는 천재임에는 분명해요.
무엇보다도 소설가로 계속 활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처음 안 사실은 계속 하는게 정말 어렵다는 점이라는군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쌓아두었던 것을 토해내면 첫 번째 책은 어떻게든 모양은 갖출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뒤로 세 번째, 네 번째 때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만이 프로로서 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인데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전해줍니다. 데뷰작이 가장 좋은 작가들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겠죠.

그리고 책을 사랑해서 벌어진 에피소드들은 주로 재미있은 책을 읽었을 때의 경험들에 대한 수다입니다. 미카미 엔이 코니 윌리스의 <<항로>> 라는 소설을 읽을 때, 절묘한 부분에서 상권이 끝났지만 한밤중이라 문을 연 서점이 없었다는 이야기같이 말이죠. 저도 이런 경험이 몇번 있죠. <<용오>>의 복제 예수 에피소드 다음 권을 사기 위해 업무 중 홍대 앞 한양 문고로 뛰어갔던 적도 있고, <<불멸의 용병>> 이라는 해적판으로 접한 <<베르세르크>> 의 그리피스 편 다음을 읽기 위해 한 밤중에 도서대여점을 돌아다닌 적도 있으니까요.
페이지를 접거나 메모하는 행동에 대한 대화도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같아 좋았습니다. 저는 둘 다 안합니다만.
책 때문에 담배를 끊고 심지어 하루에 라면 한개로 버틴다는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심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라고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베스트셀러는 왠지 꺼린다는 미카미와 구라타의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좀 청개구리과라서, 인기가 있다고 하면 그냥 좀 싫거든요.

이렇게 다양한 책에 대한 수다가 장황하게 펼쳐지는데, 공감가는 이야기도 있고 동의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그래도 재미만 놓고보면 나쁘지는 않았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러나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리뷰에서 적었듯이, 수다 중 언급되는 작품들 중 국내 출간된 작품 정도는 조사하여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하루도 안 걸렸을 것 같은데, 이 정도 수고도 하지 않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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