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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6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원은주 : 별점 3.5점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 8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원은주 옮김/시공사

귀금속 거래업자인 존 혼비는 자신이 금고에 넣어둔 다이아몬드 원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증거는 금고 바닥 메모지에 선명한 피 묻은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수사결과 그 지문의 임자가 혼비 씨의 조카 루벤의 것으로 밝혀지고 그는 곧바로 경찰에 체포된다. 손다이크 박사는 사건 의뢰를 받은 뒤 루벤의 무죄를 확신하고 친구 저비스, 충직한 하인이자 기술자 풀턴과 함께 독자적인 과학 수사 기법을 활용하여 그를 돕게 되는데...

1907년에 출간된 법의학의 선구자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첫 작품. 국내에는 동서에서 중단편집 <노래하는 백골>이 출간되어 있고 국일미디어의 <암호 미스터리 걸작선>에 단편 한편이 수록되어 있는 정도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캐릭터인데 이렇게 소개되니 무척 반갑네요.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지문' 에 대히 깊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범인이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단지 루벤 혼비의 누명을 벗기는데 작품의 촛점이 맞춰져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트릭' 자체에만 깊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특징은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인 오스틴 프리먼의 지론이 "독자는 범인이 누구냐보다는 수사 과정에 더 흥미를 느낀다" 였다니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그러나 무려 100년도 전에 나온 작품이니 만큼 대단한 추리가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핵심 트릭 자체가 많이 낡은 발상이니까요. 또 낡은 방식의 뻔한 전개 덕분에 독자는 범인이 누군지 쉽게 짐작하게 된다는 것도 단점이겠죠.
아울러 화자인 저비스 박사의 애정행각이 작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도 전통적인 추리 애호가에게는 와닿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저는 무척 재미있었습니다만)

하지만 범인이 쉽게 드러나고 트릭이 별볼일없다고 해서 이 작품이 추리소설적인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인들도 잘 모르는 '지문'에 대한 속성을 이미 이 시기에 작품으로 쓸 만큼 (그것도 재미있게!) 깊게 파고들었다는 점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합니다. 특히 법의학과 과학수사에 기초하여 트릭을 파헤친 손다이크 박사가 마지막에 벌이는 법정에서의 반전쇼는 여타의 법정 추리물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흥미진진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게다가 중간에 벌어지는 손다이크 박사 암살 음모에 대한 디테일 역시 대단합니다. 기묘한 총알에 대한 설명, 불시에 날아온 소포의 포장만 보고도 범죄를 예감하는 추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펼쳐지는데 그 아이디어가 100년전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이 높거든요. 중반에 잠깐 등장하는 역장에 대한 추리 역시 당대 셜록 홈즈의 라이벌다운 풍모가 느껴졌고요.

앞서 말한 일부 단점들, 지금 읽기에는 낡은 전개는 감점 요소지만 그래도 이 작품의 장점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며 출간 자체만으로도 기쁜 일이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저와 같은 고전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아주아주 이쁜 디자인, 판형이라는 점과 함께 충실한 번역 역시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동서판은 특유의 일본어 중역 덕분인지 손다이크 박사의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웠는데 이 작품에서는 과묵하지만 냉철한 지적인 미남자(!) (여기서 제일 놀랐어요. 왜인지 할아버지 이미지였거든요) 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니까요. 과거 불만이었던 <노래하는 백골>도 제대로 된 완역본으로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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