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 - 츠하라 야스미 지음, 고주영 옮김/북홀릭(bookholic) |
츠하라 야스미의 루피너스 탐정 연작 단편집 2권.
전작이 비교적 긴 호흡의 중편들이라면, 이번에는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캐릭터나 배경 설명이 대폭 삭제되었기 때문일 텐데, 덕분에 읽기도 편하고 한 호흡으로 읽기에도 적당해서 1편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싶습니다.
첫 이야기의 시작이 졸업 후 10년 후 루피너스 탐정단 4인방의 한 명인 쿄노 마야의 장례식이라는 파격적인 구성은 좀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만... 굳이 비교하자면 "명탐정 코난"이 갑자기 소노코의 장례식을 무대로 Season2가 시작되는 느낌이에요. 초반 내용도 졸업 이후 각자의 삶을 다루는 에필로그 느낌이 강했고요. 그래도 확실히 아이들이 성장한 덕분에, 전작에서 느꼈던 건방진 고등학생들의 철없어 보이는 추리 모험극 냄새가 덜하다는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전편의 문제점은 여전합니다. 추리적으로는 별로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어요. 사건의 동기와 증거가 엄청나게 취약하다는 점에서는 추리 소설로서의 가치가 의심될 정도입니다.
'동기'가 취약하다는건 네 번째 단편 "자비의 화원"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꽤 오래 지속된, 옅어지는 종교색에 대한 반감이 왜 갑자기 폭발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이야기의 설득력이 전무하거든요. '마리아상의 위치'에 대한 기묘한 트릭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이야기를 짜 맞춘 느낌이에요. 수녀의 과거사가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대체 모르겠고요.
부실한 '증거'는 세 번째 단편 "첫밀실"이 대표적입니다. 4년 전에 벌어졌던 밀실 살인 사건의 진상을 다루는 작품인데, 이미 모든 관계자가 사망했고, 다른 누군가가 이미 죄를 뒤집어쓰고 잠자코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죄를 밝힌다는건 어려운데, 이를 추리쇼만 펼친 뒤 추궁을 통해 범인의 자백을 이끌어내어 그걸 녹음하고, 마지막에는 '비겁하다' 운운하며 범인의 자수를 강요하는 희한한 결말은 전대미문이라 할 정도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등장하는 트릭도 황당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살인을 저지른 다음에 밀실을 그 위에 짜 맞췄다니 작위적인 것도 유분수지... 하여간 트릭도 별로고 내용도 별로니 완전 최악이었습니다.
다행히 첫 번째 단편 "백합나무 그늘"과 두 번째 단편 "개는 환영하지 않아"는 일상계 느낌이 가득해서 읽을 만 했습니다. 이 중"백합나무 그늘"은 팬서비스적인 에필로그 형식의 후일담과 일상계적인 느낌 이외에는 별로 건질 게 없기는 합니다. 어렸을 적 약속을 성인이 될 때까지 유지한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고, 마야의 행동도 납득하기 어렵거든요. 평작 이상도 안 되긴 하지요.
그러나 "개는 환영하지 않아"는 아주 좋았습니다. 사건의 기이한 동기를 비교적 충실하게 앞부분부터 설명해 주고 있는 점과 단서를 공정히 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만하거든요. 시지마와 아오우를 초대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사건이 벌어진 이유 역시 나름 설득력 있고 요. 합리적이고 기발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 하나만큼은 별점 3점은 충분해 보입니다.
하지만 단 한 작품만으로는 역부족. 앞서 말했듯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추리적으로 문제가 많아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덧붙여 번역 문제를 꼭 지적하고 싶습니다. 전작에서도 '주인 住人'이라든가 '중정 中庭' 같은 일본식 한자 표현을 여과 없이 쓴 것이 눈에 거슬렸었는데, 이 책에서는 여러 명의 긴 대사가 이어지는 부분에서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구분이나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 대체 누가 이야기하는지 혼란스럽게 만들어 책에 몰입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전작도 같은 문제가 있었지만, 이 책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이렇게 쓰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강하게 남겨준다는 장점은 있군요...
때문에 별점은 1.5점.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구태여 찾아볼 필요는 없겠습니다. 특히나 책 뒷표지의 "거꾸로 가는 시간이 수놓는, 마법과 같은 노스텔적 연작 탐정 미스터리"라는 현란한 문구에 속지 마시길. 마법과 같은 노스텔적 미스터리 좋아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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