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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8

회귀천 정사 - 렌조 미키히코 / 정미영 : 별점 3점

 

회귀천 정사 - 6점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시공사

꽃을 소재로 한 5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중단편집입니다.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커뮤니티인 하우미스터리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네요. 리뷰에 앞서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 드립니다.

이 작품집의 대표작이자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회귀천정사>는 이전 <빨간 고양이>라는 좋은 앤솔러지에서 이미 접하긴 했지만 전체 연작 시리즈를 한권으로 만나니 재미가 더욱 색달랐으며 무엇보다도 굉장히 시적인 묘사가 가득한 작품들로 미려한 묘사들만으로도 본전생각은 나지 않을 것 같더군요. 순문학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고급 문학으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었거든요. 또한 잔잔한 전개 속에서 놀라운 진상을 밝히는 구조라서 반전의 묘미가 잘 살아있는 것이 추리애호가로서도 충분히 즐길만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걸작 회귀천정사의 포맷을 따라한 느낌이 강한 것이 조금 아쉽긴 합니다. 사건의 진상은 대부분 화자의 단독 추리로 밝혀진다는 점이 특히 그러한데 이러한 포맷은 결국 진상자체가 화자의 상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여지가 좀 크기 때문이죠. 또 단서들도 미려한 묘사와 전개 속에 뿌려놓아서 알아채기 힘들고 그다지 공정하다는 느낌을받기 어려웠다는 것도 추리소설로는 감점요소겠죠.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앞서말한 '추리소설' 쪽에서의 감점요인이 큰데 순문학적인 정취와 뛰어난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는 하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서정적이면서도 잔잔한 느낌의 추리물을 원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등나무 향기>
'나'는 첩 오누이와 함께 조야자카 거리에서 조용히 살고 있던 중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에 휩쓸리게 되며 결국 그 진상을 알아채게 된다.
'대필가'라는 존재와 함께 숨겨진 진상을 드러내는 결말은 인상적이었습니다만 '등나무 꽃'이라는 소재를 가져다가 연작에 포함시킨 것은 억지가 아니었나 싶더군요. 작품과는 별 상관이 없거든요. 그래도 조용하고 잔잔하면서도 설득력있는 반전이 있기에 평작 이상은 되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도라지꽃 피는 집>
건달 잇센마쓰 살인사건을 수사하게 된 '나'는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는 유곽의 소녀 스즈에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 뒤 유력한 용의자 후쿠무라마저 잇센마쓰와 같은 모습으로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스즈에라는 어린 소녀를 통해 전해지는 슬프고 서정적인 분위기도 좋지만 주인공의 파트너였던 히시다 형사의 편지로 밝혀지는 진상이 충격적이면서도 가슴을 저미는 작품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파 멜로물 분위기지만 유치하지 않게 전개한 작가의 솜씨가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으로 별점은 4점. 이 작품 하나만큼은 일독을 권합니다.

<오동나무 관>
야쿠자 누키타의 직속 부하로 일하게 된 '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형님의 부탁으로 고민에 빠진다. 이어서 기이한 사건들이 벌어지게 되는데...
약간 긴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 지루하기도 하지만 진상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져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더군요. 누키타의 행동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말이죠. 뭔가 비뚤어진 애증 관계를 다루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사건의 본질과는 너무 거리가 있었던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건을 모두 마무리하고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결말은 마음에 들었으나 그것만으로는 좀 약해요. 별점은 2점입니다.

<흰 연꽃 사찰>
저주받았다는 어머니 때문에 도쿄로 올라와 살게 된 '나'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충격적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게 되는데...
요코미조 세이시 풍의 설정을 작가 특유의 스타일로 변주한 듯한 느낌으로 분위기는 상당했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강해서 아쉬웠던 작품입니다. 어머니가 벌인 사건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도 약점이고요. 작위적인 설정을 쌓아올린 덕에 반전은 놀랍지만 덕분에 정교한 맛도 떨어져서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못했습니다. 평작 수준이었달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회귀천정사>
<빨간 고양이>의 <돌아오지 않는 강의 정사> 리뷰 참고하세요. 순문학과 추리가 어우러진 걸작. 새로운 번역으로 읽으니 느낌도 새로왔어요. 추리적으로 완성된 작품은 아니라는 단점 때문에 약간 감점해서 별점은 4점입니다만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런 작품을 한편 쓸 수 있다면 정말 더 바랄게 없을텐데...

2011/03/25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 / 김진준 : 별점 2.5점

 

유혹하는 글쓰기 - 6점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김영사

이른바 '제왕' 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작가 스티븐 킹의 작법서... 를 가장한 에세이집입니다.

책은 크게 3개 부분, 스티븐 킹의 출생과 유년시절, 학교생활, 찢어지게 가난했던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거쳐 '캐리'로 대박을 내고 이후 알콜 - 마약 중독을 치료하게 될 때까지의 파란만장한 반평생을 다룬 첫번째 부분, 정말 소설 작법에 관한 두번째 부분, 그리고 생명이 왔다갔다한 대형 교통사고와 그 이후의 삶을 다룬 짤막한 세번째 부분으로 나뉩니다.

사실 좀 쉽고 재미난 작법교육서라 생각하고 구입했는데 스티븐 킹의 반평생이 먼저 등장해서 좀 의아하긴 했지만 가장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뭔가 좀 고생도 많이하고 어려웠던 것 같은데 입담꾼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싶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유머가 깔려 있다는 점이 말이죠. 또 킹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공장과 세탁소에 대한 묘사는 그의 작품 몇몇에서 유사한 분위기를 느꼈던 것이 떠올라 킥킥거리며 읽게 되더군요. 이시카와 쥰 (<만화의 시간>)이 말한 그대로죠.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고 자기만의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크리에이터에게 굉장히 큰 무기라는건 확실한거 같습니다.

두번째 부분인 작법론에 대한 부분은 주요한 부분은 다른 작법서와 유사하긴 하나 (부사는 되도록 쳐내고 최대한 간결하게 등) 그만의 유머로 포장되어 있어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연장통"이라는 비유도 좋았고요.
또 딱딱한 작법서에 비하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확실한 예를 들어 설명해 준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이러한 예들이 대부분 그의 작품이라는 것과 중요한 부분까지만 알려주고 끊어버림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뒷부분을 궁금케 한다는 점은 역시나 베스트셀러 작가는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다작 작가로서의 실제적인 조언, 즉 영감을 얻는다는 과정이나 글을 써 내려가는 방법, 초고를 고치고 출판에 이르는 과정까지를 설명해 주는 것도 재미도 있고 얻어가는 것도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였고 말이죠.

그러나 세번째 부분은 제일 짧기도 하지만 별반 내용이 없었습니다. 교통사고와 재활과정, 그리고 이 책을 완성하게 되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인데 그래서 뭘 어쩌나 싶었거든요. 큰 교통사고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드라마틱하기는 하지만 별로 와닿는 부분이 없었어요. 작법론을 좀 더 펼쳐주는 것이 좋았을텐데, 잘 나가다가 왠지 삼천포로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재미와 실용을 겸비하긴 했는데 약간 애매한 부분이 있는건 사실이에요. 실제적인 도움이 얼마나 될 지도 잘 모르겠고요. 하지만 향후 제가 쓴 소설을 퇴고하게 된다면 스티븐 킹의 방법, 즉 10% 까지는 단어를 무조건 줄여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의 말대로 상징이나 주제를 선명하게 가다듬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그런데 스티븐 킹이나 다른 작가들처럼 기본적인 설정을 떠올리고 앞부분을 쓴다면 그 다음에는 주인공들이 알아서 진행한다는게 정말 말이 되나요? 정말로 이런 방식으로 작품을 쓸 수 있다면 좋을텐데...

2011/03/21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 우타노 쇼고 / 현정수 : 별점 2.5점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 6점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문학동네

<주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너무 바빠서 집에 오면 씻고 자기도 바쁜 요즈음입니다. 출퇴근 틈틈이 책은 몇권 읽었지만 리뷰 올릴 시간도 없네요. 주말내내 출근해서 야근하다가 간만에 집에 일찍 온 기념으로 올립니다. 생존신고도 겸해서 말이죠. (저 살아 있습니다~!)

이 책은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로 깊은 인상을 남긴 우타노 쇼고의 중편집으로 제가 읽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는 <시체를 사는 남자> 가 있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두편보다 별로였습니다. 앞선 두편은 나름의 아이디어 - 서술트릭을 이용한 기발한 반전 / 액자소설의 구성을 깬 독특한 전개 - 가 워낙에 압도적인 편이라 다른 세세한 약점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 책에 실린 3편의 작품은 아이디어나 설정 등이 그에 미치지 못했으며 덕분에 단점이 상당히 도드라져 보였기 때문입니다.

작품별로 상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첫번째 실린 표제작이기도 한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일단 독특한 캐릭터와 그 캐릭터에서 빚어낸 이야기 자체는 무척 좋았습니다. 돈을 밝히는 속물로 자신이 해결한 사건을 책으로 펴냈다가 고소당한 뒤 빚에 허우적거리는 명탐정 가게우라가 자신이 해결한 사건을 경찰에게 허위로 알려주고 스스로 협박범으로 나선다는 이야기는 비열하고 치사하지만 왠지 더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이 캐릭터의 설정만 가지고도 여러 시리즈를 쓸 수도 있을만큼 매력적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야기 전체가 가게우라라는 캐릭터에 기댄 측면이 많고 트릭 역시 그닥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큽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준의 장치트릭을 경찰이 간과했으리라는 것은 무리죠. 명탐정의 규칙에도 나옸지만 이건 정말 설정에 불과해 보였어요.
조수가 명탐정으로 거듭나는 결말은 안이했을 뿐 아니라 독특한 설정을 작가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했습니다. 얼빠진 추리소설 오타쿠 조수를 내세우느니 명탐정이지만 협박범인 가게우라가 항상 불운하게 협박에도 실패한다는 코믹한 단편 시리즈로 계속 끌고갔더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요? 약간의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을 높여줄 정도는 아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두번째 작품은 종교단체 테러범 일당이 은신한 무인도에서의 연쇄살인극을 그린 <생존자, 1명> 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몰입도가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주인공 시점에서 그린 생존에 대한 긴박감이 정말로 처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고립된 장소에서의 사투라는 점에서 <크림슨의 미궁>이 연상되기도 했는데 긴박감 역시 전혀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어요. 또한 연쇄 살인 역시 비교적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하고 있기에 추리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고요.

그러나 결말이 작위적이라는 단점이 너무나도 확연합니다. 임신이라는 설정 역시도 그렇게 쉽게, 두명이나 이루어질리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억지스러웠고요. 최후의 1인이 누구였을까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 열린 결말구조 역시 경찰 수사와 감식을 너무 우습게 본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래저래 반전에 너무 집착한 티가 좀 난달까요? 그래도 읽는 재미는 충분했기에 별점은 2.5점 주겠습니다.

마지막 작품인 <관館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는 한마디로 추리애호가를 위한 동화입니다.
대학 동창인 후유키의 초대로 그의 저택인 '삼성관' 에 모이게 된 추리소설 연구회 친구들이 벌이는 추리게임을 다룬 작품인데 한때 빛나는 젊음을 공유했던 중년 추리애호가들의 활약은 읽으면서도 굉장히 즐겁고 부러웠습니다. 저 역시 추리애호가이기에 주인공 후유키의 꿈을 어느정도는 공감할 수 있었기에 더더욱 짠하게 읽은 것 같아요. 추리게임에 활용되는 트릭도 설정에 딱 맞으며 모든 부분에서 섬세하게 정보제공이 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핵심트릭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좀 아쉬웠습니다. 방향은 사람이 놓치기 쉽지 않은 감각인데 아무리 특징없는 원형의 응접실이라 해도 모든 사람들이 속아넘어간다는 것은 무리죠.

조금 길어지더라도 등장하는 인물들에 배경 설명도 자세하게 덧붙여주고 후유키와 그의 '관', 그리고 추리소설에 대한 사랑을 보강하는 것이 나았을 것 같지만 추리애호가를 위한 꿈같은 소품이기에 만족합니다. 개인적인 별점은 별점 2.5점. 이 책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그래서 총점은 7점 나누기 3해서 2.3점... 2.5점으로 하겠습니다.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빛나는 부분이 있는 것도 확실하니 작가의 팬이라면 한번 읽어보셔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2011/03/12

명탐정의 규칙 -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 별점 3점

 

명탐정의 규칙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1996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이른바 '본격', '정통'이라고 하는 작품들의 작위적인 설정을 비웃는 형식이죠. 덕분에 패러디 개그물 느낌도 납니다. <33분 탐정>이 연상되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 장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제대로 갖고 놀았달까요? 진부하고 뻔하기 까지 한 밀실, 고립된 산장, 다잉메시지, 시간표 트릭, 기발한 흉기와 같은 요소를 비롯하여 범인의 의외성이나 토막살인, 동요살인과 같은 플롯까지 주인공인 오가와라 반죠 경감과 명탐정 덴카이치의 입을 빌어 철저하게 조롱하고 있는데 통쾌한 것은 물론 비웃는 이유가 모두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에 대한 조롱은 물론 추리독자들을 향한 날선 비판 - 아무도 시간표나 저택 구조도를 들여다 보지도 않고 정해진 단서들로 추리하지 않으며 단지 감으로 범인을 때려 맞출 뿐이라는 이야기 - 역시 수긍이 갈 수 밖에 없었어요. 작가 스스로도 이 작품이후 발표한 작품들은 전형을 깬 작품들을 발표했다고 하니 본인 스스로에게 대한 반성도 묻어난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롱과 비판을 제대로 된 추리물 형식으로 녹여내었을 뿐 아니라 몇몇 이야기에서는 상당한 아이디어와 트릭이 펼쳐진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이 이 작품을 단순한 패러디 개그물에 그치지 않고 독특한 추리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다잉 메시지의 뜻이라던가 토막 살인과 목없는 시체 사건의 진상, 보이지 않는 흉기의 정체 같은 것은 재미도 있지만 하나의 트릭으로도 충분한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오가와라 반죠와 덴카이치 탐정이라는 캐릭터로 정통 본격물의 구조를 비트는 서술 트릭들도 괜찮았고요. 이렇게 추리적 트릭에 대한 비판과 정통 추리물의 조합했다는 점에서는 만화 <nervous Breakdown>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비판의 정도는 좀 다르지만.

에피소드별로 편차가 좀 있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즐길거리로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추리소설에 대해 어느정도 지식이 있어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어서 추천하기는 약간 애매하네요. 일반적인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팬들분에게도 마찬가지. 작풍이 너무 다르거든요. 열린 마음의 추리소설 애호가분들에게 추천합니다.

2011/03/08

스마트 TV 혁명 - 고찬수 : 별점 1점

스마트 TV 혁명 - 2점
고찬수 지음/21세기북스(북이십일)

지금 회사에서 스마트 TV업무를 하고 있기에 읽게 된 책.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의 점수는 1점입니다. 제가 보기에 새로운 내용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죠. 구글링을 통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내용들을 짜깁기해서 책 한권으로 만든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지 '현재'만 나열했을 뿐입니다. 정보들도 나열에 불과할 정도로 알맹이도 없어요. 저자의 생각이 약간 내포되어 있기는 하나 그 생각은 어느정도 이쪽 시장을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만한 것들이라는 것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게다가 스마트 혁명 어쩌구 하며 용비어천가식으로 스마트 TV에 대해 너무 좋게만 바라본 것 역시 감점요소였습니다. 지금은 스마트 TV라는 것의 실체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은데 말이죠.

기술용어 등 잘 몰랐던 약간의 단어들을 새롭게 알게된 것 이외의 가치는 제게 없었습니다. 책값도 더럽게 비싸요. 혹 이쪽 시장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이 있으시더라도 권해드리기 어렵네요. 차라리 검색으로 정보를 찾아보시는 쪽을 권해드립니다.

2011/03/06

그러고 보니 60만 Hit


50만 Hit

최근 몇년간 가장 바쁜 와중이라 제대로 블로그 관리나 포스팅을 못하고 있어서 60만 Hit가 지나간지도 몰랐네요. 몇백만, 천만 Hit를 가볍게 찍는 파워 블로거들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무척 기쁩니다. 주인장의 게으름, 추리소설이라는 비인기 장르에 집중된 블로그 속성에도 불구하고 자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 복받으세요~!

그나저나 블로깅이 점점 힘들어져서 이래서야 언제 목표로 한 추리소설 1,000권 리뷰를 완료할 수 있을지도 좀 암담합니다...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원은주 : 별점 3.5점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 8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원은주 옮김/시공사

귀금속 거래업자인 존 혼비는 자신이 금고에 넣어둔 다이아몬드 원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증거는 금고 바닥 메모지에 선명한 피 묻은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수사결과 그 지문의 임자가 혼비 씨의 조카 루벤의 것으로 밝혀지고 그는 곧바로 경찰에 체포된다. 손다이크 박사는 사건 의뢰를 받은 뒤 루벤의 무죄를 확신하고 친구 저비스, 충직한 하인이자 기술자 풀턴과 함께 독자적인 과학 수사 기법을 활용하여 그를 돕게 되는데...

1907년에 출간된 법의학의 선구자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첫 작품. 국내에는 동서에서 중단편집 <노래하는 백골>이 출간되어 있고 국일미디어의 <암호 미스터리 걸작선>에 단편 한편이 수록되어 있는 정도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캐릭터인데 이렇게 소개되니 무척 반갑네요.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지문' 에 대히 깊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범인이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단지 루벤 혼비의 누명을 벗기는데 작품의 촛점이 맞춰져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트릭' 자체에만 깊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특징은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인 오스틴 프리먼의 지론이 "독자는 범인이 누구냐보다는 수사 과정에 더 흥미를 느낀다" 였다니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그러나 무려 100년도 전에 나온 작품이니 만큼 대단한 추리가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핵심 트릭 자체가 많이 낡은 발상이니까요. 또 낡은 방식의 뻔한 전개 덕분에 독자는 범인이 누군지 쉽게 짐작하게 된다는 것도 단점이겠죠.
아울러 화자인 저비스 박사의 애정행각이 작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도 전통적인 추리 애호가에게는 와닿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저는 무척 재미있었습니다만)

하지만 범인이 쉽게 드러나고 트릭이 별볼일없다고 해서 이 작품이 추리소설적인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인들도 잘 모르는 '지문'에 대한 속성을 이미 이 시기에 작품으로 쓸 만큼 (그것도 재미있게!) 깊게 파고들었다는 점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합니다. 특히 법의학과 과학수사에 기초하여 트릭을 파헤친 손다이크 박사가 마지막에 벌이는 법정에서의 반전쇼는 여타의 법정 추리물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흥미진진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게다가 중간에 벌어지는 손다이크 박사 암살 음모에 대한 디테일 역시 대단합니다. 기묘한 총알에 대한 설명, 불시에 날아온 소포의 포장만 보고도 범죄를 예감하는 추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펼쳐지는데 그 아이디어가 100년전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이 높거든요. 중반에 잠깐 등장하는 역장에 대한 추리 역시 당대 셜록 홈즈의 라이벌다운 풍모가 느껴졌고요.

앞서 말한 일부 단점들, 지금 읽기에는 낡은 전개는 감점 요소지만 그래도 이 작품의 장점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며 출간 자체만으로도 기쁜 일이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저와 같은 고전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아주아주 이쁜 디자인, 판형이라는 점과 함께 충실한 번역 역시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동서판은 특유의 일본어 중역 덕분인지 손다이크 박사의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웠는데 이 작품에서는 과묵하지만 냉철한 지적인 미남자(!) (여기서 제일 놀랐어요. 왜인지 할아버지 이미지였거든요) 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니까요. 과거 불만이었던 <노래하는 백골>도 제대로 된 완역본으로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2011/03/05

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 - 츠하라 야스미 / 고주영 : 별점 1.5점

 

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 - 6점
츠하라 야스미 지음, 고주영 옮김/북홀릭(bookholic)

<주의!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이 별로라 읽으셔도 상관 없겠습니다만...>

츠하라 야스미의 루피너스 탐정 연작 단편집 2권.

전작이 비교적 긴 호흡의 중편들이라면 이번에는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캐릭터나 배경 설명이 대폭 삭제되었기 때문일텐데 덕분에 읽기도 편하고 한호흡으로 읽기에도 적당해서 1편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싶습니다.
첫 이야기의 시작이 졸업 후 10년 후 루피너스 탐정단 4인방의 한명인 쿄노 마야의 장례식이라는 파격적인 구성은 좀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만... 굳이 비교하자면 <명탐정 코난>이 갑자기 소노코의 장례식을 무대로 Season2가 시작되는 느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초반 내용도 졸업 이후 각자의 삶을 다루는 에필로그 느낌이 강했고 말이죠. 그래도 확실히 애들이 성장하니 전작에서 느꼈던 건방진 고딩들의 철없어 보이는 추리모험극 냄새가 덜해서 마음에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편의 문제점은 여전해서 추리적으로는 별로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더군요. 특히나 추리소설로서의 가치를 의심케 하는 것은 사건의 동기와 증거가 엄청나게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동기' 측면으로는 네번째 단편 <자비의 화원>을 예로 들고 싶네요. 꽤 오래 지속된 옅어지는 종교색에 대한 반감이 왜 갑자기 폭발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이야기의 설득력이 전무하거든요.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마리아상의 위치' 에 대한 기묘한 트릭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짜맞춘 느낌이었어요. 수녀의 과거사가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대관절 모르겠고요.
그리고 '증거' 측면으로는 세번째 단편 <첫밀실>이 대표적입니다. <첫밀실>의 경우 4년전에 벌어졌던 밀실 살인사건의 진상을 다루고 있는데 이미 모든 관계자가 사망한 상황에서,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이미 죄를 뒤집어쓰고 잠자코 있는 상황이기에 죄를 밝힌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단지 추리쇼만 펼쳐질 뿐이죠. 결국 추궁에 의한 범인의 자백을 이끌어내면서 그걸 녹음하고, 마지막에는 '비겁하다' 운운하여 범인의 자수를 강요하는 희한한 결말은 전대미문이라 할 정도로 어이가 없었어요. 그나마 등장하는 트릭도 황당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살인을 저지른 다음에 밀실을 그 위에 짜맞췄다니 작위적인것도 유분수지... 하여간 트릭도 별로고 내용도 별로니 완전 최악이었어요.

다행히 첫번째 단편 <백합나무 그늘>과 두번째 단편 <개는 환영하지 않아>가 일상계 느낌이 가득한 읽을만한 작품인 것이 위안거리이긴 다행이긴 합니다.
물론 <백합나무 그늘>은 팬서비적인 에필로그 형식의 후일담과 일상계적인 느낌 이외에 별로 건질건 없어요. 어렸을 적 약속을 성인이 될 때까지 유지한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고 마야의 행동도 납득하기 어려워 평작 이상도 안되긴 하죠.
그러나 <개는 환영하지 않아>는 아주 좋았어요. 사건의 기이한 동기를 비교적 충실하게 앞부분부터 설명해 주고 있는 점과 단서를 공정히 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만 하거든요. 시지마와 아오우를 초대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사건이 벌어진 이유 역시 나름 설득력 있고 말이죠. 합리적이고 기발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 하나만큼은 별점 3점은 충분해 보입니다.

하지만 단 한 작품만으로는 역부족. 앞서 말했듯 추리소설로 치기에는 추리적으로 문제가 많아서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드네요. 덧붙여 번역 문제를 꼭 지적하고 싶습니다. 전작에서도 '주인 住人' 이라던가 '중정 中庭' 같은 일본식 한자 표현을 여과없이 쓴 것이 눈에 거슬렸었는데 이 책에서는 여러명의 긴 대사가 이어지는 부분에서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구분이나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 대관절 누가 이야기 하는지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책에 몰입하기가 어렵게 만들거든요. 전작도 같은 문제가 있었지만 이 책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했어요. 그러고보면 저는 이렇게 쓰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강하게 남겨준다는 장점은 있군요...

때문에 별점은 1.5점.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구태여 찾아볼 필요는 없겠습니다. 특히나 책 뒷커버의 '거꾸로 가는 시간이 수놓는, 마법과 같은 노스텔적 연작 탐정 미스터리' 라는 현란한 문구에 속지 마시길. 마법과 같은 노스텔적 미스터리 좋아하시네.

2011/03/01

해황기 1~45 : 카와하라 마사토시 - 별점 3점

 

해황기 45 - 6점
카와하라 마사토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몇년 전부터 보아오던 작품. 드디어 완결되었네요.

초반에는 중세 분위기의 이(異)세계에서 과학문명을 이용한 '숲지기'라는 존재와 그 이면의 흑막에 대해 그려가는 것 같더니만 어느새 장대한 대하 서사 군웅극으로 탈바꿈하는 작품입니다.
흔해빠진 이세계 판타지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한 초반부의 전개는 별로였어요. 그러나 '월한'의 카자르 세이 론과 손을 잡고 그를 도와 세계를 정복하는 중후반부 부터는 엄청난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이러한 재미의 가장 큰 요인은 '범선'을 이용한 전략을 설득력있게 그려가는 것에 기인하고 있지요. 이만큼 '범선' 이라는 소재를 잘 활용한 만화가 또 있을까요? 상선학교 출신이라는 작가의 배경 덕분이겠지만 정말로 납득할만한 멋진 전략들이 가득 펼쳐집니다. 그야말로 해양액션 - 전투물로는 최고 수준이에요.

또한 약간은 안티-히어로적인 면모를 지니는 주인공 판 감마 비젠의 매력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못하는게 하나도 없는 엄친아 먼치킨이기는 한데 말투와 행동을 장난스럽게 그려서 밉지 않는 캐릭터로 완성한 것 같아요. 그 외의 다양한 인물들 역시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작가가 의도적으로 하나씩 어설픈 요소들을 집어넣은 것 같아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결말이 약간 시시하기는 하지만 모든 등장인물의 후일담을 꼼꼼히 알려주고 반전이라면 반전인 의외의 설정을 집어넣었다는 점에서 마지막까지 팬들을 사로잡는 요소가 충분하지 않았나 싶네요.

물론 묘사가 그닥 정교하지 않고 시원한 배경이 대부분이라 작화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는 약점과 함께 범선 전략 이외의 지상에서의 전략과 전투에 대한 것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점, 그리고 뒤로 가면 갈 수록 너무 전형적인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나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 창작 서사물로는 보기드문 흡입력을 갖춘 작품임에는 분명하기에 대하 서사 군웅극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울러 길이도 적당하고 끝내야 할 때 끝내는 미덕을 갖춘 만화가 최근에는 드문데 이 작품이 신호탄이 되어 적절하게 매듭짓는 작품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